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황제께 붉은 월계수 꽃을
Red Laurel for My Emperor
Prologue
마치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같으리.
빛이 되어 세상을 비추다가도, 순식간에 불이 되어 모든 것을 태워버리리라.
가는 곳마다 환호와 통곡이 가득할 지어니.
보라. 만물이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되리라.
아. 황제시여. 천하를 누리소서.
* Laurel of Emperor *
“토르티아 제 1 왕녀 로엘 네아레스.
이로써 대 카이로스 제국 제 29대 황제 아폴리우스 폐하의 아카시스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그렇게 온갖 의식을 다 하더니만, 정작 본식은 허무할 정도로 빨리 끝났다. 9일 동안, 그녀는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심지어 물을 마시는 것도 규율에 따라야만 했다. 정해진 곳에서의 목욕 재개는 기본이었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전통 의례도 하루에 세 번씩 꼬박 치러야 했다. 게다가 이 과도하게 치렁치렁한 예식 차림은 치장하는 데에만 서너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본식은 고작 몇 십분 남짓.
카이로스의 대신관의 축복 몇 마디가 전부였다.
“이게 끝인가요?”
“네. 이제 신방으로 가셔서 폐하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건조한 신관의 대답에 로엘은 헛웃음이 나왔다. 끝까지 그 위대하신 분은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볼 수 없었다. 신랑도 없는 결혼식이라니. 로엘은 새삼 자신이 화친이라는 명분 아래 인질로 끌려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폐하께서는 오후 정무 회의를 마치시고 마마 처소로 곧장 가실 겁니다.
마마께서는 그 때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셔도 됩니다.”
휴식이라는 단어에 멍했던 정신이 순간 깼다. 그녀가 지금 간절히 원하던 바로 그 두 음절이었다. 그녀는 이미 의미 없는 의례들로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 마다 지나치게 화려한 드레스와 베일이 살랑 거렸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갖 보석이 반짝였다. 로엘은 수십 명의 시녀들이 그녀 앞뒤로 따르는 것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매일 같이 이런 식이라면 정말 숨이 막혀서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았다.
“카이로스 황궁은 크게 본궁, 후궁, 빈궁으로 구성된 세 개의 내궁과 일곱 개의 외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황제께서 머무시는 본궁은 황제 폐하의 침소와 황후님의 침소가 있지만, 폐하께서는 아직 황후 책봉을 하지 않으셔서 지금 본궁은 폐하만이 계십니다.”
이동을 하면서 내궁의 최고 시녀장인 사라의 설명이 계속 되었다. 그녀가 카이로스에 온 이후 사라는 그녀를 전담하여 매일 같이 그녀를 교육하고 있었다. 입이 무겁고, 감정 변화가 없으며,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그녀는 로엘과 같은 상전에게조차 꼿꼿했다. 깍듯이 예의를 차리면서도 조금도 기죽지 않는 그녀를 보며, 로엘은 그녀가 왜 대 카이로스 내궁의 시녀장인지 알 것 같았다.
“현 폐하의 정식 귀비는 총 3명. 그 외 황제 폐하를 모셨던 분들은 따로 귀인 신분으로 정식 임명 없이 후궁의 내실에 기거하고 계십니다.
황자의 모후가 되신다면 바로 최고 귀비인 아카로이로 승격되나, 아직까지 아카로이 역시 안 계십니다.”
카이로스 황제 주변에 항상 여인이 끊이지 않는다는 소문에 비해, 의외로 황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워낙 자손이 귀하다는 카이로스 왕가의 오래된 전통다웠다. 실제 카이로스는 매번 황자가 많아야 둘, 셋 정도. 황자가 태어나도 다섯 살을 넘기기 어려워 카이로스는 항상 황자가 태어날 때마다 나라 전체가 축제였다. 그렇게 귀한 황자 중 가장 강건하고 영특한 황자가 황권를 물려받으니, 카이로스 황제는 대대로 무소불위의 강력한 왕권을 지녔다.
