僖公 33年(紀元前 627年)
三十三年春, 秦師過周北門. 左右免冑而下, 超乘者三百乘. 王孫滿尙幼, 觀之, 言於王曰 : 「秦師輕而無禮. 必敗. 輕則寡謀, 無禮則脫. 入險而脫, 又不能謀, 能無敗乎.」
삼십삼년춘, 진사과주북문. 좌우면주이하, 초승자삼백승. 왕손만상유, 관지, 언어왕왈 : 「진사경이무례. 필패. 경즉과모, 무례즉탈. 입험이탈, 우불능모, 능무패호.」
[解釋] 희공 33년 봄에, 진나라 군대가 주나라의 북문을 통과했다. 병거에 어자로서 좌우에 있는 자들은 투구를 벗고 병거에서 내려서 천자의 도읍에 경의를 표하고, 그것이 끝나자 병거로 뛰어오른 자가 300 대나 되었다. 천자의 王孫滿이 나이가 아직 어렸으나, 이 광경을 보고서, 천자인 양왕에게 가서 말하기를, 「진나라 군대는 경솔하고 무례합니다. 반드시 패랄 것입니다. 경솔하면 꾀가 적고, 예의가 없으면 엉성합니다. 위험한 전장으로 들어가 엉성하면, 치밀한 꾀를 낼 수가 없으므로, 패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고 했다.
及滑. 鄭商人弦高將市於周, 遇之, 以乘韋先, 牛十二犒師. 曰 : 「寡君聞, 吾子將步師出於敝邑, 敢犒從者. 不腆敝邑, 爲從者之淹, 居則具一日之積, 行則備一夕之衛.」 且使遽告于鄭.
급골. 정상인현고장시어주, 우지, 이승위선, 우십이호사. 왈 : 「과군문, 오자장보사출어폐읍, 감호종자. 부전폐읍, 위종자지엄, 거즉구일일지적, 행즉비일석지위.」 차사거고우정.
[解釋] 진나라 군대는 정나라 활 지방으로 진군했다. 그때 정나라 상인 현고가 주나라에 가서 장사를 하다가, 도중에 진나라 군사를 만나, 먼저 네 개의 부드러운 가죽을 바치고, 이어서 소 12마리를 보내어 진나라 군대를 먹이게 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우리 정나라 임금님께서, 여러분이 군대를 이끌고 우리나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부하들을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풍족하지는 못한 우리나라이지만, 여러분의 행군을 돕고자 묵으실 때는, 하루 분의 식량이며 연료를 준비하고, 출발하실 때는 하루 저녁의 호위를 담당하시겠다고 했습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급히 역마를 시켜 본국인 정나라에 보고했다.
鄭穆公使視客館, 則束載, 厲兵, 秣馬矣. 使皇武子辭焉, 曰 : 「子淹久於敝邑, 唯是脯資, 餼牽竭矣, 爲吾子之將行也. 鄭之有原圃, 猶秦之有具囿也. 吾子取其麋鹿, 以閒敝邑, 若何?」
정목공사시객관, 즉속재, 여병, 말마의. 사황무자사언, 왈 : 「자엄구어폐읍, 유시포자, 희견갈의, 위오자지장행야. 정지유원포, 유진지유구유야. 오자취기미록, 이간폐읍, 약하?」
[解釋] 이 소식을 들은 정나라 목공은 정나라에 파견되어 있는 자의 관사를 살펴보게 하니, 수레에 물건을 싣고, 무기를 준비하고, 말에다 먹이를 주면서 진나라 군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황무자로 하여금 이들을 물러가도록 명하면서 말하기를, 「여러분이 오랫동안 우리나라에 머물러 있어, 여러분에게 드리는 포와 떡과 고기와 가축 등이 동이 나서, 여러분을 떠나보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정나라에는 원유가 있으니, 귀국의 구유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원유로 가서 사슴을 잡으면서, 우리나라에 머물러 있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게 했다.
杞子奔齊, 逢孫楊孫奔宋. 孟明曰 : 「鄭有備矣. 不可冀也. 攻之不克, 圍之不繼. 吾其還也.」 滅滑而還.
