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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존스턴 신비신학 사랑학 분도출판사 2007 윌리엄 존스턴 William Johnston 1925. 북아일랜드 생. 예수회 사제 1951년부터 일본에서 그리스도와 선불교를 함께 연구. <그리스도인의 참선> <상처입은 사슴> <내면의 불꽃> <소리 없는 음악> |
< 신비신학 - 사랑학 > 인간의 감각과 지성을 뛰어넘는 하느님은 신비이시다. 신비이신 하느님과의 대면, 대화, 만남, 기도, 관상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 하느님과 하나됨은 인간의 노력에 비례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사랑의 이끄심에 달린 문제이다. 우리는 그 길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하느님의 손길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관상기도를 신비신학 이라고 표현하며, 그 궁극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을 나누어 받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관상기도를 사랑학이라고 표현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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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비 신학이라고 하는 제목에 사랑학이라고 하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그 내용을 한번 먼저 이해를 해보죠.
인간의 감각과 지성을 뛰어넘는 하느님은 신비이다.
그렇죠. 하느님은 신비 자체이십니다.
우리가 다 파악할 수 없는 그런 분이시죠.
우리의 감각으로 보거나 만지거나 듣거나 하는
이런 것으로 하느님이 파악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을 신비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 신비이신 하느님과의 대면, 대화, 만남, 기도
특별히 관상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하죠.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이 하느님과의 대면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 본다.'라고 하는 것
또는 '대화한다.'라고 하는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얼굴을 마주 보거나 대화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그분은 육체를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바라본다라고 하지만
사물을 바라보듯이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죠.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다른 차원에서 우리가 하느님과의 만남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기도하는 궁극적인 목표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 이 하나님과 하나 됨은
인간의 노력에 비례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사랑을 이끄심에 달린 문제이다
라고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기도를 많이했다고 해서
하느님을 더 많이 알고 하느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
라고 하는 것, 이런 차원이 아니라
거꾸로 하느님에 의해서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가 온전히 전해받을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기도를 10시간 하다가 20시간을 하면
그만큼 하느님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우리들의 노력에 비례해서 그런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
하느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시는데
어떤 식으로 그것이 나에게 오는지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신비라고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하느님의 손길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관상기도를 하게 되는데
이 관상기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차원에서의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당신의 일을 하시게 되는 것
이것을 관상기도라고 한다면
이 관상기도는 그래서 결국 신비로운 것, 신비신학이다
라고 표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신비신학의 궁극은 우리가 관상기도와 하는 것이죠.
관상기도를 하게 되면서 하느님의 신비로운 어떤 작업, 일,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그 궁극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을 나누어 받는 것이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 관상기도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이신 하느님과 내가 온전히 하나가 되어서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 가득하기를
그래서 하느님이 하시고자 하는 그 일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온전히 나를 통해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관상기도라고 할 수가 있겠죠.
그래서 십자가의 속 요한은 관상기도를 사랑학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궁극은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전해받아서
내가 하느님의 사랑의 불꽃이 되고 싶다
라고 하는 것이죠.
하느님 사랑의 산 불꽃, 타오르는 활활 타오르는
그 불꽃이 되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 기도의 목적이다.
