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問人於他邦,再拜而送之。康子饋藥,拜而受之。曰:「丘未達,不敢嘗①。」
문인어타방,재배이송지。강자궤약,배이수지。왈:「구미달,불감상①。」
[解釋] 다른 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友人의 안부를 물으실 적에는 두 번 절하고 보내셨다. 康子가 약을 보내오자, 절하여 받고는 말씀하시기를 : 「내 이 약의 성질을 알 수 없으므로, 감히 맛보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셨다.
[朱註] 拜送使者, 如親見之, 敬也。范氏曰:「凡賜食, 必嘗以拜。藥未達, 則不敢嘗。受而不食,則虛人之賜,故告之如此。然則可飲而飲,不可飲而不飲,皆在其中矣。楊氏曰:「大夫有賜,拜而受之,禮也。未達不敢嘗,謹疾也。必告之,直也。」此一節,記孔子與人交之誠意。
[주주] 배송사자, 여친견지, 경야。범씨왈:「범사식, 필상이배。약미달, 즉불감상。수이불식,즉허인지사,고고지여차。연즉가음이음,불가음이불음,개재기중의。양씨왈:「대부유사,배이수지,례야。미달불감상,근질야。필고지,직야。」차일절,기공자여인교지성의。
[朱註] 사자를 절하고 보내는 것은 친히 뵙는 것 같이 공경하는 것이다. 范氏는 말하기를 : 「대체로 음식을 주면 반드시 맛보고 절하는 것이지만, 藥은 약성을 모르기 때문에 감히 맛보지 못한 것이다. 받고서 먹지 않으면 곧 사람이 준 것을 헛되게 하기 때문에 고하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실 수 있는 것은 마시고, 마실 수 없는 것은 마시지 않음이 다 그 가운데에 있다.」라고 하였다. 楊氏는 말하기를 : 「大夫가 주는 것이 있으면 절하고 받는 것은 禮이요, 알지 못해서 감히 맛보지 않은 것은 병을 삼가는 것이요, 반드시 고하신 것은 곧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한 절은 孔子께서 사람과 더불어 사귈 때의 성의를 기록한 것이다.
[今釋] 공자께서 다른 나라의 친구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사람을 보낼 때는, 그에게 머리 숙여 두 번 절하고 전송하였다. 季康子가 약을 공자께 보내오자, 공자께서 절을 하고 받으셨다. 그런 뒤에 使者에게 「나는 이 약의 성질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먹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① 嘗 : 맛보다. 古人들은 습속이 윗사람이 음식이나 약품 등을 보내왔을 때는 절을 하여 사의를 표하는 외에 반드시 맛을 봄으로써 예의를 표시하였다 한다.
12)
廄焚。子退朝,曰:「傷人乎?」不問馬①。
구분。자퇴조,왈:「상인호?」불문마①。
[解釋] 마구간에 불이 났었는데, 공자가 조정에서 물러 나오셔서 말씀하시기를 : 「사람이 상했느냐?」 하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朱註] 非不愛馬,然恐傷人之意多,故未暇問。蓋貴人賤畜,理當如此。
[주주] 비불애마,연공상인지의다,고미가문。개귀인천축,리당여차。
[朱註] 말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나, 사람이 상했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많으므로 물어 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대개 사람을 귀히 여기고 가축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도리가 마땅히 이러해야 하는 것이다.
[今釋] 공자의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께서 조정에서 돌아와 불난 소식을 듣자 「사람이 다쳤는가?」라고 물었고, 말의 선실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① 不問馬 : 王陽明은 不字를 위로 붙여 「傷人乎否」라고 독해하고, 사람을 묻고 다음에 말을 물은 것은 仁民而愛物이라 했는데 茶山은 朱註를 따랐다.
13)
君賜食❶①,必正席先嘗❷之;君賜腥❸,必熟而薦之❹;君賜生,必畜之❺。
군사식❶①,필정석선상❷지;군사성❸,필숙이천지❹;군사생,필휵지❺。
[解釋] 임금이 먹을 것을 내려 주시면 반드시 자리를 바르게 하여 먼저 맛보셨고, 임금이 날고기를 주시면 반드시 익혀서 祖上에게 바치셨고, 임금이 산 짐승을 내려 주시면 반드시 기르셨다.
