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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성도의 기도와 사회생활 권면과 바울의 개인적 추천 및 문안과 축도
구속사적 개관:
본서는 신약 서신서의 일반 양식에 따라 도입부(1:1-12), 본론부(1:13-4:6), 종결부(4:7-18)로 나누어지며, 본론부는 다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전반부(1:13-2:23)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삶을 다루는 후반부(3:1-4:6)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본장은 본서 본론 후반부의 일부(1-6절)와 본서 전체의 종결부(7-18절)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1절은 3:18에서부터 계속되었던 새 사람을 입은 성도의 가정생활에 대한 교훈중 종과 상전과의 관계를 밝힌 일련의 기사 가운데 상전이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 자세와 공평한 행동을 권면한 내용이다. 그리고 2-6절은 본론 전체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기도와 사회생활에 대한 권면을 담고 있다. 한편 7-17절은 지금까지 공식적인 교리 설명과 생활에서 지켜야 할 바에 대한 권면 대신 골로새 교인들에 대한 개인적인 전언(傳言)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바울의 축도가 기록된 18절로 본서 전체가 마감되고 있다. 이러한 본장 각 부분이 갖는 구속사적 의의를 기록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2-6절에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널리 전하고자 하는 바울의 열정과 이를 이루는 데 있어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고 있었던 바울이 이를 위해 골로새 교인에게 기도해 주기를 요청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구속사(救贖史)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파에 열정을 지닌 바울과 그의 배후에서 기도하는 자들을 통하여 기독교의 세계적인 전파를 이루셨다.
따라서 오늘날에 있어서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도모해야 하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선한 열정과 더불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기도가 절실히 요망된다 하겠다.
이어 7-17절은 바울이 복음 전파 사역에 있어서 함께 매진하는 동역자로 생각하는 자들을 추천하며 골로새 교회에 소개하고 문안하는 내용과 더불어 구원의 진리를 담고 있는 서신들을 회람하여 읽을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어느 특정한 사람의 힘으로써가 아니라 성도들이 연합하여 이루어야 할 공동의 사명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하나님의 진리 역시 상호 공유하여 나누어야 함을 보여 준다 하겠다. 즉 구속의 진리를 밝혀주는 당시 사도의 서신이 널리 읽혀졌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에게 구속의 도리로서 주어진 영감된 진리의 말씀인 성경(聖經, The Bible) 역시 널리 읽혀져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는 단순히 읽혀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기록된 말씀을 순종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알며 실천함으로 인하여 성숙한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외울 말씀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4:2)
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그리스도인의 기도 생활
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불신자와 관계의 생활
5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두기고와 오네시모 추천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8 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낸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바울의 동역자들의 소개와 문안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
14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라오디게아 교회와 아킵보에 대한 분부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축도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4장 본문 & 자료노트
원어연구-4:5, 아끼라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엑사고라조메노이 '로서 '엑사고라조'의 중간태 현재 분사형이다. '엑사고라조'는 분리를 나타내는 전치사 '에크'와 '사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되사다' 혹은 '되찾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고라조'합성어이다. 그리고 여기서 전치사 '에크'는 의미상 큰 변화를 주지 않기 때문에 '엑사고라조'도 '아고라조'와 의미가 유사하다. 대신 '엑사고라조'는 '분리'의 뜻이 강하여 노예를 노예상에게서 사서 풀어놓아 자유케하다(갈 3:13)는 의미가 강하다. 또 이 단어가 중간태형이 될 때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다'. 또는 '구출하다', '사용하다'는 뜻을 갖게 되며 때로 자신을 위하여 '손실이나 오용을 막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본문의 단어는 중간태형이기 때문에 이런 의미를 갖는다.
한편 헬라어 문법에서 현재 분사형은 한 문장의 주동사(主動詞)와 동시에 일어나는 행위를 나타낸다. 본문에서 주동사는 '지혜로 행하라'이다.
