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서 문안 합니다.
매월 첫째주 화요일과 셋째주 화요일은 구조분석 방법론을
함께 연구 할수 있도록 하신 성령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목사님들께서 동참하시여 성서의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많은 은혜 받으시고 하나님만 자랑해 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아주 좋아 하세요.
주제절
외울 말씀 1장 18-19절이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장 1-2절 단락구조분석 【문안 인사】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베드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서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나그네,
1:1 Peter, an apostle of Jesus Christ, To those who reside as strangers, scattered throughout Pontus, Galatia, Cappadocia, Asia, and Bithynia, who are chosen
직역: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베드로는 본도의 갈라디아의 갑바도기아의 아시아의 그리고 비두니아에 흩어진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들에게 편지 합니다.
1:1 Πέτρος ἀπόστολ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베드로는 사도인 예수 그리스도의
ἐκλεκτοῖς παρεπιδήμοις διασπορᾶς Πόντου,
택하심을받은 나그네들에게(편지) 흩어진 본도의
Γαλατίας, Καππαδοκίας, Ἀσίας καὶ Βιθυνίας
갈라디아의 갑바도기아의 아시아의 그리고 비두니아의
주해
▣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 - 본서의 저자 베드로는 서신의 초두에 자신이 사도임을 밝히는데 신약이 서신서 중 초두에 자신이 사도임을 밝히는 사람은 바울과 베드로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경우 대부분 자신이 사도권을 방어하기 위하여 사도란 말에 많은 수식어를 첨가한 반면 베드로는 아무 수식이 없이 그냥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베드로가 바울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였으면 초대 교회 역사의 산 증인이었으므로 그의 사도권을 문제시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베드로는 그 이름만으로도 사도임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자신을 '보냄을 받은 자' 또는 '대리자'라는 뜻을 가진 '사도'(아포스톨로스)라고 굳이 밝히는 것은 이 편지가 자신이 개인적으로 보내는 메시지가 아니라 주의 말씀이며, 자신은 단지 주의 대리자임을 분명히 하여 본 서신의 권위를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사도 베드로의 행적에 관해서는 본장 연구 자료를 보다 참조하라.
▣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라. - 본서의 수신지에 대한 언급으로 모두 소아시아 지역에 위치한다. 이 가운데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는 각기 로마의 한 주(州)를 이루며 본도와 비두니아는 두 지역이 합쳐 한 주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 본도와 비두니아가 나뉘어져 언급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학자들은 본절에 언급된 지명이 본서의 전달자인 실루아노의 방문 순서일 것으로 추정한다. 즉 실루아노는 흑해로부터 본도에 상륙하여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를 거쳐 비두니아로 갔고 거기서 다시 로마로 가는 배를 승선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본도와 비두니아가 비록 한 주명이지만 따로 언급된 것은 두 지역이 서로 분리되어 처리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보기도 한다. 한편 '본도'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고향으로 북편은 흑해, 동편은 클키스, 남편은 알메니아, 서편은 할리스 강으로 경계되어 있다. 또 '갈라디아'는 본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 주의 중간에 위치한 주로서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보낸 곳이다. '아시아'는 무시아, 리디아, 카리아, 부르기아 등으로 구성된 지역으로 에베소가 그 중심이다. '비두니아'는 본도와 연결되어 있으며 바울이 가고자 했을 때 성령이 그 길을 막은 곳이다. 이상의 지명의 위치에 대해서는 본장의 자료 노트를 참조하라.
▣ 흩어진. - 이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흩어진 자들'을 뜻하는 '디아스포라'로서 본래는 유대 지역을 떠나 이방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그러나 이 말은 점차 신령한 의미가 부여되어 흩어진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까지도 포함하여 각지에 흩어져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까지도 포함하여 각지에 흩어져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고향인 천국을 떠나 이 세상에서 잠시 머무르는 나그네라는 뜻으로 이렇게 부른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본서와 야고보서에 잘 반영되는데 야고보서에서는 이 용어가 문자적으로 적용되어 흩어진 유대인을 지칭하는 반면, 본서에서는 보다 영적인 의미가 부여되어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지칭한다. '디아스포라'와 관련해서는 스 9장 연구자료 노트, '디아스포라의 이해'를 보다 참조하라.
▣ 나그네. -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참다운 본향을 받아보고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으로 본서의 중심 사상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1:2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미리 아심을 따라 여러분을 택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해주셨으므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었으며, 그의 피로 정결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화가 가득하기를 빕니다.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그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를 쓴다.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지어다.
1:2 according to the foreknowledge of God the Father, by the sanctifying work of the Spirit, ①to obey Jesus Christ and be sprinkled with His blood: May grace and peace be multiplied to you.▷ ①Lit unto obedience and sprinkling
직역: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아심을 따라 성령으로 거룩하게 함으로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통하여 너희에게 은혜와 평안이 풍성하기를 원합니다.
1:2 κατὰ πρόγνωσιν θεοῦ πατρὸς
따라 미리아심을 하나님 아버지의
ἐν ἁγιασμῷ πνεύματος εἰς ὑπακοὴν
으로 거룩하게함 성령 으로 순종하여
καὶ ῥαντισμὸν αἵματ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그리고 뿌림 피의 예수 그리스도의
χάρις ὑμῖν καὶ εἰρήνη πληθυνθείη.
은혜 너희에게 와 편안이 풍성하기를 원한다 (동사: 희구법 과거 수동태 3단)
주해
▣ 곧 하나님 아버지의 .... 택하심을 입은 자들. - 수신자인 '흩어진 나그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으로 저자는 수신자들을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부르고 그 택하심에 대한 삼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 성도의 선택에 대한 성부 하나님의 사역을 말하는 것으로 성부 하나님은 '미리 아심'을 따라 성도들을 택하셨다는 '얼핏 보면 이 말은 하나님의 예지가 예정보다 앞선다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 사용된 '미리 아심'(프로그노시스)이란 단어는 '미리 알다'라는 뜻의 '프로기노스코'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이 말의 뜻은 장래의 일에 대한 선지(先知)를 훨씬 넘어선 하나님의 오묘한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이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들이 선을 행할 것을 미리 내다 보는 것이 아닌 그들의 행위의 선악 여타와 관계없이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이로 볼 때 이 구절은 '예지-예정'의 순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정과 예지의 순서 논쟁'에 대해 롬 8장 연구 자료를 참조하라.
▣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 '미리 아심'이 성도들의 선택을 위한 성부 하나님의 사역이듯 '거룩하게 하심'은 성령님의 사역이다. '거룩하게 하심'(하기아스모스)은 '분리', '정결'을 뜻하는 히브리어 '카도쉬'에서 유래한 말로 본문에서 이 말은 단순히 인격의 영적 성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는 것을 말하며 그 사역의 수행자가 성령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은 하나님의 선택을 보다 효과적으로 만든다. 한편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는 성도들의 순종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순종은 하나님의 선택의 표징이자 판별의 수단이 된다.
