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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장 바울의 멜리데 섬 체류 기간 중의 이적들과 멜리데에서 로마까지의 여정 및 바울의 2년간의 로마 사역 요약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넓게는 21:17-28:31까지 이어지는 일련기사 곧 유대주의자들과의 충돌로 본의 아니게 큰 소요(騷擾)를 일으켜서 일단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된 바울이 그 후에도
그를 율법 모독자 및 사회 소요자로 고소하는 일부 광신적 유대인들에게 대항하여 수차의 변론 끝에 자신의 로마 시민권(Roman Citizenship)을 이용하여 직접 가이사(Caesar) 곧 로마 황재에게 상소한 결과 로마로 이송되게 되었던 과정을 기륵한 소위 '바울의 로마 여행' 관련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또한 좁게는 이제 유대 땅 가이사랴에서 로마까지의 이송 경로 및 마침내 도착한 로마에서의 약 2년간의 바울 사역을 보도함으로써 사도행전을 마감하는 27:1-28:31까지의 일련 기사의 종결 부분이다.
이런 문맥하의 본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전반부 1-10절은 유라굴로(Eurodydon) 광풍으로 임시 기착한 멜리데 섬에서 바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이적들 곧 바울이 독사에 물렸으나 무사했던 사실과 바울이 그 섬의 지도자의 부친 및 맡은 이들에게 치유의 이적을 베푼 사실들을 보도한다. 중반부 11-15절은 멜리데에서 떠나 마침내 로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보도한다. 후반부 16-31절은 로마에 도착한 바울이 주로 그곳애 살던 유대인들에게 당신 안에서 모든 구약을 이루시고 새로 신약을 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으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이를 거부하자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 구원의 복음이 유대인의 거부로 이방인에게 전파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지적한 사실과 함께 2년간에 걸친 바울의 로마 사역을 요약 보도함으로써 사도행전을 끝맺고 있다.
전반부의 멜리데 섬에서의 바울의 이적 기사애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구속사적 교훌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이 사건은 하나님의 종은 그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간에 또 세상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 어떠하든지간에 그가 하나님 안에 거하기만 한다면 그 언제나 하나럼의 보호를 얻을 것임을 보여 준다(시 144:2). 또한 역(逆)으로는 이처럼 당신 자신은 물론 당신의 종들에게 조차 뱀을 이기고 뱀을 물리칠 힘을 당신의 종에게 허락하실 능력이 있으시면서도 바울을 이 당시 죄수의 신분으로 전락해 있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종 바울을 구할 힘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이를 통해 복음이 더욱 널리 전해지게 하치고자 계획하신 하나님의 섭리(攝理) 때문이 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우리는 물론 하나님은 당신좌 백성들에게 영육간의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시나 궁극적으로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천국의 구뭔이므로 때로 잠시 동안 사는 것에 불과한 이 세상에서는 최종적인 천국 구원을 위하여 환난이나 역경도 주실 수 있으므로 그럴 때 요동하지 말고 그 고난과 역경의 의미를 직시하여 더욱 더 하나님을 의뢰해야만 함을 보여 준다(벧전 1:3-9; 계 2:10).
중반부 11-15절까지의 멜리데에서 로마까지의 바울의 여정에 대한 사실 보도의 의의에 대해서는 제 27장 개관 앞부분을 참조하라.
후반부 16-31절에 보도된 기사들을 구속사적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다음 두 가지 큰 구속사적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직후부터 곧바로 시작하여 석방될 매까지의 2년동안 계속해서 그것도 바로 자신을 무고(證告)히 고소하여 지금 자신을 죄수의 신분으로 이곳 로마에 오게한 장본인들이요 자신의 동족으로서 자신을 핍박하고자 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조속히 유대교적 오류를 버리고 곧 우리 주 애수 안에서 신 ․구약을 온전히 계승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라고 전도를 행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실로 우리에게 그 언제나. 어 디서나 그리고 그 누구에게나 복음을 우선적으로 전하는 하나님의 참 일꾼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하겠다.
둘째로 우리는 저자 누가가 지금껏 예수의 숭천 이후 오순절 사건으로 강림하신 성령(聖靈)의 인도로 바울의 것이며 그때의 구속사는 유대인들의 복음 거부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달되어 이방인 성도 중심으로 진행될 것임을 바울이 예언적으로 선언한 사실을 분명히 기륵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바울 자신은 전날 로마서를 기록하면서도(A.D. 57년경) 신약 시대에 이르러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복음 거부로 이방인이 구원받고 구속사가 확장되게 하신 하나님의 오묘하신 주권과 섭리를 구약의 예언과 당신의 역사 현실을 통해 설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간곡한 전도도 거부하는 유대인 앞에서 다시 한번 이를 선포한 것을 누가가 그의 사도행전 말미에 명시적으로 강조하여 기록한 것이었다. 이제 2000년 교회사가 경과한 시점에서 우리는 이 본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 구속사의 역사는 우리 이방인을 중심으로 온 땅까지 확장되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구속사가 그저 우연의 연속이 아니라 하냐님의 작정하시고 예언하시고 섭리하신 그대로 이루어 진 것임을 발견한다. 나아가 태초부터 종말까지 의 역사 전체가 결국 모두다 구속사의 장으로서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따라 작정(作定)된 대로 전개되는 것인바 우리는 눈에 보이는 역사의 이면에서 도도히 흐르는 구속사(救贖史)의 실체를 깨닫고 그 진리에 순복하여 영원한 지옥의 심판이 아니라 천국 구원에 이르는 성도의 대열에 동참해야 함을 새삼 각성하게 된다.
외울 말씀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0,31)
멜리데 원주민의 후대
1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바울이 멜리데에서 행한 두 이적
3 바울이 한 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7 ○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멜리데에서 로마까지의 여정
11 ○ 석 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 기호는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15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유대인을 청하여 변증하는 바울
16 ○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 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20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로마 거주 유대인들의 전반적 복음 배척
23 ○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29 (없음)
바울의 2년간의 로마 사역 요약 및 결론
30 ○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본문 & 자료노트
지도-28:1-15 바울의 로마행(Ⅱ)
주요주제-28:1-31 바울의 연대기
본권 서신서 개론 특별자료 참조
지도-28:1-15 전 3차에 걸친 바울의 전도 여행과 로마 여행
행 13장 연구자료 참조
신학용어-28:8,9, 신유
행 5장 자료노트 참조
역사배경-28:13-15 로마의 도로
본문에는 바울이 나폴리만의 보디올(Puteoli)에 상륙한 후 압비오 저자(Forum of AHius)와 삼관(Thrce Taverns)을 거쳐 로마로 들어가게 됐음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은 바울이 보디올에서 32km 떨어진 카푸아의 아피아 도로(Appian Way)를 따라 약 211km의 길을 여행했음을 보여 준다. 이 아피아 도로는 당시 로마 제국이 전식민지의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건설한 도로의 일부분으로서 당시 로마제국의 일면모를 보여 준다. 이에 로마제국의 도로에 대한 전반적인 사실과 아피아 도로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겠다.
1. 로마 도로의 특징
로마는 일찍부터 광범위한 제국 전체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도로망을 구축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들은 B.C. 2세기 초에 이미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연결하는 도로망을 구축하였으며 5세기에는 로마시에서 제국 구석구석까지 적도를 열 번이나 돌 수 있는 거리의 도로망을 완성하였다.
도로의 구조는 교통, 지형, 물자의 유용 등을 고려해 적절히 변형되었는데, 주요도로는 5.5-6m의 넓이로 만들어졌고, 산길은 1.5-1.8m의 폭으로, 행로는 이보다 더 넓게 건설되었다.
2. 도로 건설
로마인들은 도로를 건설하기전 거리와 경사면을 정확히 측정하여 설계 했고, 필요한 곳에서는 산맥을 뚫어 길을 곧게 만들었기 때문에 수세기 동안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리고 일련의 크고 작은 돌로 지면을 닦았고, 때때로 화산성 모래를 적당한 비율로 실리카와 혼합하여 오늘날의 콘크리이트와 같이 만들어 도로를 포장했다. 또 교통량이 많은 주요 도로와 연결된 도시 가까이에는 두께 30cm, 지름 50cm 정도 되는 모양을 맞춘 돌들로 표면을 정교히 포장했다.
