행복한 어항/임혜숙
물방울이 통통 튀어 오르는 사랑스런 어항에 코리가 새로 왔어요. 조그마한 체구에 메기도 아닌 것이 수염이 길게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에요. 코리는 이리저리 바닥을 들추며 떨어진 먹이를 먹느라 바빴어요. 코리가 끊임없이 청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열심히 먹이를 찾는 중이에요. 바닥에 가라앉은 먹이를 먹고 또 먹고, 부지런한 코리 덕분에 어항 바닥이 빠른 속도로 깨끗해지자 구피들도 신이 나고, 네온이도 신이 났어요.
“코리가 들어와서 정말 깨끗해.”
수놈 구피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코리가 있으니까 먹이를 흘려도 걱정이 없어.”
암놈 구피가 살랑살랑 춤을 추며 말했어요.
나이든 네온이가 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아요. 어항이 변함없이 평화롭고 화기애애한 것이 새 식구인 코리 덕분인 것 같아 어항 식구들은 모두 코리를 환영했어요.
코리는 바닥을 훑으며 먹이를 먹다보니 고운 모래가 자꾸 입에 들어와 목구멍이 걸근거렸어요. 아가미로 모래를 내 뿜고 나니 비로소 개운해진 느낌이에요.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혼자만 어항 바닥에서 놀고 있었네요.
어항 위쪽의 치어 통에서 웅성웅성 이야기 소리가 들려와요. 코리가 가만가만 다가가니 물고기들이 모두 모여 암놈 구피의 출산을 축하하고 있었어요. 암놈이 몇 번씩 몸을 웅크리다 활짝 펴자 꼬물꼬물한 새끼가 태어났어요.
“이야, 벌써 다섯 마리야.”
아빠인 수놈 구피가 사랑을 가득 담은 얼굴로 뿌듯해 하며 말했어요.
“우와, 꼬리 모양이 부채꼴인 게 아주 제법이야.”
다른 수놈 구피가 부러워하며 말했어요.
“으하하, 저 조그만 몸뚱이 좀 봐.”
코리가 크게 웃으며 다가가자 왁자지껄 시끄럽던 치어 통 앞이 일순간 조용해졌어요. 수다스럽던 수놈 구피들이 치어 통을 에워싸요. 방어하듯 긴장한 모습이에요.
“우린 잠시 내려가 있자. 따라와.”
화가 난 듯 네온이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어요. 네온이가 쏜살같이 어항 바닥으로 내려가자 잠시 얼쯤하다 코리도 뒤따랐어요. 뭔가 커다란 잘 못이라도 한 것처럼 뒤통수가 따가웠어요. 구피들에게 해명할 기회도 없이 상황을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 네온이가 야속하고 미워져요. 옛말에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차라리 구피들에게 한 소리 들은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전 잡아먹으려고 그런 게 아닌데요.”
코리는 억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어요. 등을 돌리고 있는 네온이는 코리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말없이 먹이만 먹고 있어요. 코리는 어떻게든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대꾸도 없는 네온이를 보며 오늘은 아닌 것 같았어요. 멋쩍어진 코리는 느리게 헤엄쳐 어항 벽에 매달렸어요.
“오늘은 빠르게 헤엄쳐 볼까?”
코리는 하루 종일 어항 속에서 노는 일이 아직은 재미났어요. 무엇보다 여과기에서 나오는 충분한 공기로 숨 쉬기가 편리했어요. 자주 물 위에 올라가지 않아도 되니까 물속에서 한참을 놀아도 끄떡없어요. 더욱이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충분한 먹이가 주어져서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친구들과 서로 더 먹으려고 화내고 싸우는 일이 없어 정말이지 만족스러웠어요. 매일 같은 종류의 먹이가 들어오니 아등바등 저장할 필요도 없거든요. 그리고 크기가 다른 수초와 소라 껍데기 속에 숨어보는 것도 지루하지 않은 일이에요. 지나가다가 보이는 구피들이 오불오불 놀고 있는 모습이 몹시 친근하고, 블랙 테트라들이 입을 벌룩하는 게 마냥 귀여워요. 좁은 어항 속이지만 매일매일 새롭고 즐거운 시간이에요. 이렇게 행복한 어항에 가족이 된 일이 커다란 행운처럼 느껴져요.
