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차
정제된 가을공기를 실컷 훔쳐 마시고
못내 찔리는 마음에 가을 만원어치를 샀습니다
따뜻한 물에 우리면
여기서 훔친 가을이 노랗게 배어 나와서
드리지 못한 내마음이 녹아 나올거라고
아까운 마음없이 구겨진 지폐한장을 내밀었지요
구겨진 지폐가 안쓰러운지 가을 한줌 더 얹어준 인심
낙엽 잠기운 개울속 버들치
급하게 우려진 내 맘 본듯이 살랑이는 몸짓이
그대인 듯 하여 설레는 가슴 한조각 물이 드는데
산도 들도 부처님 미소도
내게는 오로지 주고픈 조바심으로 녹아진 가을
말갛게 개인 하늘이 산자락으로 내려 앉아 부끄럽습니다
억새꽃
바람이 일면 이는 쪽으로 하얗게 무리지어
일렁이는 하얀 꽃 너울처럼 나풀 거리며
꽃잎이 바스스 부서지고 바람따라 가을
여행 이라도떠나려 는지 빛 바랜 억새꽃이
어스럼 하늘가에 떠있는 달빛보다 더 고은
은은 한 은회색 의 꽃 으로 아름다운 들녁 을
수 놓으며 바람 을 등지고 부서 졌다 일어나고
일어났다 부서짐 을 반복하며 가을 저녁 을
색칠 을 하고 불어오 는 바람 에 휘날 리는
눈 꽃처럼 너울 너울 춤을추며 떠나는 가을로
여행이라도 떠나려는지 출렁이는 은빛의
바다에 바람 아씨 심술 로 못다 핀 갈대 꽃의
애절 한 몸부림 으로 삶을 정리하는 작은 그림
그림 자로 너훌 너훌 춤을추며 하얀 자락날리니
희미해진 들녁에 가을이 자리하고 곱게 피운
갈대 꽃 의 애절한 몸부림에 가을밤이 깊어가네
강변역
파란가을 하늘이 울어버릴 것같이 시린어느 날
출근 을 하기위해 동동 거리며 새벽 을 나서면
제일 먼저 나를 반겨주는것은 활짝 피어 향이고은
노랑색 분홍색 자주색 힌색 국화꽃 이 곱게 피어
오고 가는 길손에게 눈 인사로 가을 향기를 나누며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 들에게 하루의 행복 을
조금씩 나누며 어둑해진 저녁이면 도회지에도
가을이 저만큼 멀어진 강둑을 바라 보면서 살포시
스멀대는 그리움에이고 있던 파란 하늘 을 저만치
보내고 금방 아라도 울것 같아서 올 려다 보려니
아리한 추억만 그림자 처럼 다가오고 향내음 진한
아스라한 그리움이 발길을 잡기에 내릴 정거장 도
잊은채 아침 햇살에 부서지는 강물을 바라보며
가을 이 쉬어 가는 작은 밴취 위에햇살이 쉬어간다
시간 속 으로
속절 없이 세월 은 어디로 인지 떠나며
스산한 가을 바람에 낙엽이 춤을 추듯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곳으로 떠나고
물결이 치면 물결이 치는 곳으로 흐른다
소슬바람 소슬거리니 갈대 의 흔들림이
서걱 서걱 거리며 긴겨울 의 문턱에 선채로
달랑 한장 남겨진 쓸쓸 한 달력장 은
뭔가의 아쉬움 을 남겨두고 세월 의
뒤안길 에 소리없이 내려앉는 어두움
처절해진 삶 의잔상 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무의미 하게 가버린 시간들이 아프게
다가오며 또 다른 내일을 향해 쉬임 없이
흐르는 시간 속으로 내일을 향해 가지만
퇘색돼어 색이 바랜 달력 장 위로 안스러운
세월이 겹처지며 또 다른 내일 을 기다린다
가을 視畵
푸른 화선지 위에
붉은 물감
노랑물감
푸른물감
찍어
나뭇잎 만들고
봉우리 만드니
울긋불긋
한폭의 視畵(시화)되고
검은 물감 듬북 묻혀
점점이 찍으니
만물상 바위 탄생하였다
잔잔한 저수지
형형색색
거울되어
잔치 벌인 곳
청둥오리
낙엽 따라 한가롭다.
