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anism, 그리고 고대 한국인의 가치관(價値觀)
- 단군신화(檀君神話)를 중심으로 -
<목차>
Ⅰ. 서언
Ⅱ. 샤마니즘(Shamanism)
Ⅲ. 한국적 샤마니즘, 그리고 그 토양
Ⅳ. 단군신화에 나타난 고대 한국인의 믿음의 형태
① 하느님과 그의 강림신앙(降臨信仰)
② 지모신(地母神)에 대한 신앙과 종교적 Initiation
③ 천지부한(天地附合)과 창조신앙(創造神仰)
Ⅴ. 결언
Ⅰ. 서언.
종교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에 있어서 그러한 종교적 심성은 어떻게 촉발되는가 하는 물음은 마치 인간이란 무엇이며 또한 인생이란 어떠한가라는 원초적인 반성만큼이나 중요하고 난감한 문제이다. 특히 현대와 같이 합리주의적 발상이 이루어 놓은 거미줄 같은 질서체계 속에서 호흡하는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물음은 더욱 절실한 일이다.
단편적으로 후기 현상학(現象學)의 방법론적 성과를 인용하기로 한다면, “인간이란 그가 살아온 고향의 경험이요, 마찬가지로 인생이란 고향의식의 시간화다. 이것을 좀 더 이론적으로 규명하면, 인간은 자기가 살아온 체험의 세계, 삶의 세계(Lebenswelt)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에 스스로 의미를 걸게 되는 것이다.” 나란 인간이 무엇이며, 또 나의 인생이 어떠한가라는 물음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어떤 곳이며, 나는 어떻게 믿고,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 것인가라는 자기반성으로 돌이켜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종교의 목적이 유한한 인간세계에서, 보다 이상적으로, 인간의 욕구로 인해 일어나는 고뇌와 좌절을 줄이고, 인간이 사는 기쁨을 키우기 위한 바램에 있다면, 이 땅, 한국이라는 환경, 그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가장 원초적으로 형성된 ‘믿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은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본고에서 하나의 방법론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한국적 샤마니즘(Shamanism)이 그것이다.
한국적 샤마니즘, 즉 무교(巫敎)라는 것이 여타 기성종교(旣成宗敎) - 불교(佛敎)·유교(儒敎)·기독교(基督敎)·회교(回敎) - 에 비해 종교로서의 교리도, 교조도 없는 일종의 자연종교적인 - 그러나 한국에서 형성된 산신신앙(山神信仰)이나 신목신앙(神木信仰)은 다음의 분석함에 있어서 설명되겠지만 여타의 아니미즘(Animism)으로서의 자연종교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 성격을 벗어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 땅에서 형성된 가장 원초적인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서 재고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러면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네의 민중 속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지켜온 그 원칙은 무엇이고, 그들은 그 초월적인 힘에 대해 무엇을 바라고 하나의 독특한 ‘믿음’으로 가꾸어 왔는가? 또한 이러한 ‘믿음’의 형태 속에서 우리는 고대 한국인으로부터 어떤 ‘가치의식’을 찾아낼 수 있으며, 그 가치의식은 현재의 ‘나’에 대해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
Ⅱ. 샤마니즘(Shamanism)
학자들은 원래 북극해 연안의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특이한 종교를 전형적인 또는 고유한 원형적인 샤마니즘으로 일컬어 왔다. 그러나 ‘샤마니즘에는 고전이 없다’라는 명제를 낳기에 이를 만큼 다양한 지역에서 각양의 샤마니즘이 논의되기에 이르러, 단순히 수렵문화의 종교로서 샤마니즘을 규정하던 것도 시야의 편협성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최근 연구자들은 밝히고 있다.
