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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목회자의 2대 직무 수행 명령과 개인적 부탁 및 이단 경계와 끝 인사
구속사적 개관
본서의 마지막 장인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된다.
먼저 전반부 1-8절까지는 본서 본론부인 2:1-4:8까지 목회자로서의 임무와 자세, 특히 말세에 임할 핍박과 이단의 공격에 대한 대처 방법 등에 관해 다루고 있는 일련 기사의 종결 부분이다.
본장의 전반부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위시한 모든 성도들에게 말세의 타락상과 핍박을 예고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 더욱 굳게 착념하여 악에 물들지 말며 이단에 미혹당하지 말고 또한 고난 중에 인내하라고 당부한 전장에 이어 2차로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엄숙한 순간에 자신의 후계자인 디모데에게 유언(遺言)과 같은 당부로 목회자의 사명을 다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이런 본문의 내용을 상술하자면 1-5절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목회자의 2대 직무인 말씀 전파와 성도들이 이단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성도의 바른 신앙 교육의 직무를 힘써 수행할 것을 명령한 사실을, 이어 6-8절은 지금까지 누구보다 더 투철하게 전도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 왔던 바울이 이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마치 유언이라도 주고 있는 듯 자신이 죽은 후에는 주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소망을 피력함으로써 디모데로 하여금 목회자로서의 마땅한 자세와 장차 받을 상급이 어떠한 것인지를 일깨워 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다음으로 후반부 9-22절은 본서 전체의 종결부이다. 여기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개인적 부탁을 한 후 바울 자신이 직접 피해를 받았던 이단 구리 장색 알렉산더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시 한 번 이단에 대한 경계를 촉구하고 마지막 문안 인사를 베푼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본장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대함에 있어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먼저 1-8절에서, 모든 성도는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한 노정에서 비록 각각 그 소명의 내용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하게 되는 소명을 갖는다는 것이다. 물론 구속사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당신의 구속사를 절대 주권에 입각하여 단독으로 경륜하신다. 그러나 그 과정에 있어서는 필히 성도들의 순종과 사역을 통하여 당신의 구속사를 전개하신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들을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즉시 천국 구원에로 이끄시지 않고 이 땅에 남겨두신 이유들 중에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특별히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다 자신의 소명의 본질을 충분히 깨달아 이를 충성되게 실행토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召命)을 받아 복음 전파 및 여러 가지 사역을 수행케 될 주의 사역자들은 위와 같은 구속사적 사명 의식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자세로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바울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고 하였듯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 전파에 힘쓰는 충성된 자세를 가져야 한다(2a절). 둘째, 단순히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성도들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정통 교리로 가르치고 계속해서 돌보아 양육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2b절). 이는 밭에 씨를 뿌린 후에 계속 관심을 갖고서 싹이 트고 열매 맺을 때까지 김을 매주며 거름을 주는 등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고전 3:6,7) 농부와 같은 자세를 가져야만 참 복음의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하여 후진들을 양성하여야만 그 후진들을 통하여 복음 전파 사역이 대(代)를 이어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수 있다. 셋째, 주의 사역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인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5절). 일찍이 예수께선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요 10:11,12)라고 말씀하셨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뭇 영혼들을 돌볼 책임이 있는 주의 사역자들은 마땅히 죽기까지 그 책임을 다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할 때 저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며(마 13:43) 또한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롬 8:17,18).
다음으로 9-18절에서 우리는 자신과 함께 일하던 동역자들이 고난을 참지 못하여 또는 이단의 미혹을 받아 자신을 떠나는 참담한 상황과 또 온갖 박해를 받다가 이제 순교(殉敎)를 당하기 직전의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천국 구원에 대한 확신 있는 신앙을 고백하는(18절) 바울의 모습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실로 중대한 구속사적 교훈을 깨닫게 된다. 즉 참 전도자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능히 보호하시고 천국 영생의 길로 인도하실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천국 구원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 눈에 보이는 인간의 역사만을 보지 말고 그 이면에서 태초부터 종말까지 도도히 으르는 구속사(救贖史)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을 근거로 하여 성도에게 구원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역동적으로(dynamically) 진행되고 있다는 구속사에 대한 인식을 결코 잃지 않으며 최후의 일각까지 자신의 소명과 삶에 최선을 다하는 구속사적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관한 세부 설명은 본서 제 2장 개관을 참조하라.
