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을 증득하신 아미타 부처님께 귀명합니다.
광명을 성취하신 아미타 부처님께 귀명합니다.
화신을 보이시는 아미타 부처님께 귀명합니다.
법화일일 지송문
정대게 頂戴偈
계수묘법연화경 稽首妙法蓮華經
살달마분타리가 薩達摩分陀利伽
일질칠축사칠품 一帙七軸四七品
육만구천삼팔사 六萬九千三八四
일일문문시진불 一一文文是眞佛
진불설법이중생 眞佛設法利衆生
중생개이성불도 衆生皆已成佛道
고아정례법화경 故我頂禮法華經
머리에 이고 읊는 노래
묘법연화경에 머리 숙여 예를 드립니다.
묘한 법은 연꽃처럼 청정하고 아름다우며
한 질, 일곱 두루마리, 이십팔 품
육만 구천 삼백 팔십 넉 자로 이루어졌네.
하나하나 글자마다 참된 부처님이시라
참 부처님이 법을 설하여 중생을 이익 되게 하시니
중생들 모두가 이미 부처님의 도를 성취하였네.
그러므로 제가 법화경을 머리로 받들어 예를 드립니다.
부처님께서 법문에 드시기 전에 무엇을 할려고 정해가지고 오는것이 아니라
바쁜지 안 바쁜지 공부할 자세는 되어있는지 전부 둘러보고 한다. 이 말입니다.
이 때 벌써 법문이 끝나버리는겁니다, 그래서 선사들이 법문이 다 끝났다고 하는겁니다.
부처님 생각으로는 다 끝났다는겁니다,이건 저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1250명만이 앉아 있는것도 아니고 또 다른사람들도 있고...
법화경종요 이것은 함부로 손을 댈수 없게 되어 있으니까,함부로 손을 못 댄거예요.
간단하게 되어있는데...
원효스님은 정토사상을 자세히 이야기할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
여기 모인 여러분이 한 민족 이 땅에 도인을 하나 만드는 역활을 합니다.
원효의 저술이 분명하게 있다는것을 알리면서 우리나라에 큰道人이 나오지 않더라
도 학자들이 이러한 것들은 세상에 알려야되는데,알수가 없죠.
또한 제가 완전하게 해설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논문이란것이 십여편정도가 있긴 하지만 이것은 학교안에서만 통용되는것이고
제가 작업을 해서 최대한 대중화시키고 보급에 앞장설 수 있도록 글을 짥게 만들어서 전하고자 합니다.
우주 전체가 나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이러고 있는겁니다.
어찌됐든 법화경종요든지 아미타경소,무량수경종요,기신론소를 빨리 알려서
의식을 높여야지 불자들 사이에서 훌륭한 사람이 나옵니다.
화엄경 금강경,천수경 ,참선등 수박 겉핧기식으로 하면 절대 인물이 안 나옵니다.
훌륭한 스승과 교과서로 배워야 훌륭한 제자가 나옵니다.
시골에 애들 공부 안 시키고 일만 시키면 훌륭한 사람 안 나옵니다.
텍스트가 모두 원효것인데 제가 어지간히 신명나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신심이 나질 않아요.
원효는 일심사상을 할 때만 입에 거품이 일 정도로 열정을 쏟아냈거든요.
우리 조사들의 사상이나 수행력을 우리는 상기 해야합니다.
그 중에 뛰어나신 분이 원효인데 제가 왜 이렇게 앞장을 서느냐?
제가 성냥불이라도 켜지 않으면 영원히 묻혀버릴것같다는 심각성 때문입니다
우리 한 세대를 떠나면 한문을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적당히 세상에 내놓으면 그걸 배우게 됩니다.엉뚱한 일이 생기게 되요.
제가 기본적으로라도 만들어서 할려고합니다.
사이버 공간이 활성화 된지가 10년정도 되었지만 자료부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활성화되기전부터 시작해서 14년 정도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불교 160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전중에 양이 제일 많은것이 화엄경입니다.
법화경, 화엄경 잘 한다고해서 무량수경종요 아미타경소 기신론소 못합니다.
화엄경은 스님들 가운데서도 천명중에 한명정도가 열반때까지 한번 완독을 할까 말까 한
방대한 양입니다.그 양이 80권정도가 됩니다.
저같은 경우도 머리맡에 두고 항상 보고 있습니다.
제가 다시 태어난다면 더 자세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앞에까지 강의한것은 일심사상이 터득될 수 있도록 다 되어있습니다.
법화경의 양이 이렇게 많지만 ...양이 많기로는 화엄경 그 다음에 열반경이 많은데.
세번째가 법화경입니다,금강경은 양이 적죠.
여러분도 법화경 사경을 많이 하긴 하셨지만 실은 그 뜻은 모르고 하신겁니다.
이 많은 양의 법화경을 원효스님께서는 간단하게 해 놓으셨습니다.
무량수경종요을 쓸때 심혈을 기울여 쓰신것에 비하면 3분의 1(1/3)도 노력을 안 하신겁니다,
노력을 안 하셨다는것이 성의를 안 보였다 이런뜻에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화성유품(化城喩品)인지,비유품인지,약초유품인지 구별이 쉽지 않을정도로
여기저기 되어 있는데 쉽습니다.
