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서 문안 합니다.
매월 첫째주 화요일과 셋째주 화요일은 구조분석 방법론을
함께 연구 할수 있도록 하신 성령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목사님들께서 동참하시여 성서의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많은 은혜 받으시고 하나님만 자랑해 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아주 좋아 하세요.
주제절
외울 말씀 1장 5-7절이다.
외울 말씀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베드로후서 1장 1-2절 단락구조분석 【 문안 인사 】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나 a) 시므온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우리의 믿음과 같은 귀한 믿음을 받은 이들에게 문안합니다. (a.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시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우리와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를 쓴다.
1:1 ①Simon Peter, a bond-servant and apostle of Jesus Christ, To those who have received a faith of the same ②kind as ours, ③by the righteousness of our God and Savior, Jesus Christ: ▷ ①One early ms Simeon ②Or value ③Or in
직역: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종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의하여 우리와 같은 믿음을 얻은 사람이다.
1:1 Συμεὼν Πέτρος δοῦλος καὶ ἀπόστολ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시몬 베드로는 종 과 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τοῖς ἰσότιμον ἡμῖν λαχοῦσιν πίστιν ἐν δικαιοσύνῃ
그(사람들에게) 같은 우리와 얻은 믿음을 의하여 의에 (분사: 과거 능동태 여격 2복수)
τοῦ θεοῦ ἡμῶν καὶ σωτῆρ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그 하나님 우리와 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해
▣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 - 사도 베드로는 사도 바울이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자신을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의 일꾼으로 묘사하고 있다. 본래 '종'(둘로스)이란 가장 비천한 사회적 신분을 가지고 자기를 소유한 주인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노예를 표현하는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그리스도께서 피로 구속하시어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일해야 할 직무를 맡은 자들이다. 사도들은 그 직무가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바쳐 그리스도께 충성하였고 충성의 표시로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였다. 또한 저자는 자신을 '사도'(아포스톨로스)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문자적으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보냄을 받은 대리자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렇듯 '종과 사도'라는 대조적인 표현이 병렬되어 나타나는 것은 특이한 현상으로, 사역자로서의 겸손을 나타냄과 동시에 자신의 교훈에 대한 사도적 권위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 시몬 베드로. - 베드로전서에는 '베드로'라고만 언급되어 있으나 본서에는 '시몬'이라는 유대 이름이 첨가되어 있다. '시몬'이라는 이름의 뜻은 '듣는다', '순종한다'로 원래의 발음은 행 15:14에 표기된 바와 같이 '시므온'(쉬메온)이다. 그러므로 '시몬'으로 표기되어 있는 바티칸 사본(B)보다는 '시므온'으로 표기되어 있는 시내산 사본(H)이나 알렉산드리아 사본(A)이 보다 정확한 기록이다. 따라서 성경에 '시몬'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은 간략화된 것이거나 아니면 와전된 것이다.
▣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은 '투 데우 헤몬 카이 소테로스 이에수 크리스투'이다. 본문의 헬라어 원문상에서 볼 때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 존재로 볼 수도 있고 각기 다른 두 존재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것이 성부와 성자 두 분을 지칭한다고 해석하며, 혹자는 성자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두 가지의 견해 가운데 어느 쪽을 취해도 큰 무리는 없으나 문법적으로 볼 때 관사 '투'가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두 수식하고 있으므로 후자의 견해에 따라 본절을 '우리 하나님이시오 구주이신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옳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표현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표현이 종종 사용되었다.
▣ 의를 힘입어. - 이것은 성도가 의롭게 되는 근거가 성도 자신에게 있지 않고 독생자를 보내신 성부와 성부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를 대속 제물로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밝혀 준다.
▣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 '동일하게 보배로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소티모스'은 신약에서 이곳에만 나타나는 단어로, 이것은 '동등한'을 뜻하는 '이소스'와 '명예'를 뜻하는 '티메'의 합성어이며 문자적으로 '동등한 특권을 가진'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이란 질에 있어서나 양에 있어서나 구속함을 입게 하는데 있어 한 치의 차이도 없이 고귀한 믿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믿음이 보배롭다는 사상은 그의 첫 번째 편지에도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한편 '우리'란 사도들을 지칭할 수도 있고 유대인 신자들을 지칭할 수도 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이에게 공평하게 은혜를 미쳐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큰 사도이든 평신도이든 관계치 않고 동일한 믿음을 동일하게 소유하도록 한다. 은혜의 하나님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믿는 자 모두에게 동일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더욱 풍성해지기를 빕니다.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아는 것으로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지어다.
1:2 Grace and peace be multiplied to you in the knowledge of God and of Jesus ①our Lord, ▷ ①Or our Lord. Since His...excellence, through these (vv 3-4)
직역: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온전한 지식으로 은혜와 평안이 너희에게 더욱 풍성해지기를 원하노라.
1:2 χάρις ὑμῖν καὶ εἰρήνη πληθυνθείη
은혜와 너희에게 와 평안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원하노라 (동사: 희구법 과거 수동태 3단수)
ἐν ἐπιγνώσει τοῦ θεοῦ καὶ Ἰησοῦ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으로 온전한 지식 그 하나님 과 예수 그 주님의 우리의
주해
▣ 앎으로. - '앎'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그노시스'는 본서의 핵심 단어의 하나로 '완전한 지식'을 뜻하는데,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직감적(直感的) 지식을 의미하는 '그노시스'와 구별하기 위하여 저자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낱말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참된 지식은 직감이나 이성으로 인해 습득되는 지식이 아니라 인격 대 인격이 만남으로 말미암아 체득되는 완전히 지식이다.
▣ 은혜와 평강이‥‥더욱 많을지어다. - 벧전 1:2 하반절과 문자적으로 일치한다.