“코리야! 천천히 먹으렴.”
“코리야! 저쪽 작은 산호초 뒤에 먹이가 많이 있더구나.”
어항에 빠른 속도로 적응한 코리는 등이 휜 네온이가 자꾸 먹이 먹는 일에 참견하는 게 싫어졌어요. 가만히 두면 알아서 할 텐데 이런 저런 말을 하는 게 꼭 잔소리 같았어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자꾸 들으니 짜증이 나서 참으려고 해도 금세 반항하고 싶어져요.
“듣기 싫어요. 제 마음대로 할 거예요.”
코리는 산호초 반대쪽으로 몸을 돌려 커다란 수초 뒤에서 돌을 들췄어요. 하지만 수초에 걸려 먹이가 바닥에 내려오지 않으니 먹을 만한 것이 많이 보이지 않았어요. 역시 네온이의 말대로 작은 산호초 뒤로 갔어야 배불리 먹을 수 있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참견쟁이 네온이의 말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루하루 노화로 볼품없는 네온이가 자꾸만 보기 싫어져요. 번번이 옳은 소리를 해도 꾸부정한 네온이가 하는 말이라면 믿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어요.
‘쳇, 저 늙은 네온이 좀 안 보면 좋겠어. 어서 용궁에나 가 버려.’
코리의 마음엔 자꾸 나쁜 생각이 자라났어요. 항상 말이 씨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던 엄마의 말씀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예요.
그러던 어느 날, 탁한 어항의 물을 갈아주는 날이 되었어요. 고여진 물속에서 똥이나 썩은 수초 잎과 먹다 남은 먹이가 부패하면 암모니아가 발생해요. 그러면 물고기들이 독성 때문에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미리 갈아줘야 병에 걸리지 않아요. 오염된 물을 갈아주는 날은 조금은 힘든 날이기도 하지만 어항에 사는 이상 피할 수 없는 행사에요.
어항의 물을 떠내느라 바가지가 들락날락할 때엔 최대한 바닥에 몸을 낮춰야 해요. 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물에 휩쓸려 어항 밖의 바닥에 떨어질 수 있으니까 서둘러 움직여야 해요. 괜히 장식용 항아리나 소라 껍데기 속에 숨었다가는 그대로 물 밖으로 꺼내질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답니다. 지난번에 블랙 테트라 한 쌍이 소라 껍데기 속에 꼭꼭 숨었다가 적은 물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호흡 곤란으로 한참 고생한 적이 있어요. 꺼내진 수초를 닦고 헹구느라 늦게 발견돼서 한참 만에 다시 어항에 옮겨졌거든요. 그 후로 그들은 친구들도 멀리하고 수조 아래 한쪽 구석에서만 지내고 있어요.
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구피도 네온이도 모두 몸을 낮추고 있는 대로 바닥에 몸을 붙이고 있어요. 바닥재인 작은 돌에 찔려서 배가 아파도 피할 곳이 없으니 참아야 해요. 다른 물고기들과 달리 코리는 어항 측면에 붙어있는 여과기에 달라붙어 있어요. 늘 나오던 공기도 작동을 멈춰서 조용하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이 마음에 쏙 들었어요.
“코리야! 어서 바닥에 내려와.”
나이 든 네온이가 소리쳤지만 코리는 여과기에 몸을 붙이고 그대로 매달려 있었어요.
“코리야! 그곳은 위험하다니까.”
정말 화가 난 듯한 네온이의 목소리를 코리는 한 귀로 흘려버렸어요.
