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안락사가 필요할 때
2024101588 김시온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얘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얘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떻게 죽을지라니, 사실 조금은 특이한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살아갈수록 죽어가고 있다. 2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몸은 점점 노화가 진행된다. 노인세대에 이르면서 다양한 병에 걸리게 된다. 사회적 지위는 점점 추락하고 능력도 쇠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실은 죽어가는 과정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만큼 어떻게 죽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 없이 태어난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과의 다른점은 자신의 삶을 의지를 가지고 계속 선택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선택에는 존엄하게 죽는다는 선택도 필요하다. 물론 모든 죽음을 허용하자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죽음의 선택이란 적극적 안락사다. 적극적 안락사란 의료진이 환자에게 직접 약물을 투여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이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적극적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엄격한 조건 하에서 허용을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극소수에 한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제한적인 범위에서 소극적 안락사는 가능하지만 적극적 안락사는 금지되고 있다. 소극적 안락사는 의료진이 환자에게 의학적 조취를 취하지 않거나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이다.
나는 왜 적극적 안락사 도입에 찬성하는가. 서두에서 인간의 자율성의 입장에서 조금 얘기를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노인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OECD 평균의 2배 이상이다. 이미 안락사 없이도 노인들은 경제적 어려움, 질병, 소외감 등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락사를 불허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오히려 노인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더 인도적인 적극적 안락사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경제적 이유가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저출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고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간병인은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간병인의 임금은 최저시급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같이 올라갔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평균적인 간병인 일당이 13만원 정도이다. 만약 부모님 중 한 분이 아프셔서 간병인을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면 간병비로만 1달에 370만원 정도는 들어가게 된다. 이정도 금액이면 중위소득의 월급보다 크다. 입원을 해야 한다면, 수술을 해야 하거나 약물치료가 계속 필요하다면 그 비용은 훨씬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현재는 조금 나은 상황이다. 현재 노인층에 해당하는 50년생 분들은 혹은 그 이전 세대의 분들은 자녀가 여럿인 경우가 많다. 당시에는 정부가 출산을 장려하는 시기였고 아이를 많이 낳는 분위기였다. 그렇기에 본인을 부양해 줄 자녀가 여럿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세대는 주로 1~2명의 아이, 현재는 아이를 1명을 낳거나 낳지 않는 세대가 되었다. 만약 현재 2030세대가 노인층이 된다면 부모를 혼자서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꽤나 암울하다.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중이다. 세계최초로 출산율 0.7을 기록했고 2036년에는 노인인구가 1574만 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된다. 간병을 받아야 할 사람은 늘어나고 부담을 해야 할 사람은 줄어드는게 현실이다. 수요는 늘고 공급이 줄면 가격은 가파르게 증가한다. 지금보다 증가하는 간병비를 어떻게 부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할 국민연금 보험료까지 생각한다면 정말 암울한 상황이다. 심지어 청년층은 간병일을 기피한다. 청년층의 기피로 노인들이 노인을 돌보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간병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
“긴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서 간병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그때부터 부유한 집이 아니라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시작된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 간병이 무기한이라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간병을 부담해야 하는 자식의 입장에서도 힘들고 부모는 본인을 간병하는 자식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 힘들어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간병인가?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필요한 것이 적극적 안락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적극적 안락사의 기준은 특정 연령이다. 현재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일부 국가는 회복 불가능한 고통 상태와 같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안락사의 기준이 특정 연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거동이 불편하고 대소변을 못가리는 등 인간존엄성을 잃어가지만 심각한 지병이 없는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존엄성을 잃게 되는 순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생명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 파시즘으로 변질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얘기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상황을 윤리에 기대어 더 시간을 끌기보다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 최초로 출산율 0.7을 기록한 대한민국에서 전 세계 최초의 정책이 나와야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지 않을까.
