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빈 자서전 (2017.5.8.~ )
나 신 수빈은 엄마 김 명주, 아빠 신 동혁의 딸로 2004년 3월 25일 오전 11시 10분 인천 연수구의 우리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우리 엄마, 아빠는 아빠의 친구이자 엄마의 선배였던 한 사람의 소개로 1999년에 레스토랑의 호프집에서 처음 만나 연애를 했다. 3년째 연애 중 어차피 주말마다 만나니 그냥 결혼하자는 이야기와 함께 아빠가 먼저 엄마에게 프러포즈를 했다고 한다.
엄마와 아빠는 2002년 4월 7일 1시에 인천 개선문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했고 일가친척들과 지인들이 오셔서 축하해 주셨다. 신혼여행은 세부로 가셨다.
나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엄마는 결혼 후 1년 동안 피임을 하셨다고 한다. 1년 후 나를 가지게 되어서 엄마는 매우 기뻤고 아빠는 ‘진짜?’ 라는 반응과 함께 놀랐다고 한다.
나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주변 친척들은 엄마와 아빠가 애를 안 가진 건데, 못 가졌다고 생각해서 다들 좋아했다고 한다.
엄마의 고향은 영종이고, 엄마네 외숙모가 영종에서 횟집을 하셨다. 꿈에 외숙모네 횟집에 가면서 어느 바닷가를 거닐었는데 엄마가 지나가자 양쪽으로 사람들이 딱 서서 박수를 쳐주고 사람들의 마지막에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엄청 커다랗고 화려한 꽃다발을 엄마한테 주는 태몽을 꿨다고 한다.
엄마는 입덧을 할 때 모든 음식을 평소보다는 많이 먹지 못했는데, 평소에도 좋아하던 외할머니 표 양념 게장을 유독 많이 먹었다고 한다.
엄마가 처음에 태동을 느꼈을 때는 방울처럼 뱃속에서 뭔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9개월 때까지 회사에 다녀서 많이 느끼지는 않았지만 나는 굉장히 많이 움직였다고 한다.
엄마는 임신 중에 4.5kg이 쪘고, 나를 위해 뜨개질과 태교에 좋은 만들기 등을 많이 하셨고, 아빠는 매일매일 저녁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동화책을 읽어 주시고 덕담을 많이 해주셨다고 한다.
엄마가 내가 태어나기 전날에 내일 즈음 내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날에 목욕도 다녀오고 다음 날 새벽에 집안 청소도 다 마치고 아빠랑 둘이서 산부인과를 갔다. 그런데 내가 태어난 달이 윤달이라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고 한다. 분만체조도 하다가 아빠는 분만실 앞 대기실에서 티비를 보면서 앉아있었는데 의사선생님이 나와서 “저녁때 봅시다.” 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20~30분 정도 후에 다시 분만실로 들어가더니 엄마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그 때 아빠는 티비를 보다가 대기실에서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어떤 간호사가 나를 안고 나오더니 얘가 아기라고 해서 나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빠가 처음 나를 봤을 때는 첫 아이라 엄청 예쁠 줄 알고 기대하면서 봤는데 너무 못생겨서 좀 실망했었다고 한다. 나는 갓난아기 시절 엄마도 닮았다가 아빠도 닮았다가 했다는데 외가에 가면 엄마를 닮았다고도 하고 친가에 가면 아빠를 닮았다고들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나왔을 때 회복실에서는 조부모님들과 이모들, 친척들, 그리고 엄마 친구들이 왔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낳고 나서 작은 이모부가 주신 꽃바구니가 처음 받은 선물이었다고 한다. 출산 선물들은 옷, 먹을 것, 배내저고리, 그리고 출산 전에는 돈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처음 입은 배내저고리는 병원에서 준 배내저고리였다고 하고, 그리고 입고 다녔던 배내저고리는 엄마가 산 배내저고리였고, 하얗고 금은색 줄무늬가 있는 배내저고리를 입었다고 한다.
나는 엄마의 모유를 먹고 컸고, 자주 먹지는 않았지만 연어, 동태 이유식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나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초음파 사진 찍었을 때 아기 때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발을 놓고 다리를 약간 꼰 듯 한 상태로 잤는데 아직도 잘 때 비슷한 자세로 잔다고 한다. 나는 어릴 때 키우기 쉬운 성격이었고, 잘 먹고, 아프지 않고, 울어야 할 때만 울었지만, 잠을 많이 자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어릴 때는 이모네랑 근처에 살아서 매일 아빠가 출근한 후에 엄마가 이모네에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나는 어릴 때 책을 매우 좋아해서 책을 읽어줘야 잠을 자고 잠을 잘 안자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 재웠다.