외울 말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전도인으로서 직무 수행 명령
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임박한 순교에 대한 바울의 자세
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바울의 개인적 부탁
9 ○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바울의 천국 구원 소망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끝맺는 인사
19 ○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본문 & 자료노트
보감-4:2 성도에게 필요한 인내
1. 좌절 가운데의 인내(시 42:5)
2. 기도 응답의 지연에 대한 인내(막 11:24)
3. 억압받는 가운데의 인내(눅 21:16-19)
4. 시련과 환난 가운데의 인내(롬 12:12)
5. 인간관계의 마찰에 대한 인내(엡 4:2)
6. 복음 전파의 어려움에 대한 인내(딤후 4:2)
7. 주의 재림에 대한 인내(약 5:7)
8. 죄악과 싸울 때의 인내(계 2:2,3)
보감-4:2-8 본서에 제시된 전도자의 7대 전도지침
1. 복음을 부끄러워 말고 전하라(1:8)
2. 자기 생활에 매이지 말고 전하라(2:4)
3. 진리를 옳 분별하여 전하라(2:15)
4. 인내함으로 전하라(3:24; 4:2)
5. 때를 얻든지 뭇 얻든지 전하라(4:2)
6. 고난을 두려워 말고 전하라(4:5)
7. 죽는 날까지 힘써 전하라(4:5-8)
주요주제-4:3, 이단의 이해
요일 4장 자료노트 참조
신학용어-4:4 성경의 진리 개념
요 16장 자료노트 참조
원어연구-4:4, 좇다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크트레포'( )이다. 이 단어는 '~으로부터'(from)라는 뜻의 '에크'( )와 '돌아서다'라는 뜻의 '트래포'( )의 합성어로서 주로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잘못된 상태로 돌아서다', 혹은 관절이 삐어 다리가 '비틀리다'(twist out, 히 12:13). 더 나아가 '길을 잘못 들어서다'(turn aside), '(잘못된 상태로) 빠져들어가다'(딤전 1:7; 6:20)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이와 유사하게 '돌아서다'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메타노에오'( )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에크트레포'와 달리 긍정적인 의미에서 잘못된 상태에서 바른 길로 돌아서는 것, 곧 회개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본문에서 이 단어는 단순히 허탄한 이야기를 추종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 오도된 상태로 빠져들어 간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처럼 악한 교훈은 단순히 진리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고 결국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옳게 분변하는 일은 말세가 가까워오고 사탄의 획책이 점점 더 거세지는 오늘날 성도들에게 있어 그 어느 시대보다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주요 주제- 4:6-8, 성도가 겪는 죽음의 의미
그랜드 종합 교리 '종말론' 참조
보감-4:10 세상적인 것을 얻은 대신 영적인 것을 잃은 인물들의 실례
얻은 것 잃은 것
1. 아담 창 3:6-10 세상 지혜 하나님과의 교제
2. 가인 창 4:3-16 자기 만족 하나님과의 교제
3. 룻 창 13:7-11 비옥한 땅 하나님의 보호
4. 삼손 삿 16:17-21 여인의 사랑 하나님의사랑
5. 다윗 삼하 11:2-5 육적인 쾌락 하나님의 보호
6. 가룟 유다 마 27:3-5 은 30 천국 구원
7. 한 부자 눅 16:19-26 세상적인 부 천국에서의 기쁨
8. 데마 딤후 4:10 세상 쾌락 하나님의 축복
주요 주제- 4:18 구원 확신의 근거들
롬 8장 연구자료 I 항 참조
주요 주제-4:22 서신서의 인사말 '은혜와 평강'
딤후 1장 자료노트 참조.
주요 주제- 4:6-8 사도 바울의 연대기
롬 서른 특별자료 참조
4:1-8 목회자의 2대 직무 수행 명령
본문은 2:1-4:8까지 목회 현안에 관한 실제적인 지침들을 주고 있는 본서 본론의 종결부분이다. 앞장에서 바울은 말세의 타락상과 배교(背敎) 현상을 예시, 예고하면서 디모데를 위시한 모든 성도들의 영적 각성을 촉구하였다(딤후 3:1-9). 그리고 말세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고난당하는 때이므로 모든 성도들은 성경 말씀에 착념해 믿음의 승리를 거두어야 할 것이라고 가르쳤다(딤후 3:10-17). 이제 그에 이은 본 단락은 바울이 지금까지의 교훈을 마무리하면서 최후의 권면을 주고 있는 단락이다. 즉 현재 로마 당국에 의해 체포당해 2차로 로마 감옥에 갇힌 중에 본서를 쓰는 바울은 자신의 석방을 예견했던 1차 투옥 때와 달리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자신의 후계자 디모데에게 목회자의 직무 수행 자세에 대하여 유언적(遺言的)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1,2절에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목회자의 2대 직무로서 복음 전파와 성도들에 대한 신앙 교육 직무를 힘써 수행할 것을 명령하고 이어 특별히 3-5절에서 말세에 이단이 극성하여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에서 돌이켜 떠나가는 일이 허다하게 나타날지라도 이에 낙망치 말고 복음 전파에 더욱 힘쓰며 성도들이 이단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함을 교훈하였다. 그리고 덧붙여 7-8절에서는 일생 전도자로서 선한 싸움을 싸워온 바울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자신을 포함하여 자신처럼 주의 사역에 헌신하는 모든 자들에게 반드시 주께로부터 천국 면류관이 주어질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서 도 자신의 장래를 걱정하기보다는 디모데에게 복음 전파와 성도의 신앙 교육을 명하고 독려하고 있음은 그리스도께서 맡겨 주신 하나님 나라 확장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노사도(老使徒)의 숭고한 모습을 투영해 준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대한 바울의 이 같은 당부는 비단 디모데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 라 전 신약시대의 모든 교회 지도자와 이모저모로 주의 사역에 동참하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것으로 실로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즉 우리 모든 성도는 자신의 생명이 다하기까지 주께서 맡기신 지상 대명(the Great Commission)을 수행하고 또 주의 복음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들을 교육해야 할 사명(마 28:19,20) 수행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하나님 나라 확장이 속히 이루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천국이 완전히 도래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4:1 하나님 앞과‥‥그리스도 예수 앞에서‥‥엄히 명하노니. - 본절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베푸는 명령의 중요성과 엄중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절대자의 권위를 빌어 명한다는 표현은 구약 성경에도 나와 있지만(출 36:1; 슥 7:13; 나 1:14)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진지함과 엄숙함이 본절에 담겨 있다. 이는 당시 바울이 순교 당할 절박한 상황에 있었고 그리고 본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주와 재림주로 묘사하고 있는 분위기로 봐서 알 수 있다. 