기자분제, 봉손양손분송. 맹명왈 : 「정유비의. 불가기야. 공지불극, 위지불계. 오기환야.」 멸골이환.
[解釋] 이 소식을 들은 杞子는 제나라로 도망가고, 逢孫과 楊孫은 송나라로 달아났다. 진나라 군대를 이끌고 온 孟明은 말하기를, 「정나라에는 풍분한 대비가 되어 있다. 정나라 공격을 원해서는 안 된다. 공격을 해도 이길 수가 없고, 포위해서도 계속할 수가 없다. 그러니 나는 돌아가겠다.」고 하고서, 활을 멸하고 진나라로 돌아갔다.
齊國莊子來聘. 自郊勞至于贈賄, 禮成而加之以敏. 臧文仲言於公曰 : 「國子爲政, 齊猶有禮. 君其朝焉. 臣聞之, '服於有禮, 社稷之衛也'」
제국장자래빙. 자교노지우증회, 예성이가지이민. 장문중언어공왈 : 「국자위정, 제유유례. 군기조언. 신문지, '복어유례, 사직지위야'」
[解釋] 제나라의 경인 국장자가 노나라를 방문했다. 노나라에서는 근교에서 맞이하는 예법과 돌아갈 때에 선물을 주는 예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법을 만들어 놓고 또 민첩하게 행했다. 노나라 장문중이 희공에게 말하기를, 「제나라의 국장자가 정치를 행하고 있으므로, 제나라에는 아직 예의가 지켜집니다. 그러나 임금님께서는 제나라에 한번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신이 듣건대, '예를 지키는 자를 따르는 것은, 국가를 지키는 길이다.'고 한다.」고 하면서 제나라에 가기를 권장했다.
晉原軫曰 : 「秦衛蹇叔, 而以貪勤民. 天奉我也. 奉不可失. 敵不可縱. 縱敵患生, 違天不祥. 必伐秦師.」
진원진왈 : 「진위건숙, 이이탐근민. 천봉아야. 봉불가실. 적불가종. 종적환생, 위천불상. 필벌진사.」
[解釋] 晉나라 原軫이 말하기를, 「진나라는 건숙의 의견을 따르지 않으므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탐욕 때문에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우리 진나라에게 은혜를 내리는 것입니다. 하늘의 은혜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적을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적을 용서하지 못하면 화가 생기고, 하늘에 거역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합니다. 그러니 반드시 진나라 군대를 정벌합시다.」고 했다.
欒枝曰 : 「未報秦施, 而伐其師, 其爲死君乎?」 先軫曰 : 「秦不哀吾喪, 而伐吾同姓. 秦則無禮, 何施之爲? 吾聞之, '一日縱敵, 數世之患也'. 謀及子孫. 可謂死君乎?」 遂發命, 遽興姜戎. 子墨衰絰. 梁弘御戎, 萊駒爲右.
난지왈 : 「미보진시, 이벌기사, 기위사군호?」 선진왈 : 「진불애오상, 이벌오동성. 진즉무례, 하시지위? 오문지, '일일종적, 수세지환야'. 모급자손. 가위사군호?」 수발명, 거흥강융. 자묵최질. 양홍어융, 내구위우.
[解釋] 이에 欒枝는 말하기를, 「아직 진나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기 전에, 진나라 군대를 치는 것은, 우리 임금님을 죽이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면서 반대했다. 先軫은 말하기를, 「진나라가 우리 진나라의 국상을 슬퍼하지 아니하고, 우리와 같은 성인 활 나라를 정벌했습니다. 그러니 진나라는 예의가 없는 나라요, 그런데 어째서 옛날에 받은 은혜를 언제까지 은혜로만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내가 듣건대, '하루라도 적을 놓아두면, 몇 세대가 지난 후손에까지 화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진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우리 자손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우리 임금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래서 빨리 명령을 내려, 姜戎에게 알려 출병을 재촉했다. 상중에 있는 세자는 상복을 검게 물들여 입고 흰 띠를 두르고 돌진했다. 梁弘양홍이 병거의 어자가 되고, 萊駒가 그 우익이 되었다.
