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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
좋은 자리, 좋은 곳, 그곳에 있노라면.
‘형이 그곳에 있었으면…’
사람의 죽음, 그것을 시간 속에서 잊어가는 산자의 야속함이 실감나는 일상들입니다.
형이 없어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가고, 형이 없어도 창흥노조의 선거는 치뤄졌습니다.
힘이 들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형에게 기도를 합니다.
잘 돌봐달라구. 저에게 용기와 힘을 달라구.
하루하루 나의 삶이 세상과 타협하려고 할 때, 나의 생명이 무너져감을 느낍니다. 이러다 무너지지는 않을까.
처지와 조건을 담대하게 넘어설 수 있는 용기를, 형이 못한 일들을 우리가 책임감을 자기고 일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가을이예요.
좋은 형에게, 가을 편지를 써주지 못한 우리의 게으름을 용서해요.
시간이 가면서 형이 더 우리의 마음 속에 새록새록 살아 숨쉬기를….
형의 얼굴과 모습, 그 생각들, 그리워지네요.
- 가을 앞에서
어느날 문득 시화공단을 가던 중에
너를 보았다
네가 아니지만 걷는 뒷모습이 어찌 너를 닮았던지
이제사 네가 죽었구나 싶다
시화 갈때마다 네가 생각나더구나
그래서
네가 보고잡아서 왔다
경로랑 정숙이랑 같이 왔다
올 때는 보고 싶었는데
막상 너 보니까
또 별로다
또 이 자리를 뜨면 보고 싶겠지
나는 9월 7일 딸을 낳았다
“씨발 지금 미국놈 헬기가
바로 머리위로 지나갔다“
내 딸 이름은 가은이다
나 열심히 살란다
이번 주는 휴가를 내고 왔다
올 겨울은 이번이 마지막 오는 날이
되지 않을까 싶다
눈비 오고 추운 올 겨울 잘 지내자!
또 올게!
- 너 친구 동우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생일 케잌과 소주 한병.
미역국도 준비하려고 했는데… 못했어요. 미안해요.
살아생전 생일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는데, 선물한번 제대로 못했는데... 뒤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일까요.
늘 받기만 했던 나. 늘 주기만 했던 순조씨. 아니 우리 모두에게 주는 걸 좋아했던 순조씨.
벌써 가을이에요. 조금 있으면 겨울이 오겠죠?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고 가는데, 삶이 고단한 사람들은 그래도 겨울 보다는 여름이 더 낫다는데...
가끔은 순조씨 생각에 가슴이 메이고 멍해지고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몇 번을 아니 수십번을 반복하고 있어요.
시간이 더, 아주 더 많이 지나면 조금씩 괜찮아지겠죠?
순조씨, 생일을 축하해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뭐라고 해야할지...
그래도 축하해요.
다들 잘 살고 있어요. 창흥 선거도 잘 되었고, 그리고 크고 작은 소식들이 많이 있어요. 여기 이렇게 혼자 있어도 항상 우리를 지켜봐 주고 닦달도 해주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순조씨, 다시 올때까지...
오늘 친구 모임이 있어 가평으로 가던 중 순조형 보고 싶어 찾아 왔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벌써 시간이 흘러 추운 겨울이 왔네요.
형 있는 곳은 춥진 않은지 궁금하네요.
형 보고 싶네요.
순조형, 형 덕분에 저 상집간부가 되었어요.
형이 생전에 저한테 이야기했던 말들이 기억나네요.
형이 못이룬 민주노총 가는 길, 동생들과 형들과 노력해서 꼭 가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형.
막상 펜을 잡으니 할말이 떠오르지 않네요.
다음에 시간 있으면 다시 한번 올께요.
형 잘 있어요. 미안해요.
죽음을 넘어 우리의 삶속에 되살아나리니
해방 오월, 오늘
우리는 눈물로서 그대를 부릅니다.
순조형, 순조야, 순조 이놈의 자식아!
언제나 그랬듯
구리빛 피부에 환한 그대의 얼굴은
사무치는 그리움입니다.
