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야담집 [파수추]의 웃음 유발 기법
이원걸(문학박사)
(목차)
1. 머리말
2. 하층인의 상계층 우롱
3. 인정 세태 묘사
4. 다양한 풍자
5. 트릭의 구사
6. 마무리
1. 머리말
[파수추(破睡椎)]는 1책의 필사본으로, [서벽외사수일본(西碧外史海外蒐佚本)] 26권에 소개되어 있다. 「졸음을 쫓는 방망이」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전체 내용이 웃음을 쫓는 것이다. 모두 110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이 짧으면서도 재치 있는 해학을 담고 있다. 작품 머리에 해당 작품의 제목이 3~6자씩 적혀 있는데, 전체 내용을 요약해서 표현했다. 그리고 작품 가운데 작은 글씨의 해설이 적혀 있으며, 말미에 짧은 평어도 있다.
이 야담집의 편찬 연대는 작품 말미의 세알봉곤돈황종서(歲閼逢困敦黃鐘書)라는 기록에서 추정할 수 있다. 즉, 알봉곤돈은 고갑자년(古甲子年)이며 황종은 11월에 해당되므로, 편찬 연대는 1804년 내지 1864년이 된다. 그런데 작품의 경향 등을 참조해 볼 때, 1864년(고종 1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문면에 편찬자에 대한 기록이 없으므로 현재로는 이 야담집의 편찬자가 누구인지 규명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런 부류의 야담류를 파적한담(破寂閑談)이나 골계 해학물로 여겨 소홀히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도 우리 문학사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독특한 문학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본고에서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파수추]에 수용된 골계 양상이 단순 유희에 그치지 않고, 풍자와 문학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주목하고자 한다. 골계 해학을 이루는 과정에서 재치 있는 웃음 유발 방식이 채용되고 있다. [파수추]에 드러난 웃음과 웃음 유발 기법을 살펴보기로 한다.
[파수추]의 기본 골격은 골계이다. 78화 「파적소(破寂笑)」에서 눈멀고 귀먹은 자가 늘 농학을 즐기는 모임에 참석한다. 하지만 그는 시각과 청각의 장애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해학에 참여할 수가 없어 재미가 없다. 그래서 하루는 친구에게 부탁을 한다. 모인 사람들이 함께 웃는 광경이 벌어지면, 자기 겨드랑이를 살짝 찔러달라고 한다. 그는 해학에 동참하여 자기도 웃음을 공유하자는 의도로 그렇게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의 장난기가 발동되어 모인 사람들이 전혀 우습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겨드랑이를 쿡 찌른다. 그는 갑자기 박수를 치며 크게 웃는다. 몇 차례 그렇게 하고 나니, 그의 우스운 행동 때문에 모인 사람들이 하루 종일 즐거웠다. 이 이야기에서 해학은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적용되며, 시청각 장애인에게도 절실한 것임을 반증한다. 바로 이어지는 79화를 보자. 주인과 길손이 마주 앉아 심심한 터에 길손이 말재주를 부려 적적함을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주인은 목석같은 위인이어서 서로 해학이 이루어지지 못해 쑥스럽기만 하다. 이는 편찬자가 서로 해학을 마련해 공동 해학을 이룬 경우와 서로 해학을 이루지 못해 어색해진 경우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사는 데는 적절한 해학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편찬자는 [파수추]에서 골계를 작중의 핵심 구도 장치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웃기고 웃는 가운데 다양한 인간의 생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는 단순 유희로 종결되지 않고, 의미가 담긴 문제를 제시한다. 웃음의 양상을 보기로 한다.
