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방황 – 어린 시 모음
전창수 지음
오늘밤 사연
오늘밤은 웬지 씁쓸하다
아픔을 이야기하던
그 숱한 방황의 나날
이젠 끝일까.
차라리 오늘밤은
모든 이야기를 잊고
시원한 웃음을 아낌없이 마셔버리고 싶다.
허탈해 할 수도 없는
나의 마음은
천장 안의 사연을 캐묻고 싶은,
비밀로만 싸여있다.
오늘밤은 찬장 속의 사연을 들여다보며
얼굴없는 친구와 함께 밤을 지새우자.
해 지기 전
긴 머리는 출렁입니다.
귀밋 머리에 예쁜 꽃이 꽂혀 있습니다.
눈동자는 반짝이고, 탐혹스런 이마는 눈썹과 잘 어울립니다
고운 손, 만져도 만져도 자꾸 만지고 싶을 것 같습니다.
안아주고 싶습니다.
뽀뽀도 해 줄까요?
살짝 웃는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드러납니다
분홍색 스웨터와 파란 스커트가 보기에도 좋습니다.
젖비린내 나는 향수가 꿈 속으로 빨려들게 합니다
이대로 마주앉아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도 떠나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어느 덧 주름진 하늘이 서편으로 널리 퍼져 있습니다.
슬픈 고민
울적한 가슴에
또 하나의 추억이 밀려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
머리 발의 양끝까지
수혈을 하지도 않았는데 불평을 또 해대면
나는 과연 어찌하여야 할까
바람도 부른데
소나기가 내리면
나는 과연 감기가 들까
여러 고민을 하고 있는데
또 하나의 고민이 쌓이면
나는 정말 어찌하여야만 할까
애악 (愛樂) - 연합고사를 마치고
이제 나는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즐거움의 노래도
마음껏 부를 수가 있어요
허전한 마음이
구석진 곳에는
아직도 남아있겠지만
상관치 않을래요
푸르른 하늘
아니, 어쩌면 거무른 하늘을
보며
사랑의 노래를 부를래요
이제 나는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허전한 나무
허전함 속으로 빨려들어가자
동그란 광택 속에 나의 영혼이 아른거리고
구석진 창문 한 구석을 깨끗이 닦아 놓자.
누군가 찾을 EO까지
바람 속으로 달려가자
시퍼런 들판 안에 얼굴들이 보이고
그 속에 우뚝 솟아 있는 나무 한 그루
그것은 허전함
우뚝 솟은 나무
아른거리는 영혼.
누군가 찾을 때까지
창문을 닦자
바람 속으로 달려가면
시퍼런 곳
우뚝 솟은 나무 한 그루
기다림
- 누군가를 만남은 기다리는 것보다 어렵다 -
는 진리를 믿는 나였기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기다림은 끝이 없다.
나는 나 자신을 기다리니까
바보의 잇점
바보는 욕을 하지 않아도 좋다
욕을 한다는 것은 사람이 죽는 것일 테니까
그리고, 남은 영혼은 그대로 간직해도 좋다
살아 있는 것만큼 죽은 사랑은
되살지 않지만
영혼이 있다면 죽은 사람도 부활될테지
예수님이 부활하셨듯이 바보는 참 좋겠다
분 노
주먹을 쥐고, 그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시멘트로 된 벽을 힘껏 쳐 본다
으스러지는 아픔을 참으며
떨어지는 방울로 주먹을 적신다
모든 것이 끝이다
라는 순간 어디선가 혜성이 떨어진다
꿈이다.
생각하며 뒤편으론 현실을 바래야
눈물을 눈물일 수밖에
다시 한번 아픔을 참으며
아스팔트 도로에 나의 주먹을 지인다
피가 나오는 손을 이끌고,
나의 분이 더하기 전에
그녀에게로 달려가 상처를 씻는다.
마음 깊숙한 또 하나의 마음
어디선가는
새해축제가 익어가고
나는 나의 시를 읽히고 있다
소리의 마음보단
감정의 마음이 아파지고
나는 나의 글을 찢기고 있다.
시를 익히고
글을 찢긴다는
소박한 아픔을
나는 나의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다.
밤의 병사
별이 생긴다, 하나, 둘 ……
밤의 병사등이다. 아내들은
칠흑의 밤을 지우기라도 하듯 병사의 몸을 씻긴다.
그리운 풍경이다. 하고파도 할 수 없는
한낮 설움이 되어……
<시>
당신은 시를 쓰오?
아마, 형식적으로 쓰겠지. 그러지 마시오
개성은 없더라도
마음으로 쓰는 것이라면
내가 받아주겠오
작가지망생이 연극대본을 연습하는 중이다.
자연의 이치 – 1986년 -
스쳐지나가는 찬바람
하늘과 땅을 스쳐 저 멀리 사라지는 찬바람.
산 넘고 바다 건너
떠돌이가 되는 찬바람
찬 바람은 한 마리의 새처럼
쓸쓸히 멀어져 가는데,
나는 폭우되어 찬바람을 동반한다.
모두 어지러워지는, 어지러운 이 세상
새는 폭우에 휩쓸리고, 폭우는 절벽에 부딪쳐 되돌아 가지
맑은 이 세상
나른한 날에 (1989. 1. 16)
어둠의 생존 교훈
“정복하지 않는 자는 정복 당한다.”
나른한 날,
어디선가 들리는 이 소리에 몸을 움찔한다.
누군가 자살을 기도하며,
성스러움을 가득 안은 체,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나른한 곳에.
아득한 밤이 정막으로 져가는
나른한 날, 나른한 곳에
깊은 생각에 빠져든다.
오늘도 소중한
생명의 씨앗들이
우수히 흐르며
떨어지누나……
바보처럼
난 그저 바보처럼
시간을 앗아가버린 더러운 씨앗을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파도가 몰아치는
언덕바위 위에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꼿꼿하게 서 있다
그저 바보처럼……
꽃잎 지는 황혼의 계절 (1989. 1. 16)
오늘도 황혼이 지려 합니다.
백날을 그렇듯 아무런 변화가 없읍니다.
그리고, 나 또한 평범한 사람입니다.
날은 흘러 갔읍니다.
어느새, 꽃잎지는 황혼의 계절이 찾아 오고
나는 멋드러진 치장을 하는 멋쟁이가 되었읍니다.
하지만, 이 놈의 복장은 왜 이리 갑갑한 지……
태양이 지는 수평선을 사랑하며
이미 꽃잎이라는 옷을 벗어 던진 꽃밭에
나는 쓸쓸한 미소를 보내고 있읍니다.
하루의 사랑
쓸데없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진 말자.
인생이 그렇듯, 현실에만 충실하고
허위를 꿈꾸지는 말자.
많은 날을 상념하며 얻은
절실한 결론을
하루의 사랑으로 얻으려 하자.
결코 내세울 수 없는 날들이
앞길을 수없이 막고 있어도
사랑을 키워나가야지.
지나온 날들은 모두 사랑,
인생은 그렇듯 사랑으로만 흘러가지만,
나는 쓸 데 없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진 말자.
어린 명제
마음이 내키면 내키는 데로
이 밤은 홀로 지나갈지 모르며,
어리다는 하나의 강박관념에
사랑을 못한다는 명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