잔잔한 사투리속에 배어있는
사람냄새는
우리를 일깨우는 따스함입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왜 몰랐을까
함께 한다는 것마저 욕심이 돼버린 지금
소중하고 소중한 그대 이름을 불러봅니다.
해방 오월, 오늘
우리는 눈물로서 그대를 불러봅니다.
순조형,순조야, 순조 이놈의 자식아!
한생을 사람을 위하여 쉼없이 달려온 그대를 불러봅니다.
순조형,순조야, 순조 이놈의 자식아!
무소유의식을 생활속에서 실천하며
노동자의 강단진 얼굴로
치열하고 치밀하게
굴종을 강요하는 현실과 투쟁하며
오로지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중을 위하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한 해방을 위하여
거침없고 거짓없이 살아왔던
진달래같은 순수의 몸뚱아
유채같은 눈부신 의식아
실낱같은 희망을
희망이 아닌 현실로 보여주었던
진짜 노동자를
부르고 또 불러봅니다.
순조형,순조야, 순조 이놈의 자식아!
그대의 삶과 같이
우리의 삶을 살겠습니다.
척박한 세상 갈아 엎는
투철한 전사로서
언제나 그대와 함께하리니
그대여
순수의 이름이여
죽음을 넘어 우리의 삶속에 되살아나니
보아주소서
그대여
전사 김순조여
그에 대하여 ....
나의 모든 것을 대중에게 주련다, 대중에 대한 아낌없는 믿음과 헌신
2001년 1월 민주노총 가입을 위해 노동조합 총회를 열었다. 김순조 동지는 이 일을 앞두고 휴일도 마다하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저녁 늦게 까지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18표 차이로 부결이 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위원장과 김순조 동지는 옥상에 올라가 엉엉 울었다고 한다. 서로 얼싸 안고 “우리가 1명이라도 더 만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찬성표에 찍어준 동지들이 얼마나 실망을 할까, 하며 대중을 먼저 걱정을 하고 자기 반성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대중조직의 간부의 깨끗하고 숭고한 모습은 아직도 민주노총 가입을 마무리 짖지 못한 노동조합에 김순조 동지의 뜻이 살아 있다.
노동해방과 자주, 민주, 통일의 한길
2001년 시화 공단의 노동조합 건설 투쟁에 동지는 쌀 한가마를 어깨에 매고 달려 갔다,
투쟁 사업장에 언제나 제일 먼저 달려가는 동지,
평상시 조용히 이야기 하다가도 노동, 통일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고 더듬거리면서도 열변을 토하던 모습과 시원스럽게 웃어젖히던 웃음소리, 욕지기 소리, 순박했던 미소......
시원스럽게 웃어젖히던 웃음소리, 욕지기 소리, 순박했던 미소......
김순재 (동생)
형이 떠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형과 같이 살면서도 형의 삶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동생이라고 마냥 투정만 한 것 같고 속상한 이야기도 너무도 많이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선을 보라고 하면 무조건 싫다고 대답하는 형을 보면 화가 나서 “마음에 있든 없든 부모님 생각해서 선을 좀 보라”고 형 가슴에 못 박았고,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먹고 나서 아침마다 욕지지 하는 소리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 속이 상해 “웬만한 자리는 좀 빠지고 그럴 시간이면 우리 가족 경조사에 관심 좀 가지라”고 볼멘 소리도 많이 했네요.
하지만 글쓰기, 말하기등 부족한 점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한편으로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형한테 잘못한 게 너무도 많아서 그런지 요즘도 잠자리가 편치는 않네요.
갑자기 형이 나타날 것 같기도 하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요즘도 집에 들어서면 문득 문득 들리고 떠오르네요. 평상시 조용히 이야기 하다가도 노동, 통일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고 더듬거리면서도 열변을 토하던 모습과 시원스럽게 웃어젖히던 웃음소리, 욕지기 소리, 순박했던 미소......
형이 떠난 뒤, 형이 나에게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이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 만하다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다만 “노동운동도 사람이 한다며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라는 이 말 한마디만 생각이 나서 그 말만은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은 참 욕심도 많네요. 살아 생전에 그렇게 투쟁하면 됐지 죽어서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노조 전임자 산재 문제로 투쟁을 하고 있네요.