2. 하층인의 상계층 우롱
조선 후기 야담의 일반 성향이 그러하듯 [파수추]에도 하층인의 진솔한 정서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일부 반영은 했지만 실제 신분 질서는 엄연히 존재했으며 주인과 종의 논리 역시 유효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
후기 신분 동요의 일면이 작품에 반영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문제는 신분상 아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골계를 통해 상위 계층에 있는 자를 우롱한다는 것이다. 이런 작품에는 각성된 서민 의식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신분상 주종 관계에 의해 상호 충돌하는 경우와 나이 어린 사람이 연상자를 우롱하는 것까지 포함해 다루고자 한다. 소금 장수와 개가죽을 덮어 쓴 위인을 보기로 한다.
소금 장수가 북도의 산촌을 지나가게 되었다. 머리에 개털 모자를 쓰고 개털 옷을 입은 자가 그에게 공갈을 쳤다.이 무슨 결례냐? 양반을 보고도 예를 올리지 않다니.미처 알아보지 못해서 그랬으니, 널리 용서를 청합니다.그런데도 개털 옷 입은 그는 계속 꾸짖어댔다. 소금 장수는 분을 이기지 못했는데, 그때,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멍멍 짖으며 문에서 뛰쳐나왔다. 소금 장수가 개를 보고 황급히 넙죽 절을 올리는 게 아닌가. 그랬더 니 영감이 그 짓이 괴상하여 물었다.왜, 개를 보고 절하는 거냐?이 분도 개가죽을 덮어썼으니, 생원 댁 자제 분이나 도련님이 아닐까 해서요.
북변에서 개가죽을 덮어쓰고 가던 양반이 소금을 팔러 온 상놈 장사치를 얕보고 결례를 빌미로 한 마디 쏘아붙였다가 도리어 망신을 당한다. 소금 장수의 기지가 해학 처리되었다. 그는 멍멍이에게 절을 올려 조금 전에 당했던 수모를 갑절로 되돌린다. 이는 개가죽을 덮어 쓴 당사자만 우롱 당한 것이 아니라 자식까지 욕을 먹게 되었고, 급기야 가족 전체의 망신으로 파급된다. 그래도 그 양반은 할 말을 잃었다. 상놈 소금 장수의 어리석은 것 같은 행동 이면에는 고도의 기지가 개입되어 아둔한 양반을 우롱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상놈 장인 두 명이 합세해 사대부를 우롱한다.
양반 집 앞에는 유기장이가 살았고 뒤에는 땜장이가 살았는데 양반은 이들 때문에 괴로워 죽을 지경이었 다. 그런데 하루는 두 놈이 와서 아뢰는 게 아닌가.쇤네들이 죄다 이사를 가게 되어 찾아뵙고 아뢰게 되었습 죠.양반은 일부러 놀란 척했다.그동안 서로 만나지 못해 무척이나 정회가 섭섭했다네.그래서 술과 음식을 차려 대접을 하고는 밥을 다 먹고 나서야 물었다. 그래, 어디로 이사할 건가? 길이 그리 멀지 않았으면 좋으 련만.유기장이놈이 답했다. 소인은 땜장이 놈 집으로 옮겨 갈랍니다.땜장이 놈이 답했다. 쇤네는 유기장 이 놈 집으로 옮겨 갈 겁니다요.
선비는 평소 앞뒤 집 장인 놈들의 생업으로 인해 발생되는 소음 공해로 늘 괴로움을 당한다. 그런데 그는 난데없이 찾아 온 두 놈으로부터 기쁜 소식을 듣고 식사까지 대접한다. 그러나 그의 기쁨은 일시적이다. 그는 이 곤경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상놈 둘이 작당해서 무력한 양반을 능멸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공업 기예를 천시하는 나약한 선비가 시장 바닥에서 득세한 상놈들에게 우롱 당하는 일면을 반영했다.
35화에서는 지독한 냄새나는 방귀를 방출하는 좌수가 원님을 모신 자리에서 방귀가 마려운 것을 억지로 참고 있다가 원님이 먼저 방귀를 방출하자, 그는 잽싸게 독한 방귀를 내보낸다. 그리고 나서 이를 원님에게 덮어씌우자, 바보 같은 원님은 수긍한다.
