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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9:1
여기 이른바, "주께서 단 결에 서서" 천사를 시켜 "성전의 기둥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고, 또 그 기둥이 "부서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심은, 종교를 쇠망케 하시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전멸될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이 그의 말씀대로 바로 행하지 않을 때에는 그의 교회를 파멸시키기도 하신다. 계 2:5를 보면, 교회가 회개치 않으면, 주님께서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고도 하셨다.
암 9:2-4
이 말씀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죄인이 하나님을 피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진술한다. 이와 같은 죄인은 가장 깊다고 생각되는 "음부"에서도 피할 수 없고, 가장 높다고 생각되는 "하늘"에서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스라엘 국토에 있어서는 높은 곳이라고 생각되는 "칼멜산"이나 깊은 장소라고 생각되는 "바다"에서도 그는 자기를 숨기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라는 말씀은, 바다에 있는 고래나 상어 같은 물짐승에게 물리울 것을 가리킨다.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바다로 도망하다가 큰 고기에게 삼 키운 것 같은 것이 여기 한 실례(實例)가 된다. 여기 "뱀"이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나카쉬이니, 여기서는 육지의 뱀을 이름이 아니고 상어와 같은 큰 물고기를 가리킨다. 그리고 위에 관설된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 비록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다고 하는 이방 땅에 사로잡혀 갔다 할지라도, 거기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다른 데와 마찬가지이므로 그는 벌을 받는다(시 139:1-12).
하나님은, 어디서든지 인간의 범죄하는 것을 알고 계시며 벌할 자를 벌하실 떠에 그의 시벌 대상(施罰對象)이 된 자는 결단코 피하지 못한다. 비록 이 세상 세력을 잡고 있어서 모든 불행을 물리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시벌 대상이 된 자는 그 벌을 피할 수 없다. 로마의 아우렐리 안(Aurelian)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라는 조서(詔書)에 사인하려고 붓을 들 때에 그 손의 힘 줄이 마비되어서 손을 움직이지 못하여 그 뜻하였던 대로 싸인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암 9:5
주 만군의 여호와는 땅을 만져 녹게 하사 무릇 거기 거한 자로 애통하게 하시며 그 온 땅으로 하수의 넘침 같이 솟아 오르며 애급 강 같이 낮아지게 하시는 자요 - 여기서부터는 위에 벌써 진술된 이스라엘에게 대한 심판을 행하실 분이 어떠한 분임을 보여준다. 아모스도 그분이 천변(天變)과 지게(地災)를 나타내시는 위대하신 분임을 말하여 준다. "땅을 만져 녹게" 한다는 것은, 홍수로 땅의 표면을 없애 버리시는 것을 가리킨다. "온 땅으로 하수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강 같이 낮아지게 하심"은, 역시 홍수로 말미암아 온 지면에 물이 높이 올랐다가 생명과 재산을 휩쓸어 가지고 강수(江水)로 내려감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수재(水災)는, 옛날에 있어서 인류를 사정없이 멸절시키는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역사는, 이스라엘에게 대한 그의 심판을 잘 비유한다.