나는 100일 때 쯤 엄마를 알아봤고, 어릴 때부터 계속 옹알옹알 거렸다고 한다. 나는 정확히 98일 만에 뒤집었고, 백일 이틀 전이어서 정확하게 기억하신다고 한다. 나는 5개월 때 정도부터 기었고. 6개월 때 첫 이가 났다고 한다. 나는 보행기를 많이 타지는 않았는데도, 11개월 때 부모님 손을 잡고 일어나서 첫 걸음마를 했고, 그래서 돌잔치 때 잘 걸어서 많이 걸었다고 한다. 나는 4살 때 한글을 뗐고 5살 때는 쓰기를 했다고 한다.
작전동에 있는 어떤 뷔페에서 3월 19일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돌잔치를 했고, 외할머니가 주신 분홍색깔 한복을 입었고 가족들도 모두 한복을 입었었고, 친척들 및 지인들이 많이 오셨었다. 나는 그때 막 걸어 다녀서 막 나를 잡으러 다녔다고 한다. 돌잡이 때는 돈을 잡았고 나중에는 졸려서 계속 찡찡거렸다고 한다.
10개월 정도에 처음 말을 했었다. 내가 처음 했던 말은 ‘엄마’라는 말이었다. 나는 말을 처음 시작한 후부터는 자연스럽게 말을 잘 했다. 유아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말을 얼마나 빨리 했냐면 내가 어느 날 엄마한테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걱정되는 마음에 병원에 데려갔는데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애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왔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얘가 말을 해요?” 라고 물어보셨다고 할 정도로 말을 빨리 했다고 한다. 내가 20개월 정도 되는 아이 때 계속 했던 말이 ‘아빠 두 살’ 이었다고 한다. 내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봤던 말이 “너 몇 살이야?” 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였다. 그런데 나는 귀찮아서였는지, 뭐였는지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얘기했다고 한다. 엄마가 매니큐어를 발라주면서 아빠한테 혼난다고 했더니 매니큐어 병만 보면 ‘아빠 혼나’ 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24개월 정도부터는 나보다 10개월, 8개월 먼저 태어난 언니, 오빠보다 말을 더 자연스럽게 했다. 그리고 내가 밖에서 말을 하면 사람들이 애기가 말 잘한다고 신기해했다고 한다.
나는 돌 전에 처음 밥을 먹었다. 엄마가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먹었다. 게다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미역국이랑 된장국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생선을 많이 줘서 많이 먹다보니까 좋아했다. 맨날 오빠 옷 입고 다녀서 사람들이 핀을 안 꽂으면 남자아인 줄 알았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은 아빠가 출장 다녀오면서 사오신 큐브처럼 생긴 전화기랑 숫자 있고 꽃이 달려있고 소리가 나는 장난감이었다. 그 외에는 꿈틀이 인형을 좋아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에 또래가 많아서 사람들이랑 교류가 많았었다.
내가 정작 자전거를 산 때는 2살 때였고, 뿡뿡이 자전거였다. 하지만 타지는 못 해서 엄마가 집안에서 끌어주면서 타고 다녔다.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갈 때에는 아빠가 나 자전거 타기가 좁다고 이사를 가면서 턱을 없앴다. 돌 조금 지나서 4월정도 지났을 때 1박 2일로 이모들이랑 같이 평창 어쩌고 수목원과 양떼목장에 갔었다. 기억에는 없다. 그리고 동네에 인라인스케이트 공원도 있었고 공원이 주변에 많았기 때문에 공원에 수시로 다녔다. 영종 할머니 댁 바닷가, 춘천 할머니 댁 근처로 소풍도 많이 갔다.
나는 어릴 적에 책을 많이 좋아했다. 내가 처음 스스로 책을 읽었을 때는 4살이었고 ‘빨간 우산’이라는 책을 처음으로 읽었었다. 아빠가 여행 갈 때도 캐리어에 책부터 넣고 가서 읽었다고 한다. 내가 가장 많이 읽었고 좋아하던 책은 ‘나랑 같이 놀자’ 였는데, 그 내용은 어떤 아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혼자서 있는데 동물 친구들이랑 놀고 싶었지만 놀지 못하고 한참을 혼자 있자 동물 친구들이 다시 돌아와 놀게 된다는 이야기였고 정말 책이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 읽었다고 한다. 그 외에는 ‘종이봉지 공주’,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좋아했다.
내가 처음 유치원에 입학하던 날이 정우 돌잔치 하는 날이었다. 입학식에는 엄마랑 같이 갔었고 엄마는 ‘이제 다 컸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는 9층에 사는 효원이랑, 7층에 사는 민승이와 함께 유치원에 다녔다.
내가 기억나는 가장 어릴 때 일은 내가 어린이집에 다닐 당시에 거꾸로 집 같은 데에 가서 봤던 기억이 난다. 또 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당나귀 옷을 입고 영어 공연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입장하다가 우당탕 넘어져서 너무 아파서 막 울었었다. 그래서 그 공연에는 출연하지 못했다.
