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협 《계절문학》2015 여름 혁신호, 「이 계절의 쟁점」)
‘시조(평, 엇, 사설)’ 명칭, 이대로 써도 되나.
권갑하
현대시조가 질적 양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명칭 등 정체성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혼란한 상황이다. 특히 ‘시조’라는 명칭과 하위 갈래인 ‘평, 엇, 사설시조’의 명칭은 문제가 많다. 시(詩)와 노래(歌)가 한 몸이었던 시조는 현대로 접어들면서 음악과 문학이 분리되어 독립된 장르의 길을 가고 있지만 ‘시조’라는 명칭은 문학과 음악 장르에서 함께 쓰고 있다. 예를 들면, 시조창 가수 문현의 2005년 앨범 제목이 ‘시조, 도시를 걷다’이고, 관련 신문기사 제목도 ‘시조, 핑크 플로이드를 만나다?’ 등인데, ‘시조’라는 용어나 명칭만으로는 이것이 음악인지 시문학 장르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더구나 18~19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한 시조창의 역사성으로 오늘날까지도 ‘시조’라고 하면 ‘시조창’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문학적 성과와는 별도로 ‘시조’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사정과 관련이 있다. 거기에다 ‘시조시’, ‘시조시인’ 등의 명칭도 마땅치 않아 혼란을 가중시킨다. 명칭에 대한 문단 차원의 진지한 고민과 대응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장르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갖지 못할 경우 생명력을 지속하기 어렵다. 특히 명칭 문제는 시조의 미래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문학 장르로서의 시조는 학계에서 ‘혈죽가’가 발표된 1906년부터 태서문예신보가 발간된 1918년까지를 ‘개화기시조’로, 1919년부터 1926년 시조부흥운동까지를 ‘근대시조’로, 그 이후를 현대시조로 규정한다. 옛시조가 가곡창 또는 시조창이라는 악곡으로 실현됐다면 현대시조는 언어의 내적 질서에 기반을 둔다. 이러한 분화의 결정적인 요인은 활자 매체의 발달에 기인한다. ‘시조’라는 명칭은 조(調), 즉 곡조를 의미하는 음악 용어이다. ‘時調’라는 명칭은 18세기 중엽 신광수의 『석북집』<관서악부>에 처음 등장한다. 그 이전에는 장가(長歌)에 대한 ‘단가(短歌)’, 고조(古調)에 대한 ‘신조(新調)’, ‘신번(新飜)’, ‘신곡(新曲)’, 한시(漢詩)와 관련하여 ‘시여(詩餘)’ 등의 명칭이 쓰였다. 단순히 노래란 의미의 ‘가(歌)’, ‘가곡(歌曲)’, ‘요(謠)’, ‘영언(永言)’ 등으로도 불렸고, ‘시절가(時節歌)’, ‘시절단가(時節短歌)’라 명칭되기도 했다. 개화기에는 ‘개화시조’로, 1920년대 시조부흥기에는 ‘국풍(國風)’이라 불리기도 했다. 현대에 와서는 자유시에 대비한 명칭으로 ‘정형시’, ‘삼행시’, ‘삼장시’, ‘민족시’, ‘전통시’, ‘겨레시’, ‘시조시’ 등이 쓰이고 있다.