무량수경종요나 아미타경소는 아주 뛰어난 저술이라고 보는거예요.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 법화경을 안 볼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의 출가자들에 대한 인식이 외부(세계)에 그다지 우수하게는 알려져있지 않은 현실입니다.
이런 실정에서 제가 동영상을 제작해서 세상에 낼때 한국에도 이런 사실이 있다는것에 대해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한국에도 이런것을 하는 스님이 있구나하고...)
일본이나 중국이나 대만 같은곳 에서는 이러한 저술이 있었다면 난리가 났을겁니다,아마도
그리고 부처님처럼 격상을 높여서 해설을 해서 유포를 시킬텐데 아주 안타까운 우리 현실입니다.
법화경은 읽기가 쉽고 비유가 많고 내용자체는 아주 쉬운것인데
법화경이 부흥할 무렵에 사경공덕이 아주 많다고 권장을 했었습니다.
사경은 인쇄술이 발달이 되지 않았을때니까-원효가 살았던 신라시대도 사경공덕을 칭송했습니다.
경전을 보급하기 위한 명분으로 많이 사경을 했습니다.
사경공덕이 어마 어마하다고 찬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법화경 사경이 한때 유행처럼 된적이 있었습니다.
법화경에 쉬운 이야기도 많고 상징의 용어가 많으니까
자기 나름데로 비유하고 해설을 해서 사이비 종단을 만들어 내는 어머니입니다.
아미타경이나 무량수경 관무량수경같은 이런것들을 통해서는 사이비 종단이 일체 나오질 않습니다.
경전이 아주 깨끗합니다.
아미타-나무아미타불만을 딱!고수하지,
안 되면 모래를 뿌리고 천도재를 지내고 이런것은 없습니다.
모래 뿌리고 49재 지내고 하는것은 명확(지저분한)하지 않는 분들이 만들어낸겁니다.실제로
사상(지저분한)이 뚜렷이 서지 않는 조사들이 만들어낸거예요.
경전을 공부하는동안에 저의 주장이 너무 확신에 차 있으니까 근거를 가지고 하라고
일부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보이는데...
49재를 일곱번을 지내야되고 조상 천도재를 지내지 않으면 큰 일 난다는 근거가 경전의 어디에 있는지가 져오라고 합니다,제가 .제게 적어오라는겁니다.
금강경에도없고 법화경에도 없고 열반경.화엄경 어디에 있냐?말이지.바르게 배워야됩니다.
법화경 공덕이 그렇게 많다는데 원효가 법화경종요를 만들 무렵에도 사경공덕을 아주 칭송하
던 시대였어요.그걸 원효스님이 다 봤을꺼 아닙니까.
원효스님께서 보셨을때-사람들을 데리고 사경공덕이 크다는걸로 밤낮으로 현혹시키는데 대해서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 시대에도 사경은 글 잘 쓰는 사람이 하나 써서 다른 사람에게 건네면 그사람이 쓰고 또 다른사람에게 권하고-7세기에도 다단계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있습니다,경전보급이
법화경은 28품인데 아주 간단하게 줄여놨습니다.
중국 일본에 법화경을 칭송하는 교학들도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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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원효의 기신론소,무량수경종요,법화경종요를 공부하는데 이 정도로 모인것은
아주 특별한 일입니다,앞으로는 끝입니다.
배우고자하는것이 더 활성화되어야하는데 비관적이지 않냐고 하실수 있는데
저는 특이한 시점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일명 도인이 되어버리면 제가 요청을 해도 안 나올겁니다.
나온다면 보살도 정신을 발휘하는 사람이 보리심을 발해서 동참을 해야될때는 나오실수 있겠죠.
제가 특이한 시점에 살고 있다는것이 무슨 말이냐하면 아주 선근공덕이 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그 시점에 있는거예요.아미타파라는것을 통해서...
이 분위기가 식으면 이렇게 사람이 모이질 않죠.
서울 경기지역에서 모이는 사람이 이 정도인가?하는데 ...더 이상 모일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사람을 통한 전법이 미약하다고 자신에 대해서 열등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단히 높은 수준입니다, 조금만 더 나아간다면 더 높아지겠죠.
우리나라에서 출가자라고 해서 화엄경을 처음부터 야무지게 읽는 스님이 드물고,법화경도 마찬가지고 금강경도 이해해서 실천하는 출가자가 드물고,일심사상의 중요성에 대해서
아는 스님이 드문것이 우리 현실인데 재가자들한테 기대를 할것이 없지.
우리나라 불교역사가 1600여년정도가 됐는데 ,그 가운데 중국은 대륙이 크니까 남쪽, 북쪽에
뛰어난 도인들이 많이 나왔고,유교와 불교와 도교가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
우위를 점령하기 위해서 뛰어난 저술도 쓰고,자기의 수행력도 아주 깊게 만듭니다.
그러한 경쟁관계는 필요합니다.
우리는 나라도 적고 ,중국에서 나올 법한 도인들이 나올수 있는 바탕이 적습니다.
