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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Q 6. 봉헌을 강요한다.
(4) 무형의 성전 카페 마리아처럼에서 진행되는 교육 내용
Q 7. 반복 교육
Q 8. 앵무새 같은 댓글들과 구호
Q 9. 가톨릭이 아닌 타종교, 뉴에이지 강의를 듣도록 지도한다.
Q 10. 연옥을 거치지 않고 천국을 갈 수 있다.
Q 11. 매일미사를 하지 말라고 한다.
Q 12. 그냥 내맡기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 * *
(3)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 [ 카페 운영규정 ]
<마리아처럼-거룩한내맡김-끊임없는화살기도> 카페 운영규정
제6조 【회원 탈퇴 및 재가입】
가입 후 1년이 경과한 하덧사가 봉헌하지 않는다면 탈퇴된다. >
[ 카페 운영규정 ]에 명시된 바와 같이
<무형의 성전 카페 마리아처럼>에서는
능구 3개월이 지나 화살기도가 습관화되면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을 권합니다.
* * * * * * * * *
Q 6. 봉헌을 강요한다.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이란,
대부분의 신자들이 세례와 견진 때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하느님께 자신의 생명까지 다 내놓을 각오(결심)>를 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진정으로 인정해 드리고,
자신의 모든 것 - 목숨까지 하느님 앞에 내놓겠다는 굳은 결심>을 봉헌하여
세례와 견진성사의 약속을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맡김의 봉헌서약은,
세례 때의, 서원 때의, 서품 때의 부족했던 부분을 완전하게 보충시켜주는 "갱신식"
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부족한 부분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맹세 수준의 굳은 결심"입니다.
이러한 <내맡김의 봉헌>에 있어서도 반드시 <식>이 필요하며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서약>은 미사를 통하여 봉헌됩니다.
만일, 외적인 의식을 통한 <서약> 없이도
혼자만의 굳은 결의로
많은 이들이 늘 변함없이 한결같은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다면
오늘날처럼 그렇게 수많은 수도공동체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의식이
너무 복잡하고 화려하고 더 나아가 짐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어떤 의미 있는 일에 있어서 <의식>은 필요한 것입니다.
<내맡김의 봉헌 서약>에서 가장 중요한
단호한, 맹세 수준의 100%의 결심을 한 봉헌자는
삶의 모습이 단 순간에 변화하며
우리의 결심이 <완전>하면
하느님이 우리의 모든 부족함을 100% 다 받아주시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나날이 조금씩 조금씩 성화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가장 큰 활력이 되는 것이 "화살기도"입니다.
<내맡김의 삶(영성)>을 살아가려 개인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을 한다 해도
<내맡김의 봉헌식>을 올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는
분명할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은 주님께 내맡기며 산다 해도
이곳에 가입한 사람의 가입목적은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을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 봉헌 없이 무형의 성전에 머무는 것 >은 그리 큰 의미가 없으며
가입 후 1년 내 봉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4) 무형의 성전 카페 마리아처럼에서 진행되는 교육 내용
<능구 3개월>을 하여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어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을 한 다음
중요한 것은,
거룩한 내맡김의 굳은 결심을 완성하기 위하여
그 결심이 변질되지 않도록 <끊임없는 화살기도>를 계속하여야 하며
이 세상의 모든 지식에 대한 앎이 그렇듯이,
하느님 신앙에 대한 성숙, 영적성장은 <교육이 필요>하므로
반드시
<무형의 성전을 방문>하여
영적지도 사제의 지도를 받으며
거룩한 내맡김의 삶을 잘 살아나갈 수 있도록
성전에서 진행되는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상의 우도와 같이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은혜로 한순간에 변화, 성화될 수도 있지만
극소수의 한정된 사람에게만 해당될 것이고
오랜 기간 굳어진 습관과 함께 삶의 모습이 변화하려면
그만큼의 오랜 시간과 함께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
변화와 성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도움말
【 < 논어>
陽貨篇第十七(양화편제십칠)
17-2 자왈: "性相近也, 習相遠也."(성상근야, 습상원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은 서로 현격하게 다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성은 누구나 비슷하지만
후천적으로 배양되는 습관은
각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배우고 수양하여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 】
【 생 각 → 행 동 → 습 관 → 성 품 → 운 명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sow, a thought, reap a action)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sow, a action, reap a habit)
습관을 바꾸면 성품이 바뀌고 (sow a habit, reap a character)
성품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
지속적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어서 좋은 습관을 익히고 실천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출처]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 】
* * *
어떻게 진행되나?