첫댓글 저도 만약 제가 나이가 들고 더 이상 살고 싶다고 느껴지지 않다면 적극적 안락사를 통해 죽음에 이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적극적 안락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깨닫고 있어요. 그런데 안락사를 특정 연령으로 허용한다면, 정말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지만 그걸 이용해서 특정 인물의 재산 등을 노리고 안락사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연령이 되지 않았지만 지병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힙니다.
저는 안락사를 찬성하는 입장이며 시온님의 글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시온님이 하시는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는데, 새로운 접근을 하셔서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저출산이 계속되며 청년층의 노인 부양 부담이 늘거라는 것에 적극 공감을 하고, 정부가 나서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거나, 간병 문제를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금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락사의 문제가 저출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넓은 시각에 공감을 하고, 신속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점에 동감합니다.
저는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고 생각해서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소극적 안락사나 존엄사에 대해서만 부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시온 님의 글은 저와 달리 적극적 안락사의 찬성에 대한 글이어서,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다른 관점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적극적 안락사 도입 찬성하실 때, 경제적 이유를 근거로 들어주셨젆아요. 그런데 경제적 이유로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게 된다면, 안락사를 원하지 않더라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안락사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합니다.
저는 평소에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선 좀 부정적이게 생각했었는데 시온님의 글을 읽고 제 생각을 넓게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를 쉽게 남용하게 될까봐 조금 우려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을 스스로 마감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줄 수 있는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선 동의합니다. 그런데 첫번째 근거에서 노인 자살률을 해결하기 위해 자살을 부추길 수도 있는 안락사를 허용한다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저는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지원금을 마련해주거나 독거노인을 위한 센터를 만들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안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두번째 근거에서 아픈 노인을 간병할 사람이 없고 경제적인 이유로 적극적 안락사를 도입해야 한다면, 오히려 이것은 노인의 주체적인 죽음 선택이 아닌 주변 사람이나 가족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인이 심각한 질병을 겪고 있지 않다는 전제하에서요) 이에 대한 시온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저도 적극적 안락사를 도입하는 것에는 찬성합니다. 하지만 노인 자살률이 높다면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다른 방안을 모색하여야 하는게 아닐까요? 자살하는 것보다 안락사가 나으니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해주자는 것은 죽는다는 것은 전제로 두고 말하는 것인데 죽음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시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간병이 어려우니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것은 조금은 비인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것은 맞지만 생명을 효율성, 생산성 등을 중심으로 하여 다루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글의 내용 중 한 군데도 동의할 수가 없네요. 먼저 간병비 부담이 적극적 안락사 도입의 근거가 된다는 점은 생명의 가치를 과도하게 화폐가치로 환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됩니다. 간병비 부담의 문제 의식은 혈연체계와 가족관계에 노인부양의 부담을 귀속한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야죠. 국가의 사회보장 서비스를 더 잘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해결되는 문제 같은데, 이 글은 사람을 죽이는 방식으로 비용 절감을 꾀하자는 식으로밖에 안 읽히네요. 높은 노인 자살율도 마찬가지의 문제입니다. 노인이 잘 살기 어려운 사회라면 노인도 잘 살 수 있도록 사회에 대한 정비가 이루어지는 게 맞지, 사회에서 아예 내쫓는 일종의 “권고사직”과 같은 형태의 적극적 안락사 도입은 아주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이미 현대 사회는 화폐가치에 인륜적 가치들이 상당부분 종속되어 있고, 그러한 이데올로기에 개인은 자기자신의 행위를 ‘자율적으로’ 통제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사회가 생명의 가치 또한 화폐가치의 기준으로 삶과 죽음의 선택지를 열어놓는다면, 개인은 생명에 대한 경제적 선택으로 내몰리게 되고, 끝내 죽음을 택하게 될텐데,이게 정말 개인 스스로가 원해서, 자발적으로 택한 죽음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자신의 인생의 마감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만을 가지고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그 빈도가 많아진다면 장점보다는 악용 사례가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악용을 막는 정책이나 법 마련에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간병 문제와 안락사를 연결하여서 글을 쓰신 점이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적극적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큰 이유가 의료계의 반대와, 남용과 악용 가능성 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글을 읽고 적극적 안락사를 도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간병문제로 인한 경제적 부담, 인간존엄성의 문제 때문에 적극적 안락사를 시행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도입하게 된다면,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행정적 대책과 함께 도입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적극적 안락사를 도입하였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인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죽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사람이 죽게 되는 것에 대한 해결방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고, 본인의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는데 만약 적극적 안락사를 시행한다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을 것입니다. 