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 해설
가 도(賈島) : 779~843. 중국 당(唐)나라 말기의 시인, 하북(河北) 출생. 출가(出家)했으나 한유(韓愈)를 만나 환속. 지방 하급관리로 일생을 마침. 이른바 퇴고(推敲)의 고사(故事)를 낳음. 「장강집(長江集)」 10권이 있음.
강경애(姜敬愛) : 1907~1943. 여류소설가. 황해도 장연 출생. 1931년. 잡지 「혜성(彗星)」에 장편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옴. 1932년 간도로 이주, 단편 「지하촌」 「해고」 「원고료 이백원」 「어둠」, 중편 「소금」 등 발표. 동아일보에 장편 「인간문제」 연재.
길 재(吉再) : 1353~1419. 고려말의 학자. 삼은(三隱)의 한 사람,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 성리학을 배움. 성균관 박사를 지냄. 조선왕조에서 벼슬하기를 거부하고 후학 교육에 전념. 문집으로 「야은집(冶隱集)」이 있고, 「회고가(懷古歌)」라는 시조 한 수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함.
김기림(金起林) : 1908~ ?. 시인, 비평가. 호 편석촌(片石村), 함북 성진 출생.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문학예술과를 거쳐 도우후꾸제대(東北帝大) 영문과 졸업, '9인회' 회원으로 활동,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역임, 6·25 당시 납북, 시집 「기상도(氣象圖)」 「바다와 나비」 「새노래」, 수필집 「바다와 육체」, 저서로 「문학개론」 「시론」 「시의 이해」 등이 있음.
김기진(金基鎭) : 1903~1980. 평론가, 소설가, 호 팔봉(八峰), 충북 청원 출생. 일본 릿교대학(立敎大學) 영문학부 중퇴. 신극운동단체 '토월회(土月會)' 조직, 백조(白湖) 동인으로 활동, 신경향파운동의 선도자로 프로문학운동을 전개. 박영희와 프로문학이론 논쟁을 벌임. 매일신보, 시대일보, 조선일보 기자. 독립기금 반입으로 체포되어 투옥, 6·25 당시 인민재판에서 사형선고 받음. 경향신문 주필 역임. 단편 「붉은 쥐」, 평론 「클라르테운동의 체계화」 등이 있음.
김동인(金東仁) : 1900~1951. 소설가. 호 금동(琴童), 평양 출생. 일본메이지(明治) 학원 중학부를 거쳐 가와바따화숙(川端畵塾)에서 수업. 주요한, 전영택, 김환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순문예동인지 「창조(創造)」 발간, 신문학사상 본격문학의 선구적인 소설가로서 주로 예술지상주의적 경향. 단편 「배따라기」 「감자」, 장편역사소설 「운현궁의 봄」 「대수양」, 평론에 「조선근대소설고」 「춘원 연구」 등이 있음.
김두봉(金科奉) : 1890~ ?. 국어학자. 경남 기장 출생, 주시경의 제자로 교육계에 종사, 3·1운동 때 상해 망명, 임시정부에 참여, 1940년 연안에 가 독립동맹에 가담, 주석 지냄. 해방 후 북로당에서 활동. 저서로는 「깁더 조선말본」이 있음.
김상용(金尙鎔) : 1902~1950. 시인, 호는 월파(月坡), 경기도 연천 출생. 보성고보, 일본 릿교대학(立敎大學) 졸업. 이화여전 교수, 강원도 지사, 공보처(公報處) 고문, 「코리아 타임스」 사장 등을 역임. 유일한 시집 「망향(望鄕)」이 있음.
김성탄 (金聖數) : ? ~1661. 비평가, 이름은 인서(人瑞). 성탄(聖歎)은 자(字), 중국 청나라 시대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 사람, 재기 있고 활달한 성격으로 전통에 구애됨이 없이 비평, 대개 분방한 인상(印象) 비평이긴 하나 인물의 성격과 작품 구성을 논하면서 자신의 인생관, 사회비평도 했음. 중국 근대 문예평론가의 효시.
