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 [무이구곡가]
주희(朱喜, 朱子: 1130~1200)는 남송 때 성리학의 집대성자. 경서의 문헌 비판이나 훈고명물(訓詁名物)의 고증, 자연 지식의 개척 등으로 청조의 고증학 선구자가 되었다. 무이산(武夷山)은 중국의 복건성(福建省) 건녕부(建寧府) 숭안현(崇安縣) 남쪽에 있는 산이다. 신선(神仙) 무이군(武夷君)이 산다고해서 무이산(武夷山). 이산에는 36봉(奉)과 37암(巖)의 기암절벽이 빼어나게 솟아 있고, 무이구곡(武夷九曲)은 아홉 구비의 경치가 아주 좋은 계곡을 말한다. 주자는 무이구곡의 제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무이구곡가를 지었다. 첫 수를 제하고는 무이구곡의 산과 물의 경치를 묘사하고 있으며, 자연묘사가 주가 되지만 그 이면에는 성리학을 공부하는 단계적 과정이 은유 되어 있다.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에서 비롯된 구곡원림(九曲園林)의 문화는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조선왕조시절에는 퇴계 이황의 도산구곡(陶山九曲), 율곡 이이의 고산구곡(高山九曲), 우암 송시열의 화양구곡(華陽九曲) 등이 만들어지는 등 크게 성행했다. 武夷九曲 무이구곡 - 朱喜 주희 武夷山上有仙靈 무이산상유선영 무이산 위 높은 곳에 신선이 살고 있는데 山下寒流曲曲淸 산하한류곡곡청 산 아래 차가운 물줄기 굽이굽이 맑더라 欲識箇中奇絶處 욕식개중기절처 그 가운데에 빼어난 경치 알고자 하면 櫂歌閑聽兩三聲 도가한청양삼성 노젓는 소리를 한가하게 두세 곡 들어보세. 무이구곡은 일곡에 이르러 숭양계(崇陽溪)로 들어간다. 일곡 계곡의 북쪽에는 대왕봉이 솟아있고 대왕봉 왼쪽에 만정봉(幔亭峯)이 있다. 만정봉은 해발 500 미터 정도의 산으로, 도가(道家)의 무이군(武夷君)이 연회를 베풀던 곳이라고 한다. 一曲溪邊上釣船 일곡계변상조선 한 굽이 돌아 시냇가 낚싯배에 오르니 幔亭峯影潛淸川 만정봉영잠청천 만정봉의 그림자 맑은 물에 잠겨있네 虹橋一斷無消息 홍교일단무소식 무지개 다리는 한번 끊어진 후 소식이 없고 慢壑千岩鎖翠烟 만학천암쇄취연 절벽 가득한 바위는 비취 빛 안개가 둘러있네 대왕봉(大王峯) : 대왕봉은 무이산에서 가장 웅장한 바위산으로 옥녀봉 맞은편에 있다. 높이는 해발 300여미터이지만, 구름을 뚫고 하늘을 받치고 우뚝 선 모습이 영웅의 형상을 하였다. 전설에서 대왕은 근면, 용감, 지혜의 미덕을 갖춘 이상적인 남성이었다. 바위틈으로 좁은 길이 대왕봉 정상으로 통하는데 몸을 굽히고 무릎으로 기어 산 정상에 오르면 무이산 지역 일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옥녀봉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 대왕봉 홍교(虹橋) : 전설에 의하면 진시황 2년 가을에 무이군이 허공에 무지개 다리를 놓고 여러 신선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곳에도 가학선관의 흔적이 있다. 가학선관은 절벽에 매달아 놓은 배 모양의 관이고 홍교는 그 관을 받치고 있는절벽에 걸어 놓은 받침대. 수광석(水光石) : 수광석은 청천석(晴天石)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도 천애절벽이 계속되고, 암벽에는 마애석각의 글이 많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제시암 : 제시암에는 명나라때 척계광(戚繼光)이 지은 시도 있다. 척계광은 왜구를 정벌하여 명성이 높은 장수였는데 황제의 부름을 받아 북벌을 하러 가는 길에 무이산에 들러 이 시를 새겼다고 한다. 척계광의 시 응소북벌(應召北伐 : 임금의 부름을 받아 북벌하다)의 글자가 보인다. 정?동기망(丁?冬旣望)이라 쓰여진 것으로 보아 정?년 12월 16일에 쓴 글임을 알 수 있다. 大丈夫旣南靖島夷 便當北平胡虜 黃冠布袍 再期游此... 대장부가 이미 남쪽에서 왜구를 정벌하고, 이제 북쪽에서 오랑캐를 평정하려 하니, 황금관에 도포를 입고 다시 올 것을 기약하노라 二曲亭亭玉女峯 이곡정정옥녀봉 두 굽이 돌아 우뚝 솟은 옥녀봉이여 揷花臨水爲誰容 삽화임수위수용 꽃을 꽂고 물가에서 누구를 기다리시나 道人不復荒坮夢 도인부부황대몽 도인은 황대몽 다시꾸지 않으리 興入前山翠幾重 흥입전산취기중 흥에 겨워 앞산에 들어가니 푸르름이 겹겹이네 이곡에는 무이산에서 가장 수려한 옥녀봉이 있다. 정상에는 나무가 자라고 절벽은 광택이 나서 마치 옥석을 조각한 모습으로, 절색의 소녀가 맑은 물가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형상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옥녀는 옥황상제의 딸이었다. 하늘에 살던 옥녀(玉女)는 아버지 몰래 구름을 타고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가 무이구곡의 산수에 매료되어 돌아갈 줄을 몰랐다. 우연히 대왕(大王)과 알게 되어 서로 사랑을 하여 자식을 낳고 인간세계에 살았다. 