실제로 샤마니즘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많은 난제를 안고 있다. 분포면에서, 또는 그것의 기능면에서 하나의 종교현상으로서 하나의 정의나 개념 속에 포함시키기에는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샤마니즘은 “인류가 지닌 가장 오랜 문화이며 하나의 역사를 넘어서 각종 민족과 그 사회구조·풍토·역사적 환경 등을 따라 여러 갈래의 분화 또는 습합(習合)을 이루어 온 가장 생명력이 긴 문화소산”이기도 한 데, 그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일대에 흐르고 있는 ‘북방의 샤마니즘’에 대해 논의를 한정하고자 한다. 그것은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범세계적인 샤마니즘의 논의의 추세로 그것의 완전정립단계,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점과 본고의 의도가 이 땅의 ‘믿음’의 형성고에 대한 고찰에 있기 때문이다.
‘북방의 샤마니즘’이란 원래 북극해 연(沿)한 시베리아 퉁구스족의 독특한 종교를 일컬었으나, 그것이 시간의 추이에 따라 퉁구스족 한 종족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적으로 인접된 국가들로 확산되어, ‘북방의 샤마니즘’은 점차 동북아시아 일대를 관류하는 보편적인 종교현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샤마니즘도 몽고·만주를 거쳐 유입되었다. 그것이 언제 쯤 유입되었는가 하는 점에선 불분명하나, 이러한 남방으로의 이동은 일본에서 일단락된다. 좀 더 확실히 문헌적으로 살피자면, 고대 문명국이었던 중국의 경우에 있어서 그 역사적 관찰이 가능하다.
중국의 무교(巫敎)는 신령과 귀신을 믿고 그들의 뜻을 받들어 신권정치(神權政治)를 하던 은(殷)나라에서 출발된 종교현상이다. 즉 중국의 오경(五經) 중의 하나인 ‘예기(禮記)’에서 다음과 같은 표기 “殷人尊神·率民事神·先鬼後禮”로 그 문헌을 살필 수 있다. 정치와 생활이 바로 이러한 주술 - 종교적 문화를 기초로 했다는 표현은 또한 ‘서경(書經)’의 군석편(君奭篇)의 무함(巫咸)·무현(巫賢) 등의 무관(巫官) 명칭에도 나타난다.
이와같이 중국무교의 근원을 은나라대로 잡고 퉁구스족과의 연관을 살피기로 하자.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이 있다. 즉 “기원전 삼천 년 기(期)에 원·퉁구스족(Pro-tungus)들의 거주지역이 화북 황화유역” 이었고, “바로 그곳이 은문화(殷文化)의 발생지”였다는 점이 그들간의 종교문화에 있어서의 어떤 공통성 또는 연속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예상하게 하는 것이다.
샤마니즘에 대한 여러 사람의 정의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것으로, 일본인 학자 堀一郞교수는 “샤만(巫覡)이라고 하는 엑스타시(Ecstasy) 기술을 몸에 터득한 특수한 주술 - 종교가를 중심으로 그를 에워싼 신자의 무리들에 의해 형성된 종교현상이며, 주술적인 동시에 다분히 신비적이며 밀의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 샤마니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결국 샤마니즘이란 무당종교 혹은 무교(巫敎)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샤만(Shaman)이 지니고 있는 ‘엑스타시(Ecstasy)기술’ 또는 ‘엑스타시 현상’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라는 데에 있다. 그러한 것에 대한 설명, 또 그 이해는 ‘북방의 샤마니즘’에 대해 한국의 샤마니즘의 연관관계를 밝혀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巫’를 설명하여 여자가 無形의 신을 섬길 제 양편의 소매를 드리우고 춤을 춤으로써 신을 내리게 하는 형상을 따서 만든 字라 하였다.” 다시 자세히 그 자를 설명하면, “<工>은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는 뜻이요, 그 양편에 있는 <人>은 춤추는 사람을 표시한 것이다. 곧 가무(歌舞)로써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巫)’란 가무로써 신인합일(神人合一)하게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면 샤만의 방술(方術)로써 가무는 엑스타시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순서상 엑스타시에 대한 정의를 먼저 살피면 - 그것은 정신병리학적인 것으로 이해하려는 연구자들도 있지만 - M.Eiade는 “정신병리학적 현상이 아니라 ‘성속(聖俗)의 변증법’이며, 신비적 종교현상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종교적인·긍정적 측면에서, 샤만은 바로 그 엑스타시 속에서만 그의 영혼이 타계(他界)로 여행한다든가 또는 신령과 접신(接神)하여 인간과 신의 매개자로서 역할을 하며 인간의 화복을 조절하는 것이다.