나 홀로 남아
산을 찿는 나그네들의
북적임이 사라지고
나홀로
새소리와 냇물 소리에 취해
산사로 향하는
외로운 방황
서산마루 해 떨어 지고
주변에는
적막이 감돈다.
세 마리
백색 산 짐승의
섬광이 길을 막는다
소리 질러
인광을 드러내니
여섯 개의 섬뜻한
광채가 사라졌다.
지팡이 소리 콕 콕
낙엽 밟는 소리 사르륵 사르륵
배낭 쇠고리 철크덕 철크덕
소리 높여 부르는
내 노래 만이
나를 감싼다.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을 바라보며
내려오는 길
두려움 과 쓸쓸함이
교차한다
시골의 달
간만에..
시골을 향해 달렸다
시려오는 바람 헤치며
아직도 추수하지 않은 들녁
허수아비도 애처롭다.
허우적 거리며 다가선 자리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이미 낮선 곳이 되어 버린 지금
밤의 정적속 시간은
고요 하게 흐르고
휘영청 밝은 달
고독속에 묻혀 늘 따라 다닌다.
내마음을 아는건지..
머리 맡에 언제나 비춰 주는
시골의 달빛
한자락의 세월이
시련의 아픔으로
나를 유심히 살핀다.
아~
이밤이 무섭도록
너는 떠나려 하지 않는구나.
떨쳐 버릴려 달래보지만..
시리디 시린 마음
정작 있어야 할 내 자리엔
그가 보이지 않는다.
시골의 달
너가 있기에...
운길산 수종사
구름이 하늘로 올라가는 길은
남양주 조안면(面)이 본적 지(地)
이름은 운길산(雲吉山)
경기도 양수리대교에서
서북으로 향해 높은 산을 바라 다 보면
하늘귀퉁이 운길산자락 오막살이 한 채
수종사 부처 댁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남향 양평을 지켜보며 살고 계신다.
남한강 북한강 두 물줄기 합쳐 양수 천(川)이
구름으로 물안개로 사시절 운무 춤
부처도량 공양하고 승천하는 진풍경
아무래도
부처 댁이 거느리는 행자 승인가
대웅전 보물이 5층 석탑
절간 문지기 은행나무 천년지기부부
양수 천 보살, 행자 승이
밤새도록 우려 올리는 물안개 차(茶)를
슬기롭게 만끽하며 살아가는 모습
참, 부럽다
십년 전에 빼앗긴 넋, 갈 때 마다 빼앗기고
허기지는 육신에 채워주는 비빔밥은
자비 부처가 베푸시는 맛있는 공양
찌들은 세월에 때 묻은 객(客)이 챙겼다.
바닷가 쪽방 죄인
검푸른 파도 몇번의 자맥질끝에
수평선너머 아스라이 사라져간
그대의 환영 뒤로하면서
더 이상의 배웅은 없으리라
입술 깨물어 다짐했던 그리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났나보다.
어느새 가던 발길 되돌렸나
새파랗게 질린 그리움의 너울
휘청대는 내 그림자 따라와서는
달 빛 젖은 창살에까지 차올라
애먼 천정마저 꿇어앉힐 기세다.
포구 귀퉁이 허름한 쪽방이
통째로 출렁이는 이 밤
매몰차게 떨쳐내지 못한 미련
스스로 용서 못할 형벌이 되어
시린 가슴에 대못으로 꽂힐 줄이야.
깨금발이
주차장으로 향하던
구두밑창에 소름을 돋우며
뭉개지던 나방의 주검에
영 께름칙한 출근길이었는데,
외면할 수 없는 일터로
절름발이 된 나를
실어 나르던 타이어에
악몽처럼 묻어나는
들 고양이의 피 와 살점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편안히 발 디딜 곳이라곤
도무지 마땅치 않은
이 험하디 험한 세상.
아~
기약 없이 되풀이되는
피곤한 나의 깨금발이여!
두 할머니는...
이기 누고
얼매만이고
그래,
서로 얼굴을 매만지며
니도 쭈그렁 망태가 되었다.
하아,
언니만 나이묵나
내도나이 묵는다.
그래,
니 세상도 가고
내 세상도 가는 갑니다.
두 할머니는 ...