베드로후서 1장 3-11절 단락구조분석 【 경건의 삶 권면 】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1:3 그리스도께서는 신적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불러 주신 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3 그분의 신성의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신의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신 분을 아는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1:3 for His divine power has granted to us everything pertaining to life and godliness, through the true knowledge of Him who called us ①by His own glory and ②excellence. ▷ ①Or to ②Or virtue
직역: 그의 신적인 능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을 향한 모든 것을 따라 주셨다. 그분의 온전한 지식을 통하여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이다.
1:3 Ὡς πάντα ἡμῖν τῆς θείας δυνάμεως αὐτοῦ
따라 모든 것을 우리에게 그 신적인 능력으로 그의
τὰ πρὸς ζωὴν καὶ εὐσέβειαν δεδωρημένης
그 향한 생명 과 경건을 주셨다 (분사: 완료 중수디 속격 단수)
διὰ τῆς ἐπιγνώσεως τοῦ καλέσαντος ἡμᾶς ἰδίᾳ δόξῃ καὶ ἀρετῇ
통하여 그 온전한 지식 그(분의) 부르신 우리를 통하여 영광 과 덕으로 (분사: 과거 능동태 속격 단수)
주해
▣ 그의 신기한 능력. - '신기한 능력'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데이아스 뒤나메오스'로 이를 직역하면 '신적인 능력'이다. 그러므로 '그의 신기한 능력'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능력을 뜻한다.
▣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 - '생명'(조에)은 본래 그리스도의 본성으로서 성도를 새 피조물로 만드는 근원적 본질인 영생을 말한다. 그리고 '경건'(유세베이아)은 '좋게'라는 뜻을 가진 '유'와 '예배드리다'는 뜻을 가진 '세보마이'가 합성된 낱말로 가치 있는 좋은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양자는 서로 깊은 연관을 가진 낱말로 영적 생명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한다. 즉 경건은 생명의 열매이며, 생명은 경건의 근원이다. 한 마디로 생명과 경건은 구속함을 입어 새 피조물이 된 자가 가지고 나타내야 할 영적 요소들이다. 그리스도는 권능을 가지고 자기 백성들에게 그 영적 요소를 충만케 공급해 주신다. 그리스도는 죽었던 인간을 새 생명으로 탄생시키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로 양육하시며 끝내는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도록 만드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 주셨으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도레메네스'는 이와 동의어로 단순히 준다는 의미를 가진 '디도미'에 비해 '선물로 준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된 특수 용어로, 베드로와 마가만이 사용하고 있어 마가복음이 베드로의 영향을 받아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시사한다. 또한 이 동사는 본절에서 완료형으로 사용되고 있어 그리스도는 성도에게 성도가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기 위한 모든 요소와 조건을 이미 다 주셨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 '영광'(독사)은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이며, '덕'(아레테)은 성도 안에서 성도들을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신성의 현현이다. 영원하신 영광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역사하시어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인도하신다.
▣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 여기서의 '앎'도 2절에서 사용된 '에피그노시스'이다.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며 그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을 받게 되는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1:4 그분은 그 영광과 덕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4 이로써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너희가 이것들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정욕으로 인하여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1:4 Through ①these He has granted to us His precious and magnificent promises, so that by them you may become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having escaped the corruption that is in the world on account of lust. ▷ ①Lit which
직역: 이일들을 통하여 보배롭고 그리고 가장 큰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 약속들을 통하여 세상 안에서 정욕으로 썩어질 것을 피하고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자가 너희로 되게 된다면 되기 위함이라.
1:4 δι᾽ ὧν τὰ τίμια καὶ μέγιστα ἡμῖν ἐπαγγέλματα δεδώρηται,
통하여 이일들을 그 보배롭고 그리고 가장 큰 우리에게 약속들을 그가 주셨다 (동사: 직설법 완료 중수디 3단)
ἵνα διὰ τούτων γένησθε θείας κοινωνοὶ φύσεως,
위함이라 통해서 이약속들을 너희로되게 된다면 신적 참여하는자가 성품의 (동사: 가정법 과거 중디 2복)
ἀποφυγόντες τῆς ἐν τῷ κόσμῳ ἐν ἐπιθυμίᾳ φθορᾶς.
피하고 그 안에서 이 세상에 의한 정욕에 썩어질 것을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2복)
주해
▣ 이로써. - 3절의 '영광과 덕으로써'라는 말이다.
▣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과 덕으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아 얻게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광되고 영원한 삶에 대한 약속을 가리킨다. 그 약속은 그리스도의 중보로 말미암아 세워진 영원한 생명과 영광된 삶에 대한 안식에의 약속으로써 결코 파기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인 것이다.