▣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 - 성도의 선택에 대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말하는 것으로 '피 뿌림'(란티스모스)이라는 말은 신약에서는 히브리서(12:24)와 본서에만 나온다. 두 곳 모두 출 24:3-8의 성결의식을 암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로 옛 언약을 맺은 것처럼 택함을 입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 언약을 맺게 된다. 이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죽음에 의해 성취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흘리신 새 언약의 피는 영원히 그 효력과 능력을 지닌다.
▣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 '은혜'를 비는 것은 헬라식 문안 인사이며 '평강'을 비는 것은 유대식 문안 인사이다. 고전 1:3; 엡 1:2 주석과 딤후 1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베드로전서 1장 3-12절 단락구조분석 【고난 중에 성도가 기뻐해야 할 이유는 산 소망】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산 a) 소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a. 또는 희망)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자. 그분은 자신의 풍성한 긍휼을 따라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게 하셔서 우리에게 산 소망이있게 하시고,
1:3 Blessed be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o according to His great mercy has caused us to be born again to a living hope through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from the dead,
직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찬양을 받으신다. 그분은 자신의 많은신 긍률을 따라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신 분이다.
1:3 Εὐλογητὸς ὁ θεὸς πατὴρ καὶ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찬송을받으신다 그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또한 그 주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의
ὁ κατὰ τὸ πολὺ αὐτοῦ ἔλεος ἀναγεννήσας ἡμᾶς
그분 따라 그 많으신 자신의 긍률을 거듭나게 하신 우리를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단수)
εἰς ἐλπίδα ζῶσαν
위하여 한 소망 산 (분사: 현재 능동태 대격 단수)
δι᾽ ἀναστάσεω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ἐκ νεκρῶν,
통해 부활을 예수 그리스도의 중에 죽은사람
주해
▣ 찬송하리로다. - 인사의 말에 이어 저자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 이 찬송은 곧 순교를 당할 처지에 있는 베드로 자신이나 박해에 직면해 있는 수신자들을 생각할 때 의미가 깊은 것으로 그들에게 구원이 약속되었다는 확신은 그들로 하여금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게 한다. 한편 이 역경 속에서의 찬송은 저자가 하나님 자신에게 이루어 주신 일에 대해 감격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찬송하리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게토스'는 감사와 찬미를 나타내는 말로 신약의 기자들 오직 하나님에 대해서만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분사형인 '율로게메노스'는 사람에 대하여도 쓰이고 있다.
▣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 베드로의 찬양의 대상에 대한 언급으로 동일한 말이 고후 1:3; 엡 3에도 나타난다. 따라서 본 구절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 그 많으신 긍휼대로. - '긍휼'(엘레오스)이란 단순한 동정의 차원을 넘어서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감정이다.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구원 얻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크신 긍휼하심에 있다.
▣ 예수 그리스도와 ...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사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하신 근거이다. 즉 성도들의 구원 혹은 거듭남의 신부는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함으로써 새로운 질서 안으로 전입되어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되는 것이다.
▣ 거듭나게 하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겐네사스'는 '다시 낳다'를 의미하는 '아나겐나오' 부정과거 능동태 분사로 성도의 중생이 과거의 역사적 사실임과 동시에 그것이 현재에도 지속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즉 성도들은 부활의 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같이 죽고 그의 부활에서 다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 저자는 베드로는 '살아있는'(조산)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고 있다. 또한 그는 '소망'(엘피스)이라는 단어도 본서 여러 곳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무궁한 긍휼로 인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새 생명 가운데 살게 하셨고, 그 새 생명의 한 중요한 면모가 '산 소망'인 것이다. '산 소망'이란 생명력으로 충만해 있고 성취의 확실성을 쓰러지지 않는 힘으로 견지해 주며 마음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든다. 그것은 그 자체 속에 생명을 지니고 있고 생명을 주며 생명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베드로는 소망의 사도이다. 그는 '산'이라는 형용사를 좋아하며 성도들에게 소망에 관해 말하기를 즐겨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1:4 그리고 여러분을 위하여 썩지 않고, 더러워 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의 몫으로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1:4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받게 하셨다.
1:4 to obtain an inheritance which is imperishable, undefiled, and will not fade away, reserved in heaven for you,
직역: 상속을 위하여 썩지 않고 그리고 더럽지 않고 그리고 쇠하지 아니하는 너희를 위하여 하늘 안에 간직되어 있게 하셨다.
1:4 εἰς κληρονομίαν ἄφθαρτον
위하여 상속을 썩지 않고
καὶ ἀμίαντον καὶ ἀμάραντον
그리고 더럽지 않고 그리고 쇠하지아니하는
τετηρημένην ἐν οὐρανοῖς εἰς ὑμᾶς
간직되어 있으며 안에 하늘들에 위하여 너희를 (분사: 완료 수동태 대격 단수)
주해
▣ 썩지 않고 ...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 이제는 '산 소망'을 '기업'으로 묘사하면서 그 소망의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기업'(클레로노미아)이란 구약에서 본래 약속의 땅인 가나안과 동등시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업은 때로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되거나영원한 생명을 가리키기도 했다. 신약에 와서는 '영생',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광',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구원' 등 아주 다양하게 해석되어졌다. 결국 베드로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던 기업인 가나안 땅에 견주어 이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썩어지며 더러워지고 쇠하는 '지상의 땅'이 아닌 '하늘의 기업'을 받게 될 것은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신약에 있어서는 성도의 소망이 미래적이며 내세적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1:5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분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1:5 너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내려고 예비된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고 있다.
1:5 who are protected by the power of God through faith for a salvation ready to be revealed in the last time.
직역: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 보호하심을 받고 예비하신 구원을 위하여 믿음을 통해 마지막 때에 잇어 계시 하셨다.
1:5 τοὺς ἐν δυνάμει θεοῦ φρουρουμένους
그(사람들) 안에 능력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분사: 현재 수동태 대격 2복)
διὰ πίστεως εἰς σωτηρίαν ἑτοίμην
통해 믿음을 위하여 구원을 예비하신
ἀποκαλυφθῆναι ἐν καιρῷ ἐσχάτῳ
계시 하도록 에 있어 때 마지막 (부정사: 과거 수동태)
주해
▣ 너희가...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 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장차 받을 기업을 하늘에 간직하여 보호하셨음을 설명했고 이제 본절에서는 그 '기업'을 받기 위해 거듭난 상속인들도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심을 알려준다. 이러한 본절에서는 성도들이 보호받는 원인, 방법, 결과가 모두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후사(後嗣)로 택하신 자들은 이 험한 세상에서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이를 보장받으며, 이 하나님의 능력은 성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승리를 확실하게 한다.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성도 편에서는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믿음 외에는 아무 것도 첨가할 것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의 '믿음'은 담대한 신앙에 근거되어 있는 확고부동한 신뢰를 말한다. 여기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루루메누스'는 군사 용어로서 본래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도시 안에 만든 요새를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성도의 기업을 빼앗으려고 하는 원수들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이 능력으로 보호하실 것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목적은 성도들의 완전한 구원에 있다. 한편 본절은 성도들의 '구원'이 말세에 있을 것으로 말하고 있다. 즉 성도들은 이미 구원받은 존재들이지만 그 최종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이 세상 종말의 때에 이루어지며 현재는 그 최종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1:6 그러므로 지금 잠시동안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슬픔에 빠져 있더라도 b) 이것을 기뻐하십시오.
