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년 가까이 된 다이어리다. 주로 페이스북 타임라인 기록을 뒤지고 몇몇 기억을 보탰다. 처음 사마트 파야카룬 무에타이 캠프에 갔던 것은 2014년이다. 2014년 다이어리는 http://cafe.daum.net/gaiayoga/VTKZ/1
2016년 10월 12일
중국 가기 전부터 바쁜 일정이었는데 중국 가서는 내내 밤에 운동하고 새벽에 자야 했다. 한국 오자마자 SBS 스페셜 촬영을 했다. 많은 일들이 이어져 계속 새벽 취침을 해야 했다. 2016년 내내 아침형 인간으로 살다가 갑자기 뒤바뀌니 타격이 컸다.
2016년 10월 14일
파타고니아 가방 5개 총350리터와 함께 태국으로...
2년 전에도 머리 많이 쓰다 태국 와서 첫날부터 냉방병에 걸렸는데 이번에도 머리 회로가 몇 개 타버린 느낌으로 도착했다. 우선 타이마사지 2시간(1시간에 팁까지 8천원)을 받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독이 좀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머리에서 열이 났다.
누적된 피로를 매달고 태국까지 왔지만, 이곳 식구들의 환대(특히 밥과 과일!)를 받으니 기분은 좋아졌다.
이번에는 서양 선수들도 훈련하러 많이 왔고, UFC 현 페더급 챔피언 맥스 할로웨이도 우리 도착 직전까지 훈련하고 떠났다. 태국 낙무아이들도 전보다 두 배는 늘어나 있었다. 사정상 이 캠프에 합숙하는 다른 캠프 청소년 낙무아이들까지 있어서 낙무아이(태국에서 무에타이 선수들을 이르는 말)들만 스무 명 가까이 됐다. 덕분에 와이파이가 졸졸졸 흘러서 자다가 새벽 1시에 깨서 인터넷 업무를 수행했다.
2016년 10월 15일
이 친구들하고 달리면 신난다. 워밍업으로 한 20-30분 달리고 꼬박 두 시간 운동을 했다. "몸의 독"을 빼는 마음으로!
이틀 전 태국 국왕께서 돌아가셔서 텔레비전 모든 채널에서 왕에 대한 방송만 한다. 한달 내내 그럴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오전에 몇몇 채널에서 외국영화를 틀어줬다)
사무실에 있는 전설의 낙무아이 사진집... 많이 두껍다. 저번에 와서는 우리가 영어 전문 서점을 들른 것 같다. 태국어로 찾으면 더 좋은 책이 있는 것 같다. 이 분은 1925년생. 대부분 초기 낙무아이들은 83세, 88세... 장수하셨다. 이분도 1974년에 무려 50세의 나이로 일본에서 가라데카를 3라운드에 KO로 침몰시켰다. 가라데카는 훨씬 젊었을 것이다.
일본에선 앤디 훅(스위스)이나 제롬 르 밴너(프랑스)와 태국 낙무아이들의 말도 안되는 시합들이 열렸었다. 무려 30~40kg 덜 나가는 은퇴한 중년의 태국 낙무아이를 데려와 유럽의 젊은 헤비급 백인 가라데카, 킥복서와 붙였던 것이다. 당연히 헤비급들이 이겼지만, 다운 한번 못 뺏고 판정승이었다.
사무실에서 자료들 살펴보니, 사맛샘과 한국선수의 복싱시합 장면도 있다.
강상욱 씨에게 문의하니, 아래 사진 맨 오른쪽 백인이 네덜란드 메지로 gym의 얀 플라스라고 한다. 피터 아츠와 레미 본야스키의 스승 ... 왼쪽 2번째 태국 낙무아이는 사맛샘의 친형이며 룸피니에서 여러 번 챔피언 지낸 역시 전설이다. 사맛샘과 친형이 메고 있는 벨트들이 룸피니 챔피언 벨트들이다.
저녁 시간에 사맛샘이 친구와 함께 오셨다. “내 친구 WBC 챔피언”이라고 소개해주셨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냐고 물었더니 “무엉차이 키티...” 우리에겐 어렵다. 구글에서 찾아보라 하셔서 찾아봤더니 태국 최초의 복싱 두 체급 세계 챔피언.
무에타이는 40-50전 뛰셨는데 챔피언은 한 번도 못하고 복싱으로 전향해서 승승장구한 경우다.
지금은 방콕에서 자동차 파는 사장님이라고 위키피디아가 친절히 설명해준다.
더 찾아보니 한국에서 1991년 5월 18일 장정구 선수와 붙어서 12회 KO승. 이런.