한편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는 교훈에서 이미 이와 유사한 권면의 형식을 여러 차례 사용한바 있다(딤전 5:21; 6:13).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 성육신(成肉身)하신 예수는 만유의 대속주(代贖主)로 오셨지만(딤전 2:6), 장차 재림하실 예수는 만유를 심판하는 심판주로 오실 것임을 시사해 주는 구절이다(마 25:31-46; 행 17:31; 롬 2:16; 고전 4:5).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 - 본절 역시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산 자와‥‥심판하실'이 그리스도의 심판이 미칠 대상을 나타낸 것임에 반해 본절은 그의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해 주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한편 '그의 나라'라는 말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미래의 소망을 지니게 해준다. 왜냐하면 '그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는 예수 재림 시에 완성될 것이며 그때 성도들은 그 나라에서 주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딤후 2:12). 이와 관련해서는 누가복음 서론 특별자료, '하나님의 나라의 이해'를 참조하라.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 여기서 '말씀'은 '복음' 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가리킨다(딤후 2:9,15). 이러한 본절은 디모데의 중차대하고도 우선적인 임무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그러나 이는 비단 디모데에게만 해당되는 임무가 아니라 실상 모든 성도들에게 부여된 임무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우리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명하셨는데(마 5:13-16) 이를 이행하는 주요 방편은 무엇보다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 여기서 '때를 얻든지'(유카이로스)는 '좋은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막 14:11), 복음을 전파하기 쉬운 상황을 말한다. 또한 '못 얻든지'(아카이로스)는 '때가 아닌 것'을 의미한다. 유대교도들로부터는 물론 점차 로마 당국으로부터도 기독교가 박해 당하던 디모데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아카이로스'는 복음을 전파하기에 매우 어려운 때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혹자는 본절을 '사람들이 듣거나, 듣지 않거나'로 해석하기도 한다(Easton).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자세는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적인 측면이고 그 복음의 결실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측면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힘쓰라. - 여기서 '힘쓰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스테미'( )의 원어적 의미는 '가까이에 있다'로 '목회자는 항상 사람들 가까이에서 말씀을 전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오래 참음. - 바울이 말하는 '오래 참음'이란 거의가 '인간의 허물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음'을 의미한다(롬 2:4; 9:22; 딤전 1:16). 그러나 여기서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인내하는 성품을 본받아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마땅히 취해야 하는 태도를 가리키고 있다. 즉 이는 사람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인내하며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르침. - 말씀 선포와 치리(治理) 그리고 봉사라는 교회의 3대 권세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이는 '바른 가르침을 전하는 것'과 '오류를 바로잡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그랜드 종합 교리 '교회론' 중 '교회의 3대 권세'를 참조하라.
경책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렝크손'( )은 '허물을 분명히 알게 하고, 그것을 바로잡아 주는 것'(correct, NIV)을 의미한다.
경계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티메손'( )은 일반적으로 '질책', '책망'(rebuke, NIV)의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마 16:20; 눅 23:40). 그러나 간혹 '징벌'의 의미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고후 2:6). 여기서는 죄인을 책망하되 엄히 꾸짖는 것을 가리킨다.
권하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칼레손'( )의 원뜻은 '위로하다'(encourage, NIV)이다. 이는 죄인을 책망하되 어떠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를 시사해 준다. 한편 '위로자'라는 의미의 '보혜사'(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이 바로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4:3 때가 이르리니. - 이미 앞장에서 언급했던 '말세에 고통하는 때'를 한 번 더 언급하고 있다(딤후 3:1). 특히 바울은 그때에 나타나는 현상들을(딤후 3:2-5) 본절에서 다시 되새김으로 디모데의 경성(警省)을 당부하고 있다.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 여기서 '바른 교훈'은 바울서신에 자주 나오는 단어로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말미암은 복음'을 말한다(딤전 6:3; 딤후 1:13; 딛 1:9; 2:1). 딤전 1:10 주석 참조. 그런데 이를 '받지 않는다'(우크 아넥손타이)는 말은 '배척하다'는 의미로서 의도적으로 진리의 말씀에 귀를 막는 것을 가리킨다.
귀가 가려워서. - 이것은 '귀를 간지럽게 한다'는 의미로 '듣기 좋고 자기를 즐겁게 하는 말에 쉽게 동의한다'는 뜻이다.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 이는 바울이 바른 교훈을 전할 때에 나타나는 상황과 정면으로 대조되는 상황으로 '사람이 복음을 제대로 받는다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적인 것에 눈이 멀어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세상 쾌락에 더 탐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에서 그 영안(靈眼)을 열어 보이시고 양심의 귀를 뚫어주시는 자는 진리의 말씀을 좇게 되는데 이는 특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마 13:16).
4:4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 여기서 '진리'는 3절의 '바른 교훈'과 같은 말이다. 이것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나 그분의 '참된 말씀'을 가리키기도 한다(요 8:32; 14:6; 고후 11:10; 엡 4:21). 그런데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킨다는 것 역시 의도적으로 진리를 배척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스데반의 설교에 귀를 막고 도리어 저에게 돌을 던진 장면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행 7:55-58).