그래서 기도란 결국 사랑학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온전히 나에게 전해져서
그 사랑으로 내가 변화가 되는 것,
하느님의 사랑으로 온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면서
살 수 있게 되는 것,
그래서 이것을
십자가의 성 요한은 사랑학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기도는 결국 사랑에 관한 문제이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관상기도란 궁극적으로
신비이신 하느님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신비신학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이 신비신학은 동시에 결국
그 내용상으로는 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문제이다라고 해서
부재로 사랑학이라고 하는 이름을 달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비적(주입된 관상>은 하느님이 불어넣은 순수한 선물이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침묵기도(대 데레사 성녀의 표현)로 시작된다. 하느님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으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의 유입에 마음을 열도록 가르친다. (십자가의 성 요한) - 사랑을 통해 영혼 안에서 교류되는 것 (성 토마스 아퀴나스) 관상 중에 하느님께서는 매우 고요하고 비밀스럽게 영혼을 가르치신다. (어둔밤) "신랑이 가르쳐 준 달콤하고 살아있는 지식" (영혼의 노래) - 십자가의 성 요한 - 신비신학 - 신비적 지혜 - 신비적 기도 20세기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요가, 만트라, 명상, 단전호흡,,, 이런 신비에로의 여정에는 위험이 따른다. 안전한 안내자 없이는 환상 속에서 헤매거나 폭풍 속에서 길을 잃거나, 아니면 길이 막혀 더 이상 전진할 수 없게 된다. 21세기에 하려는 신중한 시도라 하겠다. |
7:54
신비적 관상 우리가 관상기도를 하게 될 때
내 이성을 사용한 나의 능동적인 차원에서의 기도가 아니라
관상 기도는 하느님에 의해서
나에게 당신의 사랑이 주입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주도적으로 '이만큼 주세요.', '이런 사랑을 주세요.'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당신이 원하는 것을
나에게 주시고 나를 변화시켜 주실 수 있다고
표현을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관상 기도를 신비적 관상 즉
하느님에 의해서 내 영혼의 주입된 관상은
하느님이 불어넣은 순수한 선물이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침묵기도로 시작된다
라고 표현을 합니다.
관상기도는 침묵기도입니다.
이건 대 데레사 성녀의 표현인데요,
내 말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적인 모든 노력을 멈추고
하느님에게 나를 온전히내어 맡긴다라고 하는 차원에서
말과 내 자신을 침묵시키는 것,
내 의지를 침묵시키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겠죠.
그래서 관상기도란
하느님의 이끄심에 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것이다.
(바로 십자가 성 요한의 표현입니다.)
그때 하느님으로부터 나에게 사랑이 유입되어 오는데 거기
하느님이 주시는 사랑이 내 안에 흘러들도록 내 마음을 열어두라고
가르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랑을 통해 영혼 안에서 교류되는 것!
하느님과 나 사이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내 영혼 안으로 들어오는 것!
토마스 아퀴나스는 관상 기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랑을 통해 영혼 안에서 교류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표현입니다.
관상 중에 하느님께서는
매우 고요하고 비밀스럽게 영혼을 가르치신다.
신랑이 가르쳐 준 달콤하고 살아있는 지식이다라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의해서 나에게 주입되는 것이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내 안에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
흘러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관상기도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관상 기도를 신비신학!
하느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우리 인간의 이성, 인간의 감각으로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어서
이것을 신비신학이라고 표현하고
그때 인간에게 주어지는 그것은
하느님의 지혜의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신비적 지혜라고 하는 말로 표현을 하기도 하고
또 그것을 하느님의 의한 기도 시간이다라고 해서
신비적 기도라고 그렇게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신비신학이 있어 기도하는 이들을 가르쳐왔지만 21세기인들을 위해 신비신학을 다시 쓸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16세기에 했던 것을 21세기에 하려는 신중한 시도라 하겠다. 신비신학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십자가의 성 요한을 따라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응용과 변형을 꾀할 것이다. 1.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기도하는 데에 도움을... 2. 공(空) 무(無)를 가르치는 불교나 힌두교 등 아시아의 종교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상대성 이론, 양자론 등의 현대과학은 그것이 동양 신비주의의 역설적 가르침과 통합을 본다. 3. 관상을 하는 이들은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랑의 산 불꽃으로 영감을 받은 관상가들은 사회를 바꾸어 간다. |
11:00
특별히 20세기부터
서양에서 동양의 여러 가지 기도하는 방법들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동양의 인도와 중국과 일본의 선불교나 기타
다른 여러 종교의 기도하는 방식들이 서양에 전파되면서
많은 인기를 끌게 되죠.
예를 들자면
요가라든가 만트라로 기도하는 방식 또
명상 초월명상 이런 거 또 단전호흡을 한다라고 하는 거
이런 여러 가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존스턴 신부님이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런 신비에로의 여정에는 위험이 따른다.
안전한 안내자 없이는 환상 속에서 헤매거나
폭풍 속에서 길을 잃거나 아니면 길이 막혀 더 이상
전진할 수 없게 된다.
그냥 단순하게 요구하고 명상하고 하는 거
그것이 동양종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우리
그리스도 교회에서 그 방식만 가져다가 하는 거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된다.
