閔公 2年(紀元前 660年)
二年春, 虢公敗犬戎于渭汭. 舟之僑曰 : 「無德而祿, 殃也. 殃將至矣.」 遂奔晉. 夏吉禘于莊公, 速也.
이년춘, 괵공패견융우위예. 주지교왈 : 「무덕이록, 앙야. 앙장지의.」 수분진. 하길체우장공, 속야.
[解釋] 閔公 2년 봄에, 虢公이 犬戎을 위수가에서 격파했다. 괵나라 대부 주지교가 말하기를, 「덕이 없이 녹을 먹는 것은, 재앙입니다. 재앙이 장차 닥쳐올 것입니다.」고 하고, 드디어 진나라로 도망갔다. 여름에 장공을 태조의 사당에 합제한 것은 아직 3년 상이 끝나지 않은 때라. 너무 빠른 것을 기롱한 것이다.
初公傅奪卜齮田, 公不禁. 秋八月辛丑, 共仲使卜齮賊公于武闈. 成季以僖公適邾, 共仲奔莒, 乃入, 立之. 以賂求共仲于莒, 莒人歸之. 及密, 使公子魚請, 不許. 哭而往.
초공부탈복기전, 공불금. 추팔월신축, 공중사복기적공우무위. 성계이희공적주, 공중분거, 내입, 입지. 이뢰구공중우거, 거인귀지. 급밀, 사공자어청, 불허. 곡이왕.
[解釋] 처음에 閔公의 스승이 대부 복의 진지를 빼앗았으나, 민공은 그것을 막지 않았다. 가을 8월 辛丑日에, 共仲은 민공을 원망하고 있던 복의로 하여금 궁중의 작은 문에서 민공을 죽이게 했다. 그래서 성계는 민공의 서령인 희공을 모시고 주나라로 갔으나, 共仲이 莒나라로 도망했으므로, 성계는 노나라로 돌아와 곧 희공을 세웠다. 뇌물을 써서 莒나라에게 共仲을 인도해 줄 것을 요구했으므로, 莒나라 사람들은 共仲을 노나라로 돌려보냈다. 共仲이 노나라의 密이란 곳에 도착했을 때, 公子 魚로 하여금 용서해 줄 것을 요청하게 했으나, 희공은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公子 魚는 울면서 共仲에게로 갔다.
共仲曰 : 「奚斯之聲也.」 乃縊. 閔公, 哀姜之娣叔姜之子也. 故齊人立之. 共仲通於哀姜, 哀姜欲立之. 閔公之死也, 哀姜與知之, 故孫于邾. 齊人取而殺之于夷, 以其尸歸. 僖公請而葬之.
공중왈 : 「해사지성야.」 내액. 민공, 애강지제숙강지자야. 고제인립지. 공중통어애강, 애강욕립지. 민공지사야, 애강여지지, 고손우주. 제인취이살지우이, 이기시귀. 희공청이장지.
[解釋] 共仲은 그 울음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이 소리는 해사의 울음소리다.」라 하고, 곧 목을 매어 죽었다. 閔公은, 哀姜의 여동생 叔姜이 낳은 아들이었다. 그러므로 제나라 사람들이 민공을 노나라 임금으로 세웠다. 한편 共仲은 哀姜과 사통하고 있었으므로, 哀姜은 共仲을 임금으로 세우려했다. 그러나 閔公이 죽음을 당하자, 哀姜도 그에 관련되었으므로, 邾나라로 도망갔다. 齊나라 사람들이 애강을 체포하여 이라는 곳에서 죽여, 그 시체를 가지고 제나라로 돌아갔다. 僖公은 애강의 시체를 제나라에서 인수하여 장래지냈다.
成季之將生也, 桓公使卜楚丘之父卜之, 曰 : 「男也. 其名曰友, 在公之右, 間于兩社, 爲公室輔. 季氏亡, 則魯不昌.」 又筮之, 遇大有[☲☰]之乾[☰☰]. 曰 : 「同復于父, 敬如君所.」 及生, 有文在其手曰友, 遂以命之.
성계지장생야, 환공사복초구지부복지, 왈 : 「남야. 기명왈우, 재공지우, 간우양사, 위공실보. 계씨망, 즉노불창.」 우서지, 우대유[☲☰]지건[☰☰]. 왈 : 「동복우부, 경여군소.」 급생, 유문재기수왈우, 수이명지.