[朱註] 食恐或餕余,故不以薦。正席先嘗,如對君也。言先嘗,則余當以頒賜矣。腥,生肉。熟而薦之祖考,榮君賜也。畜之者,仁君之惠,無故不敢殺也。
[주주] 식공혹준여,고불이천。정석선상,여대군야。언선상,즉여당이반사의。성,생육。숙이천지조고,영군사야。휵지자,인군지혜,무고불감살야。
[朱註] ❶음식이 혹 제사 지내고 남은 것인가 염려되기 때문에 사당에는 올리지 않은 것이며, ❷자리를 바르게 하고 먼저 맛보았다는 것은, 임금을 대하듯이 하신 것이다. 먼저 맛보았다고 말했으니 나머지는 나누어 준 것이다. ❸腥은 날고기다. ❹익혀서 조상에게 올리는 것은 임금의 주심을 영광으로 여기는 것이다. ❺길렀다는 것은 임금의 恩惠를 사랑해서(仁이 동사) 까닭 없이는 감히 죽이지 않는 것이다.
※ 薦新 : 새로운 것으로 사당에 제를 지내는 것.
侍食於君,君祭,先飯。
시식어군,군제,선반。
[解釋] 임금을 모시고 식사할 적에 임금이 제를 지내시거든 먼저 밥을 잡수셨다.
[朱註] 周禮,「王日一擧, 膳夫授祭,品嚐食,王乃食」。故侍食者,君祭,則己不祭而先飯。若爲君嘗食然,不敢當客禮也。
[주주] 주례,「왕일일거, 선부수제,품상식,왕내식」。고시식자,군제,즉기부제이선반。약위군상식연,불감당객례야。
[朱註] ≪周禮≫에 이르기를 : 「王이 매일 한 번씩 성찬을 드는데 膳夫가 제수를 드린 뒤 음식마다 맛보아야 왕이 잡수시게 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왕을 모시고 먹는 사람은 임금이 祭를 지내면 자기는 祭하지 않고 먼저 밥을 먹는데, 마치 임금을 위해 膳夫가 맛보는 것같이 해야 한다. 이는 손님의 禮(임금이 손님의 예로 대접할 경우 임금이 손에게 祭하기를 명함)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 擧 : 희생을 죽여서 饌에 담는 것을 擧라고 한다. 임금은 매일 한 끼를 희생 제물로 요리한 정식으로 식사하였다.
疾,君視之,東首❶②,加朝服,拖紳。君命召,不俟駕行矣。
질,군시지,동수❶②,가조복,타신。군명소,불사가행의。
[解釋] 병이 들었을 때 임금이 문병 오시면 동쪽으로 머리를 두시고, 조복으로 몸을 덮으시고 그 위에 큰 띠를 걸치셨다. 임금께서 명하여 부르시면 수레에 멍에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가시었다.
[朱註] 東首,以受生氣也。病臥不能著衣束帶,又不可以褻服見君,故加朝服於身,又引大帶於上也。急趨君命,行出, 而駕車隨之。此一節,記孔子事君之禮。
[주주] 동수,이수생기야。병와불능착의속대,우불가이설복현군,고가조복어신,우인대대어상야。급추군명,행출, 이가차수지。차일절,기공자사군지례。
[朱註] ❶東首(동쪽으로 머리를 함)하는 것은 생기를 받는 것이다. 병들어 누우면 옷을 입고 띠를 매지 못하며, 또 평상복으로는 임금을 뵐 수 없기 때문에 조복을 몸에 덮고, 또 큰 띠를 위에 걸쳐놓는 것이다. 임금의 命에 급히 달려 나가 도보로 가면 멍에를 한 수레가 따라 오는 것이다. 이 한 절은 孔子가 임금을 섬기는 禮를 기록한 것이다.
[今釋] 임금이 잘 익혀 요리된 음식을 하사하시면 공자는 자리를 바르게 하고 단정히 앉아 공경스레 맛을 보셨다. 임금이 익히지 않은 음식을 하사하시면 공자는 반드시 그것을 익힌 다음에 선조께 進獻하였다. 임금이 산 짐승을 하사하시면 공자는 반드시 이를 키워 이유 없이 가볍게 쓰지 않으셨다. 임금을 모시고 식사를 하실 때에는 임금이 식사 전에 祭(식사 전의 제례)를 지내면 자기는 먼저 음식 맛을 보셨다. 공자께서 병이 들었을 때 임금이 문병을 오시면 공자는 머리를 동쪽으로 돌려 임금이 남쪽으로 향하여 보게 하였다. 또 조정에서 입는 예복을 이불 위에 얹어놓고, 큰 띠를 그 위에 걸쳐 띠 끝을 아래로 늘어뜨려 놓으셨다. 임금이 명해 부르시면 수레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지 아니하고 곧 바로 출발하였다.
