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에서 공표한 해미성지의 국제성지 인준 교령.
대전교구 해미성지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 개막일인 2020년 11월 29일 자로 ‘교황청 승인 국제 성지’로 설정됐다.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장관 살바토레 리노 피지켈라 대주교)에서 보내온 교령(문서번호 ST/872020/P)이 코로나19 사태로 연착, 지난 2월 주한 교황 대사관을 거쳐 뒤늦게 대전교구에 전달됐다.
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이 교령에 따라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일인 2021년 3월 1일 ‘해미 국제성지 선포의 기쁨을 나누며’라는 제목의 교구장 사목서한을 발표, 해미성지가 교황청 승인 국제 성지로 선포됐다는 교령을 공표했다. 특정 교구 성지가 교황청 승인 국제 성지로 선포되기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는 이 교령에서 “지난 3세기 중에 한국인들이 거하는 땅에 있는 교회는 실로 무서운 박해를 경험했고, 한국 교회 수만 명의 젊은 신자, 어른 신자, 주교들, 사제들, 평신도들, 축성생활자들이 순교에까지 이르렀다”며 “그분들은 주님의 생명 자체가 저마다의 희생을 통해 드러나게 하기 위해, 각자의 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지고 갔던 분들”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자신들의 얼굴에 그리스도의 얼굴을 또렷하게 담고 계셨던 그분들의 증언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전구를 통해 능히 후손들에게 전해질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증인들의 살아있는 공동체가 이뤄지게 한다”며 “이 증언은 옛 신자들의 ‘순교자들의 피는 신자들의 씨앗이다’라는 격언의 확실성을 확증해 준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에 따라 “우리의 공경하는 형제 유흥식 라자로 대전교구장 주교님과 한국 주교단의 청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한국 순교 성인들과 복자들의 증거의 크나큰 영예, (하느님) 백성의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순교터들에서 백성들이 얻는 영적 유익의 막대한 유용성과 풍요로움으로 인해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는 한국 해미 순교자들의 교구 성지를 국제 성지로 설정하며 해미성지의 정관을 승인한다”고 공표했다.
유 주교는 특히 사목서한을 통해 “교황청의 이번 발표는 ‘무명 순교자’를 하느님 앞에 가장 큰 이름으로 세우고, 교회의 기억 안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그들의 삶을 밝혀준다”며 “선교사 없이 신앙을 받아들이고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으로 신앙을 증거한 해미성지, 나아가 세계 교회가 주목하는 신앙의 못자리인 내포 교우촌의 삶과 영성을 우리 삶으로 기억하고 되살리며 우리 옆에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만나자”고 당부했다.
이미 선포된 역사적인 장소, 성모 발현지, 유명한 성인 관련 순례지와 비교하여 볼 때 해미성지는 국제 성지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외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리다. 유명한 성인이 있거나 특별한 기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이름이나 세례명을 남기고 순교한 132명의 신자가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 이다. 그럼에도 대부분 하층민이어서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천여명이 넘는 분으로 추정되는 신앙선조들은 가난했지만, 기쁘게 살다가 영광스런 죽음을 맞이하고 묻힌 곳이 해미 무명 순교 성지이다.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비참하게 생매장까지 당했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그 누구보다 빛나는 이름을 받았을 무명 순교자들을 가톨릭교회가 신앙의 모범으로 인정하고, 자랑스럽게 전 세계에 알린 영광스러운 사건이 ‘해미 국제 성지’ 선포이다.
속칭 "해뫼"라 일컬어지는 해미 고을은 역사적으로 조선 초기에 병마 절도사의 치소를 둔 곳으로서 조선 중기에는 현으로 축소 개편된 진영에 1400-15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무관 영장이 현감을 겸하여 지역 통치를 하던 곳이다. 내포일원의 해안 국토수비를 명목으로 진영장은 국사범을 독자적으로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다 할 국토 수비의 전공 기록을 남긴 바 없는 해미 진영은, 1790년대부터 1880년대에 이르는 100년간,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대량 처형한 오명만을 남기고 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천주교회사에 있어서, 대박해의 때로 기록된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조정의 천주교 탄압을 공식화 할 때 외에도 해미 진영은 지속적으로 내포 지방의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들여 죽였다.