다음은 농학에 뛰어난 소년이 어른을 우롱하는 경우다. 어느 날, 소년이 우씨․양씨 성을 가진 별감 둘을 만났는데, 우 별감에게는 인사를 하고 양 별감에게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이에 양 별감은 놈이 예의가 없다고 하며 호되게 나무란다. 재치 있는 소년은 그에게 [맹자]의 「견우미견양(見牛未見羊)」을 인용해 양 별감은 뵈었지만 우 별감은 못 뵈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임기응변함으로써 나이 어린 자가 연장자에게 선택적인 예우를 한다.
무변과 판서와의 관계에서 파생된 충돌 역시 이와 같은 양상이다. 같은 동리에 사는 무변이 판서 댁에 종종 놀러 갔지만, 놈은 좀처럼저또는소인의 칭호를 않는 것이다. 그래서 판서는 놈에게저또는소인이란 칭호를 듣기 위해너의 적삼은 누가 바느질 한 것이냐?라며 유도 질문을 한다. 그러나 그는그의 아내가 바느질을 했습죠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결국 판서에게 자세를 낮추지 않았다. 무변과 판서 사이에는 엄연한 신분 질서가 주어지지만, 문면에 그런 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무변이 판서에게 경쾌히 접근하여 끝내 자기를 낮추지 않는다.
이상에서 보듯이, 하층인이나 연하자가 상위 계층이나 연장자를 우롱하는 데서 계층 간의 충돌이 매우 다양하다. 여기에 도의와 법도는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재치 있는 언어를 구사하여 상대를 압도한다. 아울러 그들은 우회 접근을 시도하여 상대를 공략하고 있음도 그 특징이라 하겠다. 문면에 공개된 상위 계층의 형상은 하층인의 형상과는 대조적이다. 그들은 도리어 위축되고 나약한 형상을 드러내었다. 반면에 하층인은 경쾌하고 생기발랄하여 그들을 압도한다. 웃음 가운데 피지배 계층인의 지배층에 대한 우롱과 반감이 담겨 있다.
3. 인정세태 묘사
야담의 흥성기라 할 수 있는 18세~19세기 야담집에는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 작용의 양상이 두드러진다. [파수추] 역시 각박한 세태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이는 당대 사회 현실의 모습과 연관된다. 경로에 대한 인정세태다.
① 소년들과 노인이 곡회(曲會)를 가졌다.
② 꾀 많은 소년이 고기를 탐내어 노인이 못 씹도록 크게 썰어서 상을 차렸다.
③ 노인은 이를 알아채고 고기 덩이에 침을 뱉기도 하며 이리저리 핥았다.
④ 소년이 더럽다며 먹기를 거부하자 노인은 고기를 모두 차지했다.
소년들이 향음례에서 고기를 차지하려고 잔꾀를 부렸다. 고기를 굵게 썰어 노인이 쉽게 먹을 수 없도록 배려하지만, 노인이 선수를 친다. 노옹은 소년들이 굵게 썬 고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시식함으로써 소년들이 먹지 못하도록 한다. 영감이 소년들의 간사한 꾀를 미리 알고 능란하게 처리해 상대를 압도한다. 먹거리인 고기를 두고 이처럼 서로 이익을 먼저 챙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종래 우리 사회의 규범 가치인 경로에 대해 맹랑하게 도전을 한다.
이는 제92화 「철환관(鐵環棺)」에도 마찬가지다. 풍수지리를 익힌 아들을 둔 아비가 평소 아들의 그 짓을 몹시 못마땅해 한다. 그래서 임종할 즈음, 자기의 관에 못을 네 개 박아 두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유는 그가 죽은 뒤에 아들이 반드시 자신의 시신을 좋은 땅에 모신다며 이리저리 메고 다닐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시신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관에 못을 미리 단단히 쳐두라고 당부한 것이다. 이 문면에 아비와 자식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 아비는 평소 교훈을 마다하는 아들놈의 처사가 그의 사후까지 파급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다음은 한 가정에서 일어난 작은 분란이다.