이제는 그만 손을 놓고 함께 계신 여러 열사님들과 즐겁게 편히 쉬었으면 합니다.
형이 그렇게도 꿈꾸었던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과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 될 때 까지 내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고 늘 함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순조형의 통일학교 졸업을 축하합니다.
노동자 통일 실천단 단장 서기율
순조형, 아니 김순조 동지
형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안네요.
주택 사거리도 그대로 있고 형이 즐겨 찻던 한벗회 사무실도 그대로 있는데
형이 좋아하던 동지들도 그대로 있는데 형이 특이한 웃음을 지으면서 “ 뺀질아” 하면서 달려올것만 같은데.....
순조형!
왜 이리도 가슴이 답답한지
오늘이 통일학교 졸업식이야
형 때문에 한 주 연기되었어
가장 빛나고 좋아해야 할 순조형이 보이지 않네요
순조형! 기억나 이번 통일학교 수련회때 뒷풀이를 마치고 못내 아쉬워서 새벽에 낙지내기 공차기를 했던 기억, 낙지가 없어 회를 가득시켜 먹고 돈이 모자라 항시 그랬듯이 형이 카드로 계산했던 일 말이야. 형 한테 빚도 많이 졌는데 언제 갚으라고.....
왜 형은 바보 같이 남들처럼 뺀질거리기라도 좀 하지, 힘이 들면 힘들다고라도 하지
항상 형은 웃으면서 묵묵히 남들이 하기 싫은 일만 골라서 했지, 조금이라도 힘들다고 내색을 했었으면 이렇게 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순조형!
형은 북한에 그리도 가고 싶어 했는데, 5.1절 통일대회 갔다온 동지들을 그렇게도 부러워했는데.....
북에간 소식을 듣기위해 늣은 밤 마다하고 달려와 함께 북한 술 먹으며 부러워했는데,
이제 마음 훌훌 털어 버리고 모든 철의 장막 거둬내고 북의 동포 만나 얼싸 안고 원 없이 한번 울어보오. 그곳에 어여쁜 처자 만나 결혼도 하고요.
순조형!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창흥정밀 노동조합에 민주노조를 굳건히 세워 민주총에 가입도 하고 노동자들 앞장서서 조국통일도 해야하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노동해방도 앞당겨야 하는데....
하지만 너무 걱정 마소
형이 그 동안 실천투쟁을 통하여 일구워 놓은 사람들이 현장 곳곳에 많이도 있더군요.
순조형!
너무 슬퍼하지 마소. 형이 지나간 자리 곳곳에 민주노조의 새싹이 조국 통일의 새싹이 노동 해방의 새싹이 파릇 파릇 돋아나고 있어요.
부디 편히 쉬고 억압과 착취가 없는 평등세상, 노동자가 주인되는 노동해장 세상, 조국의 완전한 자주, 민주, 통일된 통일세상에서 다시 만납시다.
순조형의 통일학교 졸업을 축하합니다.
순조가는 길에
당신이 마지막 가는 길에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당신이 가는 길에 꽉 다문 입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온 몸이 으스러지고 피가 온 사방으로 튀길깨 당신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당신의 목숨보다 귀중한 족구장 하얀선위에 당신은 죽고 말았다.
당신은 끝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끝내 아무말도
우리는 모른다
임투 승리를 위한 족구대회의 족구장 선이 당신의 목숨보다 소중한지를
우리는 모른다.
당신이 왜 노동자의 당당한 삶을 위해 하얀선에 목숨을 거는지를 우리는 모른다.
당신이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인 세상을 붓으로 하얀선을 그리며 목숨을 걸었는지를
그러나 우리는 이것 하나는 안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당신은 너무도 아름다운 너무도 아름다운 사람!
김순조를 안다.
2001년 5월 22일
안양
“수많은 선배 노동자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투신으로 분신으로 나는 그렇게는 못해도
내 소신껏 몸으로 라도 열심히 해야 할 것 아니냐고“........