“싫어요. 안 내려갈 거야.”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있는 것뿐인데 자꾸 나무라니 청개구리 같은 코리는 절대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어요. 아무리 흔들어대도 반드시 잘 버텨서 이곳이 얼마나 옳은 선택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코리는 고개를 돌려 여과기 틈에 꼬리지느러미를 넣었어요. 쉽게 떨어지지 않으려고 더욱 단단히 몸을 밀착시켰어요.
이윽고 여과기를 청소할 차례가 되었어요. 여과기가 떼어져 들려지고 허공에 몇 번 흔들리더니 코리가 어항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어요. 온 몸이 뺨을 맞은 듯 얼얼하고 뻐근함이 작은 코리의 몸에 퍼져가요. 다행히 어항 안으로 떨어지긴 했어도 얕은 물이라 쿠션이 되어 주진 못했나 봐요. 높은 곳에서 떨어지니 코리는 정신이 없고 세상이 흔들릴 만큼 어지러웠어요. 그 짧은 찰나에 코리는 이대로 죽을 수도 있구나 싶어 덜컥 겁이 났어요. 정신을 차려야지 했지만 어디까지나 마음 뿐 몸이 굳어 뜻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어요. 그런 코리를 네온이가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봐요.
“아이쿠. 그래도 빨리 발견돼서 다행이네.”
구피들이 입을 모아 위로했어요.
이제 어느 정도 물이 빠지자 새로운 물이 들어오기 시작해요. 코리는 아직도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어요. 여러 약품들이 물을 안정화 시켜주지만 아무리 그래도 물갈이가 물고기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건 아니에요. 물잡이가 제대로 될 때까지는 움직임이 둔해지고 시야가 좁아져요.
‘어, 너무 어지러워.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겠는 걸.’
코리는 몸을 활처럼 구부린 채 몸을 물 위로 힘없이 떠 올리고 있었어요. 마음 같아선 히터기로 따뜻해진 수조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만 마비된 듯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저러다 코리가 잘 못 되면 어쩌지?”
수놈 구피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코리를 바라보아요. 그렇지만 곁에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암놈 구피 세 마리도 코리 옆으로 모여 들었어요. 그 역시 주변을 지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안 되겠어. 나야 늙어서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코리는...’
네온이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그리고 굳게 결심한 듯 헤엄을 멈추고 몸에 남아있는 힘을 모았어요. 코리의 등은 수평선과 맞닿아 있고 몸은 활처럼 휜 모습이라 금방이라도 배를 보이며 뒤집을 것만 같았어요. 만약 그렇게 되면 코리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거예요.
‘망설일 시간이 없어. 내가 서두르지 않으면 코리가 위험해.’
네온이의 시선이 흔들려요. 하고 싶은 말도, 생각도 많지만 용기를 내야겠다고 다짐해요.
잠시 뒤 등이 휜 네온이가 무서운 속도로 포물선을 그리듯 있는 힘껏 코리를 향해 헤엄쳐 올라왔어요. 그러더니 꼬리로 코리의 등을 아주 세게 쳤어요. 찰싹 소리가 어항의 벽면을 타고 흩어져요.
“아야.”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 힘에 놀란 코리는 정신을 차리고 헤엄을 쳐서 수조 안을 한 바퀴 돌아 왔어요. 기운이 없어 크게 돌지는 못했지만 코리는 열심히 헤엄치려 노력했어요. 네온이가 수조 바닥에서 힘차게 솟구쳐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구피들도 블랙 테트라도 너무 깜짝 놀라 눈이 커졌어요. 그리고 코리가 헤엄치는 모습을 보며 일제히 기뻐서 소리쳤어요.
“어머, 코리야. 이제 깨어났구나!”
암놈 구피들이 환호하며 소리쳤어요.
“이야, 코리가 무사해서 다행이다, 다행이야!”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했어요. 누구보다 용감했던 최고로 멋있는 네온이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네온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어요.
“어, 네온이가 어디 갔지?”
