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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장: 로마에서도 전도함
[1-2절]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멜리데는 말타(Malta)라는 섬으로 이탈리아 남단에 있는 시실리아 섬 남쪽의 작은 섬이다. 멜리데 섬 원주민들은 바울 일행에게 특별한 동정과 친절을 베풀었다. 비가 오고 날이 찬 때이었으므로 그들은 불을 피워 바울 일행을 영접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남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본래 사람 속에 두신 선한 마음이다. 문명의 발달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데는 부족하고 오히려 사람의 사람다움을 메마르게 하고 사람을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이고 심지어 기계적이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친절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3-6절] 바울이 한 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카답토 kaqavptw)[그의 손에 꼭 달라붙어 있는지라](KJV, NASB, NIV).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神)이라 하더라.
한 뭇은 한 짐보다 작고 한 줌보다 큰 단위를 뜻한다. 열 줌은 한 뭇이고 열 뭇은 한 짐이다. 원주민들에게는 살인한 자가 비록 바다에서 구원을 얻었어도 반드시 죽는다는 의식, 즉 악한 사람이 천벌 곧 공의의 형벌을 받는다는 의식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본성 속에 심어주신 도덕 의식이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또 그 원주민들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가 능력이 많으시다는 생각이 있었다. 종교가 없는 민족은 없다고 한다. 사람의 본성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생각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신 증거이기도 하다.
멜리데 섬 원주민들의 도덕성과 종교성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은혜이다. 모든 사람에게 종교성과 도덕성이 있고, 그것은 전도의 접촉점과 발판이 된다. 사실, 이 일반 은혜 때문에 세상은 극도로 악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 때는 이 세상이 극악하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7-18장은 멸망당할 마지막 세상의 중심 도시를 사치와 음란으로 더러워진 바벨론이라 불렀다. 그러나 아직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문이 열려 있는 것 같다.
[7-10절]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뒤센테리아)(전문적 의학용어)(dy- sentery)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그 섬의 추장 보블리오의 사흘 간의 친절과 호의는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이었다. 세상에는 아직도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의 친절과 호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병과 이질을 치료해주셨고 또 그 외에 다른 병자들도 고침을 받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행을 갚아주신다(마 6:3-4).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도 전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바울 일행에게는 큰 위로와 기쁨이었을 것이다.
[11-15절] 석 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過冬)한[겨울을 지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 기호는 디오스구로(Diovskouroi)[‘제우스의 (쌍둥이) 아들들’이라는 뜻)라. 수라구사[시라큐스]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형제들]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시장]와 삼관[세 채의 여관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수라구사[시라규스]는 시실리아 섬 동쪽 항구이며 레기온은 시실리아 섬 건너편 이탈리아 반도 최남단 항구이었다. 바울을 맞으러 나온 사람들은 주의 진실한 제자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주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마 10:40).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종 바울에게 큰 위로를 주셨다.
[16절]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백부장은 죄수들을 시위대장에게 넘겼으나](전통사본)82)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그들은 로마에 들어갔고 백부장은 죄수들을 시위대장에게 넘겼다. 그러나 바울은 아마 백부장의 특별한 배려로 그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되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에 도착하여 바울 곁에 계속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은 ‘그의 우거하는 집’(23절) 혹은 ‘자기 셋집’(30절)에서 2년 동안 유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때는 주후 62년경이며, 그가 그 재판에서 풀려났다가 두 번째로 투옥되어 순교한 때가 주후 68년 봄이라고 본다.