그 중에서도 뛰어난 분들이 있습니다.
원효에 대해서 세계 석학들이 너무 멋있는 말을 했습니다.
불교의 역사를 너무 잘 아니까 그렇게 말을 할수가 있겠죠.
원효를 평가할때 그 말은 저보다 잘했습니다.
무슨말이냐하면-일본이나,중국의 검증을 필요로하지 않은 인물 원효-
동아시아 어떤 나라, 어떤 선사에게도 검증을 필요치 않습니다.
너무 멋있죠. 앞으로는 세계적으로도 ...물론 그렇게 인식 될 겁니다.
이 분이 알고 있는 정신세계 이 말입니다.
이 분의 行도 깊지만 ,우리가 영원히 따라갈수 없는 세계가 아니고
제가 해 보니까 많이 많이 이해할 수있는것입니다.
이 분의 저술들이 일반 스님들의 저술과 너무 차이가 나버리는거라.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법을 찾지못하니까,살아계실때도 별로 관심을 안 가졌어.
500년후에 정말로 뛰어난 의천(義天:1055~1101)이라는 스님이 원효을 너무 존경을 했기때문에
그 때까지 남아있는 저술들을 모아가지고 판각을 하기 시작한 그 역사를 한번 볼려고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평가를 해야될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고려때 국토의 전국민을 동원해서
100년 이상을 경장만 박고 있었습니다.
요즘에 그랬다면 난리가 났겠죠.
법화경종요가 우리 손에 오게 된 경위를 첫 시간에 할려고합니다.
2015년 4월15일 이 자리에서 법화경 종요를 강의하게 되는것은
도무지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법화경종요는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이 10여편 정도 논문을 쓴 걸로 되어있는데
기록은 그렇게 되어있지만 제가 보지를 않았고 이 모든 논문들은 학자들 입장에서하는것이고 제가 무량수경종요나 아미타경소 기신론소를 하는것은 수행자의 자세로 하는겁니다.
제가 봤을때 원효의 생각에 많이 근접해져 있어야되고 지금까지 강의한 기신론소를 보지 않으면 풀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일심정토라는것으로 계속 교정을 보고 있거든요.
제 책 을 보면 전부 풀수 있습니다.그래서 제가 그 책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 풀수 있는 열쇠를 만들어놨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초,중,고 대학교 에서 까지 가르쳐야 될 부분입니다.
한국의 독창적인 불교는 오직 원효의 사상을 통하는 길밖에 달리 없기 때문에
이것이 나온 역사를 저보다 세심하게 배워야 됩니다.
법화경을 명료하게 해 놓은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법화경은 염불수행에서는 방경(보조경)이라고합니다.
정경은 무량수경종요 아미타경소입니다.
법화경은 7권28품으로 되어있고 고려,신라시대 때도 아주 유행이 되고 즐겨
독경한 경전입니다. 내용이 쉽지 실제로 어렵지는 않습니다.
법화경『법화경法華經』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약칭이다.
범어 'Saddharma pundarika sutra'-삿(妙)다르마(法)푼다리카(연꽃)수트라(경전)이다.
의역도 대단히 의미있는 일입니다.
원측이 번역이 뛰어난데 한국사람 이여서 중국에서 많은 설움을 받았습니다.
늘 현장에서 side에서 도왔다고...
역사는 앞으로도 시작됩니다,앞으로도...계속
세계적으로 치열함을 화해를 시키는것은 불교 라고 하잖아요.
앞으로 어떤일이 생기느냐 하면...중국 선사나 스님들이 21세기 불교에 대해서 강조하면 우리들이 눈을 뜨지 않으면 맹종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번역이 잘 됐다는것이 3가지가 있는데,다 알 필요까지 없고 구마라집(343-413)이
번역한것이 가장 평범하면서도 잘 되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것은 한역7권28품으로 된 구마라집 역을 봅니다.
산스크리트어는 하나인데 번역본은 여러가지 입니다.
무량수경종요만 해도 5가지나 됩니다,아미타경소도 몇 가지가 되고...
제가 무량수경종요 아미타경소 하면 나는 아미타경소를 이렇게 본다하고
다른 사람들도 해야되는데 하는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 중에서 나올겁니다,여러분은 자존심 상할것도 없어요.
잘 하면 한국에서 뛰어나다고 칭찬 받을것이고,저보다 못해도 손해볼거 없어요 .
사자상승 이라고 제 뒤를 잇는 분이 분명히 나올겁니다.
모방에서 창조라고...
원효의 저술이 대개 150 여종180권 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한 권이라고 할때
보통 요즘 책 한 권의 개념으로 보는게 아니고 글을 쓸때 -
붓으로 쓰기 때문에 책 같은 형식에다가 작게 쓸수가 없죠.
붓으로 큼직 큼직하게 쓰니까 조금만 써도 양이 이만(많아)해집니다,
그래서 둘둘 말아 놓은것을 한 권이라고 합니다.
그 때 책을 만들때 7권으로 만들어져 있었어요.