그러한 카이로스 황제 중에서도 최고는 당연히 현 카이로스의 황제, 에단 아폴리우스 폐하 되시겠다.
“로엘 공주님께서는 세 번째 아카시스로서, 귀비 후궁의 제 3궁에 배정 되셨습니다.
아카시스의 서열은 모두 동일하며, 현재 아카로이가 안 계시는 이상 내궁에서 가장 높은 상전이 되십니다. 작위를 받지 못한 귀인들께서는 로엘 공주님을 귀비로서 모실 것입니다.”
로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귀에 닳도록 몇 날 며칠간 들었던 이야기들이었다. 신랑 없는 결혼식을 치룬 신관과는 다른 화려하기 그지없는 내궁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시녀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족히 백여 명은 넘을 것 같은 어린 시녀들이 그녀의 가는 길목마다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이며 그녀를 맞이하는 모습에 로엘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참, 지독한 허례허식이다.
“앞으로 이 곳이 마마께서 기거 하실 궁전, 세룸니르입니다.”
그렇게 수십 개의 의식과 수십 마디의 잔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그녀가 기거할 궁에 다다랐다. 후궁 안은 또 다시 여러 개의 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아카시스는 두 번째로 큰 궁을 배정 받았으며 아카시스조차 되지 못한 여자들은 그저 방 하나 정도 배정 받을 뿐이다.
다행히 그녀는 국가 간의 정식 결혼으로 처음부터 아카시스의 신분이 되었다. 그나마 따로 떨어진 궁을 배정 받아 로엘은 속으로 안도했다.
치정의 ‘치’자도 관심 없는 그녀에게 이런 분리된 공간만큼 감사할 일이 없다.
“황제 폐하께서 오신다는 연통이 있을 때까지 이 곳에서 잠시 한 숨 돌리셔도 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편히 쉬소서.”
근 14 시간 만에 드디어 그녀는 혼자가 되었다. 새벽부터 시녀들에게 시달렸던 지라 로엘은 홀로 남은 신방에서 처음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화려하기도 하네. 눈이 아플 정도로.”
그녀는 걸리적거리는 베일을 대충 뒤로 넘기며, 차마 일어서지는 못한 채 눈으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조국 토르티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황금색으로 뒤덮인 방은 휘향찬란했으며, 거기에 신방이란 이유로 한껏 꾸며놓아 더 정신이 없었다.
냉궁에서 찬 밥 신세로 지낸 그녀에게는 여러모로 많이 과했다.
“이게 카이로스, 아니 황제의 취향인건가.”
그렇다면 그녀와는 아주 상극이었다.
물론, 황제의 취향이 어떻든 그녀와 전혀 상관없지만.
대 카이로스 제국 제 19대 황제 에단 아폴리우스 카이로스.
커다란 산맥에 막혀 왕래가 뜸한 북방까지도 그 소문이 자자한, 카이로스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잔혹한 절대 군주. ‘태양의 황제’
즉위한 이후 단 한 해도 전쟁이 없던 해가 없으며, 그 모든 전쟁 속에서 단 한 번의 패전도 없었다. 말 그대로 백전백승. 덕분에 고작 27살의 나이로 즉위하였어도 카이로스의 그 누구 하나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즉위 5년 만에 당당히 중부를 통일한 그는 이미 현 시대 최강국의 황제.
그녀는 지금 그런 사내의 비가 되었다.
“......드디어 오늘 밤.”
그녀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 다시 베일을 덮고, 똑바로 황제가 들어올 문을 응시했다.
“바로 이 곳에서.”
그녀는 새로운 시작을 한다.
그녀의 목숨을 건, 그녀 인생 최대의 도박을.
* Laurel of Emperor *
“누구?”
“토르티아 왕녀 로엘 네아레스 공주요. 도대체 몇 번을 말씀 드립니까!”
“그러니까 쓸데없는 거까지 나한테 말하지 마. 어차피 안 들어오니까.”
“폐하!”
에단의 최 측근, 수석 비서관 아론의 잔소리에 에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원로원들을 상대하느라 짜증 나 있는데,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정작 아론은 마치 자신이 잘못했다는 그의 핀잔에 분통이 터졌다.