1:6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가지 시험 때문에 잠깐 근심하게 되었으나 이제 크게 기뻐하니,
1:6 In this you greatly rejoice, even though now for a little while, if necessary, you have been distressed by various ①trials, ▷ ①Or temptations
직역: 그것으로 너희가 지금은 잠깐 동안 슬픔을 당하고 여러가지 시련들 가운데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너희가 기뻐 한다.
1:6 ἐν ᾧ ἀγαλλιᾶσθε ὀλίγον ἄρτι,
으로 그것 크게 기뻐 한다 잠깐(동안) 지금은 (동사: 직설법 현재 중간태 2복)
εἰ δέον ἐστίν,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복)
하더라도 어쩔수없이 있다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λυπηθέντας ἐν ποικίλοις πειρασμοῖς,
슬픔을 당하고 가운데 여러 가지 시련들 (분사: 과거 수동태 주격 2복)
주해
▣ 그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엔 호'로서 문자적으로는 '이것 때문에' 또는 '이 안에서'라고 번역된다. 이 단어가 받는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성도들의 현재에 받고 있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며, 또 다른 이들은 5절만을 받아 말세에 받는 일시적 보호하심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두 견해가 모두 일리가 있으나 문맥상으로 볼 때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
▣ 시험을 인하여 ...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 여기서 '시험'(페이라스모스)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연단을 위해 성도들에게 주시는 '시련'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련은 성도들이 장차 누릴 영원한 영광과 비교할 때 지극히 잠깐 동안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성도들은 모든 시련을 인내로 이겨내야 하며 오히려 기뻐함이 마땅하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에서 시험으로 번역된 말에는 '페이라조'도 있는데 이 시험의 근원은 사단에게 있으며, 그 형태는 유혹으로 나타나며, 목적은 성도들을 멸망케 하는데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1:7 여러분의 믿음이 연단을 받아서 순수하게 되면, 불로 연단하여도 마침내는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이 칭찬과 명예를 차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1:7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단련하지만,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1:7 so that the ①proof of your faith, being more precious than gold which perishes though tested by fire, may be found to result in praise, glory, and honor at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 ①Or genuineness
직역: 너희의 믿음의 시험이 없어지는 금보다 더 귀하게 불을 통해 연단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발견하게 하기 위함이라
1:7 ἵνα τὸ δοκίμιον ὑμῶν
위함이라 그 시험이 너희의
τῆς πίστεως πολυτιμότερον χρυσίου τοῦ ἀπολλυμένου,
그 믿음의 더 귀하여 금 그 없어지는 (분사: 현재 중간태 속격 단수)
διὰ πυρὸς δὲ δοκιμαζομένου
통하여 불을 그럼에도 연단을 받는 (분사: 현재 수동태 속격 단수)
εὑρεθῇ εἰς ἔπαινον καὶ δόξαν καὶ τιμὴν
발견하다 를 칭찬 과 존귀 와 영광 (동사: 가정법 과거 수동태 3단)
ἐν ἀποκαλύψει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안에 나타남에 예수 그리스도의
주해
▣ 너희 믿음의 시련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 전절에 언급된 '시험'의 목적이다. 여기서 '시련'(도키미온)이라는 말은 '순수한 것으로 입증된'이란 뜻으로 본래 금 . 은 등을 불 속에서 제련하여 순수한 것으로 만드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하던 말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성도들에 대하나 하나님의 시험의 목적이 성도들을 실족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믿음을 더욱 연단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함으로 결국 영광과 칭찬을 얻게 하려는 데 있음을 보여 준다.
▣ 금보다 더 귀하여. - 많은 이물질(異物質)이 섞여 있는 광석을 불에 의해 제련하여 순금을 만들 듯이 우리의 믿음은 여러 가지 '시험'에 의하여 순수하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금은 땅과 함께 없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금은 그 가치가 현세적이나 믿음은 그와 비교될 수 없이 귀하나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현세뿐 아니라 영원에 이르기까지 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1: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며, 지금 그를 볼 수 없으면서도 믿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과 즐거움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1:8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한다. 지금도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믿으며,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즐거워하니,
1:8 and though you have not seen Him, you love Him, and though you do not see Him now, but believe in Him, you greatly rejoice with joy inexpressible and ①full of glory, ▷ ①Lit glorified
직역: 예수님을 너희가 뵙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너희를 사랑한다. 지금도 그분을 뵙지 못한다. 그러나 너희가 믿으며 말 할수 없는 영광을 즐거움으로 심히 기뻐한다.
1:8 ὃν οὐκ ἰδόντες ἀγαπᾶτε,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2복)
예수님을 못하였다 뵙지도 너희가사랑한다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2복)
εἰς ὃν ἄρτι μὴ ὁρῶντες,
를 그분 지금도 못한다 뵙지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πιστεύοντες δὲ ἀγαλλιᾶσθε χαρᾷ ἀνεκλαλήτῳ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믿으며 그러나 너희가심히기뻐한다 즐거움으로 말 할수 없고 (동사: 직설법 현재 중간태 2복)
καὶ δεδοξασμένῃ
그리고 영광을 받고있는 (분사: 완료 수동태 여격 단수)
주해
▣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 믿고. - '보지 못하였으나'(우크 이돈테스)가 알레산드리아 사본(A), 모스크 사본(K), 레기우스 사본(L) 등 일부 사본에는 '알지 못하였으나'(우크 에이도테스)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 사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혼돈으로 '이'와 '에이'의 발음의 동일성에 의한 것이며, '보지 못하였으나'로 번역하는 것인 문맥상으로 볼 때도 자연스럽다. 본절은 예수를 직접 보았던 저자의 입장과, 예수를 직접 보지 못하여 단지 다른 사람들의 보고를 통해 예수에 대하여 알게된 소아시아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을 대조하기 위해 쓰여진 것으로 그들의 비록 베드로처럼 예수를 직접 만나 보지는 못하였지만 믿음으로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이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신 말씀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 말할 수 없는 ...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 여기서 '기뻐하니'에 대해서 고대 라틴 역본과 빌게이트역 그리고 몇몇 학자들은 현재 시제인 '기뻐하다'(아갈리아스데) 대신에 미래 시제인 '기뻐하리라'(아갈리아세스데)로 대치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그리스도인의 역설적인 기쁨을 이해 못한 주장이다. 즉 본 구절은 본서의 수신자인 소아시아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에 주님을 경험하지 못하였고 현재도 만나지 못했으나, 오직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누릴 영광된 모습으로 인해 현재에 벌써 즐거워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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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9 이것은 여러분이 믿음의 결과인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9 이는 너희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1:9 obtaining as the outcome of your faith, the salvation of ①your souls. ▷ ①One early ms does not contain your
직역:
1:9 κομιζόμενοι τὸ τέλος τῆς πίστεως ὑμῶν,
받으며 그 결과 그 믿음의 너희의 (분사: 현재 중간태 주격 2복)
σωτηρίαν ψυχῶν.