암 9:6
그 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다 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니 그 이름은 여호와 시니라 - 이 구절 말씀은 하나의 시적 표현으로 되어 있다. "그전을 하늘에 세우신"다 함은, 하늘에 드리워 있는 구름들이 여러 층계로 되어 있는 것이 마치 전각과 같이 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실상 공중에 있는 구름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조화(造化)는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구름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종종 여러 가지로 말씀하신다. 시 18:11에 말하기를, "저가 흑암으로 그 숨는 곳을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라고 하였고, 또 시 104:3에는 말하기를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라고 하였다. 이렇게 성경 기자들은 풍운(風雲)이나 기타 자연 현상에 관하여 하나님의 경이(驚異) 로운 역사를 극구(極口)로 찬송한다. 이것이야말로 성령의 감동에 의한 바른 관찰에서 그리 한 것이다. 오늘날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온 글렌(Gienn) 중령(中領)이나 카펜터(Carpenter) 소령(少領)이 본 대로 태양과 지구와 운무(雲霧)가 말할 수 없이 장관(壯觀)인 것이 우리들에게 알려져 있다.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이것도 궁창과 땅과의 관계를 심미학적(審美學的)으로 본 시각 표현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양자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따질 것은 아니다. 궁창이 아취(arch) 형(形) 혹은, 반원형(半圓形)으로 땅에 연접한 것이 마치 그 기초를 땅에 둔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은, 궁창과 땅과의 관계가 저렇게 아름답게 보임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를 가르쳐 준다. 우주의 모든 현상은 말할 수 없는 미(美)를 나타내고 있다. 미(美)에 있어서 그 가장 이상적(理想的)인 것은, 그것을 형성한 능력의 경이성(驚異性)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 이것은, 바다에서 증기를 발생시켜 공중에 올려 응고(凝固)됨에 따라 비가 되어 지면에 내려오게 함을 이름이다. 이것도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다. 오늘날에 있어서 인공적(人工的)으로 비를 내리게 하는 일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증기를 바다에서 발산(發散)시키는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 아니며, 혹은 구름이 없는 마른하늘에서 비가 내리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공적으로 비를 내리게 한다는 것은, 흐리운 날을 이용하여 어떤 특수한 구름 낀 공중에 비행기를 타고 가서 그 운무를 응고시키므로 비가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으로써 비를 흡족히 섭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광범위(廣範圍)로 비가 내리도록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귀절의 말씀은 역시 하나님의 위대를 말하여 그의 심판이 전능(全能하게 실시될 것을 보여준다.
암 9: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급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이 말씀 뜻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비록 택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다면 택한 백성의 실질(實質)을 소유하지 못하고, 택함을 받지 못한 영적으로 흑색(黑色)인(그들의 피부 빛과 같이) 구스 족속과 같다는 뜻이다. 롬 2:25-29 참조. 택함을 받은 자는 아니다. 그들 중에 어떤 개인들이나 혹은 어떤 한 시대의 큰 무리라도 하나님 말씀을 반역하여 회개할 줄 모르는 한(限), 그들은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의 성격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라고 바울은 말하였다(롬 9:7).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 말씀 뜻은, 외부적(外部的)인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만이 하나님의 백성 된 최후적 보장을 성립시키는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은혜가 크다고 할 수 있으나, 여기서 아모스는, 그것과 근사(近似) 한 일이 다른 민족에게도 있었다고 하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출애굽의 외부적 구원 체험만을 자랑하지 못하게 한다. 구원의 경이성(驚異性)에 있어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이외의 다른 민족에게도 외부적 구원의 체험을 가지게 하셨다. 곧, 하나님께서 "블레셋 족속을 갑돌에서"(곧, 그레데) 나오게 하셨으며(신 2:23 ; 창 10:14), "아람 사람을 길(혹설에 "길"이라는 땅은 구레네라 함)에서 올라오게" 한 것과 같은 일들이다.
본절의 말씀은, 외부적 특권만을 의지하여 교만하여지고 인격의 이면에 있어서 불신자와 다름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꾸짖는다. "이스라엘의 우월권에 대한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을 가지고라도 자기의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마르티(Marti)는 말하였다(Die Prarogative Israels ist eine vermeintliche ; mit einem anderen Volk Kann Jahweseinen Plan verwirklichen. - Das Dodekapropheton, p. 223).
암 9:8
보라 주 여호와 내가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여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여기 이른바 "범죄 한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를 의미하고, "야곱의 집"이라는 말도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기는 하시나 아주 멸절시키지는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그들 중에 회개하는 자들은 멸망시키지 않는다는 뜻이 여기 내포되어 있다. 곧, 하나님께서 그 나라에 환난을 보내어 멸하실 자를 멸하실 때에,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회개하므로 멸망하지 않을 것을 가리킨다.
암 9:9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 하리라 -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나라에 잡혀 가서 시련을 받을 때에, 그들 중에서도 알곡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 본색을 나타낸다. 옥(玉)은 진흙 가운데 떨어져서도 옥으로 나타난다.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 또 그밖에 이름나지 않은 성도들이 있을 것을 이 말씀이 암시한다. "체질"한다 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환난을 보내어(그들을 다른 나라에 잡혀 가도록 하심) 그들 중에서 알곡과 같이 참된 자들이 드러나게 하여 구원하여 주실 것을 가리킨다. 체질할 때에 알곡은 남아 있고 찌꺼기들은 새어 나가 땅에 떨어진다.