허탄한 이야기. - 이것은 딤전 4:7에 나오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와 같은 말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그곳 주석을 보라.
4:5 그러나 너는. - 바울은 여기서 '그러나'(데)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3,4절에 언급한 말세의 현상 속에서 디모데가 얼마나 다른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를 강조하고 있다(Lenski).
근신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네페'( )의 문자적 의미는 '술을 절제하다'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보다 넓은 뜻으로 '경계심을 가지고서 자기를 지켜 자제함'을 말한다(Earle).
고난을 받으며. - 딤후 3:12 주석 참조.
전도인.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앙겔리스테스( )는 초대 교회에서 초기에는 '순회 전도자'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행 21:8). 따라서 이 용어는 교회의 직분 중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미 한 교회를 시무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을 리는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의 직무 중 복음전파 사역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직무.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아'( )는 '봉사'의 직분을 말하는데 '집사'( 디아코노스)라는 말이 바로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딤전 3:8 주석 참조.
다하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로포레오'( )의 원어적 의미는 '채운다'(to fulfill, RSV)이다. 이는 곧 질적으로는 '흠 없이' 그리고 시간적으로는 '끝까지'로 표현될 수 있을 만큼 충성하라는 말이다(고전 4:2).
4:6 관제. - 본절에서 바울은 복음으로 인해 순교를 맞는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에 바치는 제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관제'(灌祭)란 제물 위에 술을 부어서 드리는 제사를 의미한다. 이는 일명 '전제'(奠祭)로도 불리웠다(민 15:5; 28:7). 그러나 여기서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바울이 자신의 순교를 빗대서 한 표현이다(빌 2:17). 이와 관련해서는 레위기 서른 특별자료, '구약 제사의 종류와 그 상징적 의미'를 참조하라.
내가. - 개역 성경에는 단순히 '내가'라고 번역되었지만 헬라어 성경에는 '내가'로 시작하는 본절의 첫 머리에 '왜냐하면'(가르)이 따라 붙는다. 이렇게 함으로 바울은 자신이 왜 앞에서(5절) 그렇게 간곡하게 디모데를 권면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떠날 기약. - 여기서 '떠남'(아날뤼시스)의 말의 용법은 주로 항해하는 배가 항구를 떠난다든가 전장으로 나가는 군인이 진지를 출발한다는 표현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본문에서는 바울이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빌 1:23). 이것을 볼 때 바울은 죽음을 '새로운 출발'로 여긴 것 같다(Hendriksen).
가까웠도다. - 이것은 죽음이라는 것이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이 이미 눈앞에 있어서 그 죽음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본장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들려주고 있는 권면과 당부는 일종의 유언적(遺言的) 성격을 띠는 엄숙한 것임을 알 수 있다.
4:7 선한 싸움‥‥믿음을 지켰으니. - 본절에서 죽음을 앞둔 노사도(老使徒)인 바울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이 전도자로서 복음을 위해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선한 싸움을 싸우며 주의 사역에 헌신하였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음을 회고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선한 싸움'을 혹자는 격투기(格鬪技) 선수들이 싸우던 것에 빗댄 표현으로 이해한다(Lock, Vincent, Gealy). 그러나 또 다른 이는 '전쟁터에서 적군을 상대하는 병사의 전투'에 빗댄 표현으로도 이해한다(Simpson). 이 중 본문에서의 '싸움'이 어떤 것에서 따온 것이든지 간에 그것은 생명을 걸어야만 했던 싸움이며, 이기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절대 위기의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삶을 고요히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그가 지불해야 했던 값은 생명을 걸어야 했을 만큼 고된 것들이었다(고후 11:23-27).
나의 달려갈 길. - 마라톤 코스(course)를 연상케 하는 이 말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 온 바울의 전 생애를 의미한다(Lenski).
믿음을 지켰으니. - 이것은 운동장에서 달리는 선수가 분명한 목표가 있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정해진 규율을 잘 지켜야만 하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특히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믿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병사가 총알 없는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서는 것과 같으며 달리는 선수가 목표점을 잃어버린 채 이리저리 제멋대로 달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바울은 주께서 주신 참 생명인 믿음을 끝까지 간직한 채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께 충성을 다한 것이었다(Hervey).
4:8 이제 후로는‥‥예비되었으므로. - 바울의 이 고백은 이제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정된 것만이 남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이 고백의 배후에는 바울이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얼마나 열심히 충분하게 했는지에 대한 떳떳함과 그런 만큼 자신이 받아야 할 상급이 클 것이라는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다.
의의 면류관. - 여기서 '면류관'은 예수 재림 시에 그의 재판석 앞에서 성도들에게 주어질 상급(고전 9:25; 살전 2:19; 약 1:12; 벧전 5:4)을 뜻하는 말이다. 딤후 2:5 주석 참조. 그런데 '면류관'앞에 '의(義)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에 대하여 어떤 학자는 성도 각자에게 '의로운 보응으로 제공되는 상급'을 뜻한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로써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으며 인간은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만이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상치된다(롬 3:10-28). 그러므로 '의의 면류관'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은 성도들이 힘껏 충성한 데 대하여 보응으로 주시는 상급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 - 이는 장차 심판주로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1절). 그런데 그를 가리켜 '의로우신 재판장'이라 함은 그가 만민을 심판하시되 편견이나 편벽됨이 없이 오직 공의(公義)로써 심판하실 분이시기 때문이다(시 9:8).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 여기서 '주의 나타나심'이란 '주의 재림'을 말한다(1절). 이 '주의 재림'이란 모든 사람이 그 발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건이기도 한데(계 20:11-15) 그 같은 재림을 사모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그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본문에서 바울이 의도하는 바는 '의의 면류관'과 같은 상급이 어떤 특정인의 독점물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상급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데 있다(Lenski). 그러면서도 그는 모든 성도들이 '주의 재림'을 사모할 수 있을 만큼 충성스러운 삶을 힘써야 한다는 점도 아울러 강조하고 있다.
