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처럼 날아서
마법의 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알의 약을 먹고 잠들었을 때, 양어깨에 날개가 돋는다면 맘껏 날 수 있을 텐데. 소망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미지의 세계를 돌아다닐 것이다. 언젠가 유럽 여행에서 돌아올 때 비행기에서 본 알프스 설산의 정경이 환상적이었다. 아래에서 올려본 풍경과 또 다른 느낌으로.
비행기의 창을 통해 내려다본 지상의 풍경은 개미들 세상처럼 오밀조밀하다. 온갖 희로애락의 사연이 펼쳐지는 집과 건물, 밤에 빛나는 조명들까지 환상적인 꿈의 세계로 보인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흐릿한 푸른 점으로 보인다는 ‘칼 세이건’의 글이 떠오른다. 마음 졸이고 애태우던 일상의 갈등이 하찮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순간만큼은 소인국을 바라보는 거인의 마음처럼 아량이 생기고 대자연 앞에 겸손해진다.
지난 연말부터 헬스장에 다닌다. 다양한 운동기구 중에 ‘아크 트레이너’라는 것이 있다. 열량 소모량은 많고 무릎에 무리가 덜 되니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발을 올리고 ‘시작’ 버튼을 누르면 지면과 떨어진 상태에서 발판이 저절로 구른다. 러닝머신과 달리 양발이 떠 있어서 마치 공중 부양하는 느낌이다. 오늘도 기구에 올라서 손잡이를 잡은 채 눈을 감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아프리카 초원과 폭포수, 에베레스트산,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봉,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 ‘오로라’를 직접 보기 위해 아이슬란드에도 가고 싶다. 쉽게 갈 수 없는 오지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미소도 보고 싶다. 간절히 원해도 생각만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곳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약의 효능이 더해져 하늘 끝까지 날 수 있다면, 그리운 이들도 만나 포옹하며 회포를 풀고 싶다.
세상을 돌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한데, 시간이 흐를수록 여행의 폭이 좁아진다. 나이 들수록 장거리 여행은 오랜 비행시간과 시차 적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려면 비용, 시간 뿐 아니라 건강이 중요하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먼 곳부터 다녀와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긴다. 직접 가지 못해도 매스컴을 통해서 간접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하늘에서 본 세계’란 TV 프로그램이 있다. 헬리콥터에서 찍은 세상 곳곳의 영상을 설명과 함께 보여주니 대리만족하며 시청한다.
기구에 설정한 예약 시간이 다 되어서 작동을 멈춘다. 운동하며 펼쳐진 상상의 나래도 마칠 시간이다. 발판에서 내려와 주위를 보니 사람들이 체력단련을 위해 열심히 운동 중이다. 삶의 터전을 가꾸며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다. 꿈에서 깨어난 듯, 우리에게 주어진 날개는 지상을 딛고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란 걸 깨닫게 된다.
약의 효능은 사라졌지만, '허상'도 현실도피도 아니었다. 상상의 날개를 통해서 잠시나마 간절한 곳을 돌아본 시간이었기에. 건강을 유지하며 어디든 걸어서 다닐 수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멀리 떠난 이들과의 만남은 ‘추억'이란 특효약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 추억하는 한, 그리운 이들은 내 곁에 머물 것이다. 유효기간이 없는 그 약을 곱게 간직하며 자주 복용해야겠다.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며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아간다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생각한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볼 수 있다'란 주제의 의미도. 비상의 꿈을 향해 오늘도 몸과 마음을 가꾸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첫댓글 하나의 알약을 먹고 잠이 들었을 때 날개가 솟아나 환성적인 알프스를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하시는 표현들,,,
추억이란 특효약, 유효기간 없는 약이라는 표현도 재밌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몸과 시간은 비례하지요. 여행하고 싶은 소망으로 헬스장 등록을 했으니 날개 달고 날아도 될 것 같은 글입니다. 지송님 화이팅!
마법의 약이 있다면 소망의 날개를 활짝 펴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맘껏 날 수 있을텐데....
공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