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주부의 풍운
개봉부의 무림 제일가. 여기는 또한 천하 무림맹을 대표하는 무림 맹주부 이기도 하다. 이곳은 한 채의 궁전 식으로 세워진 육중한 대문에 누각 지붕들이 백칸 정도 연결되어 있는 큰 뜰이었다. 붉은 벽돌 담이 길게 둘러싸이고 우거 진 소나무와 상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어 더욱 호기 충천해 보였다. 때는 정오 무렵. 찬란한 한낮의 태양이 높이 박혀서 따사로운 햇살을 뿌리고 있었다. 이 무림 맹주부의 중겹으로 이루어진 뜰 안에는 육칠 장(丈) 높이의 등대 가 세워져 있었다. 이 등대의, 바람이 쓸쓸하게 펄럭이고 있는 하얀 깃발에는 검은 색으로 기중(忌中) 조상(弔喪)이라고 크게 쓰여져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문 앞에 위치하고 있는 광장에는 마차가 줄을 이었고, 사람들이 거의 장사진을 이루다시피 했다. 그 행렬은 대문 안 깊숙한 곳에서부터 바깥까 지 이어졌는데 분분히 들어가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가고 나올 때 이십사 명의 흑의의 무사가 감시를 하 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표정들이 어둡고 침통하였다. 흑의의 무사들은 저마다 몸에 칼과 검을 차고 있었으며, 팔뚝에는 검은 천을 두르고 있었고, 모두들 신색이 침울하면서도 엄숙하여 두 눈에서는 모두들 형형한 신광을 뿜어내며 무림 맹주부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샅샅이 감시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광장의 한 모퉁이에서 이목이 청수하고 칼날 같은 눈썹에 호랑이 눈을 가 진 흑의의 소년 서생이 나타났다. 무쇠같이 단단해 보이는 팔뚝에 곰처럼 퍼진 허리를 가진 그 서생은 언뜻 보기에도 야무지고 억세 보였다. 한 가지 애석한 것은 걸어가는 중의 왼쪽 발을 약간 절룩거리는 것이었 다. 게다가 얼굴의 신색은 말이 아니었다. 금방 병석에서 일어난 사람처럼 안색이 창백하고 누렇게 떠있는 것이 깊 은 실의에 찬 모습이었다. 흑의의 서생은 걸음을 멈추고 서서 맥빠진 표정으로 한참 동안 주춤거렸 다. 그는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보고 나서야 비로소 예의 왼발을 절룩거리 며 돌계단을 지나 줄지어 선 사람들 틈에 끼었다. 잠시 후 그는 사람들 틈에 낀 채 대문 안에 들어서려고 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검을 찬 두 명의 흑의의 무사가 바짝 다가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 다. 오른쪽의 나이가 약간 많아 보이는 무사가 음산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보 형씨, 걸음을 좀 멈추실까?" 흑의의 서생은 이 말을 듣자 움찔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급히 허리 를 굽히고 자못 겸손하게 말했다. "저는 맹주님의 비보를 듣고 문상(問喪)하러 온 사람입니다." 흑의의 무사는 다소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형씨 부첩(訃帖)을 좀 보여 주시오." 흑의의 소년 서생은 일순간 어리둥절해 하다가 말했다. "부첩이요. 아, 급히 달려오느라고 가지고 오는 것을 깜빡 잊었습니다." 흑의의 무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형씨가 천리 밖에서 개봉까지 달려와 문상하는 것을 구천에 계시는 우리 맹주님의 영혼이 아신다면 분명히 감격해 하실거요. 그러나, 형씨가 부첩 이 없는 이상 나는 형씨로 하여금 맹주부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할 수가 없소이다." 흑의의 소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는 평소부터 호(胡)맹주님의 협의심이 강하고 인의가 남달리 두터우셨 던데 대해 진심으로 우러러 왔습니다. 그러니 형님들, 저로 하여금 호맹주 님의 영전에 조의를 표할 수 있도록 편의를 좀 봐주실 수 없으시겠습니 까?" 흑의 부사는 얼굴에 병색이 완연한 소년이 말하는 사이에 눈에서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는 곧 냉정을 되찾고 여전히 고개를 흔들었다. "형씨가 성심 성의로 이곳에 와 호맹주님의 영혼을 위해 문상하는 것에는 나도 매우 감격하는 바이오. 