이러한 <무형의 성전 카페 마리아처럼>에서의 <신앙교육>은
게시글과 댓글을 통한 <무한 반복교육>이 특징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으며
하느님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일 뿐더러
그래야 ‘머리’에 새겨지고
머리에 새겨진 것이 ‘삶(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며
사람의 기억과 깨달음은 반복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기에
영적성장의 지름길이 바로
<끊임없는 반복 교육>을 통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형의 성전 안에는 수많은 지식과 지혜가 쌓여 있으며
가입 전에 올려졌던 많은 글들을 다 읽어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가입 시기가 다른 회원들을 위하여
보조교사들이 회원들의 영적성장을 위하여
<과거의 게시글>들의 댓글을 통한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도움말
헤르만 에빙하우스 (Hermann Ebbinghaus)의 망각곡선 - 1800년대의 독일의 심리학자
보시다시피 학습이 끝난 후 10분부터 망각이 시작되며
1시간만 지나도 약 절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개인마다 조금씩의 정도차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러한 모양의 망각곡선을 따라가게 됩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반복학습과 복습을 통해서
공부한 내용들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빨간색 그래프는
우리가 한번 학습을 한 후 그대로 시간이 흐른 기존의 그래프와 동일합니다.
노란색 그래프는 10분 후 다시 복습을 했을때의 그래프입니다.
이경우에는 놀랍게도
첫 학습후 1일이 지났을때 기억량이 40%까지 감소한 것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의 기억량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기억량은 감소하게 됩니다.
파란색 그래프는
첫 학습후 10분째에 한 번,
그리고 다시 기억량이 감소하기 시작하는 1일째에 또 한번 더 복습을 했을 경우입니다.
이 내용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 바로 위의 그래프인데.
확실한 것은 일정한 시간주기를 기준으로 복습을 반복할 경우며,
결국에는 장기기억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망각곡선을 역이용하여서 학습을 한다면 더 효율적인 학습을 할 수 있습니다.
( [출처] [둔산동 대치학원] 에빙하우스 망각곡선. )
* * * * * * * * *
Q 7. 반복 교육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억'이 사라지면 '존재' 자체가 사라집니다.
'치매'에 걸린 사람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이천 년 전부터 행해오는 미사성제도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똑같은 예식의 미사가
오늘날까지 지금처럼 반복(되풀이) 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에 대한 기억(말씀과 행적)은
벌써 오래 전 쉽게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기억도 반복 되풀이하지 않으면
하느님에 대한 사랑도 사라집니다.
아니 하느님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집니다, 내 안에서.
<무형의 성전 카페 마리아처럼>의 댓글난은
무척 은혜로운 곳이며
무형의 성전의 앵무새와같은 댓글을 유치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사람의 기억이,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며 말하는 것을 글로 쓸 때
그 기억의 효과가 한층 더 배가 된다는 사실을 무시한 생각입니다.
끊임없는 화살기도와 끊임없는 카페 방문을 하며
무형의 성전에서의 거룩한 글들을 읽으며 적극적으로 댓글에 참여하여
하느님 사랑을 키워 나가야합니다.
도움말
【 가장 훌륭한 기도는
영혼 안에 하느님께 대한 분명한 생각을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분께 대한 우리의 기억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이다.
( 하느님 기억 - 성 베네딕도 화순 수도원 홈페이지 ) 】
【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것은 먼저 그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상의 순간마다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의 태도와 판단을 기억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
예수님처럼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을 기억한 사람은
자신 안에 일어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울과 바르나바가
유다인들의 박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대히 설교하며
그리스계 유다인들과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 안에 머물고 계시는 예수님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기억하고 이야기한 것들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실천을 이끌어 냅니다. (송용민 신부) 】
Q 8. 앵무새 같은 댓글들과 구호
우리 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든 천사들이 이미 다 앵무새였습니다.
그들을 한결같이 한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이사 6,2-3) 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코헬렛1,9)
도움말
【 <아멘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멘’이다.
그분은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이시다”(묵시 3,14).
하느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분에게서 “하느님의 그 모든 약속이 ‘예’가 되기”(2코린 1,20) 때문에
기도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라고 끝맺는다.
신앙고백 끝의 ‘아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동의이자
감사이고 찬양이다.
기도 끝의 ‘아멘’은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열렬한 바람을 표명하는 것이자
간청을 하느님이 들어주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지막 성경의 마감 부분에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이라 쓰여있다.
‘아멘’ 에는 하느님께서 친히 약속한 바를 실현해 주시기를
또한 하느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청원이 담겨있다.
아울러 하느님께서 당신 뜻에 따라 청을 들어주신다는 확신도 포함된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마태 6,8).
(2009년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가톨릭마산 8면) 】
* * * * * * * * *
무형의 성전에서 진행되는 교육 내용에 대한 Q & A
Q 9. 가톨릭이 아닌 타종교, 뉴에이지 강의를 듣도록 지도한다.