사맛샘 체육관에서는 월드챔피언을 동네 아저씨 보듯 만나서 인사하고 같이 밥도 먹는다.
작년에 왔을 땐, 역시 WBC 두 체급 석권한 다른 복싱 챔피언하고 같이 운동했는데. 이름은 생각이 안 나는데... 마약 운반하다 걸려서 감옥도 다녀왔다. 그리고 All 분홍의 사나이였다. 분홍색 타월, 분홍색 티셔츠, 분홍색 트렁크, 분홍색 핸드랩, 분홍색 글러브, ... 태국이란 나라가 원래 분홍색을 사랑한다. 연꽃색이기 때문이다.
낙무아이들은 연분홍 트렁크에 왼쪽 오른쪽 커다란 흰색 리본을 달기까지 한다. (사진은 2014년 룸피니) 마초적인 스포츠의 최전선에서 분홍색에 리본이라니... 정말 문화가 다르긴 다르다.
재작년에 왔을 때는 현재 연예인이 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도 봤다.
이번에는 거구의 디젤 노이 선생이 아침 일찍 와서 꽈배기 한 봉다리 선수들에게 사주고
웃통 벗고 소파에서 내리 낮잠 자는 모습도 봤다.
옛날 사진은 마치 디젤 노이 선생과 사맛샘의 키가 비슷해 보이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디젤 노이 선생은 낙무아이 최장신급이다. 190에 가깝다. 그런데 어떻게 체중을 맞춰 훨씬 작은 사맛샘과 시합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인터뷰를 보면, 감량하느라 죽을 뻔했다고 한다.
반가운 쇳덩이를 다시 만났는데... 역시나 프랑스인 1명 빼곤 아무도 쓰지 않는다. 가끔씩 제일 무거운 RKC 케틀벨에 밧줄 걸고 밧줄 튕기는데만 쓴다.
링도 프랑스인의 것이다. 역시 내가 매 시간 스트레치하는데 애용했고 아무도 쓰지 않았다.
2016년 10월 16일
원래 사맛샘이 제자들 데리고 뮤직비디오랑 TV쇼에 많이 나가시는데... 2015년에 개봉된 사맛샘 전기 영화에는 여기 제자가 선생님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었다. 2016년만 해도 유튜브에서 영화 전체를 다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못 찾겠다.
이 영상에서 사맛샘에게 헤드 무브먼트를 지도받는 아이였다.
2016년 10월 17일
새로 생긴 쎄븐 일레븐 편의점이 그전에 이용했던 테스코 편의점보다 물건 종류와 배치가 4배는 더 유혹적이다. 6백 원짜리 (소스에 찍어먹는) 과일들까지 편의점 음식들을 풀코스로 챙겨먹어보니 매우 만족스럽다.
물론, 시장도 매력적이다.
2016년 10월 21일
챔피언과 스파링.
언제나 편집기술이 없어서 강제되는 원 테이크. 여기가 촬영기사의 실수가 가장 적은 부분이다.
영상에서 손 흔드는 외국인은 프랑스인이다. 저때까지 7년째 사마트 파야카룬 캠프에서 숙식하는 선수다. 올해는 오래 연애하던 태국 여인과 결혼에 골인했다. 이때까진 사마트 폽띠라땀 캠프였지만, 2018년 사맛샘이 부인과 이혼하면서 원래 본인의 링 네임대로 사마트 파야카룬 캠프로 바꿨다. 그러면서 현재는 캠프 선수들이 대폭 줄어 들었다.
2016년 10월 22일
방콕 시내에서 방콕 사시는 민지 씨랑 셋이 점심 먹고, 아시안 파쿠르 짐에서 수업도 들었다.
민지 씨는 방콕 생활인 답게 검은색 옷을 입고 나왔고, 우리는 원래 날라리 패션인데 최대한 맞췄다. 나는 태국인들의 사랑, 진핑크 티셔츠 입고 시내를 나온 건데 이때는 태국 국왕 조문기간이라 빨간 옷은 위험했다. 민지 씨 얘기를 듣고 마침 여벌로 가져간 어두운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방콕 시내는 온통 검었다. 홈페이지도 전광판도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도, 쇼핑몰 쇼윈도에 진열된 모든 옷들도 오직 검정뿐이었다.
내가 가 있던 한 달이 태국 국왕의 조문기간 한 달과 딱 겹쳤다.
물론 내가 지내던 Sai-mai 동네에선 잘 못 느낀다. 2번 나가본 방콕 시내는 마치 SF영화에 나오는 미래사회가 떠오를 만큼 온통 검정색 뿐이었지만, 방콕 외곽 동네에선 붉은 옷도 입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불렀다.