그러나, 치상회에서 신분 내력이 불분명한 사 람의 문상을 금지하도록 명을 내렸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 소이다." 안색이 누런 소년 서생은 이 말을 듣자 대번에 울상이 되고 말았다. 모습 은 처량하다 못해 비통스럽기까지 했다. "휴!" 그가 한숨을 내쉬자 원래부터 실의에 차 있던 모습이 더욱 참담해지는 것 이었다. 이윽고 그는 몸을 돌리고 절룩거리는 왼발은 무겁게 끌며 쓸쓸히 돌계단 을 향해 걸어갔다. 이때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침통한 소리로 부르짖고 있었다. '십 년 동안 길러 주신 은혜를 어디에 비하랴. 바다와 같은 깊은 정을 어 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나...... 나는 반드시 사부님의 영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비록 나 몽천악(夢天岳)은 사문(師門)에서 쫓겨난 사람이지만 그러나, 바다와 같이 넓고 깊은 사부님의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 사부님, 이 못난 놈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또 사부님의 금령(禁令)을 거역하고 무림 맹주부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정오가 지난 오후의 가을 바람은 안색이 누렇게 병태가 있는 소년 서생의 남루한 옷자락을 풀어 제쳤다. 이윽고 그의 넋이 나간 듯한 애잔한 뒷모습은 무림 맹주부의 광장에서 쓸 쓸히 사라져 버렸다. 초가을의 칠월. 밤이 되자 쌀쌀한 바람이 제법 불어와 으스스한 한기를 느끼게 한다. 오 늘 날씨는 유달랐다. 어느 날 밤처럼 은빛을 뿌리는 달도 없고 그 많은 별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어둠침침한 하늘에서 달과 별을 삼켜 버린 검은 구름이 쉬지 않고 유동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숨막힐 듯이 고요한 밤. 가을 바람이 가볍게 불어와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풀잎은 가냘픈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일 뿐 바람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대지 는 고즈넉한 적막에 잠겨 버린다. 무림 제일가 맹주부 동북쪽을 둘러싼 조그만 솔밭도 이런 밤공기에 젖어 있었다. 이때 돌연! 한 줄기 검은 인영이 번뜩하며 나타났다. 신광이 번쩍이는 호랑이 같은 눈이 등불이 환히 밝혀진 맹주부의 위쪽 뜰 안을 조용히 한차례 훑어보았 다. 잠시 적막이 흐른 뒤 그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까 낮에 보았던 흑 의의 서생, 바로 왼발을 절룩거리는 그 소년이었다. 그는 절룩거리는 발을 차분하게 끌며 담 모퉁이까지 다가갔다. 갑자기 그는 무릎은 전혀 구부리지 않고, 허리도 굽히지 않은 채 단지 양 발을 가볍게 떨치자 날쌘 표범처럼 몸이 담 위로 날아 올라가는 것이었 다. 절름발이 병신인 그 소년이 일신에 그런 놀라운 경공술을 지니고 있으리 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방금의 그 사실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렇듯 무릎을 구부리지 않고 허리도 움직이지 않은 채 오직 양발의 탄력 만을 이용해 일 장 높이의 담을 한 순간에 올라갈 수 있는 경공술의 위력 은 실로 초상비 절정 경공의 위력과 별로 차이가 없는 것이다. 병태가 깃든 누런 안색의 소년 몽천악은 담 위에 올라간 뒤 잠시도 머뭇 거리지 않고 신속하게 몸을 날려 담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그것은 일진의 극히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앞쪽 뜰 안 통 로에서 세 명의 흑의의 무사가 돌아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들 세 명의 무사는 뜰 안을 순시하고 있는 듯 순서대로 줄을 지어 질서 있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허리에 단검을 차고 있었다. 