물론 ‘단가’는 ‘시조’만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다. ‘사뇌가(향가)’나 ‘한시’같은 것도 일반적 의미로 ‘단가’라 명칭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조가 크게 부흥되기 시작한 15세기말에서 창(唱)의 융성과 함께 ‘시조’라는 명칭이 정착된 18세기말까지는 가곡창으로 불렸든 시조창으로 불렸든 평시조를 ‘단가’라 칭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단가’는 ‘시조’라는 명칭이 일반화되기까지 대표적인 명칭으로 표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승방식도 『청구영언』(1728) 등에 수록될 때까지는 주로 구전으로 읊조려지거나 가곡창 형태로 전해져 그 때까지는 시조 곡조의 확립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18세기로 접어들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이뤄지고 공연예술이 활성화되면서 음악적 요소가 빠르게 진화하여, 전문 가객과 명창이 등장하고 새로운 악곡 창작이 활발해졌다. 이러한 시대환경 속에서 과거와 다른 창법, 즉 단가에 장단(長短)을 붙인 새로운 조(調)의 곡조가 확립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곡조를 확립한 사람은 이세춘으로 알려졌다.(『석북집』) 새로운 창법은 기존의 가곡 창법보다는 빠르고 단순해진 음악 형태로 당시로선 매우 신선한 곡조로 받아들여졌다. 이때부터《청구영언》,《해동가요》(1746),《가곡원류》(1876) 등의 가집(歌集)이 엮어진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새로운 곡조의 시조창은 대중적 인기를 끌었고 김천택·김수장·안민영 등 전문 가객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작자(시인)인 동시에 창곡가(음악가)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연행에 적합한 다양한 변조의 창법들이 속속 등장했고, 가사도 공연에 적합한 사설시조가 주로 창작되었다. 이는 ‘시가(詩歌)’ 혼합장르였던 시조가 ‘노래(歌)’ 우위의 ‘시조’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時調’라는 명칭은 당대, 즉 18세기 새롭게 곡조가 만들어져 인기를 끈 창의 곡조를 통칭한 용어였다. ‘시절가조’의 준말인 ‘시조’를 오늘날의 용어로 환원하면 ‘오늘의 시조’, ‘현대시조’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형성된 이러한 흐름은 개화기를 맞으면서 다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한자’ 대신 ‘한글’이 ‘국어’로 인식되어 교육되고, 인쇄술 발달에 힘입어 책과 신문 등 인쇄매체가 대량 보급되면서 시문학으로서의 시조는 이제 더 이상 창에 의존하지 않고도 전파될 수 있는 환경을 맞았다. 이러한 시대환경 변화 속에서 시조는 시문학과 음악 장르로 분리되어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시조는 고려 중엽 이후 우리 민족의 얼과 정서를 담아온 고유의 시가문학이다. 하지만, ‘短歌’ 또는 ‘時調’ 명칭이 말해주듯 ‘시(詩)’보다는 ‘노래(歌)’로 더 인식되었다. 그것은 조선시대까지 ‘한시(漢詩)’만을 시라 일컬었던 우리의 아픈(부끄러운)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사대의식의 문화 구조는 근대화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시=한시’ 구조가 ‘시=자유시’ 구조로 고스란히 대체되는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처럼 문학 장르에서 ‘시조’라는 명칭은 문제가 많은데, 하위 갈래의 ‘평, 엇, 사설시조’라는 음악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시조를 쓴다고 하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시조창을 한번 해보라’고 제안하는 기막히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같은 명칭을 문학과 음악 장르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시조창에서는 내용에 따라 정해진 창법이 따로 있다. 문학적으로 평시조라 하여 평시조 창법으로 부르고 엇시조라 하여 엇시조 창법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현대 시문학에 적합한 시조 명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신웅순은 문학상의 시조와 음악상의 시조창을 구분하여 문학상으로는 ‘단시조, 중시조, 장시조’로, 음악상으로는 ‘평시조계열, 지름시조계열, 사설시조계열’로 나눌 것을 제안한 바 있다. 필자도 『현대시조 진단과 모색』(2011)에서 ‘시조’와 ‘시조창’으로 장르 구분을 하고 ‘시조’ 문학 장르는 ‘단(單)수시조, 연(聯)시조’로 나누고 단수시조는 다시 ‘단(短)시조, 장(長)시조’로 나눌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물론 논란은 있겠지만, 시조문단과 시조창 장르, 학계가 함께 세미나와 공청회 등을 열어 바람직한 명칭을 도출하고 이것이 정착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권갑하 / 1992년 <조선일보><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 시조평론「시조의 시대성 수용 양상과 형식미학」(『한국시조시학』2014년 제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