3. 아피아 도로
이 길은 로마에서 카푸아(Capua)를 거쳐 브룬디시움(Brundisium)에 이르는 길로서, B.C. 312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Appius C교udius)에 의해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이 도로는 '도로들 중의 여왕'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굉장히 넓고 길게 건설되었는데, 바울이 로마까지 여행할 때 지났던 이 도로가 아직도 서이태리의 중요한 도로로 남아있음을 볼 때 그 면모를 재삼 짐작케 된다.
원어연구-28:15, 사례하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유카리스테오'이다. 이는 '좋은'이란 뜻의 '유'와 '기음을 나타내는 것', '은혜', '친절'이란 뜻의 '카리스'가 합성된 단어로서 '좋은 은혜론 입음', '감사하는 마음의'란 뜻의 '유카리스토스'에서 유래한 동사이다. 그래서 그 뜻은 '감사하고 있다'. '감사를 드리다'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단순히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낸다는 의미보다는 일반적으로 일정한 어떤 의식 행위와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즉 일반적으로 식사 전에 행하는 감사기도(마 15:36; 막 8:6). 혹은 성찬식에서의 기도(마 26:27; 눅 22:17,19), 그리고 예배와 같은 종교 의식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기도 등을 가리키는 경우(엡 5:20; 골 3:17)가 많다.
한편 본문에서 바울은 포로가 되어 로마로 호송되어가는 자신을 맞으라 나온 형제들로 인하여 고달픈 자신의 형편을 잊고 오히려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는 것은 '유카리스테오'의 본래의 의미를 통해서 볼 때, 단지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기 보다는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겠다. 이와 같은 바울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 믿음 가운데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도표-28:16-31 바울의 옥중 서신들과 생활
사도 바울은 A.D. 61년경 로마로 호송되어 무죄한 자이면서도 2년간 로마 감옥에 갇히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에도 그는 자유롭게 자신을 찾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그 자신이 선교 여행 중 세운 교회에 서신을 띄우기도 하였다. 옥중에 갇혀서도 자신보다 교회를 생각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은 결국 하나님의 천국 구원을 확신한 자, 그리고 주의 사랑을 가진 자의 위대함을 보여 준다. 한편 사도 바울은 A.D. 63년경 로마의 제 1차 투옥 생활에서 석방된 후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A.D. 67년경 제 2차로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A.D. 67(또는 68)년경에 순교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표-28:17-20 악재를 이용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7대 경우
행 25장 자료노트 참조
보감-28:19,20 사도 바울의 민족애(民族變)
바울은 비록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아 일평생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전도 사역에 헌신하었지만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 던 깊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이 땅의 시민이 아닌 천국 시민이 되었다 할지라도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자신의 민족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귀한 본이 된다.
1. 동족으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았으나 그들을 미워하지 않음(행 28:19)
2. 자신의 고난을 통해 이스라엘의 소망을 이루기를 훤함(행 28:20)
3.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 라면 예수에게서 끊어지는 저주조차 감수함(롬 9:3)
4. 동족의 구원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함(롬 10:1)
5. 자신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김(롬 11:1)
1. 옥중 서신
1) 에베소서–교회론
2) 빌립보서-성도의 일치
3) 골로새서-예수의 만유의 주되심
4) 빌레몬서-주 안에서의 용서
2. 옥중 생활
1) 의의 면류관의 상급을 확신함(딤후 4:8)
2) 갇힌 자이면서도 자유한 자를 위로함(딤후 1:8)
3) 편지로 자신이 세운 교회를 가르침(엡 1:1; 빌 1:1)
4) 복음 전도 사역을 후회하지 않음(고후 12:11)
5)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음(빌 1:21)
6) 자신의 처지를 복음 전도의 기회로 삼음(행 28:23-31)
7) 죽음을 대비하여 교회의 뒷일을 도모함(빌 2:23,28)
도표-28:26,27 신약의 구약 인용
본서 14권 신약 총론 특별자료 참조
인물연구-28:30,31 바울
롬 1장 연구자료
주요주제-28:23-28 이스라엘에서 세례 만민에로의 구속사의 확장
롬 11장 연구자료 참조
지도-28:30,31 제 1차 로마 투옥에서 제 2차 투옥 및 순교까지의 바울의 행적
본장 연구자료 참조
28:1-10 멜리데 섬에서의 두 이적
본장을 바울의 로마 전도를 끝으로 바울 및 사도들의 전도 사역에 대해 결론을 맺고 있는 부분으로 본서 전체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 가운데 본문은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기 전 배자 파선하여 멜리데라는 섬에서 약 3개월간을 머물 때 발생했던 사건들, 즉 바울이 독사에 물렸으나 죽지 않은 사건과 바울이 열병과 이질에 걸린 멜리데 원주민 지도자의 부친을 치유한 사건을 통해 멜리데 섬에도 복음이 중거된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이제 본문에 나타난 두 사건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바울이 독사에 물렸던 사건이다(1-6절). 사건의 배경은 멜리데 섬 원주민들이 조난당한 바울 일행을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 불을 피움으로써 발생한다. 즉 바울이 불에 나뭇가지를 갖다 을려 놓을 때 나뭇가지 사이에 있던 뱀이 불의 뜨거움으로 인해 튀어나와 바울의 손을 문 것이다. 이를 목격한 멜리데 원주민들은 바울이 필경 살인죄를 지어 신의 징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이는 멜리데 원주민들의 종교심을 반영해 주는 바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인과 응보(因果應報)의 논리에 적용을 받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죽을 때만을 기다리던 멜리데 원주민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륵 바울에게 아무런 이상도 나타나지 않자 이번에는 바울을 신으로 오해하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쳤을 때 바울을 신으로 오해한 루스드라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행 14:8-13) 하여튼 바울이 뱀에 물렸으나 아무 이상이 없었던 것은 믿는 자는 뱀을 잡으며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주님의 약속의 성취로(막 16:17,18). 바울은 이번 기회를 하나님과 복음을 증거하는 호기로 삼았을 것임에 분명하다.
다음으로 바울이 열병과 이질에 걸린 보블리오의 부친을 치유한 사건이다(7-10절). 여기서 보블리오는 멜리데 원주민들의 대표였다. 따라서 그는 원주민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바울이 보블리오의 부친을 치유한 이 사건은 보블리오로 하여금 바울에 대해 신적 존경을 갖게 했을 것이고 자연히 원주민들에게도 그 영향력은 파급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 사건으로 바울이 전하는 복음 역시 놀라운 속도로 멜리데 섬 전체에 전파되었을 것이다.
결국 본문의 두 사건은 멜리데 섬을 복음화시키기 위한 성령의 역사요 섭리의 결과였음을 알 수 있다. 전숭에 의하면 보블리오가 멜리데의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가 순교했다고 하며, 실제로 멜리데 섬에서 초대 교회가 박해를 피해 예배를 드리던 지하 묘지 카타콤(Catacomb)이 발견됨으로써 멜리데 섬이 복음화된 역사성이 입증되었다. 이상의 사실에서 우리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과 섭리의 오묘함을 깨닫게 된다.
28:1 우리가‥‥안즉‥‥멜리데라. -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천신만고 끝에 육지에 상륙한 지(행 27:39-44) 얼마 지나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상륙한 그 곳이 멜리데(melita)는 섬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멜리데'(멜리테)는 현재의 '말타'(Malta)인 것이 분명하다. 이 섬은 시실리 섬 남방에 있는 것으로 길이가 약 30km, 폭이 약 16km 정도의 크기이다. 그리고 시실리에서 약 100km, 아프리카 해안의 북동쪽 약 34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섬은 B.C. 1,7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의 식민지였으나 제 2차 포에니 전쟁 초기인 B.C. 218년에 로마에 의해 점령되었다. 그리고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영국의 영토가 되어 지중해 함대의 주요 기항지가 되었다. 한편 혹자는 이 섬이 일리아 연해의 멜레다(Meteda)라고 주장하기도 하나(Bryant) 일반적으로 인정하거가 힘들다. 어쨌든 처음부터 계획하지 않았던 멜리데 섬에 상륙하게 된 것은 바울의 충고를 무시하고 겨을 바다의 위험을 무릅쓴 채 뵈닉스로 떠나기로 고집했던 선장과 백부장 때문이었다(행 27:9-12). 그러나 그나마 이 섬에 안전하게 상륙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의 배후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다(행 27:22-26).
