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 아직 모름 (2024년 가을)
2. 목적지 : 제주 올레길
3. 만남 장소 : 7코스 외돌개 계단 앞
3. 참석자격 : 쿤바사람들
4. 준비물 : 각자 배낭, 텐트, 침낭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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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올레길 백패킹 ♣
1.
십오년쯤 되었으려나?
추석이 얼마 안남았을 때니까
9월 중하순쯤?
휴가를 얻어 한국에 나와있는데
친구놈이
비행기표 싼게 나왔다며
제주도를 가자고 했다
여기서 팁 하나 :
원래 비행기표는
성수기 직전과 직후에
싸게 나오는게 많다 ^^
어차피 휴가니까
가보자며 계획을 짜는데
둘다 산과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느닷없이 백패킹에 의기투합,
그간 백패킹은 많이 다녔지만
일주일 씩이나?
그것도 제주도를?
잠시 망설였으나
결국 텐트, 침낭, 버너, 코펠 등
비박장비를 들쳐매고
일주일간 올레길을 돌기로 했다
물이나 라면, 고기 등 식자재는
올레길 곳곳의 가게에서 사면되니까
옷이랑 기본 장비만 간단히 챙겼는데도
배낭 무게는 거의 20킬로에 육박,
젊으니까 그 정도쯤이야 뭐 ^^
2.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기가
조금 부족했지만
열심히 검색해서 코스를 찾았다
올레길이야 어딜가나 좋지만
그리하여 우리가 선택한 곳은
7코스 외돌개에서 시작하여
송악산자락의 10코스까지
일주일간 해안도로와 백사장을 따라
약 80Km를 걷는 여정,
부푼 마음으로 비행기에 탑승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우리의 출발지,
제주 남단 서귀포 쪽의 외돌개로 향했다
다행히 날씨는 너무 좋았고
추석이 다가오니
완전 무더위는 한풀 가셔서
그야말로 백패킹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없는 조건이었다
3.
아무래도 배낭이 무거우니
걷다가 자주 쉬기도 하고
기막힌 풍광에 정신을 빼앗겨
넋놓고 바라보기도 하고
가다가 경치가 좋으면
그 자리가 바로 쉼터,
점심은 간단히
라면을 끓여 먹거나
식당에서 먹기도 하고
워낙 올레길 곳곳에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좋아서
오후 해질녁이 되면
경치 좋은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밥을 하고, 고기를 굽거나
카레를 만들어서
불멍을 하며
술 한잔을 나누다 보면
우리처럼 백패킹으로
올레길을 도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 근처에 텐트를 치고
며칠간 면도를 안해서
텁수룩한 수염,
가을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들,
땀이 절은 꼬릿한 셔츠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반갑습니다~
이거 좀 드셔보세요
고기가 맛있게 익었어요~
술 한잔 하실래요?
여기 커피도 있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옹기종기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음식을 나누고
등잔불, 호롱불
노랗거나 빨간 텐풍 아래
밤은 깊어가고
하나둘 들어가 잠을 청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은 밝아오고
부스스 일어나
주섬주섬 텐트를 정리하고
짐을 배낭에 챙겨 넣으면서
즐거웠습니다~
조심하세요~
즐거운 올레길 되셔요~
다시 어디서 언제 볼지 모르는
쿨한 인사들을 나누고
각자의 길로 떠나는
올레 백패킹
4.
낭만이 사라지고
AI가 난무하는 시대
편리한 시대,
간편한 세상,
콘도도 많고 좋은 숙소도 많고
편리한 교통수단도 많지만
그때의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일까?
아니,
강렬했다기 보다는
워낙 촉촉하게 젖어들었던
추억이라서일까?
문득,
다시 배낭을 챙겨서
올레길을 가보고 싶다
걷다가 아무 곳이나
마음에 들면,
그곳에 머무르고 싶으면
텐트를 치고
몸을 누이면 그만
해가 떨어질
어스름 무렵이면
우리 텐트 옆에
그때처럼 다른 올레꾼들이
삼삼오오 텐트를 치겠지?
그러면 우리는
그때처럼 누군가와
밥이나 술을 나눌 것이고
불멍을 함께할 것이고
환상의 텐풍사진을 찍을 것이고
바닷바람 소리를 함께 들으며
꿈에 대해
낭만에 대해
별에 대해
문화와 자연과 예술과 시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고
아침이면 툭툭 털고
다시 배낭을 챙겨 매고
유치하게 전화번호 교환 따위는 사절,
언제 우연히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길을 가는
그것이 올레길,
그것이 세상의 길,
그것이 우리 살아가는 길...
가을이 오면
며칠간 면도을 안해
꼬질한 얼굴을 보여도 아무렇지 않을
좋은 이들과 함께
그 길을
다시 가고싶다
추억의 그 올레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