가무의 역할이란 바로 엑스타시의 신비적 경험으로 샤만을 탈속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 때 샤만은 종교적 체험·이니시에이션(Initiation)의 경험을 한다. 노래와 춤은 에스타시로 이끄는 기술이요, 교령(交靈)의 방술(方術)이다. 이러한 탈아교령(脫我交靈)의 기본체험은 입무과정(入巫過程)의 무병(巫病)에서 맛본다. 그런데 “중국의 무격(Shaman)들도 입무과정에서 이와 같은 무병을 겪는 것이 상례였다.”
상기(上記)와 같은 점들을 보아 한국의 샤마니즘이 북방의 샤마니즘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점에 관해서는,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것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본고의 목적이 한국의 샤마니즘이란 것이 ‘북방의 샤마니즘’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느냐하는 문제보다, 오히려 ‘샤마니즘’이라고 하는 하나의 종교현상을 우리네 옛 토양에서 찾아보면서 고대 한국인의 신앙형태를 탐문하고자 하는데 더 큰 의도가 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Ⅲ. 한국적 샤마니즘, 그리고 그 토양(土壤)
한국의 샤마니즘이란 고대 한국인의 신앙과 그 역사적 흐름, 그리고 현재의 무속으로 알려져 있는 민간신앙 전체를 포함한 포괄적 개념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무교와 무속(巫俗)의 개념상 차이이다. 한국무교란 사회습속 이상의 종교적 현상, 즉 고대종교가 잔유계승된 것이며, 한국 현대문화 속에서도 민간신앙의 형태로 살아남아 있는 역사적 종교현상이다. 이에 반해 무속이란 무교를 사회습속으로 다루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종교현상에 대한 역사적 관심과 종교적 독자성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는 개념이다.본고의 주제가 되는 바, 한국무교의 원형에 대한 탐구는 그러므로 현행 무속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 우리 선인들의 사유세계, 혹은 가치관을 찾고자하는 노력은, 오랜 외래문화 속에서 많은 외래종교현상들과 혼합되어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을 현재의 흔적보다는 외래문화를 받기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신앙에서 더 큰 성과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먼저 전제되어야 할 점은 첫째로, 한국고대신앙이 샤마니즘의 일종이요, 기본이라는 것과 둘째로, 고대신앙이 가진 구조가 현재의 무속에도 존재한다는 보편성에 대한 이해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고대신앙의 원형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생활·종교의 미분화된 상태 속에서, 그 생활문화를 이루고 있었던 고대인에게 자연과 생활의 질서유지와 창조적인 진행을 위해서는, 그들의 삶에 실재성을 부여해 줄 어떤 조형(祖型 archetype)이 필요하게 되었다. 즉 “지성이 인간동물의 고유한 특질이 되고, 지성의 산물이 인위적인 것으로써 자연세계와 구별되는 인간적 삶의 울타리를 구성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통합해 줄 수 있는 기본적인 법칙을 찾고 틀 지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법칙이 신화의 체계, 또한 제례의 양식으로 나타난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화란 개관적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인들의 궁극적 관심, 또는 종교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야기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화의 주요기능은 모든 의례와 인간에게 중요한 식사, 성(性)생활, 노동, 교육 등등에 대한 규범적 전형(paradigmatic models)을 확립하는 일”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적 샤마니즘 즉 고대인의 원초적인 ‘믿음’과 그 형태를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Ⅳ. 단군신화에 나타난 고대 한국인의 ‘믿음’의 형태
앞장에서도 밝혔지만, 신화의 중요성은 그 이야기가 그리고 있는 객관적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표현하려고 한 내적인 의미에 있다. 따라서 그것은 한국적 환경 속에서 형성된 가장 원초적인 토양 - 사유세계·믿음의 문제 - 이 되리라 생각한다.
