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와 ‘라떼’의 가치
박 진 희
『내 안의 그 아이』는 펼치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읽었던 책입니다. 이 책의 장점은 잘 읽힌다는 것입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큰 노력 없이 앉은 자리에서 다 읽게 됩니다. 이 책은 현대시에 대한 연구서와 평론집을 30여 권 이상 낸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송기한 선생님의 첫 번째 산문집입니다. 그러니 내용이 무척 궁금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보통 평론가의 산문집이 그러하듯 딱딱한 문체에 어려운 내용이 많을 것이란 선입견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그러한 선입견은 기우였음을 알게 됩니다.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은 1960년 ~ 70년대이고 주된 공간적 배경은 충남 논산의 “아직 근대화의 물결이 한참 못 미친 아주 낙후된 동네”입니다. 그러니 내용은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던 때의 이야기(「도둑 아닌 도둑」), 너무 가난해서 선생님의 가정방문을 피하려고 온 가족이 집을 비운 이야기(「부끄러운 하루」), 육성회비 때문에 울고 웃었던 일(「육성회비」) 등등 가난이 주요 모티프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가난과 무지 때문에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여동생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장면(「3년의 인연」)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맙니다. 이 밖에도 「아버지의 독립운동」, 「10월 유신」, 「반공 교육」, 「새마을 운동」 등 당시의 시대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글에는 가난에 대한 비극적 정서나 당대 정치 · 사회에 대한 어떠한 비판적 시선도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이 글의 주체랄까 시점은 어린 나 자신입니다. 가능한 한 당시의 시각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여기의 가치평가들은 가급적 개입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쓰고자 한 것입니다.” 저자가 서문에 쓴 것처럼 이 책에 수록된 42편의 글은 주로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때때로 관찰자의 시점에서 쓰였습니다. 또한 대화체도 많이 쓰여 현장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치들로 인해 여기에 실린 글들에서는 그동안 읽어왔거나 써왔던 수필과는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많은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수필에서는 형상화, 의미화가 중요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제를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현상을 통해 돌려 말하기, 혹은 보여주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생각의 차원을 높여 사물 내지 사건의 이면에 있는 진리를 통찰해내야 하고 적절한 구도와 정제된 언어를 통해 드러내는 것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내 안의 그 아이』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쓰고자 한” 저자의 의도에서 그 까닭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편편의 글들에서는 제작된 한 편의 글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그 시간 그 장소에 들어가 ‘그 아이’를 쫓아다니는, 아니 ‘그 아이’와 함께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가령 「육성회비」라는 작품을 보면 화자는 국민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반에서 육성회비를 내지 못한, 몇 안 되는 학생 중에 화자가 속해 있었고 선생님은 급기야 ‘내일까지 육성회비를 가져오지 않으면 3학년에 진급시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겁이 난 화자는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께 말씀드리지만 아버지는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만 하십니다. 화자는 학교에 갈 수도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어렵사리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며 화자는 엉엉 소리내어 울게 됩니다. 아버지는 결국 보리 사려고 남겨둔 돈을 쥐여 주고 맙니다. 가족들 식량 값을 내어준 셈이지요.
현재의 시점에서 쓴다면 분명 가난에 대한 소회와 가장인 아버지의 심정에 대해 언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울면 돈이 나오는 것인가’라는 생각과, 친구들과 함께 진급하게 되었다는 안심으로 끝을 맺습니다. 일반적인 수필에 익숙한 독자로서는 무언가 중간에 끝나고 마는 듯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글을 한 편 한 편 읽어나갈수록 어린 아이 시점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희미했던 ‘그 아이’의 이미지가 점차 뚜렷한 개성을 입어가는 과정을 보면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합니다.
