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회]
‘일 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딸을 만났고 그것은 이제 살면서 운이 좋아야 서른 번 남짓 더 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책 장을 덮고 급한 대로 손가락을 접어 햇수를 세 보았다. 언니가 결혼하고 미국에 정착한지 올해로 4년째였다. 며칠 전 대화가 떠올랐다. “그래도 일년에 한 번은 꼭 한국에 나오니까 얼마나 좋아.” “그렇지, 어휴 그 언니네 옆집 김씨 아저씨는 장사하느라 꿈도 못 꾼다더라.” 언니가 직장을 다니고 휴가를 내어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복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일 년에 한 번은 만날 수 있다니 감사한 일이구나.
기술은 우리의 거리를 좁혔다. 전처럼 살을 맞대고 나란히 누워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었다. 떨어져 살면 애틋하다고 단답이 장문이 되었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서로 때를 놓쳐 미처 말 못한 일들이 쌓이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게 우린 가까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숫자로 예고된 우리의 앞날은 사뭇 달랐다. 나는 이제 살면서 운이 좋아야 50번 남짓을 더 볼 수 있고, 엄마 아빠는 곧 예순을 앞두고 있으니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이 서른 번 남짓 더 볼 수 있었다. 하루 보려고 떠날 수 있는 거리도 아니기에, 서로 바빠지면 그보다 더 못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서로 일 년에 한 번은 볼 수 있다는 것과 평생에 50번의 기회만 남았다는 건 완전히 다른 말이었다.
왠지 언니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타지에서 혼자만의 숱한 시간을 가지며 분명 세어보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언니를 보러 미국에 갔던 2년 전 마지막 밤의 대화 때문이다. 떠나는 나를 두고 금방 또 놀러 오라는 언니의 말에 나는 어떻게 그렇게 자주 오냐며 웃어 넘겼다. 졸업은 앞둔 내 머릿속은 취업 준비로 꽉 차 있었다. 또 누군가는 꿈도 못 꿀 일을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웃기는 일이다. 어디 하나 듣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떨어져 지내는 사람의 마음은 모른 채 남들 눈에 사치 같다는 생각을 했다.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도 나와 같은 말을 한 듯 했다. 이따금 향수병을 앓는 언니에게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적으로 어렵잖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엄마도 후회 중이었다. 아빠는 김씨 아저씨와 같이 일 때문에 가 볼 생각조차 못했다. 다같이 모이는 날을 가장 많이 그려봤을 사람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그저 말이라도 자주 온다고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텐데. 나는 이기적이었고 엄마는 괜한 기대를 주어 더 실망할까 그러질 못했다. 잠깐 동안 몰아친 후회 끝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때 언니 동네에 있던 멕시코 아저씨 치폴레 집 미친듯이 땡긴다… 또 가고 싶네’ 치폴레로 은근슬쩍 운을 띄운 나는 또 시간 나면 언제든 언니를 보러 가고 싶다고 본심을 전했다. 언니의 답은 이랬다. ‘야 난 언제든 환영이야’
후회는 많은 것을 남겼다. 혈육에게 러브레터도 남겼고, 지난 날의 나를 돌아보며 내 마음가짐을 바꿨다. 이미 끝난 일을 말하여 무엇하나 싶지만, 후회는 삶을 돌아보는 방법이다. 후회가 있어야 성찰이 있다. 삶의 변화는 후회하고 나의 삶을 재음미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내가 어떤 이들과 어떤 마음가짐으로 관계했는가에 대해.
2.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동일한 글]
A는 그날을 자주 생각한다. 2년전, 수업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헐레벌떡 버스를 탄 그날… 대학에 들어가 4년 동안 반복해온 일상이라 그 반복이 A를 또 반복하게 할 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그저 그런 날이었다. 그 일이 아니었더라면.
버스로 몇 정거장을 지났을 때였을까. ‘끼익-‘ 내리는 사람 없이 앞문만 열렸다. 누군가 탈 거라는 신호였다. 그저 멍한 눈으로 귀에 이어폰을 꼽고 핸드폰을 보고 있던 A를 비롯한 열댓 명의 승객들은 아무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각자의 정류장에 도착하면 그만 아닌가. 아무런 이유 없이는 잘 타지 않는, 목적이 뚜렷한 사람들 뿐인 버스엔 무심한 공기가 흘렀다.
무심한 이들이 앞문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 건, 문이 열리고도 누가 타는 기색이 없고, 기사가 아무런 말도 없이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였다. 출발할 때가 지났는데…라고 생각한 무심한 이들은 아닌 척 서로를 살피며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은근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A도 앞문을 연신 바라보며 괜히 기침 소리를 내보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누군가 “아이, 기사님…!”하고 한 마디 던질 기세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리-” 그때였다. 삭막한 분위기를 뚫고, 경쾌한 멜로디가 버스 안을 울렸다. 민망스러울 정도로 아주 크게. 경쾌하지만 민망한 소리와 함께 버스를 뚫고 들어온 건, 하나의 휠체어였다. 그 뒤로 보이는 기사의 얼굴. 그리고 다시 휠체어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멋쩍은 얼굴. 무심한 이들은 온통 앞문으로 쏠려 있던 각자의 시선들을 황급히 거둬들였다. 웅장한 소리와 함께 버스에 올라타고 있는 멋쩍은 얼굴이 더이상 민망하지 않도록, 그들은 아주 애써서 시선을 두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무심한 이들의 따뜻함이 삐죽삐죽 나오고 있었다.