창졸간에 이런 상황을 피한 안색이 누런 소년 몽천악은 내심 자신도 모르 게 깜짝 놀라며 몸을 숨긴 채 생각에 잠겼다. '음, 이상하다. 무림 맹주부가 어째서 오늘따라 이렇듯 경계가 삼엄한 것 일까? 그전에는 이렇게까지 경계가 심하지는 않았는데 웬 까닭일까?' 갑자기 몽천악은 낮에 대문 입구에서 무사가 자신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을 금지시켰던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렇게 되자 몽천악의 마음에는 한 가지 의심이 생겼다. 그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사부님은 생전에 강호에 혁혁한 명성을 떨치셨고 천하에 그 위세를 날리 다가 마침내는 중원 무림의 제이십구대 무림 맹주 자리에 앉은 분이다. 그러니 그분이 작고하셨으면 마땅히 천하무림 동료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영전을 참배케 해야 옳거늘, 어째서 부첩을 가져야만 이 문상을 할 수 있 단 말인가?' 그의 이러한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연 세 명의 무사 중에 한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강(阿强)형, 호맹주님게서 돌아가신 후부터 무려 사십 구일 동안 이토 록 경계가 삼엄한데, 이런 처사는 무슨 까닭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 다." 그들 중의 다른 한 사람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받았다. "흥, 말이 사십구 일이지 그게 어디 짧은 날인가? 그 동안 우리들만 죽어 났지 뭔가! 만약 호맹주께서 생전에 우리들을 잘 대해 주신 것만 아니었 다면....... 제기랄, 나는 그 치령회의 등신 같은 놈들을 실컷 욕했을 것이다." 방금 전 아강형이라고 불렸던 무사는 세 사람 중에서 제일 위인 것 같았 다. 그는 빠른 말투로 나직이 외쳤다. "쓸데없이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라. 너희들이 무얼 안다고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듣자 하니 맹주님의 말 오룡신구가 맹주님의 돌아가신 소식을 전하고 스스로 돌사자에 머리를 부딪쳐 죽은 뒤부터 무림 맹주부에 손님 으로 왔던 다섯 분의 무림고수들도 잇따라 원인 모르게 갑작스런 죽음을 당했다는 거야......." 말소리가 그들의 멀어져 가는 발걸음 소리에 따라 사라져 버렸다. 한데 이러한 말을 암중에 듣고 있던 소년 서생 몽천악은 내심 커다란 놀 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때 그는 무림 맹주부가 어째서 이렇듯 긴장에 싸여 있으며 경계가 유난 히 삼엄한지 그 까닭을 짐작했다. 원래 그는 맹주의 죽음이 단순한 병환 때문인 줄 알았었다. 지금 이들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라, 무슨 내막이 있는 듯싶 었다. '그럼 그분께서는 십중팔구 피살당하신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철장건곤권(鐵掌乾坤圈) 호창부(胡滄夫)는 그 이름이 천하에 알려진 바이 거니와 현재 무림에서 중천에 뜬 찬란한 태양과 같이 불사조에 가까운 명 성을 떨치고 있었다. 명성이 천하에 자자한 그분의 무공 조예로 말할 것 같으면 비록 혼자서 천하를 완전히 한 손에 놓고 군림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강호 무림에서 그의 적수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그의 한 쌍의 철장(鐵掌)과 신출귀몰할 정도의 무상한 위력을 지닌 건곤권은 절대적일 뿐더러 그것을 당해 낼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 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었다. 갑자기 다리가 불구인 소년 서생 몽천악은 짜증스런 기색을 나타냈다. "삭!" 그가 가벼운 소리를 내며 양손은 떨치자 그의 몸은 마치 하늘을 나는 새 처럼 날쌔고 절묘하게 연이어 있는 뜰 안을 향해 소리 없이 날아갔다. 그의 기억력은 남달리 뛰어났으므로 지금도 무림 맹주부의 어느 길 어느 화석초목(花石草木)이라도 눈을 감고 능히 그려낼 수 있었다. 칠 년, 그가 이곳을 떠난 지 벌써 칠 년째 접어든 것이다. 