김소월(金素月) : 1902~1934. 시인, 본명 정식(延邊), 소월은 아호, 평북 확산 출생. 오산중학에 입학, 스승 김억(金億)의 영향으로 시를 쓰기 시작, 김억의 주선으로 처녀작 「진달래꽃」 등을 「개벽」에 발표, 문예지 「영대(靈臺)」 동인, 동아일보 지국을 경영했으며, 갖가지 사업에 실패, 아편을 먹고 자살, 전통적인 민중정서에 기반을 둔 민요풍의 작품을 노래. 시집 「진달래꽃」이 있음.
김 억(金億) : 1893 ~ ?. 시인, 호 안서(岸曙), 평북 곽산 출생. 오산학교를 거쳐 일본 케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 중퇴. 오산중학교원, 평양 숭덕학교 교원, 동아일보 기자, 경성중앙방송국 차장 등을 역임. 프랑스 상징주의 시운동을 주로 소개. 6·25때 납북. 시집 「해파리의 노래」 「안서시집」,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 등이 있음.
김용준(金瑢俊) : 경북 선산 출생. 화가. 미술평론가, 호는 근원(近園). 서울대 미대 교수 역임. 「문장」 「학풍」에 평론과 수필 발표.
김유정(金裕貞) : 1908~1937. 소설가. 춘천 출생. 연희전문 문과 중퇴. 계몽적 이상주의나 피상적인 농민문학이 아닌, 당시의 농촌과 서민·농민의 현실과 애환을 심도있게 그린 작품을 발표함. 작품집 동백꽃을 비롯, 단편 「봄 봄」 「형(兄)」 「두꺼비」 「정조」 「산골나그네」 「땡볕」 「소나기」 등 30여 편을 남김.
김진섭(金晉燮) : 1903~ ?. 수필가. 독문학자. 호 청천(聽川), 전남 목포 출생. 호오세이 대학(法政大學) 독문학과 졸업, 손우성, 정인섭, 이하윤 등과 '해외문학연구회'를 조직하여 「해외문학」 창간. 윤백남, 홍해성, 유치진 등과 '극예술연구회' 조직. 6·25 당시 납 북, 수필집 「인생예찬(人生禮讚)」 「생활인의 철학」, 유작평론집 「청천수필 평론집」 등이 있음.
김황원(金黃元) : 1045~1117. 고려의 문신. 시인, 자는 천민(天民),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고 고시(古詩)에 이름을 날려 해동(海東) 제1인자라 일컬어짐. 예종 때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요나라에 가는 길에 대기근인 북부지방에서 주군(州郡)의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했음. 예부시랑, 한림학사, 첨서추밀원사를 역임. 문장에 있어서 정지상(鄭知常) 이전의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음.
나도향(羅稻香) : 1902~1926. 소설가. 본명 경손(慶孫), 호 도향, 빈(彬), 서울 출생, 배재학당 졸업, 경성의전 중퇴. 장편 「환희(幻戲)」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며 등단. 홍사용, 현진건, 이상화, 박 종화 등과 문예동인지 「백조(白潮)」 발간, 단편 「뽕」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등에서 사실주의적 작품 경향을 보임.
모윤숙(毛允淑) : 1910~. 여류시인, 호는 영운(嶺雲), 평북 안주(安州) 출생. 이화여전 영문과 졸업. 배화여고 교사, 「삼천리(三千里)」지 기자, 방송국원 등으로 일했고,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예술원 회원, 제7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 수필집 「내가 본 세상」, 시집 「빛나는 지역」 「풍랑」 「포도원」 등이 있음.
문일평(文一平) : 1888~1939. 언론인, 사학자, 평북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정치학부 중퇴. 중동·중앙·배재·송도 중학에서 교편을 잡았고, 중외일보(中外日報)기자, 조선일보 편집고문 역임. 국사 연구에 정진하여 많은 논문을 발표함. 저서로 「호암전집(湖巖全集)」 「조선사혼(朝鮮史魂)」이 있음.