4:9-22 바울의 개인적 부탁 및 이단 경계와 끝인사
지금까지 본서 본론부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자로서 명심해야 할 여러 목회 지침들을 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바울이 죽음을 앞 둔 상황에서조차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희구하면서 디모데에게 복음 전파와 성도들의 신앙 교육에 힘쓸 것을 당부한 것(1-8절)은 자못 감동적이다. 이제 그에 이은 본문은 본서 전체의 종결부로서 바울의 개인적 부탁(9-13절)과 더불어 바울 자신이 사역 중에 직접 해를 당하기도 하였던 이단 구리 장색 알렉산더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시 한 번 디모데에게 이단을 경계할 것을 촉구하고 이어 지금까지 바울 자신을 모든 해로부터 지켜 주시고 또 장차 천국 구원에 로 인도하실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드린 사실을 기록한다(14-18절). 그리고 자신의 주변 사정을 설명하며 개인적 문안과 축도로 본서를 끝맺고 있다(19-22절).
이러한 본문은 죽음을 눈앞에 둔 절박한 상황 하에서조차 조금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은 채 사도(使徒)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바울의 숭고한 모습을 클로즈업(close-up) 시켜 준다. 특히 자신이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받을 때 자신을 배반하고 도망간 자들에 대하여서조차 용서해 줄 것을 디모데에게 당부하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의 가슴을 심히 뭉클하게 한다(16절). 이는 바울이 주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대로 스스로 실천한 위대한 복음의 일꾼이었음을 증거해 준다. 그리고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최후의 일순간까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사역에 전념해 줄 것을 당부하며 주변의 동역자들을 세밀하고도 다감스럽게 돌아보며 문안하는 바울의 숭고한 모습은 실로 우리 모든 성도의 귀감으로서 길이길이 가슴 속에 새겨야 할 참된 주의 일꾼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4:9 본절에서부터 22절까지는 본서 전체의 종결부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개인적 부탁 및 이단 경계(9-18절)와 개인적 문안(19-21절) 그리고 축도(22절)로써 본서를 끝맺고 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 지금까지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여러 권면과 교훈을 주는 가운데 특히 마지막 때의 현상과 관련하여 삼가해야 할 것과 힘써야 할 것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기도 하고, 미래에 받을 상급에 대하여 가슴 벅찬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것이 본절에 와서는 내용상의 급격한 전환을 보인다. 이는 이제 바울이 본서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편 로마 옥중에 있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던 디모데를 급하게 부른 이유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 바울이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여 신앙적으로는 영생과 하늘의 축복들이 보장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사모했으나(8절) 인간적으로는 지금까지 복음을 위해 자신과 함께 고난과 핍박을 받은 영적인 아들이면서 참된 동역자인 디모데를 마지막으로 보고자 하는 애틋한 심정과 목회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해줌으로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노사도의 뜨거운 사랑이었다고 본다.
4:10 데마. - 이 자는 데살로니가 출신으로(Lightfoot) 바울이 옥중 서신을 기록할 당시(A.D. 61-63년)까지만 해도 바울을 도왔던 사람이다(골 4:14; 몬 1:24).
이 세상을 사랑하여. - 이 말은 8절의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여'와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여기서 '세상'(아이온)은 '시대'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데 '주의 나타나심'이 '주의 재림'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주의 나타나심'과 대조되는 '이 세상'은 주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다가올 세상'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 시대'와 '세상적인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 여기서 데마가 바울을 버렸다는 말은 ① 바울의 투옥으로 인해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낀 데마가 바울에게서 떠난 것(Calvin) 내지는 ② 데마가 바울뿐 아니라 신앙마저도 저버린 것(Lenski)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어느 견해가 타당한 것인지는 단정하기 힘들다. 한편 데마가 데살로니가로 간 이유는 그곳이 그의 고향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레스게. - 본문에만 등장하는 자로 달리 알려진 행적이 없다.
갈라디아. - 갈라디아서의 수신 대상지인 소아시아의 갈라디아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프랑스 남부 지방에 있는 오늘날의 고울(Gaul)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대개는 전자의 경우로 본다(Hendriksen). 추측하건대 바울이 이곳에 그레스게(Crescens)를 보낸 이유는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디도. - 바울을 도와 예루살렘을 방문하기도 하며(갈 2:1) 고린도와 그레데에서 사역하기도한 이방인 출신의 기독교인이다.