구원을 영혼들의
주해
▣ 믿음의 ... 구원을 받음이라. - 본절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시험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전절의 '기뻐하니'와 연결하여 본절은 읽고 있다. 한편 여기서 '받음이라'(코미조메노이)는 단어는 현재분사로서, 성도들의 구원이 실현 과정에 있는 것임을 시사한다. 즉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이미 구원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아직은 그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며 현재는 최종적인 구원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최종적 구원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이로 보건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과거의 사건이요(3절) 현재의 일이며(5절) 또한 미래적인 일임을(4절)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영혼의 구원'이라는 말은 육의 구원을 무시한 영의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히브리적 사고에서 '영혼'(프쉬케)은 '자아'나 '인격'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혼의 구원'이란 전인적인 구원, 곧 영과 육이 연합된 참 존재적 구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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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0 예언자들이 이 구원을 추구하고 연구하였으며, 그들은 여러분이 받을 은혜를 예언하였습니다.
1:10 이 구원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해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부지런히 조사하고 연구하였다.
1:10 As to this salvation, the prophets who prophesied of the grace that would come to you made careful searches and inquiries,
직역:
1:10 περὶ ἧς σωτηρίας ἐξεζήτησαν
대하여 그 구원에 열심히 찾는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καὶ ἐξηραύνησαν προφῆται
그리고 자세히조사하였다 선지자들이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οἱ περὶ τῆς εἰς ὑμᾶς χάριτος προφητεύσαντες
그 관하여 그 향한 너희를 은혜에 예언한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복수)
주해
▣ 이 구원에 대하여는. - '구원' 자체의 기쁨을 이야기하던 베드로가 이제는 그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즉 베드로는 '구원'(소테리아)이라는 단어를 이미 앞에서는 종말론적 구원의 의미로 사용하였는데, 본절에서는 이러한 종말론적 구원을 가져다주는 배경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라는 보편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본절의 '구원'과 '은혜'는 동의어임을 알 수 있다.
▣ 선지자들이 .... 부지런히 살펴서. - 저자는 구원이 선지자들에게 있어 부단히 연구와 기대의 대상임을 밝힘으로, 그것의 영광스러움과 위대함을 나타내 보인다. 어떤 학자는 본절의 '선지지'가 신약 시대의 선지자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이유로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등의 성경을 조사하는 행위가 구약 선지자들의 특징이 아님을 들고,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 속에서 역사한다는 표현을 볼 때 쉽게 그들의 신약시대의 선지자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맥이 지지하는 것은 '선지자들'은 기도와 묵상을 통해 자기들에게 주신 계시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다니엘은 이러한 연구자의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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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11 그들은 누구에게, 그리고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알려 주었습니다.
1:11 그들은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고난과 이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실 때, 그 영이 무엇을 가리키며 어느 때를 가리키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1:11 ①seeking to know what person or time the Spirit of Christ within them was indicating as He predicted the sufferings of Christ and the glories ②to follow. ▷ ①Or inquiring ②Lit after these
직역:
1:11 ἐραυνῶντες εἰς τίνα
자세히 살피며 위하여 무엇을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ἢ ποῖον καιρὸν ἐδήλου τὸ ἐν αὐτοῖς
그 어떠한 때을 아렸는지 그 안에 그들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단)
πνεῦμα Χριστοῦ προμαρτυρόμενον
영이 그리스도의 미리 증거하며 (분사: 현재 중수디 주격 단수)
τὰ εἰς Χριστὸν παθήματα καὶ τὰς μετὰ ταῦτα δόξας.
그 향하여 그리스도를 고난들 과 그 후에 그일들을 영광들
주해
▣ 그리스도의 영. - 구약의 선지자들의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선재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이를 살펴보면,
첫째는, 진짜 그리스도의 영이 아니라 구약 시대에 미래에 오실 그리스도에 관하여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시킨 영으로 보는 견해이다.
둘째는, 이 영이 성령으로서,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케 했다는 견해이다.
셋째는, '그리스도 안에 계신 영'으로서, 그리스도가 신약에 와서 활동하기 전에도 이미 계셨으며 그의 영이 구약 때 미리 활동하셨다는 주장이다. 본절에서는 주님의 신성을 보여 주며 특히 선재성(先在性)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셋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그리스도가 선지자들에게 나타나 그들에게 영감을 주셨다는 사상은 초대 교부들 간에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 그 받으실 고난과.... 영광. -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과 영광 받으심에 대한 교리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서 본절에서는 10절의 '너희에게 임할 은혜'란 말과 병행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이 하나님에 의해 의도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구약 시대부터 유대인에게 '고난당하시는 메시야' 사상은 거치는 돌이었다. 그래서 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고난당하는 메시야'에 대하여 예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이스라엘의 옛 영광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왕위에 오르실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영광의 메시야'만을 기다렸다. 이에 대해서는 막 서론 특별자료, '메시야의 이해'를 보다 참조하라.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그리스도의 부활 전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베드로는 주의 고난당하심을 만류하다가 주님으로부터 질책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야 비로소 성령의 깨우치심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올바르게 이해하였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고난'은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리심을 받고 영광중에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의 교리는 초대 교회 당시 복음 전파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에서도 반영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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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1:12 예언자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자기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일들은 이제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이 일들은 천사들도 보고 싶어 합니다.
1:12 그들이 섬긴 것들은 그들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한 것임이 그들에게 계시되었으니, 그것들은 이제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전파된 것들이며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들이다.