나는 인천의 동화나라 유치원에 다녔었다. 나는 거기서 처음에 5살 알라딘 반이었다. 알라딘 반 선생님은 정말 깡마르신 분이었는데 나는 별로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었다. 선생님은 우리가 5살이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애들을 다 모아놓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 얘기 저 얘기 섞어서 하는가 하면 우리의 지식으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단어들을 섞어 쓰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가 잘 못알아 듣고 선생님 말씀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짜증스러워 하셨다. 그리고 6살 때는 같은 유치원 어린왕자 반이었고, 이 때는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다. 내가 7살 때는 피터팬 반이었는데, 아마 옆 반이 피노키오 반이었을 거다. 근데 피노키오 반 선생님이 나랑, 나랑 같은 반이었던 한 여자아이를 정말 좋아했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우리 반에 찾아와서 나랑 그 친구를 자기네 반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얘기했고, 어떤 날에는 그 전날 꿈속에서 나랑 그 아이가 나와서 자기네 반으로 오는 꿈을 꿨다고 했었다.
유치원에서 나랑 친한 친구였던 효원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5살 때 처음으로 혼자 효원이네 집에 놀러갔다. 효원이랑의 기억 중에서 아직도 생각나는 게 우리 집 컴퓨터방에서 파워레인저 영화를 보고 거기 나오는 등장인물로 역할극을 하면서 놀기도 하고 체험학습 같은 곳에 가면 버스 안에서 파워레인저 주제곡을 부르면서 놀았다. 4살 때 어린이집에서 만났다가 우리 집 밑에 층으로 이사와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도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내가 유치원 때 했던 활동 중에는 책상 위에 학습지 같은 것들을 두고 활동하는 게 있었다. 그런데 내가 반에서 가장 그걸 많이 해서 종이가 너무 많아 그냥 파일로는 다 넣을 수가 없어서 선생님이 다른 리필 하는 비슷한 거를 가지고 나만 계속 채워줬었다. 또 글씨쓰기 책 같은 거를 주고 연필로 글씨 연습하는 것 같은 것도 있었다. 그때 내가 정말 정성들여서 썼던 글씨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걸 보고 칭찬 해 주셨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글씨연습 책을 열심히 했었다. 유치원 체육시간에 했던 활동 중에 엄청나게 큰 천 안에 모든 아이들이 들어가서 뚫린 곳이 없게 꽁꽁 싸맨(?) 다음 밖에서 체육선생님이 호랑이 빙의를 해서 안에 있는 애들을 빼내오는 그런 놀이를 했었다. 나는 매번 체육시간마다 그 놀이를 하기를 기다렸었다. 그리고 아마 거의 매년 유치원에서는 재롱잔치를 했었던 거로 기억한다. 내가 언제인지 모를 때 유치원 때 아빠랑 같이 ‘아빠 힘내세요’를 했었다. 그 공연이 원래 아이들끼리만 하는 건데 사회자가 갑자기 아빠랑 같이 하라고 해서 아빠가 올라와서 같이 했다. 나는 7살 3월달 정도부터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영어학원의 이름은 원더랜드 (Wonder Land) 였다. 거기서 준비반 식으로 효원이랑 다른 동갑내기 친구들을 만나서 짧게 배웠었다. 나는 그렇게 유치원을 졸업하게 되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위치한 동막초등학교 라는 학교를 다녔었다. 나는 입학식을 학교 체육관에서 했었다. 그때 이제 6학년에 막 올라온 선배들이 뭔가를 나눠줬는데, 그 당시 나는 너무 작았기 때문에 6학년 언니오빠들이 그렇게 커 보였었다. 나는 학교에서 1학년 4반 17번이 되었고 신학순 선생님을 만났었다. 그때 나는 같은 반에 나랑 같이 영어학원에 다녔던 채민이라는 친구가 같이 있었다. 게다가 채민이랑 같은 아파트에 서로 바로 건너편 동에 살았기 때문에 자주 만나서 놀기도 하고 등교도 같이 했었다. 그리고 1학년 때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당연히 모든 학원들이 다 그렇듯이 처음에는 피아노 학원이 정말 좋았다. 채민이도 있었고, 다른 1학년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피아노 학원이 여러 개인 방들도 있고 친구들이랑 같이 큰 방에 들어가서 떠들면서 할 수도 있었다. 나는 그 곳이 정말 신기했고 정말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내가 1학년 때는 2학년 올라갈 때 통지표와 함께 통지표 밑에다가 몇 학년 몇 반인지 (가반, 나반 등)를 알려줬었다. 그때 나는 같은 반 하연이라는 친구와 함께 같은 반이 되었다. 일 학년 같은 반에서 같은 반이 된 여자아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그나마 하연이랑은 다른 친구들보다는 친해서 앞으로 친하게 지내기로 하고 나는 2학년이 되었다.