“신화의 발생에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첫째, 자연물과 고대인의 의식·관념을 활물화(活物化)·의인화해서, 또는 그들의 집단적 욕구를 바탕으로 순수상상에 의해 발생한다. 또 하나는 어떤 선사시대의 역사적 사실이 서서히 시대적 욕구에 의해 신격화되는 경우이다.” 단군신화가 그중 어느 것에 해당되는 지는 정확히 구별되지 않으나, “고대인은 상징·은유·우화로써 사고한다는 점, 그리고 인간정신이 오직 외적 사물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식경험의 현실을 형상으로써 표현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징·은유·우화의 사고가 상상력이란 것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되었다고 볼 것이다. 신화란 어느 날 갑자기 허공에서 불식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어떤 대상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군신화’는 바로 우리네의 ‘삶의 틀’에 대한 규범적 전형의 성립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단군신화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僧一然의 삼국유사 ‘卷第一紀異第二古朝鮮條’에 다음과 같은 것이 나온다.
“魏書云·乃往二千載有檀君王儉·立都阿斯達·開國號朝鮮·與高同時·古記云·昔有桓因庶子桓雄·數意天下·貪求人世·父知子意·下視三危太佰可以弘益人間·乃授天符印三箇·遣往理之·雄率徒三千·降於太白山頂·神樹下·謂之神市·是謂桓雄天王也·將風伯雨師雲師·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時有一能一虎·同穴而居·常祈于神雄·願化爲人·時神遺靈艾一주·蒜二十枚曰·爾輩食之·不見日光百日·便得人形·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熊得女身·虎不能忌·而不得人身·熊女者無與爲婚·故每於檀樹下·呪願有孕·雄乃假化而婚之·孕生子·號曰檀君王儉·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都平壤城·始稱朝鮮·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又名弓·忽山·又今於達·御國一千五百年·周虎王卽位己卯·封箕子於朝鮮·檀君乃移於臧唐京·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壽一千九百八歲."
이것의 내용을 요약하면, “위서(魏書)에 이르되 지금으로부터 이천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하였다.고(高)와 동시(同時)라 하였다. 고기(古記)에 이르되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있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계를 탐구하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 한지라 이에 삼부인세개(三符印三箇)를 주어 내려가서 (세상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려 삼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태백은 지금의 妙香山) 신단수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神市)라 이르니 이가 환웅천왕(桓雄天王)이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穀· 命·刑·善·惡 등 무려 인간의 삼백 육십 여사를 맡아서 인간세계를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그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며 늘 신웅(神熊)에게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신웅이 쑥 한 자래와 마늘 이십 개를 주고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날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되리라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이것을 받아서 먹고, 곰은 삼칠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아 여자가 되었으나 호랑이는 능히 기(忌)하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熊女)는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늘 단수(壇樹) 밑에서 아이를 배어지이다 축원했다. (환)웅이 이에 잠깐 변(變)하여 결혼을 해 주었더니 (웅녀가)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가로되 부르기를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이것은 ‘단군신화’의 대개의 골자이다. 이것을 본고 제 Ⅱ장에서 밝힌 샤마니즘의 종교현상의 전형으로 보고 그 내용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 작업은 바로 한국적 샤마니즘, 고대 한국인의 ‘믿음’형태를 살피는 일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샤마니즘의 공통된 의미, 그 구성체계의 의미표상단위는 셋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첫째로 하느님과 그의 강림신앙(降臨信仰)이고, 두 번째로는 지모신(地母神)에 대한 신앙과 종교적 이니시에이션의 표현, 마지막으로 천지부합(天地符合)과 창조신앙이다. 이와 같은 샤마니즘의 의미표상단위에 따라 상기에 인용된 ‘단군신화’의 ‘卷第一紀異第二古朝鮮條’를 분석하기로 한다.
① 하느님과 그의 강림신앙.