2016년 10월 23일
프랑스에서 경기가 잡혀있던 여섯 파이터들의 경기마저 (한 달 파이팅 금지령에 따라) 그제 저녁에 최종 취소됐다. 이미 태국 내의 모든 무에타이 경기가 취소되었고, 애도기간인 한 달 동안 열리지 않는다.
캠프는 순식간에 한산해졌고, 갑자기 와이파이가 빵빵 터지기 시작했다.
많은 낙무아이들이 이참에 귀향했기 때문이다. 한 달간 이 나라 선수들 모두 휴무인 셈이다. 대신 집에 가지 않고 남아있는 낙무아이들이 더 많이 가르쳐주고 재미난 일도 많았다.
2016년 10월 27일
오늘 아침은 8km 달리기!
닭들은 얌전했다.
2016년 10월 28일
오후에는 헤비 줄넘기 30분!
줄넘기는 이렇게 손잡이가 더 크고 줄이 잘 안 돌아가는 녀석들이다. 대형마트에 가봐도 이런 줄넘기만 판매한다. 태국에선 이런 헤비 줄넘기가 표준인 것 같다.
인도나 태국이나 줄넘기의 원형은 밧줄이었기 때문에 이런 헤비 줄넘기가 더 원형에 가까운 셈이다.
2016년 10월 29일
오늘 아침에는 5km 달리기.
보도블럭을 새로 깔고 아스팔트도 작년보다 개선됐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발목이 나가거나 머리가 까일 수 있다.
2016년 10월 31일
오늘 아침 달리기는 8km.
오늘은 정말 장애물 달리기 같았다.
피해야할 게 많은데 여럿이 좁은 길을 달리다보니까 앞에 뭐가 있는지 바로 앞에 도달할 때까지 안 보인다.
우선,
자동차, 오토바이, 나무들을 잘 피해야 한다.
새파란 바나나 덩어리도 잘 피해야 한다. 오늘은 머리를 재빨리 움직였다.
우기라서 여기저기 있다가 없다가 하는 웅덩이들도 스캐닝해야 한다.
상점 입구마다 물을 넣어 매달아 놓은 물통들도 조심해야 한다. 거의 내 머리 높이다. 아마 파리를 쫓는데 쓰이는 것 같다.
전봇대들도 인도 한가운데 난데없이 서 있는 경우가 많다. 개똥도 참 많다. 쥐와 개구리 사체들도 많은데 밤에 튀어나왔을 텐데 이른 아침이면 이미 판판하게 쥐포가 돼 있어 끔찍하진 않다.
길 한복판에 하루 종일 죽은 듯이 누워있는 개들도 잘 피해가야 한다. 우리가 지나가도 눈도 안 뜨고 꿈쩍도 안 한다.
마지막으로, 길거리의 개들이 있다.
주택가에서도 갑자기 달려드는 개들이 종종 있다. 여기 낙무아이들도 질겁을 한다. 손끝 바로 앞에서 아가리를 딱딱거리며 물어뜯겠노라 위협하기 때문이다. 우락부락하고 큰 놈이 그러면, 진짜 아찔하다. 위협인데, 진짜 같다.
평소에 마사지 받으러 갈 때, 상점 갈 때 이 길을 따라 가야 한다. 편도 12분 정도 걸어야 한다. 지나가던 트럭이 태워줄 때도 있다.
풍광은 좋은 길인데
풀려있는 개들 스무 마리 정도를 마주쳐야 한다. 작년까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길 따라 공동주택단지 공사장이 쭉 생기면서 숙식하는 노동자 가족이 개들을 10마리 이상 풀어놓고 있었다.
《태국에 살다》라는 책을 읽은 덕분에 작가의 조언대로 가볍고 긴 나뭇가지를 준비했다. 까마득한 옛날 인간에게 막대기란 이런 식으로 초간단 도구이며 무기였을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인간이란 높다란 존재다. 네 발 짐승들이 특히, 개과 짐승들이 볼 때 인간은 눈이 높이 달린 동물이다. 그런데 길고 가는 나무 막대기 하나까지 들어 버리면, 높이뿐만 아니라 길이까지 엄청 긴 동물이 된다.
10마리 정도가 멀리서 보고 어슬렁 어슬렁 나와 길을 가로막고 섰거나 무사히 지나갔다 싶으면 우루루 튀어나와 뒤따라온다. 그런데 150cm 정도 되는 나뭇가지 하나를 들면, 일단 2미터 넘게 안전거리가 확보된다
10마리가 둥그랗게 우릴 둘러싸진 못하고, 보통 나대는 한두 마리가 앞으로 튀어나와 이빨을 딱딱거린다.
