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오빠! 저게 다 뭐야?”
종이 박스 벽을 간신히 타고 올라 얼핏 본 세상은 너무나 신기했어요. 네 발로 구석구석을 킁킁거리는 저와 다르게 직립 보행하는 사람들. 바람이 전해주는 맛있는 냄새. 저는 이 좁은 박스를 탈출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팔려나가지 못해 떨이로 내놓은 채소들처럼, 파랗게 부풀었던 제 마음도 어느새 시들어 버렸어요.
“시끄럽다 가쓰나야. 체력 낭비하지 말고 잠이나 자 둬라. 우리에겐 간식도 없다.”
“어휴. 오빠나 실컷 자라!”
“엇 이 가쓰나 봐라. 니 곧 후회하게 될 거다.”
그때였어요. 처음 맡아보는 자극적인 냄새가 시장 통 골목 저 쪽에서 풍겨 왔어요.
“아이고 귀여워라.”
박스 곁으로 다가와 앉은 낯선 남자가 제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낯선 남자에게서 풍겨오는 냄새, 저는 이 냄새의 정체가 궁금해서 겁도 없이 혀를 날름 거렸어요.
“가쓰나야! 뭐 하냐? 그 인간 그만 핥아라. 그 인간도 잠깐 너 쓰다듬고 지 갈 길 간다. 그동안 겪어 보고도 모르냐?”
“흥! 오빠는 잠이나 계속 자셔!”
“헐 이것 봐라! 이 바보탱아! 그 대단한 개들도 주인 잘 못 만나 버려지기 일쑨데, 우리 같은 족보도 없는 개들을 데려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아주 이 잠탱이가 저주를 퍼붓고 있네!”
오빠가 그렇게 짖어도 저는 희망을 버릴 수 없었어요. 저도 한 번 태어났는데 좋은 아빠 만나 산책도 하고, 맛있는 간식도 원 없이 먹고 싶었어요.
“헉! 너 방금 뭐라고 했니? 뭐 잠탱이!”
“킁, 킁, 이 냄새 무지 당기네.:
낯선 남자에게서 풍겨오는 냄새는 방금 전 저를 쓰다듬고 간 여자에게서 나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어요. 순간 저는 이 낯선 남자가 아빠였으면 했어요.
“아줌마 이 아기 얼마예요?”
“응, 오만 원만 줘.”
저를 쓰다듬던 아빠의 손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더니 한참이나 나오지 않았어요.
“아줌마. 삼만 원에 이 아기 데리고 가면 안 될까요?”
“그건 안 되지. 나도 그동안 먹인 사료가 있는데.”
“아주머니 그러지 말고 우선 데리고 갈게요.”
“총각 그냥 그 오만 원 다 주고 두 마리 다 데리고 가.”
“아주머니 두 마리는 좀, 제 앞가림도 힘든 걸요. 아주머니 그러지 말고 삼만 원에 이 암컷 한 마리만 데리고 갈게요.”
“나 참 총각도.”
“요즘 일이 없어서요.”
“뭔 일 하는데?”
“아 네, 사정이 생겨 용역 당분간 다니고 있어요.”
“알았어. 그럼 요놈도 데려가. 그놈 혼자면 외롭잖아. 둘이 한배야. 이다음에 이만 원 주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고.”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저를 쓰다듬는 아빠는 몸을 가누기 힘든지 약간 휘청거리는 것 같았어요. 이제까지 맡아보지 못한 자극적인 냄새 때문에 아빠가 내민 손을 오랫동안 핥은 것뿐인데, 글쎄 아빠는 갑자기 저를 들어 보듬고 막 우는 거예요. 아빠의 두 손에 들리어 가슴에 안기자 금방까지 차가운 가을바람에 방치되었던 제 몸이 따뜻해졌어요. 이내 아빠의 볼 위에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저는 아빠의 볼을 핥았지요. 짭짤한 맛이 났어요. 저는 그 눈물의 맛도 의미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아빠가 저를 세게 끌어당기자 갈비뼈가 부서지는 것 같았어요. 순간 오빠의 후회하게 될 거란 말이 떠올랐어요. 그 흔한 개들이 씹어 대던 개 껌 한 번 못 씹어 보고 끝나는 가 싶어 두려웠어요. 가슴을 누르는 압박 때문에 갈비뼈는 아파 죽겠는데 눈치도 없이 갑자기 이빨이 가려운 건 무엇 때문일까요?