[17-19절]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관습에 대해 잘못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바울은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자신이 조상의 관습에 대해 잘못한 일이 없는데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 바 되었으므로 부득이 가이사에게 호소한 것이요 자기 민족을 송사하려 한 것이 아니었음을 변명하였다. 그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 오해하거나 잘못된 선입견을 갖지 않기를 원하였다. 바울의 처신은 지혜롭고 정당했다. 전도자에게는 행동의 정당함과 인격의 신임성이 중요하다. 전도자가 거짓되다면 어떻게 진리를 선포할 수 있으며 그가 악을 행하거나 사리사욕에 따라 행동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종이라 할 수 있겠는가? 주의 종들에게는 거짓되다거나 불법하다는 말보다 더 심각한 비난은 없다. 그러므로 비록 마귀의 방해 때문에, 또 사람들의 무지와 미움, 이기심과 열등감 등의 연약성 때문에 전도자가 사람들의 오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지라도, 그가 그의 결백함과 신임성을 변호하는 일은 필요하고 지혜롭고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20-22절]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이스라엘의 소망’은 메시아의 오심과 그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켰다고 본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소망이기도 하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때문에, 또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생의 소망 때문에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다.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사람들의 반대를 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23절]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며](원문)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설득하더라].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의 주요 주제이며 복음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며 죄인들이 하나님 없이 사는 상태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앞에 순종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차 영광스런 천국으로 완성될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처음 복음을 전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4:17). 하나님의 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심령 안에서 시작된다. 바울은 이 복음을 구약성경에 근거해 증거하고 권하였다.
[24-29절]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사 6:9-10)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그가 이 말을 마칠 때 유대인들은 서로 큰 쟁론을 하며 물러갔더라](전통사본).83)
복음이 증거될 때에 믿는 자도 있으나 믿지 않는 자도 있다. 복음은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 항상 그런 현상이 있었다. 이사야의 예언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적절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의 가르침을 들었으나 그를 알지 못했고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바울이 곳곳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을 때에도 다수의 유대인들은 그가 전한 구원의 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대적했다. 그것은 이상한 영적 어두움이었다. 참으로, 구원은 전도자에게나 죄인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다(롬 9:16).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 물론 죄인 자신이 회개하고 믿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회개치 못하고 믿지 못할 것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30-31절] 바울이 온 이태[2년]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그 2년은 재판받는 기간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가 보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이지만 복음을 담대히 전하였다. 복음은 그 후에도 계속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전파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멜리데 섬의 사람들에게는 인간애가 있었고 도덕 의식과 종교심이 있었다. 남을 배려하고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은 사람다운 모습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요 그것이 실상 구원의 열매이기도 하다. 우리는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부자유스런 상태에서도 자기에게 오는 자들에게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부정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죄인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제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구원이다. 구원받은 자들만 장차 주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영광의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셋째로, 바울의 전도에는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있었다. 전도에는 항상 두 가지 반응이 있다. 사람은 영적으로 심히 어두워져 있고 무능하여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복음을 깨닫고 회개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지 못할 것이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또 구원받은 자들의 성화를 위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것밖에 없고 오직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또 회중의 반응이 어떠하든지 낙심치 말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의와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미주
1) 부활하신 지 40일 후에 승천하심, 120명의 제자들의 모임, 사도 한 명의 보선(補選),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았던 15개 지역명, 고침받은 앉은뱅이의 나이 40여세, 스데반의 설교 내용,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내시에 대한 언급, 천부장 루시아과 총독들 벨릭스와 드루실라와 베스도과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의 이름, 사건의 연대적 서술, 백부장의 이름과 소속 부대 이름, 로마로 가는 배 이름들, 경유한 지명, 유라굴로 광풍, 배에 탄 인원수 276명, 멜리데 섬, 보블리오 등 여러 인명들과 지명들.
2) 주님의 부활에 대해, 마태복음은 4가지, 마가복음은 5가지, 누가복음은 7가지, 요한복음은 6가지, 고린도전서 15장은 5가지의 증거들을 들었다.
3)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갈 수 있는 거리를 약 1.2km로 보았다고 한다.
4) Byz D syr it copmeg Cyprian 등이 그러함.
5) Byz (D itd) syrp (copmeg) 등에 있음.
6) S. Wesley Ariaraja, The Bible and People of Other Faiths (WCC, 1985), pp. 9-11, 56.
7) 기독교 사상, 제27권 제5호 (1983. 5), 155쪽.
8) Byz D ite vgmss syrp copsa Irenaeuslat 등이 그러함.
9) Byz p45 א* (A B) D 등에 있음.
10) Byz lat syr 등이 그러함.
