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나무Tree of Heaven , 虎目樹 , ニワウルシ庭漆
분류학명
가죽나무는 인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훌쩍 높이 자라 여름날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가죽나무의 한자 이름인 ‘저(樗)’는 쓸모없는 나무의 대표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참나무를 뜻하는 ‘역(櫟)’자를 붙여 ‘저력(樗櫟)’이라고 하면 재주도 없고 쓸모도 없는 인재라는 뜻으로 자기를 낮추어 말할 때 쓰는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가죽나무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 곁에 함께 살면서도 돌보지 않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은 씨와 뿌리로 왕성하게 뻗어 빈터가 생기면 어디에서건 자라기 시작한다.
과연 가죽나무는 쓸모없는 나무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자람이 빨라 재질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형편없는 나무의 대명사가 될 정도는 아니다. 목재는 황백의 밝은색을 띠며, 판자를 켜면 물관 배열이 아름답게 나타난다. 흠이라면 건조가 좀 어렵다는 정도인데, 목재가공 기술이 발달한 요즈음 세상에는 없어서 못 쓴다. 나무의 모양새는 가지가 옆으로 잘 뻗어 제법 품위를 갖추고 있으며, 공해에도 강하여 요즈음에는 가로수로서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옛사람들이 가죽나무가 이렇게 쓸모없는 나무라고 한 데는 《장자》 〈외편〉의 ‘산목(열어구)’에 혜자와 장자의 대화 내용 때문으로 보인다.
내가 사는 곳에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네. 사람들은 그 나무를 보고 가죽나무라 하더군. 나무 둥치가 옹이투성이라 먹줄조차 댈 수가 없고, 가지는 꾸불꾸불해서 자로 잴 수조차 없는 형편이네. 그 때문에 길가에 서 있어도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를 않네.
여기서 말하는 저(樗)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죽나무는 아닌 듯하다. 옹이가 많지도 않고 가지가 꾸불꾸불하지도 않다. 가죽나무라는 특정 나무가 아니라 아마도 나쁜 나무의 포괄적인 뜻으로 ‘가죽나무 저(樗)’를 쓰지 않았나 싶다.
가죽나무는 원래 우리나라 토종나무가 아니다. 들어온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기록이나 자람새로 보아 적어도 수백 년 전에 중국에서 들어와 정착한 것 같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으로 어릴 때는 갈라지지 않으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거의 흑갈색으로 진해지고 얕게 세로로 갈라진다. 가죽나무의 다른 이름은 ‘호목수(虎目樹)’인데, 나무에 붙어 있던 잎자루 자국이 마치 ‘호랑이 눈 같다’는 뜻이다. 백제 때 있었던 놀이의 하나로 ‘저포(樗蒲)’란 것이 있다. 모양이 주사위와 비슷하며, 뒷면이 가죽나무 잎 자국과 비슷하여 이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가죽나무의 잎은 한 대궁에 여러 개가 달리는 겹잎이며, 아주 큰 톱니가 2~3개 있다. 이 톱니의 끝을 만져보면 딱딱한 알맹이가 만져지는데, 간단히 사마귀라고 생각하면 알기 쉽다. 가죽나무에서 나는 약간 고약한 냄새의 근원지가 바로 이 사마귀다. 나는 가죽나무의 사마귀를 만지는 촉감이 너무 좋아 보기만 하면 습관적으로 잎사귀를 떼어내 살살 비벼본다. 죽어서 가죽나무 목신(木神)에게 혼이 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나쁜 손버릇을 고쳐야 할 것 같다.
가죽나무와 참죽나무는 과(科)가 다를 만큼 한참 거리가 있는 나무이나 생김새가 아주 비슷하다. 잎에 사마귀가 달려 있고, 나무껍질이 갈라지지 않은 것이 가죽나무, 잎 가장자리의 톱니가 일정한 간격으로 얕게 나 있으며, 이순신 장군의 갑옷 같은 껍질을 가진 것이 참죽나무다.
경상도와 일부 전라도 지방에서는 참죽나무를 가죽나무라고 부르고, 표준말의 가죽나무는 ‘개가죽나무’라고 하여 이름에 혼란이 있다. 한자로 저(樗)는 꼭 가죽나무만 일컫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참죽나무라 하여 역시 혼란스럽다. 《해동농서》에는 저(樗)라 쓰고 ‘참죽나무’라는 훈을 달았으며, ‘두 종류가 있다’라고 하였다. 나무가 실하고 잎이 향기로운 것을 ‘진저(眞樗, 참죽나무)’라고 하며, 나무가 엉성하고 잎에서 냄새가 나는 것을 ‘가저(假樗, 가죽나무)’라고 한다는 것이다. 또 가죽나무란 이름은 가짜 중나무란 뜻의 ‘가중나무’에서, 참죽나무는 진짜 중나무란 뜻의 ‘참중나무’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채식을 하는 스님들이 나물로 먹던 참죽나무와 비교하여 이름만 비슷하고 먹을 수 없다는 뜻으로 가죽나무라고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