민태원(閔泰瑗) : 1894~1935. 소설가. 번역문학가, 언론인, 충남 서산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졸업. 동아일보 사회부장, 조선일보, 중외일보 편집국장을 역임. 빅또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애사(哀史)」란 제목으로, 엑또르 말로의 「집없는 아이를」 「부평초」로 번안함. 「무쇠탈」「서유기」 등의 번안소설과 저서로 「갑신정변과 김옥균」이 있고, 단편 「어느 소녀」 등을 발표.
박영희(朴英熙) : 1901 ~ ?. 시인, 소설가. 배재고보, 도교, 세이소꾸 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 수학. 「장미촌」 「신청년」 「백조」 동인으로 활약, 탐미적 낭만주의 시 발표, 1925년 「개벽」지에 「사냥개」를 발표하면서 신경향파 운동을 선도함. 김기진 등과 KAPF 조직. '신간회' 결성에 참가. 6·25 당시 납북. 시집 「회월시초」와 「문예 비평론」 「투쟁기에 있는 문예비평가의 태도」 등 프로문학에 관한 많은 평론이 있음.
박종화(朴鍾和) : 1901~1981. 시인, 소설가, 호 월탄(月灘). 서울 출생, 한학수업 및 휘문의숙(徽文義塾) 졸업, 문학동인지 「문우(文友)」를 발간하면서 문학수업. 「백조(白潮)」 동인, 서울신문 사장, 동국대·연세대·서울대 강사, 성균관대 교수 역임, 예술원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 지냄. 시집 「흑방비곡(黑房秘曲)」, 역사소설 「금삼의 피」 「다정불심(多情佛心)」 「임진왜란」 등이 있음.
박태원 (朴泰遠) : 1909~1986. 소설가. 호 구보(仇甫), 서울 출생. 일본호오세이대학(法政大學) 중퇴. 이태준, 이효석, 이무영 등과 '9인회'를 조직하여 예술파적 소설을 지향, 시정적(市井的) 소시민 사회의 현실을 자연주의적 시선으로 묘사, 6·25때 월북, 단편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장편 「천변풍경(川邊風景)」 등이 있음.
방정환(方定煥) : 1899~1931. 아동문학가, 호는 소파(小波), 서울 출생. 보성전문, 토오요오대학(東洋大學)에서 수학, '색동회' '소년 연합회'를 조직, 소년운동을 전개하여 한국 소년운동사에 큰 업적을 남김. 「형제별」 「가을밤」 등 동시와 「마음의 꽃」 「이상한 샘물」 등의 번안 작품이 있음. 사후 「소파전집」 「방정환 아동문학독본」 「소파아동문학전집」 등이 발간됨.
백 철(白鐵) : 1908~1985. 평론가. 본명은 세철(世哲), 평북 의주 출생, KAPF의 중앙위원으로 인간묘사시대를 발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도식적 측면을 비평, 카프 검거사건에 연좌, 수감. 해방 후 교육계에 투신, 서울여자사대·동국대·서울대·중앙대 등에서 강의, 유일한 중편소설 「전망」을 비롯, 주요 저서로 「조선 신문학사조사」 「문학개론」 「한국문학이론」 등 다수가 있음.
변영로(卞榮魯) : 1898~1961. 시인, 영문학자, 호는 수주(樹州). 서울 출생. 캘리포니아주 산토세대학 졸업. 이화여전 교수, 동아일보사 재직, 해방 후 해군사관학교 교관, 대한공론사 이사장, 펜클럽 한국본부 초대위원장 역임. 술과 해학과 민족애, 저항으로 일관, 저서로 시집 「조선의 마음」 외에 「수주수상록」 등이 있음.
신 위(申緯) : 1769~1847. 조선시대 문관, 시인, 자하(紫霞)는 호, 시(詩)·서(書)·화(畵)로 이름이 높았고, 벼슬은 이조참판에 이름. 저서에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 「동인론시절구삼십오수(東人論詩絶句三十五首)」가 있으며, 「대동풍아(大東風雅)」에 시조한 수가 전함.
