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으로☞
똑똑한 앵무새 1. 레몬트리(소개)☞ 2.레몬트리 프롤로그 1☞ 3. 레몬트리3 화(시험 후 시험)☞ 4 . 인생이란?☞ 5. 레몬트리 멋진선배☞ 6.레몬트리-(인연의 줄)☞ 7.허난설헌 그녀의 이야기☞ 8. 레몬트리(2)프롤로그☞
Prologue
도서관을 나와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법학이라는 학문은 늦깎이 대학생인 나에게 상당히 무리를 주었고 결국 내 몸은 녹초가 다 되었다. 파김치와 지금이라도 자리를 같이 한다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친 주인의 한숨 소리를 듣고 그렇게 자전거는 바람을 가르며 나아갔다. 집 앞에 다다르니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보통 도둑이 그러하지만 우리 집의 경우 열쇠를 잃어버리신 엄마가 그러하시곤 한다. 한 달 만에 뵙는거라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자전거에서 내리자, 시원한 바람이 볼에 닿았다.
'10월...인가...'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집안에는 역시 엄마가 식사준비를 하고 계셨다. 도우려고 했지만 강경하게 말리시는 통에 조용히 욕조에 몸을 담갔다. 따뜻한 물에 있다보면 흔들리는 마음이 진정된다. 오늘도 그것을 바랬다. 그러나 이번은 흔들림이 아닌 상처였기에 그저 깊어져만 갔다. 바람이 불 때 베어버린 가슴 언저리. 너무도 쓰라렸다. 죽을 만큼. 식사를 하는 내내 엄마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본 나 자신은 정말이지 영혼이 나간 사람같았다. 젓가락은 허공만 집어 나른지 오래고, 국 대신 물컵에 담긴 맥주를 숟가락으로 뜨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하신 엄마는 이야기를 멈추시고 날 지긋이 쳐다보셨다. 그 바람에 정신이 팍 들어 양손에 들린 수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무슨 일 있니?"
"아, 아니야. 그냥 필기량이 많아서 손이 풀린거에요. 계속 얘기 하세요."
다행히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얘기를 이어나가셨다. 나도 애써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이야기에 집중하고 응했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엄마는 피곤해보인다며 쉬라고 당부하셨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방에 들어가 의자에 기대어 앉고 눈을 감았다. 삼십 분쯤 흘렀을까. 아까의 쓰린 마음이 날 일으켰다. 나는 급히 외출 준비를 하고 가방에 헤드셋과 MP3, 핸드폰, 담요, 소설책만 넣은 채 방을 나섰다. 현관에는 뜻밖에도 엄마가 계셨다.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고 나가려 하자, 엄마의 말씀이 날 붙들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10월이 왔네. 단풍 정말 예쁘지 않니?"
난 아무 말 않고 걸음을 멈추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지만.
"외출할거니?"
"...네."
엄마가 말씀하신 외출과는 다른 외출인지라 대답은 머뭇거려졌고 흐려졌다. 엄마는 포니테일로 묶은 내 머리를 푸르시더니 다시 빗겨주셨다.
"아직도 애인 만나러가는데 칠칠맞게 헝크러진 머리로 하고 가면 어떡하니. 엄마가 연애 소설작가인데 너무하잖아. 기다려봐."
나는 놀라 뒤를 돌아보려고 했으나 머리가 붙들려 있어 다시 고개를 돌렸다. 탁하고 나비집게핀이 집히는 소리와 함께 놈이 돌려졌다.
"그 아이는 네 청초한 모습을 굉장히 좋아했잖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순하고 순수한 그런 거. 실컷 어필하고 와. 아, 내일 아빠가 외식하신다니까 그 전까지는 들어와야한다."
"엄마..."
말끝이 자꾸만 흐려졌다.
"다녀오겠습니다!"
지민은 이슬 맺힌 눈으로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당차게 나갔다. 지민이 나간 뒤, 문은 닫혔는데도 은아는 딸이 서 있던 자리에 몇 분이나 서 있었다.
'그 아이...정말 예쁜 아이였지. 특히 미소 지을 때. 그 아이의 미소를 내 딸 지민이에게서 다시 보게 되는구나.'
은아는 슬픈 미소를 흘리고 서재로 돌아가 다시 원고를 작업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날 이끌어 그곳으로 데려갔다. 아니, 날 이끈 건 내 의지일지도 모른다. 그곳은 그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니까. 나는 레몬 나무에 기대어 앉아 헤드셋을 썼다. Fools garden의 'Lemon tree'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만히 음악을 듣고 앞을 보자 석양이 덮은 하늘이 보였다. 귀에서 들려오는 노래와 눈이 보여주는 노을을 느끼며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띄워졌다. 내가 지금 보고듣는 거의 모두 그 덕분이기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서였다. 그 때 <로미오와 줄리엣> 책이 가방에서 꺼내져 반쯤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것의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괴념치 않고 읽은 결과 벌써 패리스 백작과의 결투 장면이 나왔다. 안타깝게도 패리스 백작은 곧 죽고 만다. 로미오는 줄리엣에게 다가가 죽음의 맹세를 했다. 팽팽한 긴장감에 숨이 죄여온다. 다음 페이지로 눈길을 돌리자 찢어져 있는 종이 쪼가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게 왜 이렇지?"
허둥대며 가방에서 종이를 찢을 요인을 찾고 있는데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비명을 애써 삼키며 옆을 돌아보았다. 그때 보인 이는
"누나."
그였다.
밤이라 자세히 보이지 않을 터인데도 그가 똑똑히 보였다. 그는 나의 놀란 표정에도 탐탁치 않은 듯 내 옆에 앉았다. 몇 분 간 흐른 정적을 깬 것은 나의 질문이었다.
"있잖아...거기는 행복해?"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또다시 마음이 쓰려왔다.
"나랑 있을 때보다 행복해? 그래서 간 거야? 응?"
그에 대한 그리움이 고함 썪인 울부짖음으로 토해졌다. 그는 그런 내게 미소만 씩 지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그의 미소가 슬픔으로 번져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에게 이유를 묻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힘겹게 웃는 얼굴을 보였다. 그는 나를 감싸안았고 나는 차오르는 서글픔을 억누르는만큼 그를 거세게 끌어안았다. 행여 그가 볼새라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있자 그는 내 등을 쓸어주며 다독였다. 마음이 아파왔다.
"남이 울지 말라고 해도 내 앞에서는 울어. 누나가 아픈만큼 나도 아프니까. 참는 거 내 앞에서는 하지마요." "그럼...이제 돌아와주면 안 돼? 돌아올 수 없는 거야? 내가 봤던 그 날 일이 사실인거야?"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 뒤로 그에게 안겨 울었다. 그렇게 울다 지친 나는 그의 곁에 잠들었는데 잠결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앞으로 2년만 참아줘요...기다려줘요..."
놀라 눈을 떠보니 내 방 침대였다. 허공에 그의 이름을 몇 번 외쳐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터져나오는 눈물은 나도 어떻게 자제할 수 없었다. 그의 향기가 아직 베어 있는 베개를 붙들고 한참이나 통곡을 해대었다. 지금 나는 이렇게 울고 있지만 너는 밝게 웃어줘. 나의 심장아.
첫댓글 흔치않은 작가가 탄생했군요.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