이를 본 철판도인(鐵板道人)이 옥황상제에게 고하자,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철반도인에게 옥녀를 잡아오도록 했다. 옥녀는 대왕과 같이 인간세계에서 살고자 하여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철반도인은 마법을 써서 옥녀와 대왕을 돌로 만들어 계곡의 양쪽에 두어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옥녀봉과 대왕봉 사이에는 철판장(鐵板障)이란 병풍 바위(障)가 있는데, 철판도인이 대왕봉과 옥녀봉이 만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관세음보살이 대왕과 옥녀를 불쌍히 여겨 옥녀봉 맞은편에 면경대(面鏡臺)를 두어 서로 얼굴을 비춰보게 하였다고 한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인석(印石) : 옥녀봉 아래에는 옥녀가 목욕했다는 욕향담(浴香潭)이 있고, 도장같이 생긴 네모난 인석이 있는데 옥녀와 대왕의 정표라고 한다. 三曲君看架壑船 삼곡군간가학선 세 굽이 돌아 그대는 절벽의 매달린 관을 보았는가 不知亭櫂幾何年 불지정도기하년 노 젓기 멈춘 지 몇 해 인지 알 수 없는데 桑田海水今如許 상전해수금여허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된 것이 지금부터 언제런가, 泡沫風燈堪自憐 포말풍등감자연 물거품과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우리 감히 슬퍼하네. 와룡담을 돌아가면 또 천길 절벽의 소장봉(小藏峯)이 나온다. 소장봉에는 아득한 절벽 위 틈 사이에 비바람에도 썩지 않고 오랜 세월을 견디고 있는 배모양의 목제 관인 가학선관(架壑船棺) 이 매달려 있다. 전설에 의하면 가학선관은 신선이 하늘로 날아가면서 남긴 배(舟)로서 배 안에는 유골이 있었다고 전한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가학선관(架壑船棺) : 이 무이산의 선관은 은(殷)나라 말기에서 시작하여 주(周)나라 초기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주자는 이 가학선을 고대 복건성의 남방 소수민족이 사용하던 관(棺)으로 알고, 가학선관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읊고 있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홍교판 (虹橋板) : 홍교판은 이 가학선관(架壑船棺)을 매달기 위한 나무널판이다. 四曲東西兩石岩 사곡동서양석암 네 굽이 돌아 동서에 마주한 두 바위산이 있는데 岩花垂露碧藍山 암화수로벽람산 바위에 핀 꽃 이슬을 머금어 푸른 산이 되었네 金鷄叫罷無人見 금계규파무인견 금닭(金鷄)이 울어 아침을 열지만 아무도 본 이가 없고, 月滿空山水滿潭 월만공산수만담 달빛도 빈 산에 가득하고 물빛도 호수에 가득하네 사곡에는 거대한 암산인 대장봉과 선조대가 마주보고 있다. 대장봉 암벽 중간의 금계동굴(金鷄洞)에는 새벽을 알리는 금닭이 있었다고 하고, 그 아래에는 무이구곡에서 가장 깊은 와룡담(臥龍潭)이 있다. 대장봉과 선조대 절벽에 핀 꽃은 이슬을 머금고 있고, 새벽에는 금닭이 울고 밤에는 달빛이 와룡담에 그윽히 비치는 사곡의 정경을 읊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대장봉(大藏峯) : 사곡으로 돌아 들면 엄청난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름하여 대장봉이라 했으니, 도가(道家)가 대장경(大藏經)을 숨겨둔 곳이라고 한다. 대장봉의 수십 길 절벽에는 두 개의 작은 굴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구과암(鷗窠巖)이라 하는데, 굴 안에는 벼(稻草)가 자란다. 언제 누가 갖다 놓았는지도 모르고 몇 백년이 지났는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스스로 열매를 맺고 자란다고 한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금계동(金鷗洞)이다. 이 굴 안에는 선관(船棺)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대장봉 건너편에 제시암(題詩巖)이 있는데, 암벽에 석각의 시를 가득 새겨 놓았다. 무이산에는 400여 곳의 마애석각이 있다는데, 제시암이 대표적인 곳이다. 대장봉 아래의 와룡담(臥龍潭)은 구곡중에서 가장 깊은 곳이다. 와룡담에 이르러 뱃사공은 길다란 대나무 삿대를 물속에 집어넣지만 끝에 닿지는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무이동천(武夷洞天), 승진원화지동(昇眞元化之洞) 등의 글자가 보인다. 진원화(眞元化)는 도교의 이상향, 근본이란 뜻이니 승진원화지동은 이상향으로 들어가는 골짜기란 뜻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주자의 무이구곡가 중 사곡가를 새겨놓았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장경을보관했다는 대장봉 맞은편의 선조대(仙釣臺). 