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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사설시조 어떻게 쓸 것인가
1.사설시조에 대하여
시조가 고려말경에 발생하여 조선시대를 거치며 영, 정조임금의 치정 무렵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 무렵 때를 같이하여 서민의 자각이 싹트기 시작했고 양반세계와 다른 서민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문학에서도 양반 전유물이던 시조가 사설시조라는 형태를 빌어 서민들 사이에서 창작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은 시조를 쓰는 사람이면 익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여 사설시조의 연원이나 발생, 성격 등에 관한 것은 가능한 한 짧게 설명하고 많은 부분을 생략한다. 다만 사설시조의 형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해 다 같이 생각해 보는 장이 되었으면 하여 이 글을 시작한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기본 음률과 산문율(散文律)이 혼용된 산문체의 시조 형태를 말한다. 시조문학의 변화·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평시조는 사대부(士大夫) 문학이었고, 사설시조는 서민(庶民) 문학이었다. 달리 말하면 평시조는 양반계층의 문학이었고 사설시조는 서민대중의 문학이었다. 사설시조는 사대부 시조의 관념성과 대립되는 사실적 요소에 의한 현실인식의 시였다.
이와 같이 사설시조는 발생당시부터 그 시대상과 서민의 애환을 노래한 풍자시로 출발한 평민문학으로 서민들의 사상과 감정을 진솔하게 표출하는 출구가 되었다.
할 말이 많은 서민들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며 그 서민들의 가슴속에 맺힌 이야기들을 노래로 표출하고 싶은 욕구 또한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시조인들에게도 사설시조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2. 사설시조에 대해 학자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나
사설시조의 형태를 규정하는 데는 평시조의 음수율을 기준으로 하여 왔으며 지금까지 거론된 학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사설시조가 발전하여 현대 자유시의 모태를 이루었으며, 더 나아가 오늘의 산문시를 낳게 한 밑그림과 같은 시 형태였다. -박철희 서강대 명예교수
2)사설시조는 초·중·종장에 두 구절 이상 또는 종장 초구라도 평시조의 그것보다 몇 자 이상 되었다. 그러나 초·종장이 너무 길어서는 안 된다. - 이병기「國文學槪論」 P.117
3)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여 초·중·종 3장 중에 어느 장이 임의로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초장은 거의 길어지는 법이 없고 중장이나 종장 중에 어느 것이라도 마음대로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대개는 중장이 길어지는 수가 많다. - 조윤제 「國文學槪論」 P.112
4)초·중장이 다 제한 없이 길고 종장도 어느 정도 길어진 시조다. -김사엽 「李朝時代의 歌謠硏究」 P.254
5)사설시조는 초·중·종 3장의 구법(句法)이나 자수가 평시조와 같은 제한이 없고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어조(語調)도 순 산문체로 된 것이다. -김종식 「時調槪論과 詩作法」 P.89
6)초·중·종장이 다 정형시에서 음수율의 제한을 받지 않고 길게 길어진 작품을 사설시조라 한다.
-김기동 「國文學槪論」 P.115
7)단시조(短時調)의 규칙에서 어느 두 구 이상이 가각각 그 자수가 10자 이상으로 벗어난 시조를 말한다. 이 파격구(破格句)는 대개가 중장(제2행)의 1, 2구다. 물론 종장도 초장도 벗어나고 3장이 각각 다 벗어나는 수도 있다.
-이태극 「時調槪論」 P.69
8)종장의 제1구를 제외한 두 구절 이상이 길어진 것을 장형시조(長型時調) 또는 사설시조라고 한다.
-정병욱 「時調文學事典」
9)엇시조는 2음보가 세 번 중첩되어 6음보가 나타난 곳이 한 군데만 있는 시조라고 규정할 수 있고 2음보가 세 번 중첩되어 6음보가 나타난 곳이 두 군데 이상 있거나 2음보가 네번 중첩되어 8음보가 나타난 곳이 한 군데 이상 있는 시조를 사설시조라고 규정할 수 있다. -조동일 「한국시가의 전통과 율격」
10)사설시조 약 300수를 분석한 결과 초·종장이 단독으로 길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며, 중장만이 단독으로 길어진(3구 이상)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 결과 사설시조는 초·중·종장의 3장시로서 종장 첫 구 3자의 고정을 원칙으로, 어느 한 장이 3구 이상 길어지거나 두 장이 3구 이상, 혹은 각 장이 모두 길어진 자유로운 구수율의 산문 시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장 이상, 혹은 각 장이 모두 길어질 경우 자유시와 다른 시조 고유의 변별성을 획득할 수 없으므로, 초장·종장은 평시조의 정형률을 따르되 중장만을 길게 하는 것이 사설시조의 타당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윤금초
다음은 우리들이 교과서에서 접해 본 사설시조를 예로 보인다.