형 미안하이 하지만 이것만은 하늘에서 지켜보이
산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받친 형 소원 하나 못 들어 주겠소
형 하늘에서 꼭지켜 보이
형의 노동자를 위한 민주투쟁 민주노조
그 소원 우리가 꼭 들어 줄께
순조형
하늘에서 고이 잠드소서
순조형을 떠나보내며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그대의 환한 웃음 영원히 가슴속에 남으리
형이 떠난던 아침
그날도 형은 우리들에게 “ 확대간부 회의 있습니다. 야! 내일 뭐하냐? 광주순례 가자, 오늘은 통일학교 졸없식있는 거 알지? 꼭 와라” 언제나처럼 소리없는 웃음 활짝 지으며.....
그 몇분 사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지도 말았네요. 광주순례 가지 않겠다고 버팅기다, 통일학교 졸업식 갈까 말까 망설이다 뒤돌아서는 형의 뒷모습을 보며 “ 간다도 말이나 해줄걸” 속으로 후회했었는데......
창흥정밀 앞마당에 뜯어진 족구라인 다시 그리며 형은 무슨 생각을 했나요?
“왜 난 사람 조직을 못할까? 올해 임투는 어떻게 하지? 5.18 광주순례는 ? 그리고 통일학교 졸업식은 모두 올까? ”뜯어진 족구라인은 꼭 그때 그리지만 않았어도 되었을텐데
하필이면 왜 그때 그 자리에 형은 있었는지
그 무거운 지게차가 형은 짖줄렀을 때 서른 일곱해 치열하게 살아온 순조형은 여전히 임투걱정, 광주순례 걱정, 말 안 듣는 후배놈 걱정, 그리고 고향집 늙으신 부모님 얼굴 잠깐 스쳐갔겠지요. “이렇게 죽을순 없어, 설마 내가 이렇게 죽는 것은 아니겠지, 아지까지 못다한 일이. 해야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순조형!
형이 죽어간 공장에 처음으로 와 보았어요. 조합사무실에 형이름 석자 아직 붙어있데요.
사무국장 김순조
형이 붙여놓은 통일학교 포스터, 대우자동자 해외매각 반대 포스터, 책꽃이에 꽃혀있는 노동의 새벽, 그리고 책위에는 이름표만 덩그러니 남아있데요. 형 얼굴 그 자리에 없었지만 조합사무실에, 공장 앞 마당에, 수많은 부품더미 사이 사이에 형의 모습보이데요.
바쁘게 뛰어다니며 방긋 한번 웃어주던 형!
사람들은 내일 형의 영결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그 보기싫은 지게차와 형이 그리다만 족구라인, 공자의 불빛은 이 밤에도 여전히 빛나는데......
순조형!
몇해전 사람들과 함께 구례에 들른적이 있었죠? 집앞에 노랗게 핀 산수유꽃이랑, 어머님이 우리 귀한 둘째아들 왔다고 마당으로 뛰어나오시며 집에 있는 모든 음식 다 장만해 한 상 차려주셨던일, “ 우리 순조 장가 좀 보내주소 ” 그 순박한 어머님의 모습이 순조형의 모습인가봐요.
형이 못 다 이룬 꿈은 결혼도 아니요, 그 잘난 반장, 과장 자리도 아니란걸 잘 알잖아요.
짤린 손가락 부끄러워하지 않고 더 당당한 노동자로 역사에 자랑스럽게 남는 노동자로 거듭나기 위해 늘 노력했죠? 그렇게 치열히 살면서도 “ 난 왜 이렇게 못하는게 많을까?
부족한게 많은 놈이야“ 하며 멋적게 웃던 형,
순조형!
일상에서 형은 항상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궂은일 마다않고 사람들 속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속에서 늘 함께하는 그러나, 부드러운 웃음속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이 투철한 청년이였죠. 그렇게 항상 역사와 함께 흐르고자 하는 사람이였지요.
수 많은 해고 투쟁속에서도 형을 일으켰던 힘은 무었이었을까요?
“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동지들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
그 짧지만, 결코 순탄치 않았던 형의 생애가 이제서야 빛을 볼수 있을까 했는데.....
순조형, 형은 우리곁을 떠났지만, 서른 일곱해를 살았던 형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많답니다. 사람의 생이란, 때로는 서른 일곱 짧은 생애도 영원을 담아낼수 있는 것은 비록 한 사람의 생이었지만, 그 안에 천만노동자의 꿈과 칠천만 계레의 염원을 담아낼수 있다는 것을!