애인
책장이, 펄럭거려요 책장 속으로
내 여자가 死角死角 걸어가요
표지 위로 빛이 스러진 현실은
현재진행형의 새드무비,
가슴이 달그락거려요 나면서,
휘발성 물질로 상속받은
내 몸은 항상 건조해요
영화에서처럼 꼭꼭 숨어버린 그녀에겐
나는 늘 차가운 速讀의 남자
누가, 모래시계를 뒤집어 주세요
인생역전에 한 번쯤은
반전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죠
모래알만큼 심장박동 수를 잘 맞춰주세요
마른 피가 잘록한 심장을 통과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책장이, 펄럭거려요 책장 속으로
내가 思角思角 걸어가요
마침내 거울이, 출렁거려요
거울 속, 내 여자가 보여요.
종각 2번 출구
종각 2번 출구
서툰 도시와
익숙한 한 자리
상경한 아낙의
더딘 발걸음
한번도 그 커피숖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추억에 매달려
복잡한 소음 뒤로 한 채
산 동안 몇번의 행보
굳이 종각이어야 하는
그것은 낡음이 주체여서
그리움은 낯설어도
고삐에 묶인 듯 서성인다
해거름으로
온전치 못한 육신이
꿈꾸는 시간에도
아마 되돌아
다시 그 자리에 설
종각 2번 출구
값 비싼 커피집
낯선 담 안.
산 세(山勢)
출렁이는 것은
물결만이 아니다
등성에 흐르는
푸른 흔들림
콧등 씻기는 바람 유정有情
굽은 허리 휘돌아 칠 때 쯤
휘파람 소리내며 걷던
시어미
잦은 발자국은
가슴 태우던 날의 모정母情
양분 빼앗긴
강 건너 검은 토양이
쇳소리로
흐느끼던 밤에도
도도히 눈감아 버린 무정無情
속곳마저 벗어버린
가녀린 가슴에
다시 거두어질
아픔같은
그대 손길 애정曖情
겨울-1
봄을 부른다
네 길 가고 있는 듯 해도
어둠 안에 묶인
해를 부르며
갖은 꿈들이 자라는 둥지
겉으로 보이는 것에
사람들은 욕망 잃은 듯
안개길 걷는 수용자처럼
좌절을 품지만
곧
돌이키지 않아도 돌아 올
움트는 희망을 만날 일에
부풀며 널 품는다
세속에 떨어져 울부짖다
잠에 빠져버린 중
눈 뜬 날 아침.
야참
혼자 있는 남자가
혼자 사는 여자에게
술국을 주다
은행잎이 부서진 소주를
뜨거운 국물에 넘기고
홍합살을 씹는다
외로움을 받는다
바라보는 말과
씹는 입술로 답하는 침묵
흐뭇한 진실은
짧은 어둠을 행복하게 물들고
새벽이 오면 다시
남이 될 것을
시인
신간코너 뒤
의자 두 번째 칸에 앉아
시를 읽다
시가 문득 보여
시를 흘기다
시를 쓰고
시를 내놓지 못하고
내 속에 가득하다
시를 쌓아놓고
주지 못한 체
독자 밖에서
시를 읽다
시인의 이름 모른 체
책이 없는 시인이
물이 미처 마르지 않는
시를 넘긴다
비가새는집
어머니
아버지가 버려둔 길목엔 버려진 우리가 있었지요
또 한 , 우린 세식구 였지만 어머닌 항상 혼자셨지요
아버지가 없는 어머니는 혼자셨고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우리는 둘이지만 혼자입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버려둔 길목엔 버려진 우리가 있었지요
또 한 , 우린 두형제지만 우린 항상 혼자입니다
지붕이셨던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지금
우린..비가 새는 집의 기둥일 뿐입니다 어머니..
봄 여사
봄 여사였다
봄이되면 산에가 풀뿌리도 뽑고
남편 산소 찾아 술 한잔 거들고
꽃내음에 취해 실없이 웃기를 수십번
삶 자체가 고통 이셨을 님께선
항상 해맑은 얼굴로 바람앞을 막아주셨지
밤 , 몰래 남편 앨범보며 울고
그것이 자기 혼자 버려둠에 흘린 눈물인지
보고싶음에 흘린 눈물인지..
어머니 ,
어머니로 인해 평생 흘릴 눈물 다 보내드립니다
어머니의 유일한 친구였던 TV..
