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8일, 기록적인 폭우와 섬진강 댐 방류로 섬진강과 하천이 범람해서 구례 곳곳이 물에 잠겼다. 김선정(38세, 시장 매니저) 씨가 오일장 주차장에 내려섰을 때는 안내방송이 울리고 있었다. “물이 빠른 속도로 들어차고 있으니 모든 걸 그대로 놔두고 일단 신속히 대피하십시오” 오전 7시 48분경이었다. 그때만 해도 믿기지 않았다. 상인회 사무실에 들어서서 사태를 파악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이웃 상인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신용상회 쌀가게 주인은 아침 식사 중이었고 휴가철이라 딸과 손주가 와 있었다. 방송이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머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녀요, 물이 가게 앞까지 찼어요. 얼릉 몸만 빠져나오세요!”
수마가 할퀴고 간 구례읍 오일장터는 처참했다. 주말을 낀 장날이라 평소보다 더 많이 준비한 물건들을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만 했다. 살림 밑천이 되어 준 평생의 노고와 애환이 담긴 귀하고 귀한 물품들이었다. 오일장 앞에 구례군 복구지휘본부가 차려져서 긴밀하게 협업해 나갔다. 수해를 입은 구례지역의 소식을 접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그녀는 상인회에 필요한 자원봉사 인력을 배치했다. 코로나19 여파와 폭염으로 힘든 상황이어선지 봉사자들이 주로 오전에 왔다 가고 오후에 인력이 없는 날은 애를 먹기도 했다. 다행히 칠공수 부대와 해병대 등 군인들이 투입되어 큰 몫을 하고 간 날은 일이 눈에 띄게 진척되었다. 여기저기서 들어온 구호 물품을 상인회에 배정해서 나눠주고, 심각하게 피해를 본 양정마을과 냉천마을에도 전달될 수 있게 했다. 피해 현황 중 하나는 물에 잠기면서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점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수리팀을 파견해주어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신제품으로 구입 시에는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온갖 어려운 시절을 지내온 어른들도 평생 이런 물난리는 처음 겪어본다고 했다. 그나마 밤중이 아닌 아침에 일어나서 다행이었고 인명피해가 없어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씁쓸한 한숨을 쉬었다. 먼저 복구가 된 점포는 냉장고에 물을 얼려서 봉사자들에게 나눠주었고 상설시장 사람들도 함께 일손을 거들었다. 재난을 겪으며 어려운 이웃을 살뜰히 챙기게 되고 상처 입은 마음을 서로가 다독여 나갔다. 무더운 날씨에 구슬땀 흘리며 일손을 도와주고 간 이름 없는 봉사자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다시금 용기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상흔을 딛고 한 달 반이 지나 9월 18일 전통시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잊지 않고 소식이 궁금해서 일부러 찾아온 손님들도 있었다. 추석 무렵이어서 미리 제수용품을 구입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그래도 걱정은 면했다고 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여기서 하는 일이 즐거워요. 모두 어머니, 할머니같이 대해주시고 그래요. 그전에 노점 단속을 할 때는 싸울 일이 많았는데 수해가 난 후로는 우리 사무장 고생했다며 다독여주고 힘을 주시더라구요.”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수해 복구 이후 상인들과 관계가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오일시장 내에는 157개 점포와 150여명 상인들이 있지만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는 곳은 소수에 불과했다. 장날에만 나와서 판매를 하는 점포들이 대다수였다. 사업자 등록을 해서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서류처리를 돕는 등 성심껏 일하는 모습이 상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덕분에 요즈음은 노점에서 점포를 여는 분들이 스스로 질서를 잘 지켜주고 있는 편이라고.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여행을 자주 다녔고 지역 재래시장에 꼭 들러서 지역 특산품을 눈여겨 봐왔다는 그녀는 구례가 고향이다. 집에서 통학하며 순천에 있는 대학을 다녔고 그 후로도 구례를 떠나지 않았다. 부모님을 곁에서 돌보고 싶어서였다. 전남 청년 내일로 일자리사업을 통해 산동 ‘지리산 나들이 장터’에 이어 오일시장 매니저 일을 2018년부터 맡아서 해오고 있다. 지금은 중소벤처기업청 지원사업인 플래그쉽 스토어점 ‘구례모아’를 홍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수해로 어려움을 겪은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의 온라인 판로 확대를 위해 올해 4월 8일 처음 문을 연 ‘구례모아’매장에는 나물, 산수유, 우리밀, 참기름, 꿀, 부각 등 구례의 대표 특산품이 전시되어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상인회와 일반회원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특산품을 판매, 배송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나고 오일장 골목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활기찼다. 활달하고 씩씩하고 장터를 지켜온 오랜 이웃들과 즐겁게 일하고 있는 젊은 일꾼, 그녀의 내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