① 손자가 배 두 개를 주워 왔다.
② 큰 배는 할아버지에게 드리고 작은 것은 아비에게 주었다.
③ 조부와 아비가 기뻐했는데 아비가 불러 그 이유를 물었다.
④ 손자는 아비에게 귓속말로 큰 배는 똥 위에 떨어진 거라고 했다.
손자의 행동은 기특하다. 큰 배를 할아버지에게 드리고 작은 것은 아비에게 바쳤기 때문이다. 할아비와 아비 입장에서는 매우 흐뭇하다. 그래서 아비가 아들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아비는 자식의 행동이 귀여웠을 것이며, 할아버지를 공경하기에 그렇게 했다는 대답을 기대한다. 그러나 아들은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한다. 여기서 3대에 걸친 경로 문제가 제시된다. 기성 세대인 아비는 종래의 경로 노선을 고수한다. 그러나 신세대의 손자에게 있어 경로 관념은 해학 처리된다.
이 외에 남에게 인정 베풀기를 몹시 인색해 하는 경우도 있다. 장인이 장기간 처가살이하는 사위 놈을 내쫓으려고 심술을 부린다. 어느 날, 장인이 동리에 나갔다가 오더니, 동리 사람들이 사위 놈이 뻔뻔스럽게도 너무 오래 처가살이를 한다며 야유하더라고 한다. 그랬더니, 사위는 처음에 내일 떠나려고 작정했지만, 동리 놈 소행이 얄미워 계속 머물겠다고 받아친다. 이로써 사위를 내쫓을 그의 계획은 무산되고, 그로 하여금 처가에 더 머물게 한다.
이 외에 살림살이가 어려운 사위가 인색한 처남에게 재물을 얻으려고 교묘하게 누이가 죽었다는 투로 서찰을 보내 장례 물품을 가져오게 하고는 재물을 가로챈다. 인색한 처가나 교활한 사위의 소행은 서로 비슷하다. 상호 양보와 타협이 없는 몰인정한 세태의 인물 형상이다. 이는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도 여전하다. 이웃집 살구 가지가 담을 넘어오자, 무심코 따먹었더니, 주인이 달려와 창호지 문에 주먹을 넣어 흔들며 이 주먹이 누구의 것이냐고 꾸짖으며 주인 행세를 하는 인간도 있다. 살구나무 가지가 이웃집 담장을 넘어갔기에 주인은 자신의 소유권을 행세할 수 있다. 어쩌면 이는 매우 합리적 발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종래 인정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관계에 비추어볼 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또한 인색하기로 소문난 콩장수가 여관에 묵었는데, 밤에 콩을 입에 물고는 남이 들을까 염려되어 깨물지도 못한 채 콩을 물고 자다가 이를 노린 쥐에 물려 피투성이가 된다. 한편 시장의 교활한 위인이 아둔한 망건 장수를 속여 망건을 헐값에 빼앗기도 하며, 시골 아낙이 방아를 찧다가 남의 숟가락을 몰래 감추는 사례에서 인정이 사라지고 교활한 인간이 판을 치는 작태를 보여 준다.
이는 당대 신흥 가치관이나 경제관과 연결시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종래 경로 사상이나 인정이 퇴색되면서 새로운 가치관이 점차 일어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면서 해학을 동반했기에 익살스럽다. 이는 [파수추]의 전체 성격과도 일치된다.
4. 다양한 풍자
[파수추]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당대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해학 수법을 동원하여 우회적으로 상대에게 접근하여 자신이 목적한 바를 실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상대를 공략하기도 하고 느긋이 꼬집고 야유한다. 인간의 성정을 우회적으로 긍정한 경우다.