“지금 다른 나라 공주를 데려와 홀로 식을 올리게 만들어 놓고, 심지어 기억조차 못하시다니요! 이건 화친이 아니라 전쟁을 하자는 겁니다!”
“그럼 더 좋아하실 거 같은데? 오히려 간단하잖아.”
“넌 좀 닥치고 있어.”
언제나처럼 친위대대장 루카스는 아론의 옆에서 깐족댔다. 둘 다, 아니 에단까지 셋 모두 방금 전 정무회의 때와는 전혀 딴 판의 모습이다. 에단의 시종장 제롬은 천하의 황제폐하께 이리 격 없이 구는 두 사람을 혹여 누가 볼까 싶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그 토르티아 공주. 장난 아니라던데요? 호위해 온 우리 애들이 지금까지 봤던 미녀 중 최고라고 했어요. 아주 빛이 난답니다. 빛이.”
“어차피 베일이 쌓여서 제대로 볼 수도 없어.”
“멍청아. 그렇다고 그걸 모르냐? 아우라라는 게 있잖아, 아우라. 딱 느낌이 왔다잖아.
그리고 그 공주 친모가 토르티아 최고 미녀 레아 칼리드라고! 그렇지 않아도 미녀가 즐비하다는 북방에서 인정받은 최고 미녀! 그러니 천하의 제이슨 네아레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
‘제이슨 네아레스’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그 이름에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에단도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토르티아 대장군으로서 단 한 번의 패전도 없는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무인이자, 가장 뛰어난 전략가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무인이라면 그를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그의 허무한 죽음에 애도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전설 같은 ‘무신’
지금 그 사람의 딸이 이곳에 왔다는 소리다.
“그 어머니를 쏙 빼 빼닮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너 우리 정보통을 못 믿는 거냐?”
“그런 말이 아니잖아. 전혀 중요하지도 않은......”
“왜 안 중요해! 제일 중요하지!”
“제이슨 네아레스의 딸이라고?”
에단은 뒤늦게 입을 열었다. 처음 듣는다는 그 표정에 아론은 한숨을 삼켰다. 예상대로 그는 그가 올린 로엘 공주에 대한 보고서를 읽지 않았나보다.
하긴. 애초에 그럴 성의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식을 홀로 치르게 하지도 않았겠지.
아론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을 이었다.
“네. 제이슨 네아레스의 딸, 로엘 네아레스입니다.
대 장군 제이슨 네아레스가 독살 당하고, 그 친모가 암살당한 이후 홀로 토르티아 성에 감금되어 살았습니다. 현 토르티아의 국왕이자 제이슨 장군의 이복동생인 제이콥 네아레스는 국민들에 대한 제이슨의 신망을 상기시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그녀를 꼭꼭 숨겨 두었는데, 이번 기회에 자기 딸 대신 로엘 공주를 보낸 겁니다.”
“이야. 소문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못 된 새끼네. 제이슨 장군도, 그 부인도 그 동생이 죽인 거잖아?”
“물증은 없어도 심증은 그러하지.”
“안 됐네, 그 공주님.”
루카스와 아론의 대화를 에단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제이슨 네아레스의 이름에 잠시 반응했지만, 남의 나라 집안사 따위는 전혀 관심 없었다. 그저 이번 화친으로 토르티아가 그에게 고개를 숙인만큼 북방 진출이 한층 수월해 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한참 아론과 루카스의 수다 아닌 수다를 듣다 보니, 벌써 정무를 보는 외궁을 벗어나 내궁의 후궁에 다다랐다. 그 문 앞에서 아론과 루카스는 그만 발걸음을 멈췄다.
후궁은 황제와 황자 이외에 그 어떠한 남자도 들어 갈 수 없다.
“어쨌거나 오늘이 로엘 공주님, 아니 귀비마마께는 첫날밤이니 부디 폐하.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세요.”
“그래요. 폐하. 안 됐잖아요? 그래도 공주인데. 이런 식으로 팔려오는 건.”