두루마리로..이것을 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안에 다 들어있는데 우리가 보는 빨간표지의 법화경이 7권이고 ,
1권이 아주 작은것도 있고 몇 장만 가지고도 1권이라고합니다.
한 묶음 한 묶음 묶어 놓은것이 1권이라, 법화경은 7권으로 만들어져있어요.
딱 묶어서 한 질 28품으로 되어 있다 이 말이지.
구마라집의 것이 제일 많이 유통이 되고 있습니다.
금강경도 32장으로 되어 있죠.이런 것들은 아주 뛰어난 분들이 제목을 만들어 놓으면 그 후에
절대 고칠 필요가 없어지면 그 때부터 전통적으로 내려가는거예요.
뭐냐하면,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법화경 종요도 한 페이지,한 페이지씩 다 읽을수 있게
제목을 붙여서 해놓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거예요.
무량수경종요나 아미타경소 같은것은 특히 아미타경소는 원효스님께서 단락을 다 나누었는데도
제가 그 안에 다 제목을 붙여놨거든요.
스님이 제목을 붙여놔서 좋다는 사람 5-6년동안 없었습니다,왜냐하면 모르니까.
이것을 분과라고 합니다.
원효스님이 법화경 종요를 썼는데 그 때 부터 많이 법화경을 많이 익혀가지고
사람들이 법화경 해설을 요구 했겠죠.
그런데 원효스님이 법화경에 대해서 -
법화경은 대강 이런 내용 이다 하는것을 세번씩이나 썼습니다.
하나는『 법화경방편품료간法華經方便品料簡』이란 책이 있고 ,『법화요락法話要酪』이란 책이 있고 그렇습니다.제목만 내려오고 현존하지 않습니다.
법화경 종요만 내려온겁니다.
원효가 법화경종요를 쓸 때도 초록이 있었습니다.
뭐든지 한번에 딱 쓰는게 아니예요.
법화경을 자꾸 보고 또 보고 해서 요정만 정리 하다가 법화경종요를 정립을 해 놓으신거 같애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법화경종요 라든지,아미타경소.기신론소,무량수경종요,금강삼매경론등 원효의 저술들이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내려왔냐?이 말이지.
불교사에 조사의 저술들이 가장 많이 현존하고 있는것은 원효입니다.
그건 불가사의한 일 입니다.
반야심경은 소품반야에 들어가는것인데 600부 반야부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600부 반야부중에 한 권만 우리가 봅니다.577권째 금강반야바라밀경입니다.
599권은 우리가 못 보는것입니다.원효는 600부 반야경전을 다 보고
1권-120권까지는무슨 내용인지를 정리해서, 우리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완전히 살려놨습니다.
내가 본 600부 반야부의 핵심은이것이다,하고 만든것이 대혜도경종요 입니다.
이런거 생각하면 제가 속이 쓰립니다.
어렵지도않은데 왜 세상이 내지 않냐?말이지.
대혜도경 글자가 4-50자 빠져있는데 다 채워넣습니다,여러분 머리로도 가능합니다.
다른 분들은 많은 칭송를 받고 심지어 국왕에게 대우까지 받고 그랬는데도 이름만 천부 논사다.
소승500부의 논서을 쓰고,대승 500부를 썼다고는 하지만 전해져오지는 않습니다.
용수가 위대하다고 하지만 책이 남아있는것이 대여섯 권밖에 없습니다,
규봉종밀 삼십 권정도 썼음에도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질 않습니다.
그런데 원효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는데도 이것이 남아있다고
아주 특별하고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불가사의 한 일입니다.역사에 기록이 되면 어떻게 돼냐하면
-전국에서 서울을 중심으로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2014년부터 모여서 공부를 하더니
어떤 오피스텔이란곳에 모여가지고 법화경종요를 공부했다는 기록이 있다고-분명히 씌여질겁니다.
이건 내가 기록을 할 필요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전부 쓰니까 인터넷상에 바로 정리가 되고 하기 때문에계속 하기만 하면 되고 ...
이것도 계속 내가 주註를 달고 책을 내고자하는 욕심으로 글을 쓸 필요는 없어요.
공부하는 사람들은 기록을 많이 하는게 좋습니다.
명석한 두뇌보다 희미한 붓이 낫다.-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자세죠.
행동하는 사람들은 앉아있는 농부보다 서있는 신사가 낫다.
-게으르면 개인에게는 물론이고 역사에도 좋지 않습니다.
제가 공부를 할 수 있었던것은 부지런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주일동안 원효의 생각만으로 觀만 했습니다.
이틀은 BTN 방송출연문제로 시간을 보냈고...
계속 5일동안은 조금이라도 더 원효 가까이 들어가서 보고자 노력을 한것이지.
지금부터 머리에 넣고 까페에 올려놓으면 Daum에 이변에 생기지 않는 한 완전히 보관이 되어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바쁘게 글을 쓸게 아니고 핵심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는게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원효가 책을 그렇게 많이 썼지만 그 당시에는 어떻게 된건지 관심이 없다가
원효가 열반 한지 500년 후인 천백년경(1055-1101)에 고려의 의천이라는 스님이 관심을 가졌죠.