한盞 먹세 그녀 또 한盞 먹세 그녀 곶 것거 算 노코 無盡無盡 먹세 그녀
이 몸이 죽은 후면 지계우혜 거적더퍼 줄이여 메여 가나 流蘇寶帳에 萬人이 울어 예나 어욱새 속새 덥개 나모 白楊속에 가기 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굴근 눈 소소리바람 불제 뉘 한 盞 먹자 할고
하물며 무덤우헤 잰납이 파람 불제야 뉘우친들 어떠리
- 정철의 "장진주사" (3장이 모두 길어졌다)
사람이 몇 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 수렴(水簾) 진주담(眞珠潭) 만폭동 다 그만 두고 구름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 안개 풀 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담(蓮珠潭)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
- 조운의 "구룡폭포" (종장만 율을 지켰다)
3.사설시조의 장점
고전 사설시조의 장점은 해학성, 현실비판, 상소리, 풍자, 에로티시즘, 유머 등을 자유자제로 시에 대입하여 썼다는 점이다. 이러한 장점은 사설시조가 발생할 당시는 물론 복잡다단한 오늘날에는 더 필요한 장르라고 본다.
하여 서사적 요소와 해학성 및 풍자정신을 가미한 사설시조를 현대의 감각에 맞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사설시조를 활발하게 창작하게 되면 우리 시조문학의 폭을 한층 더 넓혀갈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4.사설시조가 갖추어야 할 것들
사설시조의 매력은 산문시를 뛰어넘는 문장의 긴장감 유지와, 압축과 생략의 미학을 추구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설시조를 쓰기 위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갖추어야 한다.
1) 서사구조
2) 갈등구조
3) 극적 요소(드라마적 요소)
4) 걸쭉한 입담
5) 웅장한 스케일
6) 복선(伏線·나중에 전개될 사건을 미리 넌지시 귀띔해 주는 장치)
7) 판소리에서의 아니리조(판소리에서 창을 하는 중간중간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 하듯 줄거리를 엮어나가는 사설)
8) 풍자정신
9) 休止(쉬어가는 대목)
10) 종장의 대반전(大反轉)
11)사투리의 과감한 차용
5.사설시조의 길이
사설시조의 길이는 엇시조를 넘어선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즉 어느 한 장의 길이가 4음보 이상 길어지면 사설시조로 보아야 한다.
6.사설시조 어떻게 쓸 것인가
사설시조가 장점이 많고 시조의 지평을 넓혀 줄 것임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설시조의 형태까지 그대로 답습해도 좋은가?
시조가 쓰여졌던 고려말에서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는 자유시라는 장르 자체가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사설시조를 어떤 형태로 썼든 그것은 시조에 포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조와 자유시의 갈래가 엄연히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본다.
발생당시부터 전해 오는 사설시조의 형태를 보면
1) 한 개의 장이 길어진 경우
2) 두 개의 장이 길어진 경우
3) 세 개의 장이 모두 길어진 경우가 있다
사설시조가 위의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가장 많이 쓰여진 것은 1)의 경우로 한 개의 장이 길어진 것인데 이때 길어진 장이 중장이며 초장과 종장은 평시조의 기본 율을 지킨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사설시조였든 종장의 첫 마디는 극소수의 예를 제외하면 3음절 고정음을 지켰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같이 자유시가 없었던 그 시대에도 시조의 율을 지켜 쓰려는 노력이 역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시조와 자유시의 갈래가 뚜렷한 이 시대에 우리는 사설시조를 어떻게 써야 할까?
가장 바람직한 사설시조의 형태는 옛날에도 가장 많이 썼던 초장과 종장의 율을 지키고 중장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쓴 사설시조는 자유시와 한 눈에 구분될 수 있으며 또한 자유시가 흉내 낼 수 없는 시조 고유의 미도 살려내며 쓸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다고 보며 시조는 시조다워야 한다는 요구 또한 충족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조다워야 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시조의 율을 지켜야 할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마음껏 길어지는 장에서 어떻게 율을 지킬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해 보려고 한다
1) 시조의 중장이 길어지되 무조건 길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길어져야한다는 것이다.
