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6일 수요 책모임 <있으려나 서점> 10기 최현덕
감상글입니다.
글이 안 써져서. 점점점. ㅋ
그래도 제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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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있어 이런 서점
있으려나 서점 / 요시타케 신스케 / 온다 2018
어린이도서연구회 강동지회 최현덕(10기)
난 동네책방을 싫어한다. 책방지기와의 어색한 눈맞춤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은근히 낯을 가리는 나로서는 생면부지의 책방지기와 때때로 멋쩍게 웃어야 하는 것도 곤혹스럽다. 가장 힘든 점은, 내가 책을 고르는 과정을 모두 타인과 공유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 시간이 다소 어색하다. 그러나 어린이도서연구회 편집국원을 하면서,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동네책방 취재가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방지기가 무슨 책을 추천해 줄까 도착도 하기 전에 궁금하고, 책들이 어떻게 진열되어 있는지 궁금해하며, 서가에 꽂힌 책 하나하나에서조차 어떤 철학과 의도를 읽으려고 발버둥치기도 한다. 동네책방은 개인인 나한테는 너무나 사적인 공간이라서 그 안을 파고 드는 것이 쉽지 않은데, 기자라는 신분으로 철갑을 두르고 나면 다른 이의 내밀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동네책방보다는 대형서점, 그리고 도서관 파다. 누구의 도움이나 간섭도 없이 이책저책 뒤적거리다가 멍 해지는 순간을 사랑한다. 올해부터는 도서관 하나를 정해, 총서류 000번부터 훑어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책을 그 자리에서 읽고 오는 행위를 실행 중이다. 책을 사랑하는 행위라기 보다는 마치 넘쳐나는 시간 장판 무늬를 따라가보는 심정이랄까. 내 인생에 시간이라는 선물이 주어지고 나니 별별 취미활동의 호사를 누려보는 중이다. 나는 책 읽는 행위를 누군가와 만나 차 한잔 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는데, 2-3시간을 들여서 누군가의 삶에 빠져보는 티타임쯤. 애걸복걸해야 만날 수 있는 명사도 있고 그냥 옆집 이웃 같은 누구도 있다. 동네책방에서는 이런 티타임을 할 때 호스트의 존재가 너무 강해서 쭈뼛거리게 되는 것이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도 그래서인지 오히려 마음 준비를 하는 예열의 시간을 가진 후에야 펼쳤다. 작정을 하고 서점 이야기를 해 볼 것 같은 책이니 또 누군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설레면서도 곤혼스러웠다. 책 읽는 여우나 고양이, 쥐 등등 책에 대한 사랑이나 기발한 상상을 다룬 책은 흔하고 또 흔해져버려서, 오히려 그 식상함과 진부함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난 후 책과 만났다. 그런데 어라 재미있네. 기발하네. 역시 찬사를 받은 책 답게 경탄하게 되는 페이지가 많았다. 작가를 따라 책과 관련된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되기도 하며 킥킥 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좋아하게 되고, 또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보게 된 결정적인 장면은 마지막 페이지이다. 베스트셀러를 향한 작가의 욕망을 소소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책이 땅 위에 발을 직접 딛고 있는 느낌이었다. <결국 못하고 끝난 일>을 읽었을 때는 작가와 좀 더 친해진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의 독서 인생을, 아니 지난해의 독서 행태를 잔잔히 돌아보게 된 기회를 갖게 된 점이 가장 고마웠다. 이번 티 타임 성공적!
어디선가 읽었는데, 작가는 재미있는 장면이 떠오르거나 목격을 하면 기록해 두는 노트가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남다른 상상력에 대해 궁금해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 노트 기록을 분류하고 정리해서 책으로 내는 것일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갑자기 경이로운 생각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모은 성실함과 도전의 산물이 그의 창조성으로 상향 조정되어 빛을 내는 것이리라. 작년 장 줄리엥 전시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의 노트였다. 정말 톡톡 튀고 창의적이고 유머러스한 장면이 한 가득한 노트였다. 틈틈이 그리고 적어둔 것이라 한다. 요시타케 신스케와 장 줄리엥이 노트 하나로 그 맥이 닿아 있기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어버린 나는, 이제 ‘있으려나 서점’ 같은 곳이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하는 허망한 소망 따위를 빌어보지는 않는다. 왠만한 기발함에도 그렇군 하고 끄덕여보는 정도다. 생각해 보니, 총서류 000을 아직 못 벗어나고 있지만, 도서관에서 마주한 그 수많은 책들이 이미 너무나도 충분히 놀랍고 더 기발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있으려나 서점’에 가지 않아도 내가 찾고자 하는 책들이 조그만 동네 도서관에서도 차고 넘친다. 당연하게도 이 책의 섬세함과 창의성을 사랑하지만 현실에 발 딛고 있는 다큐멘터리들이 더 눈길을 사로잡는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어른들을 위한 작가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아이한테 읽어줬더니 내가 기대한 것 이상의 반응을 보였다. 맞다, 이 책이 만화책처럼 보이고 기발한 상상이 마구 쏟아지니 안 좋아하고 배길 아이들이 있겠나. 그런데 허망하게도 위아래로 나뉜 ‘상/하’ 책을 초등2학년 아이는 전에 진짜로 본 적이 있다고 하고, 그리고 ‘달빛에만 반응하는 책과 펜’을 실제 문구점에서 파는 시크릿 펜이라고 흥분한다. 작가의 기발한 창의적 말장난과 비틈이 아이의 상상 속에서는 그냥 일상일 수도 있음이 허망하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했다.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다른 의미로 이 책을 좋아하는 초등 아이가 훗날에 스스로 다시 이 책과 정식으로 만나기를 바란다. 그때 온전히 즐기고 누리기를!
다만 이번에 아이에게 읽어주면서는, 서점 주인에 나를 대입해 보게 되었다. 전에는 내가 손님의 입장이 되어서 어떤 책을 찾아달라고 할까 상상해 봤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아니, 손님이건 책방지기 건 묻고 답한다는 건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야 하는데, 나는 그럴 용의가 있는지 혹은 준비가 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두뇌 훈련이나 해볼까 하는 가벼운 심정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삶과 독서, 그리고 그 와중에 ‘진솔함’이라는 글자를 새겨본 것은 뜻밖의 소득이었다.
내일은 총서류 100번대를 헤매볼까 한다. ‘있으려나 서점’보다 더 놀라운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그 서점’을 조용히 방문해 보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