말동무가 필요했던 어머니
제게 조금만 더 있다 가라며..
옛날 재미난 이야길 펼쳐놓으셨던 어머니..
후회가 되고 또 후회가 되고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날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날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강하게..성장하고 있습니다..
적적하게 만드신거 정말 죄송합니다..무엇보다 외롭게 만드신거
정말 죄송합니다..글로써 몇천자가 되도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꿈
꿈을 꾸고 꿈을 쫒고 악몽을 꾸고 악몽을 쫒아내고
그러다 허비한 세월에 눈물흘려 통곡하고
그러다 문득 사랑하는사람 꿈에 나타나
그리움이 번지고
꿈이라는곳에 그리움이라는 먹물 하나 ,
허비한 세월의 먹물 둘
사랑했던 사람의 추억 셋
그렇게..그렇게 채워가다 터져버리는것
꿈..
결국엔 펑하고 사라지는 그것.
모든걸 가질수도 버릴수도 없는
그것
꿈
나홀로
알고보면 세월은 무심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았던 거
내가 무지하게 보낸 일들을 세월탓을 하리
지나갈줄만 알았던 세월은 돌이켜 볼수있는 회상을 줬고
회상했던 그것엔 후회만 있었는데
그것 또한 내가 벌인 일들
누구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으며
누구의 짐이 되었고
누구의 가슴이 되어주지 못했으며
누구의 가슴에 안기길 바랬지
나홀로 가는 여정엔 세월탓 바람탓 추웠던 겨울탓
쓸모없는것
한때 피가 역류해 신열에 쌓였을때
그곳엔 나홀로
피차 세월은 함께가 아닌 나홀로 아니었나
혼자가는 길
그 길또한 누가 밟았던 길
탓할것 없는 못났던 과거
나홀로 벌인일.
나홀로 파헤쳐 가야할 길.
비가새는집
어머니
아버지가 버려둔 길목엔 버려진 우리가 있었지요
또 한 , 우린 세식구 였지만 어머닌 항상 혼자였지요
아버지가 없는 어머니는 혼자셨고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우리는 둘이지만 혼자입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버려둔 길목엔 버려진 우리가 있었지요
또 한 , 우린 두형제지만 우린 항상 혼자입니다
지붕이셨던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지금
우린..비가 새는 집의 기둥일 뿐입니다 어머니..
당신의 방
밤이면 밤마다
붉기를 거부한 푸른 시간의 그대는
수많은 별들과 유영하며 능놀아치고
살아있음의 흔적,
희멀건 저음의 물안개가 온통 나를 회칠하는 순간
미혹한 육신,
본능보다 앞선 세이렌의 요나한 시위 는
비로소 오랜 그리움의 여정을 당긴다.
늘 마음만 진행형으로
날이면 날마다
그대의 방 문앞에서 되돌려진 지밀한 발길
이제 벅차게 들고 온 가슴에 반려란 없음이다.
오로지 그대 갈피에 낡은 시(詩) 되어
살핏하게 꽂히는 것이 전부일 뿐
우리들 접힌 나이 수만큼 미치게 사랑하는 일만 남았어라.
금기사항
말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처음엔 아무런 욕심이 없었지.
슬그머니 눈을 마주치고
엉겁결에 땀 밴 손 맞잡고
가빠진 숨 귓속에서 전율할 때만 해도
너는 그저 뜻 없는 의미로만 남았었지.
사랑은 늘 그렇게 여물어 가는 것인가
뜨거운 혀들이 깊은 곳을 왕래하고
밋밋한 둔덕이 너의 것으로 샘을 이룰 때마다
바램과 기대
소유와 질투가 함께 패이고 있을 줄이야.
무너진 불문의 경계는 보루를 위협하는 핫라인,
외사랑에 머물지 못한 가슴앓이의 톡톡한 대가에
나는 그만,
쉽사리 슬퍼져 울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지네.
2007 시창작반 작품
*수형자(受刑者)
다가오는 미래와 부딪치며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삶도 젊음도 다 잊은 채
의연하게 맞아들이는 사람들
욕설하며 저주하는 사람들
무언가에 이끌려 두려움 가득한 사람들
미소를 띠우며 깊은 잠에 빠지는
평온한 사람들
사람마다 어찌 이리 다른 것인가
삶의 끝은어디인가
모두가 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그토록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것인가
수형자라는 허물에 갇혀
영원보다 길었던 시간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순금보다도 값진 교훈
그대들은 아는가.