아모스가 여기서 생각한 환난은 앗수르 나라의 침략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될 것을 가리켰다. 아모스는 호세아보다 좀 일찍이 예언하였으나 양자(兩者)가 역사상으로 동시대의 예언자였던 것은 확실하다. 그는 사실상 이스라엘 나라의 전성시대 곧, 여로보암 2세의 시대에 예언하였다.
암 9:10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 - 이 귀절에 불회개자(不悔改者)의 특징이 기록되어 있다. 불회개 자는 죄를 지으면서도 마음을 평안히 가지고 이르기를,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라고 한다(시 10:6). 이런 사람을 가리켜 마음에 살찐 자라고 한다(시 119:70).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거짓된 안전을 느끼도록 하여 회개에서 멀어지도록 만든다. 렘 6:14에 말하기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 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고 하였다.
암 9: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 아모스는 여기서 환난 당할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이스라엘이 당할 환난을 말한 뒤에 위로의 약속을 주는 것은, 모든 선지자들의 일률적인 경향이다. 그 위로의 말씀은 다 같이 메시아 시대에 대한 예언이다. 그 예언 가운데는 선지자들이 다 같이 메시아 시대의 세계적 구원 행복을 내다보게 하는 것이다. 이 세계적 행복은 물론 유대에서 발원할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요 4:22 참조. 그러므로 본절에 있어서도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중수(重修)하리라는 것은 곧,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다윗의 왕통이 계승된다는 것(눅 1:32, 33 ; 행 15:16)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다음 절에 이와 같은 메시아 시대의 구원 행복에 만국이 참가할 것을 보여준다.
암 9:12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것은 메시야 시대 곧, 신약 시대의 구원 행복에 만국이 참여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에돔"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숙적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약 시대에는 에돔 민족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 될 자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 말한다. "남은 자"라는 것은 택한 백성에게 대한 별명이다. 그들이 메시아에게 속하리라는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기업이 될 것을 여기서 가르친다. 그리고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이라는 말은,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이방을 의미하는바, 그들도 역시 신약시대의 새로운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속할 것을 이름이다. "기업"이라는 말은 여기서 소유함(* )을 의미한다.
암 9: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그때에 밭 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 본절부터 마지막절까지 메시아 시대 곧, 신약 시대에 땅에 산물(産物)이 풍부할 것을 가리킨다. 이 구절들이 메시아 시대를 가리킨다는데 대하여는 보수주의자가 아닌 마르티(Marti)도 긍정한다(13-15:Die herrliche Fruchtbarkeit des Landes in der messianischen Zeit. - Das Dodekapropheton, p. 226).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선지자의 이와 같은 표현은, 영적 은혜의 풍성을 비유한다는 것이다. 칼빈(Calvin)도 이와 같이 생각한다(We know that whenever the prophets set forth promises of a happy and prosperous state to God's people, they adopt metaphorical expressions.... They accommodate their mode of speking to the notions of that ancient people. - Minor Prophets Vol, p. 410). 여기 있는 말씀의 뜻은 이렇다. 곧, 곡식이 빨리 풍성하여지기 때문에 추수한 자의 뒤를 따르며 즉시 파종하게 된다는 것, 한번 포도를 거둔 것이 풍성하기 때문에 씨 뿌리는 때까지 그것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산에 심은 포도가 잘 되는 고로 산에서 포도주가 흐르는 것 같으며, 그리고 작은 산들에는 목장이 잘 되므로 젖이 많이 생산되니, 이는 마치 그 작은 산들이 젖으므로 녹아내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포도주와 젖은, 복음을 비유한다(사 55:1).
암 9:14,15
이 귀절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되었던 자리에서 놓여나서 본국으로 돌아와 안정되어 살 것을 가리키나,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이 불행에서 구원으로 돌아올 영적 축복을 가리킨다(Keil and Delitzsch).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되는 모든 일은, 장차 이루어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 운동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환난을 인하여 시련을 당한 뒤에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이스라엘 땅에서 왕성하여지는 일이 있었던 것처럼, 신약 시대의 교회도 환난을 만나 시련을 받은 후에 다시 새로운 발전을 본다. 교회가 이렇게 나아가다 필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최후의 완성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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