A는 그 멜로디가 휠체어의 건널목을 만드는 소리였구나 생각하다 한 발 늦었다. 멋쩍은 얼굴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곤 멋쩍은 얼굴의 한껏 움츠러든 몸이, 버스 안 사람들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사과하고 있음을 A는 알아챘다. 경쾌한 멜로디도, 무심한 이들의 서툰 배려도 멋쩍은 얼굴에겐 아직 슬픔이었다. A는 버스에 감돌던 그날의 어색한 공기를 잊을 수 없다. 운전면허가 없어 그동안 내내 대중교통을 타 온 24살의 A가 그날 그 멜로디를 처음 들었다는 사실도.
얼마 전, A는 주민체육센터에서 또 그날을 떠올렸다. 샤워 시설에 설치된 장애인 보조 장치. A는 안전바와 낮은 높이에 설치된 샤워기와 보조의자를 보곤 ‘아주 튼튼하니 그들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겠어…!’ 라고 생각했다. 그날 멋쩍은 얼굴에게 느낀 부채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듯 했다. 그렇게 역시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다고 믿을 뻔 한 순간…! A는 보조 장치가 유난히 새하얗게 빛나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챘다. 다른 샤워기들은 하나같이 조금씩 낡아 있는데, 어쩐지 그곳의 모든 것들은 빳빳한 포장지로 감싸져 있었다. ‘아무도 오지 못했구나…’ A는 평범했던 그날의 그 일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도 ‘멋쩍은 얼굴’을 불쑥 불쑥 마주한다. 언젠가 멋쩍은 얼굴의 웃는 얼굴도 볼 수 있을까… A는 그날을 자주 생각한다.
첫댓글 요기다 피드백 적어주면 감사용~~
[후회]
통찰력 : '일 년에 한 번은 보니 다행이다'라는 보편적인 생각에서 '남은 햇수를 세어보면 평생 몇 번밖에 보지 못한다'는 관점으로 바꾼 것이 좋았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의 중요한 사람과 앞으로 몇 번 보게 될지 생각할 거리를 줬기 때문.
다만 알고 있던 사람에겐 '평생 몇 번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도 보편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감동 또는 공감 : 요즘 시대라면 누구나 멀리 떨어져서 일년에 몇 번 못 보는 가족이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공감이 잘 될 것 같다.
언니의 사례는 다른 나라라서 일년에 한 번 밖에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같은 나라 같은 도시에 살아도 일 년에 할머니 댁을 찾아뵙는 것도 설날, 어버이날, 추석, 생신 등등 몇 번 안 된다. (일년에 n번 X 할머니의 남은 햇수)를 해도 적기 때문에, 이런 사례를 추가하면 좀더 보편적인 공감대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주목도 : 글 전체적인 톤이 잘 어우러져서 잘 읽힌다. 에세이에 가까운 글로 보인다. 사례를 통해 중심 맥락을 잘 보여줬다. 다만 마지막 문단에 키워드 '후회'에 대해 서술한 것이 정리를 위한 문단처럼 보였다. '후회가 있어야 성찰이 있다.' 같은 핵심 문장을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넣고, 그 이후 달라진 자신을 보여줘도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주인공의 행동으로 이야기가 잘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동일한 글]
통찰력: 안타깝다 또는 장애인이 살기에 도구는 편리할지언정 다른 건 편하지 않은 세상이다 에서 더 나아간 생각이 들진 않는다. 좀더 깊이있는 생각이나 메시지를 주려면 A가 스토리를 통해 변하는 모습이 보이면 좋겠다.
감동 또는 공감: 상황 묘사가 잘 돼서 현장에 있는 것처럼 읽혔다. 인물이 A처럼 익명일 때보다, 이름이 있을 때 읽는 사람이 더 인물에게 몰입하고 또 특별한 스토리라는 생각을 준다고 한다. A에게 이름을 붙여줘도 좋을 것 같다.
주목도: 이야기가 쉽게 읽힌다. 마지막 문단에서 결국 사용되지 못한 샤워기가 반전을 준다. 다만 네 문단 가량 한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보니 공간의 변화가 없어서 루즈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두 편 통합해서 강점: 실제 겪고 있는 일인 듯 읽히게 하는 것이 강점이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어떤 생각이나 심리를 지니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행동으로 심리가 전달되는 글을 한 번 써봐도 좋을 것 같다.
스토리를 쓸 때 행동이나 움직임이 많이 나오는 것이 좋다고 작문 강의에서 들었다. 아직 주인공의 행동들이 많이 보이는 글은 아니라서 이런 글을 연습해봐도 좋을 것 같다.
맞다 그 각 작문마다 [통찰력, 감동/공감, 주목도]를 나눠서 쓴 건
전에 한터 아카데미에서 작문에서 평가해야 할 3가지 알려주신 걸 그냥 가져다 쓴 것입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