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개
조선 말(末), 그들의 약방집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믿음, 민족혼, 인간애의 세 줄기 빛!
묵묵히 빛의 길을 걸어 온, 배씨일가의 실증적 가족사
《약방집 예배당》은 1801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 가계의 흥망성쇠를 담은 실화소설이다. 신유박해를 피해 가족과 도피하는 조선시대 충주 관찰사 배수우를 시작으로, 역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다 목숨을 잃은 배광국과 한국 교회 초기 신앙의 박해를 헤치고 합성학교와 지금의 김해교회를 세운 배성두, 그리고 일제에 저항하며 3·1운동의 주동자로 투쟁하다 투옥돼 목숨을 잃은 배동석에 이르기까지 배씨집안 사람들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배씨집안의 후손인 배기호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6대에 걸친 가계의 역사적 자료를 면밀히 수집해 왔으며, 그 자료들이 재미소설가 박경숙 작가를 만나 소설로 재탄생해 세상에 나왔다.
1. 역사적·가족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실화소설
험난한 근대사를 헤쳐 나온 한 가계의 가족사를 다룬 생존기록. 배씨일가의 가족사를 거울삼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융기하고 침식된 우리 역사의 진면목을 드러냄으로써 소설적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 요컨대 배씨일가의 가족사는 한국 초대교회의 성장과 박해의 기록이고,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실상의 핍진하고 처절한 증언이며, 앞으로 재조명되어야 할 미주 이민사의 시발점을 보여 주는 셈이다.
2. 한국적 사도행전의 실천
《약방집 예배당》의 등장인물들은 고향을 떠나 세상 문물 가운데서 신앙과 인간애의 행동 규범을 단련한다. 배성두가 충주와 한양을 떠돌다 세상 너머를 인식하는 삶의 표본이 될 인물들을 만나거나, 배동석이 공부하러 대구와 한양으로 가 믿음을 실천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점 등이 그러하다. 다른 한편 사울이 바울로 이름을 바꾸듯 배영업에서 배성두로, 한금에서 한나로, 배만복에서 배동석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 헌신할 것을 서약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이와 같이 배씨집안 사람들은 일생을 신앙의 권능에 붙들려 순응하며 끈기 있는 믿음의 사람들로 살아갔다.
3. 인간애의 진정성이 토해 내는 재미와 감동
험난한 시대사, 사고와 역병으로 스러지는 가족사를 현장에서 목도한 배씨일가 가족의 눈빛이 오래된 삶의 지혜를 담아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듯 삶의 혜안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루는 중심축은 신분의 차별이나 재물의 유무를 넘어선 인간 사랑, 즉 인본주의 정신을 잘 보여 준다. 속도감 있는 문체와 생동하는 입담에 담긴 휴머니즘적 서사는 읽는 이에게 재미와 감동 모두를 안겨 준다.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에게 미래가 있을 수 없으며, 민족 공동체의 존립에 헌신한 선열을 존중하지 않는 세대는 올곧게 발전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약방집 예배당》은 단순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기록이요 민족적 책무를 말하는 진품 교과서이다.
>>배씨일가 소개
배씨일가의 후손 배기호 선생의 선조 배수우는 1801년 당시 충주 관찰사였다. 그는 천주학 박해를 피해 아들과 도피하던 중 그만 목숨을 잃게 되고, 살아남은 아들 배광국은 의술을 익혀 김해 고을에서 한의사로 일했다. 아버지의 의술을 이어받은 배성두는 선교사 알렌을 통해 예수를 영접한 후, 김해교회와 합성학교를 세웠다. 그의 후손들 역시 믿음의 자손답게 의로운 삶을 살았는데, 특히 배성두의 맏아들 배동석은 기미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투옥되어, 갖은 고초 끝에 건강을 잃고 장렬한 죽음을 맞았다. 그런 배동석은 1980년 8월 15일에 독립운동의 노고가 인정되어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04년에 독립유공자로 추대받아 그 유해가 고향 선산에서 대전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배동석 열사의 죽음 후 홀로 남은 아내 김복남 여사는 온갖 고생을 하며 대위, 유위 두 아들을 키워냈다. 차남 배유위 씨의 장남인 배기호 선생은 1971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 약국을 경영하며 한인 지역사회의 시민권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한인교회 장로로 있는 그는 두 아들 성민, 성진 형제를 낳아 신장내과 의사와 약사로 키웠다. 한의사였던 배성두 장로와 세브란스 의전을 다녔던 배동석 열사의 자손인 이들이 모두 의학과 약학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 듯하다.
>>본문 맛보기
뭐라고 설명할 수 없었지만, 영업은 그 세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자신의 가슴속에서 출렁이고 있음을 느꼈다. 그가 객지 생활 육 년 동안 얻은 것이 있다면, 세상 너머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듯한 그들의 눈빛이었다. 날이 갈수록 그는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직 가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희망 같기도 했고,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 같기도 했다. -117쪽
“그라고 말이다. 내가 왜 이 낯선 동네까지 왔냐면…….”
막 ‘예수’라는 이름을 꺼내려던 성두는 한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그만 입을 다물었다. 우선 먹을 것이 배고픈 사람에게 먼저인 것 같았다. 오늘 이 모자에게 필요한 예수는 진리를 말하는 신이 아니라 배고픔을 채워 주는 신일 것이었다. 성두는 하나님이 자신의 손을 빌려 그들 모자에게 동정을 베푼다고 생각했다. 정신을 놓았던 노파가 방 안의 인기척에 겨우 실눈을 뜨고, 낯선 방문객인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나서야 성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164~165쪽
“……학생은 마치 이런 세상을 훤히 보듯이 지금 새로운 체제의 항거 세력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우리 곁에는 항상 그분이 계십니다. 혹 학생을 하나님이 택하셨다면, 그분은 반드시 도우실 것입니다. 두려움은 그분과 함께 가지 않고, 나 홀로 가려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동석은 숙인 고개를 들어 알렌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예배당 유리창으로 새벽빛이 환하게 비춰 들었다. 빛이 어리는 알렌의 파란 눈이 평화롭게도 조선의 한 청년을 평화롭게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228쪽
‘아! 하나님! 하나님!’