夏四月辛巳, 敗秦師于殽, 獲百里孟明視,`西乞術,`白乙丙以歸. 遂墨以葬文公. 晉於是始墨. 文嬴請三帥曰 : 「彼實構吾二君. 寡君若得而食之, 不厭. 君何辱討焉? 使歸就戮于秦, 以逞寡君之志, 若何?」 公許之. 先軫朝, 問秦囚.
하사월신사, 패진사우효, 획백리맹명시,`서걸술,`백을병이귀. 수묵이장문공. 진어시시묵. 문영청삼수왈 : 「피실구오이군. 과군약득이식지, 불염. 군하욕토언? 사귀취륙우진, 이령과군지지, 약하?」 공허지. 선진조, 문진수.
[解釋] 여름 4월 辛巳日에, 진나라는 진나라의 군대를 효산에서 격파하고, 적장 百里孟明視, 西乞術,`白乙丙. 세 사람을 포로로 하여 데리고 진나라 서울로 돌아왔다. 진나라 양공은 검은 상복을 입은 채로 문공을 장사지냈다. 그래서 이때부터 진나라에서는 비로소 검은 상복을 입게 되었다. 죽은 문공의 부인 文嬴이 포로로 잡혀온 세 장군을 용서해줄 것을 양공에게 요청하며 이르기를, 「그들은 실로 우리 진나라와 진나라의 두 임금을 싸우게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혹 그들을 생포해서 그 고기를 씹어도, 시원치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임금님께서 어찌 욕되게 그들을 죽이겠습니까? 그들을 진나라에 돌려보내어 처형케 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므로, 양공은 세 사람을 용서하여 진나라에 돌려보내게 했다. 이때 선진이 조정으로 나아가, 진나라 포로의 동정을 물었다.
公曰 : 「夫人請之, 吾舍之矣.」 先軫怒曰 : 「武夫力而拘諸原, 婦人暫而免諸國, 墮軍實而長寇讎, 亡無日矣.」 不顧而唾. 公使陽處父追之, 及諸河, 則在舟中矣.
공왈 : 「부인청지, 오사지의.」 선진노왈 : 「무부력이구저원, 부인잠이면저국, 타군실이장구수, 망무일의.」 불고이타. 공사양처보추지, 급저하, 즉재주중의.
[解釋] 양공이 말하기를, 「夫人이 용서해 줄 것을 원하므로, 나는 그들을 용서해 주었다.」고 대답하자, 先軫은 화를 내면서 말하기를, 「부인이 애를 써서 들판에서 잡았는데, 婦人이 잠깐 사이에 서울에서 용서해 주어, 포로를 도망하게 하여 적을 강하게 하니, 우리 진나라가 망할 날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라 하고, 돌아보지도 않고 임금님에게 침을 뱉었다. 그래서 양공은 陽處父로 하여금 세 사람을 추격하게 하니, 쫓아가 황하에 이르자, 그들은 이미 배 속에 있었다.
釋左驂, 以公命贈孟明. 孟明稽首曰 : 「君之惠, 不以累臣釁鼓, 使歸就戮于秦. 寡君之以爲戮, 死且不朽. 若從君惠而免之, 三年將拜君賜.」
석좌참, 이공명증맹명. 맹명계수왈 : 「군지혜, 불이루신흔고, 사귀취륙우진. 과군지이위륙, 사차불후. 약종군혜이면지, 삼년장배군사.」
[解釋] 陽處父는 그가 타고 있던 수레를 끄는 왼쪽 말을 풀어 놓아, 양공의 명령이라고 하고 맹명에게 보내면서 맹명을 부르려고 했다. 그러자 맹명은 배 속에서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하기를, 「임금님의 은혜로, 이 몸을 죽여 북에 피를 바르지 않게 하고, 우리나라로 돌려보내어 우리 진나라에서 처형당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임금님이 손수 처형한다면, 죽어도 이름은 썩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 임금이 당신네 은혜 때문에 사형을 면해준다면, 3년 후에 당신네 임금의 은혜를 갚겠소.」라고 했다.