안재홍(安在鴻) : 1891~1965. 정치가, 독립운동가. 호는 민세(民世). 경기도 평택 출생. 와세다대학 정경과 졸업. '동제사(同濟社)'가입, 3·1운동 지휘, 국산품 장려운동, 신간회 총무, 임시정부와의 공작, 조선어학회 사건 등의 항일 독립운동으로 수차례 투옥됨. 조선일보사, 한성일보사 사장 역임. 해방 후 정치활동을 하였고, 6·25때 납북되어 평양에서 사망. 저서로 「한민족의 기본진로」 등이 있음.
안회남(安懷南) : 1910~ ?. 소설가. 평론가. 일명 안필승(安必承), 서울 출생. 휘문고보 졸업. 「개벽」지 사원으로 입사 후 약 10여 년간 창작생활에만 몰두,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하다 월북, 소설집 「안회남 단편집」 「대지는 부른다.」 「불」 「전원」 「봄이 오면」, 평론 「문예평론의 계급적 입장 문제」 「작가의식의 발전과 현실파악」 등이 있음.
양주동(梁柱東) : 1903~1976. 시인, 국문학자. 호 무애(无涯), 개성 출생, 중동학교(中東學校), 와세다대학 졸업, 유엽, 이장희, 백기 만 등과 시지 「금성(金星)」 발간. 「문예공론(文藝公論)」 발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 역임. 향가 해독 및 고려가요. 연구, 동 국대 교수 역임. 시집 「조선의 맥박」, 향가 연구서 「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 고려가요 연구서 「여요전주(麗謠箋注)」 등이 있음.
염상섭(張想涉) : 1897~1963. 소설가. 호 횡보(橫步), 서울 출생. 일본케이오오대학(慶應大學) 재학중 3·1운동으로 투옥, 중퇴. 동아일보 기자. 「폐허(廢墟)」 동인으로 신문학운동을 전개, 만선일보(滿鮮日報), 경향신문 편집국장 역임. 서라벌예대학장 등을 지냄, 예술원 초대, 종신회원,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 「양과자 갑」, 중편 「만세전(萬歲前)」, 장편 「삼대(三代)」 등이 있음.
유길준(兪吉濬) : 1857~1914. 개화파 정치가. 서울 출생. 9세에 한학을 공부, 일본 케이오오의숙(慶應義塾), 미국 덤마 아카데미 유학. 귀국한 후 개화당으로 몰려 구금되어 있는 동안 「서유견문(西遊見聞)」 집필, 갑오경장 때 참의, 김홍집 내각의 내부대신 지냄. 흥사단에 참여하고 국민경제회를 설립, 한성부민회장으로 추대됨. 계산학교를 설립하고 많은 저술을 남김.
유광렬(柳光烈) : 1898~1981. 언론인, 호는 종석(種石), 경기도 파주 출생. 독학으로 신학문을 익혀 1919년 매일신보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 평생을 논설과 컬럼 집필에 종사. 조선일보, 동아일보 기자및 한국일보 논설위원 역임.
유진오(兪鎭午) : 1906~1987. 소설가. 법학자. 호는 현민(玄民), 서울출생. 경성제대 법문학부 졸업. 이효석(李孝石)과 동반작가로서 프로문학에 심취, 빈민계층의 생활을 테마로 한 경향적(傾向的)인 작품을 발표, 해방 후 문단을 떠나 법학자로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하고, 초대 법제처장·고대총장·신민당당수·국정자문위원 등을 역임, 장편 「화상보(華想譜)」, 단편 「김강사와 T교수」 「여직공」 「귀향」 등이 있음.
이 개(李塏) : 1417~1456. 조선시대 문관, 사육신의 한 사람. 1436년(세종 18) 문과에 급제, 「명황계감(明皇戒鑑)」 편찬 및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 직제학(直提學)에 이름. 성삼문, 박팽년 등과 단종 복위를 꾀하다 죽음을 당함.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시조 한 수가 전함.