▣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히나 디아 투톤'으로 이를 직역하면 '이것들로 말미암아'이다. 즉 원문에는 '약속'이란 단어가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일단의 학자들은 '이것들'이 3절의 '생명과 경건'을 지칭한다고 보며, 또 어떤 이는 '영광과 덕'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명사는 가장 가까운 것을 지칭하는 것이 상례이다. 따라서 본문의 대명사는 앞의 '약속'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 정욕을 인하여‥‥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큰 약속을 주신 목적이다. 여기서 '정욕'(에피뒤미아)은 죄성을 가지고 육신의 욕구를 따라 육적인 것을 추구하는 반하나님적 탐욕을 뜻한다. 이 탐욕은 가인과 같이 땅의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께 이르지 못한다. 다음으로 '세상'(코스모스)이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피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쥐곤테스'는 '도피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아포퓨고'의 제 2부정과거 능동태 분사로서 이것은 문자적으로 '피한 이래로'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란 말의 뜻은 '죄의 노예가 된 육신의 탐욕을 따라 악한 세상의 썩어질 것에서 도망하여'이다. 한편 사람이 그와 같이 육신의 악한 것에서 떠나면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게 된다. 그래서 혹자는 썩어질 것에서 피하는 것을 성도의 소극적인 생활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을 성도의 적극적인 생활로 해석하려 하나 그러한 해석은 자칫 성도의 신앙생활을 이원적인 상태에 빠뜨릴 위험성이 있다. 즉 그것은 자칫 악에서는 떠났으되 아직 하나님께는 근접하지 못한 어정정한 신앙 영역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훈에 의하면 인간이 서 있는 영역은 악 아니면 선, 둘 중에 하나이다. 그 사이에 중립 지대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세상을 피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이 곧 세상을 피하는 것이다. 이 둘은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동시적 개념이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에 대한 약속을 믿고 그것을 바라는 소망 가운데 세상 것을 초개 같이 버리고 하나님 품으로 달려가 하나님과 교제하고자 전념하는 자이며, 모든 인간은 그 생활을 취하느냐 마느냐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1:5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심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1:5 그러므로 너희는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1:5 Now for this very reason also, applying all diligence, in your faith supply moral ①excellence, and in your moral excellence, knowledge, ▷ ①Or virtue
직역: 이러므로 너희는 더욱 부지런함으로 생기게 하라 그래서 너희가 더 공급하라. 너희의 믿음 안에서 덕을 그리고 덕 안에서 지식을
1:5 καὶ αὐτὸ τοῦτο δὲ σπουδὴν πᾶσαν παρεισενέγκαντες
역시 므로 이러 그러나 부지런함을 더욱 생기게 하라 (명령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2복)
ἐπιχορηγήσατε ἐν τῇ πίστει ὑμῶν τὴν ἀρετήν,
너희가 더 공급하라 안에 그 믿음에 너희의 그 덕을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2복)
ἐν δὲ τῇ ἀρετῇ τὴν γνῶσιν,
안에 그리고 그 덕에 그 지식을
주해
▣ 이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아우토 투토 데'는 문자적으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라는 뜻으로 앞의 3,4절이 본절 이하에서 밝히는 성결의 근거임을 밝힌다. 한편 본절에서 7절 사이에서는 성결의 8단계를 소개하고 있다.
▣ 힘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스푸덴 파산'으로 이 단어는 '서두르다'는 뜻을 가진 고대 동사 '스퓨도'에서 유래한 낱말이다. 악을 떠나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일은 결국 자신의 모든 노력을 다하되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시간에 해야 할 긴급한 일인 것이다.
▣ 믿음에 덕을. - '믿음'(피스티스)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얻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모든 것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저자는 믿음으로부터 성결의 단계를 시작한다. 다음으로 '덕'(아레텐)은 '의'를 뜻하는 '디카이오쉬네'와 동일한 것으로 선한 행실을 가능케 하는 도덕적 능력 또는 원기를 뜻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믿고 그를 경배하는 종교적 행위에서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건강하고 성결한 윤리적 삶을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해서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을 때 우리는 정상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갖춘 온전한 인간으로 설 수 있는 것이다.
▣ 덕에 지식을. - 여기서의 '지식'(그노시스)은 인간의 감성과 이성과 통찰력에 의해 습득되는 일반적인 지식 및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뜻한다. 흔히 종교의 신비적 경험에만 의존하려는 성도들은 종종 지식을 등한시하거나 멸시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은 맹목적인 신앙이 될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균형 있는 신앙을 유지하지 못한다. 2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성도를 은혜와 광장으로 인도한다고 했거니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 때 성도는 세상을 올바로 간파하여 세상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1:6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1:6 and in your knowledge, self-control, and in your self-control, perseverance, and in your perseverance, godliness,
직역: 그리고 지식 안에서 절제를 그리고 절제 안에서 인내를 그리고 인내 안에서 경건을,
1:6 ἐν δὲ τῇ γνώσει τὴν ἐγκράτειαν,
안에서 그리고 그 지식 그 절제를
ἐν δὲ τῇ ἐγκρατείᾳ τὴν ὑπομονήν,
안에서 그리고 그 절제 그 인내를
ἐν δὲ τῇ ὑπομονῇ τὴν εὐσέβειαν,
안에서 그리고 그 인내 그 경건을
주해
▣ 지식에 절제를. - '절제'(엥크라테이아)란 '자제력'을 뜻한다. 지식이란 인간에게 무제한적으로 허용되어 있지 않다. 즉 성도에게는 삼가해야 할 지식이 있고, 허용된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교만해져서 넘어서는 아니될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에는 절제가 요구된다. 절제 없는 지식은 무지보다도 더 위험하다.
▣ 절제에 인내를. - '인내'(휘포모네)는 ‘굳게 버티는 지구력'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시련과 박해를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소망하며 지속적으로 참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이것은 주의 재림이 지연됨으로 인해 초조해 하는 수신자들에게 필히 요구되는 것이다. '자제력(自制力)이란 한 순간으로 끝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그러므로 신앙에는 자제력과 더불어 길게 버틸 수 있는 지구력이 요구된다. 한번 참고 마는 것은 참된 절제가 아니다. 오직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오래 절제하는 인내를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착하고 충성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수된 우리들에 대하여 참으시되 자기의 독생자 예수를 죽이시기까지 길이 참으신 것을 기억하자.
▣ 인내에 경건을. - 3절에서 경건’은 ‘좋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경건이란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것을 뜻한다. 흔히 선을 행하고 지식이 있으며 인내심이 큰 사람들은 자칫 자신을 높이는 교만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일수록 더욱더 자신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여 하나님만을 경배하도록 자신을 쳐 복종시켜야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1:7 경건에 상호 우애를 더하고, 상호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시오.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여라.
1:7 and in your godliness, brotherly kindness, and in your brotherly kindness, love.
직역: 그리고 경건 안에서 형제 우애를 그리고 형제 우애 안에서 사랑을,
1:7 ἐν δὲ τῇ εὐσεβείᾳ τὴν φιλαδελφίαν,
안에서 그리고 그 경건 그 형제우애를
ἐν δὲ τῇ φιλαδελφίᾳ τὴν ἀγάπην.