1:12 It was revealed to them that they were not serving themselves, but you, in these things which now have been announced to you through those who preached the gospel to you by the Holy Spirit sent from heaven—things into which angels long to ①look. ▷ ①Or gain a clear glimpse
직역:
1:12 οἷς ἀπεκαλύφθη ὅτι οὐχ ἑαυτοῖς, ὑμῖν
그들에게 계시되었다 것을 아니 자신을위한것 너희에게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3단)
δὲ διηκόνουν αὐτὰ ἃ νῦν ἀνηγγέλη ὑμῖν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3단)
그러나 그들이섬겼다 그들에게 그것들 이제 그가알려졌다 너희에게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복)
διὰ τῶν εὐαγγελισαμένων ὑμᾶς
통하여 그 복음을 너희를 (분사: 과거 중간태 속격 복수)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ἀποσταλέντι ἀπ᾽ οὐρανοῦ,
안에 영 거룩한 보내어진 부터 하늘로 (분사: 과거 수동태 여격 단수)
εἰς ἃ ἐπιθυμοῦσιν ἄγγελοι παρακύψαι. (부정사: 과거 능동태)
으로 이것들 열망한다 천사들도 살펴보는 것을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복)
주해
▣ 이 섬긴 바가 ...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 앞에서 기록된 것처럼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과 영광 받으심에 대하여 예언하고 상고한 것들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약 시대의 성도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선지자들은 그들의 어렴풋이 식별했던 구원의 실현을 스스로 목격하게 되기를 열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사건이 그들의 시대를 위해 계획된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그들의 활동을 '섬긴 바'(디에코눈)라고 표현한 것이다. 즉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들의 연구를 통해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을 섬긴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전(全) 구약 계시는 신약의 계시와 관련하여 섬기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 이것은....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 저자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에 대하여 예언한 것은 정확하기는 하나 희미한 것이던 것과는 달리 이제 신약의 복음 전도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수신자들에게 구약의 예언을 분명하게 해석해 주었다는 사실을 발힘으로 그들의 받은 복음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다. 여기서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은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을 말하는 것으로 이 성령은 복음을 전하는 자와 받는 자 모두에게 역사하셔서 복음을 깨닫게 하신다.
▣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을 선지자들이 부지런히 연구하고 상고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가장 가까이 있던 천사들도 알기를 열망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 안에 감추었다가 이제 신약의 성도들에게 비로소 밝히 드러난 것이다. 이 사실은 복음을 받은 성도들이 얼마나 큰 특권을 가졌는지를 잘 보여 준다.
베드로전서 1장 13-21절 단락구조분석 【성결한 삶에 대한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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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13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을 굳게 먹고 정신을 차려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이 받을 그 은혜를 끝까지 기다리십시오.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너희가 받을 은혜를 끝까지 바라보아라.
1:13 Therefore, ①prepare your minds for action, ②keep sober in spirit, set your hope completely on the grace to be brought to you at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 ①Lit be sober ②Lit belt up the waist of your mind
직역:
1:13 Διὸ ἀναζωσάμενοι τὰς ὀσφύας τῆς διανοίας ὑμῶν
그러므로 동이고 그 허리들을 그 마음의 너희의 (명령분사: 과거 중간태 주격 2복)
νήφοντες,
근신 하라 (명령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τελείως ἐλπίσατε ἐπὶ τὴν φερομένην ὑμῖν (명령분사: 현재 수동태 대격 단수)
온전히 너희는바래라 대하여 그 가져오게 되는 너희에게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2복)
χάριν ἐν ἀποκαλύψει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은혜에 안에 나타나심에 예수 그리스도
주해
▣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 베드로는 앞부분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허용된 찬란한 '기업'을 아주 화려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이제 그는 그러한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행동양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는 지금까지 열거했던 모든 축복들과 특권들, 그리고 소망들을 받는다. 한편 그리스도인의 삶을 자세를 잘 대변해 주는 단어인 '동이고'(아나조사메노이)는 문자적으로 '긴 의복을 허리띠를 빌어서 졸라매는'이란 뜻으로 신약의 다른 곳에는 볼 수 없는 말이다. 아마도 이 표현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인들이 허리를 돌이고 유월절 어린 양의 고기를 먹은 사실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즉 영적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들은 죄된 세상에서 사는 동안 마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가졌던 자세와 같이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매사에 긴장된 자세로 하나님의 음성에 기를 기울이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 근신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네폰테스'는 '정신을 차린 상태'라는 뜻으로, 신양에서는 언제나 은유로 사용된다. 즉 자제와 이에 따르는 정신의 맑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박해를 당하는 성도가 가져야 할 정신적 자세를 말한다. 딛 2:2에서는 '금주'(禁酒)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 가져올 은혜를. - '가져 올'(페로메넨)은 현재 분사이지만 문맥을 통해 볼 때 이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다시 오실 마지막 날에 결정적으로 성취하실 구원이다. 물론 이 부분을 문법대로 현재로 보는 학자들도 많으나 성경에서 현재분사는 미래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본절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미래적인 일이 이처럼 현재의 일로 기록된 것은 구원이 현재 실현 과정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모든 자는 구원을 이미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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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14 여러분이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가 되었으니, 전에 알지 못할 때에 가졌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1:14 너희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알지 못하던 때에 따르던 정욕을 본받지 말고,
1:14 As ①obedient children, do not ②be conformed to the former lusts which were yours in your ignorance,
▷ ①Lit children of obedience ②Or conform yourselves
직역:
1:14 ὡς τέκνα ὑπακοῆς,
처럼 자녀들 순종의
μὴ συσχηματιζόμενοι ταῖς πρότερον
말고 너희가 같은모양이 되지 그 이전에 (명령분사: 현재 중수디 주격 2복)
ἐν τῇ ἀγνοίᾳ ὑμῶν ἐπιθυμίαις,
때에 그 무지에 너희의 정욕들에게
주해
▣ 순종하는 자식처럼. - 본절 이후에는 그리스인이 되었을 때 갖추어야 할 실천적 요구들, 즉 순종(14절), 거룩(15절), 경외(17절), 성도 상호 간의 사랑(22절)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는데 본절에서는 그중 '순종'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순종하는 자식'은 전통적인 히브리식 표현법으로 '순종의 자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좋다. 그런데 '...의 자식'이란 표현은 어떤 인물의 자질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의 본질적인 속성 또는 역할을 나타낸다. 따라서 성도가 '순종의 자식'이라는 말은 성도들의 본질적 속성이 순종임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무지'(無知)라는 말과 '사욕'(私慾)을 밀접히 연관시켜 놓고 있다. 이로 보아 무지는 불신앙의 원인으로 소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무지는 불신앙의 원인으로 소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사욕을 본 삼지 말고. - '사욕'(에피뒤미아)은 엄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뜨려 죄 가운데 빠지게 하는 천한 욕망으로, 이것은 이방인의 특성인 도덕적 퇴폐함을 가리킨다. 또한 '본 삼지 말고'(메 쉬스케마티조메노이)에서 '쉬스케마티조메노이'는 흔치 않는 단어로 본절과 롬 12:2에만 사용된다. 그 뜻은 내면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메타모르포오'와는 대조되는 외면적이니 닮을 말한다. 그래서 '본 삼지 말고'라는 말은 때로 '유행을 따라가지 말고'로 번역되기도 한다(KJV). 그러므로 이 말은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제 세상으로부터 오는 육신의 정욕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촉구하는 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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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15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 거룩한 분을 따라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1:15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들이 되어라.