에단은 귀찮다는 듯이 손사레를 치며 그들을 물렀다. 역시나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그의 반응에 아론은 깊은 한 숨을 삼켰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후궁의 굳건히 닫힌 문이 열리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최고 시녀장 사라는 그를 바로 모셨다. 허리를 깊이 숙여 황제를 맞이하자, 그녀를 따라 수십의 시녀들 역시 똑같은 말과 태도로 그들의 황제를 맞이하였다.
“식은 예정대로 무사히 치러졌습니다. 영특하신 공주님이라 습득하시는 것이 빨라 별다른 문제는 없었습니다. 지금 신방에서 페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에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룸니르는 후궁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궁전이었다. 딱 마당 하나 정도 있는, 궁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그 작은 처소는 적막 그 자체였다. 아직 시녀가 제대로 배정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녀가 데려온 사람 자체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대개 다른 나라의 공주가 비로 들어 올 때 그 가솔들 수십이 딸려 오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그녀 혼자 덜렁 떨어진 것 같아, 조용하다 못해 초라했다.
에단은 문득 방금 아론과 루카스로부터 들은 그녀의 복잡한 가정사가 생각났다.
천덕꾸러기 신세라고 하더니만 그 말이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었나 보다.
“전부 물러.”
“예. 폐하. 부디 축복이 가득한 평안한 밤 되소서.”
후궁에 들어와 처음 한 그의 짧은 말에 시녀들은 순식간에 후궁으로부터 빠져 나갔다. 사라가 마지막으로 나가자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에 휩싸였다. 에단은 천천히 정원을 거닐었다. 사람 소리 없는, 이 과한 적막이 이상하게 안도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녀가 있는 신방으로 다가갔다.
“열어라.”
“예. 폐하.”
신방의 문을 열어줄, 딱 두 명 남은 시녀들이 천천히 신방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베일 너머로 신부의 인영이 언뜻 보였다. 그가 짧게 시녀들에게 시선을 보내자, 그 마지막 남은 시녀 역시 이만 물러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리고, 드디어 신방에 에단과 로엘, 두 사람만이 남았다.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구름 한 점, 바람 한 점 없는 만월의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 Laurel of Emperor *
숨 막히는 정적. 팽팽한 긴장감.
황제의 등장에도 허리 한 번을, 고개 한 번을 숙이지 않은 여자.
에단은 이제껏 자신을 기다리던 여인들과는 사뭇 다른 그녀의 꼿꼿한 모습에 조금 흥미가 생기려했다. 꽤나 뜸을 들이고 그가 드디어 신방에 들어섰다. 그러자 침대 끝에 앉아 있던 그녀가 살짝 고개를 들어 그와 마주했다.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는 엷은 베일로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진했다.
“태양의 황제. 에단 아폴리우스 카이로스 폐하를 뵙습니다.”
이내 그 붉은 눈동자는 아래를 향했다. 그녀의 몸 역시 침대에서 내려와 아래로 내려갔다.
황제의 눈을 몇 십초나 뚫어져라 쳐다볼 때는 언제고, 그녀는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 전혀 일관성 없는 그 태도에 에단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 여자. 시작부터 무언가 다르다.
“토르티아 대장군 제이슨 네아레스의 장녀, 제 1왕녀 로엘 네아레스.
위대하신 폐하의 아카시스가 되어 영광입니다.”
그는 그녀가 내려간 자리에 대신 앉아 그의 발밑에 머리를 조아리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눈에 띄는 붉은 색의 기나긴 머리.
붉은 머리의 민족, 토르티아의 색깔 보다 확연히 옅은 그 색은 마치 해가 뜨는 여명의 색을 닮았다.
언뜻 ‘여명의 공주’라고 불린다는 아론의 말이 생각나는 것도 같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걸리적거리는 그 베일을 뒤로 넘겼다. 그러자 베일 뒤에 숨겨진 그녀의 또렷한 붉은 눈동자가 그를 직시했다.
“감히 황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는 게냐.”