안에서 그리고 그 형재 우애 그 사랑을
주해
▣ 경건에 형제 우애를. - ‘형제 우애’(필라델피아)란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에 대해서는 베드로전서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예수께서 율법을 단 두 개의 계명으로 요약하여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선언하셨거니와 이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경건한 자는 아울러 사람을 사랑하여야 온전한 사랑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을 저버린 인간 사랑은 거짓이며 인간을 도외시한 신에 대한 사랑은 허무이다.
▣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로서 이 사랑은 모든 덕목을 포괄하는 지고의 사랑이다. 사도 바울이 어떠한 종교적 ․ 윤리적 덕목도 사랑이 없으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선언한 바와 같이 이 사랑은 앞에 열거된 모든 것들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하는 최고의 덕목이다. 성도가 이 사랑을 모든 것 위에 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는 모든 것을 온전케 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1:8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넉넉해지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못맺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1:8 이런 것들이 너희에게 있고 또 풍성하면,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게으르거나 열매 없는 자들이 되지 않을 것이다.
1:8 For if these qualities are yours and are increasing, they do not make you useless nor unproductive in the true knowledge of our Lord Jesus Christ.
직역: 왜냐하면 이런 것들이 너희에게 있어 또 풍성해지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지식에 대하여 게으르지도 아니하고 열매들이 없는 상태들을 만들지도 아니한다.
1:8 ταῦτα γὰρ ὑμῖν ὑπάρχοντα καὶ πλεονάζοντα οὐκ ἀργοὺς οὐδὲ
이런것들이 왜냐하면 너희에게 있어 또 풍성해지며 아니하고 게으르지 도 않는다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ἀκάρπους καθίστησιν εἰς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ἐπίγνωσιν·
열매들이없는 상태들을 만들지 대하여 그 주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지식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 3단)
주해
▣ 이런 것. - 5-7절에서 열거한 8가지 덕목들을 일컫는다.
▣ 알기에. - 2절과 같이 완전한 지식을 뜻하는 '에피그노시스'가 사용되었다. 한편 이처럼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신앙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앞의 덕목들을 실행한 결과인지 아니면 그 덕목들을 실행 가능케 하는 원인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전체적인 문맥을 볼 때 결과로 보아 이러한 덕목들을 실행하였을 경우 첫째는 그리스도를 아는 데 부지런해지고, 둘째는 열매를 맺게 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지금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지식은 마치 희미한 거울을 통하여 사물을 보는 것처럼 불완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이러한 불완전한 지식은 날이 갈수록 완전한 지식으로 자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의 지식은 믿음을 통한 의로운 생활, 즉 신앙의 덕목들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 보이는 생활을 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자라고자 하는 자는 그의 뒤를 좇아야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9 그러나 이런 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앞을 못 보는 사람이며, 눈이 근시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해진 것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1:9 그러나 이런 것들이 없는 사람은 맹인이어서 멀리 보지 못하며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은 자이다.
1:9 For the one who lacks these qualities is blind or short-sighted, having forgotten his purification from his former sins.
직역: 왜냐하면 그에게 이런 것들이 있지 아니하면 멀리 볼 수 없는 시각장애자 이다. 자기의 옛 죄들이 깨끗함을 받은것을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1:9 ᾧ γὰρ μὴ πάρεστιν ταῦτα,
그에게 왜냐하면 아니하면 있지 이런것들이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τυφλός ἐστιν μυωπάζων,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시각장애자 이다 멀리 볼수 없는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λήθην λαβὼν τοῦ καθαρισμοῦ τῶν πάλαι αὐτοῦ ἁμαρτιῶν.
잊어버림을 받은 후에 그 깨끗이함의 그 옛 자기의 죄들을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단수)
주해
▣ 이런 것이 없는 자. - 5-7절에 언급된 덕목들을 실행하지 못하는 자를 일컫는다. 소경이라. - '소경'(튀플로스)은 본래 눈이 어두워 사물을 보지 못하는 자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자들, 곧 진리를 거절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하여 은유적으로 사용되었다.
▣ 원시치 못하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위오파존'은 '근시안을 가진 사람'이란 뜻을 가진 '위오프스'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이 낱말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하늘에 관한 소망이나 영적 생활을 영위케 하는 것들은 보지 못하고 현세의 편안함이나 인간적인 탐욕만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앞에서 언급한 덕목들을 실행하지 않는 자들은 땅엣 것에 매여 있어 장차 다가올 미래의 축복된 삶을 보지 못하고 당장 육신에게 유익 되는 것만을 보게 될 뿐이다.
▣ 잊었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레덴 라본'으로 직역하면 '잊어버림을 취했느니라'이다. 이러한 표현은 잊었다는 의미를 매우 강조한 표현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간은 무력한 존재이어서 그가 회개하고 믿어 성령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체험했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퇴보라는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다. 신앙이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곧 뒤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신앙생활에 현상 유지란 있을 수 없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0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더욱더 힘써서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굳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여라. 너희가 이런 것들을 행하면 결코 넘어지지않을 것이다.
1:10 Therefore, brothers and sisters, be all the more diligent to make certain about His calling and choice of you; for as long as you practice these things, you will never stumble;
직역: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더 너희는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실하게 하여 열심을 내라. 왜냐하면 이것들을 너희가 행 할 때에 어느 때나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0 διὸ μᾶλλον, ἀδελφοί,
그러므로 더욱 더 형제들아
σπουδάσατε βεβαίαν ὑμῶν τὴν κλῆσιν καὶ ἐκλογὴν ποιεῖσθαι· (부정사: 현재 중간태)
너희는 열심을내라 확실하게 너희의 그 부르심 과 택하심을 행하도록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2복)
ταῦτα γὰρ ποιοῦντες οὐ μὴ πταίσητέ ποτε.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2복)
이것들을 왜냐하면 행 할 때에 아니함이라 결코 너희가 실족하지 어느 때나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주해
▣ 그러므로. - 5-7절에 열거한 신앙의 덕목들을 실천하지 아니하면 영의 눈이 어두워지고 죄 씻음에서 멀어지므로 라는 뜻이다.