동리에 한 과부가 살았는데, 이웃 사람들이 모두 모여 그녀를 개가시키고자 의논했다. 그 중 한 위인이 그 말 을 막으며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이도 많을 뿐더러 눈마저 어두워서 적합하지 않은 터에 개가시킬 수 있겠어요?과부가 건너 방에 있다가 이 말을 듣고는 속이 타서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남산을 바라보며 받아쳤다. 개미 한 놈이 쌀 한 톨을 물고 가는 구만! 동네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놀랐다. 눈이 어둡다고 하는 말은 참으로 헛말이었네. 백 보나 되는 거리에서 개미가 백미를 끌고 가는 것을 볼 정도면 어찌 눈이 어 둡다고 말하리?모두 일어나서 남산을 자세히 보았더니, 흰 옷 입은 장정 한 사람이 큰 소 한 마리를 몰아가 고 있었다.
이 작품은 과부의 행동에 초점이 있다. 과부는 자신을 개가시키기 위해 모여 의논하는 동리 사람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건다. 그런데 훼방꾼의 개입으로 그녀는 난관에 직면한다. 그래서 그녀는 임기응변으로 남산 밑의 개미까지 보이는 시력을 과시함으로써 개가를 방해하는 위인의 소행을 공개한다. 여기에 드러난 과부의 한 마디는 그의 심보를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건강미와 개가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음의 두 청춘 남녀는 상호 애정 욕구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경우다.
앞뒤 집에서 자식들 혼사를 두고 의논하는 중인데, 총각과 처녀가 문 안팎에서 귀를 기울였다. 농담을 잘하는 자가 둘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눈을 떴다 감았다하며 일부러 몹시 안타깝다는 투로 중얼거렸다.처녀는 입술이 길고 이빨까지 누렇고, 총각은 단추 눈에 볼기짝이 거무틱틱하니, 그게 흠이지모인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총각과 처녀는 이 말을 듣고 암암리에 서로 궁리를 하였다. 총각은 분가루를 엉덩이에 바르고 곧장 처 녀 집으로 달려가더니 눈을 잔뜩 크게 뜨고 엉덩이를 내보이고는 호미 빌리러 왔다고 둘러대었다. 그러자 처녀 는 다른 이들이 말하기도 전에 나서서 방금 소금으로 양치를 한 터에 입술을 조그맣게 오무리고 이빨을 한껏 드러내고는 대꾸하였다.호미, 저쪽에 있잖아요.
앞뒤 집에 사는 총각과 처녀는 그들의 혼담에 매우 긴장한다. 그런데 농학을 잘하는 자에게 의해 공개된 자기들의 치부를 애써 감추려는 데서 애정 구가의 집념이 드러난다. 이는 가난한 노총각이 양근(陽根)을 움켜잡고 엎드려 울기에 부친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부친께서 손자를 늦게 얻는 게 애석해 그렇게 한다는 변명과 일치한다. 노총각의 통곡은 집안에 손자가 늦게 태어나는 것에 대한 슬픔이 아니다. 당사자의 혼인이 늦어짐에 대한 항변이다.
결국 과부의 시력 자랑이나 총각과 처녀의 행동, 두 노총각의 항변 등에서 인간의 성욕이나 애정 구가를 갈망하는 목소리를 청취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지를 가탁 언어나 우회적 행동을 통해 표현하였다. 다음은 자아를 망각한 인간에 대한 풍자이다.
부잣집 소년이 헤어진 망건을 쓰고 있었더니, 곁의 사람이 그 꼴을 보고는 빈정거렸다.왜 망건을 고쳐 쓰지 않누?소년이 답했다.네놈 좋게 하려고 고칠 까닭이 없지.묻는 자가 웃으며 답했다. 네 놈이 망건을 고치건 안 고치건 내게 무슨 상관이람?소년이 답했다. 내 망건이 낡은 걸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야 말 이지.