꽤 긴장할 법한 그의 낮은 목소리에
“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는 그녀는 대답이 이어졌다
여전히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곧은 눈으로 그를 직시한 채로. 에단의 흥미가 점점 더 높아졌다.
이 여자. 제법 ‘그 남자’를 닮았다.
오만한 것도, 건방진 것도. 그러면서도 끝까지 고고한 것도. 전부 다.
“나에게 할 말이 있다는 눈이로군.”
“예. 폐하.”
이번에도 그녀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카이로스의 황제시여. 저는 당신께 거래를 제안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 뒷말 역시 거침이 없었다.
“하. 거래.”
그는 진심으로 비웃음이 나왔다. 너무 당돌해서 어이가 없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거래? 감히 카이로스의 황제와?
“정말 목숨이 열 개라도 되나 보군.”
그는 좀 더 세게 그녀의 턱을 잡아 가까이 했다. 서로의 숨결이 닿는 그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금빛 눈동자에 그녀가 고스란히 비쳤다.
“건방짐이 도를 지나친다.”
“어차피 팔려온 목숨.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후회 없이 하겠습니다.”
얼음 같이 차가운 그의 눈에도 그녀는 작은 미동조차 없었다. 벌써 그가 잡은 턱 부위는 붉게 자국이 나기 시작하였는데도 그녀는 조금도 그에게서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좀 더 그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그러니 저의 목숨 건 도박에 응해 주실 의향이 없으시다면 기꺼이 그 대가를 치르겠나이다.
이 자리에서 저를 베어 불손을 벌하소서.”
이건 허언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녀는 이 순간 목숨을 걸었다.
그를 직시하는 그녀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에단의 손이 그녀의 목을 감쌌다. 그리고 아무 감흥 없다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목을 죄었다. 그녀의 목은 그의 한 손으로도 충분히 잡혔으며, 조금만 힘을 줘도 금세 부러질 듯 가늘었다. 점차 붉은 그녀의 입술이 떨리고 하얀 얼굴이 더욱 더 창백해 졌지만, 그녀는 신음 소리 한 번 내지를 않았다. 눈물이 눈꼬리에 걸릴 때까지 끝까지 그를 직시하였다.
그녀의 시야가 희미해 질 정도가 되어서야 그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로엘은 그제야 바닥에 쓰러져 숨을 골랐다. 거친 헛기침이 계속 나왔지만 그녀는 몇 번 숨을 고르지도 않은 채, 입술을 질끈 깨물고 두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바로 그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 모든 모습을 그는 여전히 감흥 없다는 눈으로 내려 보았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도, 여전히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할 정도로 심장이 뛰면서도 그 붉은 눈동자만큼은 처음 그를 응시하던 그대로 또렷했다. 여전히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그 때문일까. 이 여자에게 이상한 호기심이 생긴다.
“이제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실 마음이 생기신 건가요.”
“글쎄.”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준비된 와인을 스스로 잔에 따르며 그는 그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꼿꼿이 허리를 세우는 그녀를 보았다.
작은 얼굴에 눈망울을 크다 못해 깊었고, 오똑한 콧날은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거기에 남자를 자극하는 도톰한 입술과 아기 같은 뽀얀 볼까지. 가히 미인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았다. 뿐만이랴. 새하얀 피부와 여리여리 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풍만한 가슴에, 탄탄한 엉덩이까지.
그녀는 가만히 있어도 남자를 유혹하는 몸을 지녔다.
북방의 꽃. 토르티아의 절세미녀라 불릴 만 하다.
“적어도 네 목숨이 너의 몇 마디에 달렸다는 건 확실하지.”
그녀는 보일 듯 말 듯 한 작은 미소를 아주 짧게 지었다. 조금 올라간 그 입꼬리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 옅은 미소에 에단이야 말로 미소를 지었다.
당장에라도 목이 날라 갈 수 있는 이 상황에서도 웃는 여자라.
갈수록 흥미가 커져갔다. 아니. 비뚤어진 욕망이 올라왔다.