▣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 '부르심과 택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레신 카이 에클로겐'은 '초대와 승인'이라는 뜻으로 이 낱말들은 구원과 관련된 용어들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부르시고 택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이 자기 의 받은 구원을 확실히 하려면 그의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는 의미이다.
▣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 - 여기서 '이것'(타우타)은 바로 앞에 있는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것 보다는 5-7절에 언급한 덕목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10, 11절은 3-9절의 결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실족하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타이세테'로 문자적으로 '떨어지다', '다리를 헛딛다'는 뜻이다. 혹자는 '실족치 아니하리라'는 말이 '죄를 짓지 않는다'라는 의미라고 주장하나, 이는 '구원을 쓸어 버리지 않는다'라고 보는 것이 옳다. 항상 깨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자는 구원에서 떨어져 나갈 수 없는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1:11 또한 여러분은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출 것입니다.
1:11 이렇게 하면 우리 주님,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너희에게 넉넉히 주어질 것이다.
1:11 for in this way the entrance into the eternal kingdom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will be abundantly supplied to you.
직역: 이와 같이 한다면 우리 주님,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 안으로 들어감을 풍성히 너희에게 공급하게 하실 것이다.
1:11 οὕτως γὰρ πλουσίως ἐπιχορηγηθήσεται ὑμῖν
이와같이 한다면 풍성히 공급하게하실 것이다 너희에게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태 3단)
ἡ εἴσοδος εἰς τὴν αἰώνιο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그 들어감이 안으로 그 영원한 나라를 그 주님 우리의
καὶ σωτῆρ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또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해
▣ 이같이 하면. - 5-7절에서 열거한 신앙의 덕목들을 잘 행하여 하나님을 알고, 그 열매를 맺고, 실족치 아니하면 이라는 뜻이다.
▣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주시리라. - 여기서 '영원한 나라'(아이오니온 바실레이안)란 본절에만 보이는 독특한 용어이나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믿음을 기초로 시작하여 지고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신앙 세계 안에서 참된 삶을 살아가는 자는 결국 여유롭게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게 될 것임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본서는 이 땅에서 열심을 가지고 충실하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영위할 때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해 준다.
베드로후서 1장 12-15절 단락구조분석 【 집필 동기 천명 】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12 그러므로 비록 여러분이 이런 것들을 알고 있고, 또 스스로가 받은 진리에 굳게 서 있지만, 나는 언제나 이런 것들에 대하여 여러분을 일깨우려 합니다.
1:12 그러므로 너희가 이런 것들을 알고 또 이미 받은 진리 안에서 있으나, 나는 너희들로 이것들을 항상 기억하게 하려한다.
1:12 Therefore, I will always be ready to remind you of these things, even though you already know them and have been established in the truth which is present with you.
직역: 이러므로 너희가 이런 일들에 관하여 항상 알고 있으며, 또 현재 진리 안에 굳게 세워져 있을 지라도 다시 생각하는 것을 하려한다.
1:12 Διὸ μελλήσω ἀεὶ ὑμᾶς ὑπομιμνῄσκειν περὶ τούτων, (부정사: 현재 능동태)
이러므로 하려고할것이다 항상 너희를 다시 생각하는 것을 관하여 이런일들에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1단)
καίπερ εἰδότας καὶ ἐστηριγμένους ἐν τῇ παρούσῃ ἀληθείᾳ. (분사: 현재 능동태 여격 단수)
비록 알고있으며 또 굳게세워져있을지라도 안에 그 현재 있는 진리에 (분사1,2: 완료 능동태 대격 2복)
주해
▣ 너희가‥‥이미‥‥섰으나. - '섰으나'(에스테리그메누스)는 벧전 5:10의 '굳게하다'와 같은 말로서 본서 수신자들의 신앙이 앞에서 언급한 사도의 가르침 위에 서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본서의 독자들이 이미 앞의 5-7절에서 언급한 신앙의 덕목들을 실천하여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한편 본절에서 '이미 있는 진리'란 그들에게 전달된 '복음'을 말하는 것으로 전반적인 사도의 가르침들을 가리킨다.
▣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 사도 베드로는 자신의 독자들이 신실하고 충성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더욱 힘써 기독교의 덕목들을 실천하라고 권면한 것은 독자들이 계속해서 진리 가운데 설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함이었다. 9절에서 이미 진보의 정지는 퇴보를 의미한다고 말한 저자는 그러한 나쁜 결과가 행여 독자들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사랑의 마음에서 재차, 삼차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신앙의 권면은 아무리 여러 번 반복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13 이 육신의 장막에 사는 동안, 나는 여러분의 기억을 일깨워서 분발하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1:13 내가 이 장막에 사는 동안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1:13 I consider it right, as long as I am in this earthly ①dwelling, to stir you up by way of reminder, ▷ ①I.e., human body
직역: 내가 이 장막 안에 있는 동안에 너희를 일께우는 것이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여긴다.
1:13 δίκαιον δὲ ἡγοῦμαι,
옮은 것으로 그리고 내가 여긴다 (동사: 직설법 현재 중수디 1단)
ἐφ᾽ ὅσον εἰμὶ ἐν τούτῳ τῷ σκηνώματι,
에 얼마동안 내가있는 안에 이 그 장막에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1단)
διεγείρειν ὑμᾶς ἐν ὑπομνήσει
일깨우는 것이 너희를 으로 다시 생각나 (부정사: 현재 능동태)
주해
▣ 내가 이 장막에 있는 동안에. - 여기서 '장막'이란 헬라어로 '스케노마'인데 이것은 문자적으로 '오두막집', '천막' 또는 '임시 거주지'를 뜻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낱말은 종종 영원한 집인 하늘나라에서 입게 될 육체에 비해 잠시 입고 있을 육신이라는 의미에서 현재의 육신의 의미로 표현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 의하면 플라톤도 육체를 장막이라고 표현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본문은 '나 베드로가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동안에'라는 의미가 된다. 고령의 베드로는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하였으며 그래서 더욱 독자들에게 권면을 하고자 원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보여 주신 대로 내가 c)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가 멀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보여 주신 것같이 내가 내 장막을 떠날 때가 임박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1:14 knowing that the laying aside of my earthly dwelling is imminent, as also our Lord Jesus Christ has made clear to me.