秦伯素服郊次, 鄕師而哭, 曰 : 「孤違蹇叔, 以辱二三子, 孤之罪也.」 不替孟明, 曰 : 「孤之過也, 大夫何罪, 且吾不以一眚掩大德.」
진백소복교차, 향사이곡, 왈 : 「고위건숙, 이욕이삼자, 고지죄야.」 불체맹명, 왈 : 「고지과야, 대부하죄, 차오불이일생엄대덕.」
[解釋] 그 뒤 진나라 목공은 흰 상복을 입고 교의에 숙박하면서, 돌아오는 군사를 향하여 울면서 말하기를, 「과인이 건숙의 말을 듣지 않다가, 여러분을 욕되게 하였으니, 이는 과인의 죄요.」라고 하고서, 孟明의 직책을 바꾸지 않고 말하기를, 「나의 잘못이니, 대부가 무슨 죄요? 또한 나는 한 번의 잘못 때문에 지금까지의 큰 공를 버리는 일은 없도록 하겠소.」라고 하였다.
狄侵齊, 因晉喪也. 公伐邾, 取訾婁, 以報升陘之役. 邾人不設備, 秋襄仲復伐邾. 狄伐晉, 及箕.
적침제, 인진상야. 공벌주, 취자루, 이보승형지역. 주인불설비, 추양중부벌주. 적벌진, 급기.
[解釋] 적이 제나라로 쳐들어온 것은, 진나라 문공이 죽은 틈을 노린 것이다. 노나라 희공이 주나라를 정벌하여, 자루를 빼앗았으므로, 升陘의 싸움을 보복했다. 邾나라 사람이 노나라에 대해서 대비를 하지 않아, 가을에 양중이 다시 주나라를 정벌했다. 狄이 晉나라를 정벌하려, 진나라의 기 지방까지 쳐들어왔다.
八月戊子, 晉侯敗狄于箕. 郤缺獲白狄子. 先軫曰 : 「匹夫逞志於君, 而無討, 敢不自討乎?」 免冑入狄師, 死焉. 狄人歸其元, 面如生.
팔월무자, 진후패적우기. 극결획백적자. 선진왈 : 「필부령지어군, 이무토, 감부자토호?」 면주입적사, 사언. 적인귀기원, 면여생.
[解釋] 8월 戊子日에 진날, 양공은 적의 군대를 기에서 격파했다. 그때 郤缺은 백적의 임금을 사로잡았다. 진나라 先軫이 말하기를, 「천한제가 임금님께 버릇없이 굴었는데도, 임금님께서는 벌을 주지 않으셨으니, 감히 스스로 토벌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 하고, 투구를 벗고 적의 군대 속에 진격했다가, 전사했다. 그래서 적의 사람들이 郤缺의 머리를 진나라로 돌려보냈는데, 그 얼굴이 산사람과 같았다.
初臼季使, 過冀, 見冀缺耨, 其妻饁之敬, 相待如賓. 與之歸, 言諸文公曰 : 「敬德之聚也. 能敬必有德, 德以治民. 君請用之. 臣聞之, '出門如賓, 承事如祭, 仁之則也'.」
초구계사, 과기, 견기결누, 기처엽지경, 상대여빈. 여지귀, 언저문공왈 : 「경덕지취야. 능경필유덕, 덕이치민. 군청용지. 신문지, '출문여빈, 승사여제, 인지칙야'.」
[解釋] 처음에 진나라의 구제가 사자가 되어, 冀지방을 지날 때에, 기결이 김을 매는데, 그 아내가 밥을 내온 것을 보니 서로 공경하는 것이, 손님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구계는 그를 데리고 돌아와 문공에게 소개하면서 말하기를, 「공경은 덕을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공경에 능하면 반드시 덕이 있게 되고, 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러니 임금님께서는 공경을 잘하는 이 기결을 등용하십시오. 신이 듣건대, '집 문을 나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을 손님과 같이 대하고, 일을 맡았을 때에는 제사를 지낼 때와 같이 공경하는 것이, 인을 행하는 법칙이라.'고 했습니다.」고 하였다.