시조의 한 장은 두 개의 구[전구, 후구]로 나누어지므로 한 개의 구가 한 개의 단락이 되도록 쓰는 것은 어떨까
그 예로 필자의 졸시 “떠나는 길목”을 보자
[초장]
불붙던 태양
일식에 앓아 눕고
[중장의 전구]
풀리다 만 빛의 타래가 되 엉겨 가면 나는 사랑을 앓는 가시나무새
[중장의 후구]
한 번의 울음 울지 못한 채 떠나는 길목
[종장]
그대의
젖은 눈빛이
벽으로 막아 서서
2) 시조의 한 장은 4마디로 구성되므로 그 4마디를 살려 한마디가 한 단락이 되도록 네 단락으로 쓰는 것이다
그 예로 필자의 졸시 “분명해”를 보자
[초장]
이놈에 눈 3월에 왕창
이리 내릴게 무어람
[중장의 첫마디]
물류창고에 진득하니 차곡차곡 쌓았다가 초겨울에 몇 번 나눠 소담스레 내려주면 첫눈에 화이트크리스마스에 얼마나 좋아 하겠어
[중장의 둘째마디]
분명해 하늘나라에도 경기가 불황인 게야 재고로 넘기지 못하고 단번에 대박세일로 퍼부어서 일을 냈지 뭐야
[중장의 셋째마디]
애지중지 길러오던 바글바글한 가축들을 축사를 폭삭 주저 앉혀 한 방에 날려 보내고
[중장의 넷째마디]
올망졸망한 꽃망울들 나들이 채비에 설레이고 성큼 자란 푸성귀들 눈길 한창 높일 때 와장창! 비닐하우스 한 순간에 무너뜨려
[종장]
대출금
마이너스통장
목숨 값을 넘어 섰어
하지만 시조의 영역을 좀 더 넓혀야 한다는 요구를 감안하기 위해 위의 세 가지 형태
1)한 개의 장이 길어진 경우
2)두 개의 장이 길어진 경우
3)세 개의 장이 모두 길어진 경우를 모두 수용한다 하더라도 길어지는 장마다 두 구를 살려 첫 구를 노래하고 쉬었다가 두 번째 구로 넘어가는 경우든 4마디를 살려 4단락으로 구성하고 한 마디씩 한 마디씩 쉬어가는 경우든 종장의 첫째 마디 3음절만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연설명을 한다면
길어지는 장이 두개의 구로 길어지도록 하는 경우는 엇시조로 표현하기에는 약간 넘칠 경우에 쓰도록 하자. 즉 엇시조보다는 약간 길어질 경우에 두 구로 늘여놓는 사설로 하고. 사설이 더 많이 길어지는 경우에는 4마디, 즉 4단락으로 늘여 쓰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세월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우리만의 정형시를 잃지 않고 700여년을 지켜 온 것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이지구상에 살고 있는 70억이 넘는 인구, 그들이 쓰고 있는 언어는 2000여 가지가 있고 200여개의 문자가 있으나 자기나라만의 언어를 가지고 자기나라의만의 문자로 정형시를 써서 수 백 년 동안 이어온 나라가 과연 몇 나라나 될까? 그 답은 다 헤아려도 열 손가락도 다 채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시조가 있음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시조는 우리민족의 자존심이며 긍지이다. 이와 같이 소중한 시조를 자유시와 구분할 수 없도록 써서는 안 된다. 아무리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설시조라 해도 자유시와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형태로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이와 같이 노력하며 시조를 아끼고 발전시켜 간다면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는 문학의 장르는 분명 시조가, 그것도 율을 잘 지킨 정격 시조가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참고문헌