직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알리셨던 것 같이 나의 이 장막을 벗을 때가 속히 있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14 εἰδὼς ὅτι ταχινή ἐστιν ἡ ἀπόθεσις τοῦ σκηνώματός μου,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1단)
알고있으며 때문이다 속히 있다 그 벗음이 이 장막의 나의 (분사: 완료 능동태 주격 1단)
καθὼς καὶ ὁ κύριος ἡμῶν 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 ἐδήλωσέν μοι.
같이 참으로 그 주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리셨던 것 나에게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 이것이 무엇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요 21:18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거기서 주님은 베드로가 순교할 것을 말씀하셨으며 베드로는 그 말씀을 기억하고 본절에서 주께서 자신에게 지시하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 장막을 벗어날 것. - 13절을 참조하라.
▣ 임박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키네'는 사도 베드로만이 사용하는 독특한 용어로서 '곧', '신속한' 또는 '갑작스런'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긴박성을 나타내 주는 용어는 머지않은 때에 베드로가 순교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15 그리고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언제든지 여러분이 이런 일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하려고 힘을 쓰고 있습니다.
1:15 내가 떠난 후에도 너희가 항상 이것들을 생각나게 하려고 힘쓰고 있다.
1:15 And I will also be diligent that at any time after my departure you will be able to call these things to mind.
직역: 이에 내가 어느 때든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너희가 이런 것들을 기억 하는 것을 가지도록 서두루는 것이다.
1:15 σπουδάσω δὲ καὶ ἑκάστοτε ἔχειν ὑμᾶς, (부정사: 현재 능동태)
서두루는 것이다 이에 역시 어느때이던지 가지도록 너희를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1단)
μετὰ τὴν ἐμὴν ἔξοδον τὴν τούτων μνήμην ποιεῖσθαι.
후에라도 그 나의 떠남 그 이런것들의 기억을 하는 것을 (부정사: 현재 중간태)
주해
▣ 힘써. - 사도 베드로는 떠날 때가 되었다고 해서 또는 연로하다고 해서 자기가 해야 할 직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크게 장성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건설되는 데 일익을 담당하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 후에라도‥‥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 본절은 12절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여기서 베드로는 본서의 저작 목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베드로가 말하는 '필요할 때'란 결국 베드로가 죽은 뒤 어느 때라도 다 포함하는 것이다. 곧 그것은 성도가 살아가는 전 생애를 뜻한다. 그리고 '이런 것'(투톤)이 본서에 기록된 내용을 말하는지, 아니면 베드로의 후계자들에 의한 교훈, 즉 베드로의 설교를 기초로 기록한 마가복음을 말하는지, 또는 일부 카톨릭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베드로가 자신이 사후에도 지상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나뉜다. 이 가운데 첫 번째 견해를 따라 본서의 기록 내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의 전체 내용이 저작 목적을 밝힌 12-15절의 내용과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즉 베드로는 본서의 독자들이 일생 동안 그리스도의 큰 은혜 가운데서 온전한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이 글을 썼던 것이다. 본절은 자신의 사후의 일까지도 세심하게 배려하는 사도 베드로의 심도 깊은 사랑이 느껴지게 한다.
베드로후서 1장 16-21절 단락구조분석 【 재림의 확실성에 대한 변증 】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16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드린 것은 교묘하게 꾸민 신화를 따라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위엄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1:16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재림을 알게 한 것은, 우리가 교묘하게 만든 이야기를 따라서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분의 크신 위엄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다.
1:16 For we did not follow cleverly devised tales when we made known to you the power and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but we were eyewitnesses of His majesty.
직역: 왜냐하면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을 우리가 알게 하였다. 교묘하게 꾸며져 있는 신화들을 바싹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분의 크신 위엄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 되었다.
1:16 Οὐ γὰρ σεσοφισμένοις μύθοις ἐξακολουθήσαντες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1복)
아니하고 왜냐하면 교묘하게 꾸며져 있는 신화들에 (바싹) 따르지 (분사: 완료 수동태 여격 복수)
ἐγνωρίσαμεν ὑμῖν τὴν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우리가알게하였다 너희에게 그 그 주 우리의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1복)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δύναμιν καὶ παρουσίαν,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과 강림을
ἀλλ᾽ ἐπόπται γενηθέντες τῆς ἐκείνου μεγαλειότητος.
오직 목격한 자들이 되었다 그 분의 크신 위엄의 (분사: 과거 수동태/디 주격 1복)
주해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권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며 만유를 다스리시는 능력자이시다.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을 뿐만 아니라 구원의 능력까지도 가지고 계셔서 반드시 그가 믿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확신케 하기 위해 이 능력을 강조하였다.
▣ 강림하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루시아'는 본래 '가까이 존재하는 것' 또는 '출현'을 의미하며, 이 용어는 그리스도의 초림에도 재림에도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종말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 공교히 만든 이야기. - '공교히 만든'에 해당하는 헬라어 '세소피스메노이스'는 '지혜 있게 하다', '그럴듯하게 꾸미다'는 뜻을 가진 '소피조'에서 온 말로, 여기서는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지어낸 말이라는 의미이다. '이야기'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설화', '유화', '신화', '소설', '거짓말' 등을 뜻하는 '뮈도이스'가 사용되어 있어 본문은 '그럴듯하게 꾸민 거짓말'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진리'와는 반대되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좇는 무리이지 거짓을 좇는 무리가 아니다.