시온님은 혹시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람이 선택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것처럼, 죽음 또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심리적,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하는 노인의 자살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적인 안락사가 방법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인 자살 문제의 가장 큰 요인은 경제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경제적인 부분이 안락사를 할 수 있을 만큼 있다면 굳이 삶을 일찍 마감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간병비를 이유로 안락사를 하는 게 오히려 간병 받는 사람의 존엄권과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적극적 안락사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것처럼 어떻게 죽어갈지도 고민할 수 있어야한다는 말이 인상깊었습니다. 하지만 노인복지 예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노력해보지 않고 안락사를 허용하는 방법으로 나아간다면 정말 살고 싶은 사람이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죽음을 선택할까봐 걱정이 됩니다.
경제적으로 여건이 안 되면 부담하는 청년층도, 부양받는 노인층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정말 해결되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외면하거나 어떻게든 버티며 겨우 살아가는 게 현실이죠. 그렇지만 이것의 대책으로 적극적 안락사가 나온다면,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악용될 위험도 있고요. 또 '존엄하게 죽기' 위해 인간이 존엄성을 잃게된 후 안락사를 시행해야한다고 하셨는데, 인간존엄을 잃게되는 순간의 기준을 무엇으로 정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출산율이 줄어서 노인부양이 힘들어지고 이에 따라 노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이나 외로움 등으로 자살한다는 내용을 글에 써주셨는데요. 저는 자살율이 늘어나 차라리 적극적 안락사를 도입해서 이를 처리해야된다기보단, 출산율을 더 높일 수 있는 방향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약물치료 등으로 돈이 많이 나온다고 하셨는데, 이는 돈이 많은 사람인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래 생각해봅니다.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입장을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연관지어 설명하여 더욱 와닿았고 전반적으로 동의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온씨의 글은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가진 한국사회에서 청년층의 부양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부양이 필요한 노인의 수 또한 줄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이 방향성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멀고 오히려 그 문제에 발맞춰 사회가 희생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시온씨는 적극적 안락사를 도입하기 이전에 노인의 자살 방지 혹은 저출산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 또 적극적 안락사가 노인 뿐만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젊은 연령대에 적용되는 것은 반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에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의지를 가지고 계속 선택해 나갈 수 있다고 쓰신 부분에서 어떤 의도로 쓰셨는지는 알겠지만 동물에게는 앞으로의 삶을 선택할 의지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언급해봅니다.
저는 적극적 안락사는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이유는 시온님과 다릅니다. 높은 노인 자살률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인 부양 등 경제적 이유를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안락사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적극적 안락사는 의료적 이유로만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외 다른 이유를 위해서 허용된다면 그것은 적극적 안락사 허용이 아닌 살인 허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적극적 안락사에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첫번째 근거로 노인 자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과연 이게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노인 자살의 증가가 왜 문제인지, 이를 적극적 안락사로 해결이 가능한지가 궁금합니다.
사회적 문제를 근거로 적극적 안락사를 주장하셨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적극적 안락사를 배제한 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훨씬 복잡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고 하면 할 수 있는 정책의 폭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넓어진 폭 안에서 굳이 생명 윤리를 포기하는 적극적 안락사를 택할 이유가 있을지 회의감이 듭니다.
주장이 다소 과격한 부분이 있으나, 이의 필요성을 부인하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는 유교 관념이 뿌리 깊이 박혀있어,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매우 힘들어 보입니다. 이에, 종교개론 중심으로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입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