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2년 전 늦여름, 은척공소에 한 십여일을 머물 수 있는 허락을 받고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내 생에 그런 선물을 받게 될 줄은 정말 몰랐었던 만큼, 귀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은척공소는 안동교구 상주 서문동본당 관할이다. 상주에는 은척공소 말고도 여러 공소가 있다. 작은 실개천 옆에 위치한 은척공소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인다.
두렵고 감사하여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거룩한 장소 안으로 발을 내 딛는다.
공소지만 마을이 깨뜻하고 살기 좋아서 외지에서 들어오신 분들도 꽤 많았다. 공소신자들이 조를 짜서 성당 내부 및 외부 청소를 하고, 20분 거리에 수녀님들이 계시는 공동체집이 있어서 매주 공소에 오셔서 미사준비도 하시고, 그 동네 아이들 방과 후 숙제 돌보기와 끼니도 챙겨주시고, 각종 수업(?), 어머님들과 좋은 비누나 화장품 만들기 등등의 유익한 시간을 나누고 계셨다. 부모가 맞벌이하는 경우 아이들에게는 정말 좋은 것 같았다. 다문화 가정은 격주로 마을을 돌며 대화도 나누시고 옷가지등이나 필요한 생활물품도 챙겨주는 등.. 정말 서울의 성당에서도 아이들이나 어르신, 어머니들에게 이런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고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척공소는 감실에 성체가 모셔져있는 특별한 공소였다. 공소에 손님방이 있긴 하지만, 지내기에 불편하니 편하게 자신의 집에 와서 기거하라는 공소회장님의 친절이 너무 고마웠지만 공소에서의 은총의 생활을 기꺼이 선택했다.
은척은 '은으로 된 자'라는 단어로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매일미사는 가까운 곳에 있는 갈멜봉쇄수도원 미사를 갈 수 있었다.
아침에 방문을 열고 나오면, 어느날은 감자 캔 것 한 바가지, 어느날은 양파, 오이 등등 각종 수확물등을 날마다 공소 손님방 방문 앞에 두고 가시는 어머님들 덕분에 늘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아서 감사했다. 예쁜 아이들의 모습, 길가의 때이른 코스모스꽃들, 강낭콩, 땅콩, 벼, 고추, 과일나무들을 보며 개천을 건너 가다보면 막걸리 공장도 있어서 유혹의 냄새에 홀리곤 했던 기억, 안타까운 삶들, 농부들의 부지런한 삶 외, 잡초를 뽑으면서 내 안의 잡초도 이렇게 뽑기 힘들겠다고 깨달은 기억도 생생하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 안에 아직도 살아있는 은척공소와 그곳 신자분들, 종일 힘들게 농사하시고 밤늦게 성경공부를 하시는 모습과 아이들이 수녀님 집에서 숙제하면서 지내는 모습들이 지금도 문득문득 떠올라 기도하게 된다, 고맙고 사랑하는 주님께 은척공소를 의탁드리면서 주님께서 이들 모두를 지켜 주시고 인도하여주시기를...!!!
첫댓글 내 마음의 은척공소..
가슴에 담겨진 곳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더 찐하게 다가오는 것일까요?
열흘동안의 스토리가 다양합니다.
특히
감자 캔 것 한 바가지가
소박함 따뜻함을 가져옵니다.
은척공소 이야기가
상주 카르투시오 수도원
가르멜 여자수도원
2015년 1월
국내 수도원순례를 소환시킵니다.
가르멜 여자수도원
방석을 깔고 앉아서
미사를 드리고
원장수녀님과 잠깐의 만남
그리고
차가운 날씨에
향이 퍼져나가는 따끈따끈 차와
손수 만드신 과자
우리들의 몸과 맘을 녹여주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