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峴추천 0조회 3122.05.13 22:06댓글1 ■ 쪽빛 낭만을 잉태한 남도 봄날을 가다. [1] <중앙산악회 2박 3일 남도 특별 여행>
■ 여행개요
▶ 코로나19 여진이 아직도 짙게 깔려있는 무거운 시공과 겹친 답답하고 우울한 산행 탈출구를 성남 분당중앙산악회에서 이벤트로 기획한 2박 3일 남도 특별여행의 다양한코스와 숙박시설, 풍성한 먹거리가 마음에 들어 가까운 산우들과 동참을 예약하고 유채꽃 활짝 핀 남도의 봄을 따라 가본다.
◯ 여행일시 : 2022년 4월 20일(수) ~ 4월 22일(금) 2박 3일
◯ 여 행 지 : 통영, 남해, 여수
◯ 여행주관 : 성남분당중앙산악회
◯ 여행참석 : 총 33명 (사계절 죽현, 매천, 좋은친구, 엔젤, 이상인)
◯ 여행코스
(제1일) 남해 금산 보리암, 보물섬 전망대, 독일마을
(제2일) 통영 사량도(지리산)
(제3일) 여수 오동도, 향일암, 낭도 트레킹
◯ 여행경비 : 380,000원/인
◯ 교통수단 : 서울고속관광 76사 4656호 (운전자 전 현규)
◯ 특기사항 : 숙박호텔 20일 통영 BROWNDOT, 21일 여수 HOTEL KENNY
■ 제 1 일 금산 보리암, 보물섬 전망대, 독일마을
▶ 오랜만에 떠나는 2박 3일의 길지도 짧지 않은 여행 일정에 약간의 설렘을 안고 간단한 가방을 챙겨 들고 새벽바람을 맞으며 낮 익은 산행 버스에 올라 분당을 거처 성남시를 돌며 승차 메이트(mate) 이 병찬 님 등 산우들과 반가운 인사를 하고 분비지 않은 고속도로를 타고 오전 11시 5분 사천 인터체인지(interchange)를 벗어나 바다와 산을 동시에 만나는 총연장 2.43km의 국내 최장거리 사천 케이블카(cable car)와 나란히 사천시와 남해군을 연결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대상에 선정된 총길이는3.4km 창선·삼천포대교(昌善·三千浦橋)를 건너서 11시 50분 남해군 삼동면 “멸치와 쌈밥”점심 식사를 하고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 개국의 꿈을 이룬 영세불망의 명산에 살아있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금산 보리암으로 향한다.
▣ 남해(南海) 금산(錦山)과 보리암(菩提庵)
▨ 금산(錦山)
금산은 신라 원효대사가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러왔으나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이 산에서 간절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소원을 이뤄주는 영세불망의 명산이라는 이름으로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의 “금산”으로 거듭난 산이다. 이성계의 기도와 이성복의 시, 더 나아가 진시황의 아들 부소와 시종 서복이 영생을 꿈꾸는 불로초를 찾으러 다녀간 전설까지 금산에 오르면 장엄한 풍광을 향한 간절한 발걸음들이 바위 곳곳에 박혀 있다. 불타오르는 여명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은 3년 동안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 하며 그 장엄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가져다준다.
▨ 보리암(菩提庵)
보리암은 상주면 상주리 금산 남쪽 봉우리 해발고도 681m 절벽 위에 자리한 절로써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상계사의 말사이며 683년(신문왕 3년) 원효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천견한 뒤에 산의 이름을 보광산, 암자의 이름을 보광사 (普光寺)라 지었다고 한다. 보광사는 이후 조선 현종 때“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준다.”는 뜻의 보리암(菩提庵)으로 바뀌었다. 보리암은 살아있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사찰이다. 낙산사 홍련암과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전국 3대 기도처이자 관음도량이다. 특히 보리암에 모셔 있는 해수 관세음보살의 품 안에서 평온을 구하고자 오늘도 숱한 사람들이 숨겨둔 소망을 풀어놓는 곳이기도 하다.
◯ 보리암 보광전(菩提庵 普光殿)
보리암의 주법당으로 대웅전 역할을 하고 있는 보광전은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초창이래 여러 번의 중건 중수를 거쳤으며 현 보광전은 1968年에 중건하고, 2000年에 중수하였다. 보광전에 모신 주불은 서천 축 아유타국 허공주가 모시고 왔다는 관세음보살(좌보처 남순동자, 우보처 해상용 왕) 삼존상(三尊像)이며 목조 관음보살좌상 불감은 2015년 1월 15일 경남 유형문화재 제575호로 지정되었다.
◯ 보리암 해수 관세음보살상(海水觀世音菩薩象)
보리암에서 가장 기(氣)가 강한 곳으로 알려진 해수 관세음보살상은 1991년 한 기업가의 원력으로 세워졌다. 당시 지형적 영향으로 육로로 운반 할 수 없었던 해수관세음보살상은 헬기를 이용하여 탑대에 안치했다. 좌대는 연꽃문양으로 하좌대와 상좌대로 이루어져 서로 마주 보게 포개져 있다. 왼손에는 보병을 들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채 가슴에 두었다. 한해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고 가는 이 해수관세음보살상은 보리암의 제1명 소로 알려져 있다.