물고기 친구들이 다 함께 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봐도 어디서도 네온이는 보이지 않았어요.
“앗! 저기 가라앉아 있다!”
수놈 구피가 재빠르게 헤엄쳐 어항 바닥까지 돌아보고 왔어요. 네온이는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눈이 튀어 나오고, 기운이 없는지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어요. 몸이 물속에 가라 앉아 머리가 돌에 부딪히고 있는데도 꿈쩍을 하지 않았어요.
“어, 네온이가 이상해!”
구피들이 놀라 소리쳤지만 네온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어요.
“네온아, 네온아! 어서 일어나 봐!”
불러도 대답이 없는 네온이가 하도 수상하다 싶었지만 누구도 섣불리 뭐라 말하긴 어려웠어요. 서서히 수조 안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어요. 코리가 깨어났다는 기쁨도 잠시 뿐이었어요.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더 이상의 움직임이 없는 네온이를 향해 수조 아래로 모여들었어요.
“네온아, 이제 그만 일어나 봐.”
수놈 구피가 꼬리로 네온이를 흔들었어요. 역시나 움직임이 없었어요.
“네온아, 숨 쉬어 봐.”
“네온아, 어서 헤엄쳐 봐.”
암놈 구피들이 소리쳤지만 네온이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렸어요.
“나는 잘 해준 것도 없는데 네온이가...”
코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깊은 슬픔에 소라 껍데기 속에 몸을 숨겼어요. 늘 미워하고 싫어하기만 했던 네온이가 자신 때문에 안타까운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미안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절대로 네온이를 미워하지 않을 거라며 끊임없이 반성하고 후회했어요. 늘 네온이가 없는 어항을 꿈꿨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꿈이라면 어서 깨고만 싶어져요. 고마운 네온이에게 대체 어떻게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밤이 와도 잠이 오지 않고, 끼니때가 돼도 배가 고프지 않는 더 없이 힘겹고도 괴로운 시간을 코리는 보내고 있어요.
“저러다 코리에게도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네온이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뒤 풀이 죽어 있는 코리를 보며 수놈 구피들은 생각했어요.
“쉽진 않겠지만, 어서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할 텐데...”
암놈 구피들은 코리를 위해 일부러 먹이를 바닥에 떨어뜨렸어요. 먹을 것이 많으면 코리가 예전처럼 신이 나서 웃으며 일어나 줄 것만 같았거든요.
“코리야, 이제 그만 슬퍼해. 그건 네온이가 바라는 게 아닐 거야.”
축 쳐진 코리를 위해 수놈 구피들이 위로해요.
“맞아,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어. 시련이 있었으니 더 강해질 거라 믿어.”
구피들이 한 목소리로 얘기했어요. 자신들이 먼저 코리에게 힘을 주지 않으면 코리는 더 오랫동안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어요.
구피들의 힘찬 응원이 통했는지 코리는 슬며시 소라 껍데기에서 몸을 꺼냈어요. 시름에 잠겨 얼굴빛이 어두워지고 힘이 없어 보였어요. 먹이를 먹지 못해 전보다 훨씬 작아진 모습이었어요. 시무룩한 코리가 안쓰러워 구피들이 열심히 지느러미로 쓰다듬어 주었지만, 코리의 표정은 여전히 깜깜한 밤처럼 어두웠어요. 어느 틈엔가 블랙 테트라도 코리에게 다가와 자신의 입으로 먹이를 물어서 코리의 입에 넣어 주었어요.
“무엇인가를 잃기 전에는 그것의 소중함을 모르지. 이제 너의 마음의 키가 자랐기를 바라.”
블랙 테트라의 의미 있는 한 마디가 아프고도 달게 느껴졌어요. 코리는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며 슬퍼하고 같이 기뻐해 주는 친구들이 곁에 있어 정말 기뻤어요. 이 든든함이 영원할 거라는 믿음이 쑥쑥 자라요. 세상 어느 곳보다 의리가 빛나는 이곳은 행복한 어항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