순수하고 무구한 ‘그 아이’의 눈을 통해 그 시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자료를 보면 훨씬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요. 그러나 진솔한 삶의 기록, 그 안에는 자료화할 수 없는, 개별적 존재의 고유한 실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온갖 사건이 일어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가족과 이웃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잊혀진 풍속이 거기에는 살아있으며 또 지금은 너무 당연한 것이 거기에서는 새롭고 신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서문에 저자는 “유사 이래로 이런 삶은 이 시기만의 한정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삶은 지속적이고 항상적인 것이었으며 우리의 심연 속에 늘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라 썼습니다. ‘그 아이’의 개인사가 ‘우리의 보편사’이기도 한 것이지요. 나태주 시인 또한 “문체가 바르고 순결한 언어로 이루어진 문장”이라고 하면서 “어쩌면 성장소설을 읽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한 인간의 인생 역정 증언이지만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공동 증언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라고 글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습니다. 『내 안의 그 아이』는 오늘의 우리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수필만큼 작가의 자기검열이 심한 경우도 드물 것입니다. 소설의 허구나 시의 퍼소나와 같은, 작가를 가려줄 어떠한 장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수필적 자아가 그대로 작가 자신이기 때문에 글의 소재나 내용을 선택할 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검열이 작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인 아픔이나 부끄러운 일에 대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지난 시대, 소위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자의식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작가가 쓴 작품에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글이라고 솔직한 느낌을 얘기했음에도 작가는 믿지 않고 “이런 옛날 얘기를 누가 좋아하겠어요?”라며 뒤로 물러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아무도 반기지 않는 군대 이야기를 하는 듯한, 시대에 뒤처진 듯한 느낌을 줄까봐 조심스러워했던 것이 아니었나 짐작해봅니다.
유행하는 말 중에 “라떼는 말이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적으로 일컫는 말로 소위 ‘꼰대’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옛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것에 자의식을 갖게 되는 까닭에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버린, 다시 돌아가지 못할 과거에는 ‘지금 여기’에는 없는, 상실한 가치가 존재합니다. 사랑, 낭만, 무구한 마음, 무모한 열정, 공동체적 유대감 등등 효율이나 경제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잃어버린 가치를 잃어버린 채로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 담론화하여 ‘상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수필의 진솔성은 이를 드러내는 데 매우 유용한 성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성세대의 말과 태도로 잃어버린 ‘라떼’의 가치를 글을 통해 회복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내 안의 그 아이』를 읽으며 해 봅니다.
이 책이 획득하고 있는 의미 중 또 다른 하나는 글 속의 ‘그 아이’가 내 안의 ‘그 아이’를 불러낸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내면에는 자라지 않는 ‘그 아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를 만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날의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딛고 서 있듯이 오늘의 나는 ‘그 아이’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를 만나고 알고 다독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현재의 내가, 우리가 굳건하게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서 있을 수 있게 됩니다.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아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데, 미래를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자주 추억을 떠올리거나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이나 말은 실체도 지속성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추상적인 감각, 이미지, 상상을 구체적 물상으로 자리하게 하는 것이 바로 글입니다. 글은 내 안의 ‘그 아이’를 만나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쓴 모든 글은 나에게 좋은 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 정서의 감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독자에게도 좋은 글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필을 쓰는 사람은 우선 나에게 좋은 글을 쓴다는 마음으로 진솔하고 진정하게 쓰면 일차적인 목표는 이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당연히 독자에게도 좋은 글이 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지요.
신달자 시인은 『내 안의 그 아이』에 대해 “너 나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 여기 있다. 꿋꿋하게 험한 시대를 걸어온 우리들 발자국을 보석 안 듯 품게 되는 이 글을 만약 놓치면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슬픔”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또 작가에 대해서는 “자꾸만 엷어져가는 순수한 감성의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작가이거나 우리들 내면에 흐르는 ‘울고 있는 아이의 상처’를 안아주는 유정한 시인”이라 표현했습니다. 『내 안의 그 아이』는 ‘라떼’의 가치를 담보하고 있는 책이자, 저자 자신에게도, 또 독자에게도 좋은 글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