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Jordan) 등반기 (월간산 2003.10)
Camel, Red sand, Moon light and Bedouin .....
(낙타, 붉은 모래, 달빛 그리고 베드윈.... )
모래에서 태어나 모래로 돌아간다고 믿는 그들(베드윈)은 사막에서 잠을 자며 유목생활을 한다. 36세의 맑은 영혼을 가진 Sabbah(사바)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가장이지만 늘 베드윈 텐트에서 잠을 자고 등반 가이드를 하며 생계를 꾸린다.
살아온 동안 내가 본 것 중 가장 선명하고 아름다운 달빛 아래서 모래로 라마단을 그리며 두 번째 아내가 되어 달라고 수줍게 말하는 그를 보며 이전에 전혀 느끼지 못했던 평온함을 주는 이곳에 차라리 머물러 버릴까 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동안 했다. 짧은 만남은 이별을 예고하고, 이별은 긴 슬픔을 남긴다.
신기루 나타나듯 바위산 치솟아
온 몸 저리게 쓸쓸했던 기억만을 남긴 유럽에서의 지난 여름...
내 방에 돌아와 일주일동안 핸드폰도 켜지 않고 지친 몸을 추스리려 애쓰고 있을 때 프랑스에 살고있는 일본인 사진작가인 가주히로 치바(Kazuhiro chiba)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막에서 등반하는 멋진 계획을 세웠는데 함께 동행할 수 있겠냐는...
물론 경비는 요르단(Jordan)의 관광부(Ministry of Tourism)에서 부담할거고 내 역할은 그곳의 멋진 암벽을 한국에 알리는 조건이었다.
난 망설이지 않았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등반을 하며 나의 삶에 유의미한 무늬들을 그려 넣는 생활이 이젠 익숙해져 있기에...
동행남녀는 미국인 제레미와 멜리사 일본의 사진작가인 가주히로, 그리고 일본 여성클라이머 유카 시부야.
이번 여행의 시초는 스위스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제레미가 6년째 수학중인 요르단 왕족을 꼬드기면서 시작됐다. 제레미는 사진작가인 가주에게 연락했고, 가주는 아시아 최고(?)의 여성 클라이머들(그의 말에 의하면)을 섭외함으로써 우리는 한 팀이 될 수 있었다. 술좌석에서 우연히 시작된 대화가 결국 현실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일본에서 아시안참피언쉽이 끝난 후 유카 시부야와 동행하여 새벽 1시경에 요르단의 암만에 도착하였다. 늦었지만 미리 와 있던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막에서의 멋진 등반을 그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요르단 최고의 여행사인 디스커버리 소속의 4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26년 경력의 가이드인 가지(Kaji)를 소개 받았다.
유명한 유적지인 페트라(Petra)를 구경하고 호텔라운지에 앉아 식사를 하며 요르단 정부가 클라이머들을 초대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등반 뿐만 아니라 서로를 알게 된 것에 더욱 의미가 있다며 레드와인에 물든 붉은 잔을 부딪히며 서로가 환호했다.
중동지역의 사막에서 유일하게 암벽이 있다는 와디람(Wadi Lam) 마을,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잠깐 들러 낙타 또는 차(사륜구동)를 이용하여 사막을 둘러본다.
해질녁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걷는 기분도 꽤 운치 있을 것이다.
페트라(Petra)에서 와디람(Wadi Lam)으로 가는 King road 도로 양쪽은 황량한 사막이었다. 이 사막에 과연 암벽이 존재할까 싶었다. 목적지에 다가가니 목마른 사막에 오아시스의 신기루가 나타나듯 갑자기 암벽이 펼쳐졌다.
어둡기 전이므로 미리 대기중인 사륜구동 랜터카로 사막속의 암벽을 돌아보았다.
무수히 많은 바위들, 그 안의 크랙, 가끔씩 보이는 빛 바랜 슬링과 빛나는 볼트들...