▣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 - '위엄'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갈레이오테토스'는 '하나님의 큰 일'을 뜻하는 '메갈레이오스'에서 유래하였다 이 용어는 신적인 능력이나 위대성을 나타내는 낱말로서 베드로가 목격한 예수의 변화산 사건을 가리킨다. '친히 본 자'(에포프테스)는 '목격자'란 뜻으로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타난다. 베드로는 변화 산에서 그리스도의 신적 위엄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의 말은 어떤 이단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신화나 거짓말이 아니라 진리인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17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존귀와 영광을 주실 때에, 곧 지극히 영광스러운 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d)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하실 때에, 우리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d. 마17:5,막9:7,눅9:35)
1:17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그분에게 음성이 들려오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가 그를 기뻐한다." 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다.
1:17 For when He received honor and glory from God the Father, such a ①declaration as this was made to Him by the Majestic Glory: “This is ②My beloved Son with whom I am well pleased”— ▷ ①Lit voice ②Or My Son, My beloved, with
직역: 왜냐하면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그 분의 한 음성이 들려온 후에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 하였다. 하실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존귀와 영광을 그가 받으셨다.
1:17 λαβὼν γὰρ παρὰ θεοῦ πατρὸς τιμὴν καὶ δόξαν
그가 받고 왜냐하면 에게서 하나님 아버지 존귀 와 영광을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단수)
φωνῆς ἐνεχθείσης αὐτῷ τοιᾶσδε ὑπὸ τῆς μεγαλοπρεποῦς δόξης·
한음성의 들려온 후에 그에게 이러한 의하여 그 지극히 큰 영광에 (분사: 과거 수동태 속격 단수)
ὁ υἱός μου ὁ ἀγαπητός μου οὗτός ἐστιν εἰς ὃν ἐγὼ εὐδόκησα,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1단)
이는 아들 나의 그 사랑하는 나의 이는 이다 인하여 그를 내가 기뻐하였다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 '지극히 큰'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갈로프레퍼스'는 '거대한'이란 뜻의 '메가스'와 '적당하다'는 뜻의 '프레페이'가 결합된 복합어로 신약 성경에서는 여기서만 사용되었다. '지극히 큰 영광'은 변화산상의 '빛난 구름'과 대칭되는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내는 히브리적 표현으로, 이러한 현상은 변화 산에서만 아니라 고대에 시내 산에서도 있었으며 성막과 성전의 시은좌에서도 있었다.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 이 표현이 지칭하는 인물은 의심할 여지없이 모든 인류의 메시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저자 베드로가 본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자신이 직접 하나님이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자신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전하는 자신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이다. 한편 본절의 내용은 본서의 저자가 의심할 여지없이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베드로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준다.
▣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 저자는 자신이 전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등한 신성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덧붙임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들의 말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 믿음 안에서의 성도의 삶이 흔들릴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못 박는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18 우리는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과 함께 있을 때에, 우리는 이 말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 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1:18 우리가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과 함께있을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이 음성을 들었다.
1:18 and we ourselves heard this ①declaration made from heaven when we were with Him on the holy mountain. ▷ ①Lit voice
직역: 우리가 그와 함께 그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전하여진 이 음성을 하늘로 부터 들었다.
1:18 καὶ ταύτην τὴν φωνὴν ἡμεῖς ἠκούσαμεν ἐξ οὐρανοῦ
그리고 이 그 음성을 우리가 들었다 부터 하늘로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1복)
ἐνεχθεῖσαν σὺν αὐτῷ ὄντες ἐν τῷ ἁγίῳ ὄρει.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1복)
전하여진 함께 그와 있을때에 안에서 그 거룩한 그 산에 (분사: 과거 수동태 대격 단수)
주해
▣ 이 소리는 우리가‥‥들은 것이라. - '이 소리'(타우텐 텐 포넨)란 하나님이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아들이며 자기와 동등하게 존귀하고 영광된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신 그 소리를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이 소리가 아니라 이 소리를 들은 사람이 '우리'라는 것이다. 그 '우리' 속에는 본서의 저자인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자신이 그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들이 직접 목격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 거룩한 산. - 이 산이 어느 산을 가리키느냐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근래의 많은 학자들이 이 산을 헤르몬 산일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여기서 변화 산이 거룩한 산이라 불리운 것은 그곳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1:19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날이 새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여러분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등불을 대하듯이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1: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어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너희는 날이 새어 너희 마음 속에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이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좋다.
1:19 And so we have the prophetic word made more sure, to which you do well to pay attention as to a lamp shining in a dark place, until the day dawns and the morning star arises in your hearts.
직역: 또 우리는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되어진 것을 가진자는 어두운 곳을 비취는 등불과 같다. 너희는 날이 새어 너희 마음들 속에 샛별이 떠오르기 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여 잘 행하는것이 옳다.
1:19 καὶ ἔχομεν βεβαιότερον τὸν προφητικὸν λόγον
또 우리는가진다 더 확실한 그 예언자의 말씀되어진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1복)
ᾧ καλῶς ποιεῖτε προσέχοντες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그것에게 잘 너희가행한다 주의하는 때에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2복)
ὡς λύχνῳ φαίνοντι ἐν αὐχμηρῷ τόπῳ, ἕως οὗ ἡμέρα διαυγάσῃ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3단)
같은 등불과 비취는 안에 어두움 곳에 까지 그 날이 새어 (분사: 현재 능동태 여격 단수)
καὶ φωσφόρος ἀνατείλῃ ἐν ταῖς καρδίαις ὑμῶν,
그래서 샛별이 떠오르기 속에 그 마음들 너희의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 또‥‥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 여기서 '예언'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톤 프로페티콘 로곤'으로 이것은 구약 전체에 나타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말한다. '더 확실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베바이오테론'은 비교 형용사로 어떤 것에 비해 더욱 확실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절은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이 변화 산에서 저자 자신이 친히 목격한 것보다도 더 그리스도께 대하여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베드로가 그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과 구약의 말씀이 모두 증거가 된다면 베드로에게 있어서는 이 두 증거 중 자신이 친히 목격한 증거가 더 확실한 증거일 텐데 어째서 구약의 말씀이 더 확실한 증거라고 말했느냐는 것이다. 이 의문점에 대한 해석은 이렇다. 즉 베드로는 자신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과 위엄을 친히 목격하지 못한 이들의 관점에서 두 증거를 비교한 것이다. 변화산상에서의 경험은 베드로와 두 제자의 경험에 불과한 것이었기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인 반면, 구약의 말씀은 모든 유대인들에게 알려진 권위를 가진 말씀이다. 따라서 베드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목격하고 기록한 예언의 말씀이 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베드로는 구약의 예언의 말씀이 자신이 목격한 증거보다도 더 확실한 증거라고 한 것이다.