이광수(李光洙) : 1892~ ?. 소설가. 호 춘원(春園), 평북 정주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동경 유학생의 2·8독립선언서 기초 후 상해(上海)로 건너가 「독립신문」 주필, 귀국 후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언론활동,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안창호와 함께 투옥. 조선문인협회 회장 역임. 6·25때 납북, 단편 「어린 벗에게」 「무명(無明)」, 장편 「흙」 「무정」 「유정」 등 작품 다수.
이기영(李箕永) : 1896~1984. 소설가. 호 민촌(民村), 충남 아산 출생. 일본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 중퇴. KAPF 맹원(盟員)으로 활동, 1924년 「개벽(開闢)」 현상문예에 단편 「오빠의 비밀 편지」가 당선되어 등단, 해방 후 조선프롤레타리아 문학동맹 조직, 1945년 월북하여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조선문학예술총 동맹 위원장을 지냄. 대표작으로 단편 「민촌(民村)」, 장편 「고향(故鄕)」 「인간수업(人間修業)」 「신개지(新開地)」 등이 있음.
이병기(李秉岐) : 1891~1968. 국문학자. 시조시인, 호는 가람, 전북 익산 출생. 한성사범 졸업, 휘문고보 교사, 서울대학교 교수, 전북 대학교 문리과 학장 역임. 침체된 시조문학 부흥을 위해 「가람 시조집」 등을 발간. 「역대 시조선」 「한중록」 「의유당 일기」 「근조내간선」 「어우야담」 등을 간행, 해제하고 「국문학전사」 「국문학 개론」 등을 저술함.
이병도(李內素) : 1896 ~. 서울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 졸업. 서울대 문학박사. 미국 프린스턴 대학 명예박사. 서울대 교수·대학원장 역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교부장관, 학술원 회장 등 역임. 저서로 「한국사대관」 「한국사고대편」 「한국사중세편」 「고려시대 연구」 등이 있음.
이 상(李箱) : 1910~1937. 시인, 소설가. 본명 김해경(金海卿), 서울출생. 경성공고 건축과 졸업. 1931년 조선총독부 근무 당시 「조선과 건축」에 「이상한 가역반응」외 수편의 시를 발표, 퇴폐적이고 절망스런 생활 속에서 난해하고 자의식적인 작품들을 발표. 시 「오감도(烏瞰圖)」, 단편 「날개」 등 80여 편의 작품이 있음.
이선희(李善熙) : 1911~?, 여류소설가, 원산 출생. 단편 「계산서」로 등단. 신문사, 잡지사 기자로 재직하면서 「탕자」 「매소부(賣笑婦)」 등을 발표, 해방 이후에는 거의 작품 활동이 없었으며, 고향에서 죽었다고 전함. 주관적인 감정이 없이 객관적 사실성을 살린 작품을 썼음. 그 밖의 작품으로 「여인 명령」 「오후」 「열한시」 등이 있음.
이여성(李如星) : 1901 ~ ?. 대구 출생. 중앙고보 졸업. 김원봉(약산), 김약수 등과 함께 만주로 가 독립운동 계획, 3·1운동 때 돌아와 운동 조직, 이로 인해 3년간 투옥생활, 일본으로 건너가 릿교대학 정경과 나옴. 1930년 귀국, 조선·동아일보 편집 차장 역임. 여운형의 건국동맹에 참여, 이후 건국준비위원회에도 참여, 월북, 김일성 대학 교수 지냄. 저서로 「숫자조선연구」(5권, 김세영공편), 「복식사」 「미술사」 등이 있음.
이원조(李源朝) : 1909~ ?. 평론가. 시인. 호 백목아(柏木兒) 또는 여천(黎泉), 경북 안동 출생. 대구 교남학교를 거쳐 일본 호오세이 대학 불문과 졸업. 조선일보 기자, 대동출판사 주간 등을 역임. 해방직후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 활동하다가 월북. 시 「나의 어머니」 「오월의 노래」가 있으며,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문제」 「민족문화 발전의 개관」 「민족문화건설과 유산계승에 관하여」 외 많은 평론이 있음.