한국의 종교는 부권적인 하느님이 내려오신다는 신앙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북방 샤마니즘’의 공통된 특질인데, 남방 쪽으로 내려옴에 따라 - 농경문화가 정착됨(수렵문화에 역하여)에 따라 지모신에 대한 숭배가 생기게 되지만, 한국의 종교는 원초적으로 신의 강림에서 출발한다.
“환웅(桓雄)이 무리 삼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밑에 내렸다”(雄率徒三千·降於太白山頂·神檀下·)
신화에 보이는 하느님의 강림은 직접적인 내림이 아니다. 그의 아들이나 빛을 통해서만 내림을 표현한다. 여기서 환웅은 곧 그의 부(父), 환인의 간접적인 내림을 의미한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는 환인의 표기문제이다. 과연 환인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하는 문제인데, 그것에 대해 학설이 분분하나 본고가 참고한 자료에 의하면 광명(光名)을 뜻하는 존재로서 ‘환임’의 음(音)에 가까운 소리로 추측도 하고 있으며, 일연(一然)이 인도의 최고 신, 환인제석(桓因帝釋)이라는 명칭에서 가져 온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로부터 믿어오던 “우리네의 하느님 신앙을 제석신앙과 혼합하여 시대적인 표현을 한 것이 환인천신(桓因天神)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다시, 하느님의 강림을 설명하자면, 그 강림의 장소, ‘태백산’이라 하는 곳은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고 믿는 거룩한 산으로서 후(後)에까지 형성되어 산악신앙(山岳神仰)의 모태가 되며, 또 그 산꼭대기에 있는 나무, 신단수(神檀樹)는 신앙과 우주의 중심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신목신앙(神木信仰)을 잉태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네의 산악신앙과 신목신앙은 여타 아니미즘(animism)에서와는 달리 자연신(自然神)으로서가 아닌 하느님의 아들, 신이 강림한 성스런 산으로 숭배되며, 그것은 또한 혼돈(chaos)의 세계에 방향과 질서를 주는 중심점이기도 한 것이다. 또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빛(光)에 대한 믿음이다. 단군신화 속의 ‘환인’이라는 표현은 ‘환한 분’의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시의 빛·밝음에 대한 표기는 ‘백’자로 표현되었는데, 바로 신이 강림한 ‘태백산’은 밝산이라는 뜻이며, ‘밝’이란 박(光)·발(明)·불(火) 등으로 음의 변천이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고대인의 신앙인 산신신앙은 광명신앙(光名信仰)이며, ‘빛’에 대한 가치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러한 가치의식은 주몽신화 속의 해모수(解慕潄·해와 같은 분), 고구려의 시조를 ‘東明’이라하고 신라의 시조를 혁거세·불(弗)·밝(박) 등 표현으로 나타난다.
② 지모신에 대한 신앙과 종교적 이니시에이션(initiation)
북방 유목민의 부권적 신앙에 덧붙여 농경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생산신(生産神)·풍요의 신을 숭배하는 모권적 신앙 - 지모신에 대한 신앙이 한반도에서 형성되게 된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동굴 속에서 삼칠일간 빛을 보지 않고 忌했더니 여자의 몸이 되었다”(時神遺靈艾一炷·蒜二十枚曰·爾輩食之·不見日光百日·便得人形·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熊得女身·虎不熊忌而不得人身)
위 구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종교는 거룩한 절대자와 인간의 사이의 관계를 기초한다. 그런데 그런 관계를 위해서는 신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극복해야 했다. 농경문화에 정착한 고대 한국인들은 이러한 질적 차이의 극복원리를 동굴이라는 상징적 매개를 통해 표현하려 했다. “깜깜한 굴속에 드는 것은 죽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생명·생성 이전 태초의 카오스의 재현이기도 하다. 단군신화의 熊·虎의 入窟의 의미도 이에 준해 살펴질 만하다. ...(중략)... 재생, 부활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것들의 소멸이 필요하다.”