의천스님은 염불수행을 일으킨 분입니다.
원효가 686년에 열반에 드셨으니까 ,거의 500년 후에 원효가 빛을 발하게 됩니다,
그 때 당시에는 500년후에 빛을 발했으니까,여러분은 50년후에 빛을 발해야 됩니다.
50년후는 가실분이 계시니까.5년후에...
의천이 원효의 위대함을 알고 나서 원효의 저술들과 자료를 수집하게 됩니다.
거기에다가 원효의 일생 500년 전의 일을 수소문을 해가지고 -이 때는 말로 전해져오는 이야기만 들었겠죠. 의천은 지금의 종정급이니까 국왕한테 중요성을 알려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碑(받침대는 지금남아있음)을 양쪽으로 세워가지고 원효의 기록을 모조리 썼습니다,
모든 기록들이 과장이 되었다 할 정도로 찬탄도 많이 했습니다.
그 해 1080년 정도 그 걸 완성해 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천도 열반(1101)에 듭니다.
거기에 다가 다 써놨는데 ,화쟁국사 라고 해 놨어요, 예전에 서당화상비(바람직하지않는 일입니다)라고 어렸을 적 이름을 써놨는데 의천이 왕에게 시호를 내려달라고 상소를 올렸습니다.
의천이 화쟁국사라고 碑를 세워놨는데,그 밑에 받침대가 빠져가지고 공중으로 날라갔는데 아직도 내려오는 중인가 봐요.안 내려오고있습니다.
(비유가 정토사상을 공부하시는 스님 다우시다는 생각으로 괜히 으쓱해진다.)
완전히 미스테리입니다.누가 완전 범죄를 저질렀나봐요,碑가 없어져버린거예요.
그래도 책을 다 모아 가지고 어떤일이 있었냐하면
그 무렵에 1011년 고려에서--여러분이 대장경의 역사는 꼭 알아야됩니다.
대장경 역사가 원효의 저술이 겨우 겨우 우리나라에 21세기 까지 전해져온 역사를 제가 알기 때문에 대장경의 역사를 알게 된겁니다.
첫번째는 자꾸 북쪽의 오랑캐 들의 침입이 잦으니까 전국민이 모여서 애국심도 발휘 시키고
화합해 서 항상 힘을 모아서 언제든지 들어오면 힝을 합쳐 대단위 인원으로 물리칠려고 했습니다.그러자면 사람들이 항상 한 곳에 모여있어야되잖아요.
두번째는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야된다. 또 대장경을 만들면 부처님의 가피를 입는다.
일거양득이죠.
대장경도 만들고 항상 예비군도 만들게 되니까 성공했다고 보는겁니다,제(스님)해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나무 깎고,글 쓰고,파고 하는것을 몇년을 했냐?
어마 어마합니다,세계에 이런 역사가 없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도 이렇게 오래는 안 했을것이고,
중국에 만리장성도 이렇게 오래까지는 안 했을거 같은데 제가 재차 확인을 했는데 맞아요.
77년이예요.
77년동안 했습니다.
초조대장경은 1011년(현종2년)거란의 내침을 계기로 시작되어서 1087년(선종4)까지
77년에 걸쳐 완성했습니다.
시작한 사람들이 나무를 깎고 ,글자를 파고 하던 사람들이 다 죽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굉장한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었을겁니다.
75년째 국가에서 일을 해서 완성이 되어갈 무렵에 의천이 생각을 한겁니다.
우리나라에 뛰어난 조사들의 글들도 파서 박아야겠다고 해서 대장경이라는 이름이 아니고
속장경이라는 이름을 빌려가지고-중국에 가서 3천여권정도의 논서를 가지고 오고
한국에서는 가장 많이 실은것이 원효의 저술들인데,이것들을 전부 모아가지고 제삿상 차려놨을때
해버린거죠. 게임이 끝나지 않았을때 속장경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서 박기 시작합니다.
속장경은 초조대장경을 보완하기 위해서 대각국사 의천(義天:1055-1011)이 편집 간행한것.
그래서 조사들의 어록과 원효의 저술들이 실리게 된거예요.
77년동안 깎고 글을 썼는데 불이 나버렸습니다.145년을 버티다가 불이 나버린겁니다
.
2년(고종19)몽골군의 침입으로 소실-(1차로 완성된 正藏은 경판이 부인사에 이관 소장)
일본 교토 난젠사(南禪寺)에 1,715권이 남아있다.
불이 나버리고 일본 남선사에 1,715권이 남아있어요.우리가 아직 못 가져오고 있습니다.
77년 동안 고생한것이 불이 나버렸는데. 그 불난것에는 원효의 저술들은 없습니다.
천만다행입니다,
원효의 저술들을 실은 속장경도 불이 나버렸어요.
초조대장경이나 속장경이 어디서 불이 나고 했는지 사실은 잘 모릅니다.
역사적인 기록이 분명치 않습니다.
속장경이 불이 났는데 완전히 소실되지를 않고 일부가 妙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나무로된 판각인데 말라서 불이 잘 붙었겠죠.
아주 적은 양들이 남아있었는데,타지 않고 남아있는 부분에 원효의 저술들이 있는거예요.