이은상(李殷相) : 1903~1982. 시조시인, 호는 노산(鷺山), 경남 마산출생. 연희전문 문과, 와세다대학 문학부 수학.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복역, 이충무공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시조작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 「노산시조집」 「피어린 육백리」 등의 저서가 있음.
이중환(李重煥) : 1690~?. 이조 영조 때의 실학자. 자는 휘조(輝祖),호는 청담(淸潭),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역임. 이익(李瀷)의 학풍을 계승·선양하여 인문지리학의 선구자로서 활약했고, 영조 2년(1726)에 백망(白望) 사건과 관련되어 절도(絶島)에 귀양감. 저서로 「택리지(擇里志)」가 있음.
이효석(李孝石) : 1907~1942. 소설가. 강원도 평창 출생. 경성제대 법문학부 영문과 졸업.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봄」이 입선하여 등단, 경향적인 작품 발표. 총독부 검열계, 경성농업학교 교사, 9인회 회원,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를 역임. 단편 「메밀꽃 필 무렵」 「산」 「돈(豚)」, 장편 「화분」 「벽공무한(碧空無限)」 등이 있음.
이희승(李熙昇) : 1896~, 국어학자. 호 일석(一石), 경기도 개풍 출생.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 졸업.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련, 검거되어 일제말까지 복역.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장, 동아일보사 사장, 대구대학 대학원장, 성균관대학 대학원장, 학술원 부회장을 역임. 저서로 「국어대사전」 「국문학연구초」 등이 있음.
정인보(鄭寅普) : 1892 ~ ?. 사학자, 시조시인, 호는 위당(爲堂), 서울출생. 6·25때 납북, 한학과 동양학을 수학하여 연희전문·이화여전·세브란스의전 등에서 동양학 강의, 신규식(申圭植) 등과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벌였고, 「시대일보」 「동아일보」 등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민족정신 고취에 힘씀. 저서로 「담원(薝園)시조집」 「조선사연구」 「담원문록」 「조선문학원류고」 등이 있음.
정인섭(鄭寅燮) : 1905~. 평론가. 영문학자. 호 눈솔, 경남 울주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 졸업. 재학 중 방정환, 조좌호, 마해송, 윤극영등과 색동회 발기. 동인지 「어린이」에 동시, 동극, 동화 발표. 김진섭, 이하윤, 손우성 등과 해외문학연구회 조직, 연희전문 교수로 있으면서 한글학회 회원, 극예술연구회 동인, 한국민속학회 회원 등 다방면에 활약, 서울대 교수, 펜클럽 한국본부 위원장 역임. 평론 「한국문단 논고」, 수필 「애란기행」 「애급의 여수」, 아동극 「오뚜기」 등이 있음.
정인택(鄭人澤) : 1909 ~ ?. 소설가, 평론가, 서울 출생. 매일신보 학예부, 문장사(文章社) 기자 역임. 1936년 「중앙(中央)」에 「촉루(觸樓)」를 발표하면서 등단, 소설 「나그네 두 사람」 「눈보라」 「향수」, 평론 「동경에서 본 조선문단에 주는 글」 「문예시평」 등이 있음.
정지용(鄭芝溶) : 1903~ ?. 시인, 충북 옥천 출생. 일본 도오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 졸업, 이화여전 문과 교수, 경향신문 편집국장 역임. 「시문학」 동인으로 참가, 고전적 서정시와 모더니즘적인 시편 창작,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가담. 6·25당시 납북, 사망한 것으로 알려짐. 시집으로 「정지용시집」 「백록담」과 「문학독본(文學讀本)」 「산문(散文)」 등의 저술이 있음.
