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 거제 바다에 넘실거린 문학
조 양 상
1. 통영과 거제 일대의 풍경을 어찌 글로 묘사하리
봄은 멀리 남쪽 바다로부터 오고 있었다. 올해엔 유달리 봄이 더디다고 했지만 남도 끝의 육지를 이미 점령하고 있었다. 봄맞이 마중을 위해 임동윤 주간, 조창환, 유소영 화가, 서범석, 박해림, 정재분, 한성희 시인 등이 서울에서 통영 거제로 봄 문학기행을 온다는 소식을 듣고 통영 버스터미널로 차를 몰고 가는 내 가슴은 견내량 물결처럼 마냥 출렁였다. 몇 년 전 《시와소금》 창간 이전부터 서울 종로 운니동에서 시를 공부하며 내 문학의 이정표로 본받고 싶었던 한국 문단의 기둥 같으신 분들이라서 그랬다. 특히 통영과 거제의 아름답고 빼어난 경관과 이곳의 문학의 숨결을 어떻게 보여 드리면 좋을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부산의 권용욱 시인, 진주의 정미영 시인이 합류하면서 우리 일행은 서둘러 첫 번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통영항으로 내달렸다.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중략) 이것은 만중운산 속의 천고 절미한 호수라고 보여진다.”(중략)
이 겸손한 글은 정지용 시인의 글이다. 그는 해방 후 통영 한려수도를 둘러보고 「남해 오월점철」이라는 기행문 18편을 썼는데, 그중 5편이 통영기행에 관한 것이다. 칠백 리 한려수도는 우리나라 팔경 중의 하나이다. 그 백미라 할 수 있는 통영과 거제에 대한 기행문은 정지용 시인도 고사할 정도였다. 그런데 감히 내가 쓸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되었다. 문학기행이라서 미리 간멀미를 한 셈이다.
2. 바다의 땅, 「토지」 소설로 넘실거린 통영
본래 여행의 진미는 오감의 만족에 있다. 그래서 첫 번째 여정으로 비릿한 바다냄새가 식욕을 돋워 주는 통영항 서호시장으로 향했다. 문학기행 강행군에 고열량 에너지 비축도 필요했다. 서울에서 장어를 배불리 먹으려면 두툼한 지갑부터 그 무게를 가늠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비교적 고가이나 먹고 가지 않으면 꼭 후회하게 될 것만 같아 푸짐한 장어구이를 점심 식사로 결정했다. 일행들은 오랜 만의 만남이어선지 자리에 앉자마자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앞뒤 없는 수다로 여행 기분을 내기 시작하였다. 매콤한 양념이 코를 자극하는 장어구이가 등장하자 침묵으로 오직 먹는 것에만 열중한 지 얼마 후 포식의 절정이 이를 때야 비로소 하나 둘, 통영에 온 것을 실감하는 듯 했다. 배를 든든히 채워선지 일행은 긴 버스 여행으로 힘들 법도 한데 가뿐하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 우리 일행은 강구항이 내려다보이는 벽화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본시 갯내음은 바다를 인접한 곳이면 다 맡을 수 있다지만 통영의 갯내음은 어딘지 다르다. 달짝지근한 것이 자꾸 뒷덜미를 채어 뒤돌아보게 하는 그런 달콤한 향이 일었다. 일행들은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동피랑 벽화마을로 올랐다. 오르는 내내 통영 앞바다가 우리를 따라왔다. 멀리 통영의 눈부신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고 언제 봐도 아름다운 통영의 풍광이 압도적이었다.
