錦城曲을 다시 보다.
나천수
출처 : 林白湖集卷之二 / 七言絶句
<1> 영모정 앞 시비 글
○인터넷 게재된 번역
錦城兒女鶴橋畔。/금성의 아녀자들 학다리 가에서
柳枝折贈金羈郞。/버들가지 손수 꺾어 임에게 드린다오.
年年春草傷離別。/해마다 봄풀은 이별의 아픔인가.
月井峯高錦水長。/月井峯은 높은데 錦水의 물 멀어요.
韻 : 郞, 長
<2> 필자의 재벌번역
錦城兒女鶴橋畔。/금성의 아녀자들이 학다리 가에서
柳枝折贈金羈郞。/버들가지 꺾어 금장식 말을 탄 나에게 보내네.
年年春草傷離別。/해마다 춘초(春草)와 헤어지려 하니 근심이 되는데
月井峯高錦水長。/그녀가 있는 학다리와 내가 사는 회진 사이에 月井峯은 높고 錦江은 멀다오.
◆시의 음미 : 시 글만 보면 남녀 사이에 연정을 느끼게 하지만, 2연의 金羈郞은 문과 과거 급제하여 금장식을 한 말을 타고 온 林悌 자신을 지칭하니, 이때 29세 때로 이미 결혼하여 자녀를 둔 몸으로, 기녀를 좋아하고, 학다리 아녀자와의 연분의 시를 다만 백호공의 성격이 호탕하다고 평가할 것인지는 의심이 든다.
제3연과 제4연은 학다리 아녀자가 있는 가칭 春草亭이란 술집에서 春草라 불리는 妓女와 막상 헤어지는 근심 속에 과연 춘초라 불리는 학다리 아녀자와 白湖 자신이 사는 會津 사이네는 月井峯의 마재(馬峙)를 넘어야 하는데, 마재가 있는 월정봉은 높고, 회진 앞으로 흐르는 금강(錦江)까지는 거리가 먼데, 과연 학다리 아녀자가 찾아올 것인지, 아니면 白湖 내가 다시 會津에서 학다리로 찾아 갈 것인지에 그것이 문제였다.
《서경》 〈순전(舜典)〉의 “시는 자신의 뜻을 표현한 것이요, 노래는 그 말을 길고 짧게 조절하며 늘인 것이다.〔詩言志 歌永言〕”라고 했다.
그러므로 처자가 있는 몸으로 詩言志했으니, 다른 무슨 말로 변명하겠는가?
후세 사람들은 오로지 林白湖의 호탕한 성격 탓이라고 미화하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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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門先生文集卷之二 / 詩○七言絶句
과거〔진사시〕에 함께 합격한 이헌 김선(而獻 金璇)이 임자순(林子順/林悌)의 향렴체(香奩體) 절구 1수를 나에게 말해 주었는데 “금성의 아가씨들 학다리 부근에서 버들가지 꺾어 임에게 드린다네. 해마다 봄풀은 이별에 상심하는데, 월정봉은 높고 영산강 물은 길게 흐르네.” 이 부분은 고전 번역원 번역을 그대로 옮겨 썼다.
이다.
붓을 잡아 그 운으로 절구 두 수를 짓다.
〔同秊金而獻。以林子順香奩體一絶語余云錦城兒女鶴橋畔。柳枝折贈金羈郞。年年春草傷離別。月井峰高錦水長。揮筆次其韻。二絶 〕
<제1수>
江畔誰家浣紗女。/강가 어느 집인들 여인네는 비단을 빠는데
江頭何處冶遊郞。/강가 나룻 터는 어느 곳인들 주색에 빠져 방탕하게 노는 자뿐이네.
臨江一別遠於水。/강물 굽어보니 한번 헤어지면 강물보다 멀어지는데
花搏玉窻春晝長。/꽃 이파리가 옥창(玉窻)을 두드리는 봄 낮이 길기만 하네.
<제2수>
三疊陽關一掬淚。/삼첩 양관(陽關)에 한줌의 눈물이 흐르는데
爲來江畔送阿郞。/강가에서 아랑(阿郞/新郞)을 보내고 돌아오겠는가?
莫將錦水方離恨。/바라건대 금강 물이 바야흐로 이별의 恨이라 하지 마소
錦水安能萬里長。/금강 물이 어찌 능히 만 리나 멀다 하는가?
韻 : 郞, 長
〇참고자료
1. 林悌 : 1549-1587,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풍강(楓江)·소치(嘯癡)·벽산(碧山)·겸재(謙齋). 아버지는 절도사를 지낸 임진(林晉)이다.
1576년 생윈시 합격, 1576년 진사시 합격, 1577년 문과 亞元
2. 石門先生 : 정영방(鄭榮邦,1577-1650)의 호가 石門임. 1605년 진사시 94/100로 합격
3. 金而獻 : 金璇(1568-1642)의 字, 1605년 진사시 32/100로 합격.
백호보다 20세 나이가 어리니, 분명 임백호의 주색에 대한 호탕한 성격을 알고, 그 시 한수를 동방합격자 경상도 안동에 사는 정영방에게 「금성곡」 시를 보내 주었다. 그래서 정영방 자신의 문집〔石門先生文集〕에 「금성곡」이 수록된 이유를 서문으로 쓰고 「금성곡」 시문도 올리면서 차운시 2수를 지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