조윤제 (趙潤濟) : 1904 ~ 1978. 국문학자. 호 도남(陶南), 경북 예천 출생.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 졸업. 일제 때 경성사범학교 조선어 과에서 강의, 해방 후 서울대, 성균관대 교수 역임. 민족사관의 입장으로 일제 관학파의 제국주의적 실증주의를 극복하고자 했으 며 손진태, 이인영, 이병도와 함께 진단학회(震檀學會) 조직, 저서 「조선시가사강(朝鮮詩歌史綱)」 「국문학사」 「한국문학사」 등 간행.
주요섭(朱耀燮) : 1902~1972. 소설가. 호 여심(餘心), 평양 출생. 미국스탠포드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신동아」 창간 주간, 북경 보인 대학(輔仁大學), 경희대 영문과 교수 역임. 김동인과 함께 등사판으로 「독립신문」을 발간하다 복역, 단편 「추운 밤」을 「개벽」에 발표하면서 등단. 빈민층의 삶을 리얼한 휴머니즘의 수법으로 묘사. 대표작으로 「인력거꾼」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이 있음.
채만식(蔡萬植) : 1902~1950. 소설가, 호는 백릉(白菱), 전북 옥구 출생. 중앙고보 졸업, 와세다대학 영문과 중퇴,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 잡지 「개벽」의 편집기자 역임. 작풍은 풍자적이고 비판 적임. 대표작 「탁류(濁流)」를 비롯 「태평천하」 「아름다운 새벽」 「금(金)의 정열」 등의 장편이 있고, 단편으로 「레디메이드 일생」 「논 이야기」 「맹순사」 등 다수가 있음.
최명익(崔明翊) : 1908~. 소설가. 평북 평양 출생. 중앙문단과 관계없이 평양을 중심으로 활약한 구연묵(具然默), 김화청(金化淸) 유항림(兪恒林) 등과 창작 동인지(同人誌) 「단층」에서 활동, 지식인계급의 불안의식을 표현하였으며 심리소설을 씀. 해방 직후 평양에서 활동, 작품집 「장삼이사(張三李四)」와 대표적 심리주의작품 「심문(心紋)」을 비롯, 「비오는 길」 「무성격자」 등이 있음.
최재서(崔載瑞) : 1908~1964. 영문학자. 평론가, 호 석경우(石耕牛), 황해도 해주 출생. 경성제대 영문과 졸업, 런던 대학 수료, 「영국 현대 소설의 동향」 「현대 주지주의 문학이론」 「비평과 과학」 등 주지주의의 소개 및 해설로 등장. I. A, 리처즈의 「시와 과학」을 소개하여 비평의 아카데미화를 우리 문학사상 처음 도입. 조선일보를 통해 평론, 좌담회, 단평 등으로 활약.
최정희(崔貞熙) : 1912~1988. 소설가, 함북 청진 출생. 숙명여고보, 중앙보육학교 졸업. 「삼천리(三千里)」의 여기자로 문필활동 시작. 초기작품의 세계는 자기고백, 폭로적이었으며, 해방 후에는 객관적, 사회적인 시대 풍경을 다룸, 강렬한 사회의식의 일관성이 6. 25를 기점으로 서정적 휴머니즘으로 변모, 대표작으로 단편 「인맥」 「지맥」 「천맥」과 장편 「인간사(人間史)」 등이 있음.
최학송(崔鶴松) : 1901~1932. 소설가. 호 서해(曙海), 함북 성진 출생. 궁핍한 유년과 간도에서의 유랑생활 체험, 1924년 「조선문단」에 「고국(故國)」을 발표하면서 문학 활동 시작. 조선문단사에 입사하여 신경향파 작가로서 체험적인 작품들을 발표, 말년에 약물중독으로 병사 「탈출기(脫出記)」 「십삼원(拾參圓)」 「기아와 살육」 등 30여 편의 작품이 있음.
한설야(韓雪野) : 1902~ ?. 소설가. 본명은 병도(秉道), 함남 함주 출생. 함흥고보 졸업. 소설 「그날 밤」으로 등단. KAPF의 맹원으로 강경론자였음.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의 조직에 관여하다. 월북, 주로 농촌을 무대로 구성이 소박·강건한 작품이었으며, 계급사상에 투철, 필력이 강인하며 둔탁한 문체, 대표작 「탑(塔)」을 비롯, 「황혼」 「청춘기」 「초향」 등이 있음.