남아있었는지 어쨌든지 우리는 모르고 약100년 전까지 전혀 우리가 몰랐습니다.
여기 저기서 굴러 다니던것을 송광사 에서도 주워 모아서 보관을 하고 했지만
많은것이 없어졌는데 이것들이 일본으로 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뒤에 두 개 다 불이 나버리고 초조대장경이 불이 난 다음 2년뒤에
오기로 시작을 해서 재조再彫 대장경이라 해서 해인사 대장경을 만들게됩니다.
팔만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이 소실(1232년 고종19)되자 고종이 몽고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서
강화에 대장도감 본사를 진주에 분사를 두고 1236년(고종23)에 시작하여 1251년(고종38)까지
16년만에 완성한 고려판 재조再彫 대장경이다.
81,258판(板)이라서 팔만대장경이라 부르고 보관방법-처음 강화에 판당(板堂)을 짓고 봉장->
강화 선원사로 옮기고-서울 지천사(1398년 태조7)에 임시보관->다시 해인사로 옮겨 지금에 이른다.팔만대장경에 원효의 저술들을 다시 싣지는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여기 저기 있던 것들을 다 모아가지고 1924년 부터 1934년 까지 일본에서
아함경 부터 대승 경전 조사들의 논서를 대대적으로 모아서 판각을 하는것이 아니라
(일본을 판각을 잘 하지 않음) 바닷가가 있어서(짠물 같은거 때문에) 보관 문제 때문에 .
판각을 하지 않고 빠른 시간에 전부 모을수 있었던것은 영인본(인쇄)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10년 동안 한달에 책 한권씩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한달에 한권씩을 만들어서 십년가까이
목록을 만들어서 88권을 만들었습니다.
대정신수대장경 이라고 합니다.10년동안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신수대장경을 보면 정말로 많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거기에는 한글은 당연히 없고 일본어도 없습니다,일체가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만자가 전부 한문입니다.읽을수 있게 점을 찍어놨어요.
이시세존(찍고)이런식으로 -이건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가장 최고의 종단인
남묘호랜게교가 우리나라에 종단이 두 파가 들어와있어요.
이 두 파중에 법화경의 위대함을 알리신 분이 이찌렌이라는 분이십니다.
그 중에서 좋은점을 많이 들었지만 그 중에서 법화경의 위대함을 가장 많이 한거예요.
그들의 성전-법화경 전체를 하는것이 아니고 제일 앞 문장이 뭐냐하면
이시세존~~~
거기 다니는 사람들이 이 문장을 들어보지 않았다고한다면 진정성이 떨어지는 신도이고
우리나라 불자들과 거의 비슷한겁니다.
우리나라에도 법화경 계통이 가장 강렬하고 여기서 조금 있는 글자들을 인용을 해서 종파를 만들고 그렇습니다.실제로...
공덕을 이야기하면서 오직 법화경만 할것을 요구합니다.강성입니다.
<법화경종요>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제 34권 제1725부에 수록
책의끝에 ‘弘安六年 八月 十七日 相承之’라고 씌여있다.
본문 주석에는 ‘弘安 六年 相承 仁和寺 藏本’이라 씌여있다.1283년(홍안6년)8월17일 인화사에 보관 중인 <법화경종요>를 상승 이라는 분이 등사를 한것이다.인화사는 일본의 경도에 있는 사찰로 886년(인화2년 인화는 연호)에 창건 하였다고 한다.
-->한국에 없는 법화경종요가 일본 인화사에 있었다는 말씀을 드릴려고 하는거예요.
1283년 8월17일 절에 있던 법화경종요를 가지고 나갈 수가 없어서 주지스님이 보는 아래서 며칠씩걸려서 베낀것 입니다.밖으로는 절대 가지고 나올수는 없으니까.
자기가 쓴것만 밖으로 가지고 나올수 있어요.책 자체가 없으니까.
우리는 지금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삽니까?복사기로 한방에 해결 돼 버리잖아요.
써놓은 이것을 보고 뒤에 현대사람들이 영인본을 만들때 인용을 했다 이 말입니다.
그 때 연호가 인화 라고 썼어요,우리는 연호를 지금 대한 이라고쓰죠.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단기쓰고 ,대한쓰고 그래야되는데 요즘은 전부 서기로 써버리잖아요
‘신수대장경’은 1924년5월 제1권 아함부 출간을 시작으로 1934년 전체88권으로
출간을 완료했다. -->무량수경종요에 1923년이라고 했는데 상관없습니다.
일본에서 대승부터 모든경전을 모아 가지고 이것을 영인본 으로 해서 책을 만들자고 회의를 했는데 그 해(1923년)관동대지진이 나서 나라의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잠시 미뤘다가
이렇게 있을수만 없다고해서 그 이듬해(1924년)시작을 한겁니다.
끈질게 한달에 한 권을 만든겁니다,씹고 또 씹고해서...
소승 대승 경전을 다 모으고 동아시아의 유명한 조사들의 기록을 다 모아서
올렸는데 여기의 원효의 저술들이 다 들어있는거예요.이걸 일본사람들이 한 겁니다.