① 食 : 이미 익혀서 요리한 음식. 茶山은 食이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祭餘이고, 또 하나는 食餘라고 했음.
② 東首 : 古代에 병든 사람의 침상을 평상시에는 침실의 北窓 아래에 설치하였는데, 임금이 문병을 오게 되면 임시로 남창 쪽으로 옮겨서 머리를 동쪽으로 두고, 임금이 남쪽을 향해서 환자를 볼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는 임금에 대한 존경을 표시한다.
14)
入太廟,每事問。
입태묘,매사문。
[解釋] 太廟(큰 사당)에 들어가시는 모든 일을 물으셨다.
[朱註] 重出。
[朱註] 거듭 나왔다(八佾篇 참조)
15)
朋友死,無所歸①。曰:「於我殯❶②。」朋友之饋③,雖車馬,非祭肉,不拜❷。
붕우사,무소귀①。왈:「어아빈❶②。」붕우지궤③,수거마,비제육,불배❷。
[解釋] 벗이 죽어서 돌아갈 곳이 없으면 말씀하시기를 : 「내 집에 빈소를 차리라.」라고 하셨다. 벗이 보낸 물건은 비록 수레와 말일지라도 제사지낸 고기가 아니면 절하지 아니하셨다.
[朱註] 朋友以義合,死無所歸,不得不殯。朋友有通財之義,故雖車馬之重不拜。祭肉則拜者,敬其祖考,同於己親也。此一節,記孔子交朋友之義。
[주주] 붕우이의합,사무소귀,부득불빈。붕우유통재지의,고수거마지중불배。제육즉배자,경기조고,동어기친야。차일절,기공자교붕우지의。
[朱註] ❶朋友는 義로 합한 것이므로, 죽어서 돌아갈 집이 없으면, 殯所를 차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❷朋友에게는 재물을 서로 나누어 쓰는 義가 있다. 그러므로 비록 車馬와 같이 중한 것이라도 절하지 않는다. 祭肉에 절하는 것은 그의 할아버지를 공경함이 자기 어버이와 같게 하는 것이다. 이 한 절은 孔子가 朋友와 사귀는 義을 기록한 것이다.
[今釋] 친구가 죽었는데 그 장례를 치러 줄 친척이 없으면, 孔子는 「내 집에 빈소를 차리라.」라고 하셨다. 친구가 보내준 예물이 비록 수레나 말 같은 귀중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제사에 쓰인 고기가 아니면 공자께서는 그것을 받을 때 절하여 예를 드리지 않았다.
① 無所歸 : 혼이 돌아갈 곳이 없다. 즉 장례를 치러 줄 친척이 없다는 뜻. 혹은 친척이 있기는 하여도 거리가 멀어서 한동안 장례 일을 돌볼 사람이 없는 것.
② 殯 : 빈소. 사람이 죽은 뒤 흙속에 안장하기 전에 시체를 관속에 넣어 堂上에 잠시 모셨는데 이를 빈소라 이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喪事一切를 가리키고 빈소만 일는 것은 아니다.
③ 饋 : 본래는 보낸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보내 온 예물이라는 뜻.
16)
寢不尸❶,居❷不容❸①。
침불시❶,거❷불용❸①。
[解釋] 주무실 때는 시체처럼 누워 자지 않으시고, 집에 계실 때는 몸가짐을 꾸미지 아니하셨다.
[朱註] 尸,謂偃臥似死人也。居,居家。容,容儀。范氏曰:「寢不尸,非惡其類於死也。惰慢之氣, 不設於身體, 雖舒布其四體,而亦未嘗肆耳。居不容,非惰也。但不若奉祭祀、見賓客而已,申申夭夭, 是也。」
[주주] 시,위언와사사인야。거,거가。용,용의。범씨왈:「침불시,비오기류어사야。타만지기, 불설어신체, 수서포기사체,이역미상사이。거불용,비타야。단불약봉제사、견빈객이이,신신요요, 시야。」
[朱註] ❶尸는 반듯하게 누운 것이, 죽은 사람과 흡사함을 이른다. ❷居는 집에 거하는 것이다. ❸容은 容儀이다. 范氏는 말하기를 : 「寢不尸(잠잠에 죽은 것 같지 않음) 하는 것은 그것이 죽음과 유사함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惰慢(나태하고 거만)한 기운을 몸에 베풀지 아니하여, 비록 四體를 펴더라도 일찍이 放肆하게는 하지 않는 것이다. 居不容(거처함에 용의하지 않음) 하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다만 祭祀를 받들고 손님을 접대할 때와 같이 아니할 따름이니, 申申夭夭라는 것이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見齊衰者②,雖狎❶,必變。見冕者與瞽者,雖䙝❷③,必以貌❸。
견자최자②,수압❶,필변。견면자여고자,수설❷③,필이모❸。
[解釋] 齊衰의 상복을 입은 사람을 보시면 비록 친한 사이라도 반드시 얼굴빛을 고치고, 관면을 쓴 사람과 소경을 보시면 비록 사적인 자리라할지라도 반드시 예모를 갖추셨다.