한 유(韓愈) : 768~824. 중국 당(唐)시대 문인, 호는 창려(昌黎),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학으로 진사(進士)에 급제, 사문박사(四門博士), 감찰어사(監察御史)를 역임. 불우한 관계(官界) 생활로 불평과 자조의 글을 씀. 법문사(法門寺)의 불타의 뼈를 궁중에 맞아들인 것을 간한 「불골(佛骨)을 논하는 표(表)」를 바쳐, 헌종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
현진건(玄鎭健) : 1900~1943. 소설가. 호는 빙허(憑虛), 일본 도교 세이조오중학(成城中學) 졸업. 「백조(白湖)빙 동인, 「빈처(貧妻)빙를 발표함으로써 등단, 시대일보,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1935년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사회부장직 사임, 실직 후 폭음으로 얻은 장결핵으로 사망. 단편 「빈처」 「술 권하는 사회」 「B사감과 러브레터」 「운수 좋은 날」, 장편 「적도」 등이 있음.
혜경궁 홍씨 : 1735~1815. 경의왕후(敬懿王后), 이조 장헌세자빈(嬪). 영의정 홍봉한의 딸, 정조의 어머니, 아버지와 삼촌이 외척이면서도 장헌세자 옥사 때 세자의 살해를 지지하는 입장에 있었던 까닭에 세자의 참담한 운명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처참한 운명을 겪음. 정조 즉위 후 궁호는 혜경(惠慶)에 오르고, 고종 때장헌세자가 장조(莊祖)로 추존됨에 따라 왕후에 추존됨.
호 적(胡適) : 1891~1962. 중국의 사상가, 교육가,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서 철학 전공, 재학중 잡지 「신청년(新靑年)」에 「문학개량추의(文學改良芻議)」를 실어 구어문학(口語文學)을 제창, 문학혁명의 도화선이 됨. 북경대학 교수로 5·4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함. 주미대사, 행정원 최고 고문, 북경대학 총장 등을 지냄. 저서 「사적 문학관념론(史的文學觀念論)」 「건설적 문화혁명론(建設的文化革命論)」 등이 있음.
홍기문(洪起文) : 1903~. 국어학자. 중국, 일본 유학. 조선일보 기자역임. 해방 직후 부친 홍명희를 따라 월북, 평론 「염상섭군의 반 동적 사상을 반박함」 「조선문학의 양의(兩義)」 「표준어 제정에 대하여」 「역사와 언어와의 관계」 「조선 역사학의 선구자인 신단재 학설의 비판」 「박연암의 예술과 사상」 「한 사람의 언어학도로서 문단인에 향한 제의」, 저서로 「정음발달사」가 있음.
홍명희(洪命熹) : 1888~1968. 작가, 정치가. 호 벽초(碧初). 충북 괴산출생. 일본 타이세이 중학(大成中學) 유학, 중국과 남양 등지를 방랑하며 문일평, 신채호, 정인보, 안재홍 등과 교우. 3·1운동 참여로 투옥됨.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대일보 사장 등 역임. 신간회 조직.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1948년 월북하여 북한에서 부수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냄. 장편역사소설로 「임꺽정(林巨正)」이 있음.
황진이(黃眞伊) : 생몰 연대 미상. 이조 중종 때의 명기. 본명 진(眞), 기명은 명월(明月), 아름다운 용모와 총명으로 명기로서 대성. 시서음률(詩書音律)이 뛰어나 문인·석유(碩儒)들과 교우, 서화담,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함. 전통적인 만족의 리듬으로 교방 여성들의 정한을 시조로 표상. 「청구영언」 「가곡원류」 「대동풍아(大東風雅)」 등에 작품이 전함. 시조 「만월대 회고시」 「박연폭포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