나는 2학년 1반이 되었고, 주인숙 선생님을 만났다. 2학년 때는 주로 하연이랑 친했다. 나는 2학년 때 미술 학원도 다녔고, 수영 학원, 아마 수학 학원도 같이 다녔다. 그래서 나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피아노 학원을 끊었다. 그리고 수학 학원에서 문제집을 정말 열심히 풀었다. 2학년 때는 1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 그리고 2학기 중간과 기말 모두 2과목, 국어와 수학을 봤었다. 열심히 공부해서인지 뭔지 나는 4가지 시험 모두를 다 올백 맞았었다. 처음 시험에서는 효원이도 올백이었는데, 나는 전체를 모두 올백 맞았다. 2학년 내에서는 내가 올백이 유일했다. 아직까지는 내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전교 1등이었다.
그리고 2학년 때는 내가 정말 컵떡볶이를 사랑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우리 동네에는 분식집이 있어서 엄마 심부름으로 김밥과 떡볶이를 사오기도 하고 그랬다. 그때 컵떡볶이는 500원이었고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팔던 집은 한 컵에 1000원이었다. 정말 떡볶이는 맛있었다.
내가 3학년 때는 3학년 2반이었고, 김인숙 선생님이 우리 담임이셨다. 내 기억 속에는 가장 암흑기라고 해야 하나, 그랬던 학년 같다. 3학년 때 나는 선생님이 내가 2학년 때 모두 올백을 맞았다는 이유로 학교 대표로 나갈 학생으로 나를 추천해서 교육청으로 과학을 다녔다. 그 때 배웠던 거를 생각해보면 지금 배우는 과학보다 더 어려운 것들을 배웠던 것 같다. 금붕어 (죽이진 않았다) 실험도 하고 비닐을 가지고 후우 불면 비닐이 꽉 차는 그런 실험도 하고 여러 가지를 했었다. 당시 나는 사교성이 정말 떨어졌었기 때문에 친구들을 사귀지 못하고 그냥 같은 자리에 앉았던 어떤 남자애랑 같이 했었다. 그리고 3학년 때 시험에서 내가 수학 시험에서 평균을 찍었었는데 너무 많이 떨어져서 정말 슬펐었다. 3학년 1월 1일에는 동생이 사슴벌레를 키우고 싶다고 해서 사슴벌레를 사러 울며 겨자 먹기로 이마트에 갔었다. 근데 그때 당시에는 이마트에 사슴벌레가 없었고, 다른 키울 동물들을 찾고 있던 찰나 누군가가 “햄스터는 어때?” 물어 봐서 햄스터 두 마리, 정글리안 암컷 두 마리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한 마리는 밀키, 한 마리는 밀크였다. 데려온지 얼마 안됐을 때 내가 방과후 컴퓨터를 갔다가 엄마랑 전화통화를 했었는데 밀크와 밀키가 햄스터 집 안에서 탈출했는데, 엄마는 쥐 종류를 무척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비닐 장갑을 찾아서 애들을 다시 집에다가 넣었다고 한다. 우리 사촌언니가 놀러왔을 때 우리가 차마 햄스터 집 뚜껑을 닫지 않고 자버려서 활발하던 밀크가 탈출했는데, 사촌 언니는 동물을 매우 잘 만졌기 때문에 밀크를 찾아서 다시 넣어 주었다. 그러던 한여름에는 밀키가 물이 없어서 다음 날 아침에 죽은 채로 햄스터 집에서 발견됐었다. 그때 나는 정말 슬퍼서 막 울고 땅에다가 묻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4학년 때는 내가 그렇게 원하던 3반이 되었었다. 내가 3반을 그렇게 바라던 이유는 항상학년에서 3반 선생님이 부장 선생님들이었는데 3반은 다른 반들보다 특혜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때 민정이랑 같은 반이 되었었다. 민정이는 나랑 같이 EIE 라는 영어 학원을 다녔고 한자 방과후도 같이 했기 때문에 4학년 때 친하게 지냈다.
EIE에서는 나름 재미있던 추억들이 많은 것 같다. 학원 언니, 오빠들이랑도 친했고, 선생님들이랑도 나름 친하게 지냈었다. 학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먹고 파티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 때 쌤들이 라면도 끓여주시고 닭강정, 피자, 떡볶이 등 많이많이 사주셨다. 그리고 학원 언니, 오빠도 착해서 먹을 것도 막 사주고 잘 놀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사건들이 있는데 쉬는 시간에 선생님이 돈 주시면서 떡볶이 사서 먹으라고 하셔서 막 뛰어가다가 민정이가 돌에 걸려서 픽 넘어져서 몇초 동안 정신을 잃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건은 우리 선생님이 간식 사주신다고 하셔서 나랑 같이 바로 밑에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을 사주시는데 그 때 티비에서 세월호 관련 뉴스를 처음 봤었다. 그때 내가 봤던 기사는 수학여행 갔던 고등학생들이 어쩌고 하고 세월호 사진이 같이 나왔었다. 나중에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는 정말 슬펐다.
