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23-26 제 1장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계시며 우리는 그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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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영적 지도자도 없고 영성 체계도 세워지지 않았던 까마득한 그 옛날, 우리 선조들에게 말씀하셨듯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 시대에는 하느님의 명령이 내려지는 순간 모든 영성이 생겨났습니다.
그 때의 영성은 그 명령을 대단히 숭고하고 세세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그 명령이 지닌 그렇게 많은 계율들과 가르침들 그리고 규범들을 포함하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에는 우리가 필요해서 영성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좀 더 솔직하고 단순했던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다만 매 순간 충실히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영성인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으며, 그들의 모든 주의력은 그 의무를 차례차례로 행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을 가리키며 매분마다 정해진 주행공간을 이동하는 시계바늘처럼, 끊임없이 신적 충동에 이끌리는 그들의 정신은 부지불식간에 매일 매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제공하는 새로운 대상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가장 완전하게 자신을 내맡겼던 마리아의 모든 행위 아래 숨겨져 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분이 천사에게 그저 "지금 말씀하신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것에 그쳤을 때, 이 대답은 그분 선조들의 모든 신비 신학을 표현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에도, 하느님의 뜻이 어떤 형태로 계시 되든지 간에, 모든 것은 그분의 뜻에 가장 순수하고 가장 단순하게 자신을 내맡기는 것으로 귀착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영혼의 모든 근본을 이루는 이 고결하고도 아름다운 마음가짐은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참으로 단순한 이 말 속에서 경탄스러우리만큼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입술과 마음에 늘 담고 있기를 바라는 말,
즉 "주님의 뜻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와 전적으로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이 엄숙한 순간 마리아에게 요구되었던 것이 그녀에게는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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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에게 감응을 불러일으키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하느님의 뜻이 거기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면, 이 모든 영광스러운 광채가 그녀에게 새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그녀를 지배했던 것은 바로 이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녀의 일들이 평범한 것이든 고상한 것이든 간에, 그것들은 그녀의 눈에 단지 하느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게 하고
전능하신 분의 역사(役事)하심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뭔가를 감추고 있는 다소간 빛나는 그림자일 뿐이었습니다.
기쁨으로 충만한 그녀의 정신은 매 순간 그녀가 행하거나 참아 견뎌내야 하는 모든 것을,
피조물의 외양이나 허울이 아니라 오로지 그분에게서 오는 것으로만 양식을 취하는 마음을 늘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그분의 손길이 베풀어주는 선물로 여겼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그녀를 당신의 그늘로 감쌌는데, 이 그늘은 단지 매 순간 의무나 유혹 내지는 시련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실, 이 그늘은 우리가 자연의 이법 속에서 그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들처럼, 감각적인 대상들 위에 드리워져 우리에게 그 대상의 모습을 숨기는 베일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정신적이고 초자연적인 이치 속에서, 자신들의 어두운 외양 아래, 유일하게 우리의 주의를 끌 가치가 있는 신의 의지라는 진실을 감추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항상 이렇게 바라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이 그늘은 그녀의 제 능력들 위로 퍼져 나가면서 그녀에게 환상을 품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의 신앙을 항상 변함없이 동일하신 분으로 채워주었습니다.
대천사여, 물러나십시오. 당신은 그늘입니다. 당신의 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당신은 사라져 갑니다.
마리아가 당신을 추월하여 당신보다 항상 앞서 가고 있으며, 이제 당신은 그녀에게 아주 뒤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늘이라는 이런 감각적 외양 아래, 이런 사명을 띠고 그녀 안으로 막 침투해 들어간 성령은 결코 그녀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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