부잣집 소년과 어떤 자의 대화 가운데 소년의 무지가 드러난다. 즉 그는 자신의 망건이 낡았다고 지적하는 상대를 책망하고 자신과 무관하다는 식으로 몰아붙임으로써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남과 나와의 관계에서 상대를 전혀 인식하지 않은 경우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는 자신의 결점을 전혀 알아차릴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는 곧 자기 상실이나 자기 성찰을 거부하는 전형이라 하겠다.
13화에는 한 집안에 네 귀머거리가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가운데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날마다 분란이 일어난다. 이 역시 타인이나 이웃과의 관계를 전혀 무시한 채, 매사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처리하는 무지를 풍자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남의 등을 쳐서 먹는 도둑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량한 도둑」 이야기에서 도둑이 장물을 점검한다. 장물 하나가 보이지 않아 의아해 하며 자기들 가운데 선량하지 못한 사람이 있겠느냐며 반문한다. 이들은 자신이 남의 물건을 탈취하는 저질의 도적이라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 형상이다.
유사한 것으로 「상투에 감은 돈」 이야기가 있다. 행인이 고개 마루에 도둑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돈을 상투에 감아 숨긴 채 고개를 넘는다. 급기야 도둑을 만나게 되어 도둑이 그의 몸을 뒤졌더니 그에게 돈이 없음을 알아채고 그의 가슴을 쳤다. 결국 그는 꼬꾸라지게 되었고, 상투에 감춰둔 돈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러자, 도둑은 세상인심이 이러하니 무슨 일을 해 먹고 살겠느냐며 놀란다. 이 역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파렴치하게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야유이다. 이 외에도 「옹기장수의 계산」에서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인간을 풍자한다. 즉 이 작품은 현실을 외면한 채 과대망상을 꿈꾸는 인간에 대한 경종이라 하겠다.
다음은 남의 등을 쳐서 먹는 소인이나 말단 관료의 작태에 대한 풍자이다. 「파리의 풍류」에서는 벼룩이 사람의 등에서 피를 빨아먹는 기쁨과 파리가 사람이 먹는 음식물에서 이익 챙기는 것을 자랑한다. 벼룩과 파리는 일반 백성을 착취하고 폐해를 끼치는 소인이나 말단 관료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작가는 소인들의 극성맞은 행동 양상을 비꼬면서 풍자한 것이다. 「꿩 싸움 이야기」에서는 두 마리 꿩이 지칠 줄 모르고 싸우는 통에 행인이 한 마리를 붙잡아 오는 중에도 나머지 한 마리가 뒤를 쫓아오면서 연이어 행인의 팔을 쪼며, 붙잡힌 꿩을 공격한다. 이 역시 소인들이 죽음의 위기도 채 깨닫지 못하면서 다투는 일면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상 [파수추]에서는 다양하게 당대 사회 문제나 인간사를 풍자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 과정에서 작중 인물은 해학 수법을 동원하여 우회적으로 상대에게 접근해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 인간의 성욕이나 애정 구가 의지를 가탁 언어로 우회 표현하였다. 그리고 자아를 망각한 인간이나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인간 유형을 들어 소인들과 말단 관료의 작태도 풍자했다. 이어 트릭 구사에 드러난 웃음 유발 양상을 보기로 한다.
5. 트릭의 구사
야담에는 구소설의 구성에 드러난 신비스러운 장치는 제거되고, 작중 인물이 난관을 해결하거나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상대를 속임으로써 임기응변하는 사례가 많다. 그리고 상대를 역으로 공격하여 난관을 벗어나기도 하며 해학을 발동하여 도리어 상대를 위기에 빠지게 하는 단순 유희의 트릭(Trick)도 구사되고 있다. 야담에서 상대를 속이는 행위를 궤휼(詭譎)․궤간(詭奸)․휼간(譎奸) 등으로 표현된다. 트릭을 써서 위기에 대처하는 경우를 보기로 한다.