[解釋] 成季가 태어나려 할 때에, 아버지 桓公이 점을 치는 대부 복초구의 아버지에게 점을 치게 하니, 말하기를, 「아들입니다. 그의 이름은 友로서, 집정대신이 되어, 양사 사이의 관청에서 정치를 하며, 왕실을 보좌할 것입니다. 季氏가 망하면, 노나라도 번창하지 못할 것입니다.」고 했다. 또 산가지를 뽑게 하니, 대우의 卦[☲☰]가 乾의 卦[☰☰]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그는 그의 아버지와 같이 유명하게 되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임금과 같이 존경할 것입니다.」고 했다. 그가 태어난 때에, 손바닥에 友자가 새겨져 있었으므로, 드디어 友라고 이름을 지었다.
冬十二月, 狄人伐衛. 衛懿公好鶴. 鶴有乘軒者. 將戰, 國人受甲者皆曰 : 「使鶴. 鶴實有祿位, 余焉能戰?」 公與石祁子玦, 與寗莊子矢, 使守曰 : 「以此贊國, 擇利而爲之.」 與夫人繡衣曰 : 「聽於二子.」
동십이월, 적인벌위. 위의공호학. 학유승헌자. 장전, 국인수갑자개왈 : 「사학. 학실유록위, 여언능전?」 공여석기자결, 여녕장자시, 사수왈 : 「이차찬국, 택리이위지.」 여부인수의왈 : 「청어이자.」
[解釋] 겨울 12월에, 狄의 사람이 위나라를 정벌했다. 衛나라 懿公은 학을 좋아했다. 鶴 중에는 대부가 타고 다니는 수레를 타고 다니는 학이 있었다. 장차 적 사람들과 싸우게 되어, 무기를 받은 위나라 사람 모두가 「鶴으로 하여금 싸우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鶴은 실로 대부의 녹과 지위를 받고 있는데, 우리가 어째서 싸워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의공은 石祁子에게 결단의 뜻을 나타내는 결을 주고, 寗莊子에게 적을 막는 뜻을 나타내는 화살을 주어, 방어하게 하고서 말하기를, 「이것으로 나라를 도와 국가의 이익을 택하여 행동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부인에게는 다른 사람의 좋은 말을 받아들이는 뜻을 가진 수의를 주면서, 「저 두 사람과 상담하라.」고 출진했다.
渠孔御戎, 子伯爲右, 黃夷前驅, 孔嬰齊殿. 及狄人戰于熒澤. 衛師敗績, 遂滅衛. 衛侯不去其旗, 是以甚敗. 狄人囚史華龍滑與禮孔, 以逐衛人.
거공어융, 자백위우, 황이전구, 공영제전. 급적인전우형택. 위사패적, 수멸위. 위후불거기기, 시이심패. 적인수사화룡활여례공, 이축위인.
[解釋] 그때 거공은 위공이 탄 병거의 마부가 되고, 子伯은 우익이 되고, 黃夷는 선두부대가 되고, 孔嬰齊는 후속부대가 되었다. 그래서 형택에서 적의 군인들과 싸웠다. 그러나 위나라 군대는 대패하여, 드디어 적의 군대는 위나라를 멸했다. 이 싸움에서 위나라 임금은 자기의 깃발을 뽑아 버리지 않았으므로, 적병의 공격을 받아 대패한 것이다. 적의 군대는 위나라의 사화용활과 예공 두 사람을 체포하여, 이들로 하여금 위나라 군대를 추격하게 했다.
二人曰 : 「我大史也. 實掌其祭. 不先, 國不可得也.」 乃先之. 至則告守曰 : 「不可待也.」 夜與國人出. 狄入衛, 遂從之, 又敗諸河.
이인왈 : 「아태사야. 실장기제. 불선, 국불가득야.」 내선지. 지즉고수왈 : 「불가대야.」 야여국인출. 적입위, 수종지, 우패저하.
