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노트 선택시
결론노트 선택시
1. 그대 앞의 소멸
2. 0시 속 0시
3. 초록빛의 0
그대 앞의 소멸
어느 누구가 되든, 그대 앞에 무언가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묻겠소. 이 사람이 맞나요? 이 물건이 맞나요? 당신은 무언가를 대답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렇게 대답하겠지, 라고 나는 추측하겠소.
어느 날 내 앞에 그가 나타나 저 말을 하던 어느 순간, 나는 그에게 이 단어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런가? 그럴까? 그렇다면? 그래서? 그러면? 그런 건가? 그리고 그에게 이 단어들의 속뜻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그 말이 정말이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정말 모르고 묻는 것인데, 당신은 왜 그렇게 우물쭈물 하고 있나요? 그가 계속 우물거렸다.
그는 별걸 다 기억한다면서, 계속 우물거렸고 나는 내가 뭘 기억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에게 별 투정을 다 부리고 있었다.
그대 앞에 무언가가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묻겠소. 이 사람이 정말 맞나요? 이 물건이 정말 맞나요? 당신은 무언가를 추측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렇게 추측하겠지, 라고 나는 대답하겠소.
0시 속(續) 0시
현재 시각 0시 조금 지나
귀뚜라미, 울지 않는다
창밖, 이미 떠 있는 달은
이별을 삼키고 날아가는
슬픈 새다
나는 알지 못하는 시간
허공에 뜬
해돋이가 선명하다, 어둠 속에서
귀뚜라미 울지 않고, 현재 시각
0시 조금 지나
과거로 돌아간 이별도
슬픔으로 남지 않는다.
저 혼자 우는 달,
저 혼자 뜨는 해,
세상이 비춰진 곳에서는
이별을 슬픔이라 말한다.
세상의 뒷골목에서
날지 못하는 새
목마른 울음에 지쳐간다,
나는 알지 못하는 시간
0시를
조금 지난.
초록빛의 0
빛이 빛을 쪼여 한낮의 모든 걸 매기고 있다 그 빛은 내게 모든 걸 다 주려 하진 않고 있어 나는 빛에게 말한다 내게 바람을 달라 내게 비를 달라 내게 구름을 달라 그 빛은 그럼 나는 당신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야 하느냐고 무작정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바람을 쐬러 모두에게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푸르른 하늘이 나를 반기는 척 하더니, 이내 숲의 저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에 머물렀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더니 이야기는 저 바다 너머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했다
자꾸만 허둥대기만 하는 어떤 날에 슬픔이 슬픔이 아니게 된 어느 날에 사랑을 하기만 하고 싶던 그 날에 나는 삶이라는 아주 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더 이상 아무도 내게 이야기를 붙이지 않게 될 그 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바다에게 투정했더니 바다는 그럼 나는 너의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아주 오랜 후 어느 날 나는 바다 위에서 햇살을 받으며 바람을 맞고 있었는데 그것은 꿈인 듯 지금인 듯 나중인 듯 했다 그리고 내게 닥쳐온 그 지금은 어느 덧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달라진 나중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지금은 내게 꿈이냐고 꿈인 거냐고 나는 맞을 거라고 맞을 거라고
쉬움노트 선택시
1. 그대로
2. 자갈과 바위
3. 소나기, 그 후
4. 마음
그 대 로
밤 피어오르듯 별은
어제
그 자리에 빛을 내고
뜨거운 열기로 타오르는 사막에
오늘
목마름을 덜어내는
오아시스
사라지듯 기어이,
달아오르는 날빛
내일
또
그대로
자갈과 바위
1.
그의 주위는 온통 자갈밭이다
때로는 그가 나였으면 하기도,
나이기도 하다
움직일 줄 모르는 최악의 움직임
누구도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
꿋꿋한 자갈들의 세상은
유동적이다
나는
그들의 세상을 보지 못한다
나를 옮겨 보려는
사람들의 노력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손에 이끌린 자갈 하나가
나의 곁에 와 앉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자갈들을 온통 짓밟아도
아무말 하지 않는다
즐거운 그들의 세상에
나도 뛰어놀고 싶다
2.