① 광대 아내의 얼굴이 반반했는데, 이웃의 양반이 흑심을 품고 있었다. 이를 알아챈 두 부부는 그를 골탕 먹이 려고 꾀를 짜냈다. 어느 날, 아내는 남편이 출타 중이라며 그를 유인했다. 그녀는 안방까지 따라온 그에게 남편과 동침할 때에 반드시 가면을 쓰고 했다 하면서 그에게 가면을 씌우고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이어 밖 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몽둥이를 둘러매고 들이닥치자, 양반은 겁을 먹고 자기 집으로 피신했는데 식 구들에게 몰매를 맞았다.
② 과부가 문자를 꽤 익힌 사람을 아들의 훈장으로 모셨다. 그런데 이웃의 불한당이 그녀를 보쌈 한다는 소문 을 듣고 홀아비인 훈장에게 여생을 의탁하기로 하고 그 날 밤 그와 동침했다. 과연 한밤에 놈들이 몰려왔 는데, 그녀는 살짝 윗방으로 몸을 피했다. 놈들은 훈장을 과부로 알고 보쌈을 해서 주인댁 처녀 방에 재웠 다. 훈장은 그 날 밤 처녀와 동침을 했다. 그래서 그는 처와 첩을 함께 얻어 여생을 풍요롭게 지냈다.
③ 소년이 돈 꾸러미를 지고 가는데, 도둑이 그것을 빼앗을 심보로 칼을 들이대며 위협했다. 그러나 소년은 조 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가 담담하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두 손으로 눈 주변을 움켜잡고 혀를 내 미는 것이라고 하자, 도둑놈은 그렇게 했다. 이 때 소년은 모래를 한 줌 쥐고 그에게 퍼부었다. 소년은 그가 눈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할 때 달아났다.
위 ① ~ ③에서는 피해를 입히려는 상대에게 트릭을 써서 위기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상대를 곤경에 처하게 해서 분풀이도 한다. 특히, ①과 ②에서는 남성 공격자에게 대항하는 여성들 형상이 돋보인다. 그러면서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려는 남성의 추태도 고발한다. 여기서 속임수 자체는 악한 행위이지만, 작중 위기 극복 방안으로 적절히 이용된다. ③에서는 연약한 어린 아이를 위협해 금품을 빼앗으려던 도둑이 그의 지시대로 따르다가 어려움을 당한다. 소년이 제시한 몸짓은 어린 아이를 달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도둑이 그 짓을 하다가 봉변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순 트릭 구사는 위기 해소와 해학을 동반한다. 인색하고 성깔이 고약한 부자 영감이 늘 구걸하러 온 스님을 괴롭힌다. 어느 날 스님은 술을 가져가 그를 취하게 하고 영감의 머리를 홀랑 깍은 뒤에 옷을 벗겨 못에 던지고 달아난다. 그런데 술에서 깨어난 영감의 짓이 볼 만하다. 영감은 머리통을 만져보고내가 남아 있고, 중놈이 달아났는가? 중놈이 남아 있고 이 몸이 떠났는가?라며 의아해 한다.
이러한 단순 유희를 위한 트릭은 예의나 법도를 무시한다. 그러면서 상대에게 당한 곤욕을 보복한다. 농학을 즐기던 친구가 친구 부친 초상에 호상(護喪)을 하러 간다. 그는 일부러 암말을 타고 가서 상주의 수말을 흥분케 하여 상주로 하여금 상여를 놓쳐 버리게 한다.
갑과 을 두 사람이 농담을 즐겼다. 갑이 부모상을 당하여 발인하는 날에 을이 호상을 맡아 상여를 따라 갔다. 그때, 상제는 수말을 타고 갔다. 을은 일부러 암말을 타고서 상제 앞을 가로질러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 러자, 상제가 탄 말이 암말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히힝 부르짖더니 헐레벌떡 뒤쫓아갔다. 을은 고의로 말에게 채찍을 가하여 무작정 내달렸다. 상제의 말도 기를 쓰고 쫓아왔다. 이같이 하여 십여 리를 달린 뒤에 상제는 분 을 참지 못하였다. 상주 지팡이를 들고 을을 때리려고 하였다. 그 형상이 흡사 장군이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창 과 칼을 휘두르며 출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갑은 분이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상여는 어디로 향했는지 알지 못하고 상제만 남아 있으니, 참으로 용맹하다!