[解釋]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위나라 大史라. 실제로 위나라의 제사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먼저 가서 위나라의 신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위나라를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고 해서, 이 두 사람을 먼저 태워 보냈다. 이 두 사람이 위나라 서울에 이르러 지키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기대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밤에 몰래 국민들과 같이 서울을 나와 달아났다. 적의 군대는 위나라로 들어가, 도망가는 위나라 사람을 추격하고, 또 황하 가에서 위나라 사람들을 격파했다.
初惠公之卽位也少. 齊人使昭伯烝於宣姜, 不可. 强之, 生齊子, 戴公,`文公,`宋桓夫人,`許穆夫人. 文公爲衛之多患也, 先適齊. 及敗, 宋桓公逆諸河, 宵濟.
초혜공지즉위야소. 제인사소백증어선강, 불가. 강지, 생제자, 대공,`문공,`송환부인,`허목부인. 문공위위지다환야, 선적제. 급패, 송환공역저하, 소제.
[解釋] 처음에 위나라 혜공이 즉위했을 때 혜공은 어렸었다. 제나라 사람은 혜공의 서형 소백에게 선공의 미망인 선강과 간통하게 했으나, 소백이 이를 듣지 않았었다. 그래서 억지로 권하여, 그동안에 제자,`戴公,`文公,`宋나라 환공의 부인,`許나라 목공의 부인을 낳았다. 文公은 이 위나라에 환관이 많은 것을 보고, 먼저 제나라로 달아났다. 위나라가 적에게 격파되자, 송나라 환공은 위나라의 낙후인을 황하 가에서 맞이하여, 밤에 황하를 건넜다.
衛之遺民男女七百有三十人, 益之以共, 滕之民爲五千人, 立戴公以廬于曹. 許穆夫人賊載馳. 齊侯使公子無虧帥車三百乘, 甲士三千人以戍曹. 歸公乘馬, 祭服五稱, 牛羊豕鷄狗皆三百與門材, 歸夫人魚軒, 重錦三十兩.
위지유민남녀칠백유삼십인, 익지이공, 등지민위오천인, 입대공이려우조. 허목부인적재치. 제후사공자무휴수거삼백승, 갑사삼천인이수조. 귀공승마, 제복오칭, 우양시계구개삼백여문재, 귀부인어헌, 중금삼십량.
[解釋] 위나라의 남은 백성 남녀 730명과 공`등의 백성을 보태어, 5000명이 되니, 대공을 임금으로 세워 위나라 조읍에 임시로 거처하게 했다. 그래서 許나라 목부인이 載馳라는 시를 지어 위나라의 멸망을 슬퍼했다. 齊나라 임금은 공자 무휴로 하여금 병거 300승과 甲士 30000명을 거느리고 가서 대공이 묵고 있는 조 지방을 지키게 했다. 그리고 대공에게는 승마와 祭服 5벌과 소`、양、돼지、닭、`개 등 300 마리와 문을 만들 재목을 보내고, 부인에게는 물고기 가죽으로 장식한 부인용 수레와 고운 비단 30필을 보냈다.
鄭人惡高克, 使帥師次于河上, 久而弗召. 師潰而歸, 高克奔陳. 鄭人爲之賦淸人. 晉侯使大子申生伐東山皐落氏. 里克諫曰 : 「大子奉冢祀, 社稷之粢盛, 以朝夕視君膳者也. 故曰冢子. 君行則守, 有守則從. 從曰撫軍, 守曰監國, 古之制也.
정인오고극, 사솔사차우하상, 구이불소. 사궤이귀, 고극분진. 정인위지부청인. 진후사태자신생벌동산고락씨. 이극간왈 : 「태자봉총사, 사직지자성, 이조석시군선자야. 고왈총자. 군행즉수, 유수즉종. 종왈무군, 수왈감국, 고지제야.
[解釋] 정나라 사람이 대부 고극을 미워해서, 군대를 거느리고 황하 가에 가서 주둔케 하고서, 오래도록 불러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정나라 군대는 장기간 수비에 지쳐 자동적으로 궤멸되어 해산해 버리고, 고극은 진나라로 달아났다. 그래서 정나라 사람들이 이 때문에 淸人이란 시를 지어 정나라 문고의 정치를 기롱했다. 晉나라 임금이 태자 신생으로 하여금 동산의 고락지를 정벌하게 했다. 이에 대부 이극이 진나라 임금에게 간하기를, 「大子란 종묘나, 사직에 제물을 바치고, 조석으로 임금님의 식사를 감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총자라고 부릅니다. 임금님이 전쟁 등으로 서울을 떠났을 때에는 태자는 서울을 지키고, 서울을 지키고 서울을 지킬 사람이 있을 때는 임금님의 출정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출정했을 때를 무군이라 하고, 서울을 지키는 것을 감국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옛날부터의 제도입니다.