병인 대박해 때에만도 조정에 보고된 해미 진영의 천주교 신자 처결의 숫자가 1천여 명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그 이전 80여 년 간에 걸친 해미 진영의 지속적인 천주교 신자 처결의 숫자는 수천명일 것으로 추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지속적인 박해 동안에 해미 진영(지금의 해미 읍성)의 두 채의 큰 감옥에는 한티 고개를 넘어 내포 지방에 끌려온 천주학 죄인들이 항상 가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도 바로 이곳에서 옥사하였다.)
이 감옥터에는 당시 손발을 묶이고 머리채를 묶인 순교자들이 매달리어 고문대로 쓰여지던 호야나무 가지가 지금도 흔적을 지니고 서 있다. 그래서 감옥터를 1950년대에 해미 공소 신자들이 식량을 절약하여 1800여 평을 확보하고 공소 강당을 세웠는데, 1982년에 정부가 문화재 관리 정책의 명목으로 공소 강당을 철거하고 그 터를 일부 보상, 일부 징발하고 순교 기념비만 새로 세워주었다. 그 후 오늘 날 그 터의 교회적 성역화 사업이 불허되고 있다.
이렇게 내포에서 끌려와 감옥에 갇혀 있던 그 많은 순교 선열들을 군졸들은 매일같이 해미 진영 서문 밖에 끌어내어 교수,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으로 죽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더욱 잔인한 방법이 고안되기도 했다. 돌다리 위에서 죄수의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메어치는 자리개질이 고안되어 죽이기도 하였고 여러 명을 눕혀 놓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하였는데, 혹시라도 꿈틀거리는 몸뚱이가 있으면 횃불로 눈알을 지져대기도 하였다 한다.
그리하여 해미 진영의 서문 밖은 항상 천주학 죄인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내를 이루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지금은 해미 진영 서문 밖 바로 앞에 있는 칠십평 좁은 순교지에 자리개질해서 죽였던 돌다리가 보존되어 있는데, 1956년도에 서산 성당으로 이전 보존되었다가 1986년 9월에 원위치로 귀환되었고 바로 그 곁에 1989년에 세운 순교 현양비가 있다. 2009년 1월 8일에 자리개돌 원석은 여숫골 순교자 기념관 맞은편에 옮겨 보존되어 있고 그 터에는 모조품이 자리를 하고 있다.
특히 1866년 병인년으로부터 1868년 무진년에 이르는 대박해 때에는, 많은 숫자의 죄수들을 한꺼번에 죽이면서 시체 처리의 간편함을 위하여 생매장형이 시행되었다. 해미 진영의 서녘 들판에 십 수 명씩 데리고 나가서, 아무 데나 파기 좋은 곳을 찾아 큰 구덩이를 만들어 한마디 명령으로 산 사람들을 밀어넣어 흙과 자갈로 끌어 묻어버렸다.
또한 생매장형이 시행되면서 여름철 죄인의 수효가 적을 경우에는 사령들이 번거로움을 덜기 위한 방법으로 개울 한가운데에 있던 둠벙에 죄인들을 꽁꽁 묶어 물속에 빠뜨려 죽이는 수장 방법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해미 지역 외인들을 천주학 죄수들을 빠뜨려 죽인 둠벙이라 해서 죄인 둠벙이라 부르고 있었으나 현재는 이름조차도 변해 진둠벙이라 불리고 있다.
교회가 이곳을 순교지로 인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농부의 연장 끝에 걸려들어 버려지던 뼈들이 많았다 하는데 이 때 캐어내던 뼈들은 수직으로 서있는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것은 죽은 몸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 묻혔다는 증거이다.