이에 격분한 친구는 그 친구의 부친 초상에 조문한 뒤에 거짓으로 신주를 훔쳐 달아나자, 상주가 그를 뒤쫓느라고 온통 야단법석을 떤다. 문제는 내빼던 친구가 신주를 연못에 던지자, 상주가 연못에 뛰어 들어가 건져보니, 신주가 아니었다. 즉 그는 애당초 신주가 아닌 물건으로 신주를 훔쳐 달아난 것처럼 속인다. 이로써 그는 친구의 무례한 소행에 대해 철저히 보복했다.
이처럼 단순 트릭의 예는 결례를 범하면서도 시종 해학을 유지해 결국 모든 것이 농학 처리된다. 그렇지만 독자는 이 과정에서 무례를 범한 그가 밉지 않다. 장님을 속이는 행동이나 상주를 괴롭히는 행동이 웃음거리를 제공한다.
다음은 단순 해학을 위한 트릭 구사 양상이다. 「만년 복숭아」 이야기에서는 김생이 친구 박생을 찾아갔으나, 그가 아직 자고 있기에 발로 엉덩이를 차서 깨운다.
박생은 꿈에 천상(天上) 세계에서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사는 만년 복숭아를 받아와 김생 부친에게 올리려는 순간에 잠을 깨어 버렸기 때문에 몹시 아쉽다고 탄식하며 무례한 친구를 속인다. 그러면서 그는 한 술 더 떠서 자기가 양손에 불알을 움켜쥐고 있는데, 못 바친 만년 복숭아 대신 바치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한다. 여기에 심각한 위기 발생이나 대립 구도는 보이지 않는다. 농학을 담은 대응 방식이 보인다. 그리고 농담을 즐기는 위인이 장님을 수박밭에 데려가서 수박은 자기가 먹고 그에게 호박을 먹이고는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 속은 장님은 호박 먹는 편이 낫다고 한다.
이상 [파수추]에 드러난 트릭 구사 양상은 세 가지로 집약된다. 위기 극복을 위한 임기응변이나 가벼운 트릭 구사로 상대를 설욕하는 장치로 활용되기도 하며, 농학이 담긴 트릭 구사로 해학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6. 마무리
이상에서 조선 시대 우리 선인들의 웃음 유발 양상을 검토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파수추]를 살펴보았다. 이 작품집의 내용이 단순한 웃음 유발 이야기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문제 의식을 담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를 형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수법이 적용되고 있었다.
[파수추]에 담긴 골계의 양상으로 첫째, 하층인이 상위 계층을 우롱하는 과정에서 우회적 접근을 시도해 소기한 목적을 이루었다. 지면에 공개된 상위 계층은 건강한 웃음을 지닌 하층인에 비해 나약하게 그려져 있었다. 둘째, 이 야담집에 드러난 여러 이야기는 당대 우리 사회의 인정세태를 반영하고 있었다. 이들 작품에서는 종래의 경로 관념을 맹랑하게 비웃고 있었다.
이는 당대 새로운 가치관이 대두하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바, 경제적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해학을 동반한 인정세태 묘사여서 흥미를 유지하고 있다. 셋째, 다양한 풍자 성향이 확인되었다. 성정에 대한 긍정과 자아를 망각하고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인간 유형과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저급 인간의 행각 등을 다루었다. 다음으로 트릭의 구사 양상을 검토했다. 트릭은 작중 위기 극복을 위한 임기응변이나 상대를 공격하고 단순 유희를 즐기는 것으로 활용되었다.
이원걸, [조선후기 야담의 풍경, 도서출판 파미르, 2006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