따라서 '엑사고라조메노이'와 함께 본절을 해석하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시간의 오용 또는 손실을 막으면서 지혜로 행하라'는 뜻이 된다. 즉 여기서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은 얼마나 자기 자신을 위하여 시간의 손실을 줄이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로서의 올바른 삶에 있어 세월을 아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보감-4:3-6 성도의 말하는 자세
1. 신중하게 함(전 5:2)
2. 참된 것만을 말함(엡 4:25)
3. 더러운 말은 하지 않음(엡 4:29)
4. 덕스러운 말을 함(엡 4:29)
5.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함(골 3:17)
6. 은혜스럽게 함(골 4:6)
7. 다른 이에게 본이 되게 함(딤전 4:12)
8. 책망받지 않게 함(딛 2:8)
9. 잘 듣고 난 뒤에 말함(약 1:19)
10. 할 말을 잘 분변 하여 말함(약 1:26)
도표-4:7-18 본장에 나타난 바울의 동역자들
○ 두기고: 에베소와 골로새 교회에 바울의 서신을 전달한 자(7,8절: 엡 6:21)
○ 오네시모: 빌레몬의 종이었던 자로 회심 이후 바울을 도움(9절: 몬 1:10)
○ 아리스다고: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에베소에서의 소요 때 바울과 함께 투옥됨(10절, 행 19:29)
○ 마가: 바나바의 조카로서 바울의 선교여행에 동행하기도 함(10절, 행 13:13)
○ 유스도: 유대인 출신으로 바울과 함께 복음 전파 사역에 헌신함(11절)
○ 에바브라: 골로새 태생으로 섬기는 교회를 위해 힘써 기도한 인물(12,13절)
○ 누가: 안디옥 출신의 의사로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집필함(14절; 행 16:11-18)
○ 데마: 후에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간 자(14절; 딤후 4:10)
4장 강해주석
4:2-6 새사람인 성도의 기도생활과 불신자와 관계 생활
4:7-18 끝맺는 말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 본절은 골 3장의 마지막 절과 이어지는 구절로 많은 권위 있는 사본들이 본절을 골 3장 말미에 두고 있다. 이러한 본절은 상전에 대해 교훈하고 있으며 엡 6:9와 병행을 이룬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사 아랫사람들에게 순종하라고만 요구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또한 윗사람들에게도 '의와 공평'으로 주어진 권세와 재력을 사용하라고 요구하신다. 이처럼 상전에서 있어 '의와 공평'은 윤리의 기본 강령이다. 재력을 가진 자나 힘을 쥐고 있는 자가 '의와 공평'으로 행하지 아니하면 그 사회에는 불의와 불공평이 만연하여 결국 부패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상전들은 '의와 공평'으로 행해야 마땅하다. 특별히 '의'는 하나님의 속성이며(사 9:7; 행 3:14), '공평'은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법이다.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 본절에서 '상전'은 하나님을 일컫는다. 세상에서 아무리 높은 자도 참 주재자되신 하나님 앞에서는 하찮은 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높다고 하는 자는 자기 위에 더 높으신 자가 있음을 깨닫고 겸손하여야 한다. 나아가 그는 만인의 상전이신 하나님께서 '의와 공평'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처럼 '의와 공평'으로 행하여야 한다. 이것이 상전된 자가 가져야 할 사회 윤리이다.
4:2-6 새사람인 성도의 기도생활과 불신자와 관계 생활 새사람을 입은 성도가 가정생활에서 마땅히 힘써야 할 삶에 대해 언급한 바울은(3:18-4:1)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성도의 기도 생활(2-4절)과 사회에서 불신자들을 향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권고한다(5,6절).