1:15 but ①like the Holy One who called you, ②be holy yourselves also in all your behavior;
▷ ①Lit according to ②Or become
직역: 오직 너희를 그 부르심에 따라서 거룩하신 것과 같이 너희 자신도 모든 생활방식 에 있어 너희는 거룩하게 되어라
1:15 ἀλλὰ κατὰ τὸν καλέσαντα ὑμᾶς
오직 따라 그 부르신 너희를 (분사: 과거 능동태 대격 단수)
ἅγιον καὶ αὐτοὶ ἅγιοι ἐν πάσῃ ἀναστροφῇ γενήθητε,
거룩하신것 과 너희자신도 거룩하게 에있어 모든 생활방식 너희는 되어라 (동사: 명령법 과거 수동태/디 2복)
주해
▣ 거룩한 자처럼 .... 거룩한 자가 되라. - 그리스도인의 노력은 이전의 사욕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는 데 들여져야 한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사상이 가득차 있는데,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들을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요한은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 모든 행실에. - 그리스도인의 변화의 원리가 어떤 추상적인 이상의 체계나 법칙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어야 하듯이 변화의 내용도 거룩하여야 하는데 이는 단순한 의식상(儀式上)의 순결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실' 안에서 요구되는 죄로부터의 행방과 도덕적인 순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의 클레멘트는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므로 우리의 모든 행위를 거룩함과 일치되게 하자'라고 이야기하고 현실적이며 실제적인 실례들을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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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16 성경에 기록하기를 c)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c. 레11:44,45,19:2,20:7)
1:16 이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1:16 because it is written: “YOU SHALL BE HOLY, FOR I AM HOLY.”
직역:
1:16 διότι γέγραπται·
왜냐하면 기록되었다 (동사: 직설법 완료 수동태 3단)
ἅγιοι ἔσεσθε, ὅτι ἐγὼ ἅγιος.
거룩하게 있으라 때문이다 나는 거룩하여 (동사: 직설법 미래 중간태/디 2복)
주해
▣ 내가 거룩하니. - 이 구절은 레위기에 다섯 번 이나 나타난다. 여기서 '거룩한'(하기오스)은 속되거나 불경스러운 것과는 반대인 근본적으로 '분리된'’, '구별된'을 의미한다. 그런데 구약에서의 '거룩'은 엄위(嚴威)와 완전하심 속에 계신 하나님 자신의 본성과 의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소유한 물건이나 사람들에게도 거룩을 부여하셔서 예루살렘도 거룩하며, 시온산과 그 이에 세워진 성전도 거룩하다 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거룩하다고 하셨다. 이러한 거룩의 개념은 신약에서 계속 이어지는데 특히 본서의 저자인 베드로는 성도들을 가리켜 거룩하신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 2:9)이라고 부름으로써 이러한 사상을 현저하게 반영시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하나님을 본받아 자신을 거룩히 하여 모든 부정한 것에서 분리되며, 그분을 섬기는 데에 자신을 드리도록 힘써야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17 그리고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여러분이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여러분은 나그네로 있을 동안에 두려운 마음으로 지내십시오.
1:17 또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각자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너희가 아버지라고 부르니, 나그네로 사는 동안에 두려움으로 지내라.
1:17 If you address as Father the One who impartially judges according to each one’s work, conduct yourselves in fear during the time of your stay on earth;
직역:
1:17 καὶ εἰ πατέρα ἐπικαλεῖσθε
그리고 만일 아버지를 너희가 부른다면 (동사: 직설법 현재 중간태 2복)
τὸν ἀπροσωπολήμπτως κρίνοντα
그 외모로 보시지 않고 판단하시는 (분사: 현재 능동태 대격 단수)
κατὰ τὸ ἑκάστου ἔργον, ἐν φόβῳ τὸν τῆς παροικίας ὑμῶν
따라 그 각 사람의 행위를 안에 두려움 그 이 나그네의 너희의
χρόνον ἀναστράφητε
때를 너희는 행동하라 (동사: 명령법 과거 수동태 2복)
주해
▣ 외모로 보시지 않고. - '외모로 보시지 않고'로 번역된 '아프로소폴렘프토스'는 신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여기에만 나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외모에 의하지 않는다는 사상은 신약 성경에서 아주 익숙한 사상이다. 베드로 자신도 다른 곳에서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라고 주장하였고, 예수께서도 바리새인들에게 동일한 말씀을 하였다.
▣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 - '행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곤'은 단수이다. 이는 사람의 행위가 선하든지 악하든지 하나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를 전체를 통틀어서 그의 모든 삶과 미를 '믿음' 혹은 '이기심'이라는 하나의 지배 원리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심판하신다. 여기서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적인 신분에 의존하여 나태한 삶ㅇ르 살아서는 안 되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건전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각 사람의 행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자녀답게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본절 이하의 18,19절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 아버지라 부른즉.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특별히 많은 학자들은 여기서 '아버지를 부른다'는 말을 성도들의 주의 기도를 외울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 나그네. - 저자는 이 땅을 근거를 두지 않고 잠시 거하는 자로서의 그리스도인들을 '나그네'로 부르고 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1절 주석을 참조하라.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18 이제 여러분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여러분의 헛된 생활방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도 알지만, 은이나 금과 같은 썩어질 것으로 되지 않고
1:18 너희가 아는 것처럼 조상들이 전한 헛된 생활 방식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1:18 knowing that you were not ①redeemed with perishable things like silver or gold from your futile way of life inherited from your forefathers, ▷ ①Or ransomed
직역:
1:18 εἰδότες ὅτι οὐ φθαρτοῖς, ἀργυρίῳ ἢ χρυσίῳ,
알았으니 것을 아닌 썩어질것들로 은 이나 금으로 (분사: 현재 능동태 대격 단수)
ἐλυτρώθητε ἐκ τῆς ματαίας ὑμῶν
구속 되었다 부터 그 헛된 너희의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2복)
ἀναστροφῆς πατροπαραδότου
생활방식으로 조상으로 전해 받은
주해
▣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 - '망령된'(마타이아스)이란 말을 볼 때 저자는 주로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두고 본서를 쓴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다른 곳에서는 우상 숭배를 말하는데 쓰였을 뿐만 아니라, 70인역에서는 살아계시고 참되시며 유일하신 하나님과 대조적인 이교도들의 우상들에 적용되거나 혹은 하나님을 결코 알지 못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변절한 자들에게 경멸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기 이전 상태를 말한다. 특별히 '망령된'’이란 '공허'이란 뜻으로, 이는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성도들의 삶이 내용이 없고 무의미했음을 나타낸다.