*가끔씩
아무리
눈물겨운 삶일지라도
가끔씩 하늘을 보자
못 견디게
삶이 그대를 괴롭히더라도
가장 소중했던 기억
한 다발 꽃으로 엮어
넓은 바다에 띄워 보내자
지금 가는 이 길이
어차피 예정 된
길이라면
가끔씩 그 자리에 서서
눈 감고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자
가끔씩, 가끔씩은
그렇게 살자.
*봄
솟은 보리 싹
허연 밑동엔
아지랑이 숨어 있고
들 너머 맞닿은
하늘로 짙은 치자 빛깔이
보리 빛과 섞이어 번진다
햇살 숨으면
보리 밟던 사람들
선술집 찾아 헤매고
들녘에는 앞바람이
성큼 겨울을 밀어 낸다
사방이 새싹 틔운
볼 붉은 날에.
*조강지처
갈래머리
봄빛 가르며
꽃길 따라온 그녀
만삭의 몸
양수가 터져
또 다른 나의 분만으로
행복을 준 당신
지금,
외발로 절뚝이며
외줄 타는 너를 본다
흔적 안, 상처는 아프고
워낭도 흔들려
일그러져 우는 심장을 찔러대도
오늘은
그녀를 지키고 싶다
**워낭-마소 턱밑에 달아 놓은 쇠 방울
*갈수 없는 곳으로
갈수 없는 곳으로 떠나려 한다
아카시아 향 가득한 산동네
동무들과 뜀박질하던
정 깊은 놀이터
갈수 없는 곳으로 떠나려 한다
콧물 훔치던 소년의 누런 옷소매
해질 녘
아이를 부르는 어머니의 음성
갈수 없는 곳으로 떠나려 한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추억이 머문 자리
눈 안 가득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도
갈수 없는 그곳으로
발 내 딛는다
*덤
운동장 한 모퉁이
네잎클로버를 찾는 사람들
숨은 잎을 위하여
무참히 짓밟힌 세 잎 클로버
작은 행복을 위해
짓밟힌 수많은 행복은
젖어 있으므로 소중함을 잊고
한 번의 행운에 목숨 건 시간
진정 찾고 싶었던 행복은 무엇일까
오늘도 복권 상점 앞을 서성이는
많은 이들이여
행운은 행복을 누리는 중에
덤일 뿐이라오.
*엄마
꽃길 올 때 가져왔다는
엄마의 자개장엔 바다가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
조개잡이로 한 평생
짓눌린 희로애락은
두둑해지는 쌈지주머니
주름살마다 낀 인생의 때
어머니 쌈지주머니엔
사랑과 정이 들어있어 행복하다
*머루주머니
등태 메고 산에 오르시는
할아버지 뒷모습에서
성성한
삶의 시간이 발휘된다
허리춤 한 쪽에 매단
주머니를 살며시 내보이며
머루하고 달래 한가득
따 주시더니
어느 날엔 어둑해지고
부엉이 울어 캄캄한 밤에
산허리에 공룡 발자국 따라
떠나셨다
여름 바람 불어 올 때면
할아버지의 머루주머니가
더욱 그리워진다.
*잡초
정작
있어야 할 자리 마다고
늘 무익한 곳에 뿌리 내리는
근심 덩어리
그럴 듯
아닌 듯
얼굴 감추고 흔들거리다
어느새 쑤욱
올라와 드러난 그대
있는 힘 다해
당겨도 미동 없는
끈질긴 존재여
내안에 자리 잡은
미움이
잡초, 너처럼
참 질기다.
*비
고개 들어 느껴보자
무수한 별들이 쏟아지는 것처럼
조각난 방울들이 모이더니
정수리를 겨냥하여 차츰 가슴으로 젖어들 듯
쏜살같이 내게로 달려든다
물비린내와
온몸으로 스미는
축축함과 싸늘함
고개를 접지말자, 받아들여라
돌발적 난타, 반란의 종착
알짝지근한 이 느낌
좋다!!