[朱註] 狎,謂素親狎。䙝,謂燕見。貌,謂禮貌。余見前篇。
[주주] 압,위소친압。설,위연견。모,위례모。여견전편。
[朱註] ❶狎은 평소에 친한 것을 이르고, ❷䙝은 사사로이 보는 것을 이른다. ❸貌는 예모를 이른다. 나머지는 전편에 보인다.
凶服者式❶④之。式負版❷者。
흉복자식❶④지。식부판❷자。
[解釋] 喪服을 입은 사람에게는 경의를 표하셨고, 나라의 호적을 짊어진 사람에게도 경의를 표하셨다.
[朱註] 式, 車前橫木。有所敬, 則俯而憑之。負版, 持邦國圖籍者。式此二者, 哀有喪, 重民數也。人惟萬物之靈,而王者之所天也,故周禮「獻民數於王,王拜受之」。況其下者,敢不敬乎?
[주주] 식, 거전횡목。유소경, 즉부이빙지。부판, 지방국도적자。식차이자, 애유상, 중민수야。인유만물지령,이왕자지소천야,고주례「헌민수어왕,왕배수지」。황기하자,감불경호?
[朱註] ❶式은 수레 앞에 있는 橫木(가로지른 나무)으로 공경할 일이 있으면 구부려서 그에 기댄다. ❷負版이란 나라의 지도와 호적을 가진 사람이다. 이 두 사람에게 禮를 표시하는 것은 喪을 슬퍼하고 백성의 수를 중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사람은 만물의 靈長이요, 왕이 하늘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周禮≫에 : 「백성의 數(戶口)를 왕에게 드리면 왕이 절하고 받는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그 아래 사람이야 감히 공경하지 않겠는가?
有盛饌,必變色而作❶。迅❷雷風烈❸,必變❹。
유성찬,필변색이작❶。신❷뢰풍렬❸,필변❹。
[解釋] 盛饌(성대한 음식)을 받으시면 반드시 얼굴빛을 고쳐 일어나셨고, 빠른 천둥이나 사나운 바람에도 반드시 얼굴빛을 변하셨다.
[朱註] 敬主人之禮,非以其饌也。迅,疾也。烈,猛也。必變者,所以敬天之怒。記曰:「若有疾風、迅雷、甚雨, 則必變,雖夜必興,衣服冠而坐。」此一節,記孔子容貌之變。
[주주] 경주인지례,비이기찬야。신,질야。렬,맹야。필변자,소이경천지노。기왈:「약유질풍、신뢰、심우, 즉필변,수야필흥,의복관이좌。」차일절,기공자용모지변。
[朱註] ❶일어남은 주인의 禮를 공경하는 것이지, 그 饌 때문이 아니다. ❷迅은 빠름이다. ❸烈은 사나움이다. ❹必變(반드시 변함)은 하늘의 노함을 공경하기 때문이다. 記에 이르기를 : 「만일 모진 바람과 빠른 우레와 심한 비가 있으면, 반드시 변하여 비록 밤일지라도 반드시 일어나서 衣冠을 바로 하고 앉는다.」라고 하였다. 이 한 절은 孔子가 용모를 바꾸심을 기록한 것이다.
[今釋] 공자가 주무실 때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사지를 펴고 반듯이 눕지 않으셨다. 한가하게 집에 계실 때는 儀容을 꾸미지 아니하였다. 공자가 상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설사 항상 왕래하는 친근한 벗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용모를 바꾸어 동경과 애도의 뜻을 표시하였다. 예모를 쓴 경대부나 소경을 보면 설사 하루에 몇 번을 만난다 하더라도 반드시 매번 공경과 동정의 용모를 지으셨다. 수레를 탔을 때 상복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손으로 수레 앞 횡목을 잡고서 애도의 뜻을 표시하였으며, 국가의 地圖와 호적을 짊어진 사람을 만나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존경을 표시하였다. 어느 잔치에 참가 했을 때, 주인이 풍성하게 음식을 차렸으면 반드시 얼굴모습을 바꾸어서 일어나서 사의를 표하였다. 빠른 천둥이나 사나운 바람을 만나면 반드시 평상시의 태도를 바꾸어서 경계함을 표시하였다.