비공식적 통계로
유사종교나 신영성 <뉴 에이지>에 빠져들어가는 기성 종교인들 중에,
우리 <천주교 신자>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지금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의 기성종교에 매력을 잃은 많은 젊은 이들이 찾는
신체적, 정신적 해방구가 바로 <뉴 에이지>이며
뉴에이지 영성이나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 빠지는 사람의 대부분이
자신의 종교와 신앙에 기초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무지하니,
그들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싫다고
마르크스, 레닌 등의 공산주의 이론을 무시할 수 없듯이
타종교, 뉴에이지, 사이비 종교 더 나아가서는
<반 그리스도교적>인 강의들도 잘 공부해서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1베드 3,15)준비를 하여
바오로 사도처럼 하느님의 떠버리(사도 17,18)가 되어야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교회 차원에서 발 벗고 나서서
무형의 성전에서는 <뉴 에이지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또
종교간의 대화가 거론되는 현대에
타종교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다른 종교에 대해서 <무지한 신앙인>은 복음을 전할 수 없으므로
적어도
세계 <5대 종교>와
특히 요즘의 <뉴에이지>, 신천지를 비롯한 <유사 종교>등에 대하여
어느 정도 조금은 알아야 되며
하느님은 모든 이들의 하느님이시니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모든 다른 영성도
폭넓게 공부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며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이
뉴에이지 영성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보다 못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며,
부족함과 <무식함>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움말
【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언어로 그 신학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오늘날 아시아 안에서 또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서 전할 건가 끊임없이 연구되어야 됩니다.
유럽의 문화들이 점점 확장되어 가면서
신대륙의 발견 외에 아시아의 문화와 종교들도 접하면서
다른 문화를 접하고 있는 오늘날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다른 종교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대하라고 가르치고 있는지
그리스도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받을 것인 지
좀 배워야 됩니다.
포괄주의( Inclusive),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지,
독일 신학자인 칼 라너가 이부분을 굉장히 강조를 했습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가톨릭 안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느님께서는 그 구원의 보편성을 지니시고
모든 사람들을 당신 나라에 초대해 주시고 받아들이기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가톨릭은 힌두교, 불교 등 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양식과 행동방식뿐 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교회는 지혜와 사랑으로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과 대화하고 협력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을 증언하는 한편
다른 종교인들의 정신적 도덕적 자산과 사회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증진하도록 모든 자녀들에게 권고한다."
- 교회헌장,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문 2항 -
( 박재찬 신부, 종교간 대화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35회 , 토마스 머튼 ) 】
Q 10. 연옥을 거치지 않고 천국을 갈 수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 5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하느님 앞에서 ‘어린이처럼 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어야 하고, 작은 이가 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하느님에게서 나고”, “위로부터 태어나야”(요한 3,7) 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526항)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도록 불림을 받았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543항)
"예수님께서는 당신 가르침의 전형적 형식인
비유들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로 들어오도록 부르신다.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어 주어야 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546항)
평신도들의 임무는
자기의 소명에 따라 현세의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898항)
"그리스도인이여,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십시오.
그대는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
빛과 하느님 나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1691항)
도움말
【 소화 데레사의 연옥에 대한 가르침 (후버트 반 딕 신부, ORC)
1997년 10월 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소화 데레사" 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를 교회박사에 올렸다.
"사람들은 연옥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에
여러 해에 걸쳐 정립된 그녀의 생각과 의구심과 사상이 발전하여
마침내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연옥에 대한 소화 데레사의 가르침"이 생겨나게 되었다.
(참조: hilippe de la Trinite, 연옥에 대한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
연옥은 피할 수 있는 것일까?
데레사는 말하기를,
죽은 다음에 곧장 하늘나라에 간다는 믿음이 부족하여
우리가 하느님께 무례를 범한다는 것이다.
성녀 데레사는 그들이 죽어서 천국에 곧바로 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어떻게?
단순하게 모든 것을 하느님께 신뢰하는 것이다.
빨리 거룩하게 되어 곧바로 천국에 갈 수 있는방법은
<아기가 그의 아버지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듯이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 그것이었다.
작아짐으로 부터 영적 아기가 되는 방법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장점을 계산하기를 멈출 때,
우리는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을 배운다.
아기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다.
이것이 성녀 데레사의 영성이다.
1. 성녀 데레사는 <교회의 박사>이다.
교회에는 35명의 박사가 있으며 현재까지는 그중 네명이 여자다.
교회에서 박사를 선택할 때에는
그녀의 가르침에 오류가 전혀 없다는 의미가 아니며,
세대를 불문하고 크리스천 영성을 돕기 위해 특별히 교회에 의해 추천된다.
성녀 데레사는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는 작아짐의 길의 박사이며
연옥의 가르침은 그녀의 작아짐의 길의 일부이다.
2. 성녀 데레사는 철저한 정통파 였다.