그리고 4학년 때는 우리 동네에서 야시장이 열렸었다. 야시장에서는 회오리 감자도 먹고, 타코야끼도 먹었다. 총이었나 그런 걸 쏴서 상품 받는 것도 했는데 총을 잘 쏴서 상품을 얻었다. 야시장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바이킹이었는데, 미니 바이킹이 와서 돈을 내고 그걸 탔었다. 나는 친구랑 맨 뒷자리에 탔었는데 그 아저씨가 높게 해주셔서 재미있었고 약간 쬐끔... 쬐애끄음... 무서웠다. 그 야시장에서 물고기를 그물로 잡아서 가지고 가는 그런 것도 있었는데 그 다음 날이었나 언제였나 놀이터에서 그때 사람들이 받아갔던 봉지와 함께 금붕어들이 꼬치에 찔린 상태로 놀이터에서 발견됐었다... 정말 무섭기도 하고 끔찍했고 그렇게 한 사람이 너무 매정했다.
내가 4학년 때는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이 전원주택에 살고 싶다고 제주도부터 시작해서 가평, 그리고 양평까지 땅을 알아봤었다. 그렇게 아무런 계획 없이 집을 파는 데 한참이 걸릴 줄 알고 집을 내놓았는데 1주일 만에 집이 팔렸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 18평짜리 집으로 이사를 갔고 필요한 생활용품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물건들을 가지고 가지 않았었다. 나는 한자 방과후, 영어 학원 등 민정이와 같이 하는 게 정말 많았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민정이랑 서로 삐져서 얘기도 안 하고 민정이는 다른 친구랑 놀아서 둘이 같이 있으면 진짜 어색해 죽을 뻔 했었다. 그렇게 화해(?)를 하고 한 달 정도 후에 내가 양평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아빠가 지금 현재 우리 땅을 보고 이게 마지막이다, 이게 안 되면 그냥 인천에서 살겠다, 했었다. 그런데 그 땅을 사게 돼서 그곳에 집을 지었다. 나는 솔직히 전학을 간다고 했을 때 정말 슬펐다. 오래 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도 많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야 한다는 게 정말 슬펐다.
나는 9월 13일, 지금 나의 집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입리 339-3번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9월 15일 월요일 수입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나는 4학년 민들레 반 정은미 선생님이셨다. 내가 전학 왔을 때 처음에 가장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친구는 예원이었다. 훗날 내 골치를 괴롭히게 되는 친구이기도 했다. 내가 전학왔을 때 여자애들은 뜨개질을 하느라 바빠서 나랑 놀아줄 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 가서 쉬는 시간을 채웠다. 수입 초등학교는 동막 초등학교와는 다르게 80분 수업에 30분 쉬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었다.
내가 전학 온지 일주일 뒤 가을계절학교를 했었다. 나는 뮤지컬을 했었는데 서종중학교 체육관에서 공연을 했었다. 음악 타이밍이 안 맞아서 파란 천이 별 전개 없이 나왔던 것 빼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 그 주에 우리 친할머니와 사촌언니, 사촌오빠 (성연이 언니, 민혁이 오빠)가 집에 오기로 해서 무드리 예술제를 구경하다가 우리 집에 와서 잤다.
내가 5학년 때는 이혜란 선생님이셨다. 5학년 때 예지, 지우, 나영, 다영이와 함께 오총사 (일명 364) 라고 하며 친하게 지내며 금요일 날 같이 많이 놀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원이가 신발장에서 자기 신발을 신다가 은행을 밟았다고 그 이후로 3주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분명 우리 오총사 중에서 그런 일을 벌인 아이는 없었고, 또 학교에서 자기 새 샤프의 젤리가 찢어져 있었다는 사건이 갑자기 예원이가 왕따를 당했다는 사건으로 변해서 한동안 상담도 많이 받고 했었다. 그때 당시에는 정말 억울해서 어떻게 해도 뭐라고 하니까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그때 조금 더 다른 아이들을 생각해 보았어도 좋을 법 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5학년 3월 31일, 내가 키우던 햄스터 밀크가 죽었다. 죽기 몇 시간 전에 조금 비틀비틀 거리더니 죽기 전에 내가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설탕물도 먹여보고 그랬는데 결국 내 앞에서 밀크는 숨을 거뒀다. 그 순간 나는 진짜 너무 슬퍼서 막 엉엉 울었었다. 엄마가 우유곽을 주셔서 그 안에다가 밀크를 넣고 확실히 숨을 거둔 건가 확인하고는 우리 집 뒤에다가 묻었다. 진짜 너무 슬펐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우리는 강아지 코코를 입양했다. 원래 코코는 어떤 여자 분이 기르고 있었는데, 여자 혼자 키우기에는 조금 부담돼서 입양할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그 여자 분이 우리 아빠 회사 사람의 친구여서 아빠가 그걸 듣고 데리고 왔다. 코코는 아메리칸 코카스패니얼로 블랙탄이었다. 나는 원래 개 공포증이 있었다. 코코를 데리고 오면서 ‘아, 이번에는 개 공포증을 꼭 이겨봐야지’ 했는데, 코코를 데리고 오면서 상자에 넣어서 왔는데, 내려놓자마자 코코가 막 집안을 뛰어다녔다. 나는 무섭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새로 온 강아지가 정말 귀엽기도 했다. 첫날부터 엄마를 잘 따라서 청소하러 올라가는 엄마를 따라 계단을 반정도나 올라가고, 봐도봐도 신기한지 막 뛰어다녔다.