해미진영 서녘의 생매장 순교 벌판에서는 1935년도(일제 시대) 서산 본당의 범 베드로 신부 지도하에 순교자의 유해 발굴 때 유해 일부와 유품 성물이 발굴되어 30리 밖 상홍리 공소에 임시 안장되었다가, 1995년 9월 20일 유해 발굴터인 원위치로 안장되었고, 순교자의 유해는 별도로 보존 처리되어 보존되고 있다.(유해참배실). 그리고 유해 발굴지 인근인 하천 위에 16m 높이의 철근 콘크리트 조형물인 해미 순교탑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순교자중 최근까지 불확실한 이름과 출신지를 남기신 순교자는 교회측기록 67명 관측기록 65명과 무명순교자로 기록된 47명으로 되어 있으나 그밖에 이름모를 순교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모두가 무명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순교자들 중 홍주(홍성) 및 공주 등 상급 고을로 이송된 순교자들은 이송 사실과 이름들이 기록으로 남겨진 것으로 보아 그 이송된 순교자들은 해미 진영장의 독자적 처결에 있어서 사후에 문책거리가 됨직한 신분의 사람들이었으며, 해미 진영은 처형 후 문책의 배후 세력을 갖지 못한 서민층 신자들만을 심리나 기록 절차 없이 마구잡이로 죽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해미 성지는 1985년 4월에 해미 본당이 창설된 후 해미 순교 선열 현양회를 발족하였고 2000년 8월 기공식을 하였으며 2003년 6월 17일 기념 성전을 건립하여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셔놓고 있다. 2014년 8월 16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124위중 해미순교자 세 분 즉, 인언민 마르티노, 이보현 프란치스코, 김진후 비오가 시복되었고 그 다음 날 17일에는 이 곳 성지를 방문하시어 시복기념비를 제막, 축복하시었고 곳곳을 순례하셨다. 이렇게 조성된 생매장 순교지 일대는 "예수 마리아!"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로 알아듣던 곳이 이제는 주민들의 입으로 "여숫골"이라는 이름의 땅이 되어 오늘의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해미 홈 페이지 발췌)
■ Guide for International Pilgrims
Haemi martyrdom shrine proclaimed as Vatican's int'l pilgrimage site
The Haemi Martyrdom Holy Ground, a Catholic sacred place in Seosan, central Korea, has been proclaimed as an official international pilgrimage site by the Vatican.
The Holy See designated and proclaimed the Seosan martyrdom holy ground, also known as the Shrine of Haemi, as an official international pilgrimage site on March 1, 2021, according to the municipality of Seosan, a South Chungcheong Province city about 280 kilometers south of Seoul.
On Nov. 29, 2020, the Vatican approved the Shrine of Haemi as an official international pilgrimage site and has since taken procedures for its proclamation.
The Haemi Martyrdom Holy Ground is the site where about 2,000 Catholics in the central region were buried alive during a mass persecution of Korean Catholics by the Joseon Dynasty (1392-1910) between 1866 and 1882.
A 16-meter-high memorial tower was set up to pay tribute to the nameless martyrs. There are records of only 132 Korean Catholics who were martyred with their names or baptismal names.
The Haemi shrine has become the nation's second official international pilgrimage site proclaimed by the Vatican after the Seoul Catholic Pilgrimage Routes. It is also the third of its kind in Asia.
The Vatican's other existing official international pilgrimage sites include three historical places -- Jerusalem of Israel, Rome of Italy and Santiago of Spain -- and 20 sites of Marian apparitions across the world.
"The proclamation of the Haemi Martyrdom Holy Ground as an official international pilgrimage site is a glorious event that recognizes the faith of nameless martyrs as an example and makes it known to the entire world," a Catholic priest in charge of the shrine said.
첫댓글 국제 성지로 승인된곳 이라구요
어느 가을에 친구랑 갔던 기억이..
순교자들의 숫자가 그렇게도 많았네요 ㅠ
목숨을 걸고 주님을 사랑한 풀잎처럼 순한 순교자들의 죽음에 흔적들이 잔 바람이 되어 그곳에 여여했었던 그 가을
어느 길가에 설익은 모과열매 떨어져 두어개 줏어왔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