그들의 가운데에
바위가 있다
때로는 그들이 나였으면 하기도,
나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손에 이끌린 나는
상처 난 몸투성이를 이끌고
바위 밑으로 숨어들었다
지친 몸들을 이끌고
사람들은
바위 틈에 와 앉는다.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은
나의 노력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다
휴식이 필요한
누군가의 몸에 짓눌려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편안한 그의 세상에서
나는 낮잠을 청한다
나도 그처럼
누군가의 휴식이 되고 싶다
3.
나는
바위가 되었다가
자갈이 되기도 한다
나는
바위가 되고 싶기도 하다가
자갈이 되고 싶기도 하다
또 나는
바위가 아니기도 하고
자갈이 될 수 없기도 하다.
소나기, 그 후
1. 콘크리트
사라지듯 툭 튀어오른 방울 같은 날들
너무 오랫동안 단단하여 쉽게 바꾸지 못하는 생(生)
그런 날이 지고 있다
2. 진흙더미
저 세상 끝 떨어진 칼날 같은 방울
갑자기 들이닥친 변화에 유유히 스며드는 삶
실패한 첫, 사랑처럼 파인다
3. 무지개
서로 다른 인생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엇갈린 7가지의 목소리, 오늘도 아름다운 불협화음
마 음
맑은 하늘,
눈이 내리고
그 안에
떨어지는 나라면
흐린 하늘,
눈이 내렸고
그 속에 묻혀 사는
그것도 나.
바람 부는 허공.
우뚝 선 눈사람.
거기에
떨고 있는 나라면
밝은 햇살,
시간의 눈빛에
침묵으로 사라지는
그것조차 나.
햇살노트 선택시
1. 그리움에 걸리다
2. 아낌없이 받는 남자
3. 발가락이 예쁜 천사
4. 수증기 사랑찌개
그리움에 걸리다
- 이 시에 뭔가 있을 거라 기대를 하고 있다면 생각을 거두어 주시길…
목소리 낮춰 소망함. -
마지막 남은 알록달록한 껍질이
친구에 의해 벗겨지던 그때
희미하게 보이던 모든 것이
비로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창 밖, 한바탕 벼락이 내리고
소나기에 묻히는 신음소리
조금 거부반응이 있기는 했지만 이내
세상을 감싸는 침묵이 깊숙이 찾아오고
오름가즘을 오르내리는 숨소리만이
깊어가는 여름밤을 채워내고 있었다.
끼익끼익 삐걱이며 살과 살을 파고드는
섹스의 한 중간쯤
나는 비로소 그들에게서 고개를 떨구었고
그날 새벽
천정이라고는 있지도 않은 다락방에서
혼자서 수음을 했다
삶이란 게 이런 것일까,
하는 상투적인 질문을 하고 있을 때
간밤의 천둥처럼 벨소리가 울리고
먼저 가서 미안하다며
친구는 마지막 인사를 한다
투우욱 -
끊어지는 저편 너머
나의 이상형이 끼루룩거리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떤 희망도 남기지 않은 채
멍한 다락방에서 뚜욱뚝 떨어지는
천둥소리가 울리는 여름이 되면
해마다 찾아오는 그녀의 신음소리에
나는 가끔씩 슬픔을 내뱉곤 한다.
아낌없이 받는 남자
1.
40대의 총각이 눈에 불을 켠다
그의 눈에 보이는 여자들의 종아리,
허벅지, 그러나
엉덩이는 보이지 않는다
발가벗겨진 그의 눈에
성추행은 일상, 매일 보이는 건
그녀들의 일상, 끝내
알려지지 않는 40대의
원피스 탐독
2.