내 개 공포증이 고쳐진 건 코코랑 단둘이 있었을 때였다.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이 다 나갔을 때 나랑 코코랑 단둘이 있었는데, 그때 코코가 정말 얌전했을 때라 나는 코코를 무릎에 앉혀두고 개 공포증을 서서히 고쳐나갔다. 그렇게 코코랑 꽤 많이 친해졌을 때, 코코는 너무 커져서 밖으로 나가게 됐다.
6학년 때는 무궁화 반이었고, 홍명희 선생님 (일명 홍쌤)을 만났다. 홍쌤으로 인해 생각의 폭이 더 넓어진 것 같다. 온책읽기 때 책을 읽고 쌤 메일로 독후감상문을 써서 냈는데, 그때마다 책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논술 선생님을 만나 책도 다시 많이 읽게 되고, 글이 더 매끄러워 진 것 같다. 그리고 역사에 대해 관심이 더 많아져 역사책들도 많이 읽고, 법에 관해서도 공부해서 지금 현재 내 장래희망인 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처음 꾸었던 것 같다.
6학년 때는 내가 남매맺기 남매의 조장이 되었다. 나는 김지환, 심우창이랑 같은 조였다. 우리 남매에는 1학년 설아영, 3학년 고주원, 정지율, 5학년 안시현이었다. 원래 4, 5학년 다른 애들도 있었고 5학년 안시현이 없었는데, 걔들이 전학가고 안시현이 전학오면서 우리 남매로 왔다. 남매 맺기는 친한 친구가 없어서 별로 재미가 없었다. 남매대로 수련회도 갔었는데, 밤에 같이 자면서 1학년 아영이가 늦게 자면서 이제 쑥쑥이 아저씨가 이미 왔다가 다시 가버렸다고 어짜피 그러니까 그냥 늦게 자자고 했던 게 기억이 난다.
6학년 때는 내가 놀러 다녔던 시절 중 가장 전성기였던 것 같다. 우리 학교 뒤쪽에 언제인지부터 gs25가 생겨서 많이 먹고 놀러 다녔다. 할 거 없으면 애들이랑 gs로 놀러가고, 라면도 많이 먹었다. 그러면서 오총사 친구들이랑 더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정은이는 거기에 끼고 싶어서 우리가 팔짱을 끼고 있으면 자기도 팔짱을 꼈고,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더 심하게 붙어 다녔다. 그런데 우리는 또 그게 싫었던 나머지 정은이를 피해 다니고, 정은이를 싫어했었다.
정은이와 함께 사건이 심하게 터졌던 건 12월 23일, 방학식 날이었다. 그때 우리는 방학식이 끝나고 나서 지우네 집에 가서 파자마 파티를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6학년 때 선생님이 '번개 치기' 라고, 우리 반 모든 친구들을 대상으로 갑자기 놀 계획을 세워서 예를 들면 '내일 학교 끝나고 나랑 같이 구리 나갈 사람?' 이런 식으로 하는 거였다. 그런데 정은이랑 예원이가 같이 학교에서 번개를 치기로 했는데 아무도 번개에 나가겠다고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애들이 하도 안 나갈 것 같으니까 다영이한테 선생님이 할 거 없으면 번개에 나가라고 했다. 그런데 다영이는 우리랑 약속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번개에 나갈 수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당일날 약속이 꼬이고 꼬여 정은이랑 예원이가 학교에서는 놀 게 없으니까 정은이네 집에서 놀자고 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 다영이가 정은이네 가서 놀고 다 놀 때 까지 기다릴 만한 때문에 정은이와 예원이한테 양해를 구했다. 그 때 예원이는 동생이 "왜 누나만 놀아?" 라고 떼를 부려서 가버렸었다. 그런데 정은이와 다영이가 단 둘이서 신발장에 있을 때 정은이가 "왜 나만 차별해" 하며 막 울었고, 우리와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그때 우리도 당한 게 많았고 정은이가 거짓말을 치기까지 하며 거의 나와 애들은 정신적 스트레스(?) 까지 받았기 때문에 정은이와 우리가 엄청나게 충돌을 했었다. 정은이가 막 울며 뭐라뭐라 해서 우리도 항상 정은이는 뭐만 하면 울고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듯 해서 우리도 짜증나서 지우는 막 눈물약까지 넣으며 우는 척을 했고, 나는 예지가 최면(?)을 걸으며 조금조금씩 울었다. 그때 우리 오총사만의 카톡방도 있었는데, 정은이가 자기 빼고 있는 게 싫다면서 다영이한테 나가라고 막 협박을 하기도 했었다. 결국에는 우리도, 정은이도 서로 이해하기로 하고 끝냈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 당시의 약속이 있었는데, 정은이한테 "우리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야 돼" 라고 말하기는 조금 그래서 정은이가 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지우네 집으로 놀러갔었다.