사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 없이는 사단의 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이 세상에서 새사람을 입은 성도로서의 성결된 생활이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지속적으로 깨어 기도하되 감사함으로 기도할 것을 당부한다(2절). 특히 바울은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한다. 즉 전도의 문이 열려 자유로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풀려나기를 소원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즉 로마의 옥중에 있든지 아니면 자유로운 몸이 되든지 간에 바울 자신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중인이 되리라'(행 1:8)는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至上命令)을 좇아 선교의 사명을 다 할 수 있기를 소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한다. 즉 성도는 불신자들 앞에서 시간 사용을 지혜롭게 하며 언행에 있어서도 은혜를 끼치는 생활을 함으로써 불신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새사람을 입은 성도는 단순히 스스로만 변화하여 거룩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적극적으로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통해 남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본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① 성도는 주의 말씀에 따라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에 최선을 다하되 이를 자신의 힘으로 모두 이루려는 교만함을 가져서는 안된다. 주의 일은 영적인 일인 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에 힘입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엡 6:18).
② 성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활동의 장(場)으로 주신 공간 안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복음 전파에 힘쓰되 이 역시 사탄과의 영적 전쟁임을 알아 뱀과 같이 지혜롭게 임하여 승리해야 한다(마 10:16).
4:2 기도를 계속하고. - '항상 힘쓰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카르테레이테'는 '~를 향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프로스' 와 '굳세 다'는 뜻의 '카르테레오'가 합성되어 '끈기 있게 성실하다', '~에 대해 진지하다'라는 뜻을 가진 '프로스카르테레오'( )의 현재 명령형으로 '끝까지 끈기 있게 지속적이고도 열성있게 하다'는 의미가 있다. 기도는 때때로 하는 요식 행위가 아니다. 기도는 모든 순간순간마다 생명이 지속될 때까지 계속되어져야 하는 삶 그 자체이다(눅 11: 5-13; 18:1-18; 롬 12:12; 엡 6:18; 살전 5:17; 벧전 4:7).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 기도를 하되 청원에만 몰두하면 감사하는 마음을 잊기 쉽다. 바울은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도하되 감사하기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참된 기도는 감사로 완성되는 것이다. 한편 이처럼 온전한 기도를 드리는 자의 심령은 자지 않는다. 그러한 자의 영혼은 전체를 보는 동시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기 때문에 주께서 깨어 계셨던 것처럼 깨어 모든 것을 판단하고, 모든 시기와 위기를 간파한다. 특별히 깨어 기도하는 것은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들의 기본자세이다(막 13:35; 엡 6:18).
4:3 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 바울은 본서의 독자들에게 감사함이 있는 기도 생활을 하라고 권면한 뒤에 목회와 전도의 일을 하고 있는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서 '우리들' 속에는 바울 자신과 디모데 및 에바브라와 같은 동역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성도는 마땅히 남을 위하여 중보 기도를 하되,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해야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을 통하여 하시되 특별히 성도의 기도를 양분으로 삼아 성취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열어주사. -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란 투 로구'는 '말씀을 위한 문', 곧 복음 전파의 기회를 가리킨다. 당시에 바울은 옥에 갇혀 있는 몸이었다(빌 1:13).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석방되어 더욱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 여기서 '의'에 해당하는 전치사 '투'는 동격을 나타내는 속격으로, 본구절은 '그리스도 곧 비밀'이란 뜻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며(골 2:2), 그 비밀은 이미 말씀과 계시를 통해 계시되어 드러난 비밀, 곧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다(엡 1:9; 골 1:25). 바울은 옥중에서도 이 구원되신 그리스도를 전파하기를 열렬히 사모하였던 것이다.
4: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 본절의 '마땅히 할 말'에 대해서는 재판석에서의 담대한 변론을 가리킨다는 견해(Soden)와 하나님의 비밀인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Beza, Lightfoot, Scott)가 있는데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후자의 견해가 적합하다. 즉 바울은 골로새의 교인들이 기도해 줌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면, 다른 말이 아닌 바로 그 복음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4:5 외인에. - '외인'(엑소)이란 문자 그대로 하면 밖에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교회 밖에 있는 사람, 곧 불신자를 가리킨다(고전 5:12,13; 살전 4:12).