▣ 구속된 것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뤼트로데테'는 본래 헬라 세계에서 전쟁 포로나 노예에게 그의 자유를 사주기 위해 지불되었던 돈에 대한 전문 용어인 '뤼트론'에서 온 말로,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지불하신 값을 말한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노예된 자들을 위해 그의 피로써 대가를 치르고 우리를 사서 참 자유를 주신 것이다.
▣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 일반적으로 노예의 구속에는 은금을 사용하였으나 죄의 노예가 된 인간의 구속에는 그러한 없어질 것으로는 할 수가 없음을 가리킨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1:19 흠이 없고 티가 없는 어린 양의 피와 같은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되었습니다.
1:19 오직 흠 없고 티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것이다.
1:19 but with precious blood, as of a lamb unblemished and spotless, the blood of Christ.
직역:
1:19 ἀλλὰ τιμίῳ αἵματι ὡς ἀμνοῦ ἀμώμου καὶ ἀσπίλου Χριστοῦ
오직 보배로운 피로 같은 어린양 흠이 없고 그리고 점이 없는 그리스도의
주해
▣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 -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속전(贖錢)은 바로 희생 제물에 비유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어린양'이라는 단어에는 여러 개념들이 들어가 있는데, 사 53:7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시는 종으로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본절의 어린양이 구약에 나타난 '양'의 모델 중에 정확히 어느 것을 의미하는가는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레 4:32에 나타나는 속죄의 양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문맥을 고려해 볼 때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한편 여기서 '흠 없고'는 선천적, '점 없는'은 후천적 완전성을 가리키는 말로, 그리스도의 무죄성과 완전하신 인격을 나타낸다. 죄에서의 구속은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가능했다.
▣ 보배로운 피. - 구약에서 '피'는 곧 생명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신 것은 그가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시기 위해 생명을 버리신 것을 뜻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된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1:20 이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예정되고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1:20 그분은 창세전에 미리 알려지셨으나 너희를 위하여 마지막 때에 나타나셨다.
1:20 For He was foreknown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but has appeared ①in these last times for the sake of you ▷ ①Lit at the end of the times
직역:
1:20 προεγνωσμένου μὲν πρὸ καταβολῆς κόσμου,
미리 알려졌으며 한편 전부터 기초를놓음의 세상의 (분사: 완료 수동태 소유격 단수)
φανερωθέντος δὲ ἐπ᾽ ἐσχάτου τῶν χρόνων δι᾽ ὑμᾶς
나타나게 되고 다른 한편 에 있어 마지막 그 때 때문에 너희를 (분사: 과거 수동태 소유격 단수)
주해
▣ 창세 전 부터‥‥이 말세에. - 본절은 그 사상의 깊이와 문학적 세련의 정도가 아주 뛰어나다. 균형 잡힌 대조와 장중한 어조는 우리에게 예사 구절이 아님을 시사한다. 본절은 보배로운 피를 흘려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때가 되매 성도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을 나타낸다. 여기서 '창세 전'(프로 카타볼레스 코스무)이란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시기 이전이란 뜻이다. 그리고 '미리 알리신바'(프로에그노스메누)는 '미리 알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프로기노스코'의 완료형 분사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창세 전 부터 미리 알리신바 되었다는 것은 예수께서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또한 계속적으로 계신 사실, 곧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을 나타낸다. 이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선재성'에 대해서는 요 8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그리고 '나타내신 바'(파네로덴토스)는 부정과거 분사형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났음을 표시한다. 사도행전에도 이 위대한 진리가 베드로가 오순절에 행한 설교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여기서 '말세'란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는 기간을 말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1:21 여러분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에게 영광을 주셨으니, 여러분의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1:21 너희는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이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
1:21 who through Him are believers in God, who raised Him from the dead and gave Him glory, so that your faith and hope are in God.
직역:
1:21 τοὺς δι᾽ αὐτοῦ πιστοὺς εἰς θεὸν τὸν ἐγείραντα αὐτὸν
그 통하여 그를 믿는 사람들 를 하나님 그 살아나게하시고 그를 (분사: 과거 능동태 대격 단수)
ἐκ νεκρῶν καὶ δόξαν αὐτῷ δόντα,
중에서 죽은사람들 그리고 영광을 그에게 주신 (분사: 과거 능동태 대격 단수)
ὥστε τὴν πίστιν ὑμῶν καὶ ἐλπίδα εἶναι εἰς θεόν.
그러므로 그 믿음 너희의 그리고 소망을 있도록 항하여 하나님을 (부정사: 현재 능동태)
주해
▣ 너희는‥‥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 '믿는다'라고 번역되어 있는 헬라어는 사본들에 따라 형용사 '피스투스' 또는 현재분사 '피스튜온타스'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단어가 형용사로 쓰일 때는 '믿는다'는 의미뿐 아니라 '충실한', '신실한'의 개념을 뜻할 수도 있고, 분사로 쓰일 때는 단지 '믿는 자'만을 의미한다. '믿는 자니'는 시내산 사본(H), 에브라임 사본(C), 시리아역 등을 따라서 기록한 것이고, 알렉산드리아 사본(A), 바티칸 사본(B) 및 벌게이트역 등에는 '신실한 자니'로 되어 있다. 후자도 권위 있는 사본으로 인정되나 본절의 후반부에 있는 '너의 믿음과'를 통해 판단해 볼 때 전자가 더욱 유력하며, 문법적으로도 형용사에 두 전치사구, 즉 '하나님을'(에이스 데온)과 '죽은 자 가운데서'(에크 네크론)가 따르는 것이 어색하므로 현재 분사로 보는 것이 옳은 듯하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목적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그를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 - 저자는 수신자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를 높이시어 영화롭게 하신 분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에 대한 속량이며 그의 부활하심과 영광 받으심은 성도들에게 확신과 소망을 주는 토대인 바 하나님은 능력으로 이 일을 이루신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진술은 박해에 직면한 수신자들에게 능력의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두게 하여서 현재의 고난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믿음으로 승리의 생활을 하게 하는 힘을 줄 뿐만 아니라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우리의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베드로전서 1장 22-25절 단락구조분석 【진리 안에서의 형제 사랑의 권면】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1:22 여러분은 진리에 복종함으로써, a) 영혼을 정결하게 해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b)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c)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a.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성령(그)영)을 통하여가 더 있음. b.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순결함이 없음. c. 또는 변함없이. 또는 깊게)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정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여라.