公曰 : 「其父有罪, 可乎?」 對曰 : 「舜之罪也殛鯀, 其擧也興禹. 管敬仲桓之賊也, 實相以濟. <康誥>曰, '父不慈, 子不祗, 兄不友, 弟不共, 不相及也.' ≪詩≫曰, '采葑采菲, 無以下體.' 君取節焉可也.」 文公以爲下軍大夫.
공왈 : 「기부유죄, 가호?」 대왈 : 「순지죄야극곤, 기거야흥우. 관경중환지적야, 실상이제. <강고>왈, '부부자, 자부지, 형불우, 제불공, 불상급야.' ≪시≫왈, '채봉채비, 무이하체.' 군취절언가야.」 문공이위하군대부.
[解釋] 이에 문공은 말하기를, 「그의 아비가 나를 죽이려고 한 죄인인데, 그의 아들을 등용하면 되겠는가?」라고 하자, 구계는 대답하기를, 「옛날 순임금은 죄지은 자를 처벌할 때는 곤이라는 악인을 죽였으나 인물을 등용할 때는 곤의 아들 우 임금을 등용했습니다. 또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죽이려 한 적이지만, 환공은 그를 등용하여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康誥>에도 이르기를, '어버이가 인자하지 아니하고, 자식이 공경하지 않으며, 형이 우애롭지 못하고, 아우가 공손하지 아니해도, 그 아들 아버지 동생 형에게까지는 죄가 미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詩經≫에서도, '무, 배추를 뽑을 때, 그 뿌리가 나쁘다고 잎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임금님께서는 그의 장점만 취하면 됩니다.」고 했다. 그래서 문공은 기결을 하군의 대부로 삼았다.
反自箕, 囊公以三命命先且居, 將中軍, 以再命命先茅之縣賞胥臣曰 : 「擧郤缺, 子之功也.」 以一命命郤缺爲卿, 復與之冀. 亦未有軍行.
반자기, 낭공이삼명명선차거, 장중군, 이재명명선모지현상서신왈 : 「거극결, 자지공야.」 이일명명극결위경, 부여지기. 역미유군행.
[解釋] 기의 싸움에서 돌아와서, 진나라 양공은 삼명으로써 선진의 아들 선차거를, 중군의 대장으로 임명하고, 再命으로써 구계를 경에 임명하고 선모현 지방을 상으로 주면서 말하기를, 「
극결을 추천한 것은, 너의 공덕이다.」고 했다. 또 일명으로서 극결을 경에 임명하고, 다시 그의 아버지의 영토인 기 지방의 땅을 주었다. 그러나 극결은 아직 군대를 거느릴 수는 없었다.
冬公如齊朝, 且弔有狄師也. 反薨于小寢, 卽安也. 晉陳鄭伐許, 討其貳於楚也.
동공여제조, 차조유적사야. 반훙우소침, 즉안야. 진진정벌허, 토기이어초야.
[解釋] 겨울에 희공이 제나라로 간 것은, 제나라를 방문하고 또 제나라가 적의 침략을 받은 것을 위문하기 위해서였다. 희공이 제나라에서 돌아와 소침에서 죽었다는 것은, 편안하게 죽은 것을 기록한 것이다. 晉나라 陳나라 鄭나라 세 나라가 許나라를 정벌한 것은, 許나라가 두 마음을 품고 초나라에 통한 것을 토벌하기 위함이었다.
楚令尹子上侵陳蔡, 陳蔡成, 遂伐鄭, 將納公子瑕. 門于桔柣之門, 瑕覆于周氏之汪, 外僕髡屯禽之以獻. 文夫人歛而葬之鄶城之下.
초령윤자상침진채, 진채성, 수벌정, 장납공자하. 문우길질지문, 하복우주씨지왕, 외복곤둔금지이헌. 문부인감이장지회성지하.
[解釋] 그때 楚나라 令尹 子上은 陳나라와 蔡나라로 쳐들어갔으나, 진나라와 채나라가 강화를 요청하므로, 그길로 정나라를 정벌하여, 초나라에 도망해 있는 공자 하를 정나라로 들여보내려고 했다. 초나라 군대가 정나라에 길질문까지 쳐들어갔으나, 공자 하의 수레가 주시의 연못에서 엎어졌으므로, 정나라의 외복 곤둔이 공자 하를 잡아 정나라 임금에게 바쳤다. 공자 하의 어머니인 정나라 문공의 부인이 공자 하의 시체를 염하여 희성 밑에 묻었다.