*윤금초 학술세미나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문학개론 조윤제 동국문화사
*사설시조사전 김제현 경기대학교 연구교류처
*시조문학사전 정병욱 신구문화사
현대 젊은 시인들이 쓴 사설시조 맛보기
쇠처럼 살라는데
손증호
아내는 나더러 쇠처럼 살라는데
그 쇠가 무슨 쇠냐 타령조로 읊어보면 무조건 복종하는 충직한 돌쇠에다 땀 흘려 일할 때는 억척스런 마당쇠, 닫힌 마음 철컥 여는 만능열쇠로 살라다가 제 잘못엔 입 꽉 다문 자물쇠로 또 살라네. 모진 풍파 끄떡없이 무쇠처럼 겪어내고 자본주의 경쟁시대 구두쇠로 견뎌내도 둥글둥글 굴렁쇠에 밤에는 변강쇠, 이 쇠 저 쇠 다 좋다며 닦달하는 요즘 세상
나는야 쇠귀에 경 읽기 어화둥둥 모르쇠
나무 중얼거리다․1
노 영 임
울 할매 쪽진 머리 자르르 윤나는 참빗살나무
족두리 쓰고 영(嶺)을 넘어 할배 만났다지요. 알콩달콩 둘이 살 집 그냥 지어진답디까? 쓱싹쓱싹 대패 밀어 대팻집나무 까붐질하며 쭉정이 날리자 키 엮을 키버들나무 살랑살랑 조리질은 조릿대나무 고기 잡아 구워먹을까 작살 만들 작살나무 옷가지 쟁여둘 고리괘짝 고리버들나무 옻칠할 때 옻나무 황금칠에 황칠나무 술 깨자 헛개나무 추어탕 비린내에 초피나무 윷이야! 윷놀이 한판 벌려볼까 윤노리나무…. 됐다, 됐다. 그만 하면 됐다. 사람 사는데 이에 무얼 더할까 손사래 치니 그거 참, 옳으신 말씀 족제비싸리나무 쪼르르 나서 맞장구칠 때 소귀나무 뭔 경(經) 읽는 소린고? 퉁방울 눈 껌뻑껌뻑, 고개는 절래절래. 한 평생 나무 닮아 베풀기만 하시더니 할매는 후박나무로 뒤울안 감싸 안으시고 할배는 마을 초입께 드리운 느티나무 넉넉한 그늘로 서 계십니다 그려.
고목에 새잎 돋았네, 잎 갈자 잎갈나무
나무, 중얼거리다․2
노 영 임
물푸레나무 물올라 손만 대도 푸르게 물들라
오리 왔나 오리나무, 십리 왔네 시무나무, 에구에구 다리야, 해는 잠시잠깐 중천에 비끄러매고 쉬었다 가자. 먹다 남은 보리개떡 떡갈나무로 싸두고 짚신 바닥 헤졌으니 신갈나무가 안성맞춤이라. 어? 산중에 웬 손님이신가, 애기동백나무, 애기등나무 자드락길 쪼르르 내달려오고 깨금나무 깨금발 로 팔짝팔짝, 개박달나무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비싸리나무 길 쓸어라, 길 비켜라 설레발친다. 게꽁지만한 소견으로 손님 대접이 이래서야 쥐똥나무 깝작대며 말오줌때나무 널 보니 말 오줌 눌 때 되었구나, 말 떨어지기 무섭게 말오줌나무 엉거주춤 버텨선 채 솰솰 갈기자 때죽나무 앗, 뜨거 팔짝팔짝 오두방정 가살 떨고 병아리꽃나무 입 가리고 키득키득 무안타 못해 그 모양새 하 보기 좋아 웃지 않고 못 배기겠구먼. 으흐흐 으허, 허 웃음소리에
연초록 빛살 들치며 가르마길 환하게 연다.
나무, 중얼거리다․3
노 영 임
밥풀떼기 하얗게 튀겨 흐트러진 박태기나무
나도국수나무인데 가닥가닥 허연 너도국수나무냐, 보리밥나무 널 보니 먼길 떠나 시장기 도는 참에 꽁당보리밥 열무겉절이가 십상일텐데 수라상 올랐다는 상수리나무 긴 사설 제 자랑에 도토리묵 잘 쑤어 밥알 동동 뜬 동동주로 크윽! 입가심하면 오죽이나 좋을까. 퉤, 퉤, 아무리 허기져도 소태나무 넌 못 먹겠다. 시고 달고 쓰고 짜고 매운 오미자, 그 맛 한 번 기막히다. 시지도 달지도 않은 시로미라 내 입맛엔 딱! 이로다. 으썩 씹으면 혀끝에 살살 녹는 으름, 새까만 눈망울같이 동글동글한 머루, 달디단 다래, 코 끝에 싸하게 번지는 개암 향내
열 사흘, 숲 속 머문들 어디 굶어 죽을까 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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