사곡의 북쪽에 선조대가 있으니, 신선이 낚싯대를 드리우던 곳이라고 한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선조대 절벽 위 바위틈에는 낚싯대 한 개가 비스듬히 나와있다. 천 년을 두고 썩지도 않고 그대로 있어 무슨 물건인지 알 수 없는 데, 사람들은 강태공이 이곳에 와서 낚시질을 했다고 한다. 五曲山高雲氣深 오곡산고운기심 다섯 굽이 돌아 산이 높고 구름 기운도 두텁고 長時烟雨暗平林 장시연우암평림 오랜 안개비는 숲을 덮어 어둑어둑하네 林間有人無客識 임간유인무객식 숲 속에 사람이 있으나 알아 보는 이 없고 欸乃聲中萬古心 애내성중만고심 뱃사공 노 젓는 소리에는 만고의 근심이 서렸구나. 오곡은 무이구곡의 중심이다. 계곡 북쪽에는 은병봉(隱屛峰)이 우뚝 솟아있고 그 아래에는 주자가 세운 무이정사가 있다. 이 시의 높은 산은 은병봉을 가리키고, 평림(平林)은 무이정사로 들어가는 초입의 지명이다. 산은 높고 구름이 깊어 연우가 항상 평림의 입구에 가득한데, 나그네 즉 주자가 수풀 속을 거닐 때 들려오는 뱃사공의 노래 소리에 만고의 수심이 깊어지는 감정을 노래했다. 이 노래 중에서, "뱃사공의 노래 소리에 만고의 수심이 깊어지네"의 뜻인 "애내성중만고심(欸乃聲中萬古心)"은 "애내성중만고수(欸乃聲中萬古愁)"로 심청가의 범피중류 대목 등 판소리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폭포암 위 천유봉에서 본 오곡계.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갱의대(更衣臺) : 갱의대는 신선이 잔치에 가려고 계곡에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곳이라고 하며, 또는 선인이 신선이 되어 날아간 곳이라고도 한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호리동(狐狸洞) : 경의대를 지나면 까마득한 절벽 위에 작은 집이 있다. 호리동이라 하니, 여우굴이란 말이다. 명나라때 저명한 도사의 도량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남명정(南溟靖)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주자의 애정 고사가 담긴 곳이다. 六曲蒼屛繞碧灣 육곡창병요벽만 여섯 굽이 돌아 시퍼런 절벽은 푸른 물굽이가 둘렀고 茅茨從日掩柴關 모자종일엄시관 띠 집의 싸리문은 종일토록 닫혀있구나 客來倚櫂巖花落 객래의도암화락 객이 와서 노를 맡기고 나니 바위 절벽의 꽃은 지고 猿鳥不驚春意閒 원조부경춘의한 원숭이와 새들도 놀래지 않아 봄뜻이 한가하구나. 무이구곡은 육곡에 이르러 북쪽에 우뚝 솟은 폭포암(曝布巖)을 바라보며 휘감아 돈다. 폭포암에는 수천 수만의 물줄기 자국으로 쭉쭉 내리 뻗은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폭포암 아래는 산을 등지고 계곡을 앞에 둔 면계배산(面溪背山)의 그윽한 곳이어서, 주자는 이곳에서 저절로 바위 꽃이 떨어지고 원숭이와 새가 놀라지 않는 자연의 극치를 노래하였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폭포암(曝布巖) : 육곡에서 크게 물굽이를 치는 곳에 무이산 제일의 바위산이 있으니 폭포암(曝布巖)이다. 천유봉 아래로 도끼로 깎은듯한 수십 길의 바위가 절벽을 이루었는데, 수직으로 내리 뻗은 절벽에는 수천 수만의 폭포가 흐른 자국이 있어 마치 길다란 흰색 천을 걸어 햇볕에 말리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이름에 햇빛에 말릴 폭(曝) 자(字)가 들어간다. 그 웅장한 모습이 신선의 손바닥 같다고 하여 선장암(仙掌巖)이라고도 하였다. 암벽 아래에는 "벽립천인(壁立萬仞)"이란 석각이 있는데 "만길 절벽"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향성암(響聲巖) : 육곡에 들어서면 계곡 양쪽에 높은 절벽이 막아, 여기에서 소리를 지르면 양쪽 절벽에 메아리가 부딪치며 멀리 퍼져나간다. 그래서 이름하여 향성암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향성암의 절벽의 석각. 향성암의 절벽에는 송(宋) 원(元) 명(明)대의 마애석각(磨崖石刻) 20여개가 있다. 그 중에는 주자가 새긴 "서자여사"(逝者如斯)란 글도 있다. "서자여사(逝者如斯)"는 논어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물의 흐름에서 진리를 말씀한 것이다. 나무(南無)라는 불교 용어도 보이고, 공곡전성(空谷傳聲)은 텅빈 골짜기가 소리를 전한다는 뜻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바위산. 