夫帥師, 專行謀, 誓軍旅, 君與國政之所圖也, 非大子之事也. 師在制命而已. 稟命則不威, 專命則不孝. 故君之嗣適不可以帥師, 君失其官. 帥師不威, 將焉用之? 且臣聞皐落氏將戰. 君其舍之.」
부솔사, 전행모, 서군려, 군여국정지소도야, 비태자지사야. 사재제명이이. 품명즉불위, 전명즉불효. 고군지사적불가이솔사, 군실기관. 솔사불위, 장언용지? 차신문고락씨장전. 군기사지.」
[解釋] 대저 군대를 거느리고, 전적으로 작전을 꾀하거나, 군대에게 명령해서 경계시키는 것은, 임금이나 국정들이 할바요, 大子가 할 일이 아닙니다. 군대란 명령권을 장악하면 그만입니다. 장군이 다른 사람의 명령을 받아 행동하면 위엄이 없고, 태자가 군대를 이끌고 행동하면 불효입니다. 그러므로 임금님의 후계자는 군대를 거느려서는 안 됩니다. 태자에게 군대를 통솔하게 하는 것은, 임금이 사람을 부리는 도를 잃을 것입니다. 태자가 군대를 통솔하면서 일일이 군명을 받는다면 장수로서의 위험이 없으니, 어찌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또 신이 듣건대 고락씨는 한번 결전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임금께서는 태자를 부리지 마시고 내 버려두십시오.」하였다.
公曰 : 「寡人有子, 未知其誰立焉.」 不對而退. 見大子, 大子曰 : 「吾其廢乎?」 對曰 : 「告之以臨民? 敎之以軍旅. 不共是懼. 何故廢乎? 且子懼不孝, 無懼弗得立. 修己而不責人, 則免於難.」
공왈 : 「과인유자, 미지기수립언.」 부대이퇴. 견태자, 태자왈 : 「오기폐호?」 대왈 : 「고지이림민? 교지이군려. 불공시구. 하고폐호? 차자구불효, 무구불득립. 수기이불책인, 즉면어난.」
[解釋] 그러자 진나라 임금은 말하기를, 「과인에게는 자식이 많으나, 누구를 후계자로 세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극은 대답도 하지 않고 불러 나왔다. 이극은 곧 大子를 만나니, 大子가 묻기를, 「나는 태자의 지위로부터 폐위되는 것입니까?」라고 말했다. 이극이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임금님께서는 태자께서 곡옥의 주인이 되어 백성들을 어떻게 거느릴 것인가? 또는 장수가 되어 군대를 어떻게 거느릴 것인가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태자께서는 의무를 다하지나 못했나 하고 두려워하지 마십십시오. 그러니 어찌 폐위될 까닭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자식으로서 불효한 것을 할까 두려워하시고, 왕위에 못 오를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수양해서 남을 꾸짖지 않는다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 했다.
大子帥師. 公衣之偏衣, 佩之金玦. 狐突御戎, 先友爲右, 梁餘子養御罕夷, 先丹木爲右, 羊舌大夫爲尉.
태자솔사. 공의지편의, 패지금결. 호돌어융, 선우위우, 량여자양어한이, 선단목위우, 양설대부위위.
[解釋] 大子 신생이 상장군이 되어 군대를 거느리고 줄전하게 되었다. 진나라 임금은 태자에게 편의를 입히고, 금결을 허리에 차게 했다. 狐突이 태자가 타는 수레의 마부가 되고, 先友가 그 우익이 되고, 梁餘子養이 罕의 마부가 되고, 先丹木이 그 우익이 되고, 羊舌大夫가 군위가 되었다.