“아이코 미안, 미안, 아빠가 너무 세게 보듬었구나.”
다행히 아빠는 제가 낑낑거리니까 꽉 조이던 두 손의 힘을 풀었어요. 아빠에게서 나던 냄새가 아까보다 더 지독해졌어요. 도대체 이 냄새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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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보듬은 채 숨을 가쁘게 쉬며 언덕길을 오르는 아빠에게선 저를 자극하던 냄새가 더 진하게 풍겨왔어요. 아빠는 커다란 건물 앞에 섰어요.“오빠. 여기가 우리 집인가 봐. 앗싸!”“킁 뭐가 그리 신났냐?”“오빠는 신나지 않아? 우리 이제 그 좁은 박스에서 답답하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 큰 아빠 집에서 뛰어놀아도 되잖아.”얼른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 아빠의 가슴에서 나던 소리가 전 보다 빨라졌어요. 현관 안을 한참 바라보던 아빠가 마침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어요. 몇 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복도에선 아빠가 한숨을 쉬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현관에서는 느리게 걷더니 계단을 오를 땐 아빠가 막 뛰었어요. 아빠의 몸 따라 출렁이던 저는 계단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어요. 다행히 아빠의 드센 압박의 고통을 참은 덕택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아빠는 다시 느린 걸음으로 걸어 나가더니 복도 끝에 서서 문을 열었어요.
“너 아까 뭐라고 했냐? 뭐 뛰어 논다고?”
“미안 오빠. 칫 그럴 수도 있지.”
우리가 있던 박스와 별 다를 것 없는 좁은 방에 들어선 아빠가 스위치를 올리자 빛 보다 먼저 구수한 냄새가 제 코를 자극했어요. 워낙 좁은 방이라 저는 그 구수한 냄새의 근원지를 금방 찾았어요.
“킁, 킁,”
“내놔. 아빠 양말 더럽단 말이야!”
제가 양말을 무니깐 아빠가 큰 소리를 내며 빼앗았어요. 저는 냄새가 좋았는데 아빠는 왜 냄새를 못 맡게 하는 걸까요?
"이리 와. 내 새끼들. 이제부터 너는 아롱이고 너는 다롱이다."
"어이쿠! 우리 아롱이 다롱이. 아빠에게도 드디어 가족이 생겼구나.
실타래 끊긴 연처럼 막막한 세월을 떠 돌았는데, 이제 너희들이 아빠가 발 디딜 수 있는 땅이고 집이구나. 고맙다. 아롱아. 다롱아."
아빠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또 울었어요. 저는 또다시 아빠의 볼을 핥았지요. 짭짤한 맛이 싫진 않았어요. 이처럼 아빠가 매일 울었으면 좋겠어요. 아빠의 눈물을 먹고 쑥쑥 자랄 수 있을 테니깐요.
"아롱아. 아빠 그만 핥고 이리 올라 와라. 푹신한 것이 너무 좋다."
에휴 저 잠탱이 다롱 오빠 어쩌면 좋아요. 아빠의 침대 중앙에 벌러덩 누웠네요.
"아롱아 이리 와."
침대에 걸터앉은 아빠가 저를 들어 올렸어요. 종이 박스와는 차원이 다른 이불의 촉감이 너무 좋았어요. 저는 배를 이불에 비볐어요. 푹신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제 배를 간지럽혔어요. 저는 다시 이불에 등을 대고 벌러덩 누웠어요.
"녀석 봐라. 그렇게 좋아?"
아빠가 제 배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아빠도 너희들처럼 어린 날이 있었겠지. 나도 엄마의 볼을 핥았겠지. 가슴을 빨았겠지. 그런데 왜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아빠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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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났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하여튼 아빠랑 산책도 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잠도 자고 놀았어요. 또다시 저녁이 되자 우리는 아빠 양쪽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누웠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어요. 짙은 어둠이 우리를 휘감았지만 결코 두렵거나 아프지 않았어요. 아빠의 따뜻한 체온, 아빠에게서 나는 자극적인 냄새, 잠탱이 오빠가 제 곁에 있어 저는 이 세상에서 제일 운이 좋은 개인 것 같아요.