무이구곡의 곳곳에는 이렇게 우뚝 솟은 바위산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七曲移船上碧灘 칠곡이선상벽탄 일곱 굽이 돌아 배를 몰아 푸른 여울에 올라가니 隱屛山仙掌更看 은병산선장갱간 은병봉과 선장암을 다시 보게 되었구나 却憐昨夜峯頭雨 각련작야봉두우 오히려 가엾어라 어제 밤 산봉우리에 비 내리더니 添得飛泉幾度寒 첨득비천기도한 폭포의 물줄기는 얼마나 더 차게 되었을까? 칠곡에는 달공탄(獺控灘)이란 여울이 있다. 달공탄에서 아래쪽을 보면 육곡에 은병봉과 선장암(폭포암)이 보이고 석당이라는 커다란 바위가 솟아있다. 배가 칠곡으로 올라감에 은병봉과 선장암이 돌아보는 듯하고 석당이 하늘 높이 솟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삼앙봉(三仰峯) : 칠곡에 들어서면 멀리 삼앙봉이 보인다. 해발 717미터로 무이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커다란 세 개의 봉우리가 층층이 일어나 하늘을 향해 머리를 내고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렇지만 산이 높고 길이 험해 아직 계단이 없어 여기에 오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은병봉(隱屛峰) 만장단애(万丈丹崖)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도원동(桃源洞) : 높은 산이 물가에 솟아 절벽을 이룬 금계동(金鷄洞)을 지나 방생담(放生潭)의 물이 돌아가는 곳에 도교에서 말하는 이상세계인 도원동으로 들어가는 산문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도원동문을 들어서면 뽕나무와 연못이 있고 복사꽃이 만발한 이상세계가 그곳에 있다. 이태백의 산중문답에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복숭아 꽃은 아득히 물에 흘러가는데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별천지가 있으니 인간 세계가 아니로다. 그래서 이곳을 인간세계 바깥의 무릉도원(世外桃源)이라 한다. 八曲風烟勢欲開 팔곡풍연세욕개 여덟 굽이 돌아 바람 불어 구름이 개려 하는데, 鼓樓岩下水濚匯 고루암하수영회 고루암(鼓樓巖) 아래에는 물결이 돌아드네. 莫言此處無佳景 막언차처무가경 이곳에 아름다운 경치 없다고 말하지 말라 自是遊人不上來 자시유인부상래 여기서부터 지나는 이는 올라갈 수 없다네. 팔곡은 산이 높아 물살이 빠르고, 각종 동물 모양의 바위가 많다. 고루암 아래에는 사자모양을 한 바위도 있고, 거북 모양을 바위도 있다. 그런 팔곡의 정경을 사람들은 별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느덧 신선이 사는 곳이 가까왔음을 말하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품자암(品字巖) : 팔곡의 북쪽에는 3개의 커다란 바위가 품(品)자 모양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삼교봉(三敎峯)이라고도 하는데 이름에서 보듯이 유교(儒敎) 불교(佛敎) 도교(道敎)의 삼교를 가리킨다. 유가로 말하면 주자의 무이정사요, 불가로 말하면 극락국이요, 도가로 말하면 도원동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무이산의 보살상.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무이산의 도사상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쌍유봉(雙乳峯) : 팔곡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팔곡의 북쪽에 있다. 바위의 풍만한 모습이 어머니의 젖가슴과 같다고 하여 쌍유봉이라 한다. 연꽃 봉우리가 나란히 있는 모습이라고 하여 병연봉(幷蓮峯)이라고도 한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팔곡의 코끼리 상아 모양의 바위. 팔곡에는 사자, 낙타, 코끼리,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많아 물위의 동물원이라고 부른다. 九曲將窮眼豁然 구곡장궁안활연 아홉 굽이 다다라 눈앞이 훤히 트이는데, 漁廊更覓桃源路 어랑갱멱도원로 뱃사공은 무릉도원 가는 길 다시 찾아, 桑麻雨露見平川 상마우로견평천 뽕나무 삼나무에 비 이슬로 맺힌 평천(平川)을 보네 除是人間別有天 제시인간별유천 이곳이 바로 인간 세계의 별천지라네 중국인들“국가중점명승구역 중 여기가 제일” 무이산(武夷山)은 태산의 웅장함과 화산의 험준함, 황산의 기이함, 계림의 수려함을 모두 담고 있다. ‘동주에서 공자가 나왔고 남송에는 주자가 있으니, 중국의 옛 문화는 태산과 무이로다(東周出孔丘 南宋有朱憙 中國古代文化 泰山與武夷)’라는 말이 있다. 이렇듯 중국인들은 무이산을 극찬한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 쌍유봉(雙乳峰)과 무이구곡(武夷九谷). 