원효는 화쟁국사잖아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중간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현명하신 분이 원효라~~다툼을 화해하는데 첫번째라고 화쟁이 나라에서 받은 호입니다.
원효가 말하는 법화경종요를 보는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이걸 많이 아는 사람들이 있으면 강성이 없어지죠.
불교 경전은 강성이 없어요.
강성은 목소리가 강 한 것인데 여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진실한 사람이 목소리가 크지 않고 강합니다,
그리고 변명을 하는 사람 우기려고 하는 사람 사이비 종교는 강렬합니다.
법화경이 그렇게 유명했는데,원효의 저술들이 전부 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거예요.
신수대장경이 1934년에 완성이 되었단 말이예요.
이런 면에서 우리는 일본 불교학자들 에게 대단히 감사함을 표 해야합니다.
원효의 저술들을 있는데로 모아서 신수대장경에 실어 놨어요.
우리나라에 들어온지가 백년도 안 됐습니다.
그랬으니 그 동안에 열심히 배울 기회도 적었고 정보도 적었고...그렇습니다.
무량수경종요라든가 이런것들이 지금은 책으로 많이 만들어졌지만 ,보는것은 작은 글자에
대장경안에 있는 글을 보는거예요.
봉정식 하는것 여러분 보셨어요?책 다운 책으로 해야지 에세이집 써 놓고 봉정식 한다고...
법화경종요을 잘 번역해서 금사(金寫)를 해서 봉정식을 해야지 ...
저는 그렇게 할 겁니다.아미타경소나 무량수경종요도 잘 해서 그렇게 할 겁니다.
이게 없었다면 제 자존심이 상해서 도저히...살 수가 없어요.
죽어서 극락간다고 염불할 일이 뭐가 있어요.당연히 가는것인데 죽어서 가니까 좀 아쉽지.
법화경을 해도 다 갑니다.
나무 佛만 해도 갑니다,(이것도 석자네)나도 아미타 만 해도 가는데.
가는거야.간다고 되어 있잖아.당연히 가는데 지금 어떻게 사느냐?이걸 이야기할려고 하는것이지.
허구헌날 죽어서 극락 갈려고 나무아미타불 하고 있었다.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지.
의천이 원효의 저술들을 모조리 옮겨서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남아있는것은 약24 권 정도 됩니다.반쪽 반쪽짜리까지 합해서.
완전히 남아있는것은 12권 정도 됩니다.기록은 다 있는데.부분 부분씩 남아있는거 있어요.
조선시대때 유생들이 시를 좋아하는 분들이 우리나라의 유명한 분들의 시를 모아서 문집을 만들어 놓은게 있어요.이것을 동문선東文選이라고 합니다.
이 동문선東文選에 원효의 법화경종요의 앞장 제1장이 들어가 있어요.글자수가 418자입니다.
법화경종요는 제6장으로 되어있어요.
제1장의 내용만이 우리나라에 돌아다닌적이 있어요.
유생이 자기네들 시집에다가 이 내용을 싣고 이걸 외우고 있었다고,글 잘 썼다고..
빠진 글자를 유생들이 채워넣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문제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법화경종요의 전체가 어디에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1934년 신수대장경이 공포가 되니까 우리가 입수를 해서 ...우리나라에도 보는 사람들이 많죠.
거기에 원효의 저술이라고 무량수경종요,아미타경소,법화경종요.금강삼매경론등 약 15권정도가 실려져 있습니다.그래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입니다.
우라나라는 한 조사가 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것은 원효밖에 없습니다.
조선시대 정약용이나 이이나 ,이퇴계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이게 어렵다는 겁니다,문제는 그런데 어렵지 않습니다.안 해서 그런것이고 길을 가르쳐주면 다 할수 있어요.
무량수경종요나 아미타경소 아무나 함부로 손을 댈 수 없게 되어있어요.
법화경종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학자들이 인용을 하고 학문적으로 해설은 하지만 공개적으로 이런 사례는없습니다.
여러분은 다 이해를 할 겁니다.
여러분들은 본인 들이 얼마나 이상한줄 모르죠?자기가 자신을 모르지~~~난 알아~
여러분은 이상한 사람들이 맞고,아주 뛰어난 사람들이예요.
아미타파에 있는사람들은 다 그렇습니다.세계적으로도 손상이 없습니다.
원효가 말씀하셨습니다,염불하는 사람과 성인의 말씀에 복종하는 사람은 질박한 사람이라고.
질박-성품이 아주 맑은 사람이라고~맑으면 다 이해를 하죠.
제가 지금 간곡하게 세계화 대중화를 요구하는 것들은 원효의 저술들입니다.
힘겹게 전해져 내려온 원효의 저술들은 21세기를 향해서 논서를 쓰신거 같애요.
법화경이거 누가 다 보냐? 간단하게 ~~
무량수경종요도 다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원효의 저술 뒤에 무량수경종요나 법화경종요 뒤에 다음 장에는 법화경 문구를 따라서 해설하겠다
무량수경종요 에서도 문구를 따라서 해설을 하겠다 했는데 이 책들은 모두 없어진거라.