28:2 토인들이…특별한 동정을 하여. - 바울과 함께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헤엄쳐 물에서 나왔고(행 27:43, 44) 또한 그간 2주 동안 풍랑에 시달렸으므로(행 27:27) 저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멜리데 섬의 주민들은 저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여기서 '토인들'(호이 바르바로이)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바르(Bar) 바르(Bar)하는 자들'이란 뜻이다(Robertson). 이는 곧 바울 일행의 귀에 저들이 말하는 바가 '바르 바르'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붙인 호칭일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단어에서 '미개인' 또는 '야만인'이라는 뜻의 '바바리안'(Barbarian)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그러나 본문에서누가는 이 말을 그러한 경멸적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당시 헬라인들은 이 말을 대체로 외국어를 하거나 타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고전 14:11), 혹은 헬라어를 못하거나 헬라 문화를 습득치 못한 외국 사람들에게 사용하였다(롬 1:14). 이로 보아 고대 헬라인들이 통속적으로 비헬라인들을 모두 이렇게 지칭한 것처럼 누가 역시 이러한 의미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공동번역은 이를 '섬 사람들'(islanders)로 RSV는 '원주민들'(natives)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한편 이하의 기록에 의거해 볼 때 이 멜리데 주민들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음이 확실하다.
불을 피워…다 영접하더라. - 멜리데 주민들은 남의 불행을 틈타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난파선 약탈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도리어 조난당한 276명의 낯선 사람들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여기서 누가가 비그리스도인인 멜리데 주민들의 이러한 친절을 언급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이는 마치 바울을 향해 친절을 베푸는 불신자들과,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죽이려 했던 동족 유대인들을 비교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행 23:14-15). 아무튼 누가는 이방인들의 마음 가운데서 역사하고 계셨던 하나님의 권능과 섭리를 중거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우리는 말로써는 비록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정작 행동면에 있어서는 불신자들보다 남을 위한 희생적인 성신과 사랑이 부족하여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나 하지 않고 있는지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28:3 바울이 한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 본문의 '한뭇 나무'(푸뤼가논티 플레도스)는 '마른 막대기들' 혹은 '불붙이는 것들'이란 뜻으로, 연소되기 쉬운 물질을 말한다. 70인역(LXX)에서는 이 말을 '짚'이나 '초개'(사 40:24; 41:2) 등으로 번역하였다(Hervey). 한편 항해 도중에 바울이 승선한 사람들을 위해 세운 공적을 생각한다면(행 27:21-37), 바울은 상륙 후에 저들로부터 섬김의 자리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도리어 계속해서 불을 피우기 위해 나무를 줍고 있는 것은 그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닌 겸손하고도 온유한 하나님의 일꾼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빌 2:1-13).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 아마도 바울은 땅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줍는 중에 땅에 납작하게 웅크리고 있는 뱀을 함께 집어 들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바울이 나무를 불에 넣자 거기에 있던 독사가 뜨거운 불을 견디지 못해 밖으로 나와 바울의 손을 물은 것으로 보인다(Bruce). 본문의 이 '독사'(에키드나)는 세례 요한이나(마 3:7; 눅 3:7), 예수님이 사용하신 용어와 같은(마 12:34; 23:33) 독 있는 무서운 뱀을 말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현재 말타섬에는 이러한 독 있는 독사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관해 대부분의 학자들은 1900여년 동안 인구 급증과 환경 변화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 등으로 독사가 멸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바울 당시에는 이러한 독사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Hervey, Knowling). 즉 바울이 뱀에 물려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원주민들의 태도(4절)로 보아 누가의 기록은 정확한 것으로 보이며, 특별히 하나님의 초자연적 권능이 바울에게 역사하셨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8:4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공의가 살지 못하게하심이로다. - 원주민들은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선 필경 바울이 목숨을 잃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바울이 그러한 변고를 당하게 된 것은 저가 살인자이기 때문인 것으로 여겼다. 즉 멜리데사람들은 바울이 바다에서 구사 일생으로 목숨을 구했으나 살인자이기 때문에 공의가 허락치 않음으로 바울이 죽게 된 것으로 확신했다. 여기에서 '공의'(디케)는 헬라 신화에 나오는 '정의와 복수의 여신'으로이 신이 살인자 바울을 용서하지 않고 독사를 보내어 죽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프리카인들 사이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죄수들이 난파당하여 육지에 오른 후 잠을 자다가 독사에게 물려 전원이 몰사당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교도들 가운데서도 자연적 의미의 정의와, 양심의 기능이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 만물이나 인간을 신으로 숭상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아울러 보게 된다. 이와 같은 모습은 멜리데 섬의 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미신적 사고 방식을 분명히 드러내어 준다. 또한 재난당한 사실을 근거로 바울이 범죄한 것으로 생각한 점은 과거에 욥이 사악한 죄를 지었음에 틀림 없다고 단정했던 욥의 친구들처럼 저들 역시 현세에서의 인과 응보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잘 나타내 준다.
28:5 바울이…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 곧 죽게 되리라는 원주민들의 생각과 달리 바울은 독사에게 물렸음에도 불구하고 죽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았다. 이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바(막 16:18)의 성취이긴 하나 분명코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이에는 바울을 철저히 보호하심과 또한 이로써 멜리데 주민들에게도 효과적으로 복음으로 증거케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가 개재하셨다고 이해해야 한다. 어쨌든 바울이 독사에게 물리고서도 태연히 독사를 떨어 버린것은 마치 다윗이 골리앗과 맞서 싸울 때 자신의 신앙을 나타내었듯이(삼상 17:31-37), 모든 위기 가운데서 지켜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담대한 신앙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확장을 위해 일하는 일꾼들을 필요에 따라 세상의 그 어떤 위험에서든지 지켜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된다(막 16:18).
28:6 그가 붓든지…신이라 하더라. - 원주민들이 생각했던 일반적인 현상이 뱀에 물린 바울에게 나타나지않자 저들은 바울을 신이라 생각했다. 원주님들의 이와 같은 모습은 바울과 바나바가 이적을 행하여 앉은뱅이를 일으켰을 때 루스드라 사람들이 그들을 신으로 여겨 제사를 지내려 했던 것과 유사하다(행 14:8-13).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이 갖고 있던 이와 같은 사고 방식과 신 관념은 바울이 섬기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선 어쩌면 당연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즉 여기서 우리는 피조물을 창조자의 위치에 두며,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의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는 하나님 없는 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처럼 창조주와 피조물의 위치를 전도(顚倒)시키는 것 역시 심각한 우상 숭배 행위라 할 수 있으니 우리 역시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는가 항상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롬 1:23).
28:7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 - 본문에서 누가는 멜리데 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우선 섬에서 제일 높은 보블리오(Publius)라는 사람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어떻게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는지를 밝히기 위함이다. 여기서 '제일 높은 사람'(토 프로토)은 문자적으로 '이 섬의 첫째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이 섬의 추장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최고 행정관을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대개는 이를 보블리오의 관직명으로 추정한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최근 말타 섬에서 발견된 두 개의 비문에 의하면 헬라어 '프로토'( )가 관리의 칭호였고(Alford, Knowling, Ramsay), 또 당시의 멜리데가 시실리 섬의 총독 관할 아래 있었기 때문에 보블리오를 그 예하의 행정 최고 책임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보블리오'(포플리오)는 라틴명이다. 그런데 그가 그곳의 토지를 소유하고, 또한 그곳에서 부친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아(8절) 본토인이면서도 로마식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는 로마인으로서 로마에서 이 섬에 파송된 로마의 행정 관리일 수도 있다(Ramsay). 아무튼 보블리오가 바울을 영접하여 3일간 유하게 하고 친절을 베푼 것은 바울을 통해 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려 한(8절) 특별하신 하나님의 섭리로 보인다.