무이산은 복건성과 강서성의 경계를 이루며 550km를 달리는 무이산맥의 주봉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이산은 복건성 무이산시에 위치한, 무이산맥의 지맥에 해당하는 ‘인간선경(人間仙境)’이라는 무이구곡(武夷九谷)과 무이정사(武夷精舍)가 있는 명승구를 말한다. 무이산 명승구로는 무이구곡계(武夷九谷溪)경구, 무이궁(武夷宮)경구, 천유(天游)경구, 도원동(桃園洞)경구, 호소암(虎嘯岩)경구, 일선천(一線天)경구, 수렴동(水簾洞)경구, 대홍포동(大紅袍洞)경구가 있다. 명승구 위쪽에 조금 떨어진 무이산 자연보호구는 중국 5대 자연보호구 중 하나이며, 무이산 주봉은 황강산(黃岡山ㆍ2,158m)으로서 사람들은 화동의 지붕이라고 말한다. 유독 명승지가 많은 중국에서도 “국가중점명승구역 중 무이산이 제일”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1999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문화유산에 등록되었으며, 36개의 큰 봉우리와 99개의 암봉, 8개의 고개, 11개의 골짜기,13개의 샘이 있어 山無水不秀 水無山不淸(산은 물이 없으면 수려하지 않고 물은 산이 없으면 맑지 못 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산이다. 중국 상해여행사 홍광해(洪光海ㆍ39) 과장과 무이산역에 도착하여 택시로 13km를 달려 무이산 시내 호텔에 여장을 풀고 오후 2시50분에 무이산 산문에 도착했다. 입산료가 1인당 150위안이다. 경내순환 승차장을 새롭게 단장하느라 페인트 냄새가 심하다. 각 방면의 명승지 관람 코끼리열차와 소형버스를 이곳에서 모두 타게 된다. 우리는 코끼리열차 종점에서 천유봉경구로 오르기 시작한다. 다리를 건너니 들머리 왼쪽엔 옛날 옥황상제가 목욕을 즐겼다는 경의대(更衣臺)와 천주봉(天柱峰)이 있고, 오른쪽엔 로마병정 머리 같은 대왕봉(大王峰)이 초가을 햇살을 받으며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옥계를 건너니 마이산 닮은 쌍유봉이 마음을 흔든다. 이곳 암봉들은 멀리서 보니, 신선이 산수화를 그리다 먹물을 쏟은듯 온통 먹빛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 은병봉(隱屛峰)과 정자. 자연석에 ‘주희원(朱憙園)’이라 쓰인 곳을 따라 발길을 옮겨본다. 거대한 은병봉(隱屛峰) 아래 자리 잡은 주희(1130-1200)의 무이정사(武夷精舍)는 정적만이 감돈다. ‘먼저 이치를 알고 행하라’(先知後行說)는 성리학의 선구자 주희는 왜 하필이면 무이산에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했을까 했던 의구심이 이곳을 찾으니 조금은 풀리는 듯하다. 이 산은 한대(漢代)에는 명산으로 봉해져서 유(儒), 불(佛), 도(道) 삼교의 자취가 아직도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무이정사에서 서원의 모범을 찾았고, 주자의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읊으면서 주자를 흠모했다. 그러기에 율곡 이이는 해주 석담에 은거하며 무이산 은병봉(隱屛峰)에서 이름을 따와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지었고, 무이구곡가를 본 따서 고산구곡가(孤山九曲歌)를 지어 우리 산천을 노래했다. 그 후에도 우암 송시열은 화양계곡에 은거하며 화양구곡이라 이름했다. 무이산 최고의 절경 천유봉 천유봉으로 향한다. 천유봉은 천 길의 절벽 위에 암봉이 우뚝 솟은 무이산 최고의 절경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천유봉을 武夷第一勝景(무이제일승경)라 했고, 천유봉에 오르지 않으면 무이산을 구경했다고 말하지 말라 했다. 천유봉은 높이로 말하면 삼앙봉에 미치지 못하고, 우뚝한 모습으로 말하자면 대왕봉에 미치지 못하고, 수려함으로 말하자면 옥녀봉에 미치지 못하고, 험한 것으로 말하자면 접순봉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천유봉은 무이산 최고의 절경으로 꼽으며, 천유봉에 오르면 도교의 이상세계인 봉래선경(蓬萊仙境)에 들어선다고 했다. 석문을 힘들게 빠져나오니 바위에 ‘구름집(雲窩)’이 위태롭게 걸려 있다. 주자가 달을 보며 시정에 취하고 술을 마셨다는 수월정(水月亭)에 올라 무이계를 조망해 본다. 파초 잎 너머로 천유봉이 또한 그림처럼 아름답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 천유각(天游閣)과 대왕봉(大王峰). 조금 더 올라 고석구(古石臼) 절구방아터가 있는 곳을 지나 수운료(水雲寮·수운마을) 유적지를 둘러보고 폐방을 통과하니 다동(茶洞)으로 들어서는 울창한 숲길이다. 무이산은 차가 많기로 유명하다. 조그만 바위틈새에도 차나무가 자란다. 무이암차(武夷岩茶)를 철관음이라고도 하며, 중국의 10대 명차 중 하나다. 다동에 들어서니 차향이 은은하다. 하늘 끝까지 암벽으로 둘러싸인 다동은 분명 인간세상과 동떨어진 별천지다. 절벽 아래 작은 터에 자란 차나무는 더욱 고고하고 청아해 보인다. 거대한 협곡 사이 仙浴潭(선욕담)은 선녀가 목욕을 한 곳. 