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흐르는 강 2
지은/송태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는 말이 있다.
새해 해돋이를 보려고 망상 해수욕장 바닷가로 갔다. 몇십 년 전부터 연중행사로 다니던 코스였다. 눈 오기로 유명한 강원도 지역에는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내리고 있다. 그날 역시 눈송이 휘날리며 눈비가 내리치는 강원도 날씨는 예외란 게 없었다.
예전에도 년 말에 새해맞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동해를 향해 달리는 도로 위에는 정체된 차량이 지렁이 기어가듯 8시간 10시간 가다 보면 해돋이를 못 볼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2024년 올해는 구름 뒤에서 본다는 둥 일출을 못 본다는 둥 여러 방송을 듣고도 눈비를 맞으며 모여드는 차량은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혹시 하는 마음, 구름 뒤에 해가 조금이라도 뜰 거라는 기대감, 그렇지만 꽝..
2023년 새해에는 일출은 보았으며 싱싱한 회를 먹고 게를 삶아 먹을 때의 기분은 동해고속도로 올라서는 순간! 이걸 어쩌나? 날아갈 수도 없고. 숨이 막혀오기 시작하면서 양양- 서울 간 고속도로는 화장실도 못 갈 지경에 이르렀다.
펜스 넘어 돌아선 허수아비의 소방 훈련, 펜스 넘어 일렬대열로 나란히 앉아 엉덩이 보이지 않으려고 얼굴만 내밀고 웃으면서 시원해하는 아줌마들의 표정에는 또 하나의 추억을 그려놓고 있었다. 이렇게 지체되는 것에 지루함을 느낀 아들이 “엄마” 내년에는 내가 휴가 내서 진우와 있을 테니 몇 박 며칠을 하던 엄마 친구들과 같이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내심 손주 보지 않고 해방된 기분이었다. 나는 그 말이 무척 반가웠다. 그 순간부터 머릿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2024년 해돋이는 누구와 함께 동해를 누비며 묵호항 회 먹고 망상 바닷가 별빛 쏟아지는 밤바다 바라보고서 맥주 한 캔 마시며 모래사장에 드러누워 같이 소리 지를 일행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오는 길에 주문진 들려 생선을 사서 돌아올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서울에 도착했다.
아들은 우리 나이에 가진 것은 시간과 돈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을 지는 황금빛 즐기는 나이인 것을, 젊어서 자식과 가정에 올인 했으니까, 지금은 보상 받으면서 건강 챙기며 황혼 열차를 타고 룰루랄라 즐기는 나이라는 것을 모르던 아들이 2023년 12월 어느 날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 이번 동해 언제 가요? 너 지난번에 엄마 친구하고 가라고 했잖니!" 아들이 달력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돌보고 있는 손주가 소통이 안 된다고 모르는 척 넘어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주 어릴 적 삼성의료원에서 돌 때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손주가 유치원 다니기 전에 일이었다. 아들 집과 가까운 거리에 원도봉산 쉼터 앞 ‘심원사”라는 “절” 입구에 숲이 우거졌으며 으슥하면서도 정돈이 잘된 좁은 오르막 길이 있다.
언어치료가 아닌 일반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많이 하면 따라 할 줄 알고 말을 시켜도 하지 않기에 답답한 심정에 아무도 없는 산길에서 둘이 안고 많이 울기도 했던 곳이 있다. 이렇게 소통이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던 손주가 아들이 보라는 달력 12월 31 일에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 위에 동해바다를 써놓은 것이었다.
여기저기 달력에 아빠 생일 엄마 생일 할머니 생일 학교 태권도 등 본인이 기재 할 것은 빠짐없이 해놓았다. 학교 공부는 기본은 다 되어있어 아주 잘하는 편이며 1학년 때부터 컴퓨터반. 영어 기본. 구구단 더하기 빼기 2학년 올라가서 곱하기 나누기 분수까지 하고 있지만 소통이 안 되며 문장 연결에 힘들어하고 있다.
그럼에도 며칠 전 일이었다. 핸드폰을 보는 순간, 맥 빠지는 카톡 문구가 있었다. 1학년때 나도 알 듯 한 여자 친구였다. 손주에게 앞으로 아는 척도 하지도 말고 문자도 하지 말고 “너 바보 아니냐? 라고 적혀 있다. 손주는”왜”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렇게 소통이 안 되는 손주가 매사에 적응 잘하고 지내기에 정말 고마웠다.
언어치료 열심히 해서 사회에서 우뚝 설 수 있게 바쳐주고 밀어줘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러한 손주가 어떻게 동해바다를 기억하고 있었는지? 그 글씨를 보고 아들과 나는 2024년 1월 일출을 보든 안 보든 인성이 탁월한 자식과 손주가 있기에 행복하다는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눈물은 가슴으로 흘러 강이 되었다. 세상에 부모 이기는 자식 없다는 말이 이렇게도 가슴에 와닿을 줄이야!
첫댓글 항상 손자를 사랑하시는 지은 선생님 이시죠. 눈물이 가슴으로 흘러 강이 되었다니...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건강하셔야 손자가 좋아할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