11) 사도행전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라는 말씀에서 ‘택하다’는 원어(케이로토네오 ceirotonevw)는 본래 ‘손을 내밀어 뽑다’는 뜻이다. 이 말은 거수 투표를 암시하는 것 같다.
12) 야곱이 애굽에 내려갔던 때가 130세이었으므로 대략 주전 1876년경이었다. 그때 요셉은 총리가 된 지 9년이 지났다(창 41:47; 45:6; 47:9).
13) 모세의 출생은 주전 1527년경이다.
14) Byz C 등에 있음.
15) M(Byz의 다수)이 그러함.
16) Byz א A C vg copmeg bo Cyprian 등에 있음.
17) 유다 나라 멸망의 시대, 즉 므낫세나 예레미야 시대에 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비롯하여 일월성신을 숭배하였다(렘 44:17; 왕하 21:3).
18) 레판은 렘판, 라이판 등 사본들의 본문이 다양함.
19) 토성은 태양계의 9개의 행성 중 목성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별이다. 그 크기는 지구의 거의 10배이다. 오늘날 천체 망원경으로 보면, 토성은 빛나는 7개의 고리를 두르고 있는 매우 아름다운 별이다.
20) Byz A C lat syr 등이 그러함.
21) ‘악독이 가득하며’라는 원어(콜레 피크리아스 colh; pikriva")는 ‘쓴 담즙’이라는 말로서 ‘심히 악하다’는 뜻이다(Thayer).
22) 옛날 영어성경(KJV)에는 “빌립이 가로되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들인 줄 믿노라”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헬라어 전통적 다수사본(Byz)과 대다수의 고대 사본들(p45 א A B C)과 역본들(vgww st syrp copsa bo)에는 없고, 어떤 초대 교부들(Irenaeus Tertullian Cyprian)의 인용문들과 어떤 고대 역본들(vgcl copmeg arm)에만 나타난다.
23) Byz C 등이 그러함.
24) Byz B C copbo-mss meg arm 등에 있음.
25) Byz vgcl syr 등이 그러함.
26) Byz copbo-mss 등이 그러함.
27) Byzpt D itd 등이 그러함.
28) Byz p50 D itd syrp copsa 등에 있음.
29) Byz C itd syrp copsa arm 등에 있음.
30) Byz D itd syrp copsa 등이 그러함.
31) Byz B 등이 그러하며 it vg syr cop 등도 그런 뜻을 가질 수 있음.
32) 전치사 에크 ejk나 아포 ajpov가 사용되었다. TR A D vg (syrp) copsa-mss meg bo 등이 그러함. KJV NASB NIV 등이 그 본문을 택함.
33) 전치사 에이스 eij"가 사용되었다. Byz א B copsa-ms meg 등이 그러함. Majority Text2 UBS4 Nestle27 등이 그 본문을 택함.
34) ‘마쳤다,’ ‘취하였다’는 원어는 단순과거(aorist) 분사이며, 과거분사는 보통 본동사보다 이전의 행위를 나타내지만 사도행전을 포함한 많은 구절들에서 동시적 행위도 나타내므로 이런 번역이 가능하다. A. T. Robertson, A Grammar of the Greek New Testament, p. 1113.
35) ‘생질’이라는 원어(아넵시오스)의 뜻은 ‘사촌’이다.
36) ‘총독’이라는 말(안뒤파토스)은 로마 제국의 원로원이 관할하는 도(道, province)들을 다스리는 총독(proconsul)을 가리킨다.
37) 전통사본에는 450년이라는 말이 20절의 ‘그 후에’라는 말 후에 나온다.450년은 사사 시대에 이방 나라들로 인해 당한 고통의 기간과 사사들을 통한 구원과 평안의 기간을 마지막 사사 엘리의 40년 사역 기간까지 합산한 것 같다. 열왕기상 6:1은 출애굽부터 솔로몬 통치 4년까지의 기간을 480년이라고 말하며, 그 기간은, 광야 생활 40년, 여호수아의 통치 기간 약 15년, 또 사울의 통치 기간 약 40년, 다윗의 통치 기간 40년, 솔로몬 통치 기간 4년 등을 포함할 것이다. 그러면 사사 시대는 실제로 약 340년 정도 된다.