이곳에서 쳐다본 하늘은 한 평 남짓해 보인다. 다동의 차나무는 쳐다보기만 해도 차향이 가슴 속을 파고든다. 다시 888계단의 천유봉을 오른다. 거대한 암봉 위의 지그재그 계단길은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난다. 난간을 붙잡고 구곡을 내려다본다. 낮게 깔린 물안개 사이로 실비단 같은 옥빛 물결 위로 점점이 꼬리를 문 뗏목의 풍광은 한 폭의 진경산수화다. 바위에서는 원추리꽃 한 송이가 저녁노을을 받아 붉은 얼굴로 가는 여름을 작별하고 있다. 일람정으로 가는 왼편 계단길로 오른다. 솔향이 은은하다. 바람 소리가 운치를 더해준다. 여기가 도솔천인가 무릉도원인가. 일람정에 올라 천유각을 바라보니 천유각의 붉은 지붕 너머로 고개를 치켜든 대왕봉이 유난히 멋스럽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 선욕담(仙浴潭)과 다동(茶洞) 차밭. 일람정을 내려서며 구곡계를 바라본다. 천유봉을 무이제일봉이라 하는 뜻을 이제야 알겠다. 발 아래는 옥계가 우리의 동강 물줄기처럼 굽이져 흐른다. 점점 낙조가 산천을 물들이니 이곳이 선계(仙界)인가 천계(天界)인가. 산을 내려와 접순봉(接荀峰) 암차(岩茶) 찻집에서 대홍포차 한 잔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무이구곡 뗏목 유람을 하기 위해 오전 7시에 무이산 산문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8시에 뗏목이 한꺼번에 출발하면 2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인산인해를 이루어 아수라장이다. 벌써 표는 매진되었다. 우리는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웃돈을 주고 가까스로 승선했다. 꼬리에 꼬리를 문 뗏목들은 6명씩 정원이 차면 서둘러 출발한다. 1곡에서 9곡까지 거리는 9.5km에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무이구곡 뗏목 유람객들로 아수라장 무이구곡은 남송 때 주희(朱憙)가 무이산 아홉 굽이의 비경에 반하여 구곡가를 지은 데서 나온 말이다. 9곡에서 뗏목을 타고 1곡으로 내려간다. 주희는 극락국(極樂國)이 있었다는 9곡에 이르러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고 하여 ‘뱃사공은 다시금 무릉도원 가는 길을 찾지만, 이곳이 바로 인간 세계의 별천지라네(魚郞更覓桃源路 除是人間別有天)’라고 읊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 이태백이 낚시하던 선조대(仙釣臺). 여인의 젖가슴을 닮은 8곡의 쌍유봉(雙乳峰), 도교의 이상세계인 도원동(桃園洞)산문이 보이는 7곡, 무이산 제일의 바위산 포쇄암(선장암)이 있는 6곡, 주희가 학문했던 무이정사를 왼쪽에 둔 5곡, 강태공이 낚시를 드리웠다는 4곡의 선조대(仙釣臺), 3천년을 버텨온 홍판교(虹板僑)와 가학선관(架壑船棺)이 있는 3곡을 지났다. 수려함을 뽐내는 2곡의 옥녀봉(玉女峰)과 우뚝하게 솟은 1곡의 대왕봉(大王峰)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 얘기가 애틋하다. 무이산 박물관을 거쳐 무이궁으로 가는 길은 고풍스러운 옛길이다. 무이정녕(武夷精英) 고 건축물 앞에 함께 뗏목을 탔던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주희가 심었다는 宋桂(송계ㆍ송대에 심은 계수나무)는 수령이 이미 892년이라 거대한 고목이 되어 있다. 대왕봉을 올랐다. 시원한 그늘과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마음을 청결케 한다. 끝도 없는 지그재그 계단길에선 땀이 비 오듯 하고 숨은 목까지 찬다. 대왕정에 올라 숨을 돌리고 조금 오르니 암벽 아래 ‘오심(悟心)’이라 쓴 이끼 낀 석문에는 담쟁이가 무성하다. 누군가 생활했던 작은 터엔 바위에 홈을 파서 떨어지는 낙수를 받아 놓을 수 있는 작은 물탱크도 있다. 이렇게 식수를 구하며 어느 도사가 거처했던 모양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 대홍포동(大紅袍洞)과 대홍포 차나무. 계천처(階天處ㆍ하늘로 오르는 사닥다리)라 표시된 바위틈새의 계단을 붙잡고 겨우 올라서니 대왕봉(432m)과 투양동(投陽洞ㆍ30m) 갈림길이 나온다. 우선 투양동을 들렀다. 투양동굴에는 앞서 간 중국 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가 자리를 내어주며 앉으라 한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전방을 조망하니 신선이 절로 된 기분이다. 지지암과 꼬리를 문 뗏목유람선과 건너다보이는 연암봉들, 바위틈의 작은 무이암 차밭은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세속의 찌든 가슴 모두 털어버리고 나더러 풍류나 즐기며 살라 한다. 