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더하는 / 강선숙
가는 곳마다 고운 빛깔의 봄꽃들이 춤을 추는 듯이 일렁이는 계절이다.
오월 어느 날, 장미축제가 열리고 있는 ‘곡성 섬진강 기차 마을’로 달려갔다. 내가 그곳에 간 까닭은, 화려한 장미꽃들에 둘러싸여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일란성 쌍둥이 가수 ‘수와진’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장미공원’에는 장미꽃 수억만 송이가 뿜어내는 짙은 향 내음이 가득 피어났다.
환갑을 넘긴 그들은 여전했다. 형제는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7080 때 노래를 기타 반주에 실어 들려주었다. 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에 취해 그곳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모금함에 기부금을 넣는 사람들에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한층 깊어진 음성으로 들려주는 노래들은 진한 감동을 주었다. 서로가 보완해주고, 돋보이게 하는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그곳에 모인 상춘객들은 코로나19 때문에 거리 두기를 하면서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을 돋우었다. ‘수와진’ 공연 현장은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있었다.
내가 이십 대 후반쯤이었다. 충무로가 근무지여서 점심시간이면 자주 명동거리를 거닐었다. 어느 날이었다. 하늘에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깨끗한 영혼의 음성을 가진 남자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젖히어 이리저리 두리번거려보았지만 맑은 하늘에는 구름 몇 조각 보일 뿐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멈추어 서서 가만히 소리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명동거리 중앙에 자리한 제법 규모가 큰 레코드사에서 그들의 신곡 <새벽 아침>을 크게 틀어 놓았던 거였다.
남자가수의 따뜻하고 깨끗한 노랫소리가 아름답고 힘 있게 퍼져서 천상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주책 부린 마음을 들킨 건 아닌지 부끄러워 또 주위를 둘러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다른 노래로 바뀔 때까지 <새벽 아침>을 듣기 위해 점심시간이면 그 주변을 서성거렸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질과 음악사에서 흘러나오는 스피커 음질이 많은 차이가 났기 때문에 그곳을 맴도는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퇴근길에 명동성당 앞을 지나칠 때도 어김없이 ‘수와진’ 목소리가 들렸다. 회색 담벼락 밑에서 ‘심장병 어린이 돕기’ 모금함을 앞에 놓고 열심히 노래 부르던 20대 후반의 청년들이었다. 피부는 까맣고, 큰 눈이 자존심과 반항기도 있어 보이던 쌍둥이 형제는 그렇게 오랜 세월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30년이 흘러 이렇게 먼 곳에서 그들의 공연을 보게 되니 반갑기도 하고, 일관되게 보여주는 이타심이 존경스럽다.
‘수와진’은 우여곡절의 시간을 지나왔다. 동생은 병마와 싸웠고, 형은 혼자서 노래했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들의 자리는 똑같다. 늘 길거리 공연장이었다. 역경을 이겨내고 지나온 삶의 내공은 예전에 비해 훨씬 친근해진 모습이다. 젊은 시절에 보였던 야성미는 옅어졌다. 고단한 여정을 지나오면서도 생각과 모습이 많이 변하지 않은 그들에게 ‘천사 장미동산’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내 발목을 잡는다고 했던가? 가수님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월급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가정은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가족은 힘들었다고 한다. 쌍둥이 형제는 거리로 나가 자선 모금함을 앞에 두고 노래로 봉사하는 생활을 35년째 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아버지가 못다 한 숙제를 마무리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더 넓게, 더 깊이 있고 풍성하게.
‘수와 진’을 응원한다. 집에 돌아와 ‘수와진의 사랑더하기’ 법인에 후원금을 보내고 유튜브로 그들의 공연을 시청했다.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 마음을 보탰다. 선한 믿음과 감동을 주는 그들의 노래를 오래오래 듣고 싶다.
첫댓글 좋은글
잘 보고 마음에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