달마디아. - 이곳은 일루리곤의 남쪽 지역으로써 마게도냐의 북서쪽에 위치한 곳이다. 또한 이곳은 이미 바울이 사역했던 지역이기 때문에(롬 15:19) 그곳에 기존하는 성도들을 돌보는 일을 위하여 디도(Titus)를 파송한 것으로 여겨진다.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 이 표현 하나로도 바울에 대한 누가의 충실함이 드러난다. 그는 훌륭한 의사이면서도(골 4:14)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할만큼 역량이 뛰어난 신학자였고 문필가였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무엇보다도 누가의 이미지가 '충실한 동역자'로 각인되어져 있었다. 누가는 이미 바울의 2차, 3차 전도여행에 동행했으며(행 16:10; 20:5,6), 로마에까지도 함께 하였다(행 27:1; 28:16). 따라서 이러한 본문의 기록은 본서의 대필자가 누가였음을 추측케 한다.
마가를 데리고 오라. - 마가(Mark)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시 도중 하차하여 바울의 신뢰를 한때 잃어버렸던 사람이다(행 13:13; 15:36-40). 그러나 그 이후 그들은 서로 화해하였고 마가는 다시금 바울을 따라 다니며 도왔던 것 같다. 한편 그는 마가복음의 기록자였고 바나바의 조카였다(골 4:10). 한편 바울의 전도여행과 동반자와 관련해서는 행 13장 연구자료, '전 3차에 걸친 바울의 전도 여행과 로마 여행'을 보다 참조하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 여기서 '나의 일'이란 바울 개인의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는 공적인 일을 가리킨다. 바울이 1차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으면서 골로새서를 기록한 당시(A.D. 62-63년)에 마가는 로마에 있었다(골 4:10). 그리고 이후에도 그는 베드로와 함께 로마에 있었다(벧전 5:13). 그러므로 이제 2차 로마 감옥에 투옥된 바울은 마가에게 복음 사역을 부탁하기 위해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려오도록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4:12 두기고. - 이 사람은 바울이 특별히 신뢰하던 동역자로서(딛 3:12) 이방인들이 모은 구제 헌금을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했던 자이다(행 20:4). 그는 또한 바울이 기록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각기 그 수신 교회에 전달하였다(엡 6:21; 골 4:7).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 아마도 바울은 두기고를 에베소에 보내어 디모데를 보고자 하는 자신의 뜻을 전달한 것 같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를 로마로 부르는 기간 동안에 두기고를 통하여 에베소 교회를 돌보도록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Calvin, Gealy).
4:13 드로아 가보. - 가보(Carpus)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성경이 따로 소개하는 바가 없다. 다만 본절을 통하여 볼 때 그가 신실한 성도였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드로아(Troas)는 북서 소아시아에 위치한 에게해의 항구도시이다. 바울이 마게도냐 선교를 위한 환상을 본 곳이 바로 이곳이다(행 16:9,10).
겉옷.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일로네스'( )는 원래 '물건을 넣는 상자'를 가리킨다. 이 때문에 이것을 '책함(book box)'으로 해석하려는 자들도 있다(Chrysostom). 그러나 이 단어는 점차 '물건을 싸는 부대', '온 몸을 감싸는 통으로 된 외투'를 의미하기도 하였는바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를 '외투'로 번역한다(Bengel, Alford). 아마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겨울의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이것을 가져오도록 부탁하였을 것이다. 또한 추측하건대 바울은 언젠가 드로아를 방문했을 때 날씨가 더웠으므로 가보에게 자신의 외투를 맡겨 두었을 것이다.
책은‥‥가져오라. - 파피루스(papyrus)로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만 해도 책은 대개 가죽 종이, 즉 짐승의 가죽을 벗겨 건조하여 표백한 것에 기록하여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책은 휴대하기가 불편하였으며 또한 보관하기도 쉽지 않았으므로 점차 파피루스 책에 밀려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본서 17권 서신서 개론에서 상세히 언급하였으니 참조하라.
가죽 종이에 쓴 것. - 여기서 '가죽 종이'는 보통 양, 산양,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이것은 파피루스에 비해 제작 과정이 까다로웠기 때문에 비싸게 매매되었고 귀중한 문서를 작성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한편 바울이 말하는 이 '가죽 종이로 쓴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구약 성경으로 이해한다(Bengel, Alford, White). 또한 혹자는 이것을 바울이 그때까지 기록했던 서신들을 필사해서 보관해 두었던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는데 이는 확실치 않다(Robertson).
4:14 구리 장색. - 이것은 비단 구리(copper)뿐 아니라 여러 가지 금속을 세공하는 사람을 의미한다(Earle). 한편 본절에서 알렉산더의 직업이 금속을 다루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알렉산더. - 디모데전서 1:20에 나오는 알렉산더(Alexander)와 동일인으로 추측되는 자이다. 그는 원래 신자였지만 후에 배교한 것으로 보이고, 교회에서는 제명된 후에 는 더욱 악한 일을 많이 한 것 같다.
주께서‥‥갚으시리니. - 시편 62:12의 인용인 이 구절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계속 강조했던 주의 재림 시에 있을 심판에 대한 기대이다(8절). 바울은 장차 주에서 악인과 선인을 공의로 심판하사 행위대로 갚아주실 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복음 사역을 훼방하고 괴롭혔던 알렉산더를 자신이 대적하기보다 주의 심판에 의탁한 것이다.
4:15 우리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 혹자는 이를 바울이 로마 법정에서 재판받을 때에 알렉산더가 불리한 증언을 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Earle, Lenski). 그러나 이러한 결해는 계속해서 복음 전파 사역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본문의 전후 문맥에 비추어 볼 때 타당치 않다. 그러므로 이는 알렉산더가 복음 사역자들의 전도를 방해하고 적대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공동번역은 본절을 '그는 우리가 전도하는 것을 악착같이 반대한 사람입니다'로 번역하고 있다.