그것들이 주는 생동감에 기분이 야릇해졌다.
레스트 하우스(Rest house)에서의 첫날 저녁은 적해(Red sea)에서 잡아온 1m 길이의 생선으로 만든 특별식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줄곧 이어지는 음주가무에 동행하며 새로운 세계속으로의 여행에 발을 들여 놓았다.
등반 첫날, 유카는 크랙만 보고도 프렌드의 크기를 짐작하며 챙기는 솜씨가 능숙했다.
17년 전 스무살의 어린 나이에 히말라야를 동경하며 당시 일본 최초의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자인 9살 연상의 클라이머와 결혼을 한 그녀는 이후 활발한 등반력을 과시하며 8,000m 4개봉을 알파인스타일로 정상에 올랐다. 1994년에는 초오유의 남서벽를 타에코 야마노이(Taeko Yamanoi)와 정상에 올라 세계에서 두 번째, 여성으로는 최초의 등정자가 된다.
156cm, 45kg의 체구로 요세미티의 빅월(Lurking fear, Nose, Zodiac-A3)를 혼자서 오르며 3박4일동안 해먹에서만 자기도 했고, A5의 고난도 루트인 Zenyatta Mondata를 현재의 남편과 등반을 했다.
오랜 경험의 클라이머답게 손가락이 기형에 가깝게 구부러져 있어도 아직 살아있어 행복하다며 미소짓는 모습이 울컥 나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녀의 많은 인생경험들을 들으며 참 멋진 사람과 같이 있어 행복했다.
7년 전에 만든 가이드북에 의하면 와디람에는 31개 구역에 500개 이상의 크랙등반과 멀티피치를 등반할 수 있는데 그 이후 많은 고난도의 자유등반 루트들이 유럽의 클라이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새로운 루트를 만들면 레스트하우스에 비치되어 있는 공책(new route book)에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그림들이 흥미로웠다.
매일 공책을 보며 오늘은 어떤 루트에 가볼까 상의하지만 결론은 늘 “가자! 어려운 루트로” 였다. 크랙등반은 유카가, 고난도의 자유등반은 필자가, 볼더링은 사진작가인 가주히로가 맡아 앞장섰다.
빅 블랙 월(big black wall)의 검은 바위는 다른 루트의 불안한 사암에 비해 퍽이나 단단해 보였다. 지난 4월 폴란드의 한 클라이머가 4마디의 5.12c에 해당하는 난이도로 볼트를 박았는데, 볼트거리가 매우 길었다. 아직 재등자가 없었으니 오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유카는 후등으로 올라와서는 “You are strong mental”하고 말한다. 많이 무서웠나 보다.
올해 두 번의 빅월 프리(5.13d)등반을 경험했던 나는 높은 곳에서의 추락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유카는 장비를, 나는 내 힘을 믿을 뿐이었다.
덥고 건조한 바람 한 점 없는 사막에서 시작된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던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매년 치르는 이 대회에서 우승자는 3시간 40분동안 맨발이었다. 그들의 초인간적인 힘과 정신력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거나 고통일 것이다.
다음날 아침, 희열에 찬 아침공기를 가르며 맨발로 조깅을 했다.
처음엔 밤사이 떨어진 기온으로 발이 시려웠지만 한시간을 달려보니 고운 붉은 모래가 참 부드럽다. 양말과 신발을 신으니 매우 갑갑한 것이 변덕스런 인간의 모습이었다.
요르단 타임즈의 신문기자인 무타즈(Mutaz)와 우리를 초청한 정부의 담당자인 가산(Ghassan)이 와서 아침식사를 같이하고 인터뷰를 했다. 클라이밍이라는 것도 처음보지만 여자가 저 까마득한 곳을 오를 수 있냐며 매우 신기해 한다.
그들은 하루종일 땡볕아래서 망원경으로 관찰하며 가끔씩 소리도 질러주며 응원해 주었다.