① 居不容 : 「容」字를 陸德明의 ≪經典釋文≫과 唐開成의 ≪石經≫에서는 「客」字로 교정하여 손님으로 해석하였다. 邪昺疏에서 「容」字를 「不爲容儀」라고 해석한 것에 대하여 淸人 臧琳이 「夫君子物各有儀, 豈因私居廢乎? 是當從陸氏作『容』」이라고 하여 「한가하게 집에 있을 때는 손님 접할 때처럼 예의에 구속받지 않는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茶山은 容은 ≪周禮≫의 六容 의 容과 같다고 했다.
② 齊衰者 : 상복을 입은 사람. (子罕篇의 「子見祭衰者」章의 註를 참조)
③ 䙝 : 「狎」자와 뜻이 비슷하다. 茶山은 「䙝, 謂數相見」으로 이해했다. 하루 여러 차례 만난다는 뜻이 된다.
④ 式 : 軾과 같음. 고대의 수레에는 앞에 橫木이 있어 「軾」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동사로 쓰여 「몸을 약간 굽혀 손으로 軾을 잡아 경의를 표시하다.」의 뜻.
17)
升車,必正立, 執綏❶。車中,不內顧❷,不疾言,不親指①。
승거,필정립, 집수❶。거중,불내고❷,부질언,불친지①。
[解釋] 수레에 오르실 때에는 반드시 바로 서서 수레 줄을 잡으셨다. 수레 안에서 둘러보지 않고, 말을 빨리 하지 않으시며, 여기저기 손가락질을 하시지도 않으셨다.
[朱註] 綏,挽以上車之索也。范氏曰「正立執綏,則心體無不正,而誠意肅恭矣。蓋君子莊敬, 無所不在,升車則見於此也。」內顧,回視也。禮曰:「顧不過轂。」三者皆失容,且惑人。此一節,記孔子升車之容。
[주주] 수,만이상차지색야。범씨왈「정립집수,즉심체무부정,이성의숙공의。개군자장경, 무소부재,승차즉현어차야。」내고,회시야。례왈:「고불과곡。」삼자개실용,차혹인。차일절,기공자승차지용。
[朱註] ❶綏는 잡고 수레에 오르는 줄이다. 范氏는 말하기를 : 「바르게 서서 수레 줄을 잡으면 마음과 몸이 바르지 않음이 없어, 안이 성실하고 밖이 공손해 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개 君子는 씩씩하고 공경스러움이 있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수레에 오르면 여기에 나타난다. ❷內顧는 둘러보는 것이다. 禮에 말하기를 : 「돌아보는 것이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 세 가지(內顧, 疾言, 親指)는 모두 체면을 잃게 하고, 사람을 의혹케 하는 것이다. 이 한 절은 孔子가 수레 오른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今釋] 공자가 수레에 오르실 대에는 반드시 먼저 단정하게 선 후에 손으로 수레의 줄을 잡으셨다. 차 안에서는 이리저리 머리를 돌려 보지 않으셨으며, 말을 빨리 하지 않으셨으며, 손가락으로 직접 여기저기를 가리키지 않으셨다.
① 劉寶楠은 ≪論語正義≫에서 「親」자는 뜻을 알 수 없다. ≪曲禮≫에, 「車上不妄指라고 했으니 아마도 「妄」자의 잘못이 아닌가 한다.」라고 하였다.
18)
色斯舉①矣,翔而後集②。
색사거①의,상이후집②。
[解釋] 새도 사람의 눈치를 보고는 날아올라 빙빙 돌다가 다시 앉네.
[朱註] 言鳥見人之顏色不善, 則飛去, 迴翔審視, 而後下止。人之見幾而作, 審擇所處, 亦當如此。然此上下,必有闕文矣。
[주주] 언조견인지안색불선, 즉비거, 회상심시, 이후하지。인지견기이작, 심택소처, 역당여차。연차상하,필유궐문의。
[朱註] 새가 사람의 얼굴빛이 좋지 않은 것을 보면 날아가서, 빙빙 돌면서 살펴 본 뒤에 내려앉으니, 사람이 기미를 보고 일어나 처할 곳을 살펴 가리는 것도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글 위아래에 반드시 빠진 글이 있다.