28:8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 본문에서 특별히 의사인 누가가 보블리오 부친의 병명을 정확히 진단하고 밝힌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먼저 '열병'(퓌레토이스)은 당시 멜리데를 포함한 지중해 일대에 널리 퍼져 있던 일종의 장티푸스(Typhus)와 같은 병으로 고열이 반복되고 전염성이 높은 위험한 병이었다. 이 병은 1887년에 발병 원인이 상한 염소의 젖을 먹으므로 발병된다는 사실과, 병원체가 '마이크로코쿠스 멜리텐시스'(Micrococcus melitensis)로 밝혀졌다(Longeneker). 그리고 이 병에 전염될 경우에는 보통 4개월 이상을 고생해야 하며 심하면 목숨까지 잃었다. 다음으로 보블리오 부친이 앓고 있던 '이질'(뒤센테리오)은 설사가 잦은 병으로 심하면 탈진을 동반하여 기력을 잃게 하는 괴로운 병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의사 누가가 이처럼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였으나, 그 병을 치료한 것은 바울의 안수와 기도로 인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바울이 복음을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능력을 덧입혀 주신 때문인데, 이 역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8) 하신 주님의 약속의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바울이 뱀에게 물린 이후에 전개된 현상이나, 바울의 치유 능력은 주님이 어떻게 바울을 인도하시며 이런 저런 환경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이는 실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구원하심에 있어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불문하고 다함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이기도 하다(롬 11:25-32).
28:9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 과거에 예수께서 병자를 고치신 소문이 삽시간에 무리들에게 퍼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뒤따른 것처럼(마 4:23,24), 바울이 보블리오의 부친을 치유한 소식은 온 섬에 퍼져 나가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다 와서 고침을 받았다. 물론 바울은 이때 단순히 저들의 육신적인 질병만을 고친 것이 아니라 복음도 함께 전했을 것이다. 한편 본문의 '고침을 받고'(데라퓨오)라는 말은 의학적인 용어이다. 따라서 바울의 치유 행위에는 의사인 누가도 도왔을 것으로 추측된다(Robertson). 그러나 누가는 자신의 치유 행위와 결과보다는 시종 일관 바울의 기도와 안수로 인해 병자들이 고침을 받은 것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어쨌든 바울의 이러한 치유 행위는 주께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것의 성취로(막 16:18)이는 복음을 더욱 널리 전파되게 하고 또한 하나님의 권능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었다. 한편 말타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기록은 없으나, 보블리오가 그곳의 첫 번째 감독이 되었다는 전승이나 기독교인의 순교 묘지인 카타콤(catacomb)이 많다는 사실로 보아서 바울의 전도 사역이 이곳에서도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극한 환경 가운데서도 여러 방법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더욱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일례이다.
28:10 후한 예로…대접하고. 본문의 '예'(티메)라는 것은 '가격', '사례금', '보상금', '존경'이라는 뜻을 지닌 낱말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바울이 병 고쳐준 데 대한 '치료비'(fees)를 저들이 주었다고 한다(Lumby, Vincent, Bruce). 그러나 이는 단순히 치료비의 명목이 아니라 병을 고쳐준 바울과 그 일행들에게 저들의 정성이 담긴 답례를 했던 것이다. 실제로 딤 5:17에서는 같은 말이 '존경하다'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저들은 바울에 대한 심심한 감사와 공경의 뜻을 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 은혜를 입은 멜리데 섬 사람들은 바울 일행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바울 일행이 계속 항해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 주었다. 저들은 그동안 유라굴로로 인해 바다에 내버린 의복이나 식량 등을 바울 일행에게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멜리데인들의 이러한 친절은 육신적인 치유와 함께 영혼의 구원을 받은 자들로서 마땅히 행하는 감사의 표시로 여겨진다. 그와 함께 복음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바울 일행에게 때를 따라 후히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계속 발견할 수 있다. 어쨌든 멜리데 섬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성도가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를 표하는 것이 당연할 뿐 아니라 이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임도 배우게 된다(엡 5:20: 빌 1:3; 골 1:12: 살전 5:18).
28:11-15 멜리데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앞단락(1-10절)에서는 바울이 멜리데 섬에서 머물렀던 3개월 동안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어 본문은 바울과 일행들이 멜리데 섬에서 로마에까지 이르는 여정과 로마에 도착하여 형제들의 영접을 받는 장면을 소개한다.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로마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이다(11-13절). 바울은 멜리데 섬에서 3개월의 겨울 기간 동안 멜리데 원주민들의 지극한 호의 속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항해(航海)를 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 곧 2월경이 되자 로마를 향해 출발을 하게 되었다. 배는 역시 알렉산드리아를 출항하여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보낸 디오스구로호였다. 하여튼 배를 타고 멜리데 섬을 떠나 북동쪽으로 항해하다가 유명한 역사적 도시인 시실리의 수도 수라구사(Syracuse)라는 항구에 정박하였다. 그리고 사흘 후에는 순풍을 따라 이탈리아의 항구인 레기온(Rhegjum)에서 하루를 정박하고 다시 남풍을 따라 그 다음날에는 보디올(Puteoli) 항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형제들의 영접으로 일주일간 머물다가 드디어 로마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때는 A.D. 61년 2월경으로 바울은 마침내 그가 가기를 그토록 열망했던(행 19:21; 롬 1:15) 세계의 중심지이자 선교의 옥토인 로마에 성령의 인도와 보호하심으로 도착하게 된 것이다.
둘째, 형제들의 위로와 환영이다(14,15절). 바울이 보디올 항에 도착하자 그곳의 형제들은 바울의 소식을 듣고 그를 영접하여 위로하였다. 특별히 바울은 호송 책임자인 율리오 백부장의 호의로 형제들의 집에서 7일간 머무르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한편 바울이 로마 부근에 도착했을 때에는 바울의 소식을 들은 로마의 형제들이 압비오 저자와 삼관이라는 곳까지 마중을 나와 바울을 영접하고 환영하여 바울에게 기쁨을 주었다. 이처럼 로마에 처음 도착하여 생소했던 바울에게 형제들의 영접은 큰 용기를 주었고 복음 전파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갖게 하였다. 바울이 고난과 역경에 처하여 실망하고 낙심할 때가 되면 주님은 친히 또는 형제들을 통하여 위로와 평안을 주어 복음의 소망을 갖게 하였는데, 이제 로마에서도 바울이 형제들을 통하여 위로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이다.
이상의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①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자를 보호하시고 지키실 뿐만 아니라 힘과 용기를 주시고 그가 맡은 바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섭리하신다는 것이다(수 1:9; 고전 10:13)
② 믿음의 형제들이 나누는 사랑과 교제는 서로에게 큰 위로와 용기가 되어 놀라운 역사를 창출하는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엡 4:16; 벧전 4:8; 요일 4:12).
28:11 석 달 후에. - 바울 일행은 유대인들의 주요 절기 중 하나인 '속죄일'이 지난 때, 즉 태양력으로 9-10월경에 그레데의 미항을 떠나(행 27:9,12) 두 주간 폭풍에 시달리다 멜리데 섬에 도착하여(행 27:27-44) 이제 3개월이 지났다. 따라서 이때는 겨울이 지나고 항해하기가 비교적 쉬운 2월 중순이나, 아니면 3월 초순경으로 생각된다(Alford). 한편 여기서 바울 일행이 멜리데 섬에서 체류한 3개월의 시간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을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6절로 10절까지의 내용에서 바울이 뱀에게 물린 사건이나, 바울이 보블리오의 부친과 섬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준 치유 이적과, 그로 말미암은 섬 사람들의 친절한 호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성을 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였다. 이런 점으로 보아 바울 일행의 멜리데섬에서의 3개월간 체류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을 모르는 섬 사람들의 구원을、위해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된 일이었음이 확실하다. 즉 이는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심으로써 구원이 온 인류의 것임을 다시 한번 보여 주신 기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 배…디오스구로. - 멜리데 섬에서 3개월을 보낸 후, 로마로 가기 위해 바울 일행이 탄 배는 자신들이 타고 가다 난파당했던 배와 마찬가지로 알렉산드리아에서 곡물을 싣고 로마로 가는 동일한 알렉산드리아 배였다(행 27:6). 아마도 이 배는 멜리데 섬의 주요 항구였던 발레타(Valletta)항에 정박했을 것이다. 이 배의 이름은 '디오스구로(디오스쿠로이스)로 '쌍동이 형제들'이라는 뜻이다. 이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천상의 신 제우스와 스파르타의 황후 레다(Leda)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두 아들들인 '카스토르'(Castor)와 '폴룩스'(Pollux)를 기리는 이름이다(Robertson).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사공들의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즉 이 수호신은 뱃사람들 사이에서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배의 이물에 그 이름을 새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누가가이처럼 배의 이름까지 세부적으로 밝힌 것은 말타, 로마, 그리이스와 애굽 사람들의 미신적 사상과 기독교 신앙을 대조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한편 본문의 '우리'가 백부장과 그의 부하 군사들과 죄수들을 포함한 바울 일행만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앞서 배에 타고 있던 276명 전체(행 27:37)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후자일 가능이 높다.