‘피랑’이란 말은 절벽의 통영 사투리다. 동피랑은‘동쪽에 있는 절벽’이란 뜻인데 통영에는 동피랑 건너편에 서피랑 지명 마을이 실제 존재한다. 귀엽고 익살스러운 벽화도 그렇고 기념품 가게와 찻집 이름도“몽마르다 언덕”처럼 정겨워 동심으로 돌아간 우리도 얼음과자를 입에 물고 연신 아이처럼 재잘거리며 사진을 기념사진을 찍고 즐거움에 들떴다. 박경리 생가가 저곳, 그 아래가 김 약국집 딸들이 태어나 자란 곳, 청마 유치환님이 수 천 통의 연서를 정운 이영도 시조시인에게 보낸 통영우체국, 꽃의 시인 김춘수의 고향 집,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 공원과 임진왜란이 끝나고 세운 조선 삼도수군 통제영 본영(三道水軍 統制營 本營) 세병관을 멀리 눈짓과 손짓으로 불러 모으고 흩어 놓으며 통영을 한 눈에 꼭 품어보았다. 일행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통영의 아름다움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하고 짐작했던 그대로 그저 감탄사만 연신 터뜨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들의 감탄사를 끌어 모아 저 바다로 날려 보낼 뿐이었다.
통영 해저터널 위의 통영대교를 건너서 산양 일주도로를 지나면 절경의 바다풍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데 가다 보면 실제로 미래사라는 오래된 절도 있다. 이 사찰에서 법정스님과 고은 시인께서 한동안 머물며 글을 쓴 곳이라 문인들에게는 풍경소리도 예사롭지 않은 곳이다. 미래사 절이 들어선 산은 미륵산인데 요즘 케이블카로 관광명소가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발걸음을 붙잡는 것은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소설가 박경리님이 그 곳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박경리 소설가는 6‧25 동란으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평생 문학을 배필로 삼아 살아온 한국 현대 문학의 대표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인 소설‘토지’는 하동 평사리 최 참판 댁이 실제 무대이지만 박경리가 태어나 자란‘바다의 땅’이라 불리는 통영의 앞바다에 서면 오래 전부터 바다가 토지의 무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토지의 꿈이 바다에서 잉태되고 영글었을 것만 같다. 박경리 소설가가 잠든 미륵산 기슭에서 바라보는 남녘 다도해와 그 바다 섬에서 키우고 양식하는 다양한 해산물들이 세상 사람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다름 아닌 바다 농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박경리 문학관과 묘지를 둘러보면 임께서 남긴 문학 또한 우리 정신과 마음의 양식임을 확인할 수 있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다.
어스름 땅거미가 미륵산을 휘감을 무렵 일행은 연중 예약 없이는 묵을 수 없는 통영ES클럽 명품 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통영 중앙시장에서 장만한 싱싱한 해물과 횟거리를 장만하여 저녁만찬을 차려놓았다. 그리고 양주, 담금주를 비롯한 다양한 곡차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첫 날의 여정을 만끽했다. 이날 밤, 이야기의 꼬리는 정말 길었다. 술안주로 끓여낸 매운탕과 라면, 시간이 흘러도 탱탱한 회와 푸짐한 채소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끝없이 이어갔다. 특히, 성웅 충무공 이순신 정신문화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필자에 대한 [배한성의 뉴스메이커] TV방송도 함께 시청해 더더욱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어둠 속 파도소리가 점점 멀어질 때 어느 듯 한 분 한 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시인 아닌가. 이대로 쉽게 잠들 수는 없었다. 마지막은 역시 한바탕 목청을 풀어야 하는 법이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자정 가까울 무렵의 노래방에서 ‘카수’들이 서로 마이크를 가로채며 발군의 실력을 뽐내었다. 놀랍게도 ≪시와 소금≫의 식구들이 만약 시가 형편없거나 게을리 한다면 그것은 분명 노래방 때문일 것이라고 여길 만큼 노래 실력은 전문가 수준이었다.
3. 청마의 고향 환상의 섬, 거제와 동백꽃
통영 ES리조트에서 맞이하는 이른 아침은 정말 신비롭다. 더욱이 비갠 날 새벽, 물안개가 섬 언저리를 휘감는 아침이면 더욱 그렇다. 여정의 둘째 날 일정을 가늠하며 통영거제의 토속음식인 ‘도다리쑥국’으로 지난밤의 곡차에 시달린 속을 풀어야 했다. 아침 식사는 가볍게 정했다지만 통영의 ‘봄, 도다리쑥국’은 시원하기로 정말 일품이었다. 안 먹고 갔으면 정말 서운한 감정에 한동안 흔들렸을 법 했다.