先友曰 : 「衣身之偏, 握兵之要. 在此行也, 子其勉之, 偏躬無慝, 兵要遠災. 親以無災, 又何患焉?」
선우왈 : 「의신지편, 악병지요. 재차행야, 자기면지, 편궁무특, 병요원재. 친이무재, 우하환언?」
[解釋] 先友가 말하기를, 「몸에 편의를 입히고, 병권을 의미하는 금결을 차게 한 것은 임금을 대신 전결하여 싸움을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이번 행군에는, 자네가 힘을 많이 쓰게, 편의를 입힌 것은 결코 악의에 의한 것이 아니고, 금결을 차게 한 것은 재앙을 멀리하게 한 것이다. 임금에게 사랑을 받아 화를 머리하게 되었으니, 또한 무슨 걱정할 일이 있겠는가?」라 하였다.
狐突歎曰 : 「時事之微也, 衣身之章也, 佩衷之旗也. 故敬其事, 則命以始, 服其身, 則衣之純, 用其衷, 則佩之度. 今命以時卒, 閟其事也, 衣之尨服, 遠其躬也, 佩以金玦, 棄其衷也. 服以遠之, 時以閟之, 尨凉, 冬殺, 金寒, 玦離. 胡可恃也? 雖欲勉之, 狄可盡乎?」
호돌탄왈 : 「시사지미야, 의신지장야, 패충지기야. 고경기사, 즉명이시, 복기신, 즉의지순, 용기충, 즉패지도. 금명이시졸, 비기사야, 의지방복, 원기궁야, 패이금결, 기기충야. 복이원지, 시이비지, 방량, 동살, 금한, 결리. 호가시야? 수욕면지, 적가진호?」
[解釋] 그러나 狐突은 한탄하여 말하기를, 「시간은 일의 상징이요, 옷은 신분을 밝히는 것이고, 몸에 차는 것은 충심의 표징이다. 그러므로 그 일을 신중히 할 때에는, 계절의 처음인데 불과 여름에 명령하는 것이고, 태자를 사랑하여 그 몸에 의복을 줄 경우에는, 순수한 옷을 입히고, 패자의 충심을 신용한다면, 일상적인 옥결을 차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진나라 임금은 신생에게 군사를 명하는데 사시의 끝인 12월에 출정하게 한 것은, 그 일을 막히게 하는 것이고, 잡색의 옷을 입게 한 것은, 그 몸을 멀리한 것이요, 金玦을 허리에 차게 한 것은, 태자의 충심을 버리게 한 것이다. 이미 의복은 태자를 멀리하는 뜻을 나타내고, 명령한 시기는 일을 막히게 했으며, 잡색의 옷은 냉정한 마음을 나타내고, 겨울은 만물을 숙살하며, 金은 차고, 玦은 떨어지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니 어찌 임금을 믿을 수가 있겠는가? 비록 힘쓴다고 해도, 狄을 전멸시킬 수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梁餘子養曰 : 「帥師者, 受命於廟, 受賑於社, 有常服矣. 不獲而尨, 命可知也. 死而不孝, 不如逃之.」
량여자양왈 : 「솔사자, 수명어묘, 수진어사, 유상복의. 불획이방, 명가지야. 사이불효, 불여도지.」
[解釋] 또 梁餘子養은 말하기를, 「군대를 이끄는 자는, 장군의 명령을 종묘에서 받고, 제물을 사에서 받고, 일상적인 군복을 입어야 한다. 그러한 정해진 예를 받지 못하고 편의를 주었으니, 임금의 명령한 뜻을 가히 알 수 있다. 그러니 죽어도 효도를 못할 바에야, 차라리 도망가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
罕夷曰 : 「尨奇無常, 金玦不復, 雖復何爲? 君有心矣.」 先丹木曰 : 「是服也, 狂夫阻之. 曰盡敵而反, 敵可盡乎? 雖盡敵, 猶有內讒, 不如違之.」
한이왈 : 「방기무상, 금결불복, 수복하위? 군유심의.」 선단목왈 : 「시복야, 광부조지. 왈진적이반, 적가진호? 수진적, 유유내참, 불여위지.」
[解釋] 또 罕夷는 말하기를, 「편의라는 이상한 옷은 일상적인 옷이 아니고, 金玦은 원상태로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니, 비록 나중에 나라로 돌아간다 한들 어떻게 할 것인가? 임금에게는 무슨 나쁜 마음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先丹木은 말하기를, 「이 편의란 옷은, 미친 사람도 안 입는 것이다. 적을 멸하고 돌아오라고 했으나, 敵을 전멸시킬 수가 있겠는가? 비록 적을 전멸시켰다 하더라도, 오히려 궁 안에서 참소하는 자가 있을 것이니, 이곳을 도망하는 것만 못하리라.」고 했다.