형 보세요.
여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형의 아름다운 삶이 새겨져 있네요. 저렇게 곳곳에서 수많은 순조가 웃고 있네요.
해맑던 웃음, 살아생전 모습 그대로 우리곁에서 지켜봐 주세요.
형이 이루고자 했던 민주노총의 꿈도, 통일세상의 염원도 평등세상의 희망도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한 맹세로 새겨 형이 살았던 두배, 세배의 힘으로 살아갈 것을 약속할께요.
이제 눈물을 닦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투쟁의 구호로 형을 보내드립니다.
김순조 동지의 뜻을 이어 노동해방 앞당기자!1
김순조 동지의 염원이다. 노동자가 앞장서서 통일조국 건설하자!!
2001년 5월 21일
형의 영원한 동지 세경 올림
순조 형의 1주기를 맞이하며
형!
형이 저 하늘 위로 올라 간지도 벌써 1주기가 다가오고 있네요.
그리고 형이라고 불러 본 것도 1년이 되었네요.
육신은 썩어 없어져도 형의 마음은 아직도 살아있겠지요.
5월이면 생각나는 형처럼요.
그리고 하늘에서 꾸준히 이 세상을 지켜보면서 아쉬움도
어느 때는 즐거움도 가지고 있겠지요.
형이 누워있는 그곳에도 이제는 새파란 잔디가 살아나고 있겠지요.
작년 추운 겨울의 날씨도 잘 견디었겠지요.
하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네요.
노동자가 잘사는 일도, 조국 통일도 변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네요.
노조 사무실에 걸려있는 형 사진 웃음도 변하지 않네요.
변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형의 죽음을 자꾸 잊어가는 것 같네요.
미안하네요.
형!
하늘에서 보는 지금 현실을 형과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다시 창흥 정밀은 임. 단협에 들어갔고 5월 18일이면 창흥정밀에 근무하는 분들은 순조형을 생각하겠지요.
형!
부디 하늘 위에서 잘 지내시기를.....
이천 이년 오월 십 팔일
신우준 올림
구치소에서 보낸 편지
갇혀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새로운 변화를 준 것 같습니다.
같인자의 반성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과 소중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살아 있기에 죽어있는 형과는 이제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겠죠.
순조형이 떠나던 그날 아침, 그 당시는 나에게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 위원장님으로부터 창흥에서 호출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조형이 우리 상황이 궁금해서 호출을 했는가 보다고 생각하고 무심히 넘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동우 형으로부터 순조형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게 믿어지지 않고 그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혼자서 구석에서 쳐 박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순조형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전화가 우리 동아였습니다.
그런 순조형이 가는 길을 나는 체포영장 때문에 보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밝고 온화한 모습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해야 될 일에 대해 묵묵히 해나가던 형의 모습이 다시 한번 나의 가슴속에 그려집니다.
그런 형의 모습이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형이 미처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동아에서 싸우겠습니다.
사랑하는 순조형!
구치소에서 나가면 마석에 꼭 갈께요.
그때 형 나랑 소주 한잔하자 알았지
구치소에서 동진이
잘가게 친구
2001년 5월 21일 마석 모란공원 하관식
동지의 오랜 벗 김동우
순조야 잘가그레이
이젠 너랑 작별을 해야하나 보다.
너와 함께 나누었던 모든 일들 가슴에 묻고
이젠 정말 너랑 작별을 해야하나보다.
노동조합과 조국에 다 하지못한 일들은 이젠 모두 잊고 편히 눈 감그레이
순조야! 동지야! 친구야!
평상시 너처럼
죽을 때 아무말 없이 갔지만 우리는 안다.
죽을 때 까지 마무말 없이 갔지만 우리는 안다.
굳게 다문 너의 입이 몸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너의 죽음을 헛되이하지 않겠다.
꼭 좋은 세상 이루도록하겠다.
너의 이름에 남겨진 모든 일들을 우리에게 남기고
고이 고이 잠들어라
가장 편하게 잠들어라.
순조야!
정말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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