이때 무림 맹주부는 경계가 몹시 삼엄하여 거의 세 걸음마다 보초가 한 명 있고, 다섯 걸음마다 초소가 하나씩 있었다. 게다가 달과 별이 구름 뒤로 숨어 버린 어둠침침한 밤인지라 사물을 분간 하기에 퍽 힘이 들었다. 그러나 사람으로 하여금 거의 믿기 어려울 정도의 고명한 경공신법을 발 휘하여 잠입한 몽천악은 이런 황궁 안과도 같은 엄밀한 경계를 쉽사리 피 해 갈 수 있었다. 한 줄기 연기와도 같이 몽천악은 소리 없이 한 채의 따로 떨어진 대청당 앞에서 멈추었다. 때는 자시 무렵. 주위는 죽은 듯이 고요했으며 모든 생물은 깊은 잠속에 빠져 있었다. 다 만 이따금씩 가벼운 밤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소리는 마치 귀신이 흐느끼고 짐승이 우는 소리를 연상케 할 만큼 귀에 거슬리고 음산하였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하얀 깃발과 등불을 흔들리게 하여 한참씩 주위가 어두워지곤 했다. 그러나, 이때 청당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곱 개의 휘황찬란한 기름 등이 밝혀져 있어서 이 시각에도 역시 대낮같이 밝았다. 청당에는 엷은 노란 색등 빛이 모든 경물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그런 가 운데 갖가지 조화(造花) 꽃바구니가 대문 돌계단 밖까지 늘어져 있었다. 또한 흰 천에 검은 색으로 글씨를 써넣은 조기가 청당의 모퉁이마다 둘러 져 있었다. 청당의 제일 뒤에는 하얀 실이 쳐진 영당(靈堂)이 있었고 한가운데에 영 패(靈牌)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호공창부신위(胡公滄夫神位)란 여섯 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벽에는 한 폭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풀썩!" 하는 소리와 함께 몽천악은 황동(黃銅) 향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샘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가볍게 경련 하듯이 몸을 떨고 있는 그는 크게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소리 없는 슬픔의 아픔은 오히려 목놓아 우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것이 아닐까. 순간 지난 일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며 떠올랐다. 십칠 년 전, 어느 눈보라가 모질게 몰아치는 밤, 그는 꽝꽝 얼어붙은 개봉 거리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견디다 못해 거의 숨이 가물가물 넘어갈 지경 에 놓여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한 신선 같은 사람이 건장한 말을 타고 하늘에서 내 려온 듯 자기의 꺼져 가는 목숨 한 가닥을 구해 주는 꿈에 잠기며 의식을 잃었다. 그 뒤, 과연 그는 신선 같은 사람에게 구함을 받았으며 더욱이 삼 년 후 에는 천운으로 그분의 맨 마지막 제자로 거두어들임을 받았다. 그후, 지난날의 모질고 사나운 운명의 장난을 씻어 버리고 이 신선 같은 노인의 사랑과 배움을 받으며 잃었던 인정애와 따스함을 맛보았던 것이 다. 여기까지 기억을 더듬던 몽천악은 고개를 들어 영당 안의 벽에 명추천고 (名秋千古), 음용완재(音容宛在) 등 글을 보았다. "사부님!" 그는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해 나직이 외치더니 별안간 몸을 포탄처럼 날려 영당 신위를 향해 떨쳐 갔다. "사부님!" 다시 한번 외치며 그는 두 손으로 신주목패(神主木牌)를 부둥켜안고 나직 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 못난 몽천악은 만 번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사부님, 비록 사부님 께서는 오래 전에 저를 사문에서 축출하셨지만 저는 사부님의 십 년 동안 의 바다와 같은 넓고 깊은 은혜를 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사부님, 저는 축출당한 후 다시 돌아와 사부님께서 다시 저의 입문(入門)을 허락해 주 시기를 간청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사부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시고 그것을 허락해 주시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가 없게 됐으니 이게 어인 일입니까? 