4: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 - 여기서 '변명'(아폴로기아)은 자신이 기소(起訴)당한 것에 대해 자신을 변호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바울이 이러한 변명을 처음 한 때가 언제인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 이 시기는 ① 바울의 첫 공식적 변명이 있던 가이사랴에서의 체포시(행 23:1 이하), ② 첫 번째 로마 투옥 시(행 28:30,31), ③ 지금의 두 번째 로마 투옥 시로 정리된다. 이 가운데 가장 유력한 견해는 첫 번째 로마 감옥에 감금당하였을 때로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와 관련하여 바울은 자신이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바울이 자신을 변호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신 결과 1차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상황에 잘 부합된다(Lock).
함께 한 자. - 이것은 법정에서의 변호인을 의미하는 말이다. 바울이 재판을 받을 때에 그의 동역자들이나 믿음의 형제들은 바울을 위해 변호인이 되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바울을 위하여 변호인으로 나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이는 저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점차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하던 로마 당국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 본절은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받을 때에 자신을 배반하고 도망간 자들에 대해서조차 용서해 줄 것을 디모데에게 부탁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가슴 뭉클하게 하는 바울의 관용적인 태도가 잘 나타나 있는 구절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만 관용의 태도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딤전 3:3) 이처럼 스스로가 몸소 관용의 모범을 보이었다. 아마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인하여 당하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자신의 십자가를 걸머지고 가는 것으로 여겨 담담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원망하기 보다는 도리어 이해하는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 보혜사 성령을 가리키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 )는 곧 '옆에 서서 말씀하시는 분'과 '격려자' 그리고 '위로자'란 뜻인데(2절) 바울은 여기서 그와 비슷한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그는 역경 중에서 주의 격려와 함께 하심을 실제로 경험했던 사람이기 때문에(행 23:11; 27:23,24) 여기서 이러한 확신 있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바울을 변호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 이다(16절).
강건케 하심은‥‥듣게 하려 하심이니. - 현재 바울의 상태는 감옥에 갇혀 있어 마음대로 전도를 할 수 없도록 되어진 제한된 상황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 경우에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는데 곧 옥중에 있는 죄수와 간수들에게이며 재판받기 위해 법정에 서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의 이러한 사역이 단순히 자신의 힘이나 의지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강하게 하심'으로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실로 내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 바울의 일관된 신앙고백이다(빌 4:13).
전도의 말씀. - 이것은 초대 교회 당시에 널리 전파된 복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복음의 핵심 내용은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십자가상에서의 대속(代贖) 사역 그리고 부활과 재림 등이었다.
이방인으로 듣게. -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로마에서 선포된 복음은 그곳을 왕래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에 의해서 쉽게 세계 곳곳으로 퍼질 수 있었다. 바울은 바로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비록 죄수의 몸이긴 하지만 이곳 로마에까지 오게 하신 것으로 이해하였었다.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 다니엘의 사건을 연상케 하는(단 6:20) 이 구절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네로의 박해를 모면한 것이나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될 뻔한 위기 가운데서 극적으로 구출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였으므로(행 22:25) 그러한 처형에 처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Robertson). 따라서 이것은 오히려 상징적인 의미로 보아야 하는데, 첫째는 1차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던 것에서 풀려났던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금도 비록 죄수의 신분이긴 하나 아직은 생명을 보존하고 있으며 또한 기회 닿는 대로 복음을 전파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4:18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 주기도문(마 6:13)을 반영하는 이 고백은 바울이 로마 법정에서 당한 모든 어려움들과 오해와 모략 등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울을 건져내신바 있으니 이는 곧 그가 1차 투옥에선 풀려난 일이다. 그러나 지금 다시금 투옥되어 있는 상황에서 바울이 이 같은 간구를 하는 것은 그의 2차 석방을 소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순교적 죽음을 예견하는 가운데 그 같은 최후를 맞이하고자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6-8절). 그러므로 이는 어떠한 역경 중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자 또한 그렇게 될 것으로 확신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 이는 미래를 보장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바울의 소망과 기대가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다. 즉 바울은 단지 자신의 암울한 현실이 극복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장차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기대하며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이미 7,8절에서 언급하였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 딤전 6:16 주석 참조.
4:19 브리스가와 아굴라. - 이들은 클라디우스 황제가 유대인을 추방시킬 때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로 이주하여 그곳에 살던 자들이다. 이들은 바울과 함께 장막 짓는 업을 하면서 바울의 전도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었다(행 18장). 이들에 대해서는 롬 16장 연구 자료를 참조하라.
오네시보로. -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던 바울을 도왔던 자이다. 딤후 1:16 주석 참조.
4:20 에라스도. - 이 사람은 고린도 지방의 재무 담당자로서(롬 16:23) 디모데와 함께 마게도냐에 파송된 적이 있는 자이다(행 19:22).
고린도. - 이곳은 펠로포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본토를 연결하는 좁은 지협(地峻)의 남쪽 2km 지점에 위치했던 도시이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시에 이곳에서 1년 6개월간 머물렀으며(행 18:1,11) 3차 전도여행 시에도 다시 이곳을 방문했었다
(행 20:2,3).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 여기서 '드로비모'(Trophimus)는 에베소 출신으로서 이방인 성도들이 모은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까지 운반한 자이다(행 20:4-6). 그때 바울은 그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는데 그로 인해 유대인들의 소동이 일어났었다(행 21:27-33). 한편 드로비모가 언제 어떠한 병에 걸려 밀레도에 머물렀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이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중에 일어난 일이었을 것으로 추측될 분이다. 왜냐하면 '밀레도'(Miletus)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던 증에 경유한 곳이기 때문이다(행 20:15-17).