절대 꺾이지 않겠다는 이 기고만장한 여자를 그의 밑에 두고 밤새 울리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황제폐하. 저는 인질로 이곳에 온 것을 압니다. 그래서 제 목숨이 당신의 손에 달린 것도, 하루아침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도 잘 알지요.”
그녀는 찬찬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자세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얼굴을 직시하며, 조금도 떨지 않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와 대화를 하였다.
제법 좋은 울림을 가진, 그리고 여운을 남길 줄 아는 기분 좋은 목소리다.
“그러함에도 저는 이곳에 왔습니다. 저에겐 안 가겠다는 선택지가 없었지만, 그러함에도 저는 스스로 선택을 하였습니다. 이 곳, 황금의 도시 카이로스에 가겠노라고.
오로지 당신을 만나, 이 목숨을 건 거래를 하기 위해.”
갈수록 더 흥미로워졌다.
말을 타고 꼬박 나흘은 쉬지 않고 달려야 도착하는 북방의 경계. 그로부터도 한 참을 더 가야도달하는 곳이 토르티아다. 그 먼 곳의 공주가 무슨 연유로, 생면부지의 그에게 목숨을 건다는 걸까.
“애초에 거래는 대등한 상대와 하는 거다.
내가 왜 그 거래를 해야 하지? 네가 나에게 내밀 수 있는 패가 있기는 한가?”
“있지요. 제가 제이슨 네아레스의 딸인 이상.”
그를 멈칫하게 만드는 그 이름이 또 나왔다. 에단은 잠시 그녀를 빤히 보았다.
참. 영악한 여자가 아닐 수 없다. 교모하게 계속 그녀의 말을 이어가게 이야기를 주도한다.
웬만한 원로도 그 앞에서 ‘아’ 소리 한 번을 제대로 낼 수 없는데, 이 작은 계집은 겁도 없이 처음부터 그와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 만용이 너무 같잖아서 귀여울 지경이다.
사자 앞에서 대드는 작은 토끼라니. 사냥하기보다는 가지고 노는 편이 훨씬 재밌는 법이다.
그래서 또다시 그는 그녀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다.
“그래서 네가 나와 무엇을 거래 하고 싶은 거냐.”
그녀는 또 다시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조금도 그에게 굽히지 않으면서 그 놈의 무릎은 참 잘도 꿇었다.
“태양의 주군. 신의 선택을 받은 위대한 카이로스의 황제시여.”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정 자세. 완벽히 카이로스의 예법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 고고한 공주님의 모습으로, 그녀는 그녀가 진짜로 하고 싶은 한 마디를 꺼냈다.
“제가 당신께 북방의 수호자, 조국 토르티아를 바치겠나이다.”
그것도 그를 조금도 실망시키지 않은 채.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이게 얼마만입니까ㅠㅠ
제가 너무 오랜만에 찾아뵈서 면목이 없습니다. 그 동안 잘 계셨나요?
저는 다사다난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만큼 너무 바삐 지냈습니다.
그래서 카페에 들어오는 것도 잘 못했는데, 그래도 그 와중에 새 글은 쓰고 싶어서 또다시 이리 신작을 들고 왔습니다.
이미 많은 독자님들이 잊고 계실테지만요ㅠㅠ 그래도 다시 연재를 시작하면 새롭게 찾아와 주실까 하는 마음으로 살포시 신작을 올립니다!
지난주에 정말 말도 안되게, 너무너무 추웠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모르겠어요.
이번 겨울은 독감도 너무 힘들다던데 꼭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고 항상 건강 조심하세요!
그럼, 조만간 『시엘로피』출간본 소식과 함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독자님, 우리 다시 자주 뵈어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1.28 14:12
첫댓글 와우 프레이야님 방가운데 신작까지 더불어 시엘로피 출간 소식 완전 좋네요 ㅎㅎ
선댓글 후감상♡
작가님 새해복 많이받으세요♡
작가님 진짜 오랜만이에요!!