지우네 집에 가서는 우리가 겪은 일들에 관련된 만화 그리는 걸 구경하고 (물론 1페이지 정도 그리고 그만두기는 했지만) 밤에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먹었다. 다영이가 끓여줬었는데 진짜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나랑 다영이랑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었다. 밤에 먹었던 아이스크림은 정말 맛있었다. 자기 전에 트와이스가 했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식스틴을 보고 잤었다. 보다가 다영이는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보드 게임도 하고, 햄이 잔뜩 들어간 김치찌개도 먹었다. 그러다가 예지는 라라랜드를 가족끼리 보느라 가고, 나는 다영이랑 같이 좀 더 놀다가 집으로 갔다.
졸업식은 정말 항상 멀게 만 느껴졌었지만 생각보다, 느끼기보다는 빨리 다가왔다. 우리는 졸업식을 위해 김동률의 출발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때 마침(?) 전날에 아빠랑 야간스키를 다녀와서 감기가 걸려있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는데 제대로 부르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었다. 부모님들이 준비해주신 편지 영상도 보고, 1년간 찍었던 사진들을 영상으로 만든 것도 봤다. 울 뻔했지만 울지 않았다. 친구들이랑 사진도 찍고, 선생님이랑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나서는 쿠우쿠우라는 초밥&뷔페를 갔다. 그런데 그 뷔페에서는 내가 금방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왔다는 이유로 성인요금(청소년도 포함)을 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아빠가 화가 나서 직원한테 막 따졌었다. 심지어 내가 초밥을 가지러 갔을 때 요리사 분들도 얘기하고 계실 정도로 이 이야기는 식당에서 화제가 됐었다. 결국에는 초등학생 요금으로 해주긴 했지만.
그렇게 6학년을 졸업하고 반배치 고사를 봤다. 나는 그때 당시 g2였던 핸드폰이 망가져서 집에 있던 공기계 s3를 썼었다. 그런데 s3가 성능도 그렇고 별로 좋지 않아서 나는 아빠랑 내기를 걸었다. 내가 만약 반배치 고사를 봐서 3등 안에 들면 내가 원하는 기종으로 핸드폰을 바꾸고, 20등 안에 들면 중저가폰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 열심히 반배치 고사 문제집을 풀었지만 수학 부분에서 시험이 망했다는 걸 인지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3등 안에 들지 못했지만 아빠가 내 노력은 인정한다고 3월 1일, 휴대폰을 바꾸러 테크노 마트에 갔었다. s6엣지를 사려고 했는데, s6 시리즈 전체가 다 품절됐다고 해서 결국 나는 s7 골드 플래티넘을 샀다.
2016년 2월 24일에는 나, 나영, 예지와 함께 세종으로 이사 간 지우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지우 몰래 세종으로 갔다. 먼저 예지네 아빠 차를 타고 테크노 마트, 동서울 버스터미널로 갔다. 거기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조금 놀다가 고속버스를 타고 갔다. 원래 다영이도 같이 가려고 했는데, 그날 새벽에 다영이가 아파서 같이 가지 못했다. 그래서 버스에서 한 명은 혼자 앉아야 할 판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냥 받았던 표 대로 앉게 되었는데 나는 예지랑 같이 앉았고 나영이는 혼자 앉아서 갔다. 그렇게 세종 청사에 도착해서 지우네 엄마 차를 타고 지우네로 갔다.
지우네는 가재마을 9단지(?)였다. 우리는 서프라이즈로 같이 맞춘 옷과 케이크를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복도에서 초를 꽂고 들어가서 놀래켜줬다. 지우는 깜짝 놀라서 우리를 쳐다봤었다. 그렇게 케이크도 먹고, 그렇게 못 본 지 오래 되지는 않았었지만 정말 반가워하며 놀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지우네 엄마가 레스토랑에도 데려가 주시고, (거기서 먹었던 필라프는 맛있긴 했지만 굉장히 매웠다. 스테이크, 토마토 스파게티는 정말 내 사랑이었던...) 밤에는 노래방에도 가서 열창을 했다. 또 집에 와서는 그 날이 24일이었기 때문에 12시에 딱 맞춰서 지우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우가 그 전에 이달의 소녀 여진 개인 팬싸인회 하는 걸 봤다고 해서 이달의 소녀를 찾아보느라 12시 땡을 놓쳤다. 그리고서는 새벽까지 너의 이름은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잤다. 생일 다음 날은 정말 아쉬웠다. 아침으로 빵과 우유를 마셨는데, 유당불내증(?)으로 배가 정말 아팠었다. 2017년 2월 25일, 그 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했던 날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우가 기분 나빠했던 게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렇게 우리는 세종청사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다시 동서울 버스 터미널로 갔다. 버스 안에서 나는 어떤 아줌마 옆에 앉았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떠들기도 묘하고 그래서 게임을 했다. 지렁이 게임이었는데, 정말 대단한 신기록을 세웠었다. 테크노 마트 주변에 예지 아빠가 계셔서 우리를 테크노 마트에 데리고 가셔서 무한 즉석떡볶이 집에 가서 정말 배터지게 먹었었다. 그리고 꽤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정말 맛있어서 행복했었다.