28: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 누가는 멜리데 섬에서 로마까지의 행로를 자세히 열거하고 있다. '수라구사'(Syracuse)는 시실리 섬의 수도로 이 섬의 동남단에 있는데 로마로 가는 배들이 거치는 주요한 항구이다. 멜리데 섬에서 이곳까지는 약 160km의 거리이다. B.C. 734년에 고린도의 식민지가 된 수라구사는 성 둘레가 35km나 될 정도로 번창한 도시로서 유명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에는 로마의 식민지였다. 한편 알렉산드리아 배가 여기서 3일을 머문 이유는 아마도 멜리데 섬에서 불어오던 순풍이 멈추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니면 이곳에서 항해에 필요한 식수를 공급받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이 3일 동안 이곳에 상륙했는지 또한 그곳에 교회를 세웠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28:13 레기온에 이르러. - '레기온'(Rhegium)은 현재의 '레기오'(Reggio)로 이탈리아 남부의 메시나(Messina) 해협에 위치한 항구 도시이다. 현재는 폐항이지만 당시에는 주전 8세기부터 헬라인들이 식민지화하여 헬라 문화를 꽃피웠던 중요한 항구였다. 바울 일행을 태운 배는 여기에서 메시나 해협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바람을 기다리면서 하루를 머물었다.
남풍이 일어나므로…보디올에 이르러. - 바울 일행을 태운 배는 레기온에서 하루를 묵은 뒤 남풍이 불자 레기온에서 340km 떨어진 보디올까지 이틀만에 항해할 수 있었다. '보디올'(Puteoli)은 현재의 '보쭈올리'(Puzzuoli)로서 나폴리만에 위치한 항구 도시이다. 이곳은 알렉산드리아 배들이 흔히 드나드는 이탈리아의 항구였는 바 B.C. 6세기경부터 이미 이 배들을 보호하기 위한 크고 견고한 방파제가 건설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로마까지는 약 220km의 거리였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오는 곡물은 대부분 이곳에서 하역되었으므로 드디어 바울도 이곳에서 길고도 험한 항해를 끝내고 이제 육로를 이용하여 로마로 갈 수 있게 되었다.
28:14 거기서 형제를 만나...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 보디올에서 바울 일행은 형제들을 만났으며 거기서 7일 동안 쉴 수 있도록 백부장의 허락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형제'(아델포스)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하나된 '믿음의 형제'(행 1:15)를 말한다. 이것은 복음이 이미 이 이탈리아 항구에까지 전파되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실이다. 아마도 오순절을 지키러 왔다가 사도 베드로의 설교(행 2:14-41)를 듣고 구원받아 이 복음을 로마에까지 전파한 로마의 유대인들(행 2:10)에 의해 이곳에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곳 보디올 부근의 폼페이는 A.D. 79년에 화산 폭발로 인해 온 도시가 매몰되었다. 그런데 1755년에 이곳에서 발굴된 비문에는 이 당시 이미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있었음을 증거해 주는 글귀가 나온다. 어쨌든 바울은 믿는 형제들의 초청을 받아 그들과 함께 한 주간을 보냈다. 아마도 7일 동안 함께 있으면서 바울은 복음에 대해 강론을 하였을 것이며 그로 인해 성도의 깊은 교제를 나누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보디올에서 이처럼 바울이 믿음의 형제들을 만난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마도 바울은 로마에 점점 가까이 갈수록 그토록 오랫동안 가기를 원했기는 하나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내심 두려움을 지녔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뜻밖에도 보디올에서 성도들을 통해 바울을 영접하게 함으로 그러한 염려를 불식시켜 주고 또한 그동안 항해에서 겹친 여독을 풀 수 있게 해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로마에서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할 힘을 얻게 하신 것이다.
로마로 가니라. - 본문과 같은 언급이 16절에서 반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다. 즉 혹자는 본절에서 말하는 로마란 행정 구역상의 의미, 즉 넓은 의미에서의 '로마'를 의미하고 16절에 다시 언급되고 있는 '로마'는 좁은 의미로 '로마시'를 뜻한다고도 주장하는데(Ramsay) 그리 타당성 있는 설명이 되지 못한다. 대신 본절은 바울 일행이 로마를 향하여 출발하였다는 언급인데 16절에서도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이유는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드러내려는 때문으로 보인다(Lenski). 사실 본서의 클라이막스가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행 1:8; 23:11) 기억한다면 이는 타당성 있는 설명이라 여겨진다. 즉 바울을 죽이려 한 유대인들의 음모와 가이사랴에서 2년간의 지체(행 24:27), 그리고 무서운 파선의 위험(행 27:41)과 죄수들을 죽이려 한 군사들의 행동(행 27:42)에도 불구하고 '네가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거하여야 하리라'(행 23:11)는 하나님의 말씀은 비로소 성취된 것이다. 이는 실로 이방을 향하여서도 활짝 열린 복음의 보편성과 계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시켜 준 크나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28:15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 바울이 나폴리 만의 항구 도시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은 바울이 보디올에서 일주일 동안 머무는 사이에(14절)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전하여졌다. 어떻게 이 소식이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바울을 맞으려는 저들의 열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로마에서 약 69km나 떨어진 압비오 저자와, 약 53km 떨어진 삼관까지 나와서 바울을 맞이하였다. 여기서 '압비오 저자'(압피우 포루)는 압비오(Appius) 시(市))의 시장(市場)을 가리키는데 로마로 연결되는 압비아 가도가 이곳을 통과하므로 중요한 무역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포로 압비오' (Foro Appio)라 불리우는 곳이다. 아마도 이는 이곳에 도시를 건설한 '압비우스 글라우디오'(Appius Claudius)의 이름을 본딴 것으로 보인다. 이제 바울은 이 압비아 가도를 이용해 로마를 향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지금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향하고 있는 압비아 가도는 과거에 동방 제국을 정복한 로마 장군들의 개선로이기도 하다. 이 길을 지금은 바울이 마치 복음으로써 로마를 정복하기 위해 입성하듯 지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다음으로 '삼관'(트리온 타베르논)은 문자적으로 '세 여관'이란 뜻이다.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로 일종의 큰 여인숙이 여러 개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바울을 맞으려고 로마에서 이곳까지 나온 자들을 향해 누가가 보디올에서처럼 '형제'라고 지칭한 것(14절)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애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저희를 보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 결국 하나님께서 바울을 인도하셔서 로마에까지 오게 하셨고,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던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게 하시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고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바울이 이러한 감사와 함께 위로를 얻은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주께서 바울 자신을 로마로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것(행 23:11; 27:24)과, 바울 자신도 로마에서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하기를 갈망하던 것(행 19:21; 롬 1:11; 15:23)이 드디어 실현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둘째는 3차 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교회를 위해 서신을 쓰면서(행 20:3), 로마 교회를 방문하길 원하였던 바 그것이 실현되어 환영나온 성도들을 만나 안도감을 느끼고 또한 그들의 협조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셋째는 드디어 목적지에 이르러 로마 교인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면서 로마에서의 복음 증거의 사명에 대한 새로운 각오로 인해 감사와 용기를 얻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바울의 이와 같은 모습에서 복음 증거를 위한 선한 목적의 기도는 사단의 어떠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응답받기 마련이라는 사실과 기도와 말씀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교통을 나누는 성도들의 교제는 서로 간에 크나큰 힘과 용기와 기쁨을 준다는 사실을 배우게된다(골 3:9-14).
