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帳山 · 岐陽山 · 修善山
해 질 녘 백사장에 머문 한 척의 조각배
갑장산(甲帳山)은 경상북도 상주시의 낙동면 비룡리·승곡리와 지천동(신흥동) 등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 : 806m). '갑장산(甲長山)'이라는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상주)에 "주 남쪽 13리에 있는데 일명 연악(淵岳)이라고도 한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또 "노음산(露陰山)은 주 서쪽 10리에 있다. (중략) 북석악(北石岳, 천봉산)·남연악(南淵岳, 갑장산)과 함께 상산삼악(商山三岳)이라고 일컫는다."라고 하여 예전부터 상주를 대표하는 명산임을 알 수 있다.
상주삼악을 연악(淵岳) 갑장산, 노악(露岳) 노음산(露陰山:725m), 석악(石岳) 천봉산(天鳳山:435m)이라 하며 갑장산이 제일명산이다. 높이는 물론 신령스런 기운이 맑고 밝아 해마다 홍수나 가뭄 때 여기서 기도하거나 제사를 올리면 그 응함이 빠르다고 한다.
연악·석악보다는 주봉의 기암괴석이 천태만상이며 지천동(智川洞) 계곡과 승장폭포(勝長瀑布)를 흘러내리는 옥수는 삼림을 울리고 굽이마다 수석의 비경을 펼친다. 고도(古都)의 안산(案山)으로 갑장사·승장사·북장사·남장사 중 두 절이 있고, 선원(仙源)인 봉황대(鳳凰臺)와 연악·화암 두 서원 및 여섯 서당을 두어 유불선의 수도장이자 전승지로 영남 인재의 반이 모여 있던 상주고을의 중심이었다.
기양산(岐陽山)은 (높이는 706m이다. 백두대간 상의 국수봉에서 한 줄기가 뻗어 내려와 여남재(상주-김천)에 잠시 멈춘 후 백운산을 거치면서 다시 솟구친 산이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조양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특징은 산세가 부드러우면서 아기자기하고 백두대간 상주 구간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중턱까지 개간된 경사진 사과밭 사이를 지나 잣나무 조림지를 올라서면 우측으로 뻗어내린 능선에 닿게 된다. 이어진 완만한 능선을 따라 암릉구간을 벗어나면 일봉(703m)에 이른다. 주변이 탁 트여서 정상에서 맛볼 수 없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다. 황악산(1,111m)·국수봉·백학산·속리산·청화산 등 상주구간 백두대간이 펼쳐지고 청리·공성·외남의 너른 들판이 끝없이 전개된다.
마공성은 신라시대 진흥왕 때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면 531m고지 부근에는 바위와 경사가 심하여 축성한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주변의 무너진 석성과 토루 혹은 회곽도 등으로 보아 이 성의 둘레는 약 1,050m로 추정된다. 주민들은 매년 가을 길일을 택하여 제관을 뽑아서 성뚝이라고 하는 이 성 안에서 동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성수골에서 지낸다.
수선산(修善山)은 경상북도 구미시의 무을면 상송리와 오가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 : 684m). 수선산은 조선시대에 '연악산'이라는 이칭으로 기록되고 통용되었다. 관련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선산)에 "연악산(淵岳山)은 선산도호부의 서쪽 32리에 있는데, 이 산의 북쪽 지맥은 곧 상주의 갑장산(甲長山)이다."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선산)에는 "연악산(淵岳山)은 속리산에서 뻗어 나온다."라는 기록이 있어 산줄기의 근원을 알 수 있다. 이후 표기자의 변화 없이 『해동지도』(선산), 『대동여지도』, 『1872년지방지도』(선산)에 '연악산(淵岳山)'이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선산)의 무을면에는 연악산(淵嶽山)은 상송동에 있는데, 수다사(水多寺) 뒤에 있는 산이라는 기록이 있어 연악산의 표기자 일부가 '악(嶽)'으로 표기된 것과 함께 산 아래에 수다사라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서는 수성산(水城山)을 수다산(水多山), 수선산(修善山), 연악산(淵岳山)이라고도 하였으며 "상주군 낙동면, 청리면과 선산군 무을면 경계에 있는 산. 꼭대기에 못이 있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칭인 '수성산', '수다산'과 함께 '수선산'이라는 현재의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사벌국이었던 상주 권근이 『풍영루기(風詠樓記)』에서 “상주는 본래 사벌국이었는데 신라에 귀속되면서 큰 고을이 되어 지금까지 천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산천은 빼어나게 아름답고 인물이 번성하여 온 도내 여러 고을 가운데 으뜸이다”라고 하였고, 김종직이 “배와 수레가 모두 모여드니 사방으로 통하는 요충지로다. 사신의 수레가 서로 교차하니 다른 고을들이 뒤질세라 따르네”라고 하였으며, 최자가 “동남쪽 지방 백 개 고을 가운데 으뜸이다”라고 노래한 상주시는 본래 사벌국(沙伐國)이었다. 신라의 점해왕이 빼앗은 뒤 주로 만들었고,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상주의 다른 명칭은 낙양(洛陽)이라고 하는데, 조령 밑에 큰 도회지로서 산세가 웅장하고 들이 넓다. 북쪽은 조령과 가까워서 충청도 및 경기도와 통하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에 임해서 김해 및 동래와 통한다. 육로로 운반하는 말과 짐을 실은 배가 남쪽과 북쪽에서 물길과 육로로 모여드는데, 이것은 교역하기에 편리한 까닭이다.
상주에 있었던 삼한 소국의 하나인 사벌국은 일명 사량벌국(沙粱伐國)이라고도 하였는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본래 신라에 속하였으나 점해이사금 때 갑자기 배반하여 백제에 귀속하자 우로가 군대를 거느리고 이를 토벌하여 주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은 진한소국연맹체에 속하였던 사벌국이 이탈하여 외부 세력인 백제와 결속함에 따라 맹주국인 경주 사로국(斯盧國)의 무력 제재를 받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낙동강 옆의 비옥한 평야 지대를 끼고 있는 상주는 신라시대에는 전국 9주(州), 고려시대에는 전국 8목(牧)의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관찰사가 상주목사를 겸하는 등 웅주거목(雄州巨牧, 땅이 넓고 생산되는 물건이 많은 고을)의 고도였다. 또한 낙동강 하류 지방의 각 조세 창고에서 한양으로 세곡을 실어 나르던 뱃길의 최상류 종착 지점이기도 하였다. ‘낙동강 칠백 리’라는 말이 생긴 것도 바로 이때문이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의 문물의 유통은 수로를 주로 이용했는데 세미(稅米)의 경우, 영남지방에서는 낙동강을 이용하여 상주 낙동진에 모아서 육로를 이용하여 점촌, 문경을 지나고 조령을 넘어 충주 가흥창(可興倉)에서 다시 한강수로를 이용하여 한양으로 운반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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