대하여서는.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라는 전치사는 여기서 단순히 상대방과 정적(靜的)으로 대면하여 있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동적(動的)으로 교류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Westcote, Zahn). 사실 성도는 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불신자들과 접촉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지혜로 행하여. - 성도가 불신자들과 교류할 때에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그러면서도 세상 사감들과 적대 관계에 놓이지 않도록 지혜를 가져야 한다. 더욱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이해시키고 삶을 통해 그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더욱 지혜 있게 행동하여야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뱀같이 지혜로울 것을 권면했다(마 10:16).
세월을 아끼라. - 이 말을 직역하면 '기회를 사서 자기 것으로 하라'이다. 즉 이 말은 시간과 기회는 빨리 지나가므로 시간과 기회를 잘 포착하여 많은 영혼을 속량시키라는 의미이다. 엡 5:16 주석 참조. 성도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순간들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 본절은 5절에 이어 불신자에 대해 신자가 취하여야 할 언행에 대해 계속해서 언급한 것이다. '은혜 가운데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카리티'는 직역하면 '즐거운 가운데서'이다(Meyer, Lightfoot, Zahn). 성도는 세상에서 불신자들과 말을 할 때에 그들이 악인이라는 관념 하에서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리하면 말이 부정적이 되고 불쾌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도는 자신도 불신자와 같이 이전에는 동일한 죄인이었음을 잊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친절하고 인자하게 하나님의 은혜가 불신자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을 하여야 한다.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같이 하라. - '소금'이란 음식의 맛을 내는 동시에 음식이 부패하지 않도록 작용한다. 따라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말을 하라'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말을 함에 있어 그들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은혜를 끼칠 수 있게 말을 하라는 의미이다(마 5:13; 막 9:49-50).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 불신자와 대화하거나 불신자가 듣고 있는 중에 어떤 말을 함에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친절하고 인자하게 하지 않으면 불신자의 마음 문이 닫히게 되고, 또 성령의 도우심을 거스르게 되어 적절한 권면의 말을 못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은혜 가운데서 말이나 대화를 하면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고(요 16:13), 상대의 마음의 문을 열게되어 적절한 말로써 상대방을 권면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누구와 대화를 하든지 간에 친절하고 인자하게 말하기를 힘써야 한다.
4:7-18 끝맺는 말
본서를 통해 바울은 골로새 교회 교인들의 바른 기독론 정립을 위해 논증함과(1:13-23) 더불어 이단 사상을 경계하고(2:8-23)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삶을 제시함으로써(3:1-4:6)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자 했었다. 이제 본문에서는 본론적인 모든 논증을 마친 후 본 서신을 끝맺으면서 본 서신을 골로새 교회에 전달할 두기고와 오네시모에 대해 소개하고(7-9절). 이어 개인적으로 문안을 보내는 동역자들의 명단을 열거하며(10-14절) 라오디게아 교회와 아킵보에 대한 분부를 한 후(15-17절) 마지막으로 골로새 교회를 향한 축도를 통해 본 서신을 마무리 짓는다(18절).
특히 본서신의 전달자 두기고는 아시아 사람으로 바울이 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함께 했으며(행 20:4), 옥중 서신(7절; 엡 6:21)과 목회서신(딤후 4:12; 딛 3:12)을 기록할 당시 바울과 함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두기고가 바울의 옥중 생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으며. 이는 바울이 두기고를 골로새 교회로 보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즉 바울은 자신의 옥중 생활에 대해 걱정하고 근심하고 있는 형제들에게 자신의 수종드는 자를 통하여 자신의 현재 사정을 전함으로 그들을 위로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배려를 통해 스스로 고난 가운데 있으나 이를 상관치 않고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교회에 대한 관심만을 가지는 바울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아리스다고와 마가 등 개인적으로 문안을 보내는 자신의 동역자들을 한 명씩 일일이 소개하는 바울의 시도는 비록 지역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유기체인 교회가 상호 협력해야 하며 친교를 나누어야 함을 보여 준다(고전 12:13). 또한 이러한 각 지체된 성도들이 합력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도모할 때 비로소 성도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함을 교훈 받을 수 있다.