28:16-29 바울의 로마에서의 전도 사역
지난 단락(11-15절)에서는 바울이 그토록 가기를 열망했던 로마에 입성하는 장면을 살펴보았거니와 이제 본문은 바울이 비록 결박된 몸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선교사의자격으로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바울이 로마의 유대인들을 초청하여 그가 로마에까지 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장면이다(16-22절). 바울은 미결수의 몸이었지만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재판이 시작되기까지 비교적 많은 자유가 허용되었다. 그래서 그는 셋집에 구류되기는 하였으나 다른 사람과 자유로이 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자신의 선교 정책에 따라(롬 1:16) 유대인에게 먼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유대인 지도자들을 초빙하여 자신의 죄인된 이유와 상황에 대해서 소상하게 설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로마의 유대인 지도자들은 기독교에 관해서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으며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 달리 바울에 대하여도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단지 바울의 도에 대하여 호기심을 나타내었고 바울이 말한 이스라엘의 소망을 듣고자 하였다(20절). 하여튼 여기서 바울은 특별히 유대인 지도자들을 통하여 자기의 동족에 대한 사랑을 전하고자 하였고 이방 선도의 필연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둘째,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은 유대인의 반응과 바울이 이방 전도의 필연성을 역설하는 부분이다(23-29절). 바울은 로마의 유대인들이 자기를 찾아올 때에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면서 구약의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이며 구세주이심을 증거하였다. 이때에 유대인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는데 소수의 무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복음을 배척했다. 그래서 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사 6:9,10)을 인용하여 구원의 은혜가 복음을 배척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이방인에게 넘어갔음을 증거하여 이방 선교의 당위성을 선포하였다. 바울이 인용한 이사야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유대인의 배척과 완악함을 책망하기 위하여 여러 번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이미 이방의 구원이 하나님의 뜻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마 13:14,15; 막 4:12; 눅 8:10; 요 12:40).
이상의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① 복음 전도자는 여건과 장소에 관계없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비록 결박된 상태이었지만 복음 전파에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러한 그의 처지를 로마 선교의 기회로 삼았다.
② 복음 증거할 때는 항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전도자는 때론 조롱과 비난 받기 일쑤이다. 그러나 전도자는 그러한 때 일수록 더욱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선포해야 한다.
28: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 드디어 바울은 비록 미결수 신분에서 이긴 하나 그토록 고대하던 최종 목적지인 로마에 도착하게 되었다. 한편 몇몇 서방 사본에는 '백부장이 죄수들을 시위대장에게 인도하니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Robertson). 아마도 바울을 비롯한 죄수들(행 27:1)을 로마 황제 휘하의 시위대에게 무사히 인도한 율리오 백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반면에 바울은 복음 전도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어서 감사와 각오를 새롭게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본절은 본서에서 '우리'라는 지칭이 끝나는 곳이다.
바울은…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 본절에서는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30절에 의하면 바울은 시위대에 넘겨져 처음에는 영내(營) 감옥인 '프레토리움'(praetorium)에 있다가 곧 군영 밖의 셋집으로 유겨져 비록 연금(禁) 상태이긴 하나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많은 자유를 얻은 것같다. 바울에 대한 이러한 너그러운 조치는 아마도 바울을 호송한 백부장 율리오의 긍정적인 보고 때문인 듯하다. 이와 함께 베스도 총독의 호의적인 조서(행 25:25; 26:32)도 바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한편 당시의 로마법에 의하면 죄수와 간수를 하나로 묶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의 손목과 간수의 손목이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이 도리어 군사들을 복음의 포로로 만드는 역할을 하였음이 분명하다(빌 1:13). 왜냐하면 군사들은 윤번제로 돌아가면서 바울을 감시하였을 것이며, 그로 인해 저들은 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른 죄수들에 비하여 바울에게는 상당히 관대한 조치가 취해졌으니 비록 바울이 구금된 상태이었긴 하나 접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17절). 이는 실로 화(禍)를 도리어 복(福)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아닐 수 없다.
28:17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활동한 초기의 일들에 대해서 누가는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먼저 누가는 우선 바울이 로마에 있는 유대의 지도층 인사들을 초청한 것을 말한다. 여기서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란 문자적으로 '유대인들 중에서 첫째가는 사람들'이란 뜻으로(Robertson) 아마도 로마에 있는 회당이나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울이 그들을 초청한 이유는 자신을 변증함으로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에서 였다. 즉 자신이 로마에 오기까지 어떠한 모함과 재판을 받아왔는지는 물론 자신이 믿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분명히 밝히고자 한 것이다(17-20절). 그래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무죄함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을 증거한 것으로 보인다. 즉 바울은 이미 로마의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부터 자신에 관한 소식이 전해졌을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현재 처한 입장을 밝힘으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한편 당시의 로마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마카비 시대(B.C. 166-63)부터 로마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B.C. 63년경에는 이 유대 독립 운동을 진압한 폼페이에 의해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자유인으로 풀려나 정착했다고 한다. 그 실례로 B.C. 6년 유대인들이 헤롯아켈라오(B.C.4-A.D.6)를 로마에 고소하여 50명의 대표를 파송하였을 때 로마에 거주한 유대인 8천명이 이에 호응하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따라서 바울은 로마인들에게는 물론 이들 유대인들, 즉 자신의 동족들에게도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려는 특별한 열의를 보였던 것이다.
여러분 형제들아…배척한 일이 없는데. - '여러분 형제들아'라는 표현은 비단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유대인이 동족에게 말할 때에도 통용하던 호칭이다(행 2:37). 바울이 여기서 이러한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까닭은 저들에 대한 자신의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마울은 정중한 태도로 바울 자신의 현재 상태와 무엇보다도 죄수로서 로마에 오게 된 경위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다음으로 '조상의 규모'란 '조상들이 전해준 관습'(공동번역), 즉 율법과 규례를 가리킨다. 바울은 자신이 결코 율법을 거스리거나 이스라엘 전통의 근본 정신을 반대한 일이 없음을 제차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행 24:14-16). 한편 본서에서 우리는 바울의 독특한 복음 증거 방법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복음에 대한 배척과 그로 인한 변증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이다. 본절과 24절이 또 하나의 그러한 전형적인 예를 보여 주고 있다. 즉 바울은 복음이 배척된 상황 가운데서 또 한번의 변증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시시각각으로 상황은 다르게 전개되지만 그러한 때에라도 복음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증거하고 있는 셈이다.
28: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놓으려 하였으나. - 본문의 '로마인'은 곧 천부장 루시아(행 23:26)를 비롯하여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행 24:27)를 말한다. 이들은 바울의 말처럼 바울을 심문하였으나 그에게서 로마법상의 어떠한 죄목도 발견하지 못하였다(행 23:29; 25:25; 26:31,32).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대와 암살 음모 등을 두려워하여 바울을 석방하지 못했다(행 25:9).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현재 죄인된 모습이 바울 자신에 대한 유대인들의 잘못된 오해와 시기, 모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28:19 내가 마지 못하여…호소함이요…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 바울이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사건에 관해 세 번째로 설명한 내용이다. 즉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기를 공정하게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 못해 로마 황제에게 호소한 것이지 결코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미워하여 고소하려 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은(행 25:9-11; 26:32), 유대인들의 반대 때문에 자신이 무죄 석방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석방된다 하더라도 암살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에 부득불 상소한 것이었다. 더욱이 바울은 자신의 로마행이 하나님의 뜻임을 계시받았기에(행 23:11) 황제 앞에서 재판받는 방법으로 라도 로마에 오고자 한 것이지 그밖의 다른 원혐(怨嫌)은 없었다.