즉 그녀의 연옥에 대한 가르침이
<절대로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음>을 말한다. 】
【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
그것은 소화 데레사 성녀가 말씀하신 대로
‘아기가 그의 아버지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듯이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 바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삶을 살게 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 영혼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
당신께 내맡긴 영혼의 모든 것을 정화시켜 주시어
절대 연옥을 거치지 않도록 섭리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게 해 주신다.
(이해욱 신부의 창 화살 제1부 04) 】
Q 11. 매일미사를 하지 말라고 한다.
외적 신심행위를 신앙생활의 전부로 아는 사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매일미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이사 1,13)
외적 신심행위가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신앙생활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선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하여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아무리 거룩한 일을 하더라도
내 뜻대로 나의 만족을 위하여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회의 가르침>에서 온 것으로 추측하는데
재2차 바티칸 공의회가 <1965년>에 끝났으나
공의회의 정신은 그 이후에도 신앙인들의 생활 속에 계속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외적인 행사나 교육으로만 신자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으며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쇄신시키고 변화된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신자 개인들의 노력에 합하여
전적으로 하느님의 도우심(은총)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신자 스스로 아무리 외적 신심행위에 충실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신자의 삶을 전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설령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순서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일>이며,
그 다음으로 <곁들여 받게 될 모든 것>을 얻는 일입니다.
도움말
【 37 어떤 이들은
성당에 가는 것, 모든 전례에 참여하는 것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의 의지는 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는 이 영혼들이 스스로의 본분에 얼마나 등한한지를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
가는 걸음을 막는 무엇이 있으면 벌컥 화를 내고,
그들의 성덕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 듯 울부짖으니,
그 불평과 불순종으로 가족들의 상처가 되기 쉽상이다.
이 얼마나 맹랑한 성덕인가!
36 만일 그들의 의지가 예수님과 하나 되어
그분 안에서 변화되지 않는다면
- 이 변화에 이르는 과정이야말로 끊임없는 기도이기에 -
그들의 성덕은 그 모든 독실한 실천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이다.
(천상의 책 12-18,)
14 내 뜻을 혼수상태로 있게 하는 그 사람들은
신앙생활의 겉모습만을, 그 옷만을 보여 줄 뿐이다.
내 뜻을 그런 상태로 버려두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도 꾸벅꾸벅 조는 상태가 되어
빛과 선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천상의 책 20-26) 】
【 "가장 중요한 것은,
비록 우리의 눈에는 가장 옳고, 가장 거룩한 것처럼 보이는 일에 있어서까지
자기의 의지를 버리고, 천주의 의지에 따르는 열성이다."
(거룩한 위탁 3편7장) 】
Q 12. 그냥 내맡기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내맡김의 영성은 정적주의와는 전혀 다른 영성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내맡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의 영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하느님의 이끄심에 전적으로 따라 드리기에
'능동의 영성'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수동 + 능동의 영성입니다.
인간의 의지를 최대로 억제할 뿐 아니라,
인간의 의지를 하느님께 다 반납(내맡김)하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수동적인 삶인 동시에,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기에
하느님의 이끄심에 전적으로 이끌려 드리는(능동)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수동)에 대한 충실한 이끌림(능동)처럼
탁월한 인간의 삶은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이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이 곧 <화살기도>이며
화살기도를 통한 하느님에 대한 <집중>과 <몰입>만이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도움말
【 하느님께서 자아포기의 상태로 부른 영혼들은
능동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수동적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적극적인 면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자아포기의 상태란 바로
일상적인 위탁의 덕이 보다 균형 있고 완전하게 실천되어 강화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의무가 실행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뜻을 능동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고,
둘째는 하느님의 뜻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내맡김의 상태란
하느님의 뜻대로 쓰시도록
하느님께 우리의 전 존재를 모두 내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위탁, 내맡김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의 유형무형한 것이 순간순간 빚어지는 대로
하느님의 섭리를 거기서 바라보고
그것을 따르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것은 조건 없이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일뿐입니다.
하느님이 이런 영혼 안에서 찾아보시는 것은
당신 자신의 활동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마음가짐뿐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로하지 않습니다.
(장 삐에르 드 코사드,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제4장 03, 04) 】
【 정적주의[靜寂主義]
명사 :
[종교] 인간의 능동적인 의지를 최대로 억제하고
권인적인 신의 힘에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수동적 사상.
좁은 의미로는
17세기에 에스파냐의 몰리노스(Miguel de Molinos) 등이 주창한
가톨릭 내의 한 사조를 이른다. (Daum 사전) 】
"이것이
사도적 교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그리스도신자의 위탁이며,
그것은 두가지 토대를 전제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즉, 하나는
천주께서는 우리의 일을 배려하신다는 신앙,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동하여 경계한다는 것이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천주를 시험하는 것이다."
(동 비딸 러오데 신부, 거룩한위탁 제1편 제6장 위탁과 현덕)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마태 26,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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