40대 총각의 손에 살림이 묻는다
그의 손에 묻혀지는 것은 오징어젓, 돈가스,
떡갈비 그러나
나물은 묻혀지지 않는다 홀로 선
그의 일상에
살림은 남자의 몫, 당연한 몫.
그러나 나물만은 나의 몫이 아니라고
그는, 그는
3.
그가 가장 힘든 건
처리되지 않는 성욕, 배출되지 않는
싱크대의 마음처리,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40대의 총각은
마침내 종교에 귀의 한다 마지못해
예수님을 찾는 그의 손발이
눈물로 범벅이 된다
4.
40대 총각의 일상에
나물은 주님의 몫, 이제부터
눈물도 하나님의 몫, 예수님은
시선(視線)도 예수님의 몫이라고
피범벅된 몸으로 말씀하신다
발가락이 예쁜 천사
- 난 그녀에게 물었다
발가락이 얼마나 귀여운데?
그녀는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또 물었다
발가락이 얼마나 예쁜데?
그녀는 또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또또 물었다
발가락이 얼마나 귀한데?
그녀의 눈빛이 또또 날카롭다
그녀의 발에선 이상한 냄새가 나
유혹하는 듯한
비누냄새인지 바디샴푸향인지
그녀를 더듬는 이 작업이 너무 매력있어
기억 속의 천사는
발가락이 아홉 개였고 발바닥이 평평했어
그녀의 향수는 아주 진한 포프리향으로 하지
사실은 독한 장미향이었어 지금 내가 뿌리는 향수는
그녀가 준 포프리니까 포프리로 하지
내가 설정하는 이 작업은
발가락이 중요해 그녀의 양말은
BYC? MDG? KGG? 그 중 하나던가? 그녀는
국산용 스타킹은 절대 신지 않아 영문자가 새겨진
양말만을 신지.
그녀는 사랑한단 말을 자꾸만 되뇌었는데
난 그 말을 믿지 않았지 그녀가 일흔 아홉 번 사랑한단 말을 한 순간
나는 울고 있는 그녀에게 말했어
넌 정말 예뻐, 사실
그녀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은 너무 귀엽지
그렇게 귀여운 엄지발가락은 처음 봐 그녀는 이제
양말을 신고 다지지 않아 그녀는
비누를 칠한 후엔 언제나 바디샴푸를 발가락에 바르지
그녀의 향은 아주 약한 포프리향이야
그녀의 발에선 이상한 냄새가 나.
수증기 사랑찌개
1.
증오가 불꽃 튀며 세상을 향해 폭발했다 내려앉은
산 강 육지 바다 저마다 제 길을 갔다 아무도 뒤
돌아보지 않았다 떼 지어 날아간 까치 한 마리
푸·드·득·
날개짓하며 열정의 시간 속으로 날아올랐다 그때.
내게 폭발한 화산(火山)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요리사는
감정이란 양념들 꽉 찬 냉장고 문을 연다
끼이익 어둠에 갇힌 훈훈한 소리들
살고 싶어 발버둥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요리사, 시간이란 비장의 요리로 곧 죽을 목숨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들에 의한
마지막 요리를 해 낸다
2.
증오의 기포 투명한 사랑 속으로 흡수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가슴의 열 서서히 내려앉는다
시끌벅적한 양념 가득 훈훈한 정 넘쳐흐른다
투명한 사랑 요리사
하늘 땅 불 물로 범벅된 옷 입고
거리 가득 열정이란 요리로 사람들 데운다
이미 흡수된 증오의 기포, 하늘 멀리 증발한다
기억의 어두운 창고로 날아간 까치 한 마리
살가운 빛놀이를 한다, 그때
내게 다가온 사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요리사는
감정이란 주검으로 꽉찬 냉장고 문을 연다
발버둥치던 떼들의 놀란 마음
시간의 비장함으로 완성된 처음
수증기 사랑찌개 익어가는 노을
속(續)에서 끓어오르던 증오의 열 가라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