결국 저는 영원히 사문에서 축출된 죄인으로 끝나고 마 는군요, 사부님......." 목이 메이고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자꾸 북받쳐 올라 말소리가 제대로 나 오지 않았다. 거의 흐느낌에 가까운 그 말소리에 흐르는 깊은 정과 처량함은 아무도 없 는 밤 공기만을 울리며 더욱 적막히 퍼져 나갔다. 이렇게 몽천악이 비통함을 금치 못하여 흐느끼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짧은 한숨 소리가 들려 왔다. 그 한숨 소리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몽천악은 그 뜻밖의 소리에 마치 꿈에서 놀라 깨어나듯이 고개를 돌리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어느 사이엔지 청당 안에 회의를 입은 노승 한 분이 들어와 있었다. 그 노승은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에는 염주를 들고 있었는데 엄숙한 표 정을 하고 입 속으로 불경을 외우고 있었다. 몽천악은 회의 노승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는 내심 흠칫 놀라며 생각했다. '이분 노승은 소림 신승 고라선사가 아니신가?' 소림 신승 고라선사는 바로 소림파의 현 장문인의 사백이었다. 배분을 논 하자면 오늘날 무림에서 몇몇 남지 않은 노선배 중의 한 분이라 할 수 있 으니 상당히 높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몽천악은 칠 년 전 자기가 사문에서 축출되기 전에 훨씬 고라화상이 소실 봉에서 폐관을 하고 강호의 속된 일에 상관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는 그러한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까 닭으로 오늘 고라화상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커다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고라화상은 눈을 감고 한동안 불경을 외우더 니 갑자기 눈을 떴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몽천악을 쏘아보더니 불호를 외우며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시주께서 호맹주의 영전을 참배하는 것은 가히 진정한 마음의 흐름이라 할 수 있는 만큼 저승에 계신 호맹주의 영혼이 아시면 매우 흐뭇해 할 거요. 그러나, 지나친 비통함은 마음과 몸을 상하게 함으 로 시주께선 이만 눈물을 거두는게 좋겠소." 이와 같은 말은 고라화상이 몽천악의 지나친 비통이 진원(眞元)을 손상케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몽천악은 공손하게 고라화상을 향해 인사를 하며 말했다. "선사님의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고라화상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묻겠는데 시주는 작고하신 호맹주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몽천악은 내심 움찔했으나 곧 사실대로 대답했다. "후배는 일찍이 호맹주님의 구원을 받아 목숨을 건진 일이 있습니다. 은 혜가 죽은 목숨을 재생시킨 것과 같고 또한 베푸신 인정이 바다와 같이 깊은 바 있습니다. 오늘 은인께서 작고하셨다는 말을 들었사온데, 크나큰 은혜를 갚지 못하였기에 비통함을 억제할 길이 없사옵니다." 고라화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미 작고하신 호맹주께서는 일생 동안 협의를 행하셨을 뿐아니라 무림 의 평화를 위해 큰 공을 세운 바 있어 공력이 무량한 거야. 그런 분이 작 고하셨으니 무림의 영재를 잃었음은 물론 그 슬픔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 니네. 아! 시주의 그와 같은 마음은 호맹주의 영혼을 위로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하고 말하며 노승은 탄식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