1:22 Since you have purified your souls in obedience to the truth for a sincere love of the brothers and sisters, fervently love one another from ①the heart, ▷ ①Two early mss a pure heart
직역:
1:22 Τὰς ψυχὰς ὑμῶν ἡγνικότες ἐν τῇ ὑπακοῇ
그 혼들을 너희의 정결하였고 안에서 그 순종 (분사: 완료 능동태 주격 2복)
τῆς ἀληθείας εἰς φιλαδελφίαν ἀνυπόκριτον,
그 진리의 위하여 형제 사랑을 거짓 없는
ἐκ καθαρᾶς καρδίας ἀλλήλους ἀγαπήσατε ἐκτενῶς
부터 깨끗한 한 마음 서로를 너희가 사랑하라 뜨겁게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2복)
주해 지금까지 이교적인 생활양식과 반대되는 성도의 거룩한 생활양식에 대하여 권면한 저자가 이제 형제 사랑에 대하여 권면한다.
▣ 진리를 순종함으로. - '진리'(알레데이아)는 하나님의 진리, 곧 그의 거룩하신 말씀 속에 계시된 진리이다. 이는 지금까지 저자가 말한 진리로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여기서 '순종'이 영혼의 정결의 조건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 '깨끗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그니조'는 구약에서 주로 제사장이나 백성의 결례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 말이었다. 신약에서도 의식적인 정결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데,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의 서신서에서 이 말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베드로도 여기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헌신, 육신적인 욕망과 위선, 이기주의 같은 더러운 욕망으로부터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내적 정결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복음에 순종함으로 사랑이 행동의 법칙으로 작용하는 공동체에 가입하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형제 사랑'에 해당하는 헬라어 '필라델피아'는 인류 전체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형제 관계에서 행해지는 사랑을 의미한다. 이때 형제 사랑에 있어 요구되는 자세는 거짓 없는 마음이다. 여기서 '거짓이 없는'(아뉘포크리톤)이란 말의 뜻은 '배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형제에 대한 사랑을 마치 배우가 연기를 하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심어린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형제 사랑에 있어 위선적인 요소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가증한 것이며 미움보다 더 악한 것이다.
▣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 형제 사랑에 있어 요구되어지는 두 번째 자세이다. 여기서 '뜨겁게'(에크테노스)는 '쉬지 않고', '열심인'이란 의미의 '에크테네스'에서 유래한 말로서 성도 간에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자세를 지닐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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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1:23 여러분은 거듭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가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d)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d. 또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영원한 말씀으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로 된 것이니, 곧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이다.
1:23 for you have been born again not of seed which is perishable, but imperishable, that is, through the living and enduring word of God.
직역:
1:23 ἀναγεγεννημένοι οὐκ ἐκ σπορᾶς φθαρτῆς
너희가 거듭나게 된 것은 아니요 에서 씨 썩어질 (분사: 완료 수동태 주격 2복)
ἀλλ᾽ ἀφθάρτου διὰ λόγου ζῶντος θεοῦ
오직 썩지아니 할 (씨로된 것이니) 통해서 말씀을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분사: 현재 능동태 속격 단수)
καὶ μένοντος.
그리고 항상 머무는 (분사: 현재 능동태 속격 단수)
주해
▣ 너희가 거듭난 것이‥‥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앞절에서 형제 사랑에 대하여 말하던 저자는 다시 성도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에 대하여 말하는데 이는 어떻게 구원받았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구원을 '썩어질 씨'와 '썩지 아니할 씨'로 대조시키면서 설명한다. 여기서 '썩어질 씨'는 죽음에 이르는 육체를 말한다. 그러므로 본절은 성도들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신적인 사랑이 특징적인 지표가 되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음을 의미한다.
▣ 썩지 아니할 씨. - '썩지 아니할'(아프다르투)은 4절에서 신자가 받을 기업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썩지 아니할 씨'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견이 있다. 첫째는 '썩지 아니할 씨'와 '하나님의 말씀'을 동일시하는 견해이고, 둘째는 '썩어질 씨'를 '아담'으로 보고 '썩지 아니할 씨'를 '하나님'으로 보는 주장이다. 그런데 24절과 25절에서 말씀이 영원토록 존재함을 역설하는 것으로 보아, '씨'는 말씀으로 보는 것이 옳다. 누가복음서에서도 '씨'(스포로스)는 말씀과 동일시되고 있다.
▣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모두 썩어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제공하거나 창조적이라는 의미에서 항상 살아있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은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있는 말씀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1:24 e)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e. 사40:6-8(70인역))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같고 그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1:24 For, “ALL FLESH IS LIKE GRASS, AND ALL ITS GLORY IS LIKE THE FLOWER OF GRASS.
THE GRASS WITHERS, AND THE FLOWER FALLS OFF,
직역:
1:24 διότι πᾶσα σὰρξ ὡς χόρτος,
왜냐하면 모든 육체 같은 풀과
καὶ πᾶσα δόξα αὐτῆς ὡς ἄνθος χόρτου·
그리고 모든 영광이 그사람과 같은 꽃과 풀의
καὶ ἐξηράνθη ὁ χόρτος,
그리고 마르게되었다 그 풀은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3단수)
καὶ τὸ ἄνθος ἐξέπεσεν·
그리고 그 꽃은 그의 떨어졌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수)
주해
▣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 저자는 '모든 육체', 즉 하나님 없는 인간 실존의 허무함과 그에 반해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해 사 40:6-8를 인용하고 있다. 이 인용은 70인역(LXX)으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이는 본래 이사야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 낙심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바벨론이 지금은 강성하나 곧 쇠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임을 강조한 것이었다. 베드로는 바로 이러한 이사야의 말의 인용을 통하여 주의 말씀의 절대성과 영원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다. 본절 외에 븐문(사 40:6-8)은 약 1:10에서도 직접 인용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부(富)의 덧없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1: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선포된 말씀입니다.
1: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다." 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다.
1:25 BUT THE WORD OF THE LORD ENDURES FOREVER.” And this is the word which was ①preached to you.
▷ ①Lit preached as good news to you
직역:
1:25 τὸ δὲ ῥῆμα κυρίου μένει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그 그러나 말씀은 주님의 머문다 토록 그 영원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수)
τοῦτο δέ ἐστιν τὸ ῥῆμα
이곳이 곧 이다 그 말씀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수)
τὸ εὐαγγελισθὲν εἰς ὑμᾶς.
그 복음으로전하여진 에게 너희 (분사: 과거 수동태 주격 단수)
주해
▣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 썩어질 씨로부터 생겨난 모든 것은 마르고 떨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만은 세세토록 있다. 본절에서 사용된 '말씀'은 23절에 나와 있는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이다. 두 단어는 경미한 차이가 있는데 '로고스'는 성서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고, '레마'는 그 로고스가 음성이나 글로 표현된 것이다. 따라서 '레마'는 '로고스'보다 구체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