적절한 안내자가 있어야 그 도구들을 잘 사용할 수 있겠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관상기도의 방법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여러 가지 관상기도의 방법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적절하게 잘 설명을 해서
이런 기도들이 우리 신앙의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면서
이 신비신학이라고 하는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세기에
다시 이 신비신학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당신의 신중한 시도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하시는 겁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신비신학이 있어
기도하는 이들을 가르쳐 왔지만
21세기인들을 위해 신비신학을 다시 쓸 필요가 있다
라고 표현합니다.
예전에 처음부터 예수님 이후에 신비신학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 계속 전수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과거의 가르침만으로 끝나지 않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신비신학이라는 게 어떤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기도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다시 한번 설명하고 싶다라고 표현한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책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16세기에 했던 것을 21세기 하려는
신중한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과거 400년 전 500년 전에
사람들에게 관상기도란 무엇인지 이것을 설명했는데
마찬가지 방식으로
21세기 사람들의 충분히 이해하고 믿을 수 있게 관상기도가
무엇인지라고 하는 것을 다시 설명해 보고 싶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비 신학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십자가의 성 요한을 따라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응용과 변형을 꾀할 것이다.
그래서 책 전체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을 많이 이야기를 합니다.
성 요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요,
십자가의 성 요한을 기본으로 해서
십자가 성 요한의 관상기도의 가르침을 기본적인 것으로
설명을 하지만
그것을 다른 여러 가지 종교나 현대 과학이나 현대의 일상의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이런 적절한 도움들 도움말들을 통해서
십자가의 성 요한과는 좀 더 다른 것을
21세기 사람들이,
우리들이 충분히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을 하고 싶다
라고 하면서이 책을 썼다고 표현을 하십니다.
이 책에서는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이 책을 쓰셨다라고 표현합니다.
첫 번째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기도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싶다
라고 하는 것이죠.
과거의 십자가의 성요한이나 선불교나
뭐 이런 모든 종교에서의 관상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종교인들, 이야기하자면 수도자들 관상기도하는 그런 수도자들
수도자들이 어떻게 기도해야 될 것인가라고
하는 차원에서 접근했던 것이죠.
십자가의 성 요한은 수녀님들, 수사님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책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자들과
우리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 평신도들 삶 자체가 다릅니다
생활 자체가 전혀 다르죠.
성당 안에 수도원 울타리 그리고
이어서 시간마다 기도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보장이 되어 있는
수도자들의 기도와
정말 하루 중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려면
큰 결심을 하고 큰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평신도들의 기도는 서로 다르죠.
그래서 이 책의 목적은 일반 평신도들을 위한 것이다.
평신도들이 관상기도를
무슨 뜻으로, 어떤 지향으로, 어떤 방식으로 해 나가는지
평신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라고 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쓰셨다
라고 하는 게 첫 번째이고요
두 번째는
공(空) 무(無) 이런 것들을
십자가의 성 요한이 '나다, 나다', '無'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같은 표현, 같은 내용이 다른 이 동양의 여러 종교들에도 존재하더라.
불교나 힌두교 등의 아시아 종교들이 이야기하는
공(空) 무(無)에 관해서도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들의 가르침을 우리가 함께 바라본다면
이 그리스도교의 관상기도를 조금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겠다
라고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런 쪽의 이야기들도 덧붙여서 하게 되고요
또 한편 우리가 과학시대를 살아가죠.
상대성 이론, 양자론 등의 현대과학은
동양 신비주의의 역설적 가르침과 통합을 본다.
그래서 현대과학이 제시하는 내용들이
관상기도에서 어떻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을까?
세 번째,
관상을 하는 이들은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관상을 한다고 해서 이 세상에 등을 지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과는 이무 상관이 없는
저 세상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세상,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서 오신 이 세상,
바로 하느님의 거처인 이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되도록 노력한다라고
하는 것이죠.
하느님은 바로 우리들을,
모든 인간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사랑해 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관상을 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사랑해서
이 세상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되도록 만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산 불꽃으로 영감을 받은 관상가들은
그래서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모습의 세상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기도는 곧 활동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그것도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야 된다고 하는 것이죠.
이런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신비신학이라고 하는 책을 쓰게 되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윌리엄 존스턴 신부님의 신비신학 사랑학 이 책
다음부터 함께 이제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