28:20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노라. -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이곳 로마까지 오게 되어 지금의 상태가 된 가장 근본 이유를 말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인들이 소망하는 바를 자신도 굳게 믿은 것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소망'이란 이미 벨릭스 총독이나(행 24:15),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밝혔듯이 죽은 자의 부활이나 메시야에 관한 소망을 의미한다(행 26:6). 그러나 문제는 바울과의 견해 차이 때문이었다. 즉 바울이 말하는 '이스라엘의 소망'은 유대인들이 믿고 있었던 일반적 의미의 부활 이상의 것이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보증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찾은 것이다(고전 15:12-20).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젠가 다시 오셔서 이스라엘과 온 우주의 통치자로 군림하실 것이라는 메시야 사상을 지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고대하던 메시야는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박힌 초라한 분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속박, 곧 로마의 통치로부터 해방시켜 줄 정치적인 해방자인 동시에 통치자였다. 본서 마가복음 서론 특별자료, '메시야의 이해' 참조. 따라서 저들은 바울을 향해 나사렛 이단의 괴수요, 유대인들을 소요케 하며, 성전을 모독한 자라는 죄목을 씌워 바울을 대적한 것이다(행 24:5,6). 때문에 바울은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의 신앙이 올바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앙과 오해로 인해 자신이 죄인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28:21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 로마에 있는 유대 지도자들은 이처럼 유대로부터 바울에 대한 어떠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의 이와 같은 말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울이 유대인들로부터 처음 송사를 받은 지 이미 2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고(행 24:27), 또한 당시에는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기독교가 이미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과 바울 간에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었던 것을 몰랐다는 것은 저들의 거짓 주장일 수 있다. 즉 저들은 바울과의 논란으로 인해 로마인들로부터 주목당해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회피하고자 짐짓 이러한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아니면 이는 소문으로는 듣고 있었으나 구체적인 소식은 아직 접하지 못했다는 말일 수도 있다.
누가 와서…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 유대 지도자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서신뿐만 아니라 인편으로도 그 어떤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본문의 '고하든지'(아펭게일렌)라는 말은 '공식적인 통보'를 말하며, '이야기한'(엘랄레센)은 '사적인 통보'를 말한다. 그러므로 로마에 있는 유대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로부터 바울에 관한 공적이든 사적이든 여하한 소식도 구체적으로 통보받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물론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출발한 것이 계절적으로 가장 늦은 때라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출발한 후 로마의 유대인들에게 미처 연락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Alford, Lumby). 그러나 이들 유대 지도자들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저들은 기독교나 바울에 관해 굳이 문제 삼기를 꺼려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A.D. 49년 혹은 50년경에 기독교 문제로 인해 폭동과 소동이 일어나자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는 이에 대한 근절책으로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행 18:2). 그러므로 기독교에 대해서 혹은 바울에 대해서 간접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저들은 바울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려 했을 수 있는 것이다. 실상 바울이 연루된 문제가 당시에 상당한 종교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또한 예루살렘과 로마 간에 정치적으로 왕래가 있었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로마에 있는 유대지도자들이 그와 같은 태도를 취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Longeneker).
28:22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반대를 받는 줄…앎이라. - 본문의 '이파'(테스 하이레세오스 타우테스)는 행 24:5에서 언급된 바 있는 '이단'과 같은 말이다. 이처럼 로마의 유대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기독교를 유대교에서 이탈한 '한 분파'(a Sect)라고 부르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저들이 기독교와 유대인들간의 마찰을 잘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21절에서 취한 저들의 태도는 거짓 행동이었음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저들이 바울에 대해서 관심을 나타내고 그의 사상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음은 일전에 유대인들이 바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나 보고자 했던 것(행 22:1,2)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저들 중에 믿는 자도 생겨났음은 상당한 의의가 있다(24절). 즉 이는 바울이 로마에 뿌린 첫 번째 복음의 씨앗이요 그 열매였던 것이다.
28: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 로마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은 1차 바울과의 상견(相見)에서 바울에 대해 깊은 흥미를 느꼈다. 그리하여 2차로 다시 만나고자 일자를 정하고서 바울이 믿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듣기 위해 이처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아 왔다. 이리하여 2차로 바울과 유대인들이 만난 시간은 처음 만난 때로부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한 후였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여기서 바울이 '우거하는 집'이란 바울이 로마의 황제 앞에서 재판받기 전까지 기거하고 있던 '셋집'일 것이다(30절).
하나님 나라…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 바울은 유대인들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복음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특별히 성경의 여러 부분들을 인용하여 자신의 말이 진리임을 증명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예수의 일'에 대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의 일'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으로 복음의 핵심이며 신 · 구약의 중심 내용이다(행 8:12; 20:24 이하). 왜냐하면 예수께서 전파하신 중심 메시지가 바로 하나님 나라'(마 4:17; 막 1:15)에 관한 것이며, 이 땅에서 그가 하신 일도 '하나님 나라'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마 4:23; 9:35; 눅 8:1;9:2). 다시 말해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자와 또한 그 나라의 통치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는데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 성경(행 13:15; 24:14)에 입각한 것이었지 결코 바울 자신의 개인적 사상에 의거한 것이 아니었다.
28:24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자 비록 믿기 시작한 몇몇 결신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불신으로 가득찬 완악한 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본문에서 '믿는 사람'(호이 에페이돈토)이란 미완료 시제로 '믿어지기 시작한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바울의 설교를 듣고 믿으려 한 사람과 계속해서 불신의 태도를 보인 자들이 양분되기 시작했음을 나타내 준다. 아무튼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대속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구원의 방편으로서 누구든 그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바울의 가르침은 유대인들에게 미처 수납될 수 없는 이상한 것으로 들렸음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파했을 때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 양분되는 모습은 늘 경험되는 바이다(행 14:4; 17:4; 19:9; 23:7). 하지만 지금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 더 많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일생 동안 이렇게 자신의 동족이 믿지 않음에 대해 많은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다(롬 9-11장).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는 비록 사람들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실망치 않고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 전도자는 다만 씨를 뿌리는 자요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성령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이다(고전 3:6,7).
28: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 - 본문의 '맞지 아니하여'라는 것은 '부조화스럽게', '불일치하다'는 뜻이다. 즉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증거한 복음에 대하여 서로 견해를 달리해 결국 산회(散會)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경우는 부활 논쟁으로 인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서로 반목하였던 경우를 들 수 있다(행 23:6-10).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 바울은 복음을 수납하지 않은 완악한 유대인들을 향해 사 6:9,10의 말씀을 인용하여 저들의 영적인 소경 상태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본래 사 6:9,10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웃시야 당시에 이사야를 통해 패역한 유다 백성들의 모습을 지적하신 것으로, 바울이 여기서 인용하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인 소경 상태가 현재 복음을 고의로 거부하는 유대인들의 심령 상태와 동일함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미 이 말씀은 예수께서 참 메시야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영접지 않던 유대인들을 향해 인용하신 적이 있다(마 13:14,15; 막 4:12; 요 12:40). 한편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울이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사야의 말을 성령에 영감된 것으로 돌렸다는 사실이다(행 4:25). 즉 바울이 '성령으로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한 것은 현재 자신의 말이 과거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영감으로 주신 구약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 신적 권위를 주장하기 위함이다. 그런즉 누구보다도 성경과 장로들의 유전을 충실히 따르고,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고수한다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바울의 이와 같은 지적은 저들의 실상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 무지 몽매함을 여실히 들추어낸 것이 아닐 수 없다.
28:26,27 들어도…보기는 보아도… 마음이 듣기는 완악하여져서. - 유대인들이 완고하게 복음을 수납하기를 거부한 것은 근본적으로 마음이 완악하고, 귀가 둔하며 영적 눈이 먼 탓임을 지적하고 있는 구절이다. 본래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이사야가 소명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외쳐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을 것을 예언한 말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완악하고 무디어 선지자의 말을 들어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하며 여러 징조들을 보기는 보아도 장차 될 일들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에 빠져 바벨론 포로가 되는 지경에까지 처했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이 이 예언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행한 여러 표적을 보았지만 유대인들이 미처 이를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으로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바울의 이러한 인용은 저들의 완악함 때문에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대신 이처럼 유대인들이 마음을 완고히 하여 복음을 한사코 거부하는 탓에 부득불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증거되고 저들이 먼저 믿게 되었음을 강조하려는데 있다(28절). 그리하여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자극을 가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롬 11:1-12에서 결국에는 유대인들도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아무튼 실제로 듣는 것과 귀를 기울이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며, 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실로 영적인 안목을 지녀야 할 사람들은 바로 이 유대인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저들의 마음은 아직 무디고 완악했다. 이처럼 신앙 연륜이 깊거나 성경적으로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영적인 맹인 상태에 처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도 항상 자신을 살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함을 교훈해 주기에 충분하다(요 9:39-41).