차향을 싣고 산 아래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한층 신선하다. 대왕봉 정상에는 우리의 어느 산처럼 통신안테나가 우뚝 서 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볼 것이 없다고 극구 등정을 만류했나 보다. 대왕봉 정상에서 무이산 시내를 내려다본다. 부촌과 빈촌이 어우러져 있다. 이들은 상대적 빈곤을 느끼기보다는 저마다의 타고난 복이 있다고 믿으며 지극히 낙천적으로 자기생활에 만족하며, 극히 운명론적이다. 그래서 이들은 암묘를 찾아 복을 빌 줄도 모른다. 정상을 내려서려는데 바람이 가지를 세차게 흔든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 무이산 낙조. 오후 2시가 되어 대홍포동을 찾았다. 대홍포동을 들어서니 은둔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참으로 심산유곡이다. 이런 곳에서 생활하면 무지렁이도 도인이 될 것 같다. 검은 바위협곡에 한 평도 못되는 차밭이 여기저기 있다. 맑은 계곡에 물소리가 요란하고 산천어가 때를 지어 유영하고 있다. 차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검은 절벽 아래 대나무로 만든 차방을 지나 황제에게만 진상했다는 대홍포 차나무를 친견한다. 거대한 바위 중턱에 축대를 쌓은 곳에서 360년이 되어도 키가 1m 남짓 되는 대홍포차 3그루가 자라고 있다. 1년에 차 생산량이 500g밖에 안 된다고 하니 값을 말할 수가 없다. 지금도 국가에서 특별 관리를 하고 있다. 신선이 되어 산수경계를 동시에 즐기고 싶으면 무이산을 찾아가라. 그곳은 기승절경에 차향이 가득한 곳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 ◆ 내용 이해 남송 때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자가 지금의 중국 복건성 무이산(武夷山) 계곡의 아홉구비(九曲) 경치를 노래한 것이다. 주자는 무이구곡 제 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무이구곡가를 지었는데, 첫 수를 제하고는 무이구곡의 산과 물의 경치를 묘사하고 있으며, 자연묘사가 주가 되지만 그 이면에는 도학(道學:성리학)을 공부하는 단계적 과정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武夷山上有仙靈 山下寒流曲曲淸 欲識箇中奇絶處 櫂歌閑聽兩三聲 무이산상유선영 산하한류곡곡청 욕식개중기절처 도가한청양삼성 무이산 위에 선영(仙靈)이 있으니, 산아래 흐르는 한류가 굽이굽이 맑네. 그 가운데 빼어난 곳을 알고자 하니, 돛대 노래(櫂歌)를 한가히 두 서너 소리 들어보세. 일곡(一曲) 一曲溪邊上釣船 만亭峰影잠晴川 虹橋一斷無消息 萬壑千巖鎖翠煙 일곡계변상조선 만정봉영잠청천 홍교일단무소식 만학천암쇄취연 일곡 시내가에서 낚시배에 오르니, 만정봉이 맑은 물속 푸른 하늘에 잠겨있네. 무지개 다리는 한번 끊어진 후 소식이 없고, 골골마다 암봉에는 비취 빛 안개가 자욱하네. 이곡(二曲) 二曲停停玉女蜂 揷花臨水爲誰容 道人不複荒臺夢 興入前山翠幾重 이곡정정옥녀봉 삽화림수위수용 도인불복황대몽 흥입전산취기중 이곡에 우뚝 솟은 옥녀봉이여, 꽃을 꽂고 물가에 서 있으니 누구를 위해 꾸몄는가. 도인은 황대몽(荒臺夢)을 다시 꾸지 않는데, 흥에 겨워 앞산에 들어가니 푸르름이 첩첩이네. 삼곡(三曲) 三曲君着袈壑船 不知停櫂幾何年 桑田海水今如許 泡沫風燈敢自憐 삼곡군착가학선 부지정도기하년 상전해수금여허 포말풍등감자련 삼곡에서 그대는 골짜기에 매어 둔 배를 보았는가, 노젖기를 그친 지 몇 해인지 모르겠네.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된 것이 지금부터 언제런가, 물거품같고 바람앞 등불 같은 우리 인생이 가련하다. 사곡(四曲) 四曲東西兩石巖 巖花垂露碧攬(毛+監)참 金계규罷無人見 月滿空山水滿潭 사곡동서양석암 암화수로벽람 참 금계규파무인견 월만공산수만담 사곡의 동,서쪽에는 두개의 바위산이 있는데, 바위틈 꽃에는 이슬이 맺혀 푸르르네. 금닭(金鷄)이 울어 아침을 열지만 아무도 본 이가 없고, 달은 텅빈 산에 가득하고 물은 못에 가득 차있네. 오곡(五曲) 五曲山高雲氣深 長時煙雨暗平林 林間有客無人識 欲乃聲中萬古心 오곡산고운기심 장시연우암평림 임간유객무인식 욕내성중만고심 오곡은 산이 높고 구름 기운이 깊어, 오랜 안개비에 평림(平林)은 어둑하네. 숲사이의 나그네를 알아보는 이 없고, 뱃사공의 노래 소리에 만고의 수심이 깊어지네. 육곡(六曲) 六曲蒼屛요碧灣 茅茨終日掩柴關 客來倚櫂巖花落 猿鳥不驚春意閑 육곡창병요벽만 모자종일엄시관 객래의도암화락 원조불경춘의한 육곡의 시퍼런 병풍 바위는 푸르른 물굽이를 둘렀고, 띠로 이은 집 종일토록 사립문 닫혀있네. 나그네가 노에 몸을 기대니 바위에서 꽃이 떨어지는데, 원숭이와 새들은 놀라지 않고 봄의 정취는 한가롭네. 칠곡(七曲) 七曲移船上碧灘 隱屛仙掌更回看 人言此處無佳景 只有石堂空翠寒 칠곡이선상벽탄 은병선장경회간 인언차처무가경 지유석당공취한 칠곡에 배를 몰아 푸른 여울에 올라서, 은병봉과 선장암을 다시금 돌아보네. 사람들은 이곳에 좋은 경치가 없다지만, 텅빈 하늘에는 석당(石堂)이 해맑게 솟아있네. 