원효가 분명히 하겠다고 했는데 다 없어졌어.
법화경을 다 했느냐? 그것은 아니고 원효의 스타일로 봐서는 여시아문에서 부터 몇장 어디까지는
무엇을 이야기 한것이다 이런걸 써놨는데 없어졌어요.
법화경도 6장까지 나눠 놨는데 다 없어지고 6장에서는 전체적인 글의 내용을 설명을 하는겁니다.
원효가 경전을 보는법 있죠?
여시아문 일시불 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여기서부터 유통분까지 경전을 보는법을 아주 강조를 했는데 경전을 보는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놓은것은 하나 입니다.무엇인지 아세요?
아미타경소입니다,아미타경은 아주 중요합니다.
여 시 아 문 일 시 불 재 사 위 국 기 수 급 고 독 원 -육성취가 있는데 이것을 설명해 놓은법은
오직 한 군데 밖에 없습니다,아주 간단명료하게 ..
여시와 아문을 왜 그렇게 썼는지를 원효것을 좀 보라니까.
한국에는 육성취를 해설하는것을 원효걸로 딱 통일하면 됩니다.
그냥 따라서 하면 됩니다.
우리 출가자도 재가자도 자기 견해를 만들지 말고 뛰어난 경전이라고 하는 아미타경을 해설한것이 아미타경소 아니야!!
원효가 중국 일본등 어마 어마한 경쟁자를 뒤로 제치고 아미타경은 이렇게 생각한다고
쫘아악~썼습니다,
그것도 일심에서 아미타불이지.가는것은 다 갑니다.
그런 내용들을 도외시 하고 본인들 마음데로 아미타경을 해설을 한다니까요.
제가(스님)한것도 아니고 원효가 한것이잖아요.
거기에 있는 내용을 이해를 하고 해설을 할려고 노력을 해야지.
아미타경을 아무렇게나 자기 마음데로하면 안 된다 이 말이지.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이렇게 우려의 목소리를 드러냅니다.
법화경의 가치를 누가 알리느냐?
대만 중국 일본 프랑스에서는 절대 알리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됩니다,여러분의 조언 하나가 다른것이 풀려버립니다,
중국에서나 일본에서 왜 아미타경을 찬탄하지 않느냐?바로 알아야됩니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이 인정되면 중국 일본의 조사들이 모두 원효의 무릎 밑으로 내려와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찬탄을 못하는 겁니다.
중국 일본에 산재한 많은 논서들이 이 아미타경소 한 권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경전을 보고(분과)내용을 딱 딱 자르고 해설을 하고 ...
유통분이라는건 뭐냐?서분은 ?정종분이라는건 뭐냐? 이런걸
경전은 세분과를 한다 말이예요.이런걸 원효를 통해서 배우라니까요.
경전을 보는것은 이렇게 봐야 됩니다,
내가 들었다--이것은 귀로 들었다는 소리가 아니고
내가 틀림없이 들었기 때문에 틀림없다고 믿는다.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가 들었다라고 하는 것이지.귀로 들었다는게 아니다.그 말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들은 바가 있으면 믿어야됩니다.그리고 실천 해야 됩니다,
귀는 개도 있고 돼지도 있고 그렇죠.사람 귀는 개 돼지 하고는 달라야 된다 이 말입니다.
원효의 저술들은 전부 신수대장경을 통해서 내려왔다.
일본에서 실어주지 않고 불쏘시개로 써버렸으면 영원히 묻히고 마는겁니다.
그 중에 가~장 고마운것은 세 권 기신론소 무량수경종요 아미타경소,이것입니다.
무량수경종요 아미타경소는 글자가 한 자도 안 빠져있어요.
법화경종요는 글자가 많이 빠져있어요.
이 빠진것도 가만히 앉아(觀) 있으면 다 맞춰지는거에요.
이 정도는 돼야 됩니다.
불이 그 쪽으로 갔는데 ...어떻게 타지 않았는지?기가 막힌 일이고 알수없는일입니다.
불이 났는데 원효것이 남아있다니까.
우리가 그것을 살려야됩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안 하고 있습니다
어제 안 한 사람이 오늘 하기 어렵고 작년에 안 한 사람이 지금 하기 어렵습니다.
관심을 계속 가졌다면 모르지만 지금 관심을 가져가지고는 언제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할 수없이 읽어보고 관심을 가져서 교정에도 참여하고 세상에도 알려지고
내가 책을 냈네 할 필요가없습니다,이제 급합니다.
인생도 점심 먹어버렸습니다,해 지는것만 봐야되니까 많은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빨리 빨리...해서 이런것도 있네~ 하고 보게 해야 됩니다.
그걸 도와 달라고 여기 온것입니다.
이것으로 1교시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지칠줄 모르고 일심정토 염불수행을 위해 거침없이 나아가시는 스님께
삼배의 예를 갖추고 바로 배우기를 발원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일체경계 본래일심
감사합니다.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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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그동안 나태했음에 정신이 번쩍듭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일심광명화신아미타아미타아미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불()()()
일심 광명 화신
귀명합니다 찬탄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파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