▣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 - '어두운 데'(엔 아우크메로 토포)는 '누추한', '더러운'이란 뜻으로 단순히 어두운 곳을 의미하지 않고 더럽고 음침한 곳을 말한다. 성경은 악한 세상이나 죄로 물든 인간의 영혼을 어두움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저자도 9절에서 믿음의 행실이 없는 자의 마음은 어두워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어두움이란 하나님의 선과 의가 없는 곳을 지칭하며,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예언은 그 어두움에 빛을 비추어 죄인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등불의 역할을 한다.
▣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 본문에서 '샛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포스포로스'로서 이 낱말은 '빛'을 뜻하는 '포스'와 '가져오다'는 뜻의 '페로'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단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빛을 가져오는' 또는 '빛을 낳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대 헬라인들은 이 낱말을 '금성'을 부르는 용어로 사용하였으나 성경에서는 메시야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샛별'은 의심할 여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날이 새어'의 '날'(헤메라)이 성도 개개인이 회심하여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속에 좌정하시는 날을 지칭하느냐, 아니면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지칭하느냐 하는 것이다. 양자의 견해가 모두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나 16절이 주의 재림을 언급하고 있고, 성도가 회심하여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속에 좌정하신다고 하여도 성도는 여전히 말씀으로 성장할 필요가 있으므로 후자의 견해가 보다 타당한 해석이라고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너희 마음에'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때에 일어나게 될 그리스도인들의 변화를 의미한다. 모든 성도는 구원의 은혜와 축복이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항상 묵상하고 연구하며 실천해야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1:20 여러분이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마음대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1:20 너희는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한다. 곧 성경의 모든 예언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20 But know this first of all, that no prophecy of Scripture ①becomes a matter of ②someone’s own interpretation,
▷ ①Or comes from someone’s ②Or the prophet’s own
직역: 먼저 너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해석해서는 아니 된다.
1:20 τοῦτο πρῶτον γινώσκοντες
이것을 먼저 너희는 알아야 한다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ὅτι πᾶσα προφητεία γραφῆς ἰδίας ἐπιλύσεως οὐ γίνεται·
때문이다 모든 예언은 성경의 사사로 해석해서는 아니 된다 (동사: 직설법 현재 중수디 3단)
주해
▣ 먼저 알 것은. - 이 말은 본절에서 언급할 내용이 일차적으로 신중히 여겨야 할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을 뜻한다.
▣ 경의 모든 예언. - 이것은 구약 성경 말씀을 가리킨다. 당시 신약 성경은 오늘날 우리가 27권으로 가지고 있는 것처럼 아직 정리되지 아니했다. 따라서 여기서 저자가 '경'(經)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의 성경 말씀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 이 말은 첫째로 성경 말씀은 개인이 혼자서 해석할 권이 없고 어떤 특수한 지위에 있는 교직자들만이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 할 수도 있으며, 둘째로 모든 예언은 예언자 자신의 사사로운 해석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으며, 셋째로 한글 개역 성경에 번역된 대로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자기의 뜻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과 인도하심을 받아서 해석해야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교회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로마 카톨릭은 첫 번째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성경 말씀은 교회의 공식적인 고백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도는 때로 자신의 골방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진수를 깨달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첫 번째 견해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 두 번째 견해는 21절과 비교해 볼 때 성경이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으로 기록되었다는 견지에서 매우 강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세 번째 견해를 가장 타당한 견해로 받아들이고 있다. 성경의 말씀을 개인이 풀든 교회가 풀든 간에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요 성령의 조명과 인도하심으로 풀어야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서 한 것입니다.
1:21 예언은 언제나 사람의 뜻을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1:21 for no prophecy was ever made by an act of human will, but men moved by the Holy Spirit spoke from God.
직역: 왜냐하면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전하게 되지 아니 했다. 오직 거룩한 성령의 의하여 받게 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말하였다.
1:21 οὐ γὰρ θελήματι ἀνθρώπου ἠνέχθη προφητεία ποτέ,
아니했다 왜나하면 뜻으로 사람의 전하게 되지 예언은 언제든지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3단)
ἀλλ᾽ ὑπὸ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φερόμενοι
오직 의하여 성령 거룩한 받게 된 (분사: 현재 수동태 주격 복수)
ἐλάλησαν ἀπὸ θεοῦ ἄνθρωποι.
말하였다 그 거룩한 하나님 사람들이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주해
▣ 예언은‥‥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말한 것임이니라. - 헬라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왜냐하면'(가르)이라는 접속사가 나오는데 이것은 본절이 앞에서 언급한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말아야 할 이유임을 밝혀 주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 이 유가 성경이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당시의 이단자들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선지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공교한 이야기에 불과하다(16절)고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여기서 그는 성경의 신적 기원을 강조하고 있다. '감동하심을 입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로메노이'는 문자적으로 '지고 있는', '운반되는'이란 뜻인데 행 27:15,17에서는 '배가 바람에 밀려가는'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성경이 사람들의 사상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지워주신 것으로 기록되었음을 뜻한다. 본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 말씀이 사람의 뜻에서 나온 사람의 글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고 이성이 극대화된 현대 문명사회에서 우리는 자칫 하나님의 말씀을 도외시하거나 잊어버리기 쉽다. 그럴 때일수록 성도는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진리임을 믿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탐구하여 얻은 바를 삶에 실천하여야 한다.