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 바울은 유대인들의 완악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구원이 저들에게 먼저 제시되었으나 결국은 이방인에게로 돌아간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는 곧 하나님과의 언약에 의거한 믿음의 자손은 혈통적 유대인이 아닌 복음을 받아들이는 영적 이스라엘 자손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롬 9:6-13; 갈 3:7).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이미 바울이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행 13:48; 18:6). 결국 이것은 본서의 핵심이요, 주요 주제 중의 하나로서 복음이 어떻게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들에게로,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옮겨갔는가를 보여 준다.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이르는 각처에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절했고 그리하여 복음의 메시지는 비유대인들에게로 전해졌다. 그리고 그같은 현상은 이제 세계의 수도, 로마에서도 발생했다. 그런데 그러한 현상은 이방인들의 수가 충만함에 이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롬 11:19-36). 만약 신약 성경에서 이러한 사실을 증거해 주는 본서가 없다면, 바울의 서신서 중 로마서에서 어떻게 복음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로부터 로마의 이방인들에게 이르렀을까'라는 의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한편 바울의 이러한 엄숙한 선언은 유대인들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동족이 회개치 않음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다(롬 9:1-3). 그러면서도 이것은 유대인들의 거부로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미쳤다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속의 경륜은 유대인들이 마침내 하나님께 돌아옴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릴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간신히 구원만을 얻는 것과 주 안에서 금이나 은, 각양보석으로 믿음의 제단을 쌓으므로 구원과 더불어 상금을 얻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고전 3:10-15) 지금이라도 늦기 전에 속히 주께로 돌아와 충성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8:29 몇몇 권위있는 사본(알렉산드리아 사본, 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에는 본절이 빠져 있으나 일부 서방 사본에는 '그가 이렇게 말하자, 유대인들은 서로 격렬한 논쟁을 하며 떠났다'라는 구절이 첨가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추측한다.
28:30,31 바울의 로마 사역 결론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복음 사역을 시작했음을 보여 준 지난 단락(16-29절)에 이어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그의 죽음과 부활 및 승천까지의 사실을 기록한 누가복음과 그 후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에서부터 복음이 땅 끝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여 준 사도행전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바울이 로마의 셋집에서 계속하여 복음 전하는 일에 전념한 사실로 끝을 맺고 있다. 즉 누가는 바울의 로마 감옥 생활이나 그 이후의 생애를 언급하지 않고 단지 바울이 2년간에 걸쳐 셋집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과 아무도 복음 증거를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로 본서를 마무리 짓는다. 따라서 본서는 복음서나 서신서들과 달리 결론을 맺고 있지 않으며 바울의 선교 행적도 미완성의 형태로 마감하고 있다. 이는 본서의 기록 목적이사도 바울의 전기를 소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누가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 증거 사역이 제국의 중심인 로마에까지 이루어지는 과정을 기록함으로 본서의 기록 목적을 완수한 것이다. 실로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 전파가 이제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서 온 세계로 퍼져나가는 새로운 선교의 시작의 서막이 올랐음을 누가는 여기서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서에는 로마에 도착한 이후의 바울에 대한 행적이 간단하게 2년 동안 로마의 셋집에서 복음을 전했다고만 소개되어 있으나 다른 서신들을 통해 여러 사실을 알아볼 수 있다. 즉 A.D. 61년경에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약 2년 동안 셋집에서 구류를 살며 기거하면서 자유로이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때에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등의 옥중서신을 기록하였고 디모데(빌 1:1; 골 1:1)와 두기고(엡 6:21)와 에바브로디도(벨 4:18)가 위로 방문하였다. 그후 구류 상태에서 석방된 다음에 에베소와 마게도냐(딤전 1:3), 드로아(딤후 4:13), 그레데(달 1:5), 니고불리(딛 3:12) 등으로 전도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증거했다. 그리고 전승에 의하면 서바나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다가 A.D. 67년 재차 투옥되어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 당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바울은 다메세에서 회심한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사도가 되어 성령의 사역과 교회의 설립, 성장에 충성을 다한 일생을 보냈다고 할 것이다.
28:30 온 이태를. - 누가는 본서를 종결지으면서 로마에서의 바울의 활동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본문의 '온 이태'(디에티안 홀렌)는 대체로 A.D. 61-63년 어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Godet). 바울은 이 기간 동안 연금 상태로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16절 주석 참조. 그러나 바울에 대한 재판이 왜 2년 동안이나 지체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서 바울을 고소했던 유대인들(행 23,24장)이 끝내 로마 법정에 출두하지 않자 바울의 재판은 궐석으로 진행되었으며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고 바울은 석방되었을 것이다(Ramsay, Bruce).
자기 셋집에 유하며. - 바울은 로마에서의 2년을 영내 감옥이 아닌 이처럼 집세를 지불하고 사는 셋집에서 보내는 가운데 상당한 자유를 누렸다. 이는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지닌 자였을 뿐 아니라 아직 형을 확정받지 않은 미결수였기 때문에 베풀어진 은전(恩典) 탓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어떻게 바울이 이 셋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집세를 물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빌립보 교회에서 보낸 헌금으로(빌 4:18, Knowling), 혹은 원래 바울이 지니고 있던 재산으로(Ramsay), 또는 장막 만드는 일로(Bruce, Wendt) 자신의 생활을 유지했다는 설이 있으나 첫 번째 견해가 비교적 타당하다.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 본문의 '영접하고'(아페데케토)는 동작이나 상태의 계속을 나타내 주는 미완료 시제이다. 즉 이는 바울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계속되었고 바울 역시 계속해서 그들을 맞이하여 교제를 나누었음을 말한다. 이처럼 바울은 2년 동안 셋집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연금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중하였다. 생각컨대 이때 바울은 유대인들을 비롯하여 이방인들까지 포괄하는 많은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또한 이 기간 동안에 바울은 그 유명한 옥중서신인 에베소 교회와 빌립보 교회, 골로새 교회와 빌레몬에게 보내는 서신을 기록하였을 것이다. 서신서 서론 참조.
28: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가르치되. - 본문의 '담대히'(팔레시아)라는 말은 '거리낌 없이'라는 말이다. 이는 곧 바울이 2년 동안 연금 생활 중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복음, 곧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를 믿는 자마다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복된 소식에 관해 전파하기를 쉬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한편 바울의 전도 내용의 핵심은 1,2,3차에 걸친 전도 여행에서나 또는 유대인들과의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어디까지나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 었다.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 바울 자신은 매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였다(딤후 2:9)는 고백과 같이, 바울에 대한 유대인의 배척이나 그를 없애려는 음모와 감금이 있었지만 이러한 것들이 그로 하여금 복음을 중거하는 일을 중단하게 할 수 없었음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이는 곧 복음의 승리이자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였다(행 22:21; 23:11). 추측컨대 로마 당국은 각 식민지인들의 종교에 대하여 강압적으로 금하기보다는 비교적 관대하게 허용하였으며 유대교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직은 바울이 전하는 기독교를 유대교의 분파 중 하나로 여겨 이를 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바울이 로마에서의 2년간의 연금 생활 후에 어떻게 되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바울은 A.D. 63년에 풀려나서 마게도냐를 비롯해 여러 지방을 여행하며 복음을 전했던 것으로 여겨진다(딤후 4:20). 그리고 전승에 의하면 그가 복음을 전하기로 소원했던 서바나까지 복음을 증거했다고 한다(Clement). 그러다가 A.D. 66년 다시 투옥되어 A.D. 67년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 딤전, 딤후, 디도서를 기록한 것으로 본다(Toussaint). 어쨌든 바울의 남은 삶은 하나님에서 비밀로 감추어 놓으신 일이었다(Hervery). 한편 비록 죄수의 신분으로서였긴 하나 바울이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한 것은 본서 1:8에 약속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의 성취라 할 수 있다. 즉 이 복음이 성공적으로 로마에 전파됨으로써 마침내 복음은 전세계에 퍼져 나가 길을 더욱 확실히 마련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성도들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본서 저자 누가가 단순히 고대의 역사를 알리기 위하여 본서를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는 모든 시대의 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께 충성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본서를 기록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당시 그토록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간섭과 성령의 역사로 인해 어떻게 온 세계에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본서를 썼다. 그렇다면 본서를 통해서 성도들은 '볼지어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라'(마 28:20) 하신 주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더욱 헌신적인 열정으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배워야 한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신 주님께서는 여전히 모든 성도들이 십자가 군병이 될 것과 복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동일하게 요구하고 계신다(고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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