그러다 뛰어오를 수도 있겠지만, 위협하는 거라서 거기까지 하진 않는다.
게다가 내 상체까지 뛰어오르려면 실제로는 3미터 거리를 도약해야할 것이다. 그 정도는 전문 사역견들도 도움닫기 거리가 따로 필요하다. 한마디로 얘들이 해내기엔 어려운 퍼포먼스다.
으르렁대며 다가오면, 나뭇가지로 멀리 바닥을 스윽 긁어준다. 그러면 뭔 말인지 알아먹는다.
‘이 이상 넘어오면, 쳐맞는다. 개들아.’
어제, 학교들이 개학했다. 여름(우기) 끄트머리인 10월 한 달 동안 방학이었다.
이제 교복 입은 학생들과 그들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들이 많아졌다. 그러고 보니 등교를 일찍 한다.
등굣길도 웃는 얼굴들이 해맑다.
2016년 11월 1일
오후 달리기는 5km.
이상하지만, 나는 땡볕 달리기를 더 좋아한다. 더 힘이 넘친다. 오후에는 고관절이 더 풀려 있기도 하다.
아침 7시에 학교 앞을 달릴 때 등교하던 학생들이 오후 3시 달릴 때 하교 중이었다. 14,15살 낙무에이들도 학교가 파하고 캠프로 돌아오는 길에 만났다.
이제,
싱가포르에서 일하던 남삭노이도 태국으로 귀국해 체육관을 열었다고 한다. (하지만 또 뭔 일이 틀어졌는지 작년 말에 싱가폴 이볼브짐으로 돌아갔다) 싱가폴에서 그에게 레쓴 받을 때는 정말 비쌌다. 2시간에 97만원! 그의 페북에서 본 글귀가 마음에 와 닿아 같이 실어본다. 힘을 주는 말이다!
지금은 원래 뜻에서 더 변형해서 내 식대로 기억하고 있다 : 어떤 부상이든 네 마음에선 가장 먼 것이다. 즉 마음을 부상당하지 않았다면 "Mai pen rai." = it doesn't matter...
나는 참 못하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도 않고 별로 아프지도 않다. 아프거나 다쳐도 잘 관리하니까 잘 낫는다.
한 번도 빠짐없이 다 참석하는 유일한 수련생이다. 제일 늙었지만 all 출석이다.
2016년 11월 2일
배가 너무 너무 고프다 ㅎㅎㅎ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먹기만 했다.
딱 세 번 말했다.
"원모어!" (One more!)
"아로이!" (맛있어요!)
"코쿤캅!" (감사해요!)
2016년 11월 3일 ·
오늘은 5.5리터의 물을 마셨다.
매일 13km를 달린다.
즐겁다. 물이 제일 맛있다.
땡볕에서 달릴 때 더 힘이 난다. 막 내달리고 싶지만 후반부에 힘들까봐 참는다.
오늘은 아이들 교복이 색색으로 다르다. 핑크, 퍼플, 하늘색, 교복 셔츠 색이 달랐다. 그냥 흰색 셔츠에 네이비 바지보다는 그래서 더 태국답다. 이중통역을 통해서 중학생 낙무아이에게 물어봐야겠다. 어른들은 왜 그런지 잘 모르더라.
2016년 11월 5일
오늘 아침 달리기는 12km.
가슴을 내밀거나 들어 올리며 달리는 것은 잘못이다.
고관절에서 마치 자동 장치처럼 다리를 젓고 있음이 잘 느껴졌다.
내가 타조 위에 올라타서 이동하는 기분이다.
또는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로봇 위에 승차한 기분이다.
▶ 미래소년 코난 ⓒStudio Ghibli
숨이 차거나 입으로 호흡을 해도 상관없다. 고관절 자동기계에서 다리를 계속 움직여 주니까 몸이 계속해서 앞으로 추진될 뿐이다. 12km를 달렸지만, 오히려 더 가뿐했다. 그리고 스파링도 15분 하고 할 건 다 했다.
오후에는 5km를 달렸다. 달리기만 좋아진 것은 아니다. 움직임이 조금씩 좋아졌다.
12살, 14살 낙무아이들도 10살이면 벌써 몇 백 만원 (한화로 따져서 그렇고 태국 가치로 따지면 더 많다) 상금을 받고 시합하는 프로들이다. 다른 낙무아이들도 대부분 내게 아들 뻘이지만, (태국은 한국보다 결혼을 일찍 한다) 이 바닥에선 한참 선배님들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