이러한 극복원리 즉 승화의 원리를 당시의 고대인들은 어두운 땅 속에 감금되어 죽어 없어졌다가 다시 생산적인 새 생명으로 살아난다는 알곡에서 믿음을 터득했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왜, 단군신화에서 동시입굴한 호랑이는 인간화의 소원을 성취하지 못했는가? 그것이 어둠이라는 재생의 원리를 충분히 겪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면, 그러면 왜 그 재생의 원리가 호랑이가 아닌 곰에게 수용되었는가?
그것은 당시의 농경문화 배경 때문이다. 엘리아드(M.Eliade) 식으로 곰을 해석하자면, 곰은 ‘달 동물’이다. 겨울에 모습을 감추고 - 죽음의 경지에 있다가 - 봄에 되살아나는 식물들처럼 곰이 재생하는 것이 흡사 기울어 사라졌다가 다시 둥굴게 재생하는 달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곰은 시베리아 전역에 걸쳐 사는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또한 레비 스트로스의 ‘야성의 마음’에 의하면 쑥도 아시아 일대와 북미 원주민 사이에서 여성의 풍요의 원리와 밀착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 고대인의 사유세계는 환웅의 천계원리(天界原理)에 웅녀의 풍요의 원리가 결합됨을 보여준다.
보다 ‘믿음’의 문제로 들어가면, 종교적 이니시에이션·종교적 이중탄생의 의미는 성속(聖俗)의 변증법이라는 차원에서 설명되어져야 한다. 분명 단군신화 속의 입굴 전의 곰은 한갓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아무리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인간과는 구별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러한 곰의 인간화가 신화 속에서는 가능하게 표현되었다. 곰의 인간화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해석을 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는 바, 필자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믿음’형성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종교적 차원에서 설명하려 한다.
종교상, 거룩한 신 앞에 인간 또는 그 밖의 생물은 속된 존재이다. 이런 미천한 존재가 어떻게 전지전능의 신과 합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샤마니즘, 한국적 믿음에서는 ‘동굴’, ‘알’등의 원리를 통해 자기부정의 매개를 거침으로 종교적 승화를 꾀하고 있다. 이것은 이 민족의 믿음형태 구축의 핵심이다. 이러한 발상은 또 다른 시조신화인 혁거세(赫居世) 신화에서 알영(閼英)이라는 인물의 변신과정을 통해 표현되기도 했다. 원래 새부리를 한 모습을 하고 태어난 알영은 북천(北川)이라는 강물에 목욕을 시킨 후 비로소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 되는데, 그것은 단군신화에서 보여준 ‘성속의 변증법’의 좀 더 세련된 표현인 세례(洗禮)의식인 것이다. 이는 샤마니즘에 있어서 샤만의 무병과정(巫病過程)과도 통한다. 샤만이란 존재는 ‘신내림(降神)’이 있기 전에는 하나의 속(俗)된 인간일 뿐이지만, 일종의 병적증세(巫病)를 거치고 나면 성스런 접신(接神)의 부름을 받는다.
이렇게 저마다 다른 종교적 이니시에이션 표현이 하나같이 공통된 일치점을 보이고 있음은 무얼 말함일까? 확실한 설명을 보태자면, 샤만의 방술인 가무가 바로 성스런 신과의 접신상태 - 엑스타시를 이루기 위한 ‘성속의 변증법’의 표현이라면, 여기서 우리는 고대 한국인의 ‘믿음’의 형태가 북방의 샤마니즘과의 연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③ 천지부합(天地附合)과 창조신앙
한국에 있어서 신화의 핵심은 하느님과 인간이 하나로 부합(附合)된다는 데에 있다. 신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인간이 승화(昇華)의 과정을 밟는 것은 하늘과 땅, 곧 하느님과 인간이 결합하기 위한 것이다. 단군신화에서는 이것을 신과 인간의 결혼으로 묘사했다.