"아롱아, 아롱아."
"왜 불러!"
"큰일 났다. 배에서 신호가 와."
"참나, 아까 그렇게 처먹더니만."
"아롱이 니 자꾸 오빠한테 그럴 거야?"
"아이고 참나!"
"야 아롱아 나 지금 진짜 심각해. 어디다 응아 하지?"
"저 귀퉁이에서 해."
오빠는 신호가 오는 배 때문에 침대 귀퉁이를 빙빙 돌았어요.
"괜찮을까?"
"물론 괜찮지 않지. 내일 오빠는 쫓겨 날 거다."
"아롱이 너 진짜 그럴래?"
"내가 뭐? 오빠는 어차피 딸려 왔다고. 아빠가 나를 먼저 보듬었다고. 그런데 그 할머니가 오빠를 딸려 보낸 거라고."
"그래 너 잘났다. 나는 사람 믿지 않아. 오빠가 그동안 겪어 본 결과, 사람은 결국 우리를 버리게 돼. 아직도 몰라? 우리 아빠 엄마는 어디 갔지? 며칠 지나 다 사라졌잖아. 그리고 우리는 시장 통 박스 안에서 뒹굴어야 했고. 그 할머니도 결국 우릴 버린 거잖아. 이 남자가 아빠라고? 천만에. 나는 이 인간에게 절대 꼬리 치거나 핥지 않을 거야."
"오빠야 갑자기 왜 그래?"
"쫓겨나기 전에 이 인간이 주는 간식이나 마음껏 먹으라고. 그리고 이 침대의 촉감이나 마음껏 즐기라고."
"오빠야 우리 아빠는 다를 거야."
"너나 그렇게 생각해라 나는 모르겠다. 에라 여기다 응아 해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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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이게 뭐야. 누가 이랬어?”
새벽 일찍 일어난 아빠가 오빠의 응아가 묻은 발을 보며 큰 소리를 내었어요.
“다롱아 네가 이랬어?”
다롱 오빠를 끌어다 앞에 앉히고 혼내는 아빠 때문에 신난 저는 꼬리가 부러지라고 흔들었어요. 다롱 오빠는 시치미를 떼며 꼬리를 흔들더니 아빠의 입술을 핥았어요.
“어디 보자, 그럼 아롱이 네가 이랬어?”
어라 이건 아닌데, 저는 납작 엎드린 자세로 아빠의 가슴을 향해 다가갔어요.
“오라, 다롱이 네가 이랬구나.”
아빠가 다시 오빠를 혼 내키자 세상에나, 다롱 오빠도 방금 전 저처럼 납작 엎드린 자세로 아빠의 가슴을 파고들었어요.
“허허 아롱이가 이랬구나!”
톤이 갑자기 높아진 아빠의 목소리였어요. 세상에 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전 억울해서 제 꼬리를 물고 빙빙 돌았어요. 엊그제 병원에서 예방 주사를 맞았건만 모기 구경도 못해봤는데 심장사상충이 도지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거기 핥는 거 보니깐 우리 아롱이 범인 맞구나.”
저는 너무나 분해서 제 거시기를 핥았어요. 참으로 이상했어요. 놀라거나 아빠가 큰 목소리를 내면 제 거시기가 찔끔했어요. 그리고 아빠가 맛있는 걸 사 가지고 오거나 산책 가자고 하면 어김없이 거시기가 찔끔했어요.
“요 녀석들 어쩌지. 당연한 거겠지. 나도 어릴 적 똥오줌 못 가렸을 것을 뭐. 그런 나의 기저귀를 엄마가 갈아 줬을 테지.”
저를 쓰다듬은 아빠는 커다란 수건 한 장을 바닥에 깔았어요.
“다음부터는 여기에다 응아 해야 한다.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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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개 키운 지 한 달이 넘었다면서요?”
“죄송합니다.”
“고시원에서 개를 두 마리나 키우다니 허허 나 참 사십 년 넘게 이런 경우는 처음이구먼.”
어느 날 머리가 하얀 남자가 올라오더니 제게 으르렁 거리던 오빠처럼 아빠에게 으르렁 거렸어요.