晉陽處父侵蔡. 楚子上救之, 與晉師夾泜而軍. 陽子患之, 使謂子上曰 : 「吾聞之, '文不犯順, 武不違敵.' 子若欲戰, 則吾退舍, 子濟而陳. 遲速唯命. 不然, 紓我. 老師費財, 亦無益也?」 乃駕以待.
진양처보침채. 초자상구지, 여진사협지이군. 양자환지, 사위자상왈 : 「오문지, '문불범순, 무불위적.' 자약욕전, 즉오퇴사, 자제이진. 지속유명. 불연, 서아. 노사비재, 역무익야?」 내가이대.
[解釋] 晉나라 陽處父가 蔡나라로 쳐들어갔다. 초나라의 자상은 채나라를 도와 진나라 군대와 더불어 지수를 끼고 대전했다. 양자가 쉽게 승부를 가릴 수 없을 것을 근심해서, 사람을 시켜 자상에게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문덕이 있는 자는 도리를 지키는 올바른 자를 침범하지 않고, 무덕이 있는 자는 적을 피하여 싸우지 않는다.'고 하였다. 당신이 싸우고자 하면, 우리가 물러날 것이니, 당신은 개울을 건너와 진을 쳐라. 느리고 빠름은 당신 마음대로 하사라. 그것이 싫다면, 당신 쪽이 물러나 우리가 강을 건널 여유를 주시오. 이대로 대전해서 군대를 피로하게 하고 물자를 소비한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라고 하고서, 말을 수레에 매고 기다리고 있었다.
子上欲涉, 大孫伯曰 : 「不可. 晉人無信. 半涉而薄我, 悔敗何及, 不如紓之.」 乃退舍.
자상욕섭, 대손백왈 : 「불가. 진인무신. 반섭이박아, 회패하급, 불여서지.」 내퇴사.
[解釋] 자상이 냇물을 건너고자 하니, 大孫伯이 말하기를, 「안되오, 진나라 사람은 신용이 없소. 반쯥 건넜을 대 진나라 군대가 쳐들어오면, 후회막급이오. 진나라 군대에게 강을 건널 여유를 주는 것이 났습니다.」고 하고, 초나라 군대는 후퇴했다.
陽子宣言曰 : 「楚師遁矣.」 遂歸. 楚師亦歸, 大子商臣譖子上曰 : 「受晉賂而辟之, 楚之耻也, 罪莫大焉.」 王殺子上. 葬僖公. 緩作主, 非禮也. 凡君薨, 卒哭而祔, 祔而作主, 特祀於主, 烝嘗禘於廟.
양자선언왈 : 「초사둔의.」 수귀. 초사역귀, 태자상신참자상왈 : 「수진뢰이피지, 초지치야, 죄막대언.」 왕살자상. 장희공. 완작주, 비례야. 범군훙, 졸곡이부, 부이작주, 특사어주, 증상체어묘.
[解釋] 이를 본 양자는 말하기를, 「초나라 군대가 도망갔다.」고 선언하고, 그대로 돌아갔다. 그래서 초나라 군대도 물러갔으나, 초나라 大子 商臣은 子上을 참소하여 말하기를, 「진나라로부터 뇌물을 받고 후퇴한 것은, 우리 초나라의 수치요, 이보다 더 큰 죄가 없습니다.」고 했으므로, 초나라 왕은 자상을 죽였다. 희공을 다음 해 4월에 장사지낸 것은 너무 늦은 것이다. 문공 2년에 위패를 만든 것은 너무 늦어서, 예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대체로 임금이 죽으면, 졸곡이 끝나야 조상의 사당에 합제하고, 그것이 끝나야 위패를 만드는데, 특별히 능에서 소상`대상`담제를 행하고 위패를 만들며, 그리고 3년 상이 끝나자 중제`상제`제제라는 4계절에 지내는 제사를 종묘에서 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