첫 번째의 여정으로 일행이 향한 곳은 한려수도의 새로운 관광명소 ‘장사도’였다. 장사도행 배에 오르니 선장이 마이크를 잡고 장사도와 통영 일대 거제도 일대의 설명을 거침없는 언변으로 술술 풀어내었다. 특히 장사도는 통영보다는 거제도에서 더 가까운 섬인데 섬의 생김새가 누에와 비슷해 누에의 지역방언‘늬비섬’,‘잠사도’로 불리었고 뱀의 형상과 같아‘진뱀이섬’이었다가 긴 뱀 섬, 장사도가 되었다고 했다. 장사도를 70% 이상 뒤덮고 있는 상록수가 동백, 후박나무, 구실밤잣나무인데 그중에서 동백꽃이 가장 아름다워 공원이름도‘장사도해상공원 카밀리아(Camellia : 동백꽃)’로 불린다. 지난 시절 새마을 운동이 한참이던 때 이 섬의 장사도 분교에 부임하였던 염소선생님의 이야기가 “낙도의 메아리”라는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다. 섬길을 오르락내리락 한참을 따라가니 폐교된 분교 앞 동백나무에 매달려 있는 낡고 조그만 학교 종이 보였다. 그 아래 후두두 꽃망울 채 낙화한 동백 꽃자리를 보니 마음이 슴슴했다. 발길을 돌려 깎아지른 바닷가 길 옆으로 들어섰다. ‘섬 집 아이’동요가 상시 흘러나오는 초가집에 파도소리까지 쏴아아 밀려드는데 섬이 주는 특별한 정서에 순간 온 세상이 매몰되었다. 단절과 소외와 외로움이 함께 밀려왔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바다뿐, 절해고도의 숨 막히는 고독이 이런 것이려니 하는 절절한 마음에 아련한 그 옛날 섬마을 정취에 흠뻑 빠져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들고 싶어졌다.
장사도에서 돌아와 다음 행선지인 거제도로 일행과 함께 발길을 옮겼다. 통영 ․거제도의 토속음식 중 하나인 멍게비빔밥을 먹기 위해서였다. 삭혀 냉동한 것에 뜨거운 밥을 얹어서 비벼 먹는 맛은 절말 일품이었다. 싱싱한 채로 멍게를 낸 것이 아니라 냉장 숙성 시켰다는 것이 특별한 맛을 불렀다. 일행들 사이 이번 문학기행 중 맛난 음식 중 최고의 별미였다는 평가가 자자했다. 멍게비빔밥 원조 음식점이 어딘지는 밝히지 않으련다. 그 이유는 이 글을 보신 문우님들 중 시쳇말로 멍게비빔밥이 당기면 저도 불러달라는 불온한(?) 저의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인터넷에서 잘 찾으시기 바란다.)
쌉싸름한 멍게 미각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입가에 머금은 채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 그리고 묘소였다. 청마 유치환의 출생지가 거제도인가 통영인가를 두고 언젠가 거제와 통영 두 행정기관이 법정송사까지 벌인 적이 있었다. 판결은 통영의 승소였다. 사실 유치환 시인이 태어난 곳은 거제일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그 이유는 3살에 통영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기억은 당사자보다 가족이나 친인척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청마가 태어난 1908년에 거제의 행정구역이 통영군에 흡수되었다. 거제가 통영의 수많은 섬 중에 큰 섬이었기에‘통영’이 청마의 태생지라고 판단했고 통영에게 승소를 안겨준 것이다. 이는 예전의 행정 구역과 지금의 행정 구역이 겹쳐지거나 갈라져서 생긴 행정상 문제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의 기초한 사실보다 지금의 행정 구역에 기초한 판단에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 판단은 아마 법적으로는 타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통영의 청마문학관보다 거제의 청마기념관에 유족들이 남겨준 유물과 증언이 더 많고 청마 부부와 부모님의 묘소도 거제시 둔덕골에 있다는 정황을 놓고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유명 시인을 사이에 두고 각 행정 구역에서 갈등을 한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먼 길을 마다않고 문학 기행을 달려온 시인들도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생전보다 사후의 가치를 놓고 영역의 이익을 따지는 것만 같아 씁쓸한 기분이 뒤따랐다.