“사장님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고 한 달만 시간을 달라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허허 지금 빼도 모자랄 판에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저는 오빠에게 덩달아 으르렁 거렸는데, 아빠는 왜 으르렁 거리지 않는 걸까요?
“개를 치우던가 방을 빼던가 양자택일 하세요. 민원이 장난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사정이 있어 그러니 한 달만 시간을 주세요.”
“허허 나 참 미치겠구먼! 이건 경우가 아니잖아요!”
아빠의 목소리 톤은 점점 낮아졌어요. 평상시 우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던 그 어투와도 너무나 달랐어요.
“이제 겨우 7개월 된 핏덩이예요. 아직 짖지는 않으니까 없는 듯 지내다 한 달 후에 나갈게요.”
아빠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비비자 머리가 하얀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어요.
“사장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가엾은 생명들이에요.”
“좋소. 이번 달 방세를 이미 받은 죄로 내 한 번은 눈감아 드리리라. 대신 한 달 후엔 꼭 선택하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으르렁 거리던 남자가 사라지자 아빠는 우릴 보듬고 울기 시작했어요.
“아빠는 절대로 너희들을 버리지 않아. 너희는 내 자식이거든. 자식 버리는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아빠의 가슴이 뜨거워졌어요.그날 이후 아빠는 우리와 놀아주는 시간이 짧았고 새벽 일찍 자주 외출했다가 돌아오곤 했어요. 밖으로 나갈 때마다 입던 아빠의 외투는 점점 두꺼워졌어요. 집으로 돌아와 우리를 보듬은 아빠의 가슴은 이상하게 차가웠어요. 참 이상한 일이죠. 저는 아빠의 가슴에 체온을 더해 주었어요. 그러자 아빠의 가슴은 다시 따뜻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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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오빠 안 돼!”
“몰라 나는 이 푹신한 침대가 좋다고.”
수건에다 응아를 해야 하건만 또 아빠의 침대에 응아를 하고만 오빠 때문에 저는 너무나 두려워졌어요. 이번에도 누명을 쓰게 된다면 다롱 오빠를 콱 물어버리고 말 것이에요. 아빠가 없는 시간 동안 우리는 침대 귀퉁이도 뜯고 전선도 뜯고 플라스틱 옷걸이도 씹고, 화장실 수도 배관도 뜯고 놀았어요. 저녁이 되자 아빠의 것인 듯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어요.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따라 아빠의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어요.“오빠는 이제 큰일 났다. 이번에는 정말로 쫓겨날지도 모른다고!”“정말 그럴까?” 저는 긴장되어 죽겠는데 오빠는 너무나 덤덤했어요.“오빠 좀 비굴해 보여도 어쩔 수 없잖아. 전 보다 더 크게 꼬리 쳐야 돼! 막 아빠의 가슴에 뛰어들라고 알았지.”“이번에도 통할까?”“나는 벌러덩 누워서 배 보일께.”“알았다. 아롱아 너만 믿는다.”현관문이 열리자 저는 울컥했어요. 그동안 오빠와 모의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마냥 아빠가 반가웠어요. 저는 아빠의 가슴을 향해 폴짝 뛰었어요.“아이코! 녀석들 잘 놀았어?”지난날 아빠가 우리를 보듬고 왔던 것처럼 아빠는 차가운 바람도 데리고 온 것일까요. 아빠의 목소리 속에서 바람 소리가 나는 것 같았어요. 간지러운 이빨처럼 저도 모르게 가슴 한쪽에 이상한 느낌이 든 것은 아빠의 손에서 간식 냄새가 나지 않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어요.“어디 보자. 벌써 사료 다 먹었네. 이런 먹탱이들.”밥그릇을 한 동안 보고 서 있던 아빠는 다시 나가버렸어요.“다롱 오빠. 아빠 왜 나가 버리지? 우리가 너무 많이 먹었나?”“칫 거 봐라 저 인간도 똑같아!”“오빠 우리 이제 진짜 버려지는 거야?”“아롱아 내가 그랬잖아. 인간들 믿지 말라고.”“이 먹탱이 잠탱아!”“아롱아 열 내지 마라. 어쩌면 기회일지도 몰라. 솔직히 이 좁은 방에서 살 것을 생각하면 끔찍했는데.”“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이 참에 우리가 버려지면 더 큰 집이 있는 주인을 만나게 될지 누가 알아?”다롱 오빠를 물고 싶었지만 제겐 힘이 없었어요. 수도 배관 뜯다가 가렵던 이빨도 몇 개 뽑혀 나갔고요. 아빠를 기다린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기다리다 지쳐 푹신한 침대의 촉감에 기대 잠이 드려는 그때였어요.“우리 아기들 배고프지?”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아빠의 손엔 봉지가 들려 있었어요. 맛있는 간식 냄새가 났어요. 저 보다 먼저 달려가 킁킁거리는 다롱 오빠가 그렇게 미울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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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화장실 배관 새로 사다가 끼워 넣었고요. 여기 침대 시트 비요.”