알큰한 인생이 좋다
*해의 출산(해돋이)
우글거리는 군중 쓰나미
그 속에 한 점인
나
흥분하는 수평선 위로
춤추는 군상의 나래들
천태만상의 사연들이
금줄 단 돛배 되어 파도를 가른다
뭍으로, 뭍으로
사래질 쳐 대던 바다가
이내 힘없이 몸을 누이고
선홍빛 물결
장엄히 황금 옷 갈아입고 비상하니
산고의 주연 따라
나도, 갈매기도
덩달아 하늘을 난다.
*노인과 허무
비바람 몰아쳐
인생나무 휘돌더니
하나 둘 낙엽 되어
세상 바닥 흩날리네.
지친 한숨 몰아쉬며
풍진세상 이겨내니
갈색 황혼 어슴프레
내 앞에서 손짓하네.
*거듭나기
뱀처럼
허물 벗는다
세치 혀로 기만한 죄
허영과 아집으로 점철 되었던
과거를 벗는다
벗어야 할 것들에
꽤 긴 시간동안
고통스럽겠지만
스스로를 옥죄는
껍데기 속에서는 살 수 없으며
사람이기에 절망과
황량한 가슴으로는 살 수가 없어
수치와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인생을 다시
재단하기로 했다
다시 태어나
반듯한
새 옷을 갈아입는다.
*옥수수
아무리 넓어봐야
너 댓 평 남짓
그 중 반 이상 돌과 자갈 가득한
텃밭에서 옥수수가 자란다
한줌 기대 없이 뿌려진 알갱이는
두 줌 희망으로 뿌리내리고
간간히 주는 물과 더불어
무참한 태양의 온기를 받아
세줌 정성으로 자라난다
허수아비를 대신한
십오 척 담장
가시 돋친 철조망은
자유로운 새들의 침입을 막아주고
어느 날
문득 내리는 소나기 소리
여남은 그루의 옥수수나무는
키 작은 아이처럼 여물지 못한 것은
아마도
사랑이 작은 탓일까.
*애호박
슬금슬금
담벼락 기는
길고 가는 손가락
옆구리에 혹 달고
애동이
거북처럼 엉금엉금 담장 넘어
초록 주먹 쥐고서
하늘 향해 오르다
커다란 나팔 배꼽에 매달고
서두르며 악동 따라 잡는다
쉬어가자, 쉬어가
지짐 한 절음 먹고 떠나자
*가을 하늘
고운 비단 깔고
수를 놓는다
샛노란 별
쏟아질 듯 무르익고
상현달은 청명주에 잠긴 듯
수줍은 얼굴 감춘다
너를 보기만 해도 취향에 젖고
비틀거리는 바람에
잔 넘쳐흐른다.
잠자리 날갯짓에 무곡 얹으니
웅성대던 대나무
칼춤을 춘다
시가를 읊조린다.
*낙인
캄캄히 다가 올 시간
암흑보다 깊은 절망의 무게는
놓여 진 시간만큼의 두려움으로
매일 밤
침몰하는 상심의 바다 속
가슴에 남은 숨결을 토해낸다
이제, 눈물도 마르고
후회도 메말라
한숨조차 갇혀버린 말라깽이 공간
파란 몸으로 쪼그려 앉은
야수의 혼은 숨 쉬고 있다
야성의 피를 식히며 어둠답지 않은
사각의 벙커 속에서
죽음으로 지워야 할 파란 낙인을 심장에 새긴 채
밤새 묶인 욕망의 신음으로
새벽녘, 푸른 망토를 펼치고
회색빛 담장을 뛰어 넘는다
*퍼런 심장
사각의 회색장벽 가로지른 늪지
부르면 닿을 듯 한 사람의 도시를 바라보며
거칠게 서걱이는 모래 가득한
파란심장
이기의 문명 속
신기루여도 좋을 강한 유혹이
쓸고 간 지난 밤
어둠 속 늪지 파란 짐승들의 술렁임으로
아마도 담 밖 어디엔가
털갈이한 짐승의 흔적이 흩어져 있으리
달려도 언제나 그 자리
도시 불빛의 유혹으로
야수의 심장이 요동치더라도
검은 목구멍을 가득 채운
혈기로 물든 모래를 토해낼 뿐
다시 되돌아간다 해도
운명을 거부하고
사람의 아들들과
살아 갈
자연의 순리를 배우는 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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