쪽지 확인하고 바로 왔어요 ㅎㅎ
새로운 장르의 소설도 벌써부터 기다려져요~ 이번에도 잘부탁드려요!!
작가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재밌어요~~~ 화이팅!!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1.28 16:29
오랜만이에요오!!!!
헐 프롤로그부터 강렬하고 재밋어여ㅠㅠ 앞으로 기대할게요!!!!
오랜만입니다!
이번소설도 기대됩니다!
세상에 너무 오랜만이예요ㅎㅎ 기대되요♡
크 드디어 새로운 소설로 오셨군요~! 담편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게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1.28 19:10
엄청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신작 넘재미있고 흥미롭네요ㅠㅠ감기조심하세요♡
프레이야님! 추운날 안녕하셨어요?ㅋㅋ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행복합니다
신작도 응원합니당
꺄~~~~ 넘 잼나욧ㅋ 담편 기대되용ㅋ
감기조심하세용ㅋ
오랜만에 너무너무 설레네요~ 다음편도 기대되네요^^ 작가님 최고
재밌네요^^오랫만에 판타지 소설(?)이라 더더욱 기대되요^^
저도 한동안 못들어오다가 우연히 며칠전에 들어와서 신작소식을 알게되었는데 앞으로 또 기대할게요!!! 벌써 대박느낌이 나요!!
완전 완전 대박 잼나요.... 아~~~ 일케 푹 빠져본게 언제인지 생각도 안나요.. ㅎㅎㅎㅎ 맘이 넘나 훈훈해져요..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정말 두근두근해요.. 완결까지 함께해요... 돌아오셔서 좋아요~~ 추운데 건강 잘 챙기시고 굿 밤 되세요... 담편도 기대할께요~
오랜만에봬요ㅠㅜ 프롤로그부터 몰입도 장난아니네요ㅜ♡
정말 오랜만이에요!
분위기가 클라우드랑 연희가 생각이 나네요!
로엘과 에단의 다음이야기가 너무 기대됩니당
작가님도 감기조심하세요^.^
이밤..아..또 설레기시작하는 주책없는.마음이네요~^^
간만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단비처럼 글을 올려주셨네요. 진짜 오랜만에 너무 재밌는 글을 읽었어요ㅠㅠ 감사합니다ㅠㅠ
어머머머 간만에 작품을^^ 기대하구 응원핮니다!!
정말 오래 기다렸어요 ㅋ 시작부터 흥미진진....잘 부탁드려요
ㅎㅎ저도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프롤로그가 ㅋㅋ 이번에도 맘비우고 천천히 연재 따라갈게요~
캭♡ 오래 기다렸습니다♡ 너무너무 기대가됩니다♡♡♡
오랜만에 카페에 신작이 올라와 반갑네요ㅋㅋㅋ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2.12 22:35
여기 말고, 다른 카페나 이멜도 검색을 못하던 차에~백만년만에 생긴 여유로 미드카페에서 좋아하는 미드도 하나보고(많이 밀려서 더 볼 생각에 질리는 기분이라 한편만 봤어요 ㅋㅋ) 순례순서대로 0ㅏ~~무생각 없이 들어왔더니 새글이 똬악^^ 예전처럼 자주는 못오지만 천천히 보지요 뭐
잘 읽었어요. ^^ 정말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신작이 올라왔네요? 다시 돌아오셔서 너무 반갑습니다.새로운 신작도 너무 재미있을것 같아요. ♥♥♥
신작을 한달이 지나서야 확인했네요.. 해가 바뀌고 카페에 들어오는 횟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앞으로 자주 찾아올게요:) 사실 시대극이 취향은 아니지만 열심히 읽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3.0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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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3.23 22:19
신작보기전에 댓글 먼저 달아보네요^^
기대하고 얼른 읽어야겠네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4.05 22:29
ㅎㅎㅎㅎㅎㅎ이제야 봤어요..ㅠㅠ 잘 돌아오셨어융
오랜만에 왔는데 새로운 글이 있어 넘 반갑네요~~
오랜만인데 넘나 재미있는 신작이!!!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4.25 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