이 날, 청마 생가에서 청마 시낭송 대회를 열고 있던‘시낭송 행복나눔’회원들을 만났다. 시집을 주고받으며 기념사진을 촬영하면서 문학행사를 통해 조우할 것을 약속했다. 남해 특유의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거제 남부면 해안도로를 달리며 우리 일행은 홍포로 향하였다. 길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흩어졌다. 동백이 나타나는가 하면 다시 해송이 그 뒤를 덮었다. 중부지방에서는 아직 피지 않은 매화와 미선나무도 보였다. 해안길이 주는 굴곡의 매력은 바다 풍경과 숲의 풍경이 서로 껴안거나 풀어내는 데 있다. 그래서인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청마와 정운의 사랑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그 사랑이 아가페든 로맨스든 사랑 없는 문학이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 있을까를 논하지 않았다면 청마가 서운해 했을까. 가는 길에 아득히 청마의 묘와 박경리의 무덤이 한산섬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승에서도 마주보고 있을 이 두 유명 시인과 임진왜란 때 우리바다와 땅을 한 점 오차 없는 절개와 굳건한 믿음으로 지켜낸 충무공이 겹쳐져 보였다. 우리 일행은 충무공의 제승당을 옆에 끼고 달리고 또 달렸다.
4. 여차저차 말이 필요 없는 몽글린 비경과 산해진미
거제도에서 올망졸망한 섬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 홍포(鴻浦)인데, 한자의 홍자가 갈매기 홍자로 아득히 먼 바다 위에 갈매기 섬 홍도가 보이는 포구라서 아마 홍포라고 했을 것이다. 이 홍도가 애국가 영상에 나오는 갈매기 무리 섬인데 예전에는 유인등대였지만 괭이갈매기 보호와 비용절감을 위해 지금은 무인등대로 바뀌었다. 홍포에서 해금강 방면으로 돌아 나오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옥포해전을 앞두고 전함을 이끌고 하루 묵었던 포구 다대항이 있고 홍포 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몽돌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마을이 여차가 나온다. 경치에 대해서는 여차저차 말이 필요 없는 곳이다. 특히 거제도에는 곳곳에 몽돌해수욕장이 많다. 파도에 몽돌 구르는 소리를 통해 모나게 살지 말고 낮추어 겸손하게 살라는 물과 돌의 이중창의 말씀이라고 생각해본다. 가슴을 울리는 바다의 풍경소리 같다.
공중파 방송에서 선정한 한국의 전망 제일 좋은 집‘해선대’에 여장을 풀고 거제도의 참 회맛을 선사해 드리고 싶어 찾은 횟집이 도장포의‘들뫼바다’이다. 이 횟집의 해산물은 주인과 해녀들이 직접 잡은 자연산이다. 홍합도 5년 이상 묵어 한 개 이상 먹으면 배가 불러 회를 남길 정도로 크다. 특히 해금강 주변의 물살이 험한 곳에서 자란 생물이라 식감도 남다르다. 그렇게 자연산회로 배를 가득 채우고 나니 남해가 주는 풍경에 취하고 맛있고 풍성한 먹을거리에 취해 여기가 어디인가에 대해 새삼 둘러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여행의 일품은 뭐니뭐니 해도 음식에 있는 법이다. 잘 먹고 잘 놀았으니 여독이 쌓일 만도 한데 우리 일행은 숙소로 돌아와서 거제 여행의 마지막 밤을 마음 놓고 즐기게 되었다.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본격적인 문학 이야기에 각자의 설을 풀었다. 예술, 특히 언어예술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토론이 계속 이어졌다. 무엇보다 시를 쓰는 시인의 정체성을 견고히 하고 싶은 이야기들로 분위기는 더욱 진지했다. 조창환 시인은
“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저의 가장 단순하고 무지한 질문에
“답습하는 아류보다 나만의 창작 시를 써라”
는 일갈을 해주셨다. 무언가 응어리가 풀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것은 나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시를 쓰는 모두의 화두이며 고민일 것이다. 허리띠를 푼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숙소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할 때 함께 시를 쓰는 동지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란 사실 이렇게 가장 기본적이어야 하고 가장 솔직해야 하고 가장 순수해야 하는 법이다.