팔곡(八曲) 八曲風煙勢欲開 鼓樓巖下水영회 莫言此處無佳景 自是遊人不上來 팔곡풍연세욕개 고루암하수영회 막언차처무가경 자시유인불상래 팔곡에 바람 불어 구름이 개려 하는데, 고루암(鼓樓巖) 아래에는 물이 돌아드네. 이곳에 좋은 경치가 없다고 말하지 말게, 여기부터 속인은 올라갈 수 없다네. 구곡(九曲) 九曲將窮眼豁然 桑麻雨露見平川 漁郞更覓桃源路 除是人間別有天 구곡장궁안활연 상마우로견평천 어랑갱멱도원로 제시인간별유천 구곡에 다달으니 눈앞이 훤히 트이는데, 뽕나무 삼나무(桑麻)에 맺힌 이슬, 평천(平川)을 바라보네. 뱃사공은 다시금 무릉도원 가는 길을 찾지만, 이곳이 바로 인간 세계의 별천지라네.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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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 - 주자 - 무이산 위에 선영(仙靈)이 있으니, 산아래 흐르는 한류가 굽이굽이 맑네. 그 가운데 빼어난 곳을 알고자 하니, 돛대 노래(櫂歌)를 한가히 두 서너 소리 들어보세. 武夷山上有仙靈 山下寒流曲曲淸 欲識箇中奇絶處 櫂歌閑聽兩三聲 무이산상유선영 산하한류곡곡청 욕식개중기절처 도가한청양삼성 일곡(一曲) 일곡 시내가에서 낚시배에 오르니, 만정봉이 맑은 물속 푸른 하늘에 잠겨있네. 무지개 다리는 한번 끊어진 후 소식이 없고, 골골마다 암봉에는 비취 빛 안개가 자욱하네. 一曲溪邊上釣船 만亭峰影잠晴川 虹橋一斷無消息 萬壑千巖鎖翠煙 일곡계변상조선 만정봉영잠청천 홍교일단무소식 만학천암쇄취연 이곡(二曲) 이곡에 우뚝 솟은 옥녀봉이여, 꽃을 꽂고 물가에 서 있으니 누구를 위해 꾸몄는가. 도인은 황대몽(荒臺夢)을 다시 꾸지 않는데, 흥에 겨워 앞산에 들어가니 푸르름이 첩첩이네. 二曲停停玉女蜂 揷花臨水爲誰容 道人不複荒臺夢 興入前山翠幾重 이곡정정옥녀봉 삽화림수위수용 도인불복황대몽 흥입전산취기중 삼곡(三曲) 삼곡에서 그대는 골짜기에 매어 둔 배를 보았는가, 노젖기를 그친 지 몇 해인지 모르겠네.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된 것이 지금부터 언제런가, 물거품같고 바람앞 등불 같은 우리 인생이 가련하다. 三曲君着袈壑船 不知停櫂幾何年 桑田海水今如許 泡沫風燈敢自憐 삼곡군착가학선 부지정도기하년 상전해수금여허 포말풍등감자련 사곡(四曲) 사곡의 동,서쪽에는 두개의 바위산이 있는데, 바위틈 꽃에는 이슬이 맺혀 푸르르네. 금닭(金鷄)이 울어 아침을 열지만 아무도 본 이가 없고, 달은 텅빈 산에 가득하고 물은 못에 가득 차있네. 四曲東西兩石巖 巖花垂露碧攬(毛+監)참 金계규罷無人見 月滿空山水滿潭 사곡동서양석암 암화수로벽람 참 금계규파무인견 월만공산수만담 오곡(五曲) 오곡은 산이 높고 구름 기운이 깊어, 오랜 안개비에 평림(平林)은 어둑하네. 숲사이의 나그네를 알아보는 이 없고, 뱃사공의 노래 소리에 만고의 수심이 깊어지네. 五曲山高雲氣深 長時煙雨暗平林 林間有客無人識 欲乃聲中萬古心 오곡산고운기심 장시연우암평림 임간유객무인식 욕내성중만고심 육곡(六曲) 육곡의 시퍼런 병풍 바위는 푸르른 물굽이를 둘렀고, 띠로 이은 집 종일토록 사립문 닫혀있네. 나그네가 노에 몸을 기대니 바위에서 꽃이 떨어지는데, 원숭이와 새들은 놀라지 않고 봄의 정취는 한가롭네. 六曲蒼屛요碧灣 茅茨終日掩柴關 客來倚櫂巖花落 猿鳥不驚春意閑 육곡창병요벽만 모자종일엄시관 객래의도암화락 원조불경춘의한 칠곡(七曲) 칠곡에 배를 몰아 푸른 여울에 올라서, 은병봉과 선장암을 다시금 돌아보네. 사람들은 이곳에 좋은 경치가 없다지만, 텅빈 하늘에는 석당(石堂)이 해맑게 솟아있네. 七曲移船上碧灘 隱屛仙掌更回看 人言此處無佳景 只有石堂空翠寒 칠곡이선상벽탄 은병선장경회간 인언차처무가경 지유석당공취한 팔곡(八曲) 팔곡에 바람 불어 구름이 개려 하는데, 고루암(鼓樓巖) 아래에는 물이 돌아드네. 이곳에 좋은 경치가 없다고 말하지 말게, 여기부터 속인은 올라갈 수 없다네. 八曲風煙勢欲開 鼓樓巖下水영회 莫言此處無佳景 自是遊人不上來 팔곡풍연세욕개 고루암하수영회 막언차처무가경 자시유인불상래 구곡(九曲) 구곡에 다달으니 눈앞이 훤히 트이는데, 뽕나무 삼나무(桑麻)에 맺힌 이슬, 평천(平川)을 바라보네. 뱃사공은 다시금 무릉도원 가는 길을 찾지만, 이곳이 바로 인간 세계의 별천지라네. 九曲將窮眼豁然 桑麻雨露見平川 漁郞更覓桃源路 除是人間別有天 구곡장궁안활연 상마우로견평천 어랑갱멱도원로 제시인간별유천 ◆ 내용 이해 남송 때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자가 지금의 중국 복건성 무이산(武夷山) 계곡의 아홉구비(九曲) 경치를 노래한 것이다. 주자는 무이구곡 제 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무이구곡가를 지었는데, 첫 수를 제하고는 무이구곡의 산과 물의 경치를 묘사하고 있으며, 자연묘사가 주가 되지만 그 이면에는 도학(道學:성리학)을 공부하는 단계적 과정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moosimja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