狐突欲行, 羊舌大夫曰 : 「不可. 違命不孝, 棄事不忠. 雖知其寒, 惡不可取. 子其死之.」 大子將戰, 狐突諫曰 : 「不可. 昔辛伯諗周桓公云, '內寵並后, 外寵二政, 嬖子配適, 大都耦國, 亂之本也.' 周公弗從. 故及於難. 今亂本成矣. 立可必乎, 孝而安民, 子其圖之. 與其危身以速罪也?」
호돌욕행, 양설대부왈 : 「불가. 위명불효, 기사불충. 수지기한, 오불가취. 자기사지.」 태자장전, 호돌간왈 : 「불가. 석신백심주환공운, '내총병후, 외총이정, 폐자배적, 대도우국, 란지본야.' 주공불종. 고급어난. 금란본성의. 입가필호, 효이안민, 자기도지. 여기위신이속죄야?」
[解釋] 그래서 狐突이 태자를 데리고 도망가려 했으나, 羊舌大夫는 말했다. 「그것은 안 됩니다. 어버이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불효이고, 임금이 명령한 일을 포기하는 것은 불충입니다. 임금님의 냉담한 마음을 알았다 하더라도, 악한 일을 택해서는 안 됩니다. 태자께서는 전사하시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태자가 싸우려 나가려는데, 狐突이 또 간하기를, 「그것은 안 됩니다. 옛날 주나라 대부 신백이 주나라 환공에게 간하기를, '임금의 총애를 받는 첩이 정비와 나란히 행동하고, 임금의 사랑을 받은 신하가 집정관인 정경과 세력을 같이하며 초애를 받는, 첩의 자식이 적자와 짝을 이루고, 지방의 대도시가 국도와 필적한다면, 나라를 어지럽히는 근본이 된다.'고 진언했으나, 주공은 이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화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진나라는 어지러움의 근본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태자로서 왕위에 오르는 것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전사하지 않고, 효도를 다하며 싸우지 않고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최선책을, 당신은 모색해 보십시오. 싸워서 몸을 위태롭게 하고서도 죄를 짓는 것과 어느 것이 낫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成風聞成季之繇乃事之, 而屬僖公焉, 故成季立之. 僖之元年, 齊桓公遷邢于夷儀, 二年, 封衛于楚丘. 邢遷如歸, 衛國忘亡.
성풍문성계지요내사지, 이속희공언, 고성계립지. 희지원년, 제환공천형우이의, 이년, 봉위우초구. 형천여귀, 위국망망.
[解釋] 희공의 어머니 성풍은 성계의 점괘를 듣고서 성계에게 예를 다하면서, 희공의 일을 부탁하므로, 성계는 희공을 왕으로 세웠다. 僖公 元年에, 齊나라 桓公은 邢나라를 이의란 곳으로 옮기고, 희공 2년에, 위나라를 초구에 봉했다. 邢나라가 이의로 이주하는 모양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것 같고, 衛나라 사람은 본국이 멸망된 것을 잊은 것같이 모두가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衛文公大布之衣, 大帛之冠, 務材, 訓農, 通商, 惠工, 敬孝, 勸學, 授方, 任能. 元年, 革車三十乘, 季年, 乃三百乘.
위문공대포지의, 대백지관, 무재, 훈농, 통상, 혜공, 경효, 권학, 수방, 임능. 원년, 혁거삼십승, 계년, 내삼백승.
[解釋] 衛나라 文公은 거친 무명옷을 입고, 거친 비단으로 만든 관을 쓰는 검소한 생활을 해서, 재물을 아끼기에 노력하고, 농민을 가르쳐 농업에 힘쓰게 하고, 상인의 왕래를 편안하게 하며, 공인을 우대하고, 교육을 중요시하고, 학문을 장려하며, 생활에 적합한 방법을 가르치고, 재능 있는 사람을 임용했다. 그 결과 원년에는, 병거가 30승이었으나, 그 말년에는, 300승이나 구비하는 강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