◯ 보리암 범종각
보리암 범종각은 1977년 건립되었으며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신동관 선생이 직접 시주했는데 크기와 무게 때문에 사람이 들고 올 수 없어 헬기를 이용하여 공수해왔다고 한다. 이 범종각의 뜻은 일체 지옥중생과 만경창파 수륙고혼의 이고득락의 해탈(解脫)을 염원하고 있다고 한다.
◯ 보리암전 삼층석탑(菩提庵前三層石塔)
보리암전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화강암으로 조성된 3층 석조 불탑으로 683년(신문왕 3) 원효(元曉)의 금산 개산(錦山開山)을 기념하기 위하여 김수로왕비(金首露王妃)인 허태후(許太后)가 인도의 월지 국(月之國)에서 가져온 파사석으로 원효가 세웠다고 한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 단군성전(檀君聖殿)
▶ 보리암 가는 오르막길에 주차장을 벗어나서 버스를 몰고 오르는 뱃장 좋은 기사님 덕분으로 보리암까지는 쉽게 올라갔으나 더 이상 산을 오르지 못하고 푸른 바다 가운데 점점이 솟아오른 섬들을 굽어보며 화엄봉을 위시한 육중한 바윗돌 아래 보광전을 시작으로 해수 관세음보살상, 범종각, 삼층석탑을 돌아보며 능선을 따라가 단군성전을 참관하고 오후 1시에 마을버스를 타고 하산하여 동백꽃 가로수가 반기는 상주 해변을 돌아서 “돈키호테” 가 기다리는 “설리 스카이워크” 보물섬 전망대로 향한다.
▣ 보물섬 전망대
남해 보물섬 전망대는 대한민국 최남단 “남해” 를 아름답게 비추는 “등대의“ 모습을 형상화한 건축물로, 내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은 초호화 고급 크루즈를 탄 듯한,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360° 파노라마 바다 조망을 자랑하고 있다. 2층“스카이워크”는 국내 최초로 유리로 된 하늘 길을 직접 걸어보고, 절벽 위 수려한 남해 바다 조망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아름다운, 남해의 일출(日出), 일몰(日沒)과 월출(月出)을 바라볼 수 있는 특급 조망 터이다.
▶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인공으로 설치된 스카이워크는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지만 바다를 향하여 힘차게 그네를 타는 청년의 기개가 가상하였다.
▣ 독일(獨逸) 마을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 있는 마을로 1960년대 독일(당시 서독)에 간호사와 광부로 파견되었던 독일 거주 교포들이 대한민국에 재정 착할 수 있도록 남해군에서 개발한 곳으로, 2001년 남해군에서 30여 억 원을 들여 30,000 여평의 부지를 마련해 분양하였으며, 독일 교포들은 독일에서 재료를 수입하여 독일식 전통 주택을 신축했다. 독일마을은 독일의 문화와 대한민국 전통문화 예술촌을 연계한 관광지의 역할도 하고 있다. 바로 앞으로 펼쳐진 방조어부림의 시원한 바다와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드라이브 코스인 물미해안도로가 있다. 주변에는 원예 예술촌과 해오름 예술촌이 있어 한국의 보물섬이라 불리는 남해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기간(1962~1966) 동안 감당하기 힘든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한국 정부와 서독 정부가 맺은 협정에 따라 1963년 말 서독으로 파견하는 광부 1진이 서울을 출발하기 시작하여 1977년까지 약 8천 명 광부가 서독으로 떠났다. 한국은 외화가 필요했고, 서독은 자국 노동자보다 임금은 적게 받으면서 일 잘하는 사람들을 원했다. 한국에는 대우가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았고, 서독에서 받는 임금이 한국 기준으로 보면 많은 액수였기 때문에 대졸자도 많이 지원하는 등 서독으로 가는 광부 모집은 경쟁이 치열했다. 서독으로 간 광부들은 깊은 지하 갱도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임금의 상당액을 한국으로 보냈다. 이 돈은 외화가 부족하던 한국 경제에 크나큰 도움이 됐으며 광부 파견에 이어 1966년부터 1977년까지 1만여 명의 간호사도 서독으로 갔다. 이역만리에서 피나는 고초를 이겨내고 조국의 경제개발에 기여한 광부와 간호사들이 명예롭게 은퇴하여 조국에 정착촌을 만든 것이 이곳 남해의 독일마을이다.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들어선 지금 잊혀져가는 조국 근대화의 일꾼들을 생각하며 독일마을을 둘러보는 감회가 가슴 아리게 느껴진다.
▶ 독일마을 관람을 끝으로 남도여행 하루 일정을 끝내고 집행부에서 예약해놓은 통영시 미수동 “영광 횟집 해물탕”집에서 풍성한 먹거리로 속을 채우고 불빛이 화려하게 수놓은 통영항의 원형 야경을 한바퀴 돌아보고 여행의 잔영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BROWN-DOT 호텔에 룸메이트 “산처럼” 과 함께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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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22.05.14 06:32 첫댓글 멋지게 여행록을 작성하셨네요~ 다시 남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듯 합니다. 글에서 필력이 느껴집니다. 아름다운 여행지를 함께할 수있어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중앙과 함께하는 시간들에 설레며 좋은기억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다소늦은감은 있지만 그러나 지금부터는 가장 빠른 시간에 중앙의 멋진 산우님들과 함께할 수있음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