曰③:「山梁❶④雌雉,時哉!時哉❷⑤!」子路共之,三嗅而作。
왈③:「산량❶④자치,시재!시재❷⑤!」자로공지,삼후이작。
[解釋]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산 계곡다리에 있는 까투리가 때를 만났구나! 때를 만났구나!」라고 하시니, 子路는 그를 요리하여 바쳤다. 공자께서 세 번 냄새를 맡아 보시고 일어나셨다.
[朱註] 邢氏曰 :「梁, 橋也。時哉, 言雉之飲啄得其時。子路不達, 以爲時物而共具之。孔子不食,三嗅其氣而起。」晁氏曰:「石經『嗅』作戛,謂雉鳴也。」劉聘君曰「嗅,當作狊,古闃反。張兩翅也。見爾雅。」愚按:如後兩說,則共字當爲拱執之義。然此必有闕文,不可強爲之說。姑記所聞,以俟知者。
[주주] 형씨왈 :「량, 교야。시재, 언치지음탁득기시。자로불달, 이위시물이공구지。공자불식,삼후기기이기。」조씨왈:「석경『후』작알,위치명야。」류빙군왈「후,당작격,고격반。장량시야。현이아。」우안:여후량설,즉공자당위공집지의。연차필유궐문,불가강위지설。고기소문,이사지자。
[朱註] 邢氏가 말하기를 : 「❶梁은 다리이다. ❷時哉라 하신 것은 꿩이 마시고 쪼는 것이 그 때를 얻음을 말씀하신 것인데, 子路가 깨닫지 못하고 제철에 맞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여 요리한 것이다. 孔子께서 드시지 않으시고 세 번 그 냄새를 맡아 보시고는 일어나셨다.」라고 하였다. 晁氏는 말하기를 : 「石經에는 嗅가 戛로 되어 있으니, 꿩이 우는 소리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劉聘君은 말하기를 : 「嗅는 마땅히 狊으로 하여야 한다. (이 사람은) 古와 闃의 反切로, 두 날개를 펴는 것이며, ≪爾雅≫에 나타나 있다.」라고 하였다. 내 생각하기에 뒤의 두 說과 같다면 共字는 마땅히 잡는다의 뜻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빠진 글이 있으니, 억지로 주석할 수 없다. 우선 들은 것을 기록하여 아는 사람을 기다린다.
[今釋] 새는 사람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면 곧 날아갔다가 안전한 곳을 공중에서 빙빙 돌아본 후에 조심스럽게 내려앉는다. 공자는 그 때 사냥꾼이 옴을 보고서 「山 다리 위에 있는 암꿩이 날아갈 때다 날아갈 때다.」라고 하셨는데, 까투리는 날아가지 않아 죽고 말았다. 子路는 공자의 時哉란 말을 時物이어서 자시고 싶다는 말로 오해하고 요리를 하여 드리니, 공자는 차마 드시지 못하고 세 번 냄새만 맡아 보시고 일어나셨다. 이는 君子의 「易退難進」을 비유한 것이다. 이 章은 지금까지 만족할 만한 해석이 나오지 않아 茶山의 說을 비교적 평이하게 풀이 해 본 것이다.
① 色斯舉矣 : 劉寶楠≪論語正義≫에는 「色, 謂人色. 色有不善, 則鳥見之而飛去也, 人去危就安亦如此」 茶山도 「이는 古語로 새의 避害慮患으로써 군자의 易退難進을 비유한 것이다.」라 하였다. 擧는 날다는 뜻.
② 翔而後集 : 說文에 「翔, 回飛也. 集, 群鳥在木上也.」라 하였으니, 集은 응용하면 쉬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集解에 「迴翔審視, 而後下止」라 하고, 茶山도 「其下止曰集」라 하였으니, 그 뜻은 새가 공중에서 날다가 세심히 관찰하여 적당한 곳과 때를 택해 앉아 쉰다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이 처할 환경을 택하는 데도 꼭 이와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이상 두 句는 古詩의 逸句일 것이다.
③ 曰 : 이하는 공자가 감탄하여 한 말로 「曰」은 「子曰」과 같다.
④ 山梁 : 說文에 「梁, 水橋也」 지금은 樑으로 쓴다. 山梁은 산 계곡에 놓은 다리다.
⑤ 時哉時哉 : 茶山은 「可去之時 즉 떠나야 할 때라는 의미로 공자가 사냥꾼이 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