현지 가이드인 사바(Sabbah)는 외부사람들(클라이머)이 이 마을에 오기전인 1984년도까지는 사냥을 위해 암벽을 올랐다고 한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루트들을 확보물 없이 맨발로 올랐고,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초등했던 것이다.
그의 눈엔 처음 보는 쇳덩이들을 차고 오르는 클라이머들이 꽤 호사스런 모습으로 아니 이상한 사람들로 보였으리라.
등반 마지막날, 프랑스의 유명한 클라이머인 아누 프티(Anaund Petit)가 일년전 루트를 만들었고 역시 5.12c에 해당하는 난이도로 12마디에 해당하는 500m의 루트였다.
낮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열기에 온몸이 후끈 달아 올랐다.
4마디까지 등반을 한 후 내려와 숨도 안 쉬고 맥주 한잔을 들이켰다.
“목말랐던 삶의 행복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든다.
마을을 떠나던 날 아침을 먹는데 웬 동양인이 들어 오길래 우리는 내기를 했다. 일본인 아니면 한국인, 설마 한국인이 이곳에 까지 올까 싶었는데 내 예상은 뒤집혔다. 한국을 떠난 지 8개월만에 이 마을에 도착했다는 여행자는 10kg이 빠져 있어 뼈만 앙상했다. 만나자마자 이별이 다행이다. 정들면 헤어질 때 슬퍼질 테니 ..
레스트하우스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잠깐 들렀다 가는 관광객들과의 이별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또 언제 올거냐고 몇 번을 묻는다. “하비비(사랑해)”를 연뱔하며 따라다니던 지드(Gied), 낙타 한 마리 있다며 결혼하자던 사바(Sabbah), 매일 밤 기타 비슷한 전통악기 연주법을 자상하게 가르쳐 주던 에드(Eid)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보이는 곳 모두 암벽과 모래뿐인 척박한 땅에서 간간이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그들에게는 늘 이별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만남은 순간이지만 추억은 영원하다.
인간의 뿌리가 시작되었을 것 같은 그 덥고 건조한 기후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어떤 강한 이끌림 그리고 낮설지 않은 인상들...
나에게는 예상치 않았던 보너스를 받은 것 같은 흥분의 시간들이었다.
<다양한 등반 즐길 수 있는 사막 암장 INFORMATION>
Jordan Wadi Ram의 암벽등반은 여러 분야(크랙등반, 멀티피치, 스포츠클라이밍, 볼더 링)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등반적기 : 10월부터 4월(한 여름에는 40도에 육박하므로 등반 불가)
- 암만(퀸 알리아 공항)에서 와디람 마을까지 차로 3시간 30분,
택시(40JD(조르단 디나르) 72,000원-4명 가능)
- 볼만한 곳 : 페트라, 제라쉬+dead sea, 아카바+red sea
- 텐트사용+아침+저녁 포함 : 13JD(20,000원) → Rest house
주변에 음식점이 많고 텐트를 가져가면 아침1JD(1,800원) 저녁2JD(3,600원)
- 주의할 사항 : 카메라(작은 모래가 카메라 내부에 침투 가능),
로프 주의(반드시 Rope Sheet 준비 요망)
- 가이드 북 : 1985년부터 1997년까지 업데이트된 루트들이 약 400여개가 있고 그 이후
(25JD) 새로운 루트들의 개념도가 와디람 마을의 레스트 하우스에 비치되어 있다.
프랑스의 클라이머(Philippe Brass, Wilfried Colonna)가 올해 가이드북를 만들 예정으로 현지에 머물고 있다.
- Rest house : www.Hillawiservices.com
- 현지가이드 : Sabbah Eid(sabbah_alzlpeh@yahoo.com), Sabbah Ate가 있으며 쉬운 루트 엔 1인 40-50JD, 어려운 루트엔 100JD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