“그래요. 나도 마음이 짠하고 미안하네요. 이해하구려.”
우리를 한 가슴에 보듬은 아빠는 시장 통을 한참이나 걸었어요.
“아롱아 다롱아. 아빠와 너희들은 운명인 거야. 아빠는 절대로 너희들을 버리지 않을 거야.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세상 어느 하늘 아래에서 엄마도 늙어 가고 있을 테지.”
아빠의 가슴은 따뜻했지만 우리를 스쳐가는 차가운 바람도 저처럼 간지러운 이빨이 돋아나 있었는지 그 이빨로 우리를 아프게 베어 물었어요. 아빠는 바람이 우리를 베어 물고 지날 때마다 보듬어 주었어요. 갈비뼈가 으스러질 듯 아팠지만 견딜만했어요.
“아주머니 죄송한데 며칠만 이 아기들하고 머물면 안 될까요?”
“아니 여기가 어디라고 개를 데리고 머문다는 거예요?”
“아주머니 사정이 생겨 그러니 좀 봐주세요. 여기 선불 드릴 게요.”
“미쳤고만! 내가 아무리 싸구려 여인숙이나 하고 있다지만 몇 푼 더 벌자고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얼른 나가슈!”
우리에게 으르렁 거리던 여자를 물고 싶었지만 저는 참았어요. 아빠는 우릴 보듬고 다시 시장 통을 배회하기 시작했어요.
“아롱아 다롱아 이제 우리 살았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일까?”
아빠가 우릴 보듬고 들어선 건물 안에서는 아빠의 냄새하고 전혀 다른 냄새가 진동했어요.
“아주머니 저 위에 옥탑 방에서 저희들 살면 안 될까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증금 100에 월 25만 원, 문구 안 보셨나요?”
“아 그게 아니라.”
“아 강아지들 때문에 그러는구나. 괜찮아요. 여긴 한 적한 곳이라 강아지 키워도 돼요.”
“그게 아니라, 저, 아주머니 죄송한데 제가 지금 가진 것이 월세 정도뿐이라. 보증금은 한 달 안에 채워 드리면 안 될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보증금은 말 그대로 보증금인 걸요.”
“아주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우릴 보듬은 아빠는 빙빙 돌았어요. 저는 이곳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었어요. 머리에 이상한 것을 두른 사람들이 털을 깎고, 털에 꼬불꼬불 장난을 치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어요. 빨리 밖으로 나가 제 후각을 환기시키고 싶었어요. 아빠의 양말과 아빠의 발가락 냄새가 간절해졌어요. 가파른 계단을 오른 아빠가 우리를 내려놓자 신이 난 우리는 방을 막 뛰어다녔어요.
“녀석들 그렇게 좋아?”
전에 살던 좁은 방과는 비교도 안 되게 넓은 방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아까 그렇게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도 아빠의 가슴에서 뛰는 소리는 일정했어요. 전에 살던 집 처음 계단을 오르던 날 그날은 왜 그렇게 아빠의 가슴에서 나던 소리가 크고 빨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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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 야옹”
차갑던 바람이 사라지고 우리를 간질이는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었어요. 오빠랑 옥탑 방 계단에 앉아 사람 구경하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 어슬렁거리던 야옹이가 또 찾아왔어요.
“너 왜 자꾸 우리 집 주이를 어슬렁거리는 거냐?