38) Byz p45 C vg syrp copbo arm 등이 그러함.
39)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이 예수님을 정죄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말씀을 너희에게 먼저 보내셨다는 뜻이든지,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이 그를 정죄했고 십자가에 죽으시게 한 후에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으므로 이제 이 구원의 말씀을 너희에게 보내셨다는 뜻일 것이다.
40) Byz syrp copsa arm 등이 그러함.
41) 사도행전 13:43; 14:1, 3, 5, 26의 ‘두 사도’라는 원문은 단순히 ‘그들’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14:4, 14에는 바나바와 바울이 ‘그 사도들’이라고 불린다. 이처럼 바나바가 사도라고 불린 것은 특별한 경우이다.
42) Byz p45 א A C itd vg copsa-mss arm 등이 그러함.
43) 대략,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직선거리임.
44) 대략, 서울에서 원주까지나, 서울에서 천안까지의 직선거리임.
45) Byz (A D) (itd vg) syrp Irenaeus 등이 그러함.
46) Byz syrp copbo-mss armmss 등이 그러함.
47) Byz C syrp arm (Irenaeuslat) 등에 있음.
48) Byz p45 C vgcl syrp copbo arm 등이 그러함.
49) Byz copsa armms 등이 그러함.
50) Byz D syr copsa 등이 그러함.
51) Byz (א D itd vg syrp) 등이 그러함.
52) Byz C D syr copsa 등에 있음.
53) Byz D 등에 있음.
54) 전통본문에는 없음.
55) Byz arm 등. 그러나 본문은 א A B D vg itd syrp copsa bo 등에 있음.
56) Byz D itd syrp copsa arm 등이 그러함.
57) Byz D* vgmss syrp 등에 있음.
58) Byz D syr 등이 그러함.
59) Byz D itd syrp (copsa) 등에 있음.
60) 밀레도에서 에베소까지는 지도상으로 약 50킬로미터는 넘어보인다.
61) Byz א A C D vg syrp copsa-mss arm 등이 그러함.
62) 바울은 예루살렘 회의(주후 49년경) 이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못했던 것 같고 예루살렘을 사모했던 것 같다. 그는 제2차 전도여행(51년경)에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서 전도했고, 제3차 전도여행(53년경)에서는 소아시아 지역과 특히 에베소에서 전도했고 그 후 마게도냐와 아가야(헬라) 지방을 거쳐 밀레도를 경유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했던 것이다.
63) Byz D vgmss copsa 등이 그러함.
64) Byz א A D itd vg 등이 그러함.
65) Byz C D itd arm 등이 그러함.
66) Byz D copsa 등에 있음.
67) Byz D vgms copsa 등이 그러함.
68) Byz copsa 등에 있음.
69) Byz vgmss 등에 있음.
70) Byz (syrp) copsa 등에 있음.
71) Byz א vgcl syrp arm 등에 있음.
72) Byzpt TR it vgcl syrp arm 등에 있음.
73) Byz syrp 등에 있음.
74) Byz C vg syrp copbo arm 등에 있음.
75) Byz copsa 등이 그러함.
76) 야고보를 죽였던(행 12:1-2)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둘째 딸이었음.
77) Byz copsa bo 등이 그러함.
78) 이 아그립바 왕은 헤롯 아그립바 2세로 야고보를 죽였던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었다. 그는 주후 48년부터 70년까지 팔레스틴 북부와 북동부를 다스렸다. 버니게는 그의 고모 즉 아그립바 1세의 큰 딸이었다. 작은 딸은 앞에서 나온 벨릭스의 아내인 두루실라이었다.
79) Byz syrp copsa 등에 있음.
80) Byz syrp 등. ‘유라굴로’(Eujrakuvlwn)는 북동풍을 가리키나 ‘유로클뤼돈’(Eujrokluvdwn)은 강한 파도를 일으키는 남동풍을 가리킨다고 한다.
81) Byz vgmss 등이 그러함.
82) Byz vgmss copsa 등에 있음.
83) Byz vgcl armms 등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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