4: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주리니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된 자니라. - 본서신의 전달자로 신약 성경에 다섯 번 언급된다(행 20:4; 엡 6:21; 딤후 4:12; 딛 3:12). 이상의 성경 구절들을 추적해 보면 두기고는 아시아 사람이며 헌금 위원으로 바울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계속하여 바울을 추종하며 섬겼던 신실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4:8 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낸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이 두기고를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목적이 언급되어 있다. 그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옥중에 있는 자신과 및 하나님의 사역자들의 소식을 전하게 하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지도자가 옥중에 있게 되어 상심하고 있을 형제들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본서에서 바울이 자신의 옥중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전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데에서 바울의 공인으로서의 뚜렷한 면모를 볼 뿐만 아니라, 옥중에서도 오히려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바울의 크나 큰 사람됨과 신앙을 보게 된다. 바울은 육적인 관점에서 누가 위로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가를 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은혜와 능력을 입은 자신은 부요한 자요, 지도자를 잃은 여러 교회의 형제들은 위로받아야 할 자들임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4:9 신실하고 사랑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주리니. - 바울이 본절에서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고 표현했듯이 이 사람은 본래 골로새 출신이다. 그는 빌레몬이라는 사람의 종으로 그에게 잘못을 저지른 뒤 도주하여 로마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중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몬 1:8-21).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 바울은 그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여기에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바울은 오네시모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회심 이후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음을 증거 하는 것인 동시에 빌레몬과 골로새 교인들에게 과거에 도주했었던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이도록 요청하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바울은 오네시모의 용서를 부탁하기 위해 이때 빌레몬에게 개인적인 편지를 쓰게 되는데 그것이 빌레몬서이다. 오네시모에 대해선 몬 1장 연구 자료를 보다 참조하라.
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사람으로 에베소에서 바울과 같이 일하다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소동이 일어났을 때 가이오와 함께 투옥되기도 하였다(행 19:29). 그 후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때에 동행하였으며(행 20:4), 바울이 로마로 갈 때에도 동행하였다(행 27:2). 한편 바울은 본절에서 아리스다고를 그와 함께 갇힌 자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① 문자적으로 바울과 함께 투옥된 것을 가리킨다. ② 영적으로 그리스도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것을 가리킨다(Lenski, Carson), ③ 아리스다고가 바울을 돕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교대로 일부러 갇혔다(Meyer, Abbott), 몬 1:23을 보면 에바브라가 바울과 함께 갇힌 자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 ③의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 '바나바'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자 했을 때에 바울을 도와 준 인물로(행 9:26,27)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바울을 도와주었다(행 11:25; 12:25). 제 1차 전도여행 때 바울과 동행한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였으나, 마가라는 그의 조카 문제로 인해 제 2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에 헤어지게 되었다(행 15:36-40), 이처럼 바울과 바나바가 헤어지도록 만든 장본인이 마가인데, 그는 삼촌인 바나바의 천거로 바울의 제 1차 전도 여행에 동행하게 되었으나 여행의 고난을 참지 못하고 중도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바울의 신임을 잃어 바나바와 바울이 다투도록 하는 원인이 되었으나, 후에 아주 신실한 신앙의 일꾼이 되어 다시 바울의 인정을 받았다(딤후 4:11). 실제로 이 마가는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을 통해 굳센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으며(벧전 5:13), 그 믿음으로 많은 주의 일을 하였고, 마침내는 베드로에게서 들은 말씀들을 기초로 하여 마가복음을 기록하였다. 한편 바나바에 대해서는 행 15장 자료 노트를, 마가에 대해서는 행 15장 연구 자료를 보다 참조하라.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 여기서의 '명'이 언제, 누구를 통해, 어떤 내용으로 전해진 것인지 확실히 알 길이 없다. 다만 추측컨대 이것은 바울의 제 1차 전도여행 때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마가의 젊은 날의 실수가 여러 교회에 소문으로 퍼져 골로새 교회에 마가에 대한 배타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자 바울이 그것을 측은히 여겨 만일 마가가 도착하면 따뜻하게 영접하라고 이미 오래 전부터 친히 또는 인편으로 일러두었던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4: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유스도'라는 이름은 '정의'라는 뜻의 로마명으로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나 율법에의 충성을 맹세한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이름이었다. 본절에서 그가 할례당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는 유대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예수'란 '여호수아'라는 히브리 이름을 헬라식으로 발음한 것이다(눅 1:31). 이들 이름은 당시 흔한 이름이었는데 아마도 이 사람의 이름은 예수이고 유스도는 별명 이 었던 것 같다.