”제가 따졌지만 야옹이는 도도한 자태로 자기 털만 핥았어요."
“와 야옹이 너 거기 어떻게 올라갔냐?”다롱 오빠가 지붕 위에 올라가 앉은 야옹이에게 물었어요.
“우리는 이 계단도 아빠의 도움 없인 못 올라오는데.”
“야옹이 너 얼른 안 꺼져!"
제가 다시 크게 짖었지만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야옹, 에휴. 왜 너희들이 거기 있는 거니?”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긴 우리 집인데.”
“야옹, 야옹,”
“야 시끄럽게 하지 말고 얼른 너희 집으로 가셔. 안 가면 우리 아빠한테 혼난다. 좀 있으면 우리 아빠 올 거니깐. 그때까지 안 가면 각오하셔!”
“나도 지금 우리 아빠 기다리고 있는 거야. 야옹.”
“어이가 없네. 네 아빠는 네 집에서 기다려야지 왜 남의 집에서 네 아빠를 기다린다는 거냐?”
“너희들 사는 바로 거기가 우리 집이야!”
“뭐!”
“아니 우리 집이었다고!”
야옹이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 시장 통 골목 끝을 바라보았어요.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얼른 꺼져라! 여기엔 우리 아빠가 오지 너희 아빠가 올 리 없잖아.”
“아니야! 울 아빠 꼭 올 거야.”
야옹이를 콱 물어 버리고 싶었지만 녀석이 앉은 지붕 위에 오를 수 없는 저는 난간 너머로 짖기만 할 수 박에 없었어요.
“너희들 페스티벌이라고 아니?”
“그게 뭔데?”
호기심이 발동한 다롱 오빠가 대꾸를 했어요.
“고양이들 물론 너희 같은 강아지들도 하여튼 엄청나게 모여서 노는 건데, 거기서 여러 가지 경연도 하고 몸매 자랑도 하고 그래. 난 거기서 인기가 최고였다고. 아빠는 자주 목욕시켜 주고 털도 자주 깎아 주었어. 뭐 처음엔 좀 스트레스였지만 익숙해졌지. 페스티벌에 나가 상을 타면 행복해하는 아빠를 위해 나는 적극적으로 경연에 임했어.”
“오빠 제 지금 뭐래? 그런데 오빠 우리는 목욕이란 걸 해봤나?”
“한 번도 못해 봤잖아.”
“킁킁 그러고 보니 오빠 냄새 좀 독하다.”
“아롱이 너는 안 그렇고!”
“야옹, 야옹 아빠는 그때마다 내게 특별 간식도 사주었어.”
“제 자꾸 뭐래니?”
“응 아롱아 자기 아빠가 최고래.”
“콱 저게 어디서. 그래 그럼 네 아빠 어디 간 거니? 도대체 언제 오는데?”
“야옹야옹 올 거야. 우리 아빠 오면 너희들 당장 쫓아낼 거야. 거긴 우리 집이었으니깐.”
“얼래래 무슨 소리래. 오빠 나 저 야옹이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응. 우리 보고 목욕 좀 하래.”
“헐 어이가 없다. 까불지 말고 어서 꺼져라!”
“와 아빠다!”
아빠가 들고 있는 봉지에선 맛있는 간식 냄새가 났어요.
“봤지. 네 아빠가 아니라 우리 아빠가 이렇게 오셨다. 이제 꺼져라.”
“어머 야옹이네. 아롱아 왜 그렇게 짖어 사. 친하게 지내야지.”
“봤지. 좋은 말로 할 때 꺼지라고 했다 지금 우리 아빠가.”
돌아서는 녀석의 걸음은 너무나 느렸어요. 담벼락도 훌쩍 넘고 달리기도 우리보다 빠른 녀석이 갑자기 등에 엄청 무거운 것을 맨 것인지 어쩌면 저렇게 느릴 수 있을까요.
“얼른 꺼져!”
뒤 돌아보는 야옹이에게 저는 전 보다 더 앙칼지게 짖었어요.
“아이코 아롱아! 그러면 안 돼. 가엾은 녀석인 걸.”
아빠가 잘했다고 칭찬을 하자 저는 더더욱 신이 나서 녀석의 뒷모습을 향해 전 보다 더 크게 짖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