그는 지금 자신이 부를 이름은 아들이 아니라 이제껏 자신의 삶을 이끌어 준 하나님이란 것을 다시 깨달았다. ……뭔가 새털 같은 기운이 온몸을 가벼이 감싸는 듯한 포근함에 배성두는 자신도 모르게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너는 깨끗하게 되었도다!’ 어디선가 아스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허물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어렴풋이 깨달았다. 자신의 인생에 긴 시간 연속된 고통들이 다 감사였다는 것을……배성두는 가만히 속삭였다. ‘아버지!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367쪽
“주님! 저는 이미 이 십자가에서 내려가 세상으로 걸어갈 수 없음을 압니더. 왜냐면 당신이 택하셨기 때문입니더. 그러나 고통스럽십니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힘겹십니더.” 순간 그의 귀를 때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나는 십자가 상에서 기뻤느니라. 내 피로 세상을 구원한다는 희망에 기뻤느니라. 고통으로 내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어도, 내 영혼은 말할 수 없는 환희에 있었다. 그러니 너도 기뻐하여라. 네가 흘린 이 십자가 상에서의 피와 고통으로 세상에 빛이 남으리라.’ 동석은 잠으로 빠져 들며 말할 수 없는 평화를 느꼈다. 가슴으로 꽃향기가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377~378쪽
배성두의 삶이 그 가족공동체와 더불어 신앙 중심으로 편성되면서, 아들 동석의 독립운동이나 멀리 하와이의 ‘사진 신부’로 떠나는 딸 천례의 해외 이민에 이르기까지, 그의 신앙은 모든 일과 사건을 통합하는 동심원의 중심이 된다. 그는 김해 고을 최초의 세례자이자 교회 설립자이며, 빈한하고 곤고한 삶의 현장에서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뿌리내리고 그 실천적 면모를 보일 수 있는가를 체현한 선각자였다.
-399쪽(‘독자를 위하여’에서 발췌)
>>편집 후기
언젠가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산문에서 소설 《동의보감》에 대한 언급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살이의 이치,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道), 사람을 하늘같이 대하는 의원의 자세, 생동하는 작가의 입담 등을 언급하며, 그 근간에 보기 드문 의미 있는 소설이라 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방집 예배당》과 함께하는 내내, 소설 《동의보감》과 그 책에 대한 권정생 선생의 평가가 머릿속에 맴돈 것은 왜일까?
구체적인 의학 상식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약방집 예배당》 역시 《동의보감》 못지않은 평가를 내리기에 충분하다. 세속적 욕망 너머의 신념, 죽음을 통해 주인공이 진리를 깨달아 가는 점, 스승과 제자가 부자(父子)와 다를 바 없음을 보여 주는 인간애, 조물주가 주신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의원의 자세, 구수한 사투리 구사와 생생한 입말 등이 그러하다.
비단 문학적 형식과 내용의 성취뿐 아니라, 이 책은 한 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다음 장을 궁금하게 만드는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약방집 예배당》의 소설적 재미는 실제 참된 삶을 산 배씨집안 사람들의 고통이 토해낸 역설적 재미이며, 역동적 삶의 증거인 셈이다. 흥미에 빠져 읽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레 하나님이 얼마나 촘촘히 우리 삶의 매순간을 미리 계획하고 계신지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약방집 예배당》은 배씨일가의 후손 배기호 씨와 저자 박경숙 씨 모두 신앙소설로 기획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삶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아픔을 경험했고, 그러한 자신의 고통과 배씨일가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끈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자연히 신앙소설로 완성하게 되었다.
이 책의 해설자인 문학 평론가 김종회 교수님은 처음 이 원고를 본 후 본인이 먼저 해설을 자청했고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1년여에 걸쳐 해설 원고를 완성했다. ‘신앙소설’의 개념이 아직 널리 퍼지지 않은 한국에서 출간에 적합한 출판사가 홍성사라 생각하여 배기호 선생님을 홍성사에 연결시켜 준 것도 그였다.
삶은 고통이며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향한 외침이 그저 메아리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동행하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싶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각자 자신의 삶에 닥친 고통과 외로움이 어떤 의미로 주어진 것인지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1801년, 신유년에 있었던 일
김해 동상 마을
새 스승과 헌금
영업의 혼인
스승과의 이별
동학운동과 짝패
떠남과 만남
약방집의 행복
잔가지에 부는 바람
아버지의 고향
같은 땅이건만
야소와의 만남
길을 닦는 사람들
다시 이어진 인연
약방집 교리공부
서 푼짜리 풀 한 덩이
약방집 예배당
의로운 동석
동석의 출가
대구의 봄
거룩함은 희생을 부르고
믿음으로 맺어진 청춘
유일학교의 불꽃
사진신부 천례
대한광복회와 세브란스 의전
학문과 독립 사이에서
또다시 고향으로
봄날에 서서
미지의 땅 만주
깊어지는 배움 속에서
만주와 상해
기미만세운동
그해 김해의 봄
아버지의 임종
빛의 씨앗
에필로그
책을 출간하며
독자를 위하여: 믿음, 민족혼, 인간애의 세 줄기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