4:21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 이처럼 바울이 디모데에게 겨울 전에 오라고 한 것은 추운 날씨에 대비하기 위하여서 겉옷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13절).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마지막 재판이 임박하였고 또한 겨울이 되면 소아시아 지방에서 로마로 출항하는 배가 아드리아 해안을 항해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에 디모데를 대면하는 일이 지체될까 싶어서였다. 이러한 겨울 항해의 어려움에 대하여서는 행 27:9-12 주석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참조하라.
으블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 -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성경에 별다른 언급이 없다. 다만 이들은 모두 로마 교회의 교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초대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이중 '리노'(Linus)는 베드로에 이어 로마 교회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12년간 봉직하였다고 한다(Irenaeus, Eusebius).
4:22 주께서‥‥계시기를 바라노니. - 본서를 마무리 지으면서 바울이 디모데를 위해 비는 이러한 축원(祝願)은 단순히 디모데를 위한 형식적인 축복 기도라고만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이는 당시 디모데가 처한 위기 상황이 단순히 자신의 권면만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계심을 확신하고 경험해야만 가능하다고 보는 바울의 신앙고백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 본절의 전반부가 디모데를 위한 기도인 것에 반해 후반부는 모든 에베소 교인들을 위한 기도이다. 즉 바울은 여기서 에베소 교회의 전체 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본서가 단순히 디모데 한 개인에게만 보내어진 편지가 아님을 시사해 준다. 이와 관련해서는 본서 서론을 참조하라.
연구자료
데마-주의 일을 버리고 세상의 안일을 택한 자
1. 인적 사항
① 데마는 '통속적인 자'라는 뜻.
②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추측됨(딤후 4:10).
③ 바울의 동역자였으나 결국 그를 버린 자(골 4:14; 딤후 4:10; 몬 1:24).
2. 시대적 배경
A.D. 30-70년경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예루살렘에서 태동한 초대 교회가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장되던 초대 교회의 확장기에 주로 활동, 데마는 이 시기에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지역을 중심으로 전도 활동을 하고 있던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회심한 인물 중의 하나였다(데살로니가에서였을 것으로 추정). 그는 회심 후 곧바로 바울의 사역에 동참하는 열정과 헌신을 보였다.
전 3차에 걸친 전도 여행 후(A.D. 57년경)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고 또 벨릭스와 베스도, 그리고 아그립바 앞에서 2년간의 재판을 마치고 가이사에게 심문을 받기 위해 로마로 호송되어 투옥된 바울의 1 차 로마 투옥(A.D. 61-63년경) 때에 데마는 바울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골 4:14; 몬 1:24). 그러나 A.D. 66-67년경인 바울의 2차 로마 투옥시기에 데마는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3. 주요 생애
1) 바울과 결벌 이전
(1) 출생 - -
(2) 바울의 복음을 듣고 회심함 - -
(3) 바울의 동역자로 복음 사역에 헌신함 - -
(4) 바울의 1차 로마 투옥 때 그와 함께 있음 A.D. 61-63년경 골 4:14
2) 바울과 결별 이후
(1) 바울의 2차 로마 투옥 때 바울과 결별함 A.D. 66-67년 경 딤후 4:10
(2) 데살로니가로 귀환함 - 딤후 4:10
(3) 신앙을 버린 것으로 추정됨 - -
(4) 죽음 - -
4. 성품
①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었을 때는 순간적인 열정으로 그의 사역에 동참하였다가 나중에 고난을 당하게 되자 이를 견디지 못해 바울과 결별한 것으로 보아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다혈질의 소유자.
②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 버린 점에서 인내심이 없고 복음에 대한 소망이 견고치 못한 자.
③ 바울이 형통할 때는 그와 함께 하다가 고난을 당하자 그를 버리고 세상의 안일을 찾아 떠난 것으로 보아 동료애가 없고 이기적인 자.
5. 구속사적 지위
① 주를 위한 고난보다 세상을 더 사랑함으로써 순교의 면류관을 거부한 자.
②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단적으로 증거한 자(요일 2:15-17).
6. 주요 공적
① 초기에 바울의 사역에 동참하여 복음을 전파함.
7. 주요 실수
① 세상을 사랑하여 옥중에서 고생하는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버림.
8. 평가 및 교훈
① 데마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 축복과 영광과 함께 희생과 고난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에 일시적인 열정으로 바울을 도와 복음 사업에 주력하다가 불가피 한 희생과 고독, 그리고 투옥 등의 고난이 일어났을 때 그 고난을 회피하고자 결국 바울을 고난 속에 버려두고 자신은 세상의 안일을 찾아 떠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이는 우리 성도들이 주와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사실(롬 8:17)을 깊이 명심하고 평소에도 고난에 대비하여 신앙 무장을 견고히 하지 않으면 안 됨을 교훈한다 하겠다.
② 바울은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 자기를 버렸다'(딤후 4:10) 고 말하였다. 이에서 우리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겨 보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신앙인들은 결코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분명한 진리를 재차 깨닫게 된다.
9. 핵심 성구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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