그들은 할례파(할례당)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 복수 대명사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 '그들'은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라 하는 예수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본문의 '할례당'이란 어떤 유대인들처럼 의문의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을 하는 그런 할례당이 아니라,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인 것으로 보인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자들이라고 한 점으로 보아도 이들이 전자의 의미에서의 할례당으로 언급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역사하는 사람들은 바울 주위에 많지 않았다. 그들 중 겨우 본장에 언급된 몇 사람만이 동역자로 신실하게 일하였으며 그것이 같은 유대인인 바울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4: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또는 본절과 같은 표현은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즐겨 표현하는 문구이다. 그러나 이 표현을 바울이 타인에게 사용한 경우는 에바브라와 디모데뿐이다(빌 1:1). 그만큼 에바브라는 신실하고 충성스런 신앙의 일꾼이었다.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 9절과 마찬가지로 '너희에게서 왔다'는 표현은 에바브라가 골로새 출신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골로새 사람으로 골로새 교회를 창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고와 관련해서는 골 1:7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저가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 골로새 교회를 위해 애절하게 기도하는 지도자 에바브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여기서 '애쓰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고니조마이'는 경기장에서 분투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하던 말이다. 그와 같이 신실한 하나님의 종 에바브라는 항상 힘을 다해 골로새 교인들이 굳센 믿음과, 확고한 신앙의 지식 가운데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였다. 이러한 에바브라의 모습은 홀로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려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마 26:36-44; 눅 22:44; 히 5:7)을 본받은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4: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니. - 라오디게아에 대해서는 골 2:1의 주석을 참조하라. 히에라볼리는 리쿠스(Lycus) 계곡에 위치한 도시로 골로새 및 라오디게아와 함께 브루기아 지방에서 유명한 삼각지를 이루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서론, '골로새서에 나타난 주요 지명들'을 참조하라. 일찍이 에바브라는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개종한 뒤 이 삼각 도시에 관심을 갖고 온 정열을 기울여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4:14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 누가는 의사로서 바울의 전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에 동행하면서 바울의 건강을 돌보아주었으며, 숨은 봉사로서 많은 하나님의 일을 하였다(행 16:10-17; 20:6-16). 그리고 그는 문학적으로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어 사도들의 행적을 생동감 있게 서술하여 후대에 남겼다. 누가와 관련해서는 행 1장 연구 자료에 상술하였는바 그곳을 보다 참조하라.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 이 사람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다만 딤후 4:10에 의하면 그는 후에 믿음이 연약하여져서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나간 것으로 나타난다.