귀만 열어놓아도 좋을 허리 띠 푼 문학 이야기는 이 날,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가끔 반박과 반박으로 회의와 회의로 흔들렸던 시간들, 가장 기초적이면서 가장 최종까지 가야하는 걸음들이 모여서 만든 토론의 시간이야말로 사실 거제 ․ 통영 문학기행의 백미라 할 것이다.
5. 둔덕골 홍매와 공곶이 수선화처럼 문학해야지
이번 문학기행의 여정에 우리를 가장 반기고 동행해 준 것은 매화, 미선나무, 수선화, 목련 등 이른 봄꽃들이었다. 벌써 매화는 가는 곳마다 꽃비를 흩날리고 있었고 청마생가 초가집 뜰의 할미꽃과 진달래도 보들 눈썹과 봉우리를 열고 있었으며 외포 대계마을 김영삼 대통령 생가 뜰의 목련과 공곶이 수선화도 추운 겨울을 이겨낸 그윽한 향기를 선사해 주었다.
두세 시간도 눈을 붙이지 않았음에도 새벽부터 일행은 분주했다. 남해의 일출 사진도 찍고 신선대 아침 바다공기와 다시 한 번 도다리쑥국으로 가슴과 배를 채우고 함목 돌틈이 바닷가, 여차해변, 학동 몽돌밭을 둘러보고 망치해변에서는 그동안 해물로만 채웠던 배를 한우로 채우고는 수선화가 반겨주는 공곶이로 향했는데 333개의 가파른 돌계단이 문제였다. 곶이라는 말은 바다로 좁고 길게 내민 땅을 말하는데, 당연히 돌도 바람도 많고 벼랑과 경사도 심하며 해풍을 이겨내야 했다. 우리 문학의 땅에도 자갈을 걷어내고 돌담과 계단을 쌓고 추위와 굶주림마저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학의 꽃을 피우라고 막 꽃망울을 터트리는 수선화가 시위하는 것 같았다.
2박 3일 일정으로 통영과 거제의 경치와 문학을 만끽하기에는 무리이다. 외도, 해금강, 지심도, 서이말 등대… 더 보여드리고 싶은 곳이 많지만, 다음으로 미룬다. 거제에서 가끔 열리는 선상문학의 밤 등 더 멋지고 격조 높은 문학행사를 마련하고 귀하신 문인들을 이곳 시민들에게 그리고 더 많은 《시와소금》 가족들에게 선사해 드리고 싶어 후일을 도모한다.
문학기행을 오시기 전, 그리고 문학기행 후 《시와소금》에서 보내주신 여러 시집 읽으며 꼬불꼬불한 통영 거제의 해안도로 두름길에 멀미했음에도 미소가 가득했던 시인들의 정겨운 얼굴은 오래도록 내 마음 밭을 차지해 흐드러질 것 같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뒤로 하며 손을 흔드니 뒤뚱거리던 봄이 그제서야 버스를 따라 환하게 달리고 있었다.
첫댓글 통영, 거제 문학기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모임이었던것 같아요^^
시간 되시면 꼭 한번 오세요! 감사 합니다.
거제는 언제가든 무척 정겹고 아름다운 고장이더군요. 낮으막한 산에서 푸근함을 , 바다에서는 정감을 느끼게 되어 자주 가고 싶은 곳입니다.
시인님! 정겹고 아름다운 거제에 초대합니다.
언제 오시면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