나는 서종중학교 1학년 1반 15번이 되었고, 우리 담임선생님은 김봉국 선생님이셨다.
처음에 나는 다영이랑 같은 반이어서 그래도 같은 학교에 나온 친구가 있어서 정말 좋았다. 처음에 교실에 들어갔을 때는 다영이랑 같이 앉고 싶었는데, 자리가 두 자리가 붙어 있는 건 없어서 나는 규진이 옆에 앉았고, 다영이는 내 뒤에 뒤에 이수현 옆에 앉았다.
입학식은 체육관에 가서 했다. 누군가 잘못된 정보로 출석번호대로 서라고 했는데 나는 출석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앞뒤에 있던 친구들한테 출석번호는 이름순서대로니까 “출석번호대로 서야 하는데 내가 출석번호가 생각이 안 나서... 이름이 뭐야?” 물어보면서 나름 비슷한 자리에 섰었다. 그때 내가 물어봤던 애가 재은이었고, 다른 한 친구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결국에는 알고 보니 마음대로 서도 됐던 거였다.
처음에 나는 규진이한테 말을 걸고 싶었는데 너무 어색할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았었다. 모둠끼리 뭔가 하는 걸 하면서 서서히 말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규진이가 생일 선물도 주고 친하게 지냈다. 나는 내 뒤에가 바로 다운이었는데, 다영이가 수현이랑 친해졌었고, 내 뒷자리에 있던 다운이랑도 같이 밥을 먹었었다. 그 때 다운이랑도 같이 밥을 먹었고, 전화번호도 공유했었다. 입학한지 일주일도 안 됐을 때, 벌써 친해져서 나는 다운이네 집에 단 둘이 놀러가서 놀았었다.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는 더 친하게 지내게 됐다.
우리 반에서 수입초등학교를 나온 친구는 3명밖에 없었다. 나, 다영, 정훈이었다. 우리 반에는 특히 서종초등학교에서 나온 친구들이 많아서 처음에 적응하는데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매 시간 시간마다 자기소개를 하니, 입학한지 2일 정도 지났을 때는 여자 아이들 이름은 다 외웠었다. 그런데 남자애들은 뒤통수가 다 똑같이 생겨서 이름을 외우는 데 조금 더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이 되고 나서는 수련회를 다녀왔다. 수련회 갈 때와 올 때는 다영이와 같이 앉아서 갔고, 숙소는 다영, 다운이랑 같이 썼다. 나는 방 내에서 방장을 맡았었다. 첫째 날은 암벽타기를 했다. 우리 반은 정말 열성적으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나는 거의 정상을 한 번 딱 치고 내려왔다. 암벽타기는 내 생각보다 정말 어려웠다. 어렵고, 힘들었다. 게다가 암벽타기를 하고 난 다음 날에는 어깨와 온 몸이 쑤시기까지 했었다.
첫째 날 저녁에는 레크레이션을 했다. 반끼리 대결도 하고, 장기자랑도 했다. 친구들이 춤도 췄었다. 재미있기도 했었고 조명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반짝반짝... 첫날 밤 밤에는 첫 점호를 했다. 우리가 환기도 시킬 겸 창문을 열어뒀었는데, 그 사이로 위에선지, 밑에서인지 담배 냄새가 흘러들어와 수련관 분이 창문이 열려있는 걸 보시고 (그때 마침 바람이 불어서 커튼이 휘날렸다.) 무전기로 혹시 위에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피나 확인을 해달라고 하셨다. 뭔가가 띡 하고 무전을 보내는데 정말 멋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잠을 잘 때에는 불을 다 끄고 자려다가 내가 다운이한테 “야, 다영이... 귀신본대...!” 라고 해서 나랑 다영이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무서운 생각에 둘이 막 소리도 지르고 빨리 불 키라고 난리법석을 피웠고 다운이는 껌껌한 방 안에서 손전등을 찾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손전등을 찾는 데 너무 오래 걸렸었고, 나랑 다영이는 굉장히 무서웠었다.
둘째 날에는 일찍 일어나느라 아침부터 굉장히 애를 먹었다. 다른 때 였다면 핸드폰에다가 알람을 설정해두고 자는데 휴대폰도 다 걷어갔기 때문에 정말 걱정을 했었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는 일찍 일어났고, 아침 점호 전에 양치도 하고, 옷도 다 갈아입고 준비를 할 정도로 시간이 많았었다. 우리는 둘째 날 오리엔티어링이라고 산에 가서 미션 같은 걸 하는 걸 했다. 나라 이름 맞추는 것들도 있었고, 좀 많이 어려웠던 문제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