우리는 앞서(前②항)의 언급에서 어떻게 성스런 신과 속된 인간이 부합하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러면 그들은 왜 이런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를 꿈꾸었을까? 고대인들이 가졌던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풍부한 삶의 창조에 있었다. 그것은 신령의 가호와 불안의 해소, 그리고 풍부한 생산에서 이루어진다. 현대와 같이 첨단과학문명 덕으로 얼마간 그 불안을 예측하고 해소 할 능력이 없었던 고대인들은 생사화복의 섭리를 주관하는 신과의 합일, 그 교통 속에서만 온갖 불안과 공포를 탈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이 가무의 제례의식을 신적조형(archtype)으로써의 신화에 맞추어 반복함은 바로 신화세계에로의 환원, 온갖 불안과 공포가 없는 엑스타시의 접신세계, 곧 풍부한 삶의 창조를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앞선 설명을 종합해 보면, 첫째 하느님의 아들이 산에서 강림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땅의 여신이 자기부정(自己否定)·죽음을 매개로 재생함으로써 성화(聖化)된다는 것이며, 셋째는 강림한 천신과 성화된 자신과의 결합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문화가 창조된다는 것이다.
Ⅴ. 결언.
우리는 위에서 샤마니즘이란 무엇인가, 더욱이 북방의 샤마니즘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았다. 그리고 한국적 샤마니즘이란 이름으로 우리네의 단군신화를 북방의 샤마니즘과 연관시켜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분석의 과정에서 주제가 되는 한국인의 원천적인 ‘믿음’의 형성이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 종교와 생활의 미분화를 보여 왔던 고대인의 사고형태가 바로 종교이고, 그것이 삶의 양식이라는 생각에 주목한다면 본고의 노력은 엄청난 논점이탈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현대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눈부신 성과를 이룩했지만, 이 땅에서 공통적으로 관류하고 있는 핵심은 그 근원에서 멀리 와 변형되고 개작(改作)되고 접목된 흔적은 있더라도 통시적(通時的)·공시적(共時的) 차원에서 불변하지 않는 것으로 남아 지금, 우리의 심상(心象)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러면 그 핵심은 무엇인가? 한없이 성스럽고 초월적인 신과 늘 불안하고 비루한 인간 사이에 교통을 여는 성속(聖俗)의 변증법(辨證法)에 있다. 성속의 변증법에는 ‘자기부정’과 ‘재생성’이라는 승화(昇華)의 계단이 있다. 여기서 ‘자기부정’이라 함은 존재론적 부정이 아니라 ‘자기반성’을 거친 창조적 존재의 탄생을 바라는 ‘재생성(再生性)’을 말한다. 멀리서 경외하며 가까이 할 수 없는 신을 세상의 중심인 밝산(太白山)으로 강림하게 하고, 고대인 스스로는 동굴의 어둠 속에 들어가 탈속(脫俗)의 재생을 거쳐 신인합일(神人合一)하는 과정은 자기 반성적인 토대 위에 화합의 우주를 세운 것이다. 달리 연역해 보자면, 단군신화에서 환웅(精神)과 웅녀(身)의 결혼은 곧 하늘과 대지의 부합이며,정신과 물질의 결합을 뜻한다. 그 결과로 단군왕검이라고 하는 생명이 탄생했는데, 그것은 카오스(혼돈)의 세계에서 코스모스(질서)의 세계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는 어느날 불식간에 허공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를 잉태하게 하는 정신(밝산)과 물질(大地)이 교호(交互)하고 화합하여 문화가 만들어 지고, 그 생성물은 생성소멸의 자연법칙에 의해 걸러지게 된다. 일광(日光)에 조응(照應)하는 대지의 씨알처럼 '죽어서 태어남'은 온전히 자양분 몫만이 아니었다. 고대 한국인의 '믿음'의 에너지는 철저한 자기 부정에 있었고 그 부정의 어둠에서 밝은 창조의 빛을 보았다. 하늘은 멀리 있었으나 절대 멀리 있지 않았고, 대지는 평평했지만 결코 낮지 않았다. 현재 우리는 개혁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개혁(Reform)은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반성(Reflection)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반성은 창조적인 자기부정으로 이어진다. 자기부정에는 엄청난 재생적 고통이 따른다. 창조적 부정은 고대 한국인이 세상의 중심에 서서 나라를 연 힘이자 우주의 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