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4일(음력1월4일),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맞이하면서 비대면 「카톡」을 통해 한자 해설연습을 다시 재개 하겠습니다.
뜻글자 한자를 소리글자 우리 글로 번역하는데 쉽지는 않으나
지속적으로 3년, 6년, 9년 정도 접하다 보면 내공이 쌓이게 됩니다.
콩나물 시루에 물 부어 다 흘러 빠져도 콩나물은 어느새 자라 있듯이
매일 조금씩 접촉을 해야 합니다.
우리 선조가 쓴 한자의 글은 중국 글이 아니라 우리 말 입니다.
우리 말을 다만 한자로 썼을 뿐입니다.
한자의 문장은 모두 붙여 써져 있기에 이를 한 문구씩 끊어 해석하려면
표점(標點) 즉 구두점을 찍어야 하는데, 이 문제도 내공이 쌓이면 점점
눈에 들어옵니다.
기존에 번역된 글을 재벌번역 해보면서 번역의 테크닉을 늘려 가야 합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는 「나주목 선생안」을 기존 번역물처럼 보이도록
표점을 찍어 해설 문장을 나열했으니, 수강하신 분은 절차탁마(切磋琢磨)의 발전이 있기를 기대하며,
설강자 본인도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발전을 도모하겠습니다.
-비대면 카톡 설강자 나천수 올림-
*한자 관련 인터넷 사이트
①https://hanja.dict.naver.com/#/main
②http://sillok.history.go.kr/main/main.do
③https://db.itkc.or.kr/
◆ 역사적으로 나주라는 지명 등장
(1)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제5, 제8 피은(避隐), 물계자(勿稽子/신라 나해왕 때 인물) 〉 ‘보라국(保羅國) 등 8국이 변경을 쳐들어오다’에서
보라국(保羅國)은 ≪삼국사기≫ 신라본기나 열전 물계자(勿稽子)조에 나오는 포상팔국의 내침 기사에서 나타나 있지 않고 본문에만 기록되어 있어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삼국유사≫ 본문에 보라(保羅)의 주(疑發羅 今羅州)에 의거하여 지금의 나주 지역에 있었던 국가로 비정하기도 한다.
≪東國與地勝覽≫ (本百濟發羅郡[一云通義] 新羅改錦山郡[一云錦城]:권35 羅州牧 建治沿革條)에 의거하면 백제의 발라군(發羅郡)이 신라 통일 후 錦山郡(錦城)으로 불리다가 왕건이 이 지역을 점령한 다음부터 나주(羅州)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나주는 거리 상 당시 신라와 너무 떨어져 있어서 固城 부근의 保寧鄕(≪東國與地勝覽≫ 권32 固城縣 古蹟條) 지역에 있었던 국가로 추정하기도 한다.
(2) 고려사 > 卷三 > 世家 卷第三 > 成宗 8年 > 4월 >
여름 4월 임술 교서(敎書)를 내려 말하기를,
“내가 바야흐로 학교를 일으켜 나라를 다스리고자 한다. 스승[函丈]이 〈가르칠〉 곳을 크게 열고 그들을 공경할 사람을 널리 모아 전장(田庄)을 주어 학업을 익히게 하며 문장에 능하고 박학(博學)한 이를 보내 스승으로 삼게 하고자 한다. 해마다 갑을과(甲乙科)를 행하여 뛰어난 인재를 구하고 날마다 숨어사는 선비를 찾아 걸출한 인물을 기다릴 것이며, 박식(博識)한 선비를 힘써 얻어 〈그들에게〉 나의 정치를 돕게 할 것이다. 진군(進軍)할 때는 게으르지 않으며 어진 이를 기다릴 때는 피곤함도 잊는 법이다. 그러나 쇠털처럼 공부하는 자는 많으나 기린의 뿔처럼 이루어지는 인재는 매우 적다. 헛되이 국학(國學)에 이름만 매어 놓고 시험장에서 재주를 겨루는 이는 드무니, 나는 정사를 보다가도 생각이 엉겨 있으며 자나 깨나 걱정한다. 요즈음 해당 관청에서 천거하여 올린 사람들의 이름을 살펴보니, 오직 태학조교(太學助敎) 송승연(宋承演)과 나주목(羅州牧)의 경학박사(經學博士) 전보인(全輔仁)이 〈학생들을〉 이끌어 잘 도와서 학문을 널리 닦으라는 공자(孔子)의 뜻에 합치되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아서 내가 학문을 권장하는 뜻에 들어맞으니 마땅히 그들을 발탁하여 칭찬하는 은혜를 더하여 특별하고 두터운 총애를 보이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3) 고려 개국 918년
983년 고려 제6대 왕 성종 때 나주목 지명이 등장하니 아마 이때부터 나주목사가 부임하여 고려 멸망 1391년까지 약 400여년 간에 대략 200명 이상의 나주목사가 부임하였겠지만 기록이 멸실되어 나주목사 명단을 모두 찾아낼 수 없다.
☛고려사를 조선 1451년(문종1)에 공조판서 집현전대제학 지경연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 정인지가 우두머리가 되고
수사관(修史官)은 정인지(鄭麟趾) 김조(金銚) 이선제(李先齊) 정창손(鄭昌孫)
신석조(辛碩祖) 최항(崔恒) 노숙동(盧叔仝) 이석형(李石亨) 신숙주(申叔舟)
최덕지(崔德之) 어효첨(魚孝瞻) 김예몽(金禮蒙) 김순(金淳) 양성지(梁誠之)
이예(李芮) 김지경(金之慶) 김윤복(金閏福) 이극감(李克堪) 윤기견(尹起畎)
박원정(朴元貞) 김명중(金命中) 조근(趙瑾) 홍우치(洪禹治) 예승석(芮承錫)
윤자운(尹子雲) 이효장(李孝長) 이인전(李仁全) 유자문(柳子文) 전효우(全孝宇)
김용(金勇) 한서봉(韓瑞鳳) 오백창(吳伯昌)이 찬진하였다.
☞이중에 신숙주(申叔舟)는 나주 출신, 최덕지(崔德之)는 영암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