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 에바브라가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세운 것으로 보이는 라오디게아는 골로새와 가까운 위치에 있었으므로 잦은 왕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3절 주석 참조. 그러므로 바울은 그러한 왕래를 통해 라오디게아에 있는 성도들을 돌아보고 주 안에서 교제하며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러한 본절은 바울이 리쿠스 계곡에 있는 세 도시의 교회들을 동일하게 염려하고 동일하게 사랑했음을 보여 준다.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 알렉산드리아 사본(A)이나 에브라임 사본(C), 시내산 사본(H)에는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가 '눔바와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로 되어 있고, 베자 사본(D)과 보엘네리안 사본(G) 등에는 '눔바와 그의 집에 있는 교회'로 되어 있다. 따라서 눔바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한 개인인지, 어떤 가문의 이름인지 분명하지 않다. 한편 본절은 라오디게아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라고 언급함으로써 마치 라오디게아 내에 두 개의 교회가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으나, 이것은 라오디게아에 교회가 두 개 있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라오디게아 형제들'은 라오디게아의 성도들을 개별적으로 언급한 것이며,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는 교회라는 회중으로 언급한 것이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특별히 교회 건물을 세우지 않고 그 지방에서 유력한 성도의 집에 모여 예배와 기도와 교제를 나누었으며, 그것을 교회라고 지칭하였다(행 12:12; 16:40; 고전 16:19).
4:16 이 편지를 너희에게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 바울의 서신이 한 개인에게나 한 지역에서만 읽혀지지 않고 여러 사람, 여러 지역의 교회에서 읽혀지도록 권장되고 있다. 이로 보건대 바울의 서신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동일한 교훈이 되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게 하라. - 이 서신이 무엇을 지칭하는가가 분명치 않다. 이에 대해서는 ① 라오디게아 교회가 바울에게 보낸 것(Theodet, Calvin, Beza), ② 바울이 라오디게아에 보낸 공식적인 서신으로 분실된 것(Weiss, Eadie), ③ 에베소를 비롯해 인근 교회에 회람 서신으로 보낸 에베소서를 가리킨다(Abbtt, Peake)는 등의 견해가 있다. 이 견해들 중 마지막 견해가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4: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 이 사람은 골로새 교인의 한 사람으로(몬 1:2), 일반적으로는 그가 빌레몬의 아들로서 현재 자리를 비우고 있는 에바브라의 뒤를 이어 골로새 교회를 이끌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Abbott, Scoe, Calvin).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 '직분'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아'는 일반적으로 '집사' 직분을 지칭하나, 몬 1:2에서 바울이 아킵보를 '함께 군사된 자'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목회자로서의 직분을 의미하는 듯하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아킵보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교회를 통해 격려의 말을 전하게 함으로써 교회의 권위를 높이는 동시에 교회가 아킵보의 권위를 인정하도록 권면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4: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 당시 바울은 서신을 쓸 때 직접 쓰지 않고 그가 말한 것을 대필자로 받아쓰게 했다(롬 16:22). 그러나 맨 마지막 문안 인사만은 친필로 기록하였는데(고전 16:21; 갈 6:11; 몬 1:19). 이는 그 서신이 자신의 편지임을 입증하고 사도의 권위를 빙자하여 위조된 서신이 쓰여질 수 있는 가능성을 막기 위함이었다(살후 3:17). 한편 바울이 이처럼 대필을 시킨 것에서 학자들은 고후 12:7 에서 말하는 '육체의 가시'가 '안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 이 말은 단순히 바울이 옥중에 있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겨 달라거나 불쌍히 여겨 달라는 말이 아니다. 이는 본서 전체 교훈에 대한 최종적 결어로서 골로새 교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위해 옥에 갇히고 고난을 당하는 바울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여 이단 사설에 미혹되지 말고 복음에 굳게 설 것을 요청하는 말이다(Alford).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여기서 '은혜' 앞에 관사가 있어, 이것은 '그 은혜', 곧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킨다(골 1:2), 하나님의 은혜야말로 신자가 가지는 최대의 